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겨울, 아침

그림자세상 2010. 9. 21. 19:25

겨울, 아침

 

     여국현

 

 

1

밤새 눈이 내린 겨울 아침

쌓이지 못한 눈이 사람들의 발 밑에서

서로의 얇은 살갗을 부비며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

가느다란 가로수 가지들 위의 눈은

위태로와 보였다

걷는 데 익숙해진 비둘기들은

장미빛인생 위에 일렬횡대로

앉아 있었다

 

2

두터운 오버 차림의 서넛

창 넓은 커피솦의 유리를 닦고 있었다

길고 넓은 술이 달린 밀개로

하얗게 거품이 일도록 비누를 칠하고

물을 뿌린 다음

얇고 단단한 스폰지가 달린 유리창 닦이로

아주 깔끔하게 유리를 닦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하늘로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가끔씩 창에 비치는 서로의 얼굴에 대하여

허튼 소리를 해 가며

넓은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길 건너편 버스정거장에서는

다리 없는 걸인이

언제나처럼 자리를 잡고

굳은 얼굴로

행인들을 침묵케 하고

늦은 출근버스에서 내려

바삐 걸어가는 고개 속인 사람들의 등 뒤로

유리창에 비치는 장방형의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비둘기들이

붉은 건물을 배경으로

흐린 아침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눈 녹은 겨울 아침 도시의 보도 위로

비둘기들의 그림자가

흘낏 번지는 듯 했다

 

3

가끔씩은

그 겨울 아침의 유리처럼

그렇게

내 삶을 닦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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