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를 다녀왔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청담대교를 건너가는 지하철 안에서 남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았다.
잘 익은 홍시처럼 진홍빛을 한 해가 두둥 남산 허리를 지나고 있었다.
한참 비가 오고 아침에 안개가 끼더니 어제 해는 똑 따서 손에 들고 두고두고 보고 싶을만큼 예뻤다.
청담역에 지하철이 서자마자 뛰어 지하철을 바꿔 탔지만 지는 해는 뜨는 해보다 더 성급했다.
청담대교를 다시 지날 때 이미 해는 반쯤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뚝섬유원지역에 내렸지만 해는 아파트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아직 환했지만 해는 사라졌다.
5분, 아니 2분만 더 빨랐더라면 어제 그 해, 두고두고 볼 수 있었을 것을.
툴툴 아쉬운 발걸음을 틀어 원래 가기로 했던 한강대교 쪽으로 향했다.
9호선은 깨끗했다. 어제 나는 9호선을 처음 탔다.
김포공항까지 몇 역을 그냥 지나는 직행을 타서 하마터면 한참을 더 갈뻔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9호선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붐볐다.
지하철 객실이 조금 좁다 싶을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했다.
또 하나 어제 그 시간 9호선에 탄 사람들의 평균 신장은
다른 호선의 평균 신장보다 5센티미터는 컸을 것이다.
머리 위가 갑갑했다^^*~
흑석역에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정자를 찾았다.
서울에 처음와서 84번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갈 때 늘 지나던 길,
그러나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정자.
오르는 입구는 깜깜했다.
계단에도 불 하나 켜지지 않았다.
조금 걸어 정자 앞에 이르자 그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나이든 어르신 한 커플, 젊은 커플, 그리고 몇명의 학생들.
정자 이름은 효사정이었다.
조망이 좋은 곳으로 선정된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정자 위에서는 멀리 동작대교가 가깝게는 맞은 편 용산쪽의 아파트가 보이고,
그 사이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정자에는 늦은 시각에도 드물게 사람들이 올라왔다.
한 청년은 어둠속에서 한참동안 노래를 부르다 갔다.
학생들 몇은 소란스럽게 왔다가 소란스럽게 갔다.
한 커플은 아주 오래 정자 아래 어둠 속에서 머물렀다.
그들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여자는 강쪽을 남자는 여자쪽을 바라보고 마주 앉고 있었다.
그들은 내내 입맞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바로 위 정자에서 나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한참 뒤 그들은 나를 생각해서
정자 아래에서 조금 더 아래 벤취로 자리를 옮겨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했다.
나는 그들을 생각해서 정자 마루에서 정자의 방 쪽으로 들어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했다.
그들이 하고 싶어 하고 있던 일도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즐겁지 않은 일을 그리 할 수는 없는 일일터이니.
물론 내가 하고 싶어 하고 있던 일도 그들의 일 못지 않게 즐거운 일이었다.
어제 10시쯤 되는 시각, 효사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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