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모르는 99가지 이야기 이재현 성공하는 여자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 남자를 알자, 세상을 알자. 남자가 얘기하는 여자들만의 이야기 “모르면 여자만 손해다. 여자들이여, 똑똑하게 살아라!” 1. 여권운동이 여자를 망친다? 여자가 사람으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는다. 선거에서 투표권이 없었음은 물론 사회활동까지 금기시되었고 여성들조차 이러한 제약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아들을 선호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했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떠받들려지고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는 동안 모든 여자들은 가정에서부터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삶을 강요받았으며 남자를 위한 리모컨 대상자 이상의 역할은 용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자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아준 것은 바로 남자들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물질 문명의 발달이 완력을 통한 노동의 주인공으로서 남자를 필요로 하는 일을 현저하게 줄여 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종 주방기기의 현대화는 여자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런 여유를 통해 여성들은 그간 객체로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편 산업 현장의 사무자동화로 인한 여성 인력의 단순노동에 대한 소외는 반대로 이들의 전문직에 대한 노동 집중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여자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방법에 있다. 이른바 `여권운동`이 그것이다. 정확하게 말해 `여권 회복 운동`이라는 이 모토는 아직 정확한 개념 설정조차 내부적으로 혼선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 용어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천부인권에 어찌 여권이 따로 있고 남권이 따로 있다는 것인가? 지금 여자들이 찾고자 하는 권리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인권)`이지 여자만의 권리는 아니다. 다만, 그 동안 없었던 여자들의 권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의 `여권`운동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여권운동이 여자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일부 선구자들이 이 운동을 남성에 대한 투쟁으로 생각하는데 있다. `왜 남자는 하면서 여자는 못하게 하는가` `왜 남자는 가고 여자는 못 가는가` 라는 식의 공격은 남자들에게는 투정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몇 년 전에 모 일간지가 기자를 공채하면서 여자를 제외하자 그 신문사 앞에서 여성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경우는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반발한 것이므로 얼마든지 사회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술, 담배 마음대로 하면서 왜 여자가 그러면 눈총을 받아야 하는가라든가, 남편이 바람 피우는데 나라고 못 피우겠는냐 는 식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것은 마치 남자가 죽으러 가는데 왜 여자라고 못 죽으러 가느냐는 식의 궤변일 뿐이다. 본질은 여자 자신 안에 있다. 어떤 여권운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여권운동은 여자 자신에 대한 투쟁이지 남자에 대한 여자의 투쟁은 아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이 말은 진정한 여권운동은 `남자도 하는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 내게도 기회를 달라!”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 남자를 의식해야 하는가. 남자나 여자나 성만 다를 뿐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그간의 억압을 복수하기 위한 `남자 흉내내기`가 판을 치고 있다. 남자가 혼전 섹스를 즐긴다고 해서 여자들도 거리낌없이 따라 하고, 왜 남자만 전투부대에 배속시키느냐, 우리 여군도 전투를 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혼을 무슨 현대여성의 권리쯤으로 아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남자가 문란한 섹스를 하는 것과 당신의 정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그것을 `앉아서 당하는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해다. 마찬가지로 여자를 전투군으로 배치하고 안하고는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능률의 문제이며, 이혼을 쉽게 아는 풍조는 결국 자기 스스로 불행을 쌓아가는 것임을 알자. 여권운동에 남자를 개입시킬 필요는 없다. 사사건건 남자와 충돌하고 대결하는 식의 여권운동은 오히려 여자를 망치고, 남자를 덤으로 망치며, 모든 인간들에게 해만 줄 뿐이다. 사회.문화적 관습과 싸우자. 그것이 여권운동이다. 2. 쓸만한 직장, 어떻게 고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대학교를 졸업하든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한 사람들은 일단 백수의 반열에 오른다. 백수가 되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데, 처음에는 늦잠을 실컷 자서 좋고 빈둥빈둥 책도 보며 친구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어 천국 같다고 펄펄 뛰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게 장난이 아니네 싶을 것이다. 백수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일자리를 얻어 이제 더 이상 (대낮에) 만날 사람마저 없어지면 하루 종일 혼자서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 고통은 백수 노릇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죽어도 모른다. 거기에다 부모의 눈초리도 슬슬 달라진다. 뺀뺀히 노는 주체에 돈이나 뜯어가고 (백수가 되면 돈을 많이 쓴다. 시간을 죽이려면 돈이 필요하므로) 할 일 없이 집에 앉아서 먹어대기나 하니 아무리 자식이라도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이 정도가 되면 대부분의 백수들은 신문이 오기가 무섭게 구인 광고란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원 모집` `직원 채용`이런 문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챙기고 이력서를 쓴다, 자기소개서를 쓴다, 증명사진을 찍는다 호들갑을 떠는데 결과는 보통 신통치 않게 마련이다. 열에 일고여덟은 소식이 캄캄일 것이고 기껏 서류전형을 통과했답시고 연락이 와서 가 보면 광고를 보고 기대했던 회사와는 생판 다른 황당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TV에서 보았던 근사한 사무실 풍경은 한낱 꿈이었으며 준다는 봉급도 상상을 초월하고 하라는 일도 도무지 아니올시다인 것이다. 요즘처럼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는 세상에서 쓸만한 직장을 잡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졸업하기 전에 이른바 대기업에 취직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거나 전공 과목이 취직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면 일반 회사를 직장으로 삼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도 한번 직장을 잡아보겠다면 이렇게 하라. 괜찮은 회사는 신문에 광고를 낼 때 반드시 회사 이름을 분명하게 밝힌다. 비싼 돈 주고 광고를 내는데 왜 자기 PR할 기회를 놓치겠는가? 또 뽑아야 할 부서와 내용을 아주 구체적이고도 자세하게 명시한다. 백수들은 이 나라에 모두 대기업만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생판 처음 들어보는 중소기업이 훨씬 더 많고, 규모는 작지만 대기업보다 짭짤한 회사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원치 않은 회사일수록 무슨 그룹이네 인력관리본부네 해서 좀처럼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길바닥의 전신주나 담벼락에 붙인 `여직원 급구. 월수 200 보장 선불됨. 숙식 가능`을 큼지막하게 써놓은 광고지처럼,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어디에도 밝히지 않고 그저 좋은 회사에서 월급 많이 줄 테니까 한 번 와 보라는 투이다. 이런 회사의 경우 합격 통보를 받고 찾아가 보면 십중팔구는 물건을 팔아오라는 주문을 한다. 3개월의 영업 실습 후 관리부서에 배치된다는 좀 점잖은 사기도 있고 피라미드 판매조직처럼 말도 안되는 논리로 허황된 꿈을 주는 곳도 허다하다. 이들의 감언이설은 상상을 불허한다.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몇 분만 듣고 있어도 정말 그들 말대로 될 것 같고 잘 하면 때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TV에 더러 보도되는 취업 사기의 상당수가 이런 수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고의 내용이 추상적이거나 회사 이름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곳은 일단 무시하는 것이 좋다. 특히 광고료가 싸서 유령회사들이 애용하는 스포츠 신문의 광고는 아예 안 보는 것이 이롭고 조선이나 동아 같은 신문의 광고도 유심히 살펴 뜯어보고 잘 판단해서 이력서를 보내는 것이 요령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깔끔하게 써서 보내는 것이 기본인데(요즘에는 워드프로세서로 많이들 한다. 가능하다면 남의 것 빌려서라도 출력해 보낼 것) 증명사진은 반드시 사진관에 가서 찍는다. 지하철역 매표소 근처에 있는 자동 사진현상기로는 절대 찍지 말 것. 당신의 얼굴이 시체가 되어서 나온다. 참고로 덧붙이면, 이 나라 대부분의 회사가 펄펄 끓는 여름이나 엄동설한에는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백수 노릇을 면하겠다고 돈 몇 푼에 죽기보다도 하기 싫은 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까짓 것 잠깐인데 어때 하면서 서비스업(?)에 종사할 생각은 절대 삼갈 것. 잘못하다가는 일찌감치 사회에 대한 좌절감만 맛보고 증오심만 키우거나 심하면 인생 막 내리는 수가 있 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취직한 선배 쫓아다니면서 어떻게 좀 해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3. 말 없는 여자가 아름답다 여기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이 둘이 서로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상관은 없다. 하여간 있는데, 만약에 이 둘 사아에 언쟁이 벌어지면 누가 이길까? 여자가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언쟁은 그야말로 말싸움이므로, 상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언어 능력에서 남자보다 뛰어나다고 입증된 여자가 이긴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기긴 이기는데 그녀의 눈자위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맞았을 테니까. 여자는 정말 남자보다 선천적으로 말이 많은가? 내 짐작으로는 여자가 애초에 남자보다 말이 많은 족속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자들이야 해지기 전에는 담배를 피고 해 진 후에는 술집에서 들입다 퍼마시는 걸로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디 `나가는 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러지는 못하고, 그저 돈 안 드는 수다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남자들 눈에는 여자가 말이 많은 사람으로 보 였으리라. 그러나 말이 많기로는 남자들도 뒤지지 않는다. 술집에 가보면 안다. 술 마시며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남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뭐가 그렇게 사연이 구구한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그도 모자라면 싸움까지 하고 집에 가 다시 죄 없는 마누라 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보면 여자들의 수다는 오히려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말이 많다는 것은 곧 생각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말수가 적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 `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실존에 충실하다는 것과 같다. 쓸데없는 생각은 망상을 낳지만 유익한 사색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보고가 된다. 수다를 떠는 여자들 옆에 앉아 가만이 들어보면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얘기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 아무개가 중앙병원에서 낙태수술 받았다는 거 너 아니? 산부인과에서 수술받고 소문날까봐 외과 병동에 누워 있었대.” “어머나! 그게 정말이야? 야, 그 뚱땡이를 누가 건드렸냐. 애비가 누군지는 모르고?” “낸들 아니. 아, 그나저나 누가 저녁이나 근사하게 사줬으면 좋겠다. 그럼 이쁘다고 뽀뽀 한 번 해줄 텐테 말이야.” “얘는. 누가 너한테 저녁을 사!” 물론 우리가 맨날 심각한 대화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날마다 이런 `노가리`를 풀어서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노가리를 풀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나는 바보야!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고 다름 없다. 사람들이 수다쟁이를 싫어하는 까닭은 그 말이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공허한 대화는 말이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4. 신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신문을 어떻게 보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냥 주르르 훑어보면 될 것 아니야? 맞는 말이다. 신문 보는데 무슨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대문간에 떨어 져있으면 가져다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요즘 신문들을 보자. 이게 신문인지 주간지인지 아니면 큼직한 잡지인지 모를 정도로 두껍다. 보통 32면에 일주일에 한두번쯤은 간지가 껴서 들어온다. 대충 제목만 읽는다고 해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기사보다 광고가 더 많아서 좀 짜증이 나기는 하지만 남는 게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두툼한 신문이 킬링 타임용으로는 쓸만하다. 그러나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신문을 통째로 보지 않는다. 신문도 백과사전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처럼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된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는 (한겨레신문)을 비롯해 대부분 비슷한 편집 체제를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니 (동아일보)니 하는 그 신문의 이름이 박힌 면이 1면이고 차례로 넘기면 2면, 3면이 이어진다. 1면은 종합면이다. 신문이 나오기 직전까지의 기사 중 아주 중요한 것은 대게 이 1면에 실리므로 시간이 없는 사람은 거리 가판대에서 돈 안 내고 훤히 보이는 1면만 슬쩍 훑어도 중요한 뉴스는 다 본 셈이다. 예를 들면, `김일성 주석 서거` 라거나 `LA에 대지진` 또는 `성수대교 폭싹` 뭐 이런 것들이다. 이런 톱 뉴스 몇 건만 챙겨도 어디 가서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는 안 하게 된다. 1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정치,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사회면 등으로 갈라져 순서에 따라 배치되는데 (중앙일보)가 신문을 섹션화시키면서 이런 룰도 깨지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야 필요한 부분을 찾아보기 편하다는 점에서 섹션신문의 등장이 반갑기는 하나 이의 부작용으로 흥미 없는 기사는 아예 보지 않게 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독자들은 골치 아픈 정치나, 경제, 국제 뉴스는 펴볼 생각도 않고 바로 연예 오락 섹션만 골라 펴든다는 얘기다. 그 나머지래야 금주의 TV 하이라이트 정도가 고작이고. 여자들이 아직도 남자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취약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사 상식`이다. 모든 여자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여자들은 차인표 군대 간 날짜는 알아도, 혹은 무슨 드라마가 어느 채널에서 몇 시에 하고 누가 나오는지 줄줄이 꿰면서도 보스니아 내전이 왜 그렇게 오래 가는지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며 김영삼 대통령이 왜 정책 부재로 헤매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한 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제대로 모르고 산다는 얘기인데 그러고서야 어찌 남들과 꿇리지 않고 대화를 할 것인가. 옆길로 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외국에서 몇 년을 공부하고 돌아와도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한다. 왜 그려냐니까, 아 이게 강의만 끝나면 한국 유학생들이 우루루 저희들 끼리 몰려다니며 한국말로 낄낄거리니 언제 말을 배우겠느냐는 것이다. 언어라는 게 처음에는 그 나라 사람들하고 손짓 발짓 해가며 몸으로 부딪혀야 가장 빨리 배우는 법인데 틈만 나면 한국 사람들만 찾아서 한국말로 지껄이니 될 턱이 없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보면 여자들은 대기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점심 먹고 볼링 치고 커피 마시고 그러는데 남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썩 보기 좋은 풍경이 못된다. 이런 행동은 여자 자신을 스스로 한정시킬 뿐만 아니라 화제의 빈곤에 빠지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직원이 아닌 다만 여직원으로 축소시킬 뿐이다. 회식 자리에 가서도 그렇다. 여자 직원들은 끼리끼리 몰려 앉아 안주에 밥만 먹고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남자 직원들의 입만 멀뚱멀뚱 다보다가 `아, 지겨워! 어서 끝나고 집에 갔으면` 하는 게 보통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남자들의 화제는 보통 정치나 경제 문제가 주를 이룬다. 좀 고상한 사람들은 문화를 화제로 삼기도 하지만 그런 인간의 10%미만이고 대체로 시사 문제가 주가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전문가인 양한다.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가 내놓은 분석이 맞는다고 난리를 친다. 여자들은 보통 그 거품과 난리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시사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렇게 보자. 정치, 경제, 국제, 사회면은 최소한 제목이라도 훑어라. 칼럼과 사설은 꼭 읽고 문화면은 꼼꼼히 보자. 여자들이 시사에 어둡다면 남자들은 문화에 어둡다. 점심 시간에, 회식 자리에서 괜히 빙빙 돌지 말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해 한 마디 거든다면 직원들은 당신을 다시 볼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사회다. 쓸만한 정보를 챙기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신문을 잘 보는 것, 그것은 세상 속에 내가 있고 내가 그 안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작업이다. 5. 시간 도둑을 아십니까? "여보세요! 아, 명희니?” “응. 순자구나?” “웬일이니?” “아니, 뭐 그냥 했어. 너 저녁에 시간 있니?” “시간? 시간이야 있지. 아직 별 약속은 없어.” “그럼 말이야, 우리 만나서 저녁이나 먹자.” “니가 사는 거야?” “엊그제두 내가 샀는데 또 내가 사?” “야! 일 없이 만나서 저녁 먹어주고 니 얘기 들어주는데, 그럼 내가 사니? 엊그제 난 또 니가 무슨중요한 얘기라도 하는줄 알고 야근 있는 것도 핑계대고 빠져나갔었던 거야. 그랬다가 어제 부장한테 깨진 거 너 알기나 알아? 오늘은 또 무슨 얘기니?” “어머, 얘 봐! 사람이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나니? 친구라는 게 뭐야. 심심하면 만나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거지, 니가 무슨 내 거래처냐, 일이 있어야 만나게?” “...” 어떻게 보면 별 시덥지 않은 대화처럼 들리지만 이런 경우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그냥 만나자고 하면 자신에게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면, 혹 일이 있더라도 덩달아 그냥 만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일 없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퇴근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아니면 퇴근은 했는데 터덜터덜 집에 가기는 싫고 어디 `껀수`도 잡히지 않으면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야, 뭐 하나?” “뭐 하긴 뭐 하냐? 전화 받지.” 마음이 약한 사람은 일이 있는데도 심심한 친구의 시간을 같이 죽여 주기 위해 약속 장소로 나간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고, 여자들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아이 쇼핑만 잔뜩 하고 저녁 먹으며 실컷 수다나 떨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나도 심심하던 참에 심심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면야 얼마든지 어울려 줄 수 있다. 하지만 한참 일하는 중인데 괜히 전화를 걸어서 주절주절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늘어놓거나 얼굴이나 보자고 졸라대면 듣는 사람은 리듬이 깨져서 일하는데 김이 새고 만다. 게다가 만나자는 말에 차마 거절을 못해 내키지도 않는 약속을 해야 한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시간 도둑이 많다. 선배나 후배 그리고 동창, 하다못해 사촌동생까지가 그 범인이다. 쓸데없이 찾아와서 술 사라, 밥 사라, ‘레옹’이 죽인다는데 영화보러 가자 하며 시간 뺏고 돈 뺏고 스트레스 쌓이게 만드는 것이다. 성질이 모진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시간 도둑들은 아주 교묘하게 상대방을 뜯어먹는다. 물론 당사자 모두 자신이 시간을 도둑질하고 있는지 또는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이제까지 몰랐다면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라.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시간 도둑을 퇴치하자. “야! 바쁘면 뭐 너만 바쁘냐? 거 그렇게 피곤하게 살지 말고 좀 헐렁하게 살아. 나 지금 그리루 간다 잉.” 이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시간 도둑들 중에 당신도 끼어 있을지 모른다. 6. 일기는 뭐 하러 쓰나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 아직 20대의 나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서른만 넘어도 이게 실감이 날 것이다. 10대 시절 에는 어서 나이 좀 먹었으면 하고 바라다가 20대가 되고 어1 하다 보면 금방 나이 30을 코앞에 두는 것이다. 노처녀가 되는 것도 직장 생활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겪는 불상사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이래저래 후회가 늘어난다. 지난 시절은 모두 어영부영 까먹고 아무 것 도 이룬 것이 없는데 앞으로 닥쳐올 미래도 역시 그런 식으로 지나가게 될 것 같은 불안에 빠지기 십상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록에 소홀하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쳐 자기 기록에 소홀하다 보니 자신은 물론이고 후세 사람들도 지난 흔적을 찾아보려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사실과 현상을 재음미 한다는 뜻에서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기를 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일기요? 학교 다닐 때는 잠깐 써 봤지만 지금이야 뭐, 쓸 게 있나요. 어제나 오늘이나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그날이 그날인데다 사실은 귀찮기도 하고요.” 일기를 쓰느냐고 물으면 건너오는 대답이 다 이렇다. 특별히 남길 이야기가 없어서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성가시니까 안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도리가 없기는 한데 이런 사람들도 지난 세월의 반추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딱하다. 일단 쓰자. 시작이 반이다. 우선 노트를 하나 사서 매일매일 꾸준히 써나가되 정 쓸 말이 없거든 하다못해 ‘오늘 영숙이에게 3만원을 꿔줬음’ 이 한 줄이라 도 써라. 일기에 들어가는 내용에 대해서 누가 시비거는 일은 없다. 일기를 장부 처럼 쓴다고 해서 이게 법에 걸릴 것도 아니니까 다음 날 ‘영숙이에게 3만원 받았음’이라고 써도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버르장머리를 길러 놓으면 귀찮아 서 안 쓰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쓸 게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당신은 허구한 날 만족하며 사는가?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은 ‘아니요’다. 아무리 의식이 없는 사람도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며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런 얘기들, 즉 남에게 할 수 없는 얘기,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 꼭 남겨뒀으면 하는 생각,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좋아서 환장하고 싶을 때, 이런 모든 것들을 주절주절 노트에 늘어놓으라. 그것이 일기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 이것들을 읽어보면 당신 스스로도 놀랄 것이다. “아니, 내가 이런 생각들 다 했던가? 정말 기가 막히는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 제목처럼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라도 일기를 쓰자. 오늘 일을 생각하면 어제가 부끄럽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 나는 어떻 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 삶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이고 이런 나날이 자꾸 쌓이다 보면 적어도 지난 세월 내가 정말 헛살았구나 하는 기분은 안 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일기를 쓰다 보면 덤으로 사고에 논리가 서게 되고 문장력이 늘어난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일기를 쓴 덕분이다. 7. 말버릇을 고쳐라 이른바 신세대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말버릇이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개판이니까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성세대의 귀로 듣자면 실로 가관이다. “저는요, 화양리에 살구요. 직업은 출판사 직원이에요. 취미는 볼링인 거 같구요. 술은 뭐, 레몬소주 조금 마셔요. 아빠요? 사업하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언뜻 듣기에는 이 말에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늘 이렇게 쓰니까. 위 예문을 보면 말끝마다 ‘요’가 들어간다. 이 ‘요’라는 조사는 서울 사투리다. 사전에서 보면 ‘설명어의 어미에 붙어 존칭이나 주의를 끌게 하는 특수조사’로 나와 있다. 그러나 존칭 또는 주의를 끌려고 ‘요’자를 말끝마다 붙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습관적으로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는 것이다. 양식있는 사람이 듣기에 이 ‘요요’ 소리는 짜증나는 말투다. 위의 예문을 바꿔 써 보자. “저는 화양리에 삽니다. 직업은 출판사 직원이지요. 취미는 볼링이고 술은 적당히 마시는 편이에요. 아버님은 소규모 자영업을 하십니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쓴 문장을 좀 어렵게 설명하면 문어체와 구어체를 섞어 썼다고 말한다. 쓸 때도 그렇고 말할 때도 이렇게 해야 제대로 말하는 것이다. ‘했습니다’와 ‘했어요’을 적당히 섞어 쓰면 한결 듣기 좋고 예의 바른 말투가 된다.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이랬어요 저랬어요라고 하지 않는다. 또 하나. ‘뭐뭐 같아요’라는 표현의 남용이다. “취미는 볼링인 것 같아요.” 볼링이면 볼링이지 ‘같아요’는 무슨 소리인가? 볼링이 취미는 취미인데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말인가. 이 ‘같다’라는 말은 ‘무엇을 닮았다거나 좋아한다, 또는 불확실하지만 그럴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이다. 이 ‘뭣뭣 같다’라는 표현이 처음 나타난 것은 3공화국 말기로서, 언론 통제가 심해 무슨 사안이든 직설적인 전달을 피하던 시절에 일종의 변칙적인 표현 수단으 로 등장한 것이라 한다. “박정희는 죽일 놈이다”라고 말하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불구자가 되도록 맞겠지만 “박정희는 죽일 놈인 것 같다”라고 말하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언론 자유가 풀린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이런 표현 습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첨단 문명 속에 살면서도 무엇 하나 확실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현상 역시 우리들에게 “내 취미는 볼링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한 이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말을 지껄이고 돌아다닐 이유는 없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밥 먹은 것 같아요’ 이따위 소리는 집어치우자. 이외에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쌔고쌨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 두 가지만 얘기하자면, ‘수고하세요’과 ‘식사하세요’다.‘수고하라’는 말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힘든 일이지만 애쓰라’는 말이므로 절대로 나이 드신 어른에게 써서는 안될 말이고, 제깐에는 좀 고상하게 한답시고 쓰는지도 몰라도 ‘식사하세요’는 적당한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침 드세요’나 ‘점심 드세요’가 훨씬 다정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밥 먹는 게 무슨 ‘일’ 인가? 8. 친구냐, 그저 아는 사람이냐 미안하지만 이건 내 얘기다. 여러분들도 이런 뼈아픈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고 나서 TV를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좀 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처 조문 한 마디도 못하고 “그래, 알았다. 내 갈게”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짜식의 고향은 충청북도 증평이었고, 솔직히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 거기까지 내려갈려니 좀 귀찮았다. 나는 결국 미적거리다가 “에이, 내일 가지 뭐!” 하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짜식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친구 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멀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우리는 대학 신문사 후배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짜식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도 입을 열지 못했고 그도 나와는 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 자리가 2차였던가, 3차였던가 하여간 어지간히 퍼마신 후에 나는 술이 취했다는 것을 빌미로 그에게 다가가 그 때 내가 가지 않았던 것을 사과했다. 짜식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밤새도록 너를 기다렸다고. 그런데 오마던 너는 오지를 않았다고. 나는 얼마나 미안했던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내 죄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그는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사이 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골짜기가 생긴 후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이무영과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친구였으며 언제나 겸손하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같잖은 재주를 인정해 주던 친구를. 지금도 그 친구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들이 흔히 얘기하는 친구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그저 가끔 만나서 시간이나 죽이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무슨 얘기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당신은 혹시 진정한 친구를 그저 아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만나고 아쉬운 소리나 해대는 대상자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한 부분을 망치는 것과 같다. 친구는 부모나 형제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며 때로는 나 대신 피박을 맞아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친구를 제대로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심심하면 돈이나 꾸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인격을 모독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보다는 만나서 자기 얘기만 떠들어댈 때 당신의 친구는 당신을 ‘그저 아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살벌해지면서 사람다운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친구의 소중함 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여자들 사이에는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우정이 꼭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해결은 당신 몫이다. 9. 똑똑한 여자 대 현명한 여자 당신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 겠다.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남 칭찬에 인색하기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남 똑똑한 꼴도 못 본다. “지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꼴을 떨어요 꼴을.” “그래 그래. 너 잘 났다 잘 났어!” 누가 좀 나서서 한 마디 아는 얘기 좀 했다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막고 이렇게 씹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게 “아유, 고놈 참 똑똑하기도 하지!”