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다 그치고 바람이 불다 또 멎고
용마산이 물안개로 하얗게 덮힌 모습에
마음에 두었던 곳으로 갔지요.
이른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지난달쯤 이 다리 너머 병원을 지날 때
계단 앞에 장미가 환하게 피어 있었지요.
흠 하나 없는 꽃잎들이 놀랍도록 정갈하게 피어있던,
그러나 담지 못했던, 그날,
병원 뒷길을 돌아나올 때
마음은 무겁고
몸은 더위로 힘겨웠습니다.
다시 찾은 그곳,
오늘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마음은 거꾸로 환했지요.
계단을 내려와 바라 본 다리는
구름 위에 걸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길 위에 높고 높았습니다.
아직 켜지지 않은 다리 위 가로등은
그림같은 모습으로 먼 어둠 속을 응시하는
예리한 부엉이의 눈이었습니다.
서서히 어스름이 깔리고
사람들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지고
다리 위 가로등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부엉이의 눈동자,
시나브로 다가오는 어스름,
어스름 속에 발길 재촉하는 사람들,
한 걸음 떨어져서 그 모두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
잔잔한 기쁨은 그렇게도 오더군요,
비오는 날, 한폭의 수채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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