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귤나무에서 배우다

그림자세상 2010. 9. 21. 19:18

귤나무에서 배우다

 

              여 국 현

 

 

긴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던 땅에

목숨같은 단비가 내렸다

 

돌지붕에 떨어지는 한 방울 빗소리 듣자마자

어스름 새벽 한달음에 귤밭으로 달려갔다

마지막 풀 한 포기까지 다 말려버릴 듯

계속되던 여름 가뭄 내내  

새벽마다 턱턱 숨막히는 가슴으로 귤밭에 나와

하루종일 해 쨍쨍한 하늘 아래서

바짝바짝 말라가는 땅을 파보기도 하다

푸석해져가는 땅에 뿌리내린 귤나무들의 생기없는 모습과

다 영글어가는 귤들이 시들시들 말라가는 것을 보며 

가슴 속으로 속울음만 삼키던 그였다

 

가뭄이 시작되기 전 귤들은 쉼없이 영글어 

한 해 귤농사는 아쉬운대로 거둘만 했다

귤나무마다 귤들은 제법 실하게 열렸고   

그때 찾아온 가뭄이 한창 애를 타게 할 무렵

얼추 수확을 해도 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조용히

새벽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귤밭에 왔다가

하루종일 하늘을 쳐다보며 귤밭을 지키다

저녁이면 하늘을 쳐다보며 귤밭을 떠났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푸석하게 먼지 이는 귤밭을 지나다

쪼글쪼글 시들어 가는 귤을 볼 때면

살아있는 게 미안하고

가슴은 마른 땅보다 더 폭폭해졌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말했다

마음고생 하지 말고 

다 익은 귤 따면 되지 않냐고

 

그들은 모른다

하루종일 쨍한 하늘과

마른 먼지 푸석한 귤밭과

시들어 말라가기 시작하는 귤들을 보는

진짜 아픔이 무엇인지를

 

수확할 만큼 익은 귤들은 따면 그만이다

한해 수확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귤나무를 잃는 것일지라도 

 

가뭄에 뿌리까지 말라갈 때

더 이상 땅에 기대 살아갈 힘이 없을 때 귤나무는

자신의 수분으로 키워 낸 열매들에게서

생명의 수분을 거두어 자신을 살린다

 

긴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던 땅에

목숨같은 단비가 내리던 날

귤나무를 통해 배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겐

가물 때의 귤열매 같은 존재들임을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겐

가물 때의 귤나무 같은 존재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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