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works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7)

그림자세상 2010. 8. 16. 05:14

아래층 부엌에서 양파 껍질이 조금 든 쇼핑백을 찾아냈다. 나는 내용물을 비우고 쇼핑백을 흔들었다. 그걸 들고 거실로 가서 그의 다리 근처에 앉았다. 나는 물건들을 치우고 쇼핑백의 주름을 편 뒤, 다탁 위에 그 종이를 펼쳤다.

맹인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카펫 위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한 번 훓었다. 그는 쇼핑백의 양쪽 면도 위아래로 만져봤다. 심지어 모서리까지. 그는 구석구석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좋아, 같이 해보자구."

그는 내 손, 펜을 쥔 손을 찾았다, 그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해보게나, 그려봐." 그가 말했다. "그려봐. 무슨 소린지 알겠지. 내가 자네 손을 따라 움직일 거야. 괜찮아. 내가 말한 대로 시작해보게나. 알겠지. 그려봐." 맹인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집처럼 생긴 네모를 하나 그렸다. 그건 내가 사는 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다음에 나는 그 위에 지붕을 얹었다. 지붕의 양쪽 끝에다가 나는 첨탑을 그렸다. 미친 짓이었다.

"멋지군." 그가 말했다. "끝내줘. 정말 잘하고 있어." 그가 말했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아, 젊은 양반? 그러기에 삶이란 신비롭다니까, 잘 알겠지만. 계속해. 계속 그려봐."

나는 아치 모양으로 창문들을 그렸다. 나는 벽날개를 그렸다. 나는 엄청난 문들도 만들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텔레비젼 방송국은 송출을 멈췄다. 나는 볼펜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쥐었다가 폈다. 맹인은 종이 위를 더듬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위, 내가 그려놓은 것을 죄다 만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는군." 맹인이 말했다.

나는 다시 볼펜을 잡고, 그는 내 손을 찾았다. 나는 열심히 그렸다. 나는 화가가 아니다. 하지만 끈덕지게 계속 그렸다.

아내가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실내복이 젖혀진 채로 몸을 일으키고 소파에 바로 앉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가르쳐줘요. 나도 알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맹인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대성당을 그리고 있어. 나하고 이 사람이 함께. 더 세게 누르게나." 그가 말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그는 말했다. "좋아, 바로 그러야, 젊은 양반. 아무렴. 이런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식은 죽 먹기지.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제대로 다 그릴 수 있을 거야. 팔은 아프지 않은가? 그가 말했다. "이제 거기에 사람들을 그려보게나. 사람들이 없는 대성당이라는 게 말이 되겠어?"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로보트?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눈을 감아보게나." 맹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았다.

"감았나?" 그가 말했다. "속여선 안 돼."

"계속 하게나." 그가 말했다. "멈추지 마. 그려."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다 그린 것 같아." 그는 말했다.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계속 그렇게 있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말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