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사랑은 아무나 하고, 아무 때나 해라

그림자세상 2009. 12. 19. 20:43

  한 시절 젊은이들이 쓰던 유행어가 있다. '밤일낮잠'. 밤에 일하고 낮에 잔다는 말이다. 화투판 용어인 '밤일낮장'에서 빌려온 우스개다. 아닌 게 아니라 청춘의 정력은 참으로 절륜하다. 그들에게 밤은 없다. 무도장은 플로어에 발 디딜 틈이 없고, 심야극장은 빈 좌석을 찾기가 어려우며, 집에서는 채팅이다, 게임이다 해서 밤을 꼴까닥 샌다. 그럼 잠은 언제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더니, 낮에 지하철과 도서관에서 잔단다. 청춘은 새벽이슬처럼 사라진다지만 향유하는 순간은 만세 만만세다.

 

  토막잠을 잔 그들은 벌건 대낮에 사랑놀이를 즐긴다. 몇 해 전, 발레타인데이의 신상품 하나가 나왔다. 어느 통신회가가 '게릴라 프로포즈'라는 걸 개발했다. 젊은이들의 인기를 끈 이 상품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길거리 이벤트였다. 관중이 빙 둘러서서 남녀를 지켜본다. 여자가 "오빠, 사랑해." 하고 속삭이면 모인 사람들은 "와!" 하고 박수를 쳐준다. 남우세스럽다고?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중인환시에 사랑은 고백하는 것이 금세기의 유행이란다. 지하철에서 대담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은 늙은이들의 외면을 받지만 청춘에게는 신나는 모험이다.

 

  이 상품은 국경도 없다. 같은 발렌타인데이, 뉴욕에서는 '큐피드 택시'가 운행했다. 전광판에 "톰은 주디를 사랑한다" 따위의 메시지를 달고 돌아다니는 택시다. 신청만 하면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다운타운에 소문을 다 내준다. 염문 유출에 드는 비용은 이십오 달러다. "뉴욕에는 빨래터나 물방앗간이 없어서 그러느냐?"고 묻지 마라. 백주의 애정 표현은 청춘의 신상품이 된 지 오래라고 했잖은가. 화통한 세상의 방자한 유희가 오늘의 사랑풍속이다.

 

  관중을 동원하는 백주의 사랑은 앞선 시대에는 드문 풍경이다. 조선 후기 화가인 신윤복은 이울어가는 밤의 남녀 밀회를 <월하정인>이란 풍속화로 남겼다. 담벼락 앞에서 초롱을 든 두 연인이 에둘러 수작하는 그림으로 잘 알려졌다. 거기에 이런 제발이 들어 있다. "달은 기울어 밤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 두 사람은 알겠지." 그림 속 남녀 사랑은 수줍다. 수줍거니와 보는 눈이 아예 없다. 연심을 들키기는커녕 만상이 고요해 콩닥거리는 남녀의 맥동만 전해질 따름이다. 그러니 소리 소문 없이 달빛에 물든 염정이 익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해도 노인은 목청 높여 외치고 싶다. "청춘들아, 사랑은 아무나 하지만 사랑은 아무 때나 하지 않는다." 

  

 

 

  16세기 조선시대 부안 땅에는 기생 출신인 '계생'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아호인 매창으로 흔히 불리는 여자다. 그녀는 소인묵객이 들끓는 유명짜였지만 신분은 어쩔 수 없이 은근짜였다. 계생의 몸가짐은 그리 천격이 아니었나보다. 허균과 우정에 가까운 연정을 주고받은 걸 보면 짐작이 간다. 해도 계생은 취객들의 치근덕거림에 넌더리가 났다. 그녀는 강다짐을 부리는 대신 시 한 수로 남정네를 녹진녹진하게 다독인다. 바로 이 시다.

 

醉客執邏衫     술 취한 그대 비단 적삼 붙잡으니 

羅衫隨手裂     적삼이 손길 따라 찢어지려 하네요

不惜一羅衫     그까짓 적삼 아까울 리 없지마는

但恐恩情絶     은근한 정 끊어질까 두렵네요

 

술기운을 빌린 난봉꾼의 음심이 무릇 그러하다. 우악스럽게 소매를 부여잡고 침소로 끌어당긴다. 여심은 미묘하다. 속궁합이 익어야 환정이 열릴 것 아닌가. 취객을 퇴짜 놓는 계생의 은근함, 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남자는 청루에서도 공방기지 짝 난다.

