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하늘, 움직이려던 몸이 가만 있으라 했다.
읽던 책을 들었다. [울프 홀](2).
토머스 크롬웰을 따라 궁중의 홀들이 지나가고 인물들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스친다.
앤 불린의 쇠된 목소리가, 헨리 8세의 당혹스런 욕망이 어둠 속 촛불처럼 흔들린다.
갈증에 몸을 일으킨다. 창밖 하늘은 더욱 뿌얘졌다.
냉장고에서 커피 캔을 하나 꺼내든다.
이 커피는 달지 않아서 좋다.
문득 영화 생각이 났다.
저장된 화일을 연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가장 인상적인 영화음악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는 영화.
책을 덮고 화일을 연다.
꼼짝 않고 시작에서 끝을 본다....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를 기억할 수는 없다.
한 두어번 더 보았을 것이다, 오래 전.
어느 순간이 오늘처럼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모든 순간은 다 제 시간이 있다.
끝까지 갈 수 있을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작도 가능할 것이다.
"Don't cry...."
"Don't cry...."
피에타상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
재생을 위한 죽음의 제의같은 시간에
자신을 던진 트랄랄라를 지켜보는 것은 고통이지만
그녀가 소년을 안으며 가만히 전하는 이 말은
그 어떤 격렬한 외침보다 크고 깊다.
헝클어진 머리에 눈물과 핏자욱과 립스틱으로 엉망이 된 채
자신을 위해 울음 터뜨린 소년을 안은 그녀가
소년을 도닥이며 가만히 이 말을 반복할 때
한편으로는 그녀의 고통이 전하는 슬픔으로부터
또 한편으로는 그런 그녀가 전하는,
어떤 슬픔이라도 견디고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이는
그녀의 위로의 몸짓으로부터
가슴 가득 뜨거운 눈물이 고인다....
"Don't 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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