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etc.

일본 대중문화 개방

그림자세상 2010. 6. 29. 11:01

138호 [문화타기/문화넘기] 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에 관하여
일본문화 완전개방, 규칙 없는 불공정 게임

여국현 / 서울문화이론 연구소 연구원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이 멀지 않았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일본을 방문중이던 지난 3월 25일 빠른 시일 내에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 범위를 과감하게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개방 분야는 여론수렴을 거쳐 5-6월경 발표하며 1,2차 개방 때에 보류되었던 애니메이션, 음반, 게임, 방송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이번 3차 개방에 포함될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제까지의 개방이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우리 대중문화도 이제는 개방의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음을 강조하며 친절하게도(?) 최근 중국에서 뜨고있다는 HOT와 베트남에서 잘나간다는 우리 TV드라마와 장동건을 예로 들어주기까지 했다. 며칠 뒤 보도된 <쉬리>의 일본관객 100만 돌파 소식은 아마 그에게 더 큰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문화산업의 기반과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일본문화의 전면적인 확대 개방은 성급한 감이 있다.

지난 1998년 10월 김대중대통령의 일본 방문 이후 영화를 중심으로 시작된 일본대중문화 개방이 우려했던 것만큼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첫 번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하나비>와 <카게무샤>는 4만 정도의 관객동원에 그쳤다. 우리 영화 <쉬리>의 일본관객 100만 동원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 <러브레터>와 <철도원>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평균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으로인한 여파를 우려할 만큼의 관심을 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면적인 개방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아직 많은 부문에서 우리는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적 개방에 맞서 견딜만한 기반이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미국과 일본의 하청에 크게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성장해온 터라 단순 반복적이고 세부적인 기술력은 풍부하지만 프로그램 기획력이나 창작인력과 자금 수급 측면에서 커다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음반시장과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는 훨씬 더하다. 10대 위주의 댄스음악 일색에다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 음악이나 일본 TV 프로그램 표절로 기획프로그램이 도중하차하는 일은 이제 아예 화제도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본식 문화에 길들여진 국내 문화소비시장에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 풍부한 컨텐츠와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일본 문화상품들이 밀려들어올 때 그 시장 장악력은 이제까지의 개방여파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일 것이다.

일본문화의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찬성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문화적 억압과 폐쇄가 정당화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한 특정 대상의 독점 또한 찬성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문화시장이 안고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일본 문화산업의 공세를 감당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만한 문화적 인프라나 역량을 구축하지 않고 완전 개방만을 서두른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산업과 시장을 고스란히 내어주고 독점당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두 명의 PD와 한 명의 AD가 붙어서 생산하는 우리의 프로그램과 16명의 PD와 10명의 작가가 작업해서 만들어내는 일본의 TV오락프로그램은 공정한 경쟁상대가 아니다. 영화 한편의 평균 제작비가 한국영화의 3배에 달하고 극장에 개봉되지 않는 비디오가 4천 여 편에 달한다는 풍부한 소프트웨어와 컨텐츠를 지닌 일본 영화산업의 양적 질적 공세를 <쉬리>하나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HOT도, 장동건이 주연했던 프로그램도 일본의 표절이었다. 이걸 모르고, 이러한 현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하지도 않고 내놓은 완전개방은 게임의 규칙이 없는 불공정한 게임일 뿐이다. 하긴 선거 철에 맞춰, 그것도 남의 나라에 가서 선심을 쓰듯 그러고 온 것부터가 게임의 규칙에 어긋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