라는 립 서비스성 칭찬뿐, 아이들이 암만 방방 떠봐야 바보 어른에게라도 적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똑똑하다라는 말의 정 확한 의미는 ‘생긴 모양이 똘똘하다’거나 ‘보기에 영리하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clever, wise, bright 등의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똑똑하다는 말에는 ‘아는 것은 많지만 깊이가 없다’거나 ‘교활하다’는 의미도 포함하 고 있고, 우리가 실제 쓰는 경우에도 진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내 뱉기보다는 비아냥거리거나 웃기지 말라는 뉘앙스로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말의 어의가 이렇게 바뀐 배경에는 공자님의 영향이 크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은 결례이고 현명한 자는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이유이다. 이런 해석 말고도, 똑똑하다는 말은 ‘똑똑한 척한다’는 질책의 의미도 포함하 고 있다. 그러니까 똑똑하지도 않은 자식이 똑똑한 척 나설 때 그 인간을 만장하 신 가운데 똑똑하다고 선언해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화법 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간에 (자신이 정말로 똑똑하더라도)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거나 똑똑한 척해서는 별로 득될 게 없다. 역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이른바 똑똑한 여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얼마나 칼 같은지 기가 막힐 정도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직 똑똑한 여자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여자가 나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가 여전히 판치는 마당에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다가 좌절에 빠진 여자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똑똑한 여자가 되기보다는 현명한 여자가 되도록 하라. 똑똑한 여자보다는 현명한 여자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 현명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뜻한다. 경망스럽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알되 때가 오면 놓치지 않는 사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과시하지 않아도 남들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듯이 사회생활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똑바로 가기 어렵 거든 돌아서 가라. 아직은 돌아서 가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다. 10. 프로가 되려면 혼자 살아라. 글을 써서 밥을 먹다보니 내 주변에는 출판이나 잡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이너도 있고 사진장이들도 있는데 여자들의 경우 아직도 많은 수가 시집을 가게 되면 기껏 해왔던 일들이 말짱 꽝이 된 채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이다. 요즘 신세대 남자들이야 제 여편네 직장 못 내보내서 안달이라지만 30쯤 넘은 남자만 돼도 대부분 ‘여자란 시집 오면 집에서 살림하고 애나 기르며 밤에는 창녀처럼 남편을 죽여주는 일만 해야 함’이라고 못을 박아 아내를 기절시킨다. 이런 남자를 만나면 일찌감치 인생 포기하고 신사임당 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왜? 투쟁한다고 맞서봐야 터지고 깨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찢어지 는(이혼) 불상사도 감내해야 하니까. 애 뺏기고 이혼 당한 채 제 인생 제 갈 길로 가겠다고 나서봐야 이미 때를 놓친 뒤다. 그러므로 한 사회인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인생을 찾아가려면 혼자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낫다. 괜히 짱구를 굴린다고 “나중에도 사회활동을 보장하마”는 남자의 약속만 믿고 결혼했다가는 ‘이게 아닌데’ 하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남자란 하나같이 똑같아서 아내가 돈 벌어오는 맛에 직장에 내보내지만 그러면 서도 저녁에는 제 시간에 칼같이 들어와 맛있는 찌개 끓여놓고 다소곳이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내가 야근한다, 회식이다 해서 좀 늦게 들어오면 짜증을 내고 트집을 잡아 난리를 치는 것이다. 아무리 성인군자하고 살아도 사람이 어디 맨날 봄날일 수야 있겠는가. 더러는 괜히 마누라가 밉살스러워서 이유 없이 시비를 걸기도 한다. 고로 피해자는 여성일 수밖에 없다. 심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부인이 간호사인 한 남자는 아내가 밤근무가 걸린 날엔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았 다고 한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처음에는 술을 퍼마시고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포커에 손을 대 월급 날리고 빚까지 걸머지게 되었다나. 좀 잘 살아보겠 다고 한 맞벌이가 도로아미타불이 된 경우이다. 상상해 보라. 당신은 밖에서 성취감에 희열을 느끼며 일에 미쳐 있을 때 서방이 라는 작자가 술 퍼마시고 다니며 노름이나 한다면 한편으로는 돌아버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재삼 말하는데 결혼보다 일이 좋고 자기 분야에서 끝장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예 결혼할 꿈도 꾸지 말 일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간 모두 놓친다. 한 마리만 확실히 잡아라. 아이 낳고 서방님과 오손도손 사는 게 좋다면 꿈이고 뭐고 다 버린 채 살림에만 매달리고, ‘내가 미쳤냐. 내가 애 낳고 살림하려고 세상에 나왔냐. 그러느니 차라리 자살을 하고 말지’ 하는 사람이라면 남자 보기를 돌처럼 하고 일에 미쳐라. 11. 남자가 친구로 남을 수 없는 이유 적지 않은 여자들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 는 친구가 되는데 ‘남자와 여자 이 둘은 왜 친구가 안된다는 걸까?’하는 의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성끼리는 친구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가? 미안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 ‘님과 여’라는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이 유명한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빨리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빌려 봐라.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견될 만한 명작이다. 이 영화에는 과부와 홀아비가 나온다. 아이들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도 과거 즉 자살한 아내와 영화 촬영 도중 폭사 한 남편에 대한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갈등하다가 나중에는 이를 극복 하고 결합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의 갈등(저 인간이 좋기는 하지만 과거의 아내 또는 남편에 대한 기억이 그것을 방해한다)의 실체가 성이 다르다는 데 있다고 봤다. 만약 두 과부가 영화의 주인공이었다거나 두 홀아비가 나왔다면 얘기는 아주 쉽게 풀어진다. 사랑할 필요 없이 그저 꾸역꾸역 만나 아이들 얘기나 하면서 친구가 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둘은,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생식기가 다르다. 물론 두 과부나 홀아비가 동성연애자라면 얘기가 왕창 달라지고 복잡해 지지만 이런 경우는 아직 반사회적이니 그만두고 하여 간 ‘남’과 ‘여’니까 영화스토리가 재미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의 우정과 사랑은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 한쪽이 성철 스님처럼 도를 통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우정인지 사랑인 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정에는 섹스가 없다. 하지만 사랑에는 섹스가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다. 나를 좋아했던 여자와 만났는데 어딜 갔다 오다가 헤어질 무렵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는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던 참이었다. 그 때 그녀가 내게 뭐라고 했는 줄 아는가? “당신이 남자만 아니었으면 같이 자면서 밤새 얘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헤어지기가 아쉬워 내게 한 이 한 마디는 정말 명언이었다. 동성이었다면 섹스에 대한 부담 없이 같이 밤을 보내고 싶다는 그녀의 이 말에 모든 답이 들어있다. 내가 만약 그녀의 여자 친구였다면 이런 말은 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친구와 밤을 새며 얘기를 나눈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한 이불 속에서 미주알고주알 속삭이며 낄낄거리다가 새벽녘에야 잠에 빠져든 기억은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갖고 있다. 하지만 남자 친구와 밤새 이랬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쳤냐, 남자랑 한 이불 덮고 밤을 새게!” 이럴 사람이 더 많지. 그러니까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물론 이 말에도 반박의 여지는 있다. 왜 우정에 섹스를 개입시키는가. 우정과 섹스는 별개의 문제이다. 당신, 섹스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야?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둘 다 섹스에 초연해질 수 있다면 이성간에도 우정은 있다. 또 우정을 가진 친구면서 섹스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럴 자신이 있다는 건가? “나는 저 남자와 친구야. 우린 가끔 여관에도 가지.” 누구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그 남자와 곧 결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말만 잘하면 한 번 할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이런 오해와 편견을 극복해내야만 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섹스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비극이다. 정말 괜찮은 남자, 아는 것도 많고 남의 말도 잘 들어주며 아버지 같은 남자라서 한 번쯤 같이 밤새워 얘기라도 나눴으면 좋겠는데, 제기랄 그러다가 별안간 내 끝내주는 몸매에 이성을 잃고 날 덮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 때도 저 남자가 괜찮 아 보일까? 나는 그만큼 진보주의자인가? 아직도 세상은 순결 타령인데, 남자 가 친구로 삼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가 설사 팬티를 내려도 상관없을까? 그러다 가 그가 결혼 을 하자고 하면 마음은 없지만 그냥 해버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12. 라면이나마 확실하게 끓이자 내가 학교 다닐 때 일이다 모임에서 등산을 갔는데 현지에 가서 조를 짜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조에 낀 여자들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외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찌개를 해 먹으라고 준 고기를 한동안 내려보더니 코펠에다 물을 한사발을 떠와서는 거기에다 덥석 고추장을 풀고 버너앞에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속수무책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조에서는 벌써 얼큰한 냄새를 풍기며 식욕을 자극하고 있는데 우리 조는 멀뚱멀뚱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지금 이라면 내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맛있는 찌개를 끓여냈겠지만 그때만 해도 난 그들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었다. 나는 결국 숟가락을 들고 다른 조로 끼여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하자. 나와 모 출판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한 여자 동료는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시집을 갔다. 아와는 참 친해서 둘이 술을 마실 때면 별별 소리를 다 했는데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남편은 아침에 출근할 때 밥을 차려주면 먹지도 않고 그냥 가요.” 왜 그냥 가냐고 물었더니 맛이 없어 그런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웃었다. 세상에, 얼마나 맛대가리가 없으면 애서 차려준 밥상도 마다하고 공복으 로 출근을 할까. 그 후 회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서로 소식이 끊겨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아침은 굶고 저녁은 사 먹고 집에 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얘기는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시집을 가든 혼자 살든 사람은 먹어야 산다. 물론 누가 평생 옆에서 삼시 세 끼 꼬박꼬박 차려주는 사람이 있다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적어도 제가 먹을 밥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허구한 날 사 먹는 게 좋은 사람은 돈을 그만큼 더 벌어야 하겠지만, 위암으 로 죽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밥을 사 먹은 사람이 많대나 어쨌대나. 영화배우 스 티브 매퀸도 그 중의 하나였지. 음식 만들기를 가르쳐줄 사람은 누가 뭐래도 엄마 이상 가는 사람이 없다. 이 책을 볼 만한 자식을 가진 엄마라면 소주를 두 병정도 마셔도 저녁 밥상을 근사 하게 차려낼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조리법의 노하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나도 얼마 전까지 우리 노인네의 음식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던 사람이다. 지금이야 연로하셔서 반찬이 자꾸 짜지는 경향이 있어 마누라가 해주는 것만 먹 지만, 잠깐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가득한 밥상을 들여오는 엄마의 솜 씨는 거의 입신의 경지였다면 과장일까? 시집 가지 전에, 아니 독립해서 가출(?)하기 전까지 당신 엄마의 음식 솜씨를 10%만이라도 배워라. 음식 솜씨가 좋은 여자는 누구에게도 어디엘 가더라도 환 영받는다. 13. 남자는 왜 바람을 피나 끔찍하게 더웠던 지난 여름, 나시 배꼽티에 마이크로 미니 스커트를 입고 지 나가는 여자를 쳐다보며 운전하다 차가 인도로 올라가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는 남자가 있었단다. 소나기가 내리던 날, 비를 쫄딱 맞고 언덕길을 올라오는 여자를 쳐다보며 자 전거를 타고 내려가다가 고개를 돌리지 않는 바람에(여자가 노 브라였다지?) 전 봇대에 부딪혀 잠시 기절했다는 놈도 있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워가 볼 게 있다 고 남자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까. 하지만 남자들은 다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든 남자들은 더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싶어한다. 남자들은 내 떡이 있어도 남의 떡을 먹고 싶어하고 내 떡이 없으면 모든 떡을 다 내 떡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거 자꾸 떡, 딱해서 미안하다. 내가 여자를 무 슨 음식으로 여기는 건 아니니 오해없기 바란다. 좌우지간,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이렇게 타고 났으니 비극이다. 애인과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지나가면 침을 질질 흘리며 모가지가 비뚤 어지도록 돌아보는 것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는 까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 만나는 여자에게 서, 아니면 데리고 사는 마누라에게서 전혀 신선함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거고 또 다른 경우는 본의 아니게 여자가 생겼고 정이 드는 바람에 한눈을 파는 것이 다. 생물학적으로도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여자들을 임신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도 섹스가 가능하다. 함께 사는 마누라야 뭐 말할 것도 없지만 결혼 전에도 여자를 오래 만나다 보 면 좀 지겨워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숭도 떨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나오던 여자가 시간이 지나 서로에 대해 좀알게 되었다 싶고 더러 키스도 하는 사이가 되면 슬슬 야쟈를 튼다.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중간에 입 한번 안 닦고 전에는 못 먹는다던 곱창이며 간천엽을 척척 먹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트림을 해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림 얘기가 나와서 갑자기 생각난 조크가 있어 잠깐 옆길로 빠진다. 남자들 에게 3대 재수 없는 여자가 있다. 뭐냐 하면 첫째가 키스하다 트림하는 여자고 둘째는 젖꼭지가 짭짭한 여자, 셋째는 남자가 한참 운동을 하는데 밑에서 방귀 뀌는 여자다. 웃자고 누가 지어낸 얘기지만 실제 상황 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넘하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남자들은 순진하게도 여자가 항상 처음 만났을 대의 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마누라 행세를 하려고 들면서 패션이나 자세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만큼 친한 사 이가 됐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겠지만 남자는 이때즘 ‘아, 내가 얘하고 너무 오 래 놀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연애는 오래 하면 개진 다는 것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는 이유가 여자에게 있다고 하면 악을 쓸 여성분들이 많겠지 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차도 관리를 잘 해야 오래 타는 법이고 남자도 관리를 잘 해야 딴청을 못 부리는 법이다. 14. 연애, 오래하면 깨진다 ‘연애를 오래 하면 깨질 확률이 많다’고 하면 여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 다. 이해는 고사하고 도리어 오래 교제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서로를 파악할 시간이 많은게 좋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만난 지 얼마 안되어 ‘너 아니면 난 못 산다’고 방방 뜨다가 이내 찢어지는 것보다야 신중하게 서로를 살펴보고 ‘아, 저 인간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 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건 해롭지 않다. 하지만 그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처음에는 서로 믿음이 생긴다. 둘이 연인 사이라는 것 은 누가 봐도 기정 사실이 되어 아무도 그 틈에 끼여들지 않는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새로운 유혹은 사라지고 쌍방은 묵시적으로 결혼을 염두에 두게 된 다. 이 때, 문제는 남자에게서 비롯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남자라는 인간은 조금만 한눈을 팔면 다른 데 정신을 쏟는다. 열 여자마다 하는 사내 없다고 조 금만 틈이 생기면 ‘껀수’를 찾아 다니는데 이를 여자가 눈치채면 뭐라고 하는 지 아는가? 슬슬 보채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키스를 허락하는 것만으로 넘어가 더니 점점 더 진한 걸 요구하고 마침내는 여관 앞에서 개기는 것이다. 무슨 말 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야. 이 장면에서 남자들은 특유의 늑대 근성을 발휘한다. 여자가 거절하면 일부러 삐진 척하며 잽싸게 집으로 가버린다. 그럼 십중팔구의 여자들은 전전긍긍하게 마련이다. ‘이러다가 찢어지는 거 아니야?’하면서 말이다. 이 고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두 가지 대응방법을 상정할 수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든 결과는 비슷하다. 하나는 여자가‘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결혼 할 사인데 미리 연습좀 해두지 뭐!’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안 돼! 도저히 그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어’하는 두 경우다. 먼저 ‘에라 모르겠다’의 경우를 보자. 섹스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맛을 들 이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 남자나 여자나 서로 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결혼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들어 이제는 어떤 기대감도 들지 않고 남는 것은 오직 피임과 혼인 날짜 분이다. 남자가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되는 단계가 여기다. 말하자면 볼장 다 봐서 이제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흔히 말하는 신비감도 사라지고 다만 남은 것은 ‘얘가 열 받으면 엄청나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아니면‘얘가 너무 밝히는 거 아니야?’하는 뭐 그런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못된 녀석들은 새로운 여자를 찾기 마련이다. 다른 여자와 이 것저것 비교를 하면서. 두 번째, ‘신혼여행 가기 전에 거기까지는 죽어도 안돼’하는 경우, 괜찮은 남자는 웃으며 포기하지만 나쁜 놈은 그걸 빌미로 우물쭈물 뒷걸음질을 친다. 더블 데이트를 하며 여자를 열 받게 만들어서 기어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다가 그것도 수포로 돌아가면 이젠 만나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여자도 ‘너만 자존심 있냐. 안 봐도 그만이야’하고 같이 튕기면 장난이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도 여자들은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니, 남자 그거밖에 모르나요?” 미안하지만 그렇다. 남자들은 모든 여자들을 홀랑 벗겨놓고 본다(할머니만 빼 놓고).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고 남자들은 거의 하루종일 섹스를 생각한다는 보고 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므로 애인이 생기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것이다. 따라서 연애를 오래 한다는 것은 남자에게 육체적 욕구를 증폭시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물론 남자의 자제력이나 인간성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 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이 늦어진다면 때때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져 남자의 성 적 욕구나 지루함을 예방하라. 아니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결혼을 앞당기자. 그것만이 당신의 연인을 놓치지 않는 길이다. 괜히 남자가 원한다고 하자는 대로 다 하다가 재수 없으면 미혼모가 될지도 모르잖나. 15. TV 드라마를 죽여라 단칸방에서 집사람과 아이 둘 그리고 나까지 복닥거리며 살다보니 싫어도 TV 를 자주 보게 된다. 이 서울 바닥에서 어디 갈 곳도 없는 내 불쌍한 자식들이 브라운관에 매달려 있는 걸 탓하지도 못하고, 만화영화에서부터<열려라 웃음천 국>이니 <슈퍼 선데이>니 하는 프로도, 마누라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억지로 볼 수 밖에 없다. TV 시청을 즐겨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당에 낙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오디오 세대다. 어려서 줄곧 라디오를 듣고 자라던 내가 TV를 처음 본 것은 예닐곱 살 때쯤인데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집에 저녁마다 놀러가 빅 모로 와 릭 제이슨이 나오는 <전투>도 보고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명랑백화 점>도 본 기억이 난다. 특히 <전투>는 어린 나를 사로잡은 프로그램이어서 일 주일 내내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손더스 중사가 쏘는 자동소총에 독일군들이 맞아 죽는 걸 보고서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TV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지금 애들이야 태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보니까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겠지만, 라디오나 듣던 게 고작이던 대가 사람들이 움직이고 소리가 나오는 조그만 박스를 보았을 때 그 감격이 얼 마나 컸겠는가. 우리집에 처음 TV가 들어오던 날은 내인생에 있어 하나의 사건 으로 치부될 정도다. 그런 내가 TV 드라마를 죽이라는 썰렁한 소리를 하는 이 유가 무엇인지 되게 궁금할 것이다.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TV를 부숴라' 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드 라마만 죽이자는 것이다. TV중독자들에게 그걸 부수라고 해봐야 소용 없는 일 일 것 같고 또 뉴스도 봐야 하니까 내가 평소에 원한이 많앗던 드라마만 두들겨 패보자 이거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TV 방송 3사에서 내보내고 있는 드라마가 60여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송국 한 군데서 평균 20종류의 드라마를 일주일 동안 쏟아내고 있다는 얘기다. 아침 드라마를 필두로 해서 일일연속극,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미니시리 즈, 특집 드라마, 베스트극장, 테마 게임 등 갖가지 이름의 드라마가 주로 여성 시청자들을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드라마에 대해 유감이 많은 까닭은 그 내용이 올바른 여성상을 크게 왜 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시청률 점유에 급급한 나머지 정신병자나 다름 없는 인물 설정에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는, 좀 어렵게 말하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황당 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이 시대의 여성들은 열 받는다고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와이셔츠를 발기발기 찢고, 살림을 부수고, 친구의 남편과 연애를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괴롭히며 그걸 즐기는 새디스트로 그 려진다. 남자들은 몽땅 밖에서 바람이나 피는 한심한 인간이거나 여자가 소리를 지르면 시장에 가 장을 봐오는 코미디언밖에 안된다.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도 그렇다. 이 드라마에 서 사람들은 완고한 대발이 아버지가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고 했는데 그건 내가 보기에 작가 김수현의 트릭이었다. 대발이 아버지가 방방 뜰수록 아들은 바보가 되었고 부인은 불쌍한, 그래서 모든 여성들이 구원해 주어야 할 여자로 비쳐졌던 것이다. 지금 세상에 대발이 아버지 같이 집에서 권위를 찾아 먹을 수 있는 구세대는 남아있지 않다. 여자들 이 그걸 용납하지도 않거니와 그만한 용기를 가진 남자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 다. 말하자면 이 시대 최고의 방송작가 김수현은 이미 죽은 남자들을 다시 한 번 확인 사살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걸 진정으로 원하는 여자들은 없다고 본다. 당신은 정녕 아버지가 또는 남편이 당신 엄마나 당신 말 한 마디에 꼼짝도 못하는 바보가 되기를 바란 단 말인가? 당신은 조형기 같은 남자가 (물론 TV에서의 조형기를 말함이다) 당 신의 아버지 또는 남편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여성상은 정상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의해 자신의 위치를 확보 하는 것이지 바보나 코미디언을 통해 얻는 그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TV는 자구 그걸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세외시키고 있다. “남자를 바 보로 만들어라. 남자는 당신이 정복해야 할 적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TV프로도 골라서 보자. “거 참, 보던 거 안 볼 수도 없고...,” 이렇 게 중얼거리며 짜증나는 드라마만 볼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다큐멘터리도 좀 보고 뉴스도 꼼꼼하게 봐서 TV를 TV답게 만들자. 그러면 쓸데없는 드라마는 저절로 죽는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드라마는 죽게 마련이다. 16. 맞벌이, 누구를 위하여 딩크(DINK)족이라는 게 있다. ‘애 없이 수입은 두 배로’를 외치는 족속이 다. 영어로 하자면‘Double Income No Kids'가 된다. 결혼은 하되 애가 생기면 맞벌이가 힘들고 맞벌이를 안하면 수입도 줄어드니 그냥 둘이서 신나게 벌고 쓰 자는 얘기다. 사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우선 만들어야지, 배불러 야지, 배부른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지, 낳으면 먹이고 입혀야지, 울면 달래야지, 학교 보내야지, 뼈골 빠지게 길러서 시집 장가 보내야지, 보내 놓고도 잘사나 걱 정해야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건 둘이서 재미 좀 보며 살 만하면 애가 생겨서 거기에 매달리다가 볼장 다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애를 안 낳겠다고 악을 쓰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 가 간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애가 아니고 ‘맞벌이’다. 맞벌이. 요즘 웬만한 사람들은 다 한다. 혼자 벌어선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둘 이 벌어서 좀 넉넉하게 쓰고 얼른 집도 사야 하니 ‘놀면 뭘 해, 한푼이라도 벌 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다 한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이 맞벌이라는 게 사회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노 동력 착취가 아닌가 싶다. 말이 좋아서 결혼한 유부녀의 사회 참여지 곰곰 따지 고 보면 살림하는 여자에게 “너 나가서 돈도 좀 벌어와라”한 꼴이다. 여자들은 “아니, 이게 뭔 소리여”하겠지만 정말이다. 무슨 설문 조사 결과를 대지 않더라도 지금 남자들은 마누라가 돈 벌어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결혼 첫째 조건으로 삼고 있다. 남자 쪽에서야 수입이 두 배가 되니 얼마나 좋아? 거기다가 살림도 어영부영 여자가 다하지(아니 하라고 시키지). 부부싸움 할 때마다 할 말 있지(트집 잡을 게 얼마든지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가. 아니라구? 내가 번 돈 따로 통장 만들어서 보관하고 살림도 칼같이 나눠서 하 면 문제 없다구? 웃기기 마쇼. 그게 잘 될거 같지. 열에 하나 정도는 당신이 생 각하는 대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아홉은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남편 좋은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다 똑같다. 좋은 건 일단 다 자기가 챙기면서도 마 음에 안 드는 일이라면 권위와 힘을 내세워서 여자를 윽박지른다. 슬그머니 마 누라의 돈을 쓰게 만들고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당신이 짱박아 놓은 돈까지 홀 랑 털어내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다. 세상에 돈 싫은 사람이 어이 있다. 그것도 말만 잘 하면 얼마든지 내 돈이 될 수 있는 마누라의 돈인 것을. 그러므로 이 시대에 맞벌이를 원하거나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여자들은 이 새 로운 노동력 착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노릇이다. 하기야,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고 어차피 누가 쓰던지간에 그 돈은 결국 집 안을 위해 쓰는 것이니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다’는 사고 방식을 가진 남자들 에게 당신은 어쩌면 밤낮으로 봉사하는 새로운 정신대일 수도 있다(말이 좀 심 한가?). 따라서 맞벌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할지라도 말이다. 17. 사랑은 환상이다 우리가 살면서 제일 가슴 아픈 일중의 하나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이다. 이 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앓는 것도 아니고 원치 않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찾아와 사람을 죽여 준다. 세상에서 가장 잇속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이 빌어먹을 사랑인데 이건 냄새도 안 나고 보이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어서 언제 어디서 중독될지 모르는 불가사의 한 추상명사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사랑을 정의하기를 ‘성욕의 고상한 표현’이라고 했지 만 그건 아닌 것 같고, 하여간 UFO같이 봤다는 사람은 약간 맛이 간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못 본 사람은 좀 보고 싶어 애를 태우는 이 사랑이 과연 있기는 있 는 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랑은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빙빙 돌리느냐구? 다 이유가 있다. 자고로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그리워서 손톱을 깨무는 날이 많다. 보고 싶 어서 자꾸 전화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집 앞에 가 볼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그리워하는 상대방에 대해 당신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미지와 그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데 있다. 당신은 누가 뭐래도 그 남자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뭘 먹을 때 후루룩 쩝쩝대 지도 않으며 성격도 마냥 좋기만 한 그런 사람으로 믿고 있겠지만 실제의 그 사 람은 더러는 콧구멍도 후비고 발가락에 무좀 약을 바르며 잇새에 고춧가루를 끼 고 다니는 그런 남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연인을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고 그런 인 물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비약시키면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빠졌을 때 현실적으로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듣기에는 좀 황당한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당신이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고 치자.