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1
여 국 현
그대 하늘 같은 눈을
다시 볼 수 없다면
내 눈은 강물에 흩날리는
겨울 아침 눈송이처럼
녹아 흘러 사라져 버리라
그대 낯선 이름을
내 몸에 각인하듯 쓰고 또 쓸 수 없다면
그대의 봄 향 머금은 머릿결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질 수 없다면
내 손은 굳어 응달진 마른 산비탈
자갈돌이 되어 버리라
그대의 내밀한 가슴을
뜨겁게 안을 수 없다면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기쁘게 아프게 들을 수 없다면
내 가슴은 재가 되어
서녘 바람에 날려
흔적없이 사라지는 구름처럼
미련없이 사라져 버리라
그대의 영롱한 입술에
닿지 못할 운명이라면
내 짧은 혀는 살아있다 말 하지 말고
死木의 썩은 뿌리가 되어 버리라
그대의 아릿한 숨결을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면
내 입은 차라리 굳어
내 목숨의 길조차 막아버리라
그대의 영혼에 내 영혼을 걸어
굳건히 정박할 수 없다면
내 영혼의 고갱이일랑
칠흑 어둠 속으로
단호히 가라앉으라
그대를 우연처럼이라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휘돌아 스친 찰나의
우리 만남은
깨어나면 아득히 잊혀지고 마는
망각의 꿈으로 사라져
기억의 흔적조차 버려 버리라
그대의 길을 내가
내 길을 그대가
단 한 번이라도
함께 걸을 수 없다면
내 모든 길은 그만
멈추어 버리라
그대로 인해
결단코 버려야 할 것의 무게가
그대로 인해
결단코 버릴 수 없는 것의 소중함만큼
숨막히게 다가오는 새벽
어둠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마음은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사랑은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아픔은 환희를 감추지 못하고
침묵 속에 더 소란스런
한 사랑이
죽은 듯 잠자던 영혼을 깨운다
우주를 깨운다
'Texts and Writings > My poe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겨울 아침의 만가 (0) | 2010.09.21 |
---|---|
사랑 2 (0) | 2010.09.21 |
겨울 산행 (0) | 2010.09.21 |
길 위의 잠 (0) | 2010.09.21 |
사진 정리 (0) | 2010.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