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겨울 산행

그림자세상 2010. 9. 21. 15:43

겨울산행

 

                 여 국 현

 

마음 속 바람에 떠밀리며

가라가라 수월하게 오른 산마루

바위 비탈 아래 산허리 

가을과 겨울이 따로 있다

 

햇살은 바위 위에 잠시 머물다

바람에 날려 뿌옇게 흩어지고

바람에 놀란 사람들은

햇살보다 더 빨리

골짜기 아래로 사라져 갔다

 

사람들의 숲은 아득히 멀고

길은 끊겨 허공만 지천인데

가라가라 보채던 마음 속 바람은 

매서운 산바람이 되어

다시 가라가라 재촉한다

 

바람타고 활강하는

겨울새의 자유로운 비상은

내려갈 길 나서지 못한 마음에

벼린 칼자욱을 남기고

겨울 산허리를 지나 사라지는

붉은 그림자에 가슴마저 베이다

 

겨울 산허리의 길은

산 뒷편으로 끊기듯 이어지고

그 길 돌아나온 한 사내의 망설임

 

시간이 멈추듯 바람도 잦아들고

비상하던 새도 바위 틈에 날개를 접었다

 

사내의 선택은 옳았다

 

어둠은 예고 없이 오고  

그림자는 문득 사라진다

 

가을산을 올라

겨울산으로 내려오면서 확인하다

 

모든 비상은

땅을 내딪는 한걸음에서 시작됨을

올라감도 내려옴도

내 발 걸음걸음으로만 날 수 있음을

마음의 바람이 산의 바람이

부추기고 밀어내도

오름이 다시 내려옴임을

 

내려옴이 다시 오름임을

'Texts and Writings > My poe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2  (0) 2010.09.21
사랑 1  (0) 2010.09.21
길 위의 잠  (0) 2010.09.21
사진 정리  (0) 2010.09.21
비루한 섹스의 교훈  (0)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