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사랑 1

그림자세상 2010. 9. 21. 15:44

사랑 1

 

       여 국 현

 

 

그대 하늘 같은 눈을

다시 볼 수 없다면

내 눈은 강물에 흩날리는

겨울 아침 눈송이처럼

녹아 흘러 사라져 버리라

 

그대 낯선 이름을

내 몸에 각인하듯 쓰고 또 쓸 수 없다면

그대의 봄 향 머금은 머릿결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질 수 없다면

내 손은 굳어 응달진 마른 산비탈

자갈돌이 되어 버리라

 

그대의 내밀한 가슴을

뜨겁게 안을 수 없다면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기쁘게 아프게 들을 수 없다면

내 가슴은 재가 되어

서녘 바람에 날려

흔적없이 사라지는 구름처럼 

미련없이 사라져 버리라

 

그대의 영롱한 입술에

닿지 못할 운명이라면

내 짧은 혀는 살아있다 말 하지 말고

死木의 썩은 뿌리가 되어 버리라

 

그대의 아릿한 숨결을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면

내 입은 차라리 굳어

내 목숨의 길조차 막아버리라

 

그대의 영혼에 내 영혼을 걸어

굳건히 정박할 수 없다면

내 영혼의 고갱이일랑

칠흑 어둠 속으로

단호히 가라앉으라

 

그대를 우연처럼이라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휘돌아 스친 찰나의

우리 만남은

깨어나면 아득히 잊혀지고 마는
망각의 꿈으로 사라져

기억의 흔적조차 버려 버리라

 

그대의 길을 내가

내 길을 그대가

단 한 번이라도

함께 걸을 수 없다면

내 모든 길은 그만

멈추어 버리라

 

그대로 인해

결단코 버려야 할 것의 무게가

그대로 인해

결단코 버릴 수 없는 것의 소중함만큼

숨막히게 다가오는 새벽

 

어둠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마음은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사랑은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아픔은 환희를 감추지 못하고

 

침묵 속에 더 소란스런

한 사랑이

죽은 듯 잠자던 영혼을 깨운다

 

우주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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