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잊혀진 화가, 잊을 수 없는 사람

그림자세상 2010. 12. 4. 22:18

여름날 과수원에서 금방 따온 듯한 검자줏빛 포도송이가 막사발에 담겨 있다. 황톳빛 막사발은 못생겨서 정겹다. 아가리는 이지러지고 굽은 뭉툭하다. 시골 인심처럼 무던한 그릇이다. 기우뚱한 막사발을 감싸고 있는 붉은색 배경은 손때 묻은 담장마냥 따사롭다. 자그마한 정물화에 불과하지만 사람 사는 동네의 푸근한 훈기가 감칠맛 나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화가의 심성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미덥고 사랑스러운 그림은 어떤 화가가 그렸을까.

 

 

<포도>를 그린 최재덕은 잊힌 화가다. 그러나 그는 잊힐 수 없는 화가였다. 경남 산청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 도쿄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이중섭의 단짝이었다. 해방 직후 이중섭과 함께 미도파백화점 지하의 벽화를 그렸다. 최재덕이 제안해 이중섭은 복숭아나무에 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벽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최재덕은 제1회 국전에서 추천작가로 꽃다운 이름을 떨쳤다. 그는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좌파미술그룹에 가담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월북했다. 이북 출신인 이중섭은 내려왔는데 이남 출신인 최재덕은 올라갔다. 이를 두고 그들과 친했던 화가 박고석은 "이중섭이 남으로 왔고, 최재덕이 북으로 갔으니 비겼다"고 했다. 최재덕의 위상을 알게 해주는 증언이다.

 

그는 그림을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 소박하곤 천진한 그의 화면은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동심과 향수를 자아내는 그의 풍경화는 정감이 흐른다. 그를 잘 아는 화가 김병기는 "어수룩하면서 두툼한 그림이 피에르 보나르를 닮았다"고 회고한다. 보나르는 졸박하고 조촐한 색채와 형태로 작업한 프랑스 화가다. 쵀재덕은 문학인과 자주 어울렸다. "목마와 숙녀"를 쓴 시인 박인환은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운영했는데, 이 책방의 단골손님이 최재덕이었다. 시인으로 그림도 잘 그렸던 조병화는 그와 특별한 교분을 쌓았다. 이런 일화가 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한방에서 잠을 자다 최재덕이 한숨을 쉬었다. 조병화가 까닭을 묻자 최재덕은 돈이 한푼도 없다며 걱정했다. 이튿날 최재덕이 일어나보니 요 밑에 봉투가 있었다. 조병화가 봉투째 두고 간 월급이었다. 뒷날 화가는 시인에게 라일락을 그려주었다. 가난한 시절의 인정이 이토록 슬겁다.

 

최재덕의 그림은 많지 않다. <포도>는 한 시절 시인 김광균이 소장한 작품이다. 시인들과 교유했고 시심이 넘치는 그였기에 시인은 그의 그림을 사랑했다. 그는 북한에서 체제 선전용 그림을 그렸다. 분단의 우울한 그림자는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념이 인간의 속깊은 심성까지 빼앗으랴. <포도>의 오른쪽 아래 서명을 보라. '최재덕'이란 한글 석자를 교묘히 뜯어 붙여 황소 그림 하나를 그려놓았다. 그의 순박성이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