Texts and Writings/My poems

[스크랩] 그 사내

그림자세상 2015. 1. 30. 23:35
그 사내


십이월 첫날 내린 눈이 얼어붙은 
종강을 하고 움추린 채 오르는
수원역 고가 계단 
겨울 칼바람 아래 
한 사내
길게 누워 있다

칼로 자른 빈 박카스 상자
고개를 숙인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
드러난 맨발 복숭아뼈에 하얗게 긁은 자국
왼쪽 얼굴을 반쯤 가린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
콘크리트 바닥에 엇갈려 머리 괸 오른팔 왼팔
죽은 듯 모로 누워 꿈쩍도 하지 않는 사내
고가 끝까지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휘청 흔들린다
질끈 감은 사내의 눈곱에 얼어붙은
굵은 눈물이 번쩍했다

발치께에서 가느다란 고드름이 
빠른 속도로 고가 밑으로 떨어져 조각났다
찰나의 섬광을 남기고
나는 비틀거리던 몸을 가누고
망설이던 걸음을 옮긴다
몸 움추리고 고개 숙인 사람들 속으로

그 사내의 굵은 눈물 조각이
내 발치에서 떨어진 고드름 조각이
명치 안 깊히 박혀 자란다

출처 : 여국현의 영문학아카데미
글쓴이 : 여국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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