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works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6)

그림자세상 2010. 8. 16. 04:01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대고 머리를 내 쪽으로 둔 채 텔레비젼을 향해 오른쪽 귀를 내밀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따끔 그의 눈꺼풀은 아래로 처졌다가 다시 번쩍 뜨이곤 했다. 이따끔 그의 눈꺼풀은 아래로 처졌다가 다시 번쩍 뜨이곤 했다. 이따끔 그는 지금 텔레비젼에서 듣는 것에 대해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턱수염을 잡아당겼다.

 

화면에서는 수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해골 복장을 한 사람들과 악마처럼 차려입은 사람들에게 공격받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악마처럼 파려입은 사람들은 악마 가면, 뿔, 긴 꼬리 등을 부착하고 있었다. 이 야외극은 행렬의식의 일부였다. 그 광경을 설명하는 영국인 내레이터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종교행사라고 한다. 나는 화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맹인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해골이라." 그가 말했다. "해골이라면 나도 아네." 그가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비젼에서 대성당 하나가 나왔다. 그러더니 오랫동안 천천히 또다른 성당을 비추었다. 마침내 화면은 벽날개와 구름에 닿을 듯 치솟은 첨탑이 있는, 파리의 그 유명한 대성당으로 바뀌었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대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영국인 내레이터가 말을 멈추고, 그저 카메라가 대성당 주위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었다. 카메라는 황소들이 서 있는 들판 뒤쪽으로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전원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다 뭔가 말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대성당 외부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무기 돌. 괴물처럼 만들어서 깎아놓은 조각상들 말이죠. 아마 지금은 이탈리아에 있는 모양이네요. 이탈리아, 맞네요. 이 교회의 벽에는 그림이 있어요."

"프레스코화 말이군, 그렇지?" 그렇게 묻고는 그는 술을 조금 들이켰다.

나는 내 잔을 집었다. 하지만 잔은 비어 있었다. 나는 하던 얘기가 뭔지 생각했다. "프레스코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까?" 내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군요. 하지만 모르겠습니다."

카메라는 리스본 근교에 있는 대성당으로 옮겨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대성당과 비교하자면 포르투칼의 대성당은 차이가 있었는데, 그건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대성당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아시느냐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누가 대성당에서 말하면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침례교회 건물과 대성당이 어떻게 다른지 아시느냐는 거죠." 

 

그는 입 밖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오십 년이나 백 년 동안 일해야 대성당 하나를 짓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그가 말했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거야. 한 집안이 대대로 대성당을 짓는 일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텔레비젼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평생 대성당을 짓고도 결국 그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는다더군. 이보게, 그런 식이라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아니겠는가?"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눈꺼풀이 다시 쳐졌다.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꾸벅구벅 졸고 있는 것 같았다. 포르투칼에 간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텔레비젼에서는 다른 대성당이 나오고 있었다. 독일에 있는 것이었다. 영국인 내레이터가 웅얼거렸다. "대성당이라." 맹인이 말했다. 그는 허리를 펴고 앉아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젊은 양반,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밖에 나는 몰라. 방금 말한 것들. 저 사람이 말하는 것. 하지만 자네가 설명해 줄 수는 있겠지. 그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아는 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딱히 아는 것도 없거든."

 

나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대성당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바로 그 일에 내 목숨이 걸려 있었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미친 사람에게 내 목숨이 달렸다면.

 

나는 화면이 전원 풍경으로 바뀔 때까지 대성당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맹인 쪽을 향해서 말했다. "먼저 대성당들은 아주 높습니다." 나는 도움이라도 얻을 까 해서 방 안을 둘러봤다. "위로 치솟았어요. 높이, 아주 높이. 하늘을 향해서, 괘 커서 지지물을 만들어놓은 대성당도 있어요. 말하바면 안 넘어지도록 받치는 거죠. 그걸 벽날개라고 해요. 여러모로 구름다리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구름다리도 모르시겠죠? 대성당 중에는 건물 전면에 악마 같은 것을 조각해놓은 것들도 있어요. 가끔은 왕과 왕비도 있구요. 왜 그러느냐고는 묻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상반신 전체가 앞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끄덕이다 말고 소파의 한쪽 끝에 몸을 기댔다. 내 말을 들으며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게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내가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나를 격려하려는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또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대성당들은 정말 큽니다." 내가 말했다. "어마어마해요. 돌로 만들었죠. 아마 대리석도 사용했을 거구요. 그 옛날에 대성당들을 지을 때,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었던 거죠. 그 옛날에는 모두의 삶에 있어서 한님이 아주 중요했던 거죠. 대성당을 지어놓은 걸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말했다. "이 이상 더 설명해드릴 게 없군요. 이런 일은 잘 못하겠습니다."

"괜찮네, 젊은 양반." 맹인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질문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뭘 좀 물어봐도 되겠지? 예, 아니오라고만 말하면 되는 간단한 질문이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지. 따지는 건 아니야. 난 초대받은 사람이니까. 나는 그저 자네에게 종교 같은 게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야. 이런 걸 물어봐도 괜찮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고갯짓을 볼 수는 없었다. 맹인에게는 윙크나 고갯짓이나 마찬가지이다.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때로 그건 힘든 일이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물론이네." 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영국인은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잠자던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그녀는 계속 잠을 잤다.

"양해해주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하기가 어렵군요. 나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닌 모양입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이제까지 말한 게 전부예요."

맹인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성당이라고 해서 나한테는 뭐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대성당들. 이렇게 늦은 밤 텔레비젼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뿐이죠. 그저 그런 것일 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맹인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는 뭔가를 꺼냈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이해된다네, 이 사람아, 괜찮아. 재미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이보게, 들어봐. 날 좀 도와주겠나? 좋은 생각이 났어. 좀 두꺼운 종이를 가져오겠나? 펜이랑. 그걸로 할 수 있다네. 대성당을 함께 그리는거야. 펜하고 좀 두꺼운 종이만 있으면 된다네. 어서 가져오게나."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기운이 다 빠진 것 처럼 다리에 힘이 없었다. 나는 아내의 방을 둘러봤다. 아내 책상 위 연필꽂이에 볼펜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하는 종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