 

  혜원은 <월하정인>처럼 소심한 사랑놀음만 그린 것이 아니다. <소년전홍>을 봐라. 쑥덕질 받기에 딱 알맞은, 무람하기 그지없는 그림이다. 여기서 젊은 서방은 대놓고 계집질한다. 소매 잡아채기를 그렸으나 소매가 찢어지는 게 아니라 팔뚝이 떨어져나갈 판이다. 상투 위에 사방관을 쓴 사내는 상판이 영판 게이를 닮았다. 턱 밑에 수염 한 점 없는, 귀때기 새파란 젊은것이다. 꼴에 곰방대는 긴 것을 골랐다. 몸종은 서방보다 연상으로 보인다. 밑동이 짧은 도련 아래 살짝 보이는 젖통에 살이 제법 오른 걸 보면 안다. 그녀는 사내의 완력이 힘에 부쳐 엉덩이를 쑥 빼며 앙버틴다. 시방 사내는 몹시 급하다. 마나님은 집을 비웠고, 보는 눈 하나 없는 뒤뜰이다. 몸종은 벌건 대낮이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인다. 사내가 노린 합궁은 보나마나 성공했을 것이다. 몸종의 표정에서 싫은 기색이 아니라 내켜하는 기미마저 보인다. 싫은들 또 어쩌랴. 완력보다 지체에 눌리는 신분사회 아닌가.

 

  화가는 일방적 잡아채기가 통하는 이 살풍경을 부정하려는 심사인가. 그런 것도 아니다. 혜원은 계생이 읊조린 여심을 모를 위인이 아니다. 남녀의 그렇고 그런 춘정을 읽는 데는 상수였다. 단서는 그가 적은 그림 속 제시에서 보인다.

 

  密葉濃   綠   빽빽한 잎에 짙은 초록 쌓여가니

     枝   剪紅  가지마다 붉은 꽃 떨어뜨리네

 

  청춘의 엽록소는 봄날에 절정을 이룬다. 젊은 사내의 초록빛 춘정은 이기적이다. 그 앞에 붉은 여심은 버티지 못하고 추락한다. 혜원은 신분사회의 겁탈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허겁지겁할망정 청춘을 긍정하는 쪽이다. 청춘이 무언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명사일지니, 어떤 실수도 그 앞에선 관대하다. <소년전홍>은 지분거리는 욕정을 앞세워 봄날의 물오른 에로스를 내비친 그림이라 하겠다.

 

  당나라 금릉 출신으로, 기생 신분에서 단박에 헌종의 총애를 받은 귀하신 몸이 된 여인이 있으니, 두추랑이다. 두추랑은 시기로 중국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위인이다. 혜원의 그림이 청춘을 장려하고 있다면 두추랑은 청춘을 독려하는 시를 남겼다. <절화지>라는 시다.

 

勸君莫惜金縷依  그대 젊은 시절 금실 옷 못 입었다고 섭섭해 마소

勸君惜取少年時 그대 젊은 시절 헛되이 보낸 걸 안타까워 마소

花開堪折直須折  꽃이 피려할 때는 냅다 꺾어버리소

莫待無花空折枝  꽃 지고 나면 공연히 빈 가지만 꺾을 테니까

 

  혜원의 <소년전홍>이 무슨 말인고 하니 '젊은 시절의 꽃 꺾기'라는 뜻이다. 두추랑과 혜원은 어쩜 이리도 통하였을까.

 

  혜원은 <월하정인>과 <소년전홍>을 통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사랑을 그렸다. 아예 '밤일낮일'이다. 그중에서도 <소년전홍>은 상스러운 말로 영작하자면 'daylight fishing'이 소재다. 그러니 청춘들아, 고쳐 말하마. 사랑은 아무나 하고, 아무 때나 해라. 그대들의 발칙한 애정행각을 야만적 풍속이라 욕하는  늙고 낡은 것들 앞에 혜원의 <소년전홍>을 들이밀어라. 우리에게는 이처럼 사랑에 배고픈, 끈질기게 살아남은 전통이 있었노라 강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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