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이 제는 만났다 헤어지는 일 없이 한이불 덮고 살게 되어 좋기만 했는데 남편이라 는 사내가 알고보니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엄청나게 좋아해 끼니 때마다 생선가시 를 젓가락으로 파고 있고 잠자리에서는 또 코를 얼마나 고는지 돌아버릴 지경이 라면, 어디 가서 당신이 그리워하던 그 남자를 찾을 것인가. 결코 과장이 아니 다. 그러므로 이런 역설이 성립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아라.’ 만났다가 헤어져야만 우리는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아쉽 고 안타까운 것이며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할 수는 있지만 가질 수 는 없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의 숭배 대상이 된다. 눈에 보이는 신 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며 맞아 죽어야 할 가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헤어 지면 보고 싶고 만나면 시들하고....’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우 리 가슴속에 있을 뿐 불행하게도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모든 예술 속에서 사랑이 비극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사랑은 가질 수 없기 때 문이다. 우리는 그걸 들여다보며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영화 속에서는 가끔 멋진 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도 하는데 그들이 결혼해서 원수처럼 사는 꼴 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까지 보여주면 영화는 개판이 되고 우리가 사는 꼴이 나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18. 성희롱 즉효약 서울대 조교 우모양 사건으로 불거져나온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성희롱은 매우 심각하다. 이 사건이 법정 소송으로 표면화되기 전까지, 아니 지금도 여자 들은 남자가 있는 어느 장소에서건 알게 모르게 성적으로 시달려온 게 사실이 다. 학교나 직장에서 또는 전철, 버스 아니면 택시 안에서조차 여자들은 오감을 통해 갖가지 성적 희롱은 당하며 사는데 하도 당하다 보니 이게 어느 정도 생활 화되다시피 한 지경이다. 예쁘고 몸매가 좋은 팔자를 타고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는 데마다 “야, 죽인다 죽여!” 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니면 그 반대의 체격을 가진 죄 아닌 죄 때문에 “거, 만두속 많이 나오겠다”라는 살벌한 말도 들어야 하는 게 여자다. ‘만두속 많이 나오겠다’는 소리는 살이 쪘으니 달리 쓸데는 없고 잡아서 만 두속에 넣을 고기로나 써야겠다는 중국식 농담이다. 옛날 중국 오지에서는 가축 이 귀하므로 지나가는 여행자 중 살찐 사람을꼬셔서 술을 잔뜩 먹인 다음 그를 만두 재료로 삼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자기 자신이 여자를 얼마나 희롱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잘 모 르고 있다. 인격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도 어쩌다 재미있는 얘기를 한답시 고 시작하는 얘기가 음담패설인 경우가 허다하다. 또 술을 한 잔 먹으면 대부분 은 취했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나이트클럽에 가서는 싫다 는 데도 강제로 블루스를 땡기는 족속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여자 를 희롱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성희롱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나는 싫어서 죽겠는데 상대방은 그걸 모르고 있으니 뚜껑 열릴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희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에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게 여자 입장에서는 잘 안된다고 한다. 내 아내도 대기업 에서 9년이나 직장 생활을 했지만 결정적인 게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일일이 그 걸 따지겠느냐고 말한다. 상대방이 고의로 그랬느냐 아니냐도 구별하기 어렵고 괜히 잘못 따지고 들었다가 짱구가 되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이다. 어디든 유난히 밝히거나 집적거리는 인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 을 성희롱 상대자로 보아서는 세상이 피곤해서 살 수 없다. 따라서 대상을 축소 해 놓은 다음 이 인간들을 멋있게 한 방 먹여 준다면 남자들은 질겁을 하고 당 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자고로 더러운 것은 피해 가라고 했다. 무엇보다 남자들의 음담패설에는 끼지 말라. 피치 못할 자리라면 화제를 바꾸고 정 안 되면 대놓고 면박을 줘라. 그런 소리 집에 가서도 하느냐고.... 손버릇이 더러운 인간은 본인이 아닌 상사에게 항 의하자. 이때 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차분히 설명하고 시정을 요구한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은 빈 틈을 보이는 여자를 넘겨다본다. 괜히 저녁 먹자. 술 한 잔 하자 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말고 밤 늦게까지 동료 직원들과 헤메고 다니지 말라. 누 가 불쌍해 보인다고 쓸데없이 관심을 보여서도 안 된다. 대인 관계는 항상 적당 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남자란 조금만 호의를 베풀어도 저를 좋아하는 것으 로 착각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19. 한자는 왜 배워? 작가 김주영의 소설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목과 내용은 잘 기억이 나 지 않지만 아마 무식한 사람을 표현한 듯한데 “그는 패배를 패북으로 읽고 요 산요수를 낙산낙수로 읽고 있었다”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도 패배는 그런 대로 읽겠지만 요산요수를 낙산낙수를 읽 을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세계화 시대 어쩌구 하는 바람에 요즘 우리나라는 외국어 열풍이 더 심하게 불고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이제 제2외국어 하나 더 구사할 줄 모르면 남보다 뒤쳐지는 형국이 됐다. 대기업에서는 외국어로 회의하는 시간이 따로 있을 정도 다. 하지만 나는 독일어나 불어 등 다른 외국어보다 한자를 더 착실하게 익힐 것 을 권한다. 아니, 지금 세상에 웬 한자냐고 묻겠지만 머지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한자는 배워둘 만한 외국어(?)다. 좀 거창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지금 유럽은 문명사의 흐름으로 볼 때 노년기다. 늙어 죽어가는 문명. 더는 나 올 것이 없는, 그래서 새롭게 동양 문명에 기대려는 곳이다. 미국은 어떤가. 독 설가가 말했듯이 미국은 유럽 문명의 쓰레기통이다.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자본 주의의 꽃은 이제 시들어 빠졌고 남은 것은 발악적인 향락과 마약뿐인 나라. 아 무런 대안도 없이 일본에 대한 두려움으로 세월을 보내는 나라. 그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앞으로 문명의 주도권은 동아시아로 넘어온다. 일본이 이미 그 빛을 발하고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주무르고 있지만 너무 일찍 피어버렸고 뚜렷한 철학이 없 는 나라여서 장차 문명의 주도자가 될 나라는 우리와 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는 한자 문화권이다. 아시아가 세계사를 이끌어나갈 때, 한자는 지금의 일본어처럼 세계 각국에서 통용어로 쓰이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화사상에 빠진 사대주의자는 아니다. 우리 이름이 김지 현이고 차인표로 쓰인다면 한자는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말을 하 는 것뿐이다. 영어나 불어는 죽자고 하면서 한자는 몰라도 그만이라는 통념은 깨야 한다. 신문에서 한자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한자 배우기를 마다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문명의 흐름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라도 한자는 배워둘 만한 가치가 있다. 당신은 서울이 한자 이름으로 무엇인지 아는가? “셔블 발기 다래 밤들이 노니다가....” 처용가에 나오는 가사다. 처용이 밤새 놀다 집으로 오니 어떤 후레자식이 자기 마누라와 뱃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처용은 두 연놈의 목을 치는 대신에 이 노래를 불렀다. 여기에 나오는 이두 ‘셔블’이 지금 발음으로는 서울 즉, 한자로는 동경이다. 우리의 수도 이름이 서울이고 일본의 수도가 동경이라는, 벌써 1천여 년 전의 얘기가 흥미롭다. 이처럼 한자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알게 해주는 즐거움을 준다. 20. 남자가 여자를 패는 이유 세상에서 가장 더티한 인간 중의 하나가 여자를 패는 놈이다. 물론 맞고 사는 남자도 더러 있다지만 그거야 논외로 치고, 좌우간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건 인 류 역사가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용서하지 못할 죄악이다. 여자는 생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남자에게 열세에 놓여 있고 이걸 떠나서도 누가 누굴 힘으로 제압한다는 건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이 아니고서는 인정받 지 못할 행위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를 팰 때는 독수리 5형제나 황금박쥐가 되어야 하는데 다는 이제껏 그런 모습으로 여자를 때리는 사내를 본 적이 없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여자를 패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여자쪽에서 너무 조리있게 따지고 나와 말로는 더 이상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이때 성질이 급한 사람이거나 무식한 놈은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뺨을 때리고 주먹을 날린다. “이게 어디서 바락바락 말대꾸야. 말대꾸가!” 이런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따라서 남자와 언쟁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상대 를 보아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것이 현명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쪽팔리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자에게 괜히 통쾌한 승리를 거두려다가 는 매를 벌기 십상이다. 남자가 여자를 두둘겨 패는 또 다른 경우는 여자가 화를 돋울 때이다. 사실 이 경우는 그 책임이 여자에게도 일부 있다. 무슨 홍두깨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 만 쌍방이 이성을 잃었을 경우 남자가 한 대 올려 붙이면 여자는 열이면 열 하 나같이 “죽여라, 죽여!” 소리치면서 영겨 붙는다. 이런 말과 행동은 남자들의 야만성을 부추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냥 한 대만 치고 말려던 남자들은 열을 받아 라이트, 레프트에 이어 어퍼컷을 날리 게 되고 여자는 곤죽이 되는 것이다. 특히 평소 말이 없던 남자가 한번 화가 나 면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이 되어 여자는 죽음도 불사하는 꼴이 되므로 조심해 야 한다. 나도 딱 한 번 여자를 패 본 적이 있다. 피해자는 밝힐 것 없고. 하여간 이 여 자가 눈이 뒤집어져서 대드는데(상대는 내가 아님) 도대체 수습할 방도가 없어 눈 딱 감고 한 방 먹였던 것이다. 외상은 없었지만 난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워 서 나중에 다른 몽둥이로 여자를 위로해 주었다. 그게 뭐냐고? 결혼하면 알게 된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폭력은 죄악이다. 그러나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짓은 어 리석은 일이다. 남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야만을 감추고 산다. 그 야만성을 당 신들이 무당처럼 불러내는 일은 없도록 하라. 남자들은 즉흥적이고 직설적이다. 성질이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 고 보는 인간이므로 항상 조심하는 게 좋다. 남자는 모두 늑대라는 말이 여기에 도 해당된다. 21. 누구를 위하여 순결을 지키나. 나는 이른바 ‘정조’를 버렸는지 빼앗겼는지 잘 모르겠다. 그날 나는 뭐에 홀렸는지 괜히 거길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가 용기를 내서 “여보세요. 얼마예 요?” 그리고 그녀의 뒤를 졸졸졸 따라간 다음 어둠침침한 골방에 흔히 남자들 끼리 말하는 딱지를 혼자 뗐다. 내가 거기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솔직 히 말해, 기억 나는 건 휴지와 이상한 냄새와 어두움. 그리고 “빨랑 해!” 뭐 이게 다였다. 나는 기분이 아주 찜찜해서 어디 가 술이라도 진탕 퍼마신 다음 늘어지고 싶었고 아니면 좀 울고 싶기도 했고, ‘뭐, 이래’하는 느낌이 들어 자 고 싶기도 했다. 그 후 한참이 지나 나는 후배의 딱지를 떼주는데 기여했다. 내가 맘 먹고 한 건 아니고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됐다는 얘기다. 그날은 우리 큰애 돌이어서 죄다 우리집에 모여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고 고돌이를 치며 놀았는데 파장 무렵 한 놈이 룸살롱에 가자는 바람에 다 가게 되 었다. 아마 일고여덟은 되었었지. 한참 마시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파트너가 월 남에서 전화가 왔다고 나가자는 거야. 엥? 월남? 나는 얘가 뭔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좌우간에 따라 나갔더니 빈 룸으로 들어가서 .... 하고 나왔다. 절반은 개가 되어서 룸살롱을 나와 3차를 가자는 둥 하고 있는데 한 놈이 깽 판을 놓았다. 나는 얘가 왜 이러나 하고 봤더니 이게 여기서 딱지를 어영부영 떼임을 당한 것이었다. 놈은 충격에 못이겨 우는지 웃는지 개판을 쳤다. 나는 좀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옛날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서론이 길었나. 정조가 뭔지 난 잘 모른다. 시전에 보니 “성적 순결을 보존하 는 일”이라고 나왔는데 순결의 하한선은 어디까지인지. 뭘 보존하라는 건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결혼 전까지는 그 누구와 손도 잡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에 게나 팬티를 벗어 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정신적으로는 순결하다면) 순결을 지킨 것이라는 얘기인지 아무도 판단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보니 그 정조라는 게 참 허무하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아무에게나 줘버리니 더럽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아닌 데 하는 느낌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지금에 와서야 갖는 생각은 정조는 최소한 아무에게나 줘버릴 것은 아니라는 거다. 양말 벗는 것도 아닌데 왜 개나 소에게 주나? 기왕 이면 줘도 평생 아깝지 않을 사람에게 바친다면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다. 고로, 정조는 일단 지키고 보자. 비상금처럼 마지막까지 개겨보다가 이 인간이 다 싶은 확신이 들 때 그에게 줘버리던지. 다들 바라듯 첫날밤에 지겨운 옷 벗 든 내동댕이치자. 22. 자살하는 방법 사람이 살다보면 때로는 도무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날도 있다. ‘이 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러고 왜 사나’ 하는 푸념이 저절로 나오는 때 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 삶에 전혀 가치를 둘 수 없다 고 판단될 때 죽음은 보다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사춘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다. 세상이 괜히 시시해지 고 사는 게 뻔해 보여서, 혹은 첫사랑에 실패해 좌절에 빠지면 죽는다고 방방 뜨다가 결국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마감하기는 하지만. 나도 한 때는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방법론에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안 되고. 하여간 마음에 드는 ‘나 죽이는 법’이 없어서 끙끙거리다가 지금가지 꿋꿋하게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겨울에 한강에 빠져 죽자니 물이 너무 차가울 것 같고 목을 매 자니 죽고 난 후의 꼴이 영 아니올시다일 것 같다는 핑계가 여러 사람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옛날 우리 담임 선생이 그랬던가.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고. 자살할 용기로 다시 시작하면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그러나 이런 소리는 자살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다. 진정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진지하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가 살면서의 재출발 욕구보다 강할 때 그 죽음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자살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일본 작가 기와바다 야스나리가 가스 호스를 입에 물고 자살했다거나 헤밍웨이가 엽총 자살했다고 해서 그걸 전 혀 멋있게 보지 않는다. 멋있기는커녕 소름이 끼친다. 기왕에는 죽는 거 조 고상하게 소리 없이 가는 게 낫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 면 금상첨화(이런 고사성어를 여기다 써도 되나?)가 아닌가. - 고통 없이 가는 법 - 1. 여름이라면 골방에서 문 처 닫고 선풍기를 누운 얼굴에 고정시킨 채 잔다. 2. 겨울이라면 연탄 한장 사다 피우고 수면제 몇 알 먹은 다음 자빠져 잔다. 이 방법의 흠은 누가 일찍 발견해서 병원 고압산소탱크에 넣어 살렸을 때 머리 가 뻐개지게 아프거나 아니면 맹구가 된다는 점이다. 3. 아주 추운 겨울이라면 위스키 큰 거 한 병 사가지고 산에 가서 다 비워 인 사불성이 된 채 그대로 잔다. 말하자면 얼어 죽는 것인데 술이 센 사람은 살아 날 확률이 있다는 게 단점. 4. 커다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목 부분을 빈틈없이 조인 뒤 가만 히 기다린다. 이때 비닐봉지가 너무 크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주의한다. 이 방 법의 단점은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군이 돈 안 들이고 사람 잡던 방법이라서 유명해졌다. 이상의 방법 중 하나로 인생을 종칠 사람은 그 전에 반드시 나하고 소주 한잔 합시다. 23. 최악의 결혼 상대자 “기자와 예술가와는 결혼하지 마라. 그들은 최악의 결혼 상대자이다.” 이 권고를 마침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모 기자에게 보여줬더니 펄펄 뛰었 다. 아직 결혼 전인데 기자, 예술가와는 결혼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농 담도 석이지 않은 목소리로 항의하는 것이다. 나는 대꾸 없이 웃고 말았다. 내 아내라면 분명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양쪽 일을 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선 기자와 결혼하면 왜 골때리는지 설명하겠다. 기자라는 직업은 취재와 마감을 먹고 산다. 취재란 대부분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마감 때가 되면 기사를 써 신문이나 잡지를 완성시킨다. 기자는 늘 바쁘 다. 취재하느라고 바쁘고, 마감하느라고 바쁘고, 마감 끝나면 끝났다고 술 마시 느라 바쁘다. 기자는 술을 입에 달고 산다. 특별한 경우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하 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열에 아홉은 주당이고 하루 거르기가 힘들다. 취재원과 마시지 않으면 동료 기자들과 마시는데 이게 한 잔 들어가면 뚜껑이 열려야 집 에 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이런 걸 서방이라고 데리고 살아봐야 아침에 해장국 끓여 대기 바쁠 게 뻔하지 않겠는가. 기자는 명도 짧다. 온갖 스트레스에 술까지 퍼제끼니 제 명 에 못 죽는 것 당연하다. 특히 일간지 기자는 마누라가 서방 얼굴 보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다음은 예술가. 요즘 젊은 사람들 중 예술가라면 아무래도 시인이나 소설가가 제일 많을 것이 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이쪽 동네에서는 통칭 ‘글쟁이’라고 부르는데 이 글쟁 이들 역시 술이라면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른바 순수문학을 한다는 치들은 생활 능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말하자면 아내가 벌어서 살림하고 술값까 지 대야 한다는 얘기다. 글쟁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내상은 약사나 교사다. 서 부전선(생활비)에 이상이 없으니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은가. 나도 한때는 약사시험이나 볼까 했었다. 약방 열어 집사람에게 소화제나 드링 크 팔라고 맡겨 놓으면 처자식 끼니는 해결될 것 같아서. 글쟁이들은 대부분 괴벽을 갖고 있다. 심한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먹고 살므로 술이 들어가면 대책이 안 선다. 집 놔두고 여관잠 자는 건 예사다. 여기서 기자와 글쟁이가 결정적으로 차이점을 보이는 대목이 있다. 인격에 따 라 다르기는 하나 글쟁이들은 여성 편력이 심하다. 마누라가 있든 없든, 애인이 있든 없든 보통 서너 명의 여자를 꾸준히 만나고 그 중 한 여자와는 돈독한, 아 내가 본다면 심각한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 또, 명이 짧기로는 기자에 못지 않 다. 쉽게 말해 남편감으로는 기자보다 더 열악한 게 글쟁이다. 내가 기자와 예술가에 양다리를 걸친 사람으로서 왜 이런 소리를 주절거리느 냐 하면 먼저 집사람에게 속죄하고픈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고, 아직 미혼인 여 자들에게는 이 부류의 인간들이 더 이상 피해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심 정에서 그러는 것이다. 기자와 예술가, 결혼 전에는 근사하게 보인다. 그러나 속지 말라. 24. 유부남은 중금속이다 결혼 후 회사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면 여직원들은 죄다 총각 사원들을 제쳐두고 내 근처에 와 앉았다. 나는 그때마다 “아니, 영계 놔두고 늙은 닭 잡 아먹을 일 있냐?”고 농을 했는데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이 언제나 나를 황당하 게 했다. “부장님은 유부남이잖아요!” 아니, 유부남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애들에게 나도 사람이라고 외쳤 다. 유부남도 있을 건 다 있다고, 영계보다도 더 무서운게 유부남이라고 소리쳤 지만 이 처녀들은 내가 술 마시자고 하면 밤 12시가 넘어서도 한 잔 더 먹자고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했다. 나는 속으로 ‘얘들이 내가 성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네’하면서 어떻게 좀 해보려고도 했지만 그건 순전히 마음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술값만 나간 셈이 됐다. 미혼 여성들이 유부남에 대해 총각과는 다른, 남자 아닌 남자로 보는 경향은 우선 결혼을 한 임자있는 몸이니 자신에게 별다른 흑심은 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또 자신 역시 상대가 유부남이니까 그에게 굳이 잘 보일 필요 없고 관심의 대상에서 그는 일찌감치 제외된다는 생각이 이를 확대 재생산 해 유부남은 남자로서 일단 안심할 수 있다는 이상한 근거를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신혼 초의 젊은 유부남이라면 모르되 결혼한 남자도 엄연히 남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특히 서른 중반 을 넘어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은 슬슬 권태기에 접어들어 자기 부인에게도 흥미 를 잃어가는 시기다. 이때 누가 멋모르고 접근해 오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차츰 관심이 가게 되는데 일은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이다. 남자도 처음부터 이 여자와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품지 않는다. 그저 이쁘 고 귀여우니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같은 방향이라고 집까지 차도 태워준다. 여 자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졸랑졸랑 따라 다닌다. 더러운 자기가 술 한 잔 산다고 나서기도 하고, 이래서 점점 만나는 횟수가 잦아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모를 것이 남녀 관계다. ‘처음에는 나는 끝까지 가정을 지 킬 거야’(남자), ‘유부남이니 뭐 별 일 있을라구’(여자) 했는데 이게 우라질 시간이 흐르면서 정이 드는 것이다. 정이 뭔가. 남녀간의 정은 묵으면 사랑이 된 다. 애인이 있는 여자라면 모르되 만날 남자도 없고 퇴근해봐야 집구석에 가서 밀 린 빨래나 할 신세라면 이 정은 삽시간에 사랑으로 변한다. 정말 골 패는 사랑 이지, 내가 어쩌다가 3류 드라마에나 나오는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졌을까? 그러 나 사랑에 빠지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이다. 이건 실화인데, 한 번은 내 친구 놈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술을 마시며 이런 소리를 했다. “아, 염병!” “왜 그러냐? 뭔 일 있어?” “옛날에 걔 알지? 거 있잖아, E대 나온 애 말이야.” “니가 어디 여자가 한둘이냐? 관광버스로 하나는 될 텐데...” “걔가 말이야, 나더러 이혼하고 같이 살재.” “잘 해볼 것이여!” “장난이 아니더라구. 이거 돌아버리겠네.” “거 봐라. 내가 뭐랬냐. 진작에 찢어지라니까 말 안 듣더니.” 그 친구는 다행히 여자가 시집을 가는 바람에 이혼까지는 안 갔지만 한동안 날밤을 샜대나 어쨌대나.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 유부남도 헷갈리게 마련이다. 아이큐가 모자란 놈은 정말 이혼을 결심하게 되고 믿었던 남편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듣게 된 마누라는 여자를 찾아가 머리채를 잡아채며 난리를 뽀개고 그야말로 완벽한 싸 구려 드라마가 연출되는 것이다. 유부남을 조심하라. 총각들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망둥이처럼 뛰지만 유부남은 어딘지 여유가 있다고 좋아했다가는 결국 가슴에 멍만 들고 치유할 수 없는 상 처만 남는다. 요즘에 누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겠느냐고 묻겠지만 세상에 어떤 여자가 처 음부터 유부남하고 연애하겠다고 마음 먹겠는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유부남이 중금속과 같다는 말은 이게 야금야금 쌓여서 마침내는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유부남 알기를 돌같이 알것이 아니라 독으로 알고 아예 근접도 하지 말지어다. 25. 진정한 베스트셀러 읽기 PC통신이 유행하고 백과사전도 CD롬으로 나오는 시대에서도 활자매체인 책 은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종이에 인쇄한 이 특별한 물건은 플 러그를 꽂지 않아도 언제나 볼 수 있으며 눈이 부시지도 않고 값도 비싸지 않아 생일선물이 마땅치 않을 때는 언제나 누구에게라도 안길 수 있는 고상한 것이 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사실 미혼여성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고서를 제외하고는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최인호를 굶지 않게 해주고 있으며 이 문열을 재벌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 안에 나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책을 잘 안 사는 편이다. 책을 쓰는 놈이 책을 잘 안 산다니 한심한 노 릇이지만 다 까닭이 있다. 꼭 사야 할 책이 있으면 사기는 산다. 대대손손이 물 려줄 만한 책이라면 당연히 사야지.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라면,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책방에 가서 다 보고온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단한 소설가라는 소리를 듣고 한 수 배워야겠다는 마음에 서점에 가서 그의 책을 펴들었는데 이게 영 아니올시다여 서 그냥 온 일이 있다. 책을 제대로 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책에 관한 정보라야 신문, 잡지에 나는 신간안내 기사가 고작이고 그렇다고 해서 도서전문지를 구입해 봐가며 책 을 사는 정성을 들이기도 어려운 게 일반 독자들의 심리다. 그럼 가장 손쉬운 책 고르기는 아무래도 광고가 아닐까? 광고를 불나게 때리 는 책 제목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입력되어서 어쩌다 서점에 가면 저도 모르 게 손이 가기 마련이다. 수천, 수만 권이 진열된 책방에서 일일이 골라가며 책 찾아보기는 사실상 불 가능하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집어들어 조금 읽다가 내키면 사고 아니면 마는 게 대부분인데 이때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왜 잘 나가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또 남들과 얘기할 때도 “어, 너도 봤냐? 나도 봤다.”뭐 이렇게 말이 되니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쩌다 책을 살 경우라도 베스트셀러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좋 은 책과 잘 팔리는 책은 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요즘 잘 팔리는 책들을 보노 라면 이게 만화인지 소설인지 알 수가 없고 이걸 과연 이 다음에 내 자식에게까 지 물려 읽힐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라고 다 쓰레기는 아니다. 정말 좋은 책이 왕창 나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소원하는 바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은 열이면 아홉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 어쓰고 한구석에서 몇 달 퍼질러 있다가 반품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대신 광 고를 빵빵 때린 쓰레기는 ‘베스트셀러’라는 이름 아래 엄청나게 나간다. 내가 베스트셀러를 읽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걸 읽으니 차라리 고전을 읽자. 재미는 없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 좀 읽고 ‘춘향전’이나 ‘홍길동전’도 원본을 한번 읽어두자. 이런 책들 이야말로 마음의 양식이 되니까. 26. 이상적인 남편감 고르는 법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여자도 남편을 잘 만나야 인생이 피곤하지 않다. 이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니 문제다. 좋은 남자란 대체 어떤 남자인가. 잘생기고 학벌, 집안 다 좋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며 성격 좋은 남자. 이런 놈은 없다. 미남에다 사법시험까지 패스했는데 성질이 개라면 꽝이다. 개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명문 대가의 아들이라도 약을 입에 달고 산다면 그것도 곤란하다. 약 먹는 사내가 밤일을 제대로 하겠어? 게 다가 과부라도 되는 날에는 새 시집 갈 일이 아찔하다. 그럼 남자는 뭘 보고 어떻게 골라야 하나. 우선, 외모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잘생기고 멋있는 남자. 이거 다 소용 없 다. 그래봐야 나중에 바람이나 피우고 골치만 아프다. 또 잘생긴 남자는 관상학 적으로 보면 대체로 복이 없다. 데리고 살아봐야 고생만 한다. 그보다는 인상이 좋은 남자를 택하라. 얼굴이 너무 시커멓거나 너무 희어도 좋지 않다. 어딘가 그늘이 진 남자는 절대 금물. 키가 너무 커도, 작아도 안 좋 다. 그러니까 평범한 것이 좋다는 얘기다. 체형은 약간 마른 듯한 남자가 낫다. 마른 장작이 화력도 좋다는 얘기를 하려 는 게 아니다. 마른 남자는 잔병치레가 거의 없다. 겉보기에는 비실비실한 것 같 지만 깡다구가 있어 의외로 튼튼하다. 성욕도 왕성해서 첫날밤부터 사람 죽인다. 반대로 뚱뚱한 남자는 계속 살이 찐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코끼리하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장난이 아니다. 밑에서 그 몸무게를 지탱하려고 생각하면 끔찍할 걸. 집안을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명문 대가는 아니어도 ‘어디서 굴러들어온 지도 모를 뼈다귀’같은 사람은 배우자로서는 곤란하다. 막상 결혼해 보니 순 천하의 불상놈의 집안이라면 황당해진다. 뼈대가 있는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게다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전문직에 종사한다면 대충 괜찮은 집안으로 봐도 무방하다. 성격을 파악해 보려면 술을 먹여라(술, 담배를 일절 못하는 남자는 아예 만나 지 말 것. 인간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술을 마시면 평상시에는 볼 수 없던 행동이 드러난다. 취해서 우는 남자는 한이 많은 사람이고, 뚜껑이 열릴 때까지 마시는 사람, 시비거는 사람 등등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므로 유심히 살 펴라. 같이 퍼마셔서 취해 버리면 말짱 꽝이니 당신은 좀 덜 마실 것. 다음으로 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자의 능력인데 (말하자면 밥벌이) 너무 능력있는 놈이거나 능력있다고 방방 뜨는 인간은 대부 분 저 잘난 멋에 살며 남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참고하라. 마지막으로, 결혼하는 목적 중의 하나인 궁합을 보는 것인데 내가 여기서 말 하는 궁합이란 SEX다. 이걸 어떻게 맞춰 보느냐는 문제가 아주 난감한 노릇이 다. 맞나 안 맞나 직접 해볼 수도 없고, 좌우지간 난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쇼. 27. 고스톱 잘 치기 한국 사람들은 셋만 모이면 고스톱을 친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다 싶거나 시간 을 죽일 일이 생기면, 또 적당한 놀이가 생각나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기계 ’(화투의 은어)를 준비해 놓았다가 이 게임을 즐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성 인 남녀 중에 고스톱을 칠 줄 모른다면 이상한 별종으로 취급당하기 쉽다.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은 편이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포커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뭐 굳이 고스톱을 알아둘 필요가 있느냐는 말도 나올 법하겠으 나 알아 두어서 손해볼 일은 없다. 화투는 모두 48장으로 같은 패 4장이 12종이다. 이 12종은 각각 서로 다른 그 림이 그려져 있는데 순서에 따라 고유번호가 따라 다닌다. 솔(학이 그려진 그림) 이 1이고 파랑새가 2, 배꽃이 3, 흑싸리가 4, 난초가 5, 목단이 6, 빨강싸리가 7, 팔공산이 8, 국화가 9, 단풍이 10, 똥이 11, 비가 12다. 이 숫자는 ‘섰다’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고, 하여간 이 숫자를 알아 야 판에 끼어서도 짱구를 면한다. 고스톱은 일단 3점이 나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이걸 ‘스톱(STOP)'이라고 부르는데 점수를 더 낼 수 있다고 보이면 ‘고(GO)’를 부른다. 점수를 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쉬운 방법이 광(광은 패 12종 중 5종에 있 다. 일광, 삼광, 팔광, 똥광, 비광 등이 그것이다. 이걸 다 먹으면 5광으로 보통 15점을 쳐준다)으로 나는 것이다. 광 석 장을 먹으면 각 1점씩 3점이 된다. 그런 데 비광은 예외다. 예를 들어, 똥광하고 팔광을 먹은 다음 비광을 먹으면 2점밖 에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광은 광은 광이로되 광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광이 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을 한 장 더 먹든지 피(껍데기)를 10장 이상, 아니면 띠 나 열끝짜리 5장을 먹어야 비로소 3점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홍단이나 청단, 초단으로 나는 것. 