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etc.

서평 -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그림자세상 2010. 6. 22. 01:02

I. 그림 하나-<Rambo 4-Last Blood>. 미얀마 국경에서 자신이 안내한 선교사들이 미얀마 정부군에게 인질로 잡히면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시작된 람보의 전쟁. 총알 세례를 받는 대상이 미얀마 정부군으로 대체되었을 뿐 그의 전쟁은 여전히 철저하게 개인적이며 확고하게 폭력적이다. 나아가 람보가 행하는 파괴와 살해는 훨씬 강력하고 잔혹해졌다. 미얀마 농민들에 대한 정부군들의 잔인한 신체 훼손과 살해, 유희하듯 행하는 학살에 대한 묘사는 그들 자신의 신체가 람보의 총칼 아래 끔찍하게 잘려나가거나 구멍 뚫린 채 파편처럼 튕겨져 나가는 장면의 스펙터클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며 람보의 폭력을 정당화해준다.

 

선교사들을 구출한 영화의 당연한 결말이후 람보의 귀향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 것 같다. 자국민들에 대한 폭력을 일삼는 잔인한 미얀마 군을 응징하고 미국 선교사들을 구출한 정당한(!) 전쟁은 람보에게 원죄처럼 남아있던 베트남전의 내상에 대한 자기치유의 과정은 물론 과도한 폭력에 대한 자기정당화까지 덤으로 부여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가, 귀향하는 그는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영원히 고향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람보에게 마지막 전쟁이란 없다는 것을. 그는 또 총을 들고 당당하게 전쟁을 수행할 또 다른 명분을 만들어 또 다른 미얀마, 또 다른 이라크로 컴백할 것을. 귀향하는 람보의 치유된 내상이 우리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영화의 부제, “Last Blood"가 “마지막 피”가 아니라 “유혈 계속되다”로 읽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II. 람보의 귀향처럼 미국으로 하여금 베트남전의 내상을 털고 죄의식 없이 당당하게 이라크로, 아프카니스탄으로 그 많은 람보들을 다시 보낼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일까. 그 답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제공하고 있다. 신보수주의는 1960년대의 반전운동과 평화주의를 포함한 민권운동과 청년운동의 발흥으로 소위 전통적 가치들이 도전받는 것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결집하면서 등장한 이데올로기이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고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냉전 체제가 붕괴된 후 견제 세력이 없어진 미국의 독주가 강화되면서 신보수주의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은 어느 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을 핵으로 한 초국적 자본과 거대 미디어 시스템의 촘촘한 그물망을 통해 지구방화 된 현실에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우리들 삶의 전 방위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책세상, 2007)도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필자들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미국의 대중문화에 침윤, 확산되는 과정에 방점을 두고 그 전개과정을 밝혀내고자 한다. 하지만 필자들은 단순히 미국 대중문화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침윤되어 가는 과정만을 보여주려 하거나 혹은 대중문화가 신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에게 무차별 전파하고 대중들은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관계로만 파악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중문화 영역이야말로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 타협이 적극적으로 진행되는 장”이라고 보기 때문에 대중문화를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 전반에서 보수와 진보 세력이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기 위해 서로 감시하며 공격했던 상황”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필자들은 “특정한 영역이나 방식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문화와 신보수주의의 관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장르-통합적 접근방식”을 토대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발생한 일련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과정들이 대중들의 삶에 어떤 영향이 미쳐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이 지닌 장점 하나는 거기에 있다.

 

III. 필자들은 먼저 신보수주의의 등장에서 확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신보수주의 이념의 핵심적인 틀을 확인한다. 신보수주의는 “미국의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문화제국주의 등 일련의 전지구적 현상의 중심축”으로 현재의 시공간을 통제하는 미국적 이데올로기로의 반영이며, “자유 자상주의, 평등화 정책의 배제, 기독교의 부흥, 미국 중심의 질서 재편을 지향하는 미국 제일주의” 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강력한 군사력에 기반한 세계 질서의 재편, 거대 자본과 경제적 지배를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의 확보를 양 축으로 미시적인 차원의 이데올로기 장치들이 가동되는 것이다. 필자들은 스포츠, 할리우드 영화, 미국 팝, 텔레비전 프로그램 및 미술이라는 개별 영역들에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이런 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정희준은 1960년대 이후 스포츠 영역에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다국적 기업과 미디어와 결합하여 식민지 확장과 유사한 차원에서 대중들에 대한 일상적 지배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보증하는 기제로 흑인 스포츠 스타를 전유하는 데 신보수주의의 핵심적 전략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마이클 조든의 사례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종적 편견이 두드러졌던 스포츠 영역에서 조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을 포함한 개인적 미덕 이외에도 “자신의 신체와 언행을 철저하게 지배적 사회 가치의 틀에 맞추”면서 “난폭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흑인 남성에 대한 전통적 편견과 스스로를 단절시킨” 채 “‘흑인’ 조든이 아닌 ‘미국인’ 조든이 된” 그의 상품성에 기인한다. 이렇게 백인들의 구미에 맞게 상품화된 조든은 NBA를 접수한 미디어에 의해 인종차별의 그늘을 지워주는 성공한 흑인(가족)의 이미지를 부여받으면서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이라는 미국의 치부를 가리는 훌륭한 역할모델로 전유된다. 이와 동시에 동성애와 에이즈의 등치, 이성애적 남성성의 강조, 멕시코계 여성 골퍼인 로페즈를 야구선수인 남편의 충실한 내조자인 ‘베이스볼 와이프’로 이미지화하여 가부장적 가정에 종속시키는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스포츠를 “사회의 올바른 가치, 남성의 우위와 지배를 재증명할 대용품”으로 전유하고자 시도한다.

