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작고 꾸준한 보폭으로 오래 멀리 걷기에 대하여(3)

그림자세상 2010. 6. 22. 03:13

걷기 위해 걷는 그분을 보면서 나는

걷기 위해 걷는 것의 지난함을,   

걷기 위해 걷는 것의 소중함을,

그 단순함의 소중함을 떠올렸다.

 

어느해 겨울, 왼쪽 발목을 삐었다.

심하게 삐었다.

금요일이었다.

겨울방학 특강을 하던 날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심하게 접질렸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놔두었더니

욱신거리며 아파오던 발목은

저녁이 되자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고 붓기 시작하고 이윽고

도저히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검푸른 멍이 가득한 발목을 중심으로 퉁퉁붓기 시작은 주변의 살은

누르면 그냥 쑥쑥 들어갈 정도로 부풀어올랐다.

건드리기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발목을 관통해

다리와 머리까지 뻣뻣하게 했다.

그때라도 병원에 갔어야 했다.

그러나 꼼짝도 할 수 없는 고통은 움직일 엄두를 나지 않게 했다.

 

그 상태로 토요일 오전까지 지나갔다. 

결국 토요일 오전, 오후를 어찌어찌 참으며 넘기고 다시 시작된 밤.

기억하건데 내가 경험했던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이었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밤을 꼬박 새고 월요일 아침까지

발목과 주변을 거쳐 온 몸 구석구석 자신의 흔적을 각인시킨

그 고통은 끔찍했다.

 

발목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라는 진부한 표현말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검푸르게 부어오른 발목은 어떻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져왔다.

누워서 발을 위로 올려도,

베개에 대고 받쳐보아도,

옆으로 누워도,

엎드려 보아도,

똑바로 누워도 그때마다

발목에 전해지는 자잘한 움직임은 엄청난 고통의 파도를 몰고 왔다.

 

퉁퉁 부은 살 속에 검푸른 고름들은

어쩌다 슬쩍 이불이 피부를 스치거나 삐끗 움직이기만이라도 하면

출렁이며 뼈 마디마디를 파고드는 것 같았고,

마치 아주 가느다란 송곳으로 온 사방을 쿡쿡 찔러대는듯 했다.

 

그렇게 꼬박 끙끙 앓고 눈물 쏟으며 고통스러워 하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기어가듯 한의원을 찾았다.

주사바늘로 발목 주변의 고름을 빼는 것은 또다른 고통이었다.

그러나 한참 고름과 검붉은 피를 빼내고 나자 아픔은 여전했지만 마음은 훨씬 개운해졌다.

한달 가까운 물리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여전히 할 일은 해야했으므로 절뚝거리며 강의실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러는 동안 평소 같으면 아무런 일도 아닐 것들이 너무도 큰 장애들이 되어 다가왔다.

평소 같으면 1분이면 갈 거리를 끙끙거리며 진땀을 빼며 10분도 넘게 걸어야 했고,

버스를 이용할 수 없어 택시를 타면서도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적잖은 일이었다.

집에서 나가는 일, 계단을 오르는 일, 가만히 서 있는 일,

발목에 통증을 느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움직이는 모든 순간, 발목은 고통을 호소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몸 전체에 파도처럼 전해졌다.

한 3주, 그렇게 절뚝거리며 다니는 동안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겨 길을 걸을 수 있는 단순한 일의 무게를 절실하게 느꼈다.

하지만 그후 다시 제걸음을 되찾게 되었을 때,

발로 걷는 일의 일상은 다시 그저 늘 똑같은 일상이 되어있었다.

물론 이따끔 예기치 않은 계기들을 통해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기도 하고

내 걸음으로 걷는 일의 소중함을 문득문득 되새기기도 했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걷는 일의 단순함은 더 이상 내 발목도 걸음도 마음도 잡지 못했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의 그분을 볼 때마다 나는

걷기 위해 걷는 일의 지난함을,

걷기 위해 걷는 일의 무게를,

걷기 위해 걷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