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잠
여 국 현
마을버스를 타고 운동장을 지날 때마다
고개숙인 채 졸고 있거나
입 벌린 채 잠들어 있는
그를 본다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그의 앞을 지나고
더러는 머뭇머뭇 앞에 놓인 좌판을 살피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의 잠을 방해 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좌판 위 소쿠리 속 아직 수북한 채소며 과일들이
귀찮은 듯 더러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도
이내 저희들 이야기로 두러대느라 분주하다
신호가 길어져 버스가 멈춰 서고
나는,
그만 그의 곤한 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게 혹은 짧게 끊겼다 이어지는
그의 긴 숨결을 따라 걸어가는 길 위에
때로는 푸른 강이
때로는 짙푸른 하늘이
때로는 서늘한 바람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강 어귀에서 마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아이
등 뒤로 무지개가 보일듯 말듯 걸려있다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의 등 뒤로
저녁 어스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기쁨도 아픔도 잠시 잠깐
하늘 한쪽 붉은 빛이 번쩍 일었다 사라지고
덜컹,
머리 한켠이 욱신거린다
세상은 다시 제 길을 간다
버스가 신호등 아래를 지날 때
잠결 그의 손이 허공을 한 번 스윽 훓더니
입가의 마른 침을 닦아낸다
무지개였을까
어스름 그림자였을까
그가 닦아낸 것은
길 위의 잠
그 꿈속에서 목이 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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