홍단이나 청단은 화투패에 그 려져 있어 이걸 눈치껏 먹으면 날 수 있다. 초단은 패에 아무 글씨 없이 빨간 현수막 같은 띠만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초보자에게 가장 손쉬우면서도 무식한 방법이 껍데기만 먹는 거 다. 껍데기는 10장만 먹으면 1점이 되며 12장을 먹으면 3점으로 나게 되는데 “ 피 10장을 언제 먹냐?”하겠지만 쌍피(빨간 똥과 빨간 비는 피 두 장으로 쳐준 다. 때에 따라서는 9 열끝짜리도 쌍피로 쳐주는 동네가 있다)를 활용하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더욱이 피만 먹으려드는 사람(‘맨발로 뛴다’고 부른다)을 판에 서는 하수로 치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아 잘만 치면 크게 잃지는 않는다. 고스톱은 잔대가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 딴다. 광 석 장을 들고서도 피박으로 생돈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만 들고서도 20점씩 나는 사람도 있다. 이게 왜 이렇냐. 하수들은 제가 먹을 것에만 신경을 써서 거기에만 정신을 팔 다 남이 고도리(흑싸리, 매화, 팔공산패 중 새가 그려진 패 석 장. 5점짜리다)로 나는지, 내가 피박을 쓰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스톱의 판을 크게 만드는 것은 ‘박’이다. ‘바가지’의 준말인 박의 종류 로는 대개 피박, 광박, 멍박 등이 있는데 피박은 게임 종료 후까지 껍데기를 6장 이상 먹지 못한 사람이 점수의 배에 해당하는 돈을 무는 것이다. 이때 점수를 낸 사람은 당연히 피가 10장이 넘어야 한다. 광박이나 멍박은 점수를 낸 사람이 광이나 멍(열끝짜리 패)으로 점수를 냈는 데 잃은 사람에게 그런 패가 전혀 없을 경우 그 사람은 역시 난 점수의 배에 달 하는 돈을 무는 것. 그러므로 점수를 낸 인간(프로거나 재수 좋은 사람)이 광과 멍, 피를 휩쓸었을 경우 판돈은 3배로 불어난다. 거기에다 고를 몇 차례 부르면 그 부른 만큼(고 한 번에 1점) 점수는 더 올라간다. 고스톱판에서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것이 ‘싸는 것’이다. 내가 먹겠다고 깔린 패 위에 신나게 두들겼는데 뒤집었더니 똑같은 패가 나와 석 장이 되면 가 져오지 못하고 ‘쌌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나 ‘쓸’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담요 위에 깔린 패가 두 장밖에 없을 때 가진 패로 한 장을 두들기고 뒤집어서 남은 패마저 먹으면 이게 쓸(싹쓸이의 준말)이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먹은 피 중의 하나를 쓸한 사람에게 무조 건 줘야 한다.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우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고스톱. 쳐 보면 알겠지만 정말 시간은 잘 간다. 절친한 친구끼리 또는 가까운 사람끼리 저 녁내기 정도 치는 고스톱은 장려할 정도는 아니어도 할 만한 게임이다. 하지만 이걸 일 삼아, 직업 삼아 친다면 패가망신은 잠깐이요, 나라까지 망하는 수도 있 다. 고스톱 치는 법, 그냥 상식으로 알아두자. 28. 귀신은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TV에서는 발음도 힘든 납량특집을 내보낸다. 내가 어려서는 라디오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짤막한 방송이 있었는데 귀신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바람에 그걸 한번 들으면 어린 나는 화장실에 혼자서는 가지도 못 했다. 귀신은 정말 있을까?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육체의 에너지 대사 가 끊기면 사람은 한낱 고기덩어리라는 논리다.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은 자연의 놀라운 불가사의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유물론에 입각한 사고방식이다. 사람이 어찌 살아있을 때 만 사람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뭔가. 영장이라는 말의 뜻은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다. 여기서 ‘영’은 한자로는 귀신을 뜻한다. 즉 우리는 ‘묘한 귀신의 힘을 가진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밤마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더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 을 가고, 겪어보지 못했던 일을 경험한다. 이를 프로이트는 잠재해 있던 무의식 의 소산이라고 했으나 나는 현실보다 먼저 꿈 속에서 내가 생판 가보지 못했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경기고교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 인가. 얼마 전 한 방송에서는 사후 세계에 관한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다. 죽음 직 전에까지 간 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을 과학적인 입장에서 분석해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며 어떻게 되나를 추적한 프로였다. 결론은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끝났지만 죽음을 경험했을 당시 죽어있는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는 체험은 다 같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가에서는 윤회를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나기를 되풀이하며 자아를 완성시키거나 몰락시킨다. 완성시킨 자는 부처가 되는 것이 고 몰락시킨 자는 영원히 윤회를 되풀이하며 사바세계의 고통과 함께 한다. 육 체는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껍데기 안의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귀신은 이 세상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헤매는 영 혼을 말한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자신이 죽은 줄 모른 채 그 자리를 맴돌고 아니면 너무 억울하게 죽어 그 한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은 귀신이 된 다. 사실 귀신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영혼을 자꾸 황폐화시키는데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무언가를 잡 으려고만 하고 놓아줄 줄 모른다. 모든 종교가 한결같이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알면서도 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없다. 사랑하지 못하는 영혼은 귀신과 다르지 않다. 자기 삶의 의미를 모르는 채 욕심과 증오만 쌓는 영혼이 살아있는 귀신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 모두 산 귀 신이 되지는 말자. 29. 성실이 학벌을 이긴다 나는 고등학교를 시험 쳐서 들어간 사람이다. 그때만 해도 경기, 서울, 경복이 일류 고등학교였었는데 난 공부가 시원치 않아 거긴 담임이 써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1차로 시험을 본 게 경희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이 학 교가 서울에서 경쟁률이 높지 않은가.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다. 2차를 가야 했다. 어딜 가나 또 떨어지면 어린 나 이에 재수를 해야 한다 생각하니 겁이 났다. 학교로 가자 담임이 실실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그래도 공부께나 한 놈이 거기 가서 떨어졌냐?” 하며 딴 데 갈 생각 말고 모교로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장학금을 주겠다니, 난 더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학교처럼 같은 학교를 6년이나 다니면서도 나는 그때 왜 대학을 가야 하 는지 몰랐다. 그저 남들이 다 다니니까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해보니 왜 대학을 나와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는 데마다 어느 대학을 나왔 느냐고 묻고 있었다. 언론사든 일반기업이든 사람을 채용할 때 기준점을 일단 출신 학교로 삼는게 관례화되어 있다. 특히 필기시험이 없는 경우 대학을 안 나오거나 비일류대 출 신들은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 필기시험을 보아 면접까지 올라가서도 같은 점수를 받았다면 대학을 나온 사 람이, 기왕이면 일류대 출신이 합격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내 후배 하나도 모 신문사에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가 밀린 일이 있다. 하지만 일은 학벌이 하는 게 아니다. 케임브리지나 하버드 대학을 나왔어도 게으르고 불성실하면 그는 잘리고 만다.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도 제멋대 로 한다면 아무리 능력있는 놈이라 해도 사장은 그를 좋아할 수가 없다. 내가 직장생활을 해보니 학벌이고 나발이고 결국에는 성실한 사람이 인정 받 고 대우 받는다. 물론 학벌 좋고 성실하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런 사람은 찾 기 힘들다. 어느 직장이든 성실하게 일하자. 대학을 안 나왔다면 방통대를 가든지 산업대 를 다녀라. 주경야독이 고달프기는 해도 어지간한 회사라면 지원도 해준다. 직장 동료들도 당신을 다시 볼 것이다. 학벌 타령하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학을 나왔어야 뭐가 되지...” “왜 내가 공부를 안 했던가!” “서울대만 나왔어도 저 자리는 내 자린데...” 학벌이 곧 실력은 아니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되면 키워라. 영어가 달리면 남몰래 새벽반이라도 다니고 일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면 망 설이지 말라. 인생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만 만족하지 말고 남 의 일이라도 어깨 너머로 배워두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 는 법이다. 성경에도 나온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얻을 것이다.”` 30. 남동생도 남자다 남동생도 남자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많은 여자들이 어린 남동생을 마냥 애 취급을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특히 나이차가 많을 때 이런 경향은 더 심하다. 내 경험에 비추어서 말하건대 남자들은 초등학교 2-3학년이면 벌써 성에 눈을 떠간다. 잘은 모르지만 남자하고 여자가 같이 자면 무슨 일을 하는지 대강 짐작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막연한 성적 농담을 하고 차츰 여 자애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쪽팔리는 짓은 안 하려고 든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갖다 드리고 그걸 되 가져 오는 길인데 저쪽에서 내가 좋아하는 계집애가 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기겁을 하고 나무 뒤에 숨었다가 그애가 지나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듣자 하니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발등에 거울을 붙였다가 여선생님이 지나가면 치마 밑으로 슬그머니 디밀어 팬티 색깔 알아맞추기 게임을 한단다. 어떤 놈은 아예 슬쩍 종아리를 만져서 처녀 선생을 기절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애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에 만화, 영화가 온통 음란으 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아이들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다. 공부 못한다고 꾸중하는 엄마에게 복수하듯이 자살을 해버리는 아이들이 뭔 짓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코찔찔이 남동생이라고 그 앞에서 훌훌 벗고 웃을 갈아 입거나 윗도 리 지퍼 좀 올려라. 브래지어 후크좀 풀어줘라 하는 소리는 일절 하지 말라. 어 쩌면 당신 동생은 속으로 “와, 우리 누나 가슴은 왜 이렇게 작아!” 하면서 괜 한 성적 상상력을 키워갈지도 모른다. 남동생도 갓난애가 아닌 다음에야 엄연한 남자로 취급하라. 방에 함부로 드나 들지 못하게 하고 속옷 등은 잘 챙겨서 눈에 띄지 않게 하자. 목욕도 아이가 눈 치 못 채게 슬쩍 하고, 집이라고 해서 여름에 푹 파인 나시 하나에 짧은 반바지 달랑 입고는 누워서 TV 보는 일은 없도록 하라. 애가 구석구석 다 본다. 집에서 아이 성교육시킬 일 있나. 31. 미로 게임 얼마 전의 일이다. 퇴근하고 쫄따구와 함께 한잔 하러 광화문통을 내려가는데 어떤 여자가 다가오더 니 보람은행이 어딘지 아느냐고 물어왔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속 오던 길을 갔다. 나는 쫓아가서 방법을 알려주려다가 그만두었 다. 친절을 베풀려다 괜한 오해를 사기도 싫었고 귀찮기도 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낯선 장소나 인물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곳을 가려면 우선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 하철을 타서는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팩스로 보내준 약 도와 함께 어떻게 어디로 오라는 설명을 전화로 들어도 사정은 비슷하다. 길눈 이 아무리 밝아도 초행길은 누구나 해매기 마련인 것이다. 이럴 때 전화번호부 를 활용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우선 아까 그 여자가 물었던 보람은행을 광화문 근처에서 찾아 보자. 뜨거운 여름에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은행을 찾아 헤매는 일은 누구라도 정말 뚜 껑 열릴 일이다. 이때는 출발 전에 전화번호부를 놓고 보람은행을 찾는다. 금융기관에서 보람 은행을 찾아 각 지점을 훑어라. 광화문 지점이 없으면 종로 지점을 찾고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본점에 전화를 걸어 여기가 어딘데 이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지 점이 어디냐고 물어보라.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이다. 또, 약도를 들고 갈 경우에는 사전 전화 통화에서 가능하면 최대한 자세하게 묻되 근처 지리를 집중적으로 묻고(대표적인 건물을 중심으로 추적해 간다) 입 주한 건물의 특징, 예를 들어 건물의 색깔과 층수, 1층 상점의 이름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고생을 면한다. 복잡해서 도저히 찾을 자신이 없으면 전화를 해 어디 있으니 사람을 내보내 달라고 하자. 다음, 주소만 들고 집 찾는 요령이다. 이런 일은 거의 없겠지만, 아는 게 주소밖에 없을 때 집을 찾는일은 거대도시 서울에서 장난이 아니다. 만약 찾는 집의 주인이 호주면 전화번호부의 인명록을 뒤져라. 홍길동이라면 아마 한 열 명은 되겠지만 주소와 일치하는 사람을 찾으 면 바로 그 사람이 찾고자 하는 집의 주인이므로 얘기는 쉽게 풀린다. 그렇지 않다면 우선 해당 동사무소를 찾아간다. 주소는 보통 무슨 시 무슨 구 무슨 동으로 시작되니까 그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아낸 뒤 택시를 타고 가라. 어느 동네건 동사무소에는 관내 지도(동사무소가 관할하는 동네 지 도)가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몇 통 몇 반 몇 번지만 알면 이 지도 를 보고 집을 찾을 수 있다. 단, 파출소는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게 현명하다. 이 나라 경찰은 아직도 모든 국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경향이 농후해서 재수 없으면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32. 거짓말 잘 하는 법 나의 학창시절 우리 하숙집에서 일어났던 웃기는 사건이다. 학생들은 거의 다 학교에 가고 주인 아줌마도 나가서 텅 빈 집에 딱 한 놈이 남아 리포트를 쓰며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동네 꼬마 하나가 돈을 들고 찾아왔 다. “아줌마 계세요?” 꼬마는 곗돈을 아줌마에게 갖다주라는 심부름을 온 것이었다. 놈은 전해 주겠 다고 돈을 받아서는 자기 주머니에 챙기고 말았다. 그날 저녁, 하숙집 아줌마는 의한한 일을 당한다. 곗돈을 보냈다는데 받은 놈 이 없는 것이다. 아줌마는 밖에 나가 있어서 그 시간에 하숙집에 남앙 돈을 받 는 게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다른 핵생들도 집에 없었으므로 정말로 곗 돈을 꼬마가 가져왔는지, 아니면 누가 남아서 그 돈을 꿀꺽 했는지 모를 노릇이 었다. 아줌마는 천천히 열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는 차츰 꼬마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는 중에도 진짜 범인(알고 보니 내 후배였다)은 시치미 뚝 떼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줌마는 꼬마 집으로 찾아가 곗돈을 못 받았다고 방방 떴고 꼬마는 갑작스런 누명에 제가 앞장 서서 하숙집으로 왔다. “바로 저 아저씨한테 줬단 말이에요!” 이렇게 해서 사건은 일단락이 되고 말았다. 내 후배는 한동안 웃음거리가 된 채 나중에서 하숙집을 옮겨야만 했다. 고의든 아니든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더러 거짓말을 하게 된다. 위기를 모 면하려다 불쑥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와 거짓말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 면 언제나 야근을 했느니 회식 때문에 늦었느니 하는 것으로 둘러댄다. 악의에 찬 것이 아니라면 거짓말은 일단 사람을 안심시키는 효과를 낸다. 남자랑 있으면서 오늘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고 전화하면 부모는 이를 그대로 비ㄷ고 푹 잘 잔다. 2박3일로 피서갈 때도 여자 친구들끼리만 간다면 부모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보내주는 것이다. 거짓말을 잘 하려면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나중에 엉뚱한 소리를 하면 심할 경우 인생 종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언제나 일목요연해야 하며 자 신이 거짓말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실수가 없다.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들 통나면 상대방은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에 빠진다. 어제는 분명히 영숙이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는데 오늘은 희자네 집에서 자 고 왔다고 하니..., 의심은 한없이 부풀고 마침내는 이실직고하라면서 머리채를 휘어잡히는 불상사 가 초래되는 것이다.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많이 하면 헷갈려서 이 삶에게 저 얘기를 하고 저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될까. 졸지에 실 없는 인간이 되어 상대 못할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거짓말은 꼭 불가피할 때만 하라. 속 보이는 거짓말도 해서는 득이 없고 누가 들어도 타당할 만한 얘기를 정말처럼 하자. 33. 작가가 되려면 최근 문단에는 여성작가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잘 나가는 작가들도 대부분 여성들이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이들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작가의 꿈을 키워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일반 여성 들 사이에서는 문학 교실에 등록하고 작가 수업을 받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 고 있다. 사실, 문학이야말로 누구에게나 열린 창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 정해 져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군들 시를 못 쓸 것이며 소설을 못 쓸 것인가. 문학이란 삶에 대한 자기 느낌을 진지하게 담아내는 작업이다. 허구이면서도 허구가 아니고, 누가 읽어서도 공감할 수 있는게 문학이다. 하지만 문학은 쉽지 않다. 그저 적당히 써대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 진정 한 문학은 뼈를 깎는 고통속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되려면 우선 남의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독서를 하지 않 고 작가가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좋은 시나 소설을 쓰려면 훌륭한 작품을 많 이 보아야 내가 쓴 게 걸작인지 족작인지 알 것 아닌가. 이런 이유로 작가들은 항상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산다. 보들레르보다 더 멋진 시를 쓸 수 없어서 절망 하고 헤밍웨이나 제임스 조이스처럼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없다는 느낌에 스스로 에게 분노하며 산다. 그러므로 작가가 되기 위한 첫 관문으로 엄청난 독서량이 요구된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모든 문학작품을 두루 섭렵한 다음에야 원고지와 마주 대할 자격 이 주어진다. 그 때가 되면 어렴풋이 `아, 문학이 이것인가` 하는 느낌이 온다. 에술은 기술이다. 띄어쓰기,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장확한 문장을 쓸 수는 없다. 분명하고 간결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간다. 탄탄한 기초 위에 비로소 문학이라는 예술과 만나야 한다. 자, 이제 무엇을 쓸 것인가. 아마추어 작가들이 맨 처음 만나는 화두가 이것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것 같아 엄두가 안 나고 한편으로는 쓸 게 없는 것 같기도 해서 황당함에 빠진 다. 자신의 주면에서부터 출발하자. 내가 겪었던 잎. 누구에게서 들은 이야기 등등 우리 주변은 온통 말과 사건, 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이걸 나름대로 취사 선택 해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놓고 푹삭혀라. 이 과정과 결과(작품)는 개인의 역 량에 따라 때로는 엄청난 차이로 드러난다. 문학이 고통스러운 작업이라는 말은 이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 꽉 막혀 한 줄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면 미치고 환장할 지 경이다. 반대로 어떤 날은 하룻밤에 수십 장을 써갈긴다. 홀린 듯이, 누가 곁에 서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는 것처럼 줄줄줄줄 내려간다. 작가는 이 순간의 쾌감 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 희열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글쟁이들은 자신이 문학을 하게 된 걸 천형으로 여긴다. 전생에 죄가 많아 이 생에서 문학을 하게 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문학 행위는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시작하자. 34. 술, 얼마나 마실까 내가 신문사에 다닐 때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자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가기` 전에 그들이 `먼저 가 지` 않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총무과 여직원 하나가 그만둔다고 해서 회식을 하던 말, 마침 마감도 끝난 터 라 우리 편빕국 일부 기자들까지 참석했다. 간소하게 고기를 구어가며 잔을 들 이켜는데 이 사람이 그동안 내게 유감이 많았는지 내 자리로 맥주잔을 들고 오 더니 내게 “한잔 받으시죠” 어쩌구 하면서 소주를 가득 붓는 것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아무리 술을 즐기고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해 도 맥주잔 가득히 소주를 받아본 적을 드물었다. 그런데 잔을 준 미스X는 나와 까마득한 제 자리에서 왜 잔이 오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렸다. 그것도 원샷으로 말이다. 내가 잔을 단번에 비우고 역시 잔 가득히 소주를 부어주자 그려는 즉시 잔을 내더니 이제부터 파도타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시 계 방향으로 컵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날, 나를 비롯해 적어도 술이라면 막강한 내 휘하의 기자들은 모두 맛이 갔 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려 집에 가고 다음 날 출근해 물었다. “말도 마세요. 누구는 화장실 가서 안 오길래 가봤더니 오바이트퍼질러놓고 자고 있더라구요. 나중에 뭐란 줄 아세요? 집에 못 가겠으니까 방 하나만 잡아 달래요. 여관에 뉘어 놓고 집에 갔조, 뭐.” 국도 음식이다. 성인이라면 분위기에 따라 한 잔 하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 다. 오히려 안주만 축내면서 집에 갈 생각만 하는 사람이 지탄받는 시대다. 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사람을 좋아하는 동 료나 친구는 별로 많지 않다. 뒤치다꺼리도 한두 번이다. 맛이 간 사람을 부둥켜 안고 택시를 향해 의정부니 수유리를 외치며 즐거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늑대가 우굴우굴한 이 시대에 여자 몸으로 의식을 잃은채 혼자 집에 간다는 것은 호랑이 입에 고기를 넣어주는 꼴이다. 그러므로 술 앞에서 자제심을 잃지 말자. 물론 먹다 보면 그게 잘 안 된다는 건 다 안다. 술 마시며 “아, 그만 마셔야 하는데...”하는 경험 없는 사람 있으 면 나와보라구 해보자. 없다. 이럴 때는 미리 준비를 해놓고 마시자. 만나기 전에(마시기 전에) 간식을 먹어 두던가 적어도 우유 한 잔이라도 뱃속에 깔아두자. 무슨 알지오니 아스파니 하 는 숙취해소 음료는 말짱 꽝이다. 또, 절대 `짬뽕`을 하지 말 것. 남자들이 흑심을 품고 여자를 술자리에서 가게 만드는 수법 중의 하나가 이 섞어 마시는 것이다. 저녁 먹는다면서 반주로 소주 나 혹은 고량주를 먹이는 치사한 자식들이 있는데 이걸 두어 잔 먹으면 목이 마 르다. 이걸 노리고, 맥주 한잔 하면 시원할 거라느니 콜라나 사이다 한 잔 먹으 라느니 하는데, 이 말에 넘어가면 간다. 술이 약한 사람은 아예 인사불성이 된 다. 그 다음엔 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자리에서건 섞어 마시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노래방에 가면 마실 거라곤 캔맥주 아니면 츰료수뿐이므로 설사 레몬 소주를 마셨더라도 맥주 는 마시지 말 일이다. 2차, 3차을 간다 해도 그게 나이트든 디스코장이든 전작이 맥주면 계속 맥주로 가든가 소주면 아예 마시지 말든가 하라. 술을 마셔보면 자기 주량이 얼마 정도인가 알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술이 잘 들어가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한 잔도 입에 대기 싫은 날이 있다. 술이 단 날은 남자들도 몸조심을 한다. 까딱하다가는 그 다음 날을 후회와 번민의 날로 만드는 탓이다. 술은 우리를 아주 우습게 만든다. 그 점을 언제나 명심하고 가능하면 적게 마 시려고 노력하며 마시더라도 천천히, 안주도 충분히 멀어 가며 마시자. 다음 날, 술이 덜 깨면 오렌지 등 과일주스를 마시고 속이 거북하더라도 밥은 꼭 먹도록. 35. 담배, 그 후회할 버릇 책상에 앉아 원고를 보고 있는데 그녀가 비실비실 다가오더니 “라이터 좀 빌 려 주실래요!”한다.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주자 받아 들고 화장실로 간다. 나는 속으로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하면서 다시 원고를 본다. 그녀가 라이터를 들고 돌아온 것은 10분 후. 슬쩍 냄새를 맡아 본다. “눈썹 올리는 데 썼어요. 불로 달궈서 올리면 잘 되거든요.” 하기야 이 사무실에서 굳이 화장실 가 담배를 필 여자는 없다. 다들 내놓고 피는 마당에 그녀 혼자만 변기를 타고 앉아 담배를 물고 있겠나. 내가 담배를 피기 시작한 건 대학 1학년 때다. 220원 하는 한산도가 없어서 못팔 때였는데 내가 담배를 피기로 마음 먹은 건 고독해서였다.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내게 그 파란 연기가 뭐라도 보상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에 담 배를 피게된 것이다. 이때부터 피기 시작한 담배를 아직까지 줄창 피고 있는데 한 번 배운 담배는 끊기가 여가 어렵지 않다. 술은 마시지 말라면 안 먹겠지만 이 담배만큼은 쉽 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다못해 감기가 걸려 캑캑거리면서도 담배를 피우니 더 말해 무엇하랴. 여성 흡연이 크게 늘고 있다. 남자의 경우는 어른이 되면 으레 피워야 하는 게 담배라고 알고 너도나도 피우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살을 빼기 위해서, 나처 럼 고독을 달래려고, 멋있어 보이니까 등등 담배를 피는 이유도 다양하다.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은 여자들도 잘 안다. 더 욱이 임신 중에 피는 담배는 태아에게 치명적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폐암에 걸릴 확률도 비흡연자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는 걸 모르는 흡연자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담배를 핀다. 아직 못 피는 사람은 피고 싶어 하고 아이들은 숨어서까지 몰래 핀다. 나쁜 줄 뻔히 알면서 왜 담배를 피울까. 형사 콜롬보를 보면 피터 포크는 깊은 생각에 잠길 때 시가를 물고 왔다갔다 한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해야 할 때 담배는 확실히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껌 을 씹으면서도 그럴 수는 있겠지만 모락모락 오르는 연기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 면 심리적으로 괜히 뭔가 더 잘 떠오르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 일부 한의사 중에는 담배가 체질에 맞는 사람은 피워도 상관없다고 주장하 고 있다. 담배의 해로움만 너무 강조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후회하고 있음을 알라. 나도 금연 좀 하고 싶지만 안 돼서 지금도 담배를 물고 있다. 기관지가 나빠지 고 가래가 생기며 특히 담배가 떨어지는 순간이면 무슨 마약 중독자처럼 허둥거 리는 모습이 내가 봐도 한심하다. 아직 피우지 않는다면 담배는 앞으로도 입에 대지 말자. 차라리 술이 낫다. 36. 연애편지 잘 쓰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쓰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전화에 삐삐, 전 화사서함, 그도 모자라 PC메일까지 있는 판이니 누가 편지지 사다 정성 들여 쓰 고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겠는가. 생각나면 바로 목소리를 듣는 세상, 난 이런 세상을 두고 살기 정말 좋아졌다 고 말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보고 싶어도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애인이 그리워서 날밤을 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이용하는 게 편지였다. 당시만 해도 연애편지 한번 써보거나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편지는 말과 달리 문자라는 특성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경우 감정에 치우쳐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할 때가 많은데 편지를 이용하면 진실된 마 음을 전하기가 훨씬 쉽다. 편지를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특히 연애편지의 경우 대문 앞에서 자기 방까 지 가면서의 기분은 마치 알 수 없는 선물을 들고 가는 느낌이다. 둘 사이에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면 내용은 분명 달콤하고 짜릿하겠으나 저기압이 형성 된 상태라면 편지는 뜯어보지 않아도 심상치 않은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도 과거에 그런 편지를 받아보았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길래 그러려니 하 다가 느닷없이 편지를 받았다. 간단히 줄여서 ‘징 치고 막 내리자’는 거였다. 으잉?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난 답장을 써 보냈다. “안돼!”라고. 사람들은 편지든 뭐든간에 뭘 쓰라면 공포심을 갖는 것 같다. “쓰기는 뭐, 그냥 말로 하지....” 이런 식이다. 우리 교육이 천편일률적으로 외우기만 강요 한 탓이요 쓰기를 우습게 안 결과다. 지금은 논술고사를 본다고 난리를 쳐놔서 오히려 모든 고3 아이들이 신문사 논설위원감이 되기는 했지만. 흔히 말하기를 편지는 서로 얘기하는 기분으로 쓰면 된다고 한다. 아버님 전 상서가 아닌 바에야 “안녕하세요. 처서가 지났으니 가을이 목전에 다가왔군요. 다들 무고하신지 궁금합니다. 어쩌구 저쩌구...” 이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앞 에 사람도 없는데 혼자 중얼기리는 식으로 글을 쓴다는 건 비 맞은 중이 아닌 다음에야 어려운 일이다. 다른 글쓰기도 그렇지만 편지 역시 첫대가리 나가기가 어렵다. 쓸데없이 파 지만 내고 끙끙거리다가 “아, 염병! 전화나 하자” 이러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무슨 일이건 어렵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편지에 형식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맘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 요령이다. 먼저, 자기가 이 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할 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잡아놓고 써 라. 안 그러면 시종 횡설수설하다가 말아 쓰기는 애써서 썼는데 받아보는 사람 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어 읽기에 여간 고생이 아니다. 서두는 다짜고짜 시작해도 괜찮다. “지난 번에 니가 한 말을 곰곰 씹어 봤는데 아무래도 내 생각이 더 옳지 않 겠나 싶다. 니 논리의 초점은 레몬소주에 토닉워터를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야, 레몬소주에서 중요한 건 토닉을 넣었느냐 안 넣었느냐가 아니라 레 몬을 넣었느냐야. 그러니까 넌, 주체는 제껴놓고 객체에 매달리고 있다는 거지.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야. 넌 항상 내 외모를 가지고 말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가면 편지도 쓰는 데 별로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에 대해 이걸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하는 사람 이 많다. 덮어놓고 “나는 너를 사랑해” 이럴 수는 없고 뭐라고 근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별것 아니다. 빗대어 말하라. “나는 당신이 내게 모래시계에 나오는 이정재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다 만, 맞아죽는 이정재가 되지는 말아 주세요.” 이 정도면 남자는 맛이 뻑 간다. 아니면, “당신만 보면 숨이 막혀요! 더 이상 내 호흡을 방해하지 말아요.” 편지 쓰기는 일종의 상상력 게임이다. 상대방을 떠올리며 마음껏, 편안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라. 37. 유머가 당신을 빛나게 한다 직장에서의 일이라는 게 어찌 보면 매우 단조롭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비슷한 일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업무를 보다 보면 더러 짜 증도 난다. 이럴 때 누가 짤막한 농담이라도 던지면 분위기는 한결 나아지는데 그역할을 사람들은 잘 안 하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이 정 해지는 것 같아서 그게 싫어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거야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 아니냐며 아예 못을 박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요즘에는 성희롱이니 뭐니 해서 야한 농담은 금기시되는 분위기여서 사무실이 더욱 썰렁해지고 있다. 물론 조크가 성적인 것 말고 없는 건 아니지 만 여자들에게 수치심만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본다. 성적인 농담은 모두에게 이해가 빠르지 않은가. 예를 들어, 이 정도는 어떨까. 콩쥐가 날이 더워 호숫가에 목욕을 하러 갔다가 그만 브래지어를 깊은 물에 빠뜨렸다. 잃어버리고 집에 갔다가는 팥쥐 엄마에게 요절이 날 판이라 엉엉 울 고 있으려니 신령님이 척 나타나서는 “이 금 브래지어가 니꺼냐? 그럼 이 은 브래지어는? 이 다 떨어진 헌 브래지어가 니꺼라구! 거 더럽게 착하구나. 다 가 져라”했다. 콩쥐에게 얘기를 들은 팥쥐는 득달같이 호수로 달려갔다. 가자마자 팥쥐는 제 브래지어를 깊은 물 속에 던져놓고 침 발라가며 울었다. 역시 신령님이 나 타나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팥쥐는 신령이 보여주는 브래지어를 모두 제 것이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령 왈 “니 젖이 개젖이냐?”하고는 팥쥐를 허벌나게 두들켜 패고 사라졌다나. 