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흐드러지게 피기엔 아직 좀 이르지 않을까 했다.
자연의 시간은 내 마음의 시간처럼 흐르지 않았다.
중부지방에서 올라오는 태풍 소식이 산 꼭대기와 허리로 이어진 전신주처럼 끝없이 올라오던 여름 오후,
붐비는 국철을 타고 시나브로 달려 느즈막히 도착한 세미원.
맞은편 산 중턱부터 구름은 산을 삼킬 듯 휘감아 돌면서
하늘과 산 경계를 지우며 오르고,
세미원 한켠의 연꽃은 흐드러졌다.
흐드러진 연꽃들 사이로 제각각 한창인 제 자태 뽑아올리며
"나, 여기 있어요!"
하나씩 하나씩 저마다
한편 발그레한 수줍음과 한편 붉은 마음을 감춤 없이 던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그건 아마 텅 빈 허공에라도 기어이 작은 돌맹이 하나 쌓아두고 싶은 마음,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그럴 수 있기를 믿는 간절함,
그렇다고 믿고 싶은 절실함 일지도 모른다.
작년에는 없었건, 혹은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건,
그 간절함이 그날은 보였다....
하나가 아름답기 위해서,
그 하나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며 스스로 존재하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의미있게 하는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
사랑의 또 다른 모습 아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 아름다움은
홀로 있어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무리지어 있어 아름답지 않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 것이다.
함께 있어서
함께 빛나기도 하고,
홀로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함께 있을 때
더러 내가 빛나고
너는 그림자가 되기도 하고,
네가 빛날 때
내가 그림자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가득한 곳에서도
당당하게
홀로 빛날 수 있고
함께 빛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는 것.
사랑은 손에 든 수은 같다.
손을 펴면 손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손을 오므리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도로시 파커, 기욤 뮈소, [종이여자], 268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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