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 사계/winter

2010 겨울 - 눈 속의 생명

그림자세상 2010. 1. 3. 09:43

밤새 내린 눈이 제법 쌓인 천변,

이른 아침, 아직 사람 발길 많이 닿지 않은 곳

눈이 가득한 곳에 소복히 쌓인 눈을 녹이며 솟아오르고

빼꼼히 고개 내민, 잊혀지지 않는 생명의 소리들.

 

 

꺾여 꽃힌 잎조차

살아 돌아 올 봄의 기운을 담고 있는 듯

생기 있어 보임은 그저 착시일까....

 

몰락의 에티카,라 했던가.

그러나 정정하지.

이들은 몰락한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가득 덮어 온 눈의 차가움을

스스로의 옹골진 결기로 받아 안으며

자신의 체온으로 그 눈까지 녹여내며

봄의 햇살을 가슴이 품은 것이라고....

 

 

죽음이라 하지 말라.

꺾여진 것 처럼 보일지라도

살아있음이라!

저 고개 내민 아래, 깊히

뿌리, 살아 있음이라!

 

 

꽃으로만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자.

붉고 푸르고 노랗고 하얀 색으로만

생명의 정기를 말하지 말자.

생명은 여기,

이곳에도 꿋꿋하게 흐르고 있으니....!

 

보라, 차가운 바람 속에서

메말라 있는 저 가녀린 가지, 잎 하나하나에도

봄이면 푸르게 싱그럽게 돋아날 생명의 흔적을

놓지 않고 있음을!

 

 

 

 

그가 솟아오른 것이건

눈이 다 덮지 못한 것이건

아니면 그저 꺾이지 않은 것일 뿐이건

죽었다 말하지 말자.

죽음이라, 끝이라 말하지 말자.

우리, 보아 왔으니, 저들로 인해 봄이 오는 것을....!

 

 

 

 

이런 모습을 담던 끝에

한 마리 새를 보았다.

수로 아래, 사람들과 거센 바람을 피해 숨죽여 숨어있던, 새.

그는 날지 못했다....

 

다가가자 눈 위를 슬금슬금 걸어 피해보지만

오래 걷지 못하고 이내 다시 멈춰 섰다.

그는 상처 입었다....

 

몇 걸음 피해 가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듯 이내 멈춰서

힐끔힐끔 나를 피한다.

며칠 뒤,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내 눈에 그는 너무 피곤하고 상처입은 듯 보였다....

 

눈 위를 달려 지나가는 개들 소리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젖히는 그를

몇 장 담다가 문득 미안해졌다.

그는 내가 그리 다가가도 피할 기력이 없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그를 담았던가.  

 

겨울이 가도록 살아남을 힘이 그대에게 남아있기를....

고통은 삶이다.

보다 깊은 고통일수록

보다 선명한 삶의 증거이다.

                        -C. La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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