점심 먹고 졸음이 쏟아질 때쯤 재미있는 얘기 한 토막은 여러 동료들의 기분 을 전환시켜 주는 청량제 구실을 한다. 힘든 일을 할 때, 혹은 누구 한 사람이 윗사람에게 깨져서 공기가 썰렁할 때 가벼운 조크 한 마디는 우리를 충분히 즐 겁게 한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뭐 이정도는 아닐지라도 적절한 때 발휘 하는 유머 감각은 본인은 물론이고 회사나 상사, 혹은 동료들을 위해서도 결코 손해가 아니다. 나도 어디 가면 실없는 소리를 곧잘 하는데 그래도 날 싫어하 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럿이 죽을 먹으러 가서 “야, 거 죽맛 죽인다!” 한 마디에 즐거운 점심을 먹는 것처럼 유머가 있는 사람은 자연스레 동료들 가운데서 빛을 발한다. 어딜 가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고 싶어하고 일을 해도 같이 있으면 즐 거운 인물. 그런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게 없다. 평소에 들었던 이야기를 신경써서 기억해 두었다가 써 먹으면 될 것이다. 그 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웃기는 얘기는 들을 땐 열심히 들었는데 돌아서면 잘 생 각이 나지 않는 거다. 필요하다면 메모를 해두는 것도 좋다. 신세대와 쉰세대 구별하는 법은 다들 알고 있겠지? ‘멀리’라는 단어을 듣 고 이은하의 ‘밤차’를 얘기하면 쉰세대, 투투의 ‘1과 2분의 1’을 생각하면 신세대. 또, 이기동을 알면 쉰세대, 모르면 신세대이다. 룰라와 서태지의 노래 의 차이점을 알면 신세대라고 한다. 38. 병원에 가기 전에 이 지구상에 병원을 즐겨 가는 사람은 없다. 아파도 약 먹고 개길만큼 개기 다가 죽을 지경이 돼서야 가는 게 병원 아닌가. 나도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하는 데 지금 이러고 있다. 아직 견딜 만하니까. 그렇다고 병원 가지 말라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가기 전에 몇 가 지 알고나 가라는 것이다. 의료보험이 된다고 해도 병원은 일단 갔다 하면 돈이다. 감기 같은 간단한 질병이야 아예 일찍 병원에 가는 게 약값보다 싸게 먹히지만, 웬지 어디가 이상 하다 싶어 가면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피뽑고 오줌 검사하고 엑스레이 찍고 내시경 검사한다고 덤벼드는 게 병원이다. 웬만한 검사는 보험 적용이 안 되므로 수익을 높이려는 병원은 환자만 보면 이것저것 검사하자고 달겨드는데 가만 내버려두면 아마 뇌파검사까지 해야 한다 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의사가 하라면 꼼짝없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열 받는 일은 죽자고 검사받아 오라는 날 가서 결과를 들어보면 아 무 이상 없다는 거다. 본전 생각하면 어디 이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지.... 아무튼 병원은 안 가는 게 제일 좋지만 가게 되면 뭘 좀 알고 가야 한다. 우선 평소에 간단한 의학 상식은 챙겨두고 살자. 한 번은 내 딸내미가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어 허겁지겁 병원 응급실로 쫓아 갔더니 인턴이 쓱 쳐다보고는 미지근한 물 한 대야 갖다주고는 수건으로 온몸을 슬슬 문질러주라는 거다. 말하자면 주사나 약 대신 간단한 방법으로 체온을 내 리는 것이다. 나는 공연히 울화가 치밀어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 작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더라면 잠 못 자고 달밤에 체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 다. 책방에 가면 건강코너에 의학상식과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비상시 응 급처치 요령, 민간요법 등이 그것인데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전문서적 코 너에 가 의학서적을 뒤져라. 배가 자주 아픈 사람은 누워서 여기저기 찔러보는데 명치 근처가 아픈 사람은 위에 이상이 있는 거고, 아랫배를 눌러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 싶으면 장 (창자)에서 이상발효가 있는 것이니 끼니는 거르지 말되 가벼운 운동을 하자. 여자들에게는 변비가 많다. 아주 심하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어지간하면 물 을 많이 마시고 음식도 다이어트한다고 적게 먹을 게 아니라 배가 좀 부르다 싶 게 먹어야 배변에 좋다. 변비약은 먹지 말것. 이건 편법인데 시중에는 장을 청 소하는 약이 있다. 이걸 사 먹으려면 비싸니까 먹는 사람이 있으면 얻어 먹거 나 여럿이 돈을 모아 사서 나눠 먹는데 단, 이 약은 맣이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 릴 우려가 있으니 조심한다. 몸살이 났을 때는 더 심해지기 전에 잽싸게 병원에 가라. 금방 나으려니 하 고 미련하게 고생만 하다 결국 못 견디고 나중에야 병원에 가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약값만 버리는 짓이다. 생리가 불순한 사람이라면 미안한 얘기지만 경구 피임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 다. 피임약은 피임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생리주기를 조절해 주는 역할도 한다. 만약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면 종합병원은 가지 마라. 접수하는데, 또 기다리 는데 드는 시간도 손해이지만 진료비도 일반 의원보다 비싸므로 이중으로 낭비 하는 짓이다. 내과의원을 찾아가는데, 정 못미더우면 시중에는 실력있다는 곳이 더러 있으므로 여거저기 수소문해서 알아보라. 진찰을 받을 때는 자신의 증세를 꼼꼼하게 일러주면 의사에게 큰 도움이 된 다. 병원에 가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면밀하게 체크해 이를 알려주는 것이 의 료낭비를 막는 방법이 된다. 가서 막연히 “배가 아파요”, “어지러워요”하는 소리만 하면 의사는 정보가 전혀 없으므로 온갖 검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39. 강간, 남의 일이 아니다 할머니가 떡판을 머리에 이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머니는 떡을 주었다. 다음 고개를 넘어가는데 호랑이가 또 나타났다. 이번 에도 호랑이는 떡을 물고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호랑이는 계속 나타나 할머니 의 떡을 다 먹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말해따. “저고리 벗어주면 안 잡아먹지!” “치마 벗어주면 안 잡아먹지!” “ X X 벗어주면 안 잡아먹지!” 여권이 신장되고 있다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 늘어나는 것이 바로 강간이다. 더 더러운 범죄는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 는데 문제는 사회적으로 별 뽀족한 대책이 없다는데 있다. 결국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여자 스스로가 자구책을 마련하는 수밖에는 약이 없는 것이다. 강간은 유형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되는데 우선 가장 충격적이고 치명적인 것 (이 분류는 내가 편의상 한 것일 뿐 강간의 피해에 경중을 둔 것은 아니다)은 범죄자들이 우발적이거나 계획적인 모의로 생면부지의 여자를 덮치는 것. 이 경우는 심야에 한적한 곳에서 당하기 쉬운데 요즘 특히 위험한 인간은 집 나온 비행 청소년들이다. 이 놈들은 이판사판 개차반이라 나 같은 정의의 사나 이도 걸리면 간다. 하물며 야심한 시간에 혼자 집에 가는 여자야 차려놓은 밥 상이다. 내가 아는 놈의 증언에 따르면(얘도 한때는 그 중의 하나였다) 고교 재학 시 절 못된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그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데, 여자가 걸리면 일단 근처 공사장이나 야산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가서는 차마 필설로 옮길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진다고 했다. “그 시간에 집에 가는 애들이야 뻔하잖아요.” 이 자식의 말은 어폐가 있긴 하지만 늦은 시간에 집에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불가피하게 귀가가 늦을 때는 집에 전화를 걸어 마중을 나오게 하라. 너무 늦어서 곤란하다면 직장동료나 애인을 동반하자. 다 어려우면 모범택시를 타고 집 코앞까지 가는 게 돈 버는 일이다. 괜히 가스총이네 호루라기네 사서 폼 재 봐야 말짱 헛일이다. 범인들이 그런 거 무서워했다면 우리나라에 범죄는 없다. 이 나라는 “사람 살려!” 아무리 외쳐도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봐야 깨지거든. 이처럼 혹시 강간의 위험에 직면하게 됐을 경우, 좀 어렵겠지만 한 술 더 떠 라. 지금 생리 중이라거나, 그러지 말고 여관에 가서 화끈하게 하자고 해서 일 단 위기를 모면하는 게 급선무다. 이럴 때 쪽 팔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봐야지. 어쩌다 경찰을 만났어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경찰도 남자다. 다음으로,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이른바 데이트 강간. 강간의 대부분이 아는 사람에게 당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여자는 꿈도 꾸지 않았는데 이 새 끼가 갑자기 짐승으로 변해 나를 덮치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아무 리 애인이라고 해도 안심할 일이 아니다. 둘만의 호젓한 공간은 아예 만들지 말고 밀폐된 방이나 사무실도 금물이다. 남자의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썰렁한 얘기를 꺼내 그의 성욕에 찬물을 끼얹으 라. 여자가 이 순간에 망설이는 것은 괜히 과민반응을 보였다가 “촌스럽게 왜 이래!” 소리를 듣기 싫어서인데 강간을 당하는 것보다 촌년이 되는 게 훨씬 낫 다. 그리고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었든 동생뻘된다고 안심하거나 저보다 나이 많 다고 염려 놓으면 안 된다. 남자는 틈만 나면 그 생각 밖에 안 하므로 언제든 지 긴장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적당 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말할 때마다 확실한 애인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남자란 임자가 있는 몸이라면 쩝쩝 입맛을 다시며 물러서는 동물이다. 나도 남자면서 ‘남자는 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 서글프다. 40.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KBS 주최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만큼 대 단한 것이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가 한동안 유행했고 우리들은 누굴 만나면 “넌 이산가족 없냐?”라는 말로 말문을 열곤 했다.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TV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을 다시 만나는 감격이 컸던 만큼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흥분해서 대충 입을 맞춰보니 맞는 것 같아 “아이고, 네가 살 아 있었구나!”해가며 펄펄 뛰었는데 시간이 흘러 피자 냉정을 찾고 보니 우리 는 싸릿골에서 살었었는데 이 사람은 까막골에서 살았다고 하고 엉덩이에 있어 야 할 점도 확인해 보니 허벅지에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산의 한을 품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시름 을 달래고 있다.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 떨어져 사는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 람은 알 수 없다. 가족, 즉 혈육에 대해 우리처럼 각별하게 의미를 두는 민족도 없는 것 같다. 하기야 역사적으로 수많은 국내외적 환난 속에서 언제나 식구들의 생계와 안전 을 위해 전전긍긍해 왔으니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 역시 바뀌고 있 다. 무너지기 시작하는 가족관계 앞에서 우리는 가족에 대해 다시 진지한 논의 를 해봐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 많아야 서넛인 식구들, 언제나 바쁜 부모, 치열한 경쟁 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다한 교육열, 이 틈바구니에서 인위적으로 소외되는 아이 들.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는 가족은 어떤 양상으로 변할까. 물론 당신들의 세대까지는 아직 심각하지 않다. 대부분이 1년에 몇 번씩은 찾아갈 고향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부모들도 과거에 묻혀서 사는 사람들 이라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가족관계는 이들에 의해 지탱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고 난 다음(지금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당신이 결혼해 자 식을 낳는 시대에 당신의 가족은 극심한 갈등 속에 서있게 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보편화될 우리의 가족상을 그려 보자. 당신은 아마 맞벌이를 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또는 남편의 희망에 따라 직장 에 나갈 것이다. 아이들를 낳는 것에 대해 당신은 남편과 아마 말다툼을 할 것 이다. 언제 낳을 것인지, 몇이나 낳을 것인지 때문에. 어쩌면 피임에 실패해 도리 없이 낳게 될지도 모른다. 부득이 함께 살아야 할 부모가 있다면 그들을 누가 모시느냐도 형제간에 큰 쟁점이 될 것이다. 장남은 자기 위치를 포기하면서(상속에서 지금도 장남은 더 이상 어떤 기득권도 가질 수 없다) 이를 모두에게 분배시킬 것이다. 대신 장남 이 부모를 모셔야 하는 책임에서도 해방되고자 할 것이다. 별수없이 형제들이 들아가면서 부모를 모셔야 한다. 딸이라고 예외가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일년 에 상당 기간 동안 당신은 친정 부모를 모셔야 할지도 모른다. 남편의 부모까 지 포함한다면 아마 수개월은 되지 않을까? 아마 하나인 당신의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증오할지도 모른다. 서로 양보할 줄 몰라 툭하면 싸우는 부모, 유치원이나 학교가 끝나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늦게 들어온 당신은 가사분담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또는 힘든 직장 생활 때문에 아이에게 마음에도 없는 짜증을 낼 것이다. 아이는 자페증에 걸리거나 아니면 부모와 마주치기가 싫어 방에서 나오지 않 을 것이다. 그 대신 당신과 아빠가 가르친 버릇으로 늘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아이는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당신의 태도에 지친 나머지 밖에서 바람 을 필지도 모른다. 집에 가야 아내도 없고 어쩌면 귀찮은 아이를 봐야 하니 일 을 핑계로 늦게 들어가면서 여직원과 또는 과거의 여자를 만나 신세 타령을 늘 어놓을 것이다. 상황은 계속 악화된다. 직장을 그만두자니 당장 수입이 준다. 더구나 자신이 해온 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이와 자꾸 겉도는 남편이 마음에 걸린 다. 이때 친정 부모가, 시부모가 이번엔 당신 차례라며 가방을 들고 쳐들어와서 한 달 이상 머물다 간다. 당신은 마치 벼랑에 선 것 같다. 최악의 시나리오 같지만 내가 보기에 현재 이러한 현상은 일부 나타나고 있으 며 곧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가 생각해온 가족관계 는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가 귀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남편은 동반자에서 어느 순간 적대자가 되며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혼자 남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살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독신주의자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공동체로서 구성원 모두에게 연대감을 통한 육체 적, 정신적 안정을 준다. 양보와 질서가 있고 사랑과 보살핌이 상존한다. 미래가 아무리 개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나보다 우리(가족)를 위해 산다면 가족은 온 전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누가 십자가를 질 것인가. 십자가 를 진다한들 어느 날 갑자기 대가족제도가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후기 농경사회로 갈까? 41. 남자가 원하는 선물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대인관계가 많아지면서 갖가지 인사 치레를 할 기회 가 는다., 친구 생일부터 백일잔치, 돌잔치 등이 그것인데 여럿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반지나 옷을 사면 그만인 경우도 있지만 혼자서 건너뛸 수 없는 행사 라면 경제적 부담도 부담 려니와 대상이 남자라면 대체 무엇을 선물해야 할 것 이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여자로서 남자들의 기호가 뭔지도 모르겠고 평상시 눈여겨 보지 않았다면 그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몰라서 애를 먹는 것이 다. 더구나 애인에게 줄 선물을 골라야 한다면 좀더 신경이 쓰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는 뭐가 좋을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선물중의 하나가 꽃이다. 하지만 받는 쪽에서 보면 꽃은 기본이고 그 마음에 뭘 줄까 하는 기대심리만 키울뿐이다. 꽃만 주고 넘어가면 도리어 욕만 바가지로 먹는다. “뭐 이래!” 담배를 피는 남자라면 라이터도 괜찮다. 3백원짜리 말고. 남자들이란 좋은 라 이터를 가지고 싶어도 잃어버릴까봐 안 산다. 내가 사기는 좀 아깝지만 선물로 받는다면 좋아할 것이다. 만약 애인이 준다면 남자는 그걸 소중히 간직할 뿐만 아니라 담배를 입에 물 때마다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생각해서 애인이 담배를 많이 핀다고 담배 끊는 약 사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것 . 나 같으면 지랄할 거야. 넥타이나 와이셔츠, 혁대 같은 것도 무난하다 너무 흔해빠졌고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책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선물이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나 같은 남자도 맛이 좀 간다. 선물은 가격보다는 성의가 중요한 것이라 해도 책은 대개 고작 5,6천원이면 사는데다 “겨우 생각난 게 책이냐”는 소리가 목젖까지 올라오기 때문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근사한 술집에 가서 뽀개지게 한잔 사는 것이 낫다. 단둘이 가는 것도 괜찮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파티 기분이 나야 하니까 절 친한 친구 두엇은 부르는 게 좋다. 그러나 기분 낸다고 남자를 오바이트할 때까 지 퍼마시게 해서는 곤란하다. 술자리가 끝나고 어디 조용한 카페에 가 평소 하 지 않던 “나,너 사랑하는 모양이야”라고 고백을 해주면 백점. 어설픈 선물보다 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선물을 꼭 물건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만난 후 한 번도 키스를 하지 않은 커 플이라면 분위기 잡아서 한 번 허락하라. 단, 너무 진하게 할지 말도록, 남자가 열받으면 사태가 이상하게 진전되어 안하니 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니가 먼저 꼬셔놓고 왜 이러냐?”는 소리나 듣게 된다. 컴퓨터에 빠진 사람이라면 CD롬 타이틀도 권할 만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면 콤팩트 디스크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이 취향에 맞는 프로의 표를 미리 예매해 두었다가 같이 보고 저녁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당일 아침에 생일을 축하한다는 전보를 띄워 보내는 것도 깜짝 쇼로 권할 만 하며 과감하게 패션 팬티를 사주는 것도 쓸 만하다. 기왕에 주는 선물은 받는 사람이 기분 좋아야 주는 사람도 흐뭇한 법이다. 42. 돼지는 왜 돼지인가 내가 어려서는 굶는 사람이 많았다.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타다먹는 이웃도 적지 않았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종례시간이면 양호실에서 타온 옥수수빵을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도 끼니를 거를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나는 그빵이 먹고 싶어 안달을 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빵이 남아돌지 않 는 한 나를 그 아이들 속에 끼워주지 않았다. 우리 집이 제법 밥술깨나 먹는다 는 걸 아셨기 때문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아마 20대들도 잘 이해 하지 못할 뼈 아픈 과거다.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 너무 먹어 날리다. 언제부터인가 에어로빅 이 여자들의 유행이 됐고 신문광고는 온통 다이어트 식품과 비만 치료, 몸매관 리로 가득 차 있다. 어린이 비만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지도 꽤 된다,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 현대인들이 살찌는 이유는 우리가 많이 먹는 고기속에 성장 호르몬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나 돼지의 사료속에 넣은 호르몬 이 육질 속에 남았다가 그대로 우리 몸에 섭취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검증 된 바는 아니어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많이 먹어서 살이 찌는 걸까.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하루 세끼 먹는 건 변함이 없다. 달라진 건 식단분이고 전보다 고기 먹는 횟수가 좀 늘었다는 정도다. 그런데 왜 살이 찔까. 아침도 거르고 저녁은 제대로 챙겨 먹지 도 못하는데 왜 팔뚝이 굵어지고 배가 나오는가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영양 과다도 문제지만 운동량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금 만 멀면 차를 타고,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퇴근하고서도 사람을 만나면 먹는게 일이고 집에 가서도 TV나 보다 자는게 고작이다. 밤이 늦으면 출출하다 고 간식을 먹고 내쳐잔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정신노동을 하는 돼지다. 돼지우리는 우리들의 집 과 사무실이다 출퇴근이 보통 사람들의 운동이 되는 셈이고 나머지 시간은 일과 먹는 것뿐이다(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의 사무직,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영업직 은 일단 제외된다. 하루 두끼먹는다고 했지만 그건 끼니의 차원이고 이것 저것 따지면 칼로리만으로는 세끼 이상 된다. 칼로리 소모는 거의 없이 먹기만 하는 ‘돼지’가 배가 나오고 팔뚝이 굵어지 는 건 당연하다. 지방은 분해되지 않으면 피하에 쌓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운동을 해도 여간한 결심이 없으면 말짱 꽝이다. 칼로리를 소모하고 나서 배 가 고프다고 먹어대면 그대로 살로 가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살이 지는 사람은 물론이고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라면 저녁은 먹 지 말아야 한다.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간식을 먹고 나서 그 이후에는 누구를 만나도 식사다운 식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배가 고프면 우유나 과일로 달래고 물을 마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대신 아침과 점심은 꼭 먹어라. 무엇을 먹더 라도 과식은 금물, 배가 나왔으면 집에서 잠깐이라도 좋으니 규칙적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다. 푸시업(또는 윗몸일으키기)도 좋고 조깅도 괜찮다. 조깅은 아침보다 저녁이 낫 다. 아침에는 대기에 흩어져 있던 스모그가 가라앉아 있어 폐에 아주 나쁘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몸에 좋은 운동은 걷기다. 출근 때는 바빠서 어렵다면 퇴 근하면서 두어 정거장은 조금 빨리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어라. 어슬렁거리는 것 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꾸준히 해야 효과를 본다. 살이 찌는 사람을 보면 찔 만한 이유를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43. 절벽이라도 좋다 샤론 스톤과 마이클 더글러스가 출연한 영화<원초적 본능>을 나는 억울하게 도 개봉관에서 보지 못하고 비디오 테이프로 봤다. 초장부터 섹스와 살인으로 뒤범벅된 이 영화에서 서른다섯이나 먹은 샤론은 죽여주는 몸매와 러브신으로 사람을 꼬이게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녀의여자 친구가 더 나아보였다. 여자 친구가 누구냐구? 거 왜 마이클의 전 부인자 경찰에서 정신감정한고 있 는 그 여자 말이야. 하여간이 영화는 섹스와 살인을 잘 칵테일한. 그래서 성인이 라면 누구라도 관심가게 만든 오락물로 비디오 가게에서는 두고두고 우려먹을 만한R등급 우수작이다. 외국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물론 여자들조차도) 출연 여배우들의 기가 막힌 몸매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인류생태학사 그들의 골격이 원래 그렇게 생격먹어 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하체가 길고 가슴과 엉덩이가 우리와는 다른게 영 사람 같지 않다. 지금 우리 신세대들의 체격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 평균키도 점점 커지는 추 세고 몸매도 영양 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향상(?)되는 중이다. 그런데도 여자들 중 더러는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심지어 칼까지 대 는데 이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되취 되어 살아가기를 원 하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바에야 왜 남에게 잘 보이려고 높이고 낮추고 빼고 집어넣고 난리치나? 사랑에 빠지면 곰보가 모두 보조개로 보인다지 않는가. 당신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의 가슴이 절벽이든 엉덩이가 처졌든 상관하지 않는다. 기왕이면 블 루스라고, 애인이 팔등신에 36-24-36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걸 바라고 여 자를 찾아다니는 골빈 남자는 별로 없다. 오히려 결혼을 앞둔 남자는 여자의 미모보다 인품을 찾는다. 여자들의 상식으 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내 주변에도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 니다. “뭐, 얼굴 뜯어먹고 사나요?” “샤론 스톤 같은 여자 데리고 살면 불안해서 못삽니다. 평범한 여자가 백 번 낫지요.” 나도 이거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날마다 같이 자는 여자는 내가 바라던 신 체 사이즈와는 전혀 꽝인 사람이다. 키도 내가 만났던 여자들 중 가작 작고 얼 굴도 그저 그런 편이다. 당신은 알랭 들롱 처럼 잘생긴 남자와 결혼할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이며 그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평범을 그대로 둔 채 사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남자들중에는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 는 인간도 있지만 작은 걸 좋아하는 늑대도 있다.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허벅지 굵은 여자를 좋아하는 괴상한 사내도 잇는 것이다. 외모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목욕탕 가서 “쟤는 잘빠졌는데 나는 왜 이꼴이 야......” 하지말라. 잘빠지고 이쁜 여자는 판자만 세다. 이놈 저놈 넘겨다보는 늑 대만 꼬일 뿐 실속이 없다. 44. 좋은 영호, 꼬진(?) 영화 안정효의 소설<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읽어 보라. 영화에 미친 삶, 현실의 내가 비현실 속의 나와 헷갈리는 삶이 영화평론가들도 질린 작가의 해박한 지식 을 통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영화는 위를 즐겁게 한다.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친구 중에 건 축자재 사장집 아들이 있었는데 하루는 이 자식이 아버지 돈통에서 엄청난 거금 을 낚시질해 와서는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돈을 어떻게 쓸 줄 몰라 나에게 온 것이었다. 나는 놈의 두둑한 주머니를 뒤에 세워놓고 앞장을 섰다. 내가 맨 처음 간 곳 은 극장이었다. 사실, 가려고 간 것은 아니고 둘이 빌빌 돌아다니다 보니 극장이 내 앞에 나타나 들어간 것이다. 영화 제목은 <로미오와 줄리엣>. 올리비아 허시, 레오나드 화이팅이 주연한 이 명작을 나와 내 친구는 소 닭 2보듯 보고 나왔는데 그 후 십몇 년이 지나 다 시 이 영화를 보고 난 눈물을 흘렸었다. 거의 마지막 장면, 줄리엣이 자살한 로 미오를 보고 울면서 왜 내가 먹을 독약은 남겨두지 않았냐며 그의 칼로 자살하 는 신에서 나는 눈물을 아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과거만큼이나 명작 영화가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가 워낙 판치고 있는 세상이라 그나마 명화를 만드는 유럽 영화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여기에 무슨 느와르니 어쩌고 하는 홍콩 폭력영화기 관객들의 눈을 멀 게 하고 있다. 좋은 영화를 골라보는 요령은 별거 없다. 우선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리는 여 화는 의심해 보는 눈이 필요하다. 대중들의 취향은 뻔하다. 재미만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대개가 죽이고 살리고 (<다이하드)>, 벗고 소 리지르고(<엠마뉴엘 부인>), 썰렁하게 만들고 (공포물)하는 영화다. 이런 영화가 꼭 나쁘지는 않다. 복잡한 세상, 한두 시간이나마 즐겁게 보내려 고 무거운 영화보다는 숨가쁜 영화를 찾는게 뭐가 나쁜가. 하지만 좀 지루하고 벗지도 않으며 사람도 죽지 않는 영화라할지라도 명화는 우리의 마음을 오래 잡 아둔다. 좋은 영화를 보려면 우선 감독을 보라. 임권택, 이두용외에 중국의 장 이모우, 미국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프랑스의 뤽 베송 등 명장이 연출한 영호는 일단 봐서 본전 생각은 나지 않는다. 감독과 영화 내용을 알면 가서 볼 만한 영화인 지 아닌지는 판가름이 난다. 그 다음에는 출연 배우를 보는 것이다. 나는 과에게 알랭드롱이 나오는 영화 라면 무조건 봤는데 실망한 적은 거의 없다. <시실리안>이 그랬고 <태양은 가 득히>가 그랬으며 <리스본 특급>, <암흑가의 두사람>이 나를 프랑스 영화광으 로 만들었다. 시중의 개봉 영화가 성에 차지 않으면 국내에 대사관을 둔 외국 문화원을 찾 아가자. 프로그램은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데 자막은 영문으로 나오지만 나라별 로 국가의 체면을 생각해 우수작만 상영하므로 싼 값에 훌륭한 영화를 볼 수 있 다. 내가 즐겨 찾던 프랑스 문화원은 경복궁 근처에 있고 독일 문화원은 남산 시 립도서관 근처에, 영국문화원은 덕수궁 옆에 있다. 45. 앞뒤로 일주일 모 직장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우리는 점심 먹고 햇볕이 따뜻한 창가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여 직원들과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내가 경악한 것은 여자들이 자기 자신의 성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졸지에 성교육 강사가 되어 그 뒤로 며칠을 조용한 장소에 그들을 모아 놓고 내가 아는 얘기를 풀어댔다. 성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직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을 공론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키긴시켜야 한다는 말만 무성할 뿐 나서서 정책을 입안 하는 당국자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잘 먹어서 몸뚱이만 쑥 커버린 아이들은 괜한 호기심에 시달리 고 어른이나 아이나 쉬쉬하는 사이에 3류 잡지나 포르노 테이프가 그 사이에 끼 어들어 성은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마광수, 그 인간은 대체 왜 그 러는 거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서점가에는 독일에서 나왔던 (섹스 북)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나는 우연히 그 출판사가 출판 담당 기자들에게 여론 조사용으로 돌린, 원서를 거의 그대로 번역한 사본을 보았는데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사진과 그림도 물론 이었고, 그러나 출판되어 서점에 나온 것을 보니 이런 파격의 상당부분이 잘린 채였다. 출판 사가 알아서 기었는지 아니면 도서잡지 윤리위원회에서 문제가 제 기되어 삭제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 책의 장점은 성에 대한 솔직함에 있다. 있는 그대로를 가르쳐주고 보여주 어 아이들에게 성은 아름답되 절제할 줄 알아야 즐겁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중.고등학교에서의 성교육 이라곤 아주 형편없이 짧은 시간에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소리로 대충대충 가르치고 마는 정도다. 이런 마당이니 아직도 수많은 여자들이 첫날밤에 남자의 그 엄청나게 크고 길다란 물건이 어떻게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까 하 는 공포심에 신혼여행 가서는 목욕탕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안 나오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알려고 들지 않으면 깡통이 될 수 밖에 없 다. 생리를 하면 그저 하는가 보다, 좀 늦어지면 늦는가보다 하다 이상하면 병원 에가고 “뭐, 임신이라구요? 아이고 난리 났네!” 이런 코미디를 연출한다. 그런데도 여자들의 상당수는 관련서적읽기를 꺼려한다. 우선 남의 이목이 두 렵고 괜히 창피하고 뭐 나중에 다 알게 될 텐데 이러면서 기피한다. “처녀가 피임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면 의심을 받을 거야.” “아니 넌 틈만 나면 맨 그런 거만 연구하냐?”“책까지 사다 놓고 보고 있네. 너 혹시 ...”이런 풍토 는 사라져야 한다. 자신의 성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자의 성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지피지 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알아서 손해볼 것은 없다. 남자의 성을 알면 그들이 왜 도 둑놈인지 자연히 알게 된다. 성은 식욕 다음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욕구의 대상이다. 이렇게 중요한 성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두었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46. 앞뒤로 일주일 2 운전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방어운전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남을 들 이받거나 사람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무리 조심한들 남이 와 서 나를 들이받는데야 방법이 없으므로 이를 사전에 막으려면 방어운전이 필수 라는 것이다. 항상 전후 좌우를 잘 살펴서 그대 그때 상황에 따라 비상등을 켜 거나 경적을 울리고 속도를 줄이는 등으로 사고를 대비한다는 말이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우리는 늘 타인에게 노출 되어 있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행복과 불행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 서도 방어운전은 불행을 막는 안전판이된다. 여성에게 임신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고대하던 임신이라면 모르되 원치 않는 임신은 여자에게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준다. 따라서 피임 에 대한 상식에 있어 처녀나 유부녀를 따로 가릴 이유는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혼전 성 관계도 불사하는 세상에서는. 피임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약도 있고 기구도 있고 약이나 기구가 필 요 없는 기초체온주기법 등도 있다. 하지만 처녀가 피임약을 먹고 다닐 수는 없 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핸드백에 콘돔이나 ‘노원’을 넣고 다닐 수도 없고 아 침마다 체온을 재보는 건 더 어렵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배란기를 피하는것. 생리가 끝나고 일주일 쯤 후에 여자 는 배란을 하는데 이때 섹스를 하면 직방으로 아이가 생긴다. 