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두려운 것은

그림자세상 2011. 2. 24. 16:33

두려운 것은

 

 

여국현

 

 

황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사라졌다

정지된 자동차들과 리어커 사이

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건 떠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카페 앞 노천 의자에는 빈 자리가 가득했다

극장나무에는 빈 가지가 가득했다

정거장 사람들은 맹목적인 기다림 속에서

조용하고 쓸쓸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청소차가 물을 뿌리며 지나갔다

부랑자와 노숙자들이 무료 급식소를 향해

어색한 머뭇거림이 담긴

직선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봄 기운 머금은 겨울 공기 속에서

소녀들의 머리카락은 그들의 웃음보다 아름다이

그들이 모르는 슬픔보다 찬란하게 나부꼈다

연탄불에 떡 굽는 병원 앞 할머니의 손가락은

구멍 뚫린 목장갑 사이로 꾸중듣는 아이처럼

슬픈 표정으로 다소곳이 꺾여 있었다

녹색의 버스는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푸른색 버스는 기다림 없이 지나갔다

횡단보도 건너편 벤취 앞 연인들은 아직도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공원 앞 비둘기들은 습관처럼 날아올랐다

내려앉았다를 반복하며 교활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키 큰 은행나무 사이 터진 풍선이 끼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거나 옆으로 돌린 사람들이

힐끗 곁눈질을 하며 무심한 척 지나갔다 

황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 그는 사라졌다

정지된 자동차들과 리어커 사이

나는 서 있다

 

무엇이건 떠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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