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길 위의 잠

그림자세상 2010. 9. 21. 15:41

길 위의 잠

 

 

  여  국  현

 

 

마을버스를 타고 운동장을 지날 때마다

고개숙인 채 졸고 있거나

입 벌린 채 잠들어 있는

그를 본다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그의 앞을 지나고

더러는 머뭇머뭇 앞에 놓인 좌판을 살피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의 잠을 방해 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좌판 위 소쿠리 속 아직 수북한 채소며 과일들이

귀찮은 듯 더러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도

이내 저희들 이야기로 두러대느라 분주하다

 

신호가 길어져 버스가 멈춰 서고

나는,

그만 그의 곤한 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게 혹은 짧게 끊겼다 이어지는

그의 긴 숨결을 따라 걸어가는 길 위에

때로는 푸른 강이

때로는 짙푸른 하늘이

때로는 서늘한 바람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강 어귀에서 마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아이

등 뒤로 무지개가 보일듯 말듯 걸려있다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의 등 뒤로

저녁 어스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기쁨도 아픔도 잠시 잠깐

하늘 한쪽 붉은 빛이 번쩍 일었다 사라지고

 

덜컹,

 

머리 한켠이 욱신거린다

세상은 다시 제 길을 간다

 

버스가 신호등 아래를 지날 때

잠결 그의 손이 허공을 한 번 스윽 훓더니

입가의 마른 침을 닦아낸다

 

무지개였을까

어스름 그림자였을까

그가 닦아낸 것은

 

길 위의 잠

그 꿈속에서 목이 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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