 

서현석은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이 겪은 베트남전의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영웅을 생산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 과정은 한편에서는 내상을 자가 치유하는 미덕을 지닌 람보같은 영웅을 탄생시키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텍사트 전기톱 살인사건> 같은 슬래셔 영화를 통해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도전을 응징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적 일탈을 포함하여 기존의 가치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려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들 영화가 보여주는 무차별적 공격은 “조각난 아메리칸 드림의 참혹한 잔재”를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기존 질서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에 대한 노골적 공격으로 해석된다.

 

<록키>라는 영웅을 통해 고전적 영웅을 회복시키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재건을 호소한 헐리우드는 80년대 들어서면서 <슈퍼 맨> 같은 비 전쟁영화에서부터 스탤론, 슈워제네거, 스티븐 시걸 등 주인공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정치적 팽창주의를 과시하는 영화들을 양산한다. 8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레이건 시대의 안정적 가족 이데올로기 강화는 강한 육체를 지닌 영웅들을 부드러운 주인공으로 변모시키기도 했지만 부시와 클린턴 시대를 거치면서 현실화된 가족의 붕괴는 헐리우드의 영웅들에게 안락한 귀향 공간의 부재라는 낯선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헐리우드가 선택한 것은 테크놀로지의 기반 위에 동요 없이 안착하는 것이었다. 서현석은 디지털 영화 속에서 헐리우드 주인공들은 다시 영웅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선악의 대립이라는 고전적 내러티브로 안착하며 현실과 실재의 절대적 안정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고착을 선전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이동연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음악제작 기술환경의 혁신적 변화와 MTV의 등장이라는 기술적 진보와는 정반대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음악적 경향의 보수화를 가져와 음악이 탈정치화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흑인음악은 백인화 되고 섹슈얼리티의 상업화가 확산되며 한때 청년문화의 저항정신의 표현이었던 록음악이 달콤한 멜로디와 주제로 연성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L. S. Kim과 민병직이 주목하는 영역은 1980년대 신보수주의가 장악한 미국의 텔레비전과 미술 영역이다. Kim은 텔레비젼이 자본주의의 문화적 가치와 정치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창조하고 강화하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능력위주 신화, 상향이동 신화, 중산층 신화를 기반으로 한 레이거니즘이 흑인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 희생자로서의 백인, 선하고 길들여진 흑인과 악한 흑인의 분리 등을 이데올로기화 하는 방식을 <다이너스티>, <코스비 가족>, <로잔느 아줌마> 등의 개별 프로그램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는 텔레비젼이 그 자체로는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지만 가족 이데올로기의 강화와 생생함을 구체화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소비상품인 아메리칸 드림을 판매하면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민병직은 미술시장에서 트랜스 아방가르드의 상업적 성공과 구상회화의 부활은 시장 수요의 확장과 회화의 상품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이는 80년대의 아방가르드가 미국식 대중문화를 거부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한다. 시장의 국제화, 스타시스템의 부활, 블록버스터 전시의 확대 등 또한 미술이 시장논리에 의해 재편된 결과이며 이런 점에서 미술 영역 또한 80년대 신보수주의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IV. 문화연구는 애초 비판적이고 특수한 맥락적(contextual) 지반에서 출발했다. 그러기에 문화연구는 분석 대상이 되는 문화적 실천이나 텍스트 자체의 경계에만 머무르기보다는 문화적 실천과 텍스트 생산과 소비 영역 전체를 아우르는 관계의 그물망 전체를 살펴야 하는 책무를 진다. 그 그물망 속에는 구체적인 텍스트 생산과 소비 주체들의 역할 및 생산과 소비 과정, 그 장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의 역할,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를 두고 벌어지는 텍스트 생산자와 소비자 간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충돌, 그 피드백 과정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문화현상에 대한 포괄적이고 맥락적인 접근을 통해 그런 요구에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자들은 1980년대라는 미국이라는 구체적 맥락 하에서 신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가를 밝히는 데 있어서 생산주의적 관점이나 텍스트 위주의 비평적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맥락적인 요소들에 대한 다양한 고려를 통해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복잡한 그물망을 풀어보고자 시도했다.

 

90년대 이후 양산된 많은 문화이론 연구서들이 외국이론의 소개와 번역 혹은 이론 비평에 초점을 두었거나 국내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198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한 필자들의 분석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득세하는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사람살이, 우리의 대중문화가 당면한 현실에 대해 점검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들이 밝히고 있듯이 그간 문화연구자들의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실제 문화영역에서 작동하는 관계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 점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다만 대중문화를 생산하고 약호화하는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비교적 뚜렷하게 분석, 비판된 데 비해, 그에 대항하는 혹은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탈약호화 기능, 그 이데올로기 갈등과 투쟁의 양상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미 진행 중이고 향후 더욱 거세질 우리 문화 내부에서의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적 약호화와 이에 대한 대항의 탈약호화 과정을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끝>

'Texts and Writings >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어...  (0) 2010.06.29
일본 대중문화 개방  (0) 2010.06.29
환상...  (0) 2010.06.29
서평 -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  (0) 2010.06.22
서평 - 무지한 스승 (자크 랑시에르)  (0) 201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