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etc.

영어...

그림자세상 2010. 6. 29. 11:03

영어는 타인과 소통하는 삶의 매개체다 영어 열풍 현주소와 대안 모색

 


영어의 ‘해일’이 밀려온다. 새 정부 인수위가 ‘영어 몰입교육’의 실시를 언급하면서 일기 시작한 영어에 대한 한층 증폭된 관심은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영어를 모국어에 버금가는 ‘제2의 공용어’ 수준으로 인식하게 하고 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면 학교는 물론 사회에서도 적잖은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도까지 다다른 것 같다. 학교와 사교육 시장은 물론 온 사회가 이 거센 해일에 휩쓸리는 가운데 미취학 유아에서 성인들까지 좋건 싫건 영어와의 필연적 ‘만남’에 점점 더 얽매일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그 ‘만남의 양상’이다. 

 

과도하게 우상화된 우리시대 영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 이상의 대접을 받아왔다. 영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단순히 ‘한 외국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소위 세속적 ‘출세’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과 도구를 구비하고 있다는 의미와 동일했다. 대학 입시는 물론 공무원 시험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발시험에서 영어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공, 직종에 관계없이 취업, 혹은 이후의 승진을 위해서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람살이와 조우하는 통로이자 매개체로서 영어는 사라지고 사회생활의 성공을 위한 수단과 도구이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객관적 척도로 기능하는 영어만 남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는 과도하게 우상화되고 다른 외국어와 차별화된 경향도 보인다.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상화된 영어와 여타 외국어의 차별화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주체들과 그렇지 않은 주체들의 차별화로, 나아가 그 주체들의 문화에 대한 차별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은 우리사회가 그간 영어와 만나온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영어가 갖는 중요성을 부인하기 힘든 점도 있다. 그렇기에 영어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를 단순히 활용의 수단으로서 인식하고 학습할 것이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주체들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매개로서 접근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학습적 측면에서도 시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즐거움이 우선할 수 있는 계기와 목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즐겁게 배울수록 성취 수준 높아

개인적으로 성인들과 영어학습 기회를 많이 갖는 편이다. 성인학습자들의 경우 대단히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목표가 학습의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성취 속도와 정도가 나를 놀라게 한다. 영어 읽기도 힘들어하던 30대 초반 아기엄마의 목표는 아기에게 영어동화를 잘 읽어주는 것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구청의 영어동화 구연강사로 활동 중이다. 50대 중반의 여성은 영어를 독학으로 학습하면서 청강을 통해 중국어와 불어까지 중급 이상의 실력을 쌓았다. 그 분의 유일한 대답은 다른 언어와 글을 듣고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다. 4년째 함께 학습하고 있는 문학동아리가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모여 영미 문학작품들을 읽고 토론한다. 그분들이 읽기와 토론에 참여하는 열정,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은 놀라운 즐거움을 준다. 이들 모두에게 영어와 그 언어에 담긴 다른 문화와의 만남은 ‘즐거운 경험’이다.

 

영어에 대한 인식전환 필요

이들 성인학습자들과 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의 현실이 동일할 수 없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떤 태도로 외국어를 만나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제적인 ‘몰입’도 무조건적인 ‘암기’도 답이 될 수 없다. 답은 사람살이의 매개물인 언어로서 영어를 인식하고 그 속에 담긴 다른 사람살이와 조우하는 ‘즐거움을 만나는 과정’으로 영어를 이해하고 대하는 데 있지 않을까.

더불어 영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와 그들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석사과정 때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가 돌연 동구권 언어로 전공을 바꾸더니 그 나라로 갔다. 잠깐 돌아왔을 때 그 친구의 말. “동구권 언어는 전공하는 사람들이 없어. 필요한 곳은 많은데.” 과도하게 우상화된 영어권 언어와 문화에 대한 우리사회의 몰두는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대한 그만큼의 경시를 낳고 있다. 굳이 ‘한류현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는 다른 언어, 문화권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하기에 수용적 태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양새를 바르게 나누고 교류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더욱 더 많은 다양한 ‘언어’를 만나고 학습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사항들이 긍정적으로 고려되기 위해서는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단순히 사회적 성공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삶의 매개물로 이해하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