배란 역시 일주일 정도 되면 끝나고 이후 한 일주일은 무배란기였다가 다시 생리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임신을 피하려면 생리 앞뒤의 일주일(합해서 모두 이주일)을 선택한 다. “난 또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기껏 이거야? 아니 여자더러만 준비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항변할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내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이것도 모르는 여자가 수두룩 빡빡하다. 또 남자라는 인간들은 성욕에 있어서만 은 충동적이고 무책임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여자쪽에서라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애를 배던가 아니면 눈이 뒤집어진 그의 거시기를 발로 차 기 전에는 말이다. 남자가 하는 피임법도 있기는 있다. 다들 잘 아는 콘돔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하다 말고 밖에다 사정하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무배란기라 는 게 없다. 1년 내내 죽을 때까지 정자가 생산돼서 언제든지 아이를 만들 수 있다. 영구피임 방법으로 정관을 잡아묶는 수술법이 있기는 하나 이건 아이를 낳을 만큼 낳은 아저씨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이니 애인에게 이걸 권할 수는 없잖 나. 비록 기본적인 피임법에 대해 얘기하기는 했지만, 이걸 써먹을 일이 없기를 바란다. 47. 직장생활은 오래 하면 손해 지금부터 내가 떠든ㄴ 소리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 직장에서 아직도 자기 일 외에 남자 뒤치다꺼리를 해주며 힘들게 지내고 있는 보통의 여성 직장인들을 위한 것이다. 여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남자들을 보조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 미가 아니라 다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남자보다 더 좁은 관문을 지나 더 불리한 조건으로 취 직을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누구나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겠다는 생각을 갖기 마런이다. 나는 성질이 더러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인간이 워낙 무능해서 그랬는지 직장 옮겨다니기를 열 받은 날 술잔 비우듯 했는데 그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은 처음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씩 섞인 기분에서 출발한다. 나도 이제 부터 사회인이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도 들고 월급날이면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 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아서 괜히 방방뜨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은 돈이련만 집에 갈 때까지 혹시 어느 인간이 내 월급을 소매치기라도 해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가슴을 쓸다가 제 방에 들어서 고서야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회사 일이라는 게 즐거운 일보다는 짜증나는 일이 더 많고, 아름다운 장면보다는 치사한 장면이, 착한 사람보다는 나쁜 새끼가 더 많게 마련이다. 직장을 오래 다니다 보면 눈이 먼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이건 정의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속을 끓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뭐, 다 그런 거 지. 나야 위에서 시키니가 할 수 없이 하는건데 어떨라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한통속이 되고 후배 사원이 들어오면 은근히 압력을 넣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꼴을 숱하게 당했고 여직원이 바로 위 남직원의 회유와 협박에 못이겨 할 수 없이 부정을 저지르는 걸 본 적도 있다. 회사 공금으로 유흥비를 쓰고 영수증을 끊어 접대비로 대강 때우는 수법은 그 래도 귀여운 편이다. 하는 일이 돈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도 상황은 크게 나을 것 이 없다. 영업직이 아니라면 여직원은 사내 근무가 보통이다. 그런데 남직원은 피곤하면 한가할 때 사우나 가면서 누가 찾으면 삐삐를 쳐달라거나 적당히 거짓 말 좀 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일쑤다. 이런 마을 들으면 초기에는 욕이 나온다. 남은 앉아서 일하는데 잠을 자러 간 다구? 그러다가 자신도 슬슬 거짓말을 한다. 너라고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냐 하는 심리에서 근무시간에 어디서 세일한다고 두어 시간 나갔다 오고 심지어는 머리 퍼머도 하고 들어온다. 언론사의 경우는 아예 드러내놓고 돌아다녀 나를 돌아버리게 한 일도 있다. 마감 때조차 나가서 쇼핑하고 늘어지게 놀다가 들어 오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오래 하면 인격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세 상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지만 그 앎이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이어서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얘기다. 직장 내 성폭력도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아 직도 여자 직원은 주체가 아닌 객체에 불과하고 능력보다 외모가 더 중시되는 풍토에서 그 직장이 당신에게 바라는 게 무엇일 건가. 내가 말한 직장생활이 어 쩌면 최악의 가정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다르지 않다. 짧게는 3년, 길어야 5년 이상은 하지 말자.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그 리고 이 더러운 사회를 위하여. 48. 불교한 무엇인가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보면 경허 스님 얘기가 주를 이룬다. 머리를 깍 지 않고 출가한 중, 숱한 기행으로 우리 불교를 망친 중으로 기록되는 이 대선 사는 선종인 조계종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꼽힌다. 어떤 의미에서는 스타인 셈이 다. 나는 10년 전만 해도 불교에 대해 아는 거라곤 만해 한용운이나 석보상절 교 과서에 나오는 김동리의 (등신불) 정도가 고작이었다. 불교 하면 우리들은 웬지 낯설다. 머리를 박박 깎은 중의 모습도, 그가 입은 먹물옷도, 목탁 소리도 가깝게 느껴지기 보다는 좀 거부감이 들고 하여간 선뜻 다가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없다. 나도 처음에 그랬다. 절이라면 할머니나 아줌마들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생각 에 고리타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취직한 곳이 말하자면 절 비슷한 곳이었다. 면접 볼 때까지는 까맣게 몰랐는데 불교재단인 이 회사는 회의를 법당에서 하고 내가 보는 원고도 맨 불교 얘기투성이였던 거다. 나는 “아이고, 내가 가다가다 별난 회사를 다 다니는구나. 웬 불교? 이거 다 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되겠지에 꾸역꾸역 다녔는데 한 일 년 다니다보니 슬슬 불교가 뭔지 알게 됐다. 출판부에서 잡지 편집부로 자리를 옮겨선 이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고승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고 출판부에서 펴낸 책도 뒤적거려봤다. 그렇게 해서 중이라 는 말이 사부대중 (비구, 비구나, 남녀 불교신도)의 줄임말이라는 사실도 알았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뭔 소린가도 알게 되었다. 불교는 마치 바다와 같은 종교다. 그 넓이와 깊이와 헤아려지지 않는 바다처 럼 불교는 막막한 철학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불교처럼 간단한 종교도 없 다.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으니 자신 속의 부처를 찾으려면 부지런히 마음을 닦으라는 것이다. 부처란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난 완벽한 자유인이라고 생각하 면 쉽다. 성철 스님은 다들 알것이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살아있는 신화로 계시다가 몇 년 전에 가신 분. TV에서 중계방송까지 하고 국장을 방불케 한 장례행렬을 우 리는 다 보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마음 심자 하나가 팔만대장경을 버틴다 고. 이 말은 마음만 제대로 닦으면 팔만대장경이 다 소용없다는 뜻이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다. 신이 내 마음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 로가 자기 마음을 꾸준히 정화해 나가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나는 누구며 어 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하는 것.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히 그대로 머무는 경지 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불교다. 좀 어려운가? 불교는 기본적으로 사람 등 모든 존재가 나고 죽음을 되풀이한다는 사상을 전 제로 하고 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라는 말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생사윤회는 서양의 학자들이 최면을 통한 과거 회귀실험을 통해 이 미 증명하고 있다. 무작위로 선택한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계속 과거를 기억하게 했더니 유아기 를 지나 그 너머의 전생을 말하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에 관한 책이 시 중에 나와 있으니 궁금하면 사서 보라. 중들이 머리 깎고 참선을 하는 이유도 이 윤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기 위함 이다. 부처가 되는 데는 몇 가지 단계가 있는데 일부 땡중들이 신문에 관상 봐 준다고 광고내는 것도 이 과정의 극히 일부의 위력을 갖고 돈 벌겠다는 수작이 다. 도를 좀 닦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사람을 보면 그의 앞날이나 지나간 날 이 보인다고 했다. 불가에서는 수행 중에 일어나는 이 신통력을 극히 경계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교만할까 두려워해서이다. 내가 만나본 어느 고승은 참선을 오래 한 선승이었는데 그는 산에 앉아서도 세상 일이 죄다 눈에 보이더라는 말 도 했다. 좌우간, 불교는 우리가 한번 빠져볼 만한 종교라고 나는 권한다. 우선 깊이가 있고 조금 공부하다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중들의 겉모습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선입견이나 편견은 일단 버리고 가까운 사찰에 가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보라.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절간에서는 신도 들더러 나오라, 나오지 말라 소리를 안 한다.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그만이라 는 게 중들의 심산이다. 그러니 찾는 사람은 부담이 없어 좋다. 하나 더. 절에서는 때가 되면 온 사람 누구에게나 밥을 준다. 공양을 한다고 말하는데 중들은 따로 먹는 방이 있고 일반 신도들도 별도의 방이 있으므로 거 기 대강 끼어 앉아 먹어라. 절밥은 먹을 만하다. 49. 작은 여행이 즐겁다. 서울 발 여수 착 한진고속버스 앞. “아니, 이 짜식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출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후배 자식은 도무지 나타날 낌새가 없었다. 버스 는 떠나려고 비실비실 후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후배와 둘이 떠나기로 했던 여행은 나 홀로 여행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 와서 들으니 짜식은 그 시간에 퍼질러 자고 있었다나. 어쨌든 나는 혼자서 여수 에 떨어져 다시 연안부두로 가서는 늦은 점심을 먹고 똑딱선을 탔다. 짜식에게 주워들은 정보를 머리 속으로 굴리며 상주에서 내리면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사람도 거의 없고, 물이 맑은데다 밤에 달이라도 뜨면 경치 죽인다구요. 아 직 개발이 안돼서 그래요.” 그래 넌 나한테 죽었다. 짜식의 말마따나 상주해수욕장에는 한여름인데도 사람이 드물었다. 대학생 몇 팀이 백사장에 텐트를 쳐놓고 한창 배구를 하고 있었다. 민박을 잡아놓고 나선 나는 가게 앞 파라솔 밑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멀쩡한 놈이 청승을 떨고 있으 려니 또래의 대학생 하나가 다가와 혼자 오셨냐고 묻고는 맥없이 사라져갔다. 나는 수영도 하지 않고 청정해역이라는 남해만 실컷 바라보다 돌아왔다. 오자마 자 짜식을 죽지 않을 만큼 팬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득한 옛날의 추억이다. 여행이 사람의 마음을 살찌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말이 없더라도 여행은 우리를 철학자로 만든다. 인생도 하나의 여행이니까. 일상에서 벗어나 가능하다면 자주 여행하는 건 보약을 마시는 것보다 낫다. 보약이 뭔가. 신체가 허약하면 달여 마시는 게 보약이다. 마음이 허한 데 여행보 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그러나 여행에도 격이 있다. 관광지에 우르르 몰려가 때려 마시고 난리치다 오는 건 여행이 아니다. 멀리 동남아나 유럽으로 가는 배낭여행도 좋으나 그건 적금 부어서 가는 것이니 논외로 치고 내가 말하는 건 `작은 여행 만들기`다. 무조건 멀리 가야 여행이 아니다. 부담 없이 아무 대고 생각나면 혼자, 아니면 둘이 훌쩍 갔다오는 여행이 훨씬 즐겁다. 성남 모란시장에 가 온종일 구경하다 오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고 춘천 소양호에 가서 배 타고 청평사 구경하고 오 는 것도 당일치기지만 훌륭한 여행이다. 여행은 여럿이 몰려다니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여럿이 가면 재미는 있겠지만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어서 웃고 떠들었던 기억밖에는 남는 게 없다. 그래서야 마음의 살이 찌겠는가? 혼자서 가라. 혼자 가야 호젓하고 또 혼자 있는 시간도 가져봐야 자신을 되돌 아보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과 함께 나를 찾는 시간이야말로 돌아올 때 흐뭇한 여운을 준다. 50. 고역스런 직장회식 죽이기 직장을 다니면 어떤 형식으로든 회식이 있기 마련이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환영식, 누가 때려치고 나가면 송별식, 연말에는 망년회 등이 최소한의 기본이고 일반적으로는 부서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식을 갖는다. 이외에도 누가 승진을 했으면 축하한다고 먹고, 아들 낳다고 마시고 딸 났으 면 또 딸이냐고 비감주를 사고... 아무튼 이런 회식을 쫓아다니다 보면 일 년은 잠깐 사이에 간다. 회식은 원래 즐거워야 정상이다. 내 돈 아닌 돈으로 마음껏 먹고 마시는데 어 찌 아니 즐거울소냐. 하지만 영 반갑지 않는 게 회식일 수도 있으니 이게 비극 이다. 정기 회식은 1차에서 밥에 술 한 잔 먹고 2차는 대개 나이트클럽이나 디스코 장에 간다. 요즘에는 노래방이 생겨서 이걸로 2차를 때우는 경우도 있다. 회식을 가면 여자 직원에게 술 못 먹여서 안달하는 인간이 있다. 싫다는데도 부득부득 잔 들고 와서는 안 마시면 제 자리로 가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이런 인간에게는 역으로 치는 게 효과적이다. 그게 소주라면 잔을 비우는 조건 으로 당신이 주는 잔도 비우라고 요구하라. 약속을 받아내면 이를 직원 모두에 게 공표하고 잔을 비운 다음 맥주컵에다 가득 부어 안겨라. 두 번 다시 당신에 게 잔을 주지 않을 것이다. 머슴 노롯이 편하려면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고, 윗사람을 더럽게 만나면 회 식도 악몽이 된다. 내 경험담 한 가지. 한때 내가 모셨던 이 양반은 술자리의 끝이 없었다. 밤새 도록 부어라 마셔라 사람을 끌고 다니는데 입 또한 개차반이라 술집에서 같이 마시다 보면 쪽팔려서 못먹는다. 씨팔 조팔 악을 쓰면 X차까지 가는데 여간한 인내심이 없으면 못견딘다. 도망도 숱하게 다녔지만 그러면 다음 날 욕을 해대는 사람이라 나는 작전을 바꿨다. 선수를 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초장부터 맛이 가가지고는 난리를 쳤다. 2차 가서는 아예 뻗어서 방에 누워버렸더니 귀찮던지 다른 직원 시켜서 집으로 보내더라구. 만약 당신의 윗사람이 이런 형이라면 한 번 써봄직하다. 춤 추러 가서 블루스 타임만 되면 눈을 부라리며 스테이지에 나가자는 직원이 나 상사가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못 춘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지가 가르쳐 준다는데야 더 할 말이 없으니까. 의사 표현을 애매하게 하면 이런 인간은 손을 잡고 개 끌듯이 끌고 나가는 타 입니다. 따라서 거절을 분명하게 하던가 아니면 아예 1차에서 끝내고 집으로 가 자. 그렇다고 아예 회식 자리에는 참석조차 안 하는 건 곤란하다. 회식이 고역스 럽다고 늘 빠지는 여직원이 있는데, 가봐야 남자들 술마시는 거나 볼 텐데 뭐 하러 가느냐며 참석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회사 쪽에 서 보면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다. 공금 들여서 괜히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게 아 니다. 회식이라는 편안한 자리를 통해 평소에는 못했던 얘기도 하고 서로가 헐 렁한 상태에서 업무를 떠나 인간적인 유대를 돈독히 하라는 까닭도 있는 것이 다. 그런데 때마다 회식에 빠진다면 찍힐 수 밖에 없다. 회식에 참석해 놓고 중간에 어물어물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다. 불가피한 사정 이 있다면 모르되 밥만 먹고 사라지는 이런 직원은 회식 분위기를 망치는 원흉 이다. 이런 짓은 하지 말자. 싫다는 술 먹이고 블루스 추면서 어영부영 더듬는 남자 도 나쁘지만 참석 안 하거나 중간에 도망가는 여자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자리에서건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 무슨 일이든 지겹고 고역스럽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즐겁게 느끼고 능동적으 로 해나가는 것이 유익하다. 1차가 끝나고 2차를 간다고 나설 때 당신이 앞장서 서 “우리 디스코장 말고 포겟볼 치러 가는 게 어때요?”하거나 “야간에도 개 장하는 놀이공원에 가서 놀자”고 하면 발상이 신선해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51. 입 조심, 귀 조심 아무리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해도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입이 무겁 다`는 표현은 필요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할말이 있어도 신중함을 잃 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말로 인한 해프닝을 종종 겪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회사에서 여자 직원들을 부를 때면 미스 김이니 미스 박이니 해서 성 씨 앞에 미스를 넣어 불렀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성춘향씨니 최명길씨니 해서 성명을 통째로 부르는 게 일반화되었는데 만약 다시 미스 어쩌구 했다가는 그녀에게 요절이 날 것이다. 호칭에서부터 이런 판에야 일상 대화에서 생각 없이 한 말이 부메랑처럼 되날 아와 봉변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직원 하나와 내가 오간만에 전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을 만 나 술을 한 잔 마셨는데 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 하나를 마치 안주 삼아 욕을 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둥, 그럴 수가 있느냐는 둥 하면서 패대기 를 친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우리가 욕을 했던 장본인이 나를 좀 보자더니 “자네 어제 누구랑 술 마시며 내 욕을 했다면서?”하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한동안 어이 가 없어 잠시 말문을 놓다가 “응, 뭐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자네가 그걸 어 떻게 아나?” 하고 물으니 “다 아는 수가 있어. 이 사람아!”하는 것이었다. 지 금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다. 사실을 알아본 즉 전날 오랜만에 만났던 그 사람이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우리가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를 그대로 옮겼고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이 다시 이 얘기를 욕먹은 장본인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 러니까 내가 한 욕이 돌고 돌아 그에게 들어간 것이다. 직장에서나 대인관계에서 불평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동료들과 퇴근 후 자 리를 같이 하면 주된 화제가 회사 얘기고 한참 대화를 하다 보면 남의 얘기를 입에 올리게 되는데, 확인되지 않거나 믿어지지 않는 말이 이때 나오게 된다. 말이란 옮겨질수록 변질되기 마련이어서 나중에는 전혀 엉뚱한 내용이 되기 쉽다. 누가 공금을 잃어버려서 제 돈으로 채워넣었다는 말이 몇 다리 건너가서 는 공금 횡령으로 둔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옮겼다가 화제의 인물이 봉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러므로 직장 동료든 친구든 그에 관해 확실하지 않은 얘기는 듣지 도 말고 옮기지도 말 일이다. “누가 그러는데 아무개가 뭐 어쨌다면서요?” 이 런 식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도 나쁜 버릇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칭찬에는 인색한 반면 험담을 늘어놓기는 즐기는 편이다. 누가 한 사람을 욕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어 마침내는 그 사 람을 인격도 모자라고 양심도 없는 비인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사람을 말하려거든 장점을 얘기하라. 그렇지 않으려거든 험담은 듣지도 말고 옮기지도 말자. 52. 내 아이 버리기 결혼을 하면 남자랑 맨날 자야 하는데, 잠만 자는 게 아니니까 아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요즘에는 남자건 여자건간에 대부분이 맞벌이를 원하므로 결혼해서도 당분간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피임만 할 수 는 없는 일이고, 어떤 계기가 오면 출산을 하는데 이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휴가를 얻어 산후 조리를 마치면 다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이는 친정 엄마를 불러다 기르거나 그게 안 되면 비싼 돈을 들여 애 봐주는 대리모를 고용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아이 보는 일이다. 나도 우리 애들을 길 러봐서 아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더구만. 잠을 잘때 외에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시간 맞춰 우유 먹여야지 깨면 얼르고 달래줘야지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 으면 헐레벌떡 병원 쫓아가야지... 한마디로 돈다. 이런 애물단지를 보는데 친정 엄마라고 힘이 안 들 것인가. 요즘 노인네들도 과거와는 달라서 깨일 만큼 깨여 있다. 즈이들은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 맡겨 놓 고 나돌아다니면서 당신은 단지 아이 할머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생을 감수 하라니 열 받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어떤 할머니는 딸년 보는 앞에서 아이 주는 밥을 일부러 씹어 먹였 단다. 그러니까 달이 기겁을 하고 아이를 채갔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이럴 정도 니 대리모야 말할 것도 없다. 사람 인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나도 들은 얘기인데, 어떤 대리모는 아이 가 울면 우유에 위스키를 한 방울 타서 먹였다고 한다. 이걸 먹은 아이는 취해 서 한 서너 시간은 세상 모르고 잔단다. 나가서 일하는 어미야 이 사정을 알 리 가 있을 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애가 주당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를 낳고서도 일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결혼을 일찍하자. 결혼 하자마자 아이를 낳아 일곱 살까지만 자신이 직접 기르면 그 후에는 유아원도 있고 놀이 방도 있으니 대리모보다 경제적 부담도 덜하고 아이도 이 나이가 되면 생각보다 는 말귀를 알아들어 엄마, 아빠를 이해해주기도 한다. 애가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따지고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그 7년의 공백은 어떻게 메울 건가요? 휴직을 7년이나 봐주는 회사는 없고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해도 그 시간이면 거래처들도 다 떨어져나가고 없을 텐데 말이에요.” 누가 7년 동안 생판 놀래? 아이가 돌만 지나도 힘은 한결 덜든다. 그럼 자기 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도 되고 짬짬이 아이도 함께 데리고 나가 간 단한 일은 볼 수 있다. 내가 출판사 부장으로 있을 때 일어 번역을 하는 젊은 아줌마가 있었는데 가 끔 아장아장 걷는 애도 데리고 와 원고를 주고 가곤 했다. 아이가 있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다. 힘이 들뿐이지. 아이를 버려두고 일하 는 건 죄악이다. 그려러거든 아이를 낳지 마라. 아이는 당신이 마음대로 하는 소 유물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이다. 53. 북한을 우리 품안에 ‘중앙일보’ 이찬삼 기자의 북한 잠행기가 언론계에서 한동안 이슈가 된 적 이 있다. 그 취재 보도에 대해 아직 시시비비가 끊인 건 아니지만 기사만 놓고 본다면 특종 중의 특종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취재 기자로 일했던 나로서도 부 럽기 그지없는 이기자의 기자는 충격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남조선 사람들을 증오하는 북녘 사람들. 연변에 관광 가서 동표들을 망치는 남조선 사람들의 만행(?)을 듣고서 “평화 통일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그들은 이쪽을 깔아뭉개야 할 대상으로만 알고 있었다. “(우리 북조선이) 좀 못산다고 우습게 아는 모양인데, 한민족 거 무슨 소용이 야요.” 나는 이걸 읽으며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신세대들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경수로니 핵사찰이니 해서 정부가 조장한 반북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저 북쪽에는 우 리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사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반감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는 북한의 모습은 정부가 알려준 것이 모두이다. 좀더 알려고 이것저것 캐보았다가 는 국가보안법에 걸려 콩밥을 먹어야 한다.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니마니 해놓고는 국민이 북한을 알겠다고 나서면 쇠고랑을 차는 나라가 이 나 라다. 몇 년 전,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김일성 사망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영원히 살 줄 알았던 그가 죽었다 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아직 죽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막국수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북한은 우리가 쳐부술 대강이 아니다. 저들이 아무리 우리를 죽이네 살리네, 불바다를 만들겠네 해도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라도 북 한을 껴안고 쓰다듬어야 한다. 그게 부모요 형제자매지, 저들이 그런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래, 너죽고 나살 자”식으로 나간다면 이 민족은 앞날이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뜸 그 따위 감상적인 통일론은 오히려 나라를 망 치는 일이라고 매도한다. 저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족속들이 아니라고, 6.25 로 동족을 죽인 살인 집단이니만큼 호락호락 상대할 파트너가 아니라고 단언한 다. 만약, 우리가 경제력으로나 무력으로 북한을 이겨 통일을 한다손 치자. 또 우 리가 흔히 말하는 북한의 적화야욕으로 점령당해 통일되었다 치자. 어느 쪽으로 나 그 굴욕감은 두고두고 우리 민족의 절반을 치욕의 삶에 가두어둘 것이다. 땅 은 하나가 되었으되 정신만은 갈라진 불구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 원흉은 바로 반통일 세력들이다. 남이나 북이나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 는 이데올로기를 품에 안고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통일을 윈 치 않은 세력이다. 따라서 그들은 허튼 짓으로 상대를 비방한다. 어느 한쪽이 욕 을 하면 그걸 뼈다귀처럼 두고두고 핥는다. 이를 빌미로 대화나 접촉은 백년하 청이 되고 그동안 각자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나간다. 이게 우리의 비극이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는 국민이면 대통령도, 주석도 그 안에서 나온다. 문민정부라고 하 지만 과거 군사정권보다 나을 게 없다. 교도소에는 양심수가 우글거리고 시위진 압을 취재하는 사진기자까지 두들겨 패는 형편이다. 우리나 북한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먼저 우리가 북한을 바로 알아야 한다. 저들을 궁지로 몰아세우지 말고 우리 문제를 정치적이 아닌 인도적으로 풀어갈 때 해답이 생긴다. 54. 나만의 스타일을 갖자 어리석은 사람이 만들어서 현명한 사람들이 쫓아가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 4층에 스튜디오가 있는 덕분에 가수며 탤런트, MC 등을 곧잘 볼 수 있다. 요란한 복장을 한 도깨비들이 우르르 나타나면 누군가 “솔리드구만”, “Ref네” 하고 중얼거려서 나는 그제서야 그들의 정체를 안다. 내가 보기에는 머리 스타일 하며 괴상한 신발에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을 걸 치고 다니는 그들이 무슨 외계인 같다. 물론 연예인이니 남보다 튀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꼭 저렇게 입어야 뭐가 되나 하는 여운이 남는다. 개성시대에 살면서 나를 남과 차별화시키겠다는 의지는 긍정할 만하다. 이 수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서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일이 다. 나는 언젠가 새로 산 옷을 입고 나갔다가 반대편에서 나와 똑같은 옷을 입 은 놈과 만난 적이 있는데 얼마나 울화가 치미는지 혼났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 였겠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이 차별화의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걸 너도나도 따라 하면 나중에는 남들 다 입고 신는 걸 다 똑같이 입고 신은 꼴이 된다. 탱크탑이나 브라탑 같은 옷이 새로 등장하면 처음에는 너무 야해서 누구나 망 설일 것이다. 입고는 싶지만 남들의 이목이 뜨겁고 집에서 알면 난리를 칠 테니 어떻게 할까 하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어느 날 과감하게 입고 나선다. 처음 에는 어딜 가나 시선 집중. 그런데 이게 배꼽티처럼 대유행이 되어버리면서 시 선 꽝. “얘도 입었네!” “쟤도 입었데!” 이렇게 되어 도 군중 속에 파묻힌다. 그럼 다시 다른 유행을 찾아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은 유행을 아 아예 무시하고 산다.특별히 큰 유행을 따르지 않는 남성복에서도 요즘엔 쓰리버튼 정장이 유행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폭 좁은 감색 바지에 투 버튼 사의, 넥타이도 폭이 조은 것만 맨다. 옷도 언제나 비슷한 것만 사 입어서 사람들은 내가 항상 같은 옷만 입는 줄 안다. 친 구나 후배들은 멀리서도, 혼잡한 곳에서도 나를 잘 찾아낸다. 나처럼 10년 전이 나 지금이나 비슷한 색깔,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유행에서 벗어나 나만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도 현명한 멋내기가 된다. 나만 의 룩, 나만의 컬러를 고집해 나가면 사람들도 당신이 유행에 둔감하다고 여기 지 못한다. 오히려 놀라워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드무니까.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 않는가. 짧았다가 길어지고 헐렁했다가 타이트해지 며 높았다가 낮아지는 게 유행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끼는 사 람도 있다. 따라가지 않으면 뭔가 뒤처지는 것 같아서, 남들 다 하는데 나도 해 야지 하는 정서가 주범이다. 그러나 나만의 스타일을 같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면서도 패셔너블하 다. 배꼽티가 유행이었지만 못 입어 본 사람이 더 많은 거처럼 유행이 당신과는 상관없을 때도 있으니까. 55. 짝사랑을 왜 해? 왕년에 작사랑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을 속으로 좋아하다 흐지부지 졸업한 사람이 적어도 열에 다섯은 될 텐데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짝사랑의 특징은 대개는 상대방이 모른다는 것. 괜히 저 혼자서 끙끙거리다가 심하면 죽기도 한다. 이 개명천지에 아직도 짝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있다, 분명히. 짝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터무니 없는 관계인 경우이고 하나는 용기가 없어서이다. 터무니없는 사랑이란 말하자면 고백해봐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상대 가 유부남이라든가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그 갭을 메울 자신이 없 는, 아주 잘사는 집 아들 또는 미남인 경우가 많다. 학교 다닐 때 나도 짝사랑을 당해 본 사람이다. 휴학을 해서 나보다 먼저 졸 업하는 동기들 사은회에 갔었는데 여학생 과대표가 나를 슬쩍 부르더니 자기 친 구 하나가 이재현 씨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귀띔을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좀 기 분이 멋쩍기도 하면서도 속으로 ‘병신, 나타나서 당신이 좋아고 하면 누가 뭐 라나...’하고 말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면 짝사랑은 용기를 냄으로써 해결될 문제이 다.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일 중의 하나가 짝사랑인데 그 짓을 왜 하고 있나. 짝사랑의 상대가 직장 동료라면 친한 여자 동료의 도움을 청하자. 괜히 쪽팔 린다고 혼자서 앓기만 하다가는 파랑새는 영원히 날아가 버린다. 용기가 없는 자는 사랑할 자격도 없다. ‘껀수’를 일부러 내서 자리를 만든다. 이때 주변 동료들에게 사전에 그 남 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게 한다. 이미 애인이 있는 남자라면 미팅할 자리 백날 만들어봐야 헛일이 되니까. 볼링을 치러 가자고 해서 당신과 그 남자를 한 조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지 는 침이 저녁 사기나 맥주 사기를 해서 둘의 만남의 시간을 최대한 연장시켜라. 사랑은 대화로 시작된다. 자꾸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 서로의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 마땅하게 떠들 소재가 없다면 회사 얘기라도 하자. 언제나 풍부한 화제 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직장이다. 이렇게 해서 그 남자와 가까워지면 당신은 그동안 자신이 앓아온 짝사랑이 얼 마나 미련한 짓이었는지 후회할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짝사랑의 상대에게 이미 애인이 있다면 깨끗이 포기하라. “골 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냐”하고 접근했다가는 삼각관계에 휘말려 훗날이 심각 하게 꼬일 확률이 많다. 남자란 백 명의 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불 데이트를 즐기며 좋아서 비명을 지른다. 사랑은 용기로 쟁취하는 것이지만 필요할 땐 포기도 할 줄 알아야 마음의 상 처가 작다. 