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작고 꾸준한 보폭으로 오래 멀리 걷기에 대하여(2)

그림자세상 2010. 6. 21. 17:52

어느 일요일 아침인가는

한 10여 미터 되는 그 정원 옆 작은 산책길을

주춤거리며 걸어가시는 어르신을 한참이나 

다시 보고 다시 보며 뒤돌아 걸었던 적도 있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분이 걷는, 아니 걷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그냥 걷는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내걸음으로 한발만 걸으면 되는 그 짧은 거리를

그분은 너댓걸음 종종걸음으로 움직여야 했고,

주춤거리며 걷다가 잠시 서고 다시 걷다가 또 서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그 길을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어르신은 앞을 보지 않았다.

어르신의 시선은 발 바로 앞,

혹은 꺾여 말려올라간 손이나 지팡이가 향하는 곳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치 다른 곳을 보면 금새 넘어지기라도 할 듯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한낮에 걷는 연습을 하고 계신 어르신을 뵌 적이 있다.

바로 앞 지붕이 쳐진 정자 모양의 그늘 진 벤취에는

비슷한 연배시거나 혹은 연배가 더 되신 어르신들과

어린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거나 오다가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 엄마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 어르신의 주춤거리는 걸음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십여 미터 되는 그 산책로에서 시작된 어르신의 걸음이 

산책로의 가운데쯤 이르렀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르신께로 향했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 할머니께서,

"아이구 이제 많이 건강해지신 것 같아요. 걸음이 많이 빨라지신 것 같으시네" 하자 

옆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띄엄띄엄 제각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그 어르신은 시선도 움직임도 멈추거나 돌리지 않았다. 

그저 그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려고 애쓰실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 어르신이 어디까지 걸어가는지를 보지는 못했다.

언제나 어르신은 내게 그 10여미터 되는 산책로에 있는 모습으로 기억되었고, 보였다.

어느 순간엔가부터 어르신은 혼자이신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혼자 그 길을 걷고 있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분의 집중력만은 변함이 없었다. 

적어도 그 산책로를 걷고 있는 그분에게

세상은 단 하나의 의미로 기억되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걷고 걷는 것. 

쓰러지지 않고 중단하지 않고 걷기 위해서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걷는 것. 

걷기 위해 걷고 오로지 걷기 위해 걷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