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스크랩] 길고양이, 울다

그림자세상 2015. 1. 30. 23:35
길고양이, 울다


위 세척액을 쏟아붓고 검사를 기다리는 
아버지를 병실에 두고
비에 젖은 수북한 은행잎을 밟으며 돌아나오는 길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지막이 울었다
눈비에 젖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작고 가느다란 소리로 연이어 울었다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입원한 큰아들 
병상 옆에 술취해 쓰러져자던 아버지도 그리 울었다
어두운 병실에서 길고 낮게 밤새 계속되던 
아버지의 울음소리는 탁한 강물처럼 뻑뻑했다
병실에는 아버지의 술냄새가 밤안개처럼 자욱하고
구부린 무릎 아래 뒤틀려 벗겨 구겨진 구두와 
복숭아뼈까지 엉켜 흘러내려간 양말이 
철제 침대 난간 사이로 애처로왔다

밤새 뒤척이며 들었던 아버지의 울음은 
엉킨 양말만큼이나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입은 채 잠들어 구겨진 아버지의 나이론 바지만큼이나 비루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궁색한 변명같았다
간호원들이 들락거리듯 규칙적으로
미움과 애처러움이 번갈아 내마음을 헤집어놓았다
아버지의 호흡 거칠어질 때 
링거바늘의 날카로운 아픔이 팔목 정맥을 쑤셔대고
아버지의 울음소리 잦아들 때 
매운 연기같은 연민이 수액을 타고 심장까지 흘러들었다
병실 동쪽 창이 흐릿하게 밝아올 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울음을 등지고 몸을 뒤척였다
새벽녁 아버지는 조용히 일어나 나갔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길고 낮은 꿈속 울음에 대해 
밤새 뒤척였던 내 불면의 시간에 대해
새벽녁 병실을 나가기 전
내 어깨 위까지 담요를 덮어주고 
잠시 머뭇거리다 스쳤던 아버지의 손길에 대해
비틀거리며 나가는 아버지 그림자 뒤를
머뭇거리며 따라나가던 내 마음속 미움과 연민에 대해
병실 한켠 가득 고였던 내 침묵의 울음에 대해서도 
나는 말하지 않았다

삽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여전히 모를 것이다

그때 아버지 울음을 듣던 나를
그때 아버지를 따라 울던 나를
지금 저 고양이처럼 울며 걷는 나를
나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출처 : 여국현의 영문학아카데미
글쓴이 : 여국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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