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은지, 교복을 담다

그림자세상 2011. 6. 25. 19:48

잠시 비가 멈춘 아침, 멀리 짙은 구름이 손짓을 했다. 봄비 내리던 강가를 가보려 했다. 권유 반 강압 반(^^*~)으로 말리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구름 가득한 창밖을 보는데 눈 앞에 빨래가 가득했다. 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들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옷이 있었다. 옷걸이에 걸려 빨래건조대 위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은지의 교복. 오늘은 놀토. 은지는 일찍 학원에 가고 없다. 카메라를 꺼내 나무와 강 대신 은지 교복을 담았다. 

 

교복 주인공의 엄마는 말리느라 다리지도 않아 주름이 있는 교복을 담느냐고, 의아해했다. 빨래건조대 옷걸이에 걸린 교복을 아무리 담아도 주변의 무언가가 자꾸 함께 담겨왔다. 실을 꺼내와 천정의 조명등에 살짝 나온 고리에 매고 은지 교복을 그곳에 걸었다. 교복은 바람도 없는 거실에서 아주 규칙적인 페이스로 천천히 회전했다. 나는 저 혼자 돌아가는 교복을 이리저리 담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왔다갔다 하던 교복 주인공의 엄마이자 교복 주인공의 아빠의 아내는 "당신은 카메라 하나 가지고 정말 잘 논다!" 했다^^*~ 교복 하나 가지고 빨래건조대에서, 실로 매단 천정에서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한 두어 시간을 보냈나 보다.

 

오래전 어느 순간인가부터 저 교복의 주인을 사진에 담기가 힘들어졌다. 하물며 이렇게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것은 꿈도 못 꿀 일^^*~  이 교복의 주인이 아이였을 때 그 아이는 카메라 앞에서 익살스러운 모습도 곧잘 보였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바다에서 놀던 자신의 모습을 찍던 내 앞에서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훌륭한 연기자였다. 어느 순간, 내 비디오를 빼앗아 들고 바다를 담고 나를 담고 놀던 모습도 선연하다. 그러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담는 것을 어색해했다. 어떻게 보아도, 어찌 담겨도 예쁜데, 아이는 자기를 찍은 사진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렇게 커가며 그렇게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끔, 아주 가끔 혹은 종종 아주 종종 그렇게 옆에 있지만 담을 수 없는 거리로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가는 아이를 느꼈다. 내가 그랬듯이 그렇게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가는 길, 당연한 일이라 하면서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없지 않았다. 성장한다는 것, 그것은 그렇게 또 다른 거리를 만들어 가는 걸음을 걷는 것이라는 것, 알면서도 그 걸음이 빨라지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저 교복의 주인은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며 웃고 있다. 무엇을 하며 웃건 아이의 그 웃음소리만으로도 나는 열배는 더 행복해진다. 저 아이의 웃음을 마음껏 담을 수 있는, 아니 저 아이가 자신의 웃음을 마음껏 내게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래건조대에 걸린 교복이 아니라 저 교복을 입은 은지를 이렇게 담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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