쓸데없이 객기를 부리다가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이 될뿐이며 짝사랑 하고 있을 때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56. 과거는 영원한 비밀 소설 ‘날개’로 유명한 이상이 한 말이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재산이 없는 사람과 같다.” 내용이야 어떻든 우리는 누구나 비밀을 지니고 산다. 어려서 안방 저금통을 털었던 일, 몰래 목욕탕을 들여다보았던 일, 거짓 핑계를 대고 엄마에게 돈 타 엉뚱한 데 쓴 일 등등 사연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려서의 비밀이야 별 것이 없다. 특별히 누구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그 저 야단이나 한 번 맞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족할 것들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비밀의 내용이 점점 심각해지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여자도 그렇지만 남자들도 비밀이 많다. 남녀 관계에 있어 비밀이 뭐가 되겠 는가. 역시 과거의 남녀관계다. 남자는 지나간 여자 얘기, 여자는 지나간 남자 얘기다. 현재 애인 만나면서 과거 애인 얘기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 다. 꼬불치면 꼬불쳤지. 남자의 과거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성적인 경험이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는 치명적인데 여자는 남자들이 (성적으로)다들 그렇고 그렇다는 건 알지만 자기가 만나는 남자의 입으로 그 얘기를 들으면 돌아버린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가 모르는 한 과거에 대해서는 무조건 함구로 일관한다. 반대로 남자가 관심있는 건 여자의 과거다. 저는 옛날에 별 지랄 다하고서는 지가 만나는 여자만금은 눈처럼 순결했으면 바라는게 남자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라고 규방에 숨어 있다 단 한 남자 만나 연 애하고 결혼하나. 철 나면 미팅도 하고 사랑도 하다가 잘 안 되면 찢어지고 또 다른 남자 만나고, 그러는 판인데. 나 때만 해도 애인과 하룻밤을 지새면 당연히 서로 결혼하는 것으로 알았다. 결혼할 만한 사이라야 그랬던 것이다. 데이트할 때도 둘 사이의 간격은 30센티 이상 떨어져 걸었고 손을 잡고 걸으려면 서로의 관계가 상당히 깊었어야만 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대담해져서 사랑이 느껴지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도 있다. 언젠가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는데 저쪽 테이블의 한 커플이 만자하신 가운데도 키스를 진하게 10분 정도 하는 것이었 다.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그 정도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무슨 일을 못 할까 마는, 나는 한편으로 그들이 부러웠다. 신혼여행 가서 각자 돌아오는 부부가 점점 늘고 있다는데 이유가 뭘까? 테스 처럼 남편이 꼬신다고 지나간 남자 얘기를 했을까? 아니면 남편에게 성 경험을 들켰을까. 남편이 술 먹고 과거 여자 얘기를 했을까. 혹시 남편이 불구자라서? 트러블이 뭐였든지간에, 장소가 어디든지간에 과거지사는 묻어 두는 게 상책 이다. 당신이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과거는 언제까지고 가슴에 품 어두는 것이 최선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지 않는가. 공연히 양심에 걸린다면서 훌훌 털어버리면 남자는 맛이 가서 난리를 뽀갤 것이 틀림없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비밀은 무덤 속까지 가져가라. 57. 인맥, 만들고 관리하기 우리 회사에는 한 달에 두어 번씩 보험 아줌마들이 나타난다. 내가 처음에 입 사했을 때는 이쁘장한 젊은 아줌마 하나만 출입을 했었는데 지금은 더 늘어 둘 이 됐다. 이 양반들은 와서 하는 일이 인사하고 사탕 주고 라이프 사이클이 적힌 인쇄 물 하나 던져놓고 가는 게 다다. 그런데도 나는 이들이 오면 슬슬 피한다. 누가 뭘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이다. 영업사원들은 전략이 다 같다. 먼저 안면을 익히는 것이다. 물건을 팔든 못 팔 든 얼굴이 익어야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다가와서 차 한 대 사라, 보험 들어라 한다고 누가 대꾸나 하겠는가. 우선 인간적으로 접 근한 다음에 은근 슬쩍 말을 건네서 사면 사는 거고 아니면 다음에 다시 시도하 자는 게 영업사원들의 수법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살려면 사사건건 모든 일을 홀로 해결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힘들어서 못 산다. 이럴 때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간단 하게 풀릴 수도 있다. 내가 어려서 우리 아버지는 늘 친구가 많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설사 깡패 일지라도 그에게 언제 어떤 도움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어떤 분야든 골 고루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던 것이다. 인맥을 만든다는 건 별 게 아니다. 친구의 친구, 선배, 후배의 선후배, 거래처 의 거래처 등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명함을 꼬박 챙겨서 분야별로 모아두었다가 더러 전화도 하고 지나는 길에 들러 안부를 묻는 것으로 족하다. 이때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당신의 신세를 질 기회를 주거나 만들어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아니면 일부러라도 당신이 작은 신세를 져라. 사람의 관계란 서로 무해무익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나야말로 오만군데 직장을 다 다녀서 만약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인맥 하나만 큼은 뻑적지근할 수 있었는데 워낙 독불장군이라 내 주위에는 열 손가락으로 꼽 을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다. 여자에게 웬 인맥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인맥 만든다고 오지랖 넓 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만 손해 아니냐고, 그러다가 이상한 인간 만나 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싶겠지, 그러나 내가 얘기하는 건 프로들을 위한 것이 다. 아마추어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쇼. 전에 나와 함께 근무하던 한 편집 디자이너는 시집 간다고 그만 두고 나가더 니 우리 거래처 하나를 물고 날랐다. 말하자면 집에서 살림하면서 놀면 뭐 하느 냐고, 일감 얻어다가 일하면서 전에 알던 거래처(종이집, 인쇄소, 제책사, 제판집 등)에 우선 결제하지 않고 외상거래로 돈을 버는 것이다. 물론 수입은 서방님보 다 더 짭짤하다. 웬만한 곳이라면 외상으로 일을 해주지는 않는다. 해줬다가 돈 못 받으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것인가. 그래도 해주는 건 그 사람이 평소 그만 큼 관리를 잘 하고 신뢰를 쌓아갔다는 얘기다. 이건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맥 만들고 관리하기, 별것 아니다. 사소한 관계에서부터 인맥은 만들어진다. 58. 야구, 이렇게 즐긴다 거의 모든 남자들은 스포츠를 적어도 하나쯤은 즐겨 본다. 축구, 야구, 농구 등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종목 중에서 한 가지 정도는 전문가 뺨치게 해설까지 해가며 잘난 척을 하는데 연인이 돼가지고 그의 말을 무슨 암호문 듣듯이 해서 야 만나봐야 지루하기만 하다. 특히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야구는 다른 것들에 비해 룰이 좀 복잡하다. 축 구야 골이 들어가면 “공 인!” 어쩌고 하면서 같이 방방 뜰 수 있지만, 야구는 당신이 보기에 이게 아웃인데 점수가 났다니 뭐가뭔지 모를 대목이 있을 것이 다. 기초부터 시작하자. 프로야구를 기준으로 한다. 야구는 한 팀이 9명으로 구성 된다. 구성원은 투수와 포수, 내야수 넷(1루, 2루, 3루, 유격수)에 외야수 셋(우익 수, 중견수, 좌익수)이 그들이다. 투수는 방망이질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지명 타자가 타석에 나가는 것이다. 타자는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셋을 먹으면 아웃이 되어 죽고 볼 넷을 얻으면 걸어서 1루에 나간다. 즉, 투 스트라이크 스리볼 이내 에 안타로 나가든지 스트라이크를 먹어서 죽든지 아니면 포볼을 골라서 걸어나 가는 것이다. 타자가 친 파울 볼은 스트라이크가 없을 때 두 번까지는 모두 스트라이크로 인정되나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파울 볼은 아무리 많이 쳐도 그저 파울일 뿐이 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맞아도 타자는 1루에 걸어나간다. 이때 루상의 주자가 꽉 찼으면 이른바 ‘밀어내기’가 되어 공격팀은 공짜로 1점을 얻는다. 야구는 안타가 많이 나오고 점수도 많이 나야 관중들도 재미있는 법이다. 다 이긴 게임을 상대방이 뒤집을 때, 다 진 게임을 안타 몇 개로 이길 때 경기를 뛰는 선수는 물론 보는 관중의 희열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원 아웃에 주자 1루, 2루 상태에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방망이를 휘둘렀는 데 이 공이 야수에게 잡혀서 2루와, 1루 주자(타자 주자)가 죽으면 병살타(두 주 자를 죽인 타구)를 쳤다고 한다. 감독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발 빠른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감독은 가끔 ‘스퀴즈’를 시도한다. 타자와 주자에게 사인을 내면 타자는 타이밍을 맞춰 번트를 대고 바로 그 직전에 3루 주자는 홈을 향해 뛰는 것이다. 희생 플라이로 점수가 났다는 말은 원 아웃 상태에서 주자를 3루에 두었을 때 타자가 외야 멀리 플라이 볼을 치면 주자가 야수가 공을 잡자마자 홈을 향해 뛰 어들어와서 점수가 났다는 말이다. 따라서 투 아웃 이후에는 희생 플라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야수가 공을 잡으면 어차피 스리 아웃 체인지가 되니까. 야구의 룰이 복잡하다고 해서 아예 처음부터 보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 다. 축구나 농구에 비해 관전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꾸 보 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안타를 내서 1, 2, 3루를 돌아 홈에 들어오면 점수가 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혼자서 홈런을 치면 1점(솔로 홈런)이지만 주자가 많으면 전세를 순식간에 뒤 집는 것이 야구의 묘미이다. 날씨 좋은 날, 연인과 카페나 극장에서 죽치느니 야 구장을 찾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59. 내일 일은 내일 영화 <혹성 탈출>을 보면 원숭이들이 인간들의 기지로 쳐들어오는 장면이 있 다. 별다른 무기가 없던 인간은 3차원 영상으로 원숭이들에게 지진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원숭이는 이에 몇 분밖에 반응을 보이지 않아 결국 인간의 기지는 궤멸당하는 것이다. 원숭이는 왜 가상현실에서 금세 깨어났을까. 연구자들에 의하면 지능이 낮아 서라고 한다. 지능이 낮으면 상상력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 곧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현실로 돌아온다.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 상이 새로운 시도를 불러일으켰고 그러한 시도는 의미있는 결과를 낳아 그것이 예술로, 과학으로 우리에게 남은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 집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웃기지도 않은 가벼운 공포물도 보지 못한다. 외화 드라마 도 못 보고 좀 으시시한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아예 외면한다. 뭐 밤새 악몽을 꾼다나 ---. 나도 상상력은 풍부한 편이어서 뭘 좀 생각하다 보면 한없이 이어진다. 마 치 세포분열처럼 상상이 계속 확대돼 나중에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 른 이상한 공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걱정이 지나치면 그것도 일종의 피해망상이 라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수많은 망상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나 는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마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다. 특히 열 차가 다리를 건널 때면 공포감은 더 커진다. 성수대교를 떠올리며 ‘만약 이 다 리가 끊어져 강물 속으로 처박힌다면 최소한 수백 명은 죽을 거야. 그럼 전세계 언론이 모두 보도하겠지’ 이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날의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건 전혀 쓸데 없는 짓이다. 대강의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앞날이 어찌될지는 닥쳐봐야 아는 것이다. ‘내일 누구를 만나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이렇게 말하면 어쩌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가 혹 오해라도 한다면 그는 내 곁을 영원히 떠 날지도 모르는데---.’ 이런 식으로 아무리 밤새워 걱정한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된다면 우리는 누구나 걱정만 하고 살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말이 성경에도 나온다. 미리 속을 끓여봐야 아무 득이 없고 도리어 오늘 일까지 망친다. ‘위스턴 처칠도 ’만약에‘라는 단어가 쌓이고 쌓이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만약에 이렇게 된다면---, 만약에 저렇게 된다면--- 이럴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휠씬 유익하다. 살아봐서 알겠지만 인생은 우리가 염려해 온 것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일도 부지기수다. 오늘은 오늘이 고 내일은 내일이다. 60. 누가 이혼을 하나 마이클 잭슨과 리사 마리 프레슬리, 리처드 기어와 신디 크로포드, 줄리아 로 버츠, 마이클 더글러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혼을 했거나 이혼할 거라고 소문난 외국 유명 연예인들이다. 나은 이들의 결혼과 이혼 뉴스를 볼 때마다 ‘인생 참 쉽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인륜대사라는 결혼을 마음 내킨다고 하고 뭐가 안 맞는다고 헤어 지기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 내 정서에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이 풍속이 우리에게도 천천히 다가오고 있 다. 참을 수 없는 결혼의 가벼움 때문에, 단지 살림만 하는 아내로는 살 이유가 없어서, 양보할 줄 모르는 남편과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제 2의 해방을 외치 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여성에게 결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함께 주어지고 있다. 같이 지내보기 전에는 완전한 파악이 거의 불가능한 남자의 인격에 나를 던졌다 가 수렁(?)에서 기어나오는 꼴이 된다면 사랑은 그만두고 엉망진창이 된 내 마 음의 파편을 어디에 가서 찾겠느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대다수의 여성들은 결혼과 자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당분간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은 지속될 것 같다. 처음부터 이혼을 전제로 한 결혼은 없다.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한다는 말처럼, 보고 싶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 결혼인데 누가 광팔고 죽을 건가. 그러나 부 모 자식 간에도 싸우며 사는데 생판 모르고 살던 남남 둘이 어느 날부터 한집에 모여 살면서 의견 충돌이 없으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노릇이다. 사소한 일에 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 심각한 일에 이르기까지 결혼 전에는 몰랐던 상대방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쌍방은 서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늘 주장하는 말이 있다. 싸움은 당사자 둘이 똑같은 사람이라야 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조금이라도 나으면 싸움은 일지 않는다. 이건 내가 40년 동 안 임상(?)을 통해 경험한 바다. 부부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해하고 참고 용서하면 화목하게 잘 산다. 마누라가, 남편이, 아무리 깽깽거리고 왕왕거려도 상대가 이를 받아주지 않거나 무시하면 싸움이 안 된다. 이는 형이상학적인 갈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꼬투리를 잡고 건건마다 물고 뜯다가 나중에 할 말이 없으면 과거까지 들추어내어 서로를 요절내는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추악한 아내와 남편이 있을 뿐이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참을성이 미덕이었다. 더구나 남자라고 해서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어야 했다. 배가 고파도,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도 엄마나 아버지는 “애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가지고, 너, 이 다음에 뭐 가 될래?” 이랬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란 신세대들은 성장하면서 참을 일이 거의 없었다. 의식주에 불편이 별로 없었던데다 핵가족으로 자라 야단치는 사람 은 커녕 성질 받아주고 키워줘서, 좋게 말하면 자기 주장이 강하다. 나는 참을 필요가 없지만 상대방은 참고 받아줘야 기분 좋은 새대. 이런 사람 둘이 만나 살면 결과는 뻔하다. “도장 찍어!” 61. 노래방 노하우 시중에 노래방이 생긴 지 벌써 4년이 넘어간다. 처음 생겼을 때는 몇 군데 없 기도 했지만 어떤 곳인지 감이 안 잡혀서 가는 사람이 많지 않더니 어느 시점부 터 수요가 폭발해 지금은 지천에 깔린 게 노래방이 됐다. 우리 민족이 가무 음곡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역사책에도 나와있을 만큼 오랜 옛날부터 자타가 인정하는데, 사실 어디 놀이모임이나 노래방에 가 보면 그때마 다 나는 놀란다. 다들 가수 뺨치는 솜씨요, 못한다고 빼는 사람도 없다. 노래방 기계는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나올 때 음정, 박자를 기계가 파악해 정 확하게 점수를 매기는 것과 점수를 임의로 미리 입력해 두었다가 부른 순서대로 점수가 나는 것 두 종류다. 기계값은 물론 앞의 것이 비싸서 업주들은 보다 값 이 싼 점수 입력기계를 들여놓아 웬만한 노래방의 점수는 믿을 것이 못된다. 노래방에서 찍는 노래의 번호도 거의 같다고 생각하면 맞다. 공급하는 회사가 한정되어 있어 이 집에서 ‘잘못된 만남’의 번호가 1234였으면 다른 집에서 그 번호를 눌러도 대개는 같은 노래가 뜬다. 그러므로 컴컴한 노래방에서 노래 찾 느라고 책 뒤지지 말고 평소에 자신이 잘 부르는 노래 번호 몇 가지를 적어두었 다가 사용하면 수고스럽지 않다. 노래 잘 부른다는 말을 들으려면 선곡에 유의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자기 가 좋아한다고 해서, 최신곡이라고 해서 자신의 음량이나 음폭에 맞지 않는 노 래를 부르는데, 물론 노래방에 가는 목적이 스트레스 해소라는 데는 이의가 없 다. 못 부른다고 뭐랄 사람도 없고 잘 부르는 사람 누가 때리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쉬운 노래를 고른다. 너무 빠르면 쫓아가기 급급해 노래가 되지 않 는다. 음폭의 변화가 너무 심한 것도 피하자. 저음에서는 모르지만 고음에서는 새 모가지 비트는 소리가 나니까. 한 마디로 말해 전체적으로 무난한 노래를 고르면 부르기도 수월하고 힘도 덜 든다. 어떤 사람은 노래방만 가면 죽자고 가곡만 부르는데 가곡은 가요에 비해 부르기가 열 배 정도 힘들므로 참자. 또 한가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노래를 목으로만 부른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소리는 자세히 들으면 목을 조르는 소리 비슷하다. 배에 힘을 주고 끌어올리듯이 하면 목의 부담이 준다. 노래방 가서 자꾸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 있다. 박자가 너무 빠르다고 만지고 음폭이 너무 높다고 만지는 것이다. 이러면 다음 사람이 부를때 또 조절해야 하 는 일이 생긴다. 노래방 가서도 에티켓은 지켜라. 62. 종교를 가져야 할 이유 인간은 궁극적으로 혼자다. 부모를 포함해 형제, 자매가 있고 자식을 두어도 우리는 어차피 혼자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냉정하게 말해 부모는 우리를 낳았을 뿐이다. 부모가 우리를 선택해서 낳지 않은 것처럼 우리 역시 부모를 선 택한 적이 없다. 선택이 아닌 우연의 소산일지라도 부모는 가이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길렀지만 부모나 우리나 서로를 대신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당신이 아무리 아파도 부 모가 당신을 대신해 아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자식에 대해서도, 형제나 자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아픔을 안타까워할 뿐. 아무도 당신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이해하는 척할 따름이다. 우 리는 태초부터 고독하다. 고독과의 투쟁이 역사는 아닐까. 외로워서 전쟁을 하고, 문자를 만들어서 일기 를 쓰고, 쓸데없는 과학에 매달리고,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나타나 서 사람을 죽였다. 사실은 외로워서. 고독을 가장 잘표현하는 사람이 천재로 불린다. 가장 고독한 사람이 그린 그 림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외로움에 지친 음악가의 소나타가 당신의 밤을 밝 히고, 요절한 시인의 시가 우리를 잠시 쉬게 한다. 당신은 유물론자인가, 유신론자인가. 신이 있기를 바라자. 신이 있어야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그에게 기대서 우리의 영혼을 달래자. 그가 우리에게 주는 건 없다 할지라 도 우리가 그에겐 줄 건 얼마든지 있다. 당신의 죄를 그에게 주라. 줄 곳 없는 사랑도 그에게 주고 남아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도 그에게 주자.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에 양말을 걸어 놓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르니까. 신에게 매달리지는 마라. 매달리면 그는 영원히 당신을 끌고 다닌다. 매달라지 말고 소유하라. 로마의 장군처럼. 종교를 갖는다는 건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63. 쉽게 잠드는 요령 부천이나 안양, 인천 또는 의정부 등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차에 타서 앉자마자 눈 감고 자는 사람들이 많다. 안양에 사는 내 후배 하나도 차만 타면 자는데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상관치 않아 걔하고 어딜 갈라치면 난 혼자 가는 거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야, 너 밤에 어디 일 나가냐?” 이렇게 농을 쳐도 자식은 대답 없이 퍼잔다. 집이 머니까 출퇴근 하기가 고단 하다는 건 이해되지만 이게 집에 가면 바로 자느냐, 그것도 아니다. 말 들어보면 할 짓 다 하고 새벽 한 시가 넘어 잔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단하지 않고 배길 건가. 요즘엔 잠을 잘 자는 것도 복이다. 한밤에 자고 싶어도 못 자는 사람이 의외 로 많다. 잠이 오지를 않아 엎치락뒤치락 하다 새벽에 잠깐 눈 붙이고 출근하는 것이다. 잠을 못 자면 수면 부족으로 신체 전반에 부조화가 일어난다. 밤에 못 잤으니 낮에 잠이 쏟아지고 계속 자다 졸다하게 되니 밤에는 또 잠이 안 오니, 악순환 은 계속된다. 불면이 심한 사람은 규칙적인 생활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약물은 피하고 적 당한 운동으로 몸이 약간 피로함을 느낄 때 잠자리에 든다. 취침 전의 미지근한 샤워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자는 건 불면이 아니라 그저 보통 사람이 어쩌다 잠 이 잘 안 올 때 한 번 써먹는 수준이다. 먼저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말라. 졸리지 않은데 억지로 자봐야 잠이 올 턱 이 없다. 이때는 일어나서 책상 정리를 하든지 앨범 사진을 새로 배열하든지 좌 우간 가벼운 일을 한다. 괜히 자야 한다고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거나 닭장이 든 병아리 센다고 “한 마리, 두 마리---” 해봐야 별 효과가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눈 감고 한가로운 시골길을 천천히 차를 몰고 가는 것을 상상하면 어느새 잠이 든 다. 진부한 방법이지만 책을 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과거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든가 이미 본 잡지를 뒤적거린다. 이때 만화책은 금물. 재미있다고 빠지면 날 샌다. 배가 부르면 잠이 올 거라고 야식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몸매를 포기한 사람 이라면 모를까, 비만의 원인이 되므로 피한다. 야식은 또 다음날 아침 식욕을 떨 어뜨려 아침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게 하므로 결과적으로 우리 몸에 이중의 손 해를 끼친다. 잠이 안 온다고 술을 마시면 어쩌다 한 번은 모르지만 이게 상습적이 될 경우 나중에는 밤마다 소주 한 병은 까야 잠이 드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약이든 술이 든 의존적인 수면은 현명치 못하다. 잠자리에 들면 복잡한 생각은 피해야 한다. 이궁리저궁리 하다 보면 이게 꼬 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라서 수면에 큰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 늘은 무슨 꿈을 꿀까. 꿈 속에서라도 누굴 보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부담없는 마음을 갖고 가능하면 머리를 비운 채 자는 것이 편안한 잠자기의 첫번째 요령 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자는 버릇을 들이고 그 시간이 되면 꼭 자리에 눕는 습관을 기르자.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기도 수월하다. 64. 사진을 잘 찍으려면 전세계에서 우리 민족처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다고 한다. 해외 여행은 물론 국내에서도 어디 놀러가면 죄다 카메라를 둘러메고는 가는 곳마다 자리자고 사진 찍기 바쁘다. 나는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는데 남는 기억이라곤 정신 없이 끌려다니며 사진 찍은 것밖에 없다. 관광을 다닌 게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다닌 것이다. “여행 가서 그래도 남는 건 사진이라구!” 사진만 남으면 뭘 하나. 그렇게 불나게 사진을 찍었는데 한 장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나오긴 나왔 는데 초점이 흐리거나, 분명히 플래시를 터뜨리며 찍었는데 시커먼 사진이 사람 짜증나게 한다. 이게 왜 이럴까? 요즘 나오는 카메라는 거의 전자동이다. 크기는 점점 작아지면서 성능은 과거 보다 더 향상되고 있다. 전문가용이 아닌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셔터만 누르면 되는 자동 카메라는 초점을 맞추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 다. 고정 초점 카메라와 자동 초점 카메라가 그것이다. AF/ZOOM카메라라고 표시 된 것은 초점을 카메라가 알아서 맞춰주고(Auto Focus) 줌 렌즈도 달려 있다는 말이다. 줌 렌즈란 넓게 찍고 싶을 때는 넓게, 멀리 있는 것을 당겨서 찍고 싶을 때는 당겨서 찍을 수 있는 렌즈이다. 따라서 찍는 사람은 보다 다양한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오토 포커스 카메라는 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져 편하기는 하나 사용법을 모르 고 찍으면 초점이 개판인 사진을 보게 된다. 파인더(찍는 사람이 내다보는 구멍) 를 들여다보면 중앙에 조그만 네모나 원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이 표 시를 기준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사용자는 자신이 찍으려는 주 대상을 이 표시에 맞춰서 초점을 잡아야 선명한 사진을 얻는다. 고정 초점 카메라는 생산 단계부터 일정 거리에 아예 초점을 맞추어 놓은 것 으로 대개 카메라의 초점을 2미터 정도에 미리 맞추어 놓는다. 그 때문에 찍는 사람은 초점은 건드릴 필요 없이 2미터 이상만 떨어져 사진을 찍으면 비교적 깨 끗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고정 초점 카메라는 오토 포커스 카메라에 비해 아주 싸다. 줌 렌즈도 달려 있지 않고 넓게 찍는 광각렌즈 하나만 달랑 붙어 있어 야외에서 가벼운 촬영은 부담이 없다. 주의할 점은 언제나 주어진 거리 이상 떨어져 찍어야 한다는 것. 야간이나 실내에서의 촬영에는 플래시가 필수다. 그런데 자동 카메라에 달린 플래시는 터져도 그 밝기가 전문가용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필름 선택으 로 보충해 주면 좋다. 요즘 CF에 자주 선전되는 자동 카메라용 전용 필름 어쩌 구도 바로 이 얘기이다. 우리가 보통 쓰는 필름은 감도가 100이다. 필름 박스 표면이나 필름 롤 옆구 리에 ASA 100이라고 쓰인 게 바로 감도인데 감도란 필름이 흡수할 수 있는 빛 의 양을 말한다고 알면 이해가 빠르다. 감도가 높을수록 필름은 더 많은 빛을 흡수하므로 플래시 촬영에는 고감도 필림이 유리하다. ASA 200정도면 좋다. 감도가 다른 필름을 끼울 때 주의할 점은 카메라에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 다는 것이다. 어떤 카메라는 필름 감도가 다르면 자동으로 읽어서 이에 대처하 지만 못 읽는 카메라는 세팅을 해주어야 한다. 카메라를 잘 살펴보면 조절장치 가 있을텐데 잘 모르겠거든 필름 살 때 아저씨에게 해달라고 한다. 기껏 찍었는데 사진이 하나도 안 나온 건 필름을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필름 을 넣을 때는 제대로(카메라 내부에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다) 넣고 뒷뚜껑을 연 상태에서 셔터를 한 번 눌러라. 필름이 오른쪽으로 감기면서 완전히 말리면 제 대로 된 것이고 필름은 그대로인 채 헛방으로 돌아가면 잘못 넣은 것이 된다. 어떻게 찍어야 좋은 사진을 찍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좋은 사진을 찍는데 왕도는 없다. 많이 찍어보는 것만이 최선이다. 구도가 어떻게 테크닉이 어떻게 해봐야 아마추어에게는 말짱 헛일이다. 우선은 열심히 찍고 보자. 65. 실연에서 나를 건지기 서로 사랑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간에 헤어지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적어도 몇 달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게 실연의 슬픔이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 하나도 지난 연말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차이더니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다. 짜식은 마음이 여려서 더 상처가 컸 는데 아직도 자기가 왜 차였는지를 모르고 있다. 나는 워낙 외모가 현란해서 이제껏 여자에게 차여본 적은 딱 한번밖에 없다. 선을 보러 나갔더니 무슨 대기업 비서실에 있다는 여자가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이 인간이 뜯어먹으러 나온 것이다. 이런 경우도 차인 축에 들어간다면 그게 다 다. 앞에서 나는 이미 사랑은 이미 환상이요 연애는 오래 하면 깨진다고 이른 바 있다. 사랑이 환상이라고 해도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한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와 가슴을 뒤집어 놓고 눈을 멀게 하고는 소설처럼, 영화처럼 내 곁을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이유도 구구각색이다. 가장 유명한 변명은 `너를 사랑하므로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어떻게 들으면 상당히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쓴맛 단맛 다 봤으니 넌 필요 없다는 소리를 상대방에게 고상하게 하는 수작이다. 지금은 이런 변명도 필요 없다고 한다. 처음부터 가볍게 만나고 부담 없이 헤어지는 걸 전제로 한다니까 사랑이고 나발이고 느껴보기도 전에 만 남과 이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아픔은 남는다. 시령연의 후유증은 남자가 더 오래 간다는 속설이 있다. 여자는 금세 잊어버 려도 남자는 평생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건 약간 과장된 듯하다. 남자나 여자나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마친가지 이다. 실연을 당한 사람에게는 세월이 약이다. 아무리 위로를 해봐야 들리지도 않고 온 세상이 캄캄할 뿐이다. 당신이 만약 실연을 당했다면 우선 냉정해져야 한다. 개새끼 소새끼 해봐야 당신만 추해진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면 깨끗이 포기하라. 그런 인간은 두고두고 다른 여자를 곁눈질해 가며 살 테니 차라리 잘 됐다고 여기는 게 현명하다. 실연을 당했다고 꿩 대신 닭이라며 바로 다른 남자를 만나는 짓은 매우 위험 한 발상이다. 아직 그에 대한 미련이 남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봐야 비교 만 되고 오히려 그리움만 키우게 된다. 당분간은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데 노력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도 있다. 처음에는 죽네 사네 해도 차 차 시간이 지나고 얼굴이 잊혀지면 그리움도 사라진다. 세월이 흐르면 실연의 상처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한때 사랑했 던 연인, 그와 함게 지났던 길목들, 카페... 이런 기억이 더러는 당신을 상념에 잠기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정작 가지고 싶은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랑의 아픔은 그마저도 아름다운 것이다. 66. 피 같은 내 월급, 어떻게 쓰나 직장인에게 월급날보다 더 좋은 날은 없다. 직장을 다니는 궁극적인 목적 중 의 하나가 돈을 버는 것이므로 이는 지극히 당연한 정서다. 도장을 내밀 때의 기분도, 봉투를 받았을 때의 느낌도 흐뭇하기는 똑같다. 대기업에서는 전산처리 후 개인별로 은행 구좌에 넣어줘 월급날에는 두툼한 봉투를 받는 맛을 못 느끼 지만 어쨌거나 이 날은 즐거운 날이다. 나는 월급을 받으면, 결혼 전에는 가까운 친구를 불러서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 봉투째 엄마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날마다 얼마씩 타서 썼다. 아마 결혼 안한 많은 직장인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자기 월급을 관리(?)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직장에 나가면 월급 타는 것 뻔히 아는데 자식 도리도 해야 하고 따로 관리하기도 마땅치 않으므로 몽땅 가져다 안긴 다음 필요할 때 마다 타 쓰는 경우이다. 이런 효자, 효녀형이 아닌 다른 유형으로는 월급에서 엄마 용돈 쓰시라고 얼 마 떼어 드리고 자기가 직접 돈 관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부류도 상당히 많을 텐데 알뜰한 똑순이가 아닌 다음에는 문제가 여기서 생겨난다. 낭비벽이 심하면 자칫 빛까지 지며 살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세금을 공제하고 실수령액으로 월 65만원의 급여를 받는다고 하 자(세금 빼고). 상여금은 일단 제외하고 당신이 한달에 쓰는 돈은 얼마나 될까. 우선 교통비와 점심값 등으로 다달이 약 20만원은 용돈으로 잡아야 할 것이 다. 이 돈으로 어쩌다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생맥주라도 마시려면 좀 빡빡하겠 지만 평균으로 잡은 것이니 넘어가자. 그 다음에 엄마 용돈으로 10만원을 드리 면 나머지가 35만원인데 여기서 5만원을 부조금이나 예비비로 떼어 놓으면 약 30만원 정도가 남는다. 이 돈을 몽땅 적금으로 넣으면 안 된다. 스타킹이며 신발, 옷도 사 입어야 하 는데 다 쓸어넣으면 뭘로 살 것이여? 그러므로 적금은 20만원짜리를 붓고 보통 예금으로 항상 10만원의 여유 자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쓰게 되면 쓰고 아니 면 계속 저금이 되니 문제는 없다. 상여금이 나오면 통장에 넣어 두었다가 어느 정도 불어나면 자동 이체로 매달 10만언 정도 붓는 적금을 하나 더 드는 것도 괜찮다. 현재 각 은행은 경쟁이 치 열해서 적금도 각종 혜택이 주어지는 게 많다. 한 은행만 고집하지 말고 여기저 기 알아본 다음 가장 유리하다 싶은 것으로 들자. 적금의 경우 6개월만 부으면 대출도 해주는데 그렇다고 쓸데없이 대출받았다 가는 이자만 부담하는 셈이 되므로 결정적인 때가 아니면 삼가한다. 보험은 내 경험으로 보아 들지 않는 게 낫다. 영업사원들은 좋은 얘기만 잔뜩 하지 약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전혀 해주지 않으므로 들었다가 나중에 혜택도 받지 못하고 중도 해약을 할 경우도 원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불행을 당한 다. 여직원들을 보면 계를 만들어 자기들끼리 돈을 주고 받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별로 득될 게 없다. 다달이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가벼운 계라면 모르되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들지 말자. 피 같은 내 월급, 피 같이 쓰자! 67. 붕어빵, 오뎅, 핫도그에 관한 명상 사무실에서 오후 4시가 넘으련 슬슬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다. 4시 30분 정도 되면 이런 사람들끼리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니면 “심심한데 사다리나 탑시다! ” 하면서 누군가 동조자를 구해 사다리를 그리고, 탄다는 말도 안 했는데 “이 차장님! 몇 번 타실 거예요?” 이래가지고는 강제로 태워 “1천원 되시겠습니다. ”어쩌구 하면서 간식을 사다가 판을 벌인다. 점심 먹고 너더댓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출출하다. 더욱이 아침을 거르고 출 근하는 사람드이 많아 점심은 사실상 `아점`이 되는 셈이어서 늦은 오후에는 간 식 생각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 직원이야 전날 술 퍼마시고 늦게 일어나 더러 아침을 거른다지만 여자 직원들 중에는 다이어트를 이유로 일부러 아침을 굶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다이어트가 내가 보기에는 말짱 도루묵인 것 같다. 출근해서 책상에 앉으면 허기가 지니까 빵을 사다 씹는다. 일부는 11시쯤 어 물어물 나가서 진짜 아점을 먹고 들어온다. 점심시간에는 빈 사무실에서 잠을 잔다. 이러고는 4시쯤 간식을 먹고 6시에 퇴근해서 별 일 없으면 집에 가 저녁 을 먹고 자는 것이다. 가만히 따져 보면 세 끼 다먹는 셈이다. 또 퇴근 후 친구 를 만나도 먹는게 일이다. 번화가를 나가 보면 노상에 온갖 잡화상들이 즐비하다. 액세서리부터 시작해 가방, 신발, 화장품, 카세트 테이프, 삐삐 등등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데 그 틈 사 이에서 붕어빵, 핫도그, 떡볶이, 오뎅(꼬치 어묵이라고 불러야 맞는다) 장수가 빠 지지 않는다. 이 리어카는 언제나 성시를 이룬다. 남자도 있지만 여자가 대부분이다. 길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가나 보이지 않는 엄청난 먼지 와 식기, 포크의 위생 상태를 따지고도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붕어빵이나 핫도그를 입에 물고 길바닥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아연실핵할 노릇이다. 리어카에서 먹는 것도 모자라 그걸 들고 다니며 먹을 이 유가 있을까. 그가 누구일지라도 먹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울 수 없는 모습을 퍼레이드까지 해가며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나. 내 말에 시비를 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밥상머리에 앉은 영감 노릇을 하는 건가. 먹는 것도 즐거움이 다. 먹는 걸 아름답게 보이려는 사람은 없다. 즐거움에 왜 남의 눈을 생각해야 하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가면서 먹는 걸 왜 따지고 드나. 그러는 당신은 한 번도 길에서 사 먹은 적 없냐?” 그러나 기왕에 먹으려거든 분식집에 들어가 먹자. 값도 차이가 없다. 리어카보 다 깨끗할 뿐더러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의 생계를 돕는 차원에 서 사 먹어준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바에야 제대로 먹는 게 낫다. 자꾸 이러니까 내가 무슨 결벽증 환자 같은데 오해하지 마시라. 불량식품 사 먹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품위를 말하는 것이다. 길에서 죽창에 꽂은 오뎅을 간장에 직어 입으로 겨냥하는 모습에는 그 어떤 격도 찾을 수 없다. 68. 자동차 싸게 사는 법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시달리며 출근하다 보면 누구나 `차 한대 뺄까` 하는 마음을 먹게 된다. 몇 해 전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하고 그래서 열차가 제대로 다니지 않던 어느 날, 나는 멋모르고 지하철을 탔다가 배가 터질 뻔했다. 이런 일이 매일같이 계속된다면 누군들 마이카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 가. 나는 아직 차가 없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아직 안 사고 있는데 관심은 많 다. 언젠가는 사야 할 날이 올 테니까. 여성 오너 드라이버들이 크게 늘고 있는 마당에 당신이라고 차 못살 이유는 없다.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면 밤 늦게까지 일 할 경우가 많은데 위 험한 택시보다 한결 여유있는 `내 차`가 좋다. 하지만 차값이 장난이 아니다. 제 값 다 주고 사려니 아깝다. 돈도 모자라고. 자동차를 싸게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연말을 노려라. 연말이 되면 자동차 회사는 재고로 쌓여있는 차를 팔기 위해 대대적인 판촉에 들어간다. 해가 넘어가면 아무리 새차라도 연신ㄱ이 지난 신품 중고차가 되기 때문이다. 연식이 뭔 소리냐, 특히 중고차를 사고 팔 때 이 연식 이 중요하게 거론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쓰고 있는 차가 91년식이라는 소리는 91년에 생산된 차라는 말이다. 연식은 나중에 중고차로 되팔 때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동차 회사가 연 말에 차를 싸게 파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묵으면 묵을수록 새차라도 중고차가 되는 것이다. 연식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새차를 싸게 사려는 사람은 연말 으 기다리자. 그 다음에는 별 이유없이 잘 안 팔리는 차종을 노려보는 것이다. 이런 차는 생산 초기에 문제가 발생했다가 나중에 해결된 차로 당신이 좋아하는 차가 여기 에 속해 있다면 고려해 볼만하다. 이런 차는 할인보다 장기 무이자 할부로 파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중 고차로 되팔 때 손해를 본다는 점이다. 할부 이자와 중고차 시세를 잘 따져 짱 구를 굴린다면 계산이 나올 것이다. 다른 회사의 경쟁 차종과의 대결에서 밀린 차도 노려볼 만하다. 또 신모델이 발표되기 직전이나 직후에 구 모델을 구입하는 것도 괜찮다. 아반떼와 엘란트라 가 이에 속할 것이다. 엘란트라를 뽑을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반떼가 나왔다면 형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 차라리 엘란트라를 싸게 사라. 이번에는 진짜 싸게 사는 법. 몇 년 전에 모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처남이 차를 사려면 말씀만 하라고 했 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그 해 여름 장마로 홍수가 져 물에 잠겼다가 나 온 차가 있는데 그룹사 직원 케이스로 사면 50% 할인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이런 차가 더러는 시중에 판매되는데 내놓고 팔지는 않으나 영업소 직원 하나 만 친해 놓으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으나 최저 약 20% 정 도 할인된다. 이밖에 야적장에 하도 오래 세워놓아 도장(페인트칠)에 맛이 간 차 도 싸게 판다. 단, 수해를 입은 차나 도장에 하자가 생겨 싸게 판 차는 AS에 약 간 차이가 있다. 69. 부모가 결혼을 반대할 때 결혼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꼭 거쳐야 할 절차가 부모의 허락을 얻는 일이다. 부모가 안 계시면 모르되 부모를 무시한 결혼은 사회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인 정받기 어렵고, 자식으로서 부모의 축복 속에 결혼하는 것도 큰 행복이기 때문 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부모가 원하는 사위와 당신이 원하는 남자 사이에 괴리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가 바라는 당신의 남편은 평범 자체다. 그저 내 자식 굶기지 않고 찍 소 리 없이 잘 살아줄 조건만 된다면 OK다. 그러나, 이 단순하게 보이는 요구가 가 만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첫째, 튀는 남자는 안 된다. 일반 회사에서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라면 통과지 만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 이를테면 뮤지션이니 연극배우니 하면 이건 치명적이다. 요즘은 전문가 사회라 별의별 직업이 다 있는데 부모가 이해 못할 직업이라면 적당히 둘러대는게 최선이다. 괜히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주다가는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나타난다. 또 하나는 남자 집안 너무 잘살아도 부모는 거부감을 가지며 너무 못살아도 땡이다. 양쪽 집안이 비슷해야 한다는 게 노인네들의 생각이다. 장남인데 딸린 형제가 많으면 그것도 결격 사유가 된다. 시집 가서 그 뒷바라 지를 다 해야 할 딸 년의 고생문이 훤히 보이니까. 부모는 괜히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니다. 우리 생각 밖으로 아주 객관적인 시각 에서 사위될 남자를 본다. 자식이 좋다며 데려온 남자를 왜 부모라고 굳이 떼어 놓으려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자식의 앞날과 사내 를 저울에 올려놓고 보는 것이다. 그런 부모 생각을 짐작하지 못하고 “나는 죽어도 이 남자와 결혼 하겠으니 그리 아세요!”하고 결혼한 사람치고 잘사는 사람 몇 안된다. 이건 사실이다. 부모가 아 된다는 결혼을 하면 살면서 내내 마음 한 구석이 편치못하다. 명절 때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형제 자매가 다 모이는 자리에서도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남편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수모를 감수하고서라도 내 사랑을 찾아가겠다는 사람이라면 도리가 없겠 지만 결혼 전에 어떻게든 부모의 허락을 얻어내는 것이 양쪽을 위해 바람직하 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슬기가 필요하다. 결 혼하고서도 보란듯이 잘살아주는 딸이라면 부모는 그 자식을 고마워할 것이다. 70. 신혼여행 = 마지막 여행?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여행 중 으뜸이 바로 신혼여행이 아닐까? 승용차에 풍 선 달고 꽃 달고 부모와 친지, 친구들의 축복 속에 공항으로 내달리는 그 기분 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두둑한 주머니에 옆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꿈 같은 4박5일이 펼쳐질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그 순간은 모든 부부들이 꿈꾸 는 최초의 행복이다. 그런데, 이 신혼여행을 무슨 마지막 여행이라도 되는 양 무리를 해서 떠나는 커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장남이 아니라면 혹은 돈 많은 집 자식이 아니라며 모든 부부들은 결혼과 동 시에 전셋방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이 방은 남자가 마련하는 게 관례로 되어 있는데 집에서 한 1,2천 보조 받고 나머지 1,2천은 또 어찌어찌 해서 겨우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다. 여자는 적금 부어 마련한 돈에 부모로부터 `뜯어낸`(사실은 이 액수가 더 크 다) 후원금으로 TV 사고 냉장고 사고, 밥통에 냄비에, 수저 사고 예단 사고 한 없이 사들여댄다. 이러니 어지간한 사람은돈에 쪼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신혼여행도 해외로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결혼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나간다. 내가 결혼할 때는 잘사는 사람이 나 못사는 사람이나 제주도 갔다 오면 그걸로 땡이었는제 지금은 누가 사이판 갔다 왔다면 나는 하와이 가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누리고 살 수 있나. 이리저리 꿰맞추다 보면 계산이 안 나온다. 남들 다 가는데 평생에 한 번인데, 이래서 일단은 카드 로 긋고 가는 것이다. 사실 신혼 초에는 돈 들어갈 구멍이 되게 많다. 시가 처가 인사 다니랴, 집들 이도 이 팀 저 팀 줄줄이 해야지. 결혼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데서 돈 쓰게 된다. 맞벌이를 해도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닌 것이다. 여기에다가 신혼여 행 갔다 온 거 청구서까지 날아오면 돌아버린다. 미혼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혼여행을 평생 마지막 갔다올 여행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랬다구 피끓는 나이에 좀 출혈을 해서라도 허니문 한 번 화끈하게 다녀오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당신이 시한부 인생인가. 길게 내다보고 살자. 내가 아는 여자 하나는 사이판 갔다가 볼 게 없어 호텔방에서 죽치며 비디오 테이프만 보다 왔다고 한다. 신혼여행은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확이하 러 가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비장한 여행이다. 이걸 지금은 (전에도 그 렇긴 했지만) 때려놀러 가는 걸로 아니 돈타령이 안 나올 수 없다. 관광 말고도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돈도 안 들고 말이야. 나이 먹어서, 아이들 하고 가는 여행도 즐겁다. 71. 누가 첫날밤을 두려워하는가 신혼여행지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잠깐 나가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다. 우아하게 저녁 먹고 가볍게 한 잔 하고 방으로 올라가 면 이제 결전의 시간을 맞아야 한다. 첫날 밤의 의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요새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지만,나는 첫날밤 무지하게 떨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이건 여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지금도 이런 여자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잘 넘길 수 있을까?’ 이건 쌍팔년도 얘기지만 과거에는 여자가 먼저 샤워하고 침대에 가 누우면 그 다음에 남자가 들어가 샤워하고 나와서 빨간 불이 켜진 침대로 천천히 다가갔 다. 여자는 침대에 누워 입술을 꼭 깨물고 있다 남자가 비실비실 시트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눈을 질끈 감고 남자가 하는 대로 다 맡겨두었다. 이때 남자는 친구들에게 주워들은 얘기와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상식을 총동 원해 혼자 허둥거리며 용을 쓰는데 정말 순진한 남자는 여자가 보기에도 딱하다 고 한다. 남자건 여자건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긴장이 심하면 경련이 일어나 둘이 붙은 상태(?)에서 의사를 불러야 하는 개 같은 경우를 당한다. 남자와 함께 의사 앞에서 엄청난 쪽팔림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완전 나체인 채. 저녁 먹고 나서 바로 룸에 올라가지 말고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려라. 근처에 볼 만한 구경거리가 있다면 거기 가서 실컷 놀다 들어가는 것이다. 들어와서 TV나 비디오 테이프는 보지 말 것. 이걸 보다 보면 둘 다 잠시 화면에 열중하 느라고 신혼여행을 왔다는 것도 잊어버린다. 끝나고 나면 새로운 긴장만 생긴다. 보려면 약간 야한걸 보라. 너무 진한 걸 보면 당신에게 혐오감이 생겨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아니면 룸 서비스에 와인을 시킨다. 맥주는 배가 부르고 결정적인 순간에 트 림이 나오니까 절대 안 된다. 와인을 마시며 오디오를 틀어놓고 블루스를 추자. 조명은 약간 어둡게 하는데 분위기 고조되면 남자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당신의 긴장을 풀어줄 것이다. 그다음에는 말 안 해도 알겄지? 주의할 점은 뭘 하더라도 능숙한 모습은 금물이다. 남자들은 첫날밤에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이 여자가 전과자는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음 소리, 몸짓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는데 괜한 오해를 살 필요 없게 한다. 연전에 <18센티 여행>이라는 책이 나왔다. 혹자는 이 길이가 그 길이를 말하 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절대 아니다. 그건 인간이 아니다, 말이지. 신혼여행 출발 전에 남자 몸에 대해 알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것도 모르 고 갔다 기겁을 하면 첫날밤이 꽝이 된다. 72. 즐거운 시집살이 예나 지금이나 시집살이는 고달프다. 오늘날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져서 장남도 분가를 시키는 경우가 잦아 고전적 인 의미로서의 시집살이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어떤 큰아들들은 아직도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나가살기를 마다하고 같이 사는 일도 흔하다. 간혹 장남이 아니더라도 시부모와 함께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집살이가 고달픈 건 물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미묘한 감정 때문이다. 시어 머니는 하루 아침에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서, 그리고 며느리와의 견해 차 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더불어 집안 어른으로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견제심리를 갖기 마련이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시어머니는 일단 관찰을 한다. 가장 주목하는 일은 역시 음식솜씨인데 이는 집집마다 조리방법과 식성이 다 르므로 1차적으로 검증받아야 할 대목이다. 어떤 집에서는 김치 담글 때 젓갈을 넣지만 안 넣는 집도 있고 생선을 많이 먹는 집이 있는가 하면 고기를 즐기지 않는 집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집 가서나 가기 직전에 이런 사항을 남자에 게 사전에 묻거나 아니면 시어머니에게 직접 여쭈어 아는 게 현명한 노릇이다. 시아버지의 식성과 식습관도 미리 알아두고 특히 생일, 제삿날 등 행사는 반드 시 챙겨 달력에 표시해 두는건 필수다. 어른들은 부지런한 며느리를 좋아한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조용히 아침 준 비를 하는 며느리는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시어머니와 의견이 대립될 때는 절대 따지고 들거나 가르치려고 들지 말라. 좀 말이 안되더라도 우선은 받아들이고 그 결과로서 시어머니의 판단이 틀렸음 을 보여주는 게 트러블을 막는 방법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대를 막론하고 틀 린 소리를 하면 굳이 이를 아니라고 우기는 만용을 저지르는데 어른에게만은 삼 가자. 시어머니 앞에서 남편과 너무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로울게 없다. 이 는 아들을 뺏겼다는 생각을 갖는 시어머니의 복장에 불을 지피는 행위가 되므로 괜한 트집을 잡힐 우려가 크다. 더욱이 시어머니가 일찍 혼자 된 분이라면 그날 밤은 잠자기 틀렸다. 뭐 좀할 만하면 번번히 호출을 해 열받게 만드니까. 시집살이는 일종의 공동체로서의 삶이다. 남편, 시부모 외에 시동생이 있을 거 고 아이를 낳으면 3대가 한집에 사는 대가족이 되는 것이다. 이런 집단에서 며 느리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안살림에서 일종의 핵과 같은 구실을 하며 때로는 시동생들의 언니나 누나 노릇도 하고 조정자로서 시부모와 시동생들의 채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왕에 시집으로 들어갔으면 잘해야 다 좋은 것이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이를 남편에게 하소연하는 것처럼 남자를 돌게 하는 일도 없다. 시누이가 제 팬티도 안 빨고 내놓는다든지 시동생이 날마다 용돈 달란다고 징징거린다면 이를 고자 질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싸움이 확대되어 시집에서 당신을 편들어 주는 사람은 결국 시아버지만 남게 되는 사태를 초래할 뿐이다.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집안을 화목하고 다정하게 꾸려나가는 몫의 상당 부분이 며느리에게 달렸는데도 이런 삶을 자기만 손해보는 것으로 규정하고 자기만의 주장을 높여간다면 그 집은 지옥이 된다. 지옥에서 사느니 아예 처음부터 장남 과 결혼을 하지 말든지 분가가 가능한 사람과 결혼하자. 73. 혼수는 싸구려로! 양가 어른들이 인사를 하고 날짜가 잡히면 결혼 당사자 둘은 이른바 혼수를 사러 돌아다니느라고 정말 혼수상태가 된다. 나도 혼인 전에 퇴근만 하면 집사람과 함께 남대문 시장이며 아현동 가구골 목, 백화점을 쑤시고 다니면 물건을 골랐는데 다리도 아프거니와 마음에 드는 걸 고르자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예산에 맞추어가며 살림살이를 사는 것만 쫓아다녔는데도 그 지경이니 예단이 며 예물, 예복 고르기까지 더하면 결혼은 두 번 다시 할 짓이 아니다. 왜곡된 결혼 풍속이 시집 가는 많은 여자들을 울리고 있다. 한심한 사내들이 과다한 혼수를 버젓히 요구하는 바람에 결혼이 물건에 사람이 끼여 가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보통 여자들도 혼수를 살 때 보면 자꾸 좋은 것, 비싼 것을 선택해 예산은 늘 초과되고 만다. TV도 25인치를 사겠다고 방방 뜨고 냉장고도 음식점 차릴 일이 있는지 4백, 5백 리터짜리를 고른다. 오디오도 최고급이요 남자 줄 시계, 반지도 형편을 넘어서 몇십 만원짜리를 찾는다. 돈이 많다면야 말릴 이유는 없겠지만 매우 미련한 짓이다. 비싸고 좋은 혼수 는 결혼 당시 한때의 기쁨일 뿐이다. 셋방에 고급 가구를 들이고 화려한 더블 침대에 누워 대문짝만한 TV를 놓고 보다가 잠이 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초과해서 나간 비용을 포함한 혼수비 전체의 생산성을 따져 보면 아주 불합리한 측면이 드러난다. 7,80만원짜리 시계를 찼다고 해서 시간이 잘 맞는 건 아니다. 비싼 예복도 한 번 입으면 버리다시피 하고 남자가 해준 다이아몬드 반지는 결혼하고서도 장농 속에서 낮잠을 잔다. 겁이 나니까 끼고 다니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밖의 예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여자들은 결혼 후에 이미테이션 액세서리를 또 산다. 최근의 전자제품은 라이프 사이클이 짧다. 더 좋고 더 싼 제품이 계속 선보이 고 있다. 최신 모델을 사 보았자 1년이면 구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비싼 걸 살 필요는 없다. 차라리 중가품을 사 몇년에 한 번씩 개비하는 게 신선하다. 침대보다는 온돌방이 여러모로 건강에도 유리하다. 우리 주택의 난방시설은 거의가 바닥에 보일러 파이프를 까는 형식이다. 즉 온돌식 난방인데 바닥에서 떨어져 침대에 얹혀 자면 열효율면에서는 엄청난 낭비가 되는 셈이다. 공간 활 용면에서도 침대는 결정적인 취약점을 갖는다. 침대가 놓인 안방은 성역이 되다 시피 해서 큰 행사를 치르더라도 손님은 비좁은 거실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다 가 야 한다. 안방은 비워둔 채로. 결혼 당사자 둘만 의견의 일치를 본다면 혼수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다. 남 는 돈을 재테크에 활용하면 살림도 윤택해지고 낮잠 자는 혼수로 입는 경제적 손실도 막게 된다. 옛날에는 치마 저고리 한 벌이면 그것이 혼수의 전부였다는데 어쩌다 세상이 이 꼴이 되었을까. 여자들이여, 혼수에 돈 들이지 말자. 74. 부부싸움은 이렇게 결벽증이 있는 사내가 평소에는 잘 하다가도 뚜껑이 열리면 마누라를 두들겨 팬다. 그리고 나서는 잘못했다고 빈다. 여자가 견디다 못해 도망간다. 남자가 쫓 아가 보니 마누라가 웬 놈하고 같이 있다. 부글부글. 다시 게거품을 물지만 결국 총에 맞아 죽는다. 영화(<적과의 동침>)의 내용이기는 한데 이렇게 사는 부부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부인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패고,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푼답 시고 짜증을 내다가 여자가 깽깽거린다고 패고,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 고 팬다. 다만 인격과 성장 환경, 참을성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혼을 하고서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소한 말다툼에서부터 심각한 육박전까지 어느 하나든 경험하게 마련이다. 나는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라 아직 이렇다할 부부싸움은 해보지 않았다. 집사 람이 댕댕거리면 가만히 듣고 있다 어물어물 나가버린다. 안방에 부모도 계신데 콩이야 팥이야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나랑 싸우고 나면 그 다음 날 마누라는 우리 모친에게 한바탕 곤욕을 치를 게 뻔히 보여서 그만두는 것이다. 부부싸움에 관한 나의 철학은 이렇다. “개는 자주 짖어 무섭지 않지만 호랑이는 어쩌다 한 번 울어도 모든 짐승들 이 두려워한다.” 싸우지 않는 부부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차라리 싸우는 부부가 금슬이 좋다 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하나. 무엇보다 당신의 불만을 잔소리하듯 하지 말 것.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마누라의 잔소리다. 이건 분명히 들이라고 하는 소린데 마주 보고 정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설거지 하면서 또는 걸레질이나 빨래를 하면서 궁시렁거리는 거다. “에휴, 내가 사람 잘못 봤지. 이건 허구한 날 술타령이니, 대체 무슨 돈으로 마시는 거야! 남은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림하느라 자장면 한 그릇도 벌벌 떨 며 못 사먹는데 저는 돼지갈비 냄시 풍기며 들어와서는 저녁 차려라, 물 가져와 라.... 내가 무슨 지 식모야 뭐야.” 이 정도로 그치면 그래도 남자는 지은 죄가 있어 입 다물고 모른척한다. 한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하면 남자의 받아치기 공격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할 말이 있으면 정색을 하고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때 말이 길면 안 된다. 말이 길다 보면 피차 감정적으로 나가기 쉽다. 말할 기회가 없거나 말 로는 효과가 없을 거라고 느껴지면 메모지에 적어서 주머니에 넣을 것. 이 방법 은 의외로 효과가 크다. 남자가 기분이 좋을 때를 봐서 평소의 불만을 얘기하는 것도 괜찮다. 술 담배 가 과하다면 당신의 건강이 걱정스럽다는 식으로 뒤집어서 말하고, 월급을 제대 로 가져오지 않는 남편이라면 당신 직장 일이 힘든 모양인데 나도 일자리를 알 아보겠다고 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부드럽게 남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에 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사람은 없다. 또 집에 들어온 남편이 전과 달리 짜증을 자주 내고 화 내는 일이 잦다면 바 깥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이럴 경우 아내의 따뜻한 말처럼 힘 이 되는 것도 없으니 마주 화를 내지 말고 그 이유를 캐물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한다. 남자는 아이처럼 단순하다고 여자들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고 싶은 게 남자의 심리이기도 하니까. 사회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지쳐 들어간 집에서 남편 은 아내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기를 원한다. 물론 살림하는 여자라고 어찌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며 힘들지 않겠냐마는 이 해는 하면서도 표현에 익숙하지 못해 먼저 위로받고 싶은 게 솔직한 남자들의 심정이다. 덧붙여 부부싸움의 금기 중 또 한 가지. 후유증을 하루 이상 넘기지 말라. 75. 술 먹고 맛이 간 애인 다루는 법 얼마 전에 직장 동료들과 회식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퇴근시간에 미술부 부장님이 갑작스럽게 한 잔 먹자고 하는 바람에 졸지에 따라갔는데 합정동으로 가는 것이다. 곱창을 죽이게 하는 집이 있다면서. 정말 그 집 곱창은 나를 죽여 줬다. 아직 늦여름의 후덥지근한 기온이 우리를 비록 길바닥에서 먹게 하긴 했 지만 일곱 명은 소주를 한없이 퍼마셨고 덕분에 한 마리가 맛이 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집 방향이 같은 바람에 내가 떠맡은 그는 깨어날 줄 몰랐다. 우리 집 앞에 도착해서도 짜식은 몸을 가누지 못했고 나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빈 방이 없어 내 집에 데려갈 수도 없었고 여관에 데려가자니 술 취한 인간은 받아 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짜식을 길에서 자게 내버려 두었다. 가방은 내가 챙기고 가면 서 한편으로는 어디 혼좀 나봐라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는 이틀 후 멀쩡하게 출근했다. 전날을 쪽팔려서 도저히 나올 수 없었노라면서... 이건 직장 동료끼리의 해프닝이지만 애인인 남자가 이 꼴이 되면 여자는 더군 다나 대책이 서질 않는다. 그렇다고 나처럼 버리고 갈 수도 없다. 이런 경우를 당하면 남자 집에서 전화를 해서 데려가라고 하고 당신은 그의 동생이 올쯤 해서 택시 타고 가라. 술 마시고 맛이 가는 건 그래도 나은 거다. 남자들은 술을 마시면 주정을 부 리는 등 특유의 버릇을 드러낸다. 엎어져 자는 사람, 한 소리 또 하는 사람, 괜 히 옆자리에 시비를 거는 사람, 나처럼 슬그머니 사라지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 다. 애인과 술을 마실 때는 당신이 더 마시고 싶더라도 남자가 과음하는 걸 막아 야 한다. 주량을 알 테니까 그 이상은 못 마시게 하고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만 약 남자가 더 먹겠다고 하면 집에 간다고 협박(?)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엉큼한 놈은 일부러 술 취한 척한 다음 죽네 사네 괜한 넋두리를 늘어놓아 여자를 안심시켜 놓고 집에 못 가겠다고 개긴다. 이때 마음 약한 여자는 그를 혼자 두고 가지 못하고 어정거리다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술이 취하면 남자나 여자나 쓸데없는 용기가 생기고 평소에는 갖지 않던 욕망 을 채우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남자가 취했다고 해서 그를 필요 이상으로 챙기 는 것은 나중에 후회할 일과 술버릇을 길러주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 커플들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술이 세서 똑같이 마셨는데도 남자가 먼저 가는 일이 왕왕 있다고 하는데 당신이 그렇다면 처음부터 아예 술자리를 만들지 말 것. 괜히 입만 버린다. 애인이 술을 엄청 좋아한다면 그와 함께 술 마시는 날을 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든가 열흘에 한 번 이런식으로 해서 단둘이는 마 시지 말고 그의 친구와 당신 친구 등 넷 정도가 함께 만나 초저녁부터 시작한 다. 초저녁부터 마시라구? 그렇다. 늦게 시작할수록 늦게 끝나니까. 애인이 맛이 가면 그의 친구에게 뒷일을 부탁하면 탈이 없다. 76. 어떻게 야해지나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가 감옥살이를 다 하고 교수직까지 박탈당한 마광 수 교수가 거리낌없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말했을 때 여성계는 비난으로 들끓었었다. 여성을 이른바 노리개로 격하시켰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내 생각 에 그건 마교수의 주장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편견에 불과하다. <즐거운 사라> 역시 마찬가지다. 사라가 뭇 남성들과 망측한 짓을 했다고 해서 그걸 액면 그대 로 받아들인다는 건 소아병적인 발상이다. 마교수가 우리에게 외치는 것은 감추고 숨기는 성을 보다 공론화시키고 자유 롭게 공유하자는 것이다. 뚜껑을 덮는다고 쓰레기통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가라 는 그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으로는 온갖 성적인 공상을 한다. 남자야 말할 것도 없 지만 여자라고 다르지 않다. 멋있는 남자를 보면 그의 품에 안겨보고 싶기도 하 고 야한 영화를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흥분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며 감추고 자시고 할 건덕지도 없는 것이다. 야한 여자란 외모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껍데기만 야한 여자는 야한 여자가 아니다. 그런 여자는 지금 얼마든지 있다. 초미니 스커트에 배꼽티를 입고 의자 에 앉을 때마다 팬티가 보인다고 해서 그게 야한 건가. 그건 저급한 창녀 차림 에 불과하다. 정말로 야한 여자는 정신적으로 자유롭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야한 여자는 섹스에 대해서만 개방적이다. 어 디에서건 제 맘에 들기만 하면 어떤 남자와도 침대로 같이 갈 수 있는 여자를 야한 여자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이건 크나큰 오해요, 우리들이 그간 억압당해온 성적 불만족을 야한 여자에 뒤집어씌운 결과일 따름이다. 야한 여자는 아무에게나 헤프지 않다. 오히려 보통 여자들보다 폐쇄적일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면 마음을 주지 않으며 쉽게 만나 주지도 않는다. 그녀는 도전적이며 창조적이다. 개방적이되 방탕하지 않으며 멋쟁이이되 저급 하지 않다. 실력있고 자신감에 차 있지만 만용에 빠지지 않고 냉정하고 철저하 되 따뜻한 가슴은 언제나 열려있다. 당신도 야한 여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야한 여자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야한 남자를 찾아 나서자. 그 남자야말로 진짜 신세대이며 당신 역시 멋진 신세대로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77. 노출, 남자는 다본다 몇 년 전 여름이다. 종로 2가에서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타는데 승강구 바로 앞 자리에 앉은 치마 입은 미스가 다리를 벌리고 있어 나는 올라타다 말고 횡재(?) 를 했다. 뽀얀 허벅지는 물론 팬티까지 다 본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맨 그런 거나 보고 다니는 줄 알겠지만 그게 아니다. 내가 장님이냐? 보이니까 본 거지. 여름이면 더워서 애고 어른이고 훌훌 벗어부치느라 정신이 없다. 직장에 출근 할 때도 남자야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에 반 소매 와이셔츠가 고작이지만 여자 들은 벗다시피하고 다녀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이런 노출 패션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는 이게 성범죄를 부추긴다고 해서 지탄 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여권 운동단체에서는 그것과 범죄와 무슨 상관이냐며 침을 튀기고 게거품을 문다. 여자가 홀랑벗고 다닌들 그걸 보고 성욕을 품은 새 끼가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노출이 남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니고서야 죽이는 여자가 섹시한 차림으로 지나가는 데 누군들 고개가 돌아가지 않을 건가. 여자 역시 그런 남자들의 힐끔거림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입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여자만 있다면 누가 미니 스커트를 입고 배꼽티를 입겠나. 물론 여자들끼리도 제 멋을 자랑하기 위해 입기도 하지만. 모든 남자들의 눈초리는 쉬지 않는다. 나같이 점잖은 사람도 기회가 생긴다면 그걸 보기 마다하지 않거늘 보통 사람이야 말해 뭐 하는가.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다면 언제나 행동거지에 조심해야 한다. 목이 깊게 파 인 라운드 네크나 브이 네크의 옷을 입었다면 고개를 숙일 때는 왼손을 가슴에 대고 하라. 그냥 수그렸다가는 여기저기서 꼴깍꼴깍하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의 가슴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다. 버스를 탈 경우 자리가 났더라도 앉지 말 라. 자리에 앉으면 서있는 사람은 당신의 가슴팍을 훤히 내려다보는 자세가 된 다. 셔츠가 힘이 없어 앞으로 처지면 서있는 사람은 당신이 무슨 브래지어를 입었 는지, 심지어는 당신의 유두가 무슨 색깔을 띠었는지도 보게 된다. 짧은 미니 스커트를 입고서는 택시 앞자리에 앉지 말 것. 짧은 치마는 앉으면 섰을 때보다 길이가 더 짧아지게 되므로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다. 이거 훔쳐 보 다가 운전기사 접촉사고 낸다. 늦은 밤이면 고양이에게 생선 주는 거다. 자리에 앉았을 때는 반드시 가방이나 책 등 물건으로 허벅지를 가리고 두 다리는 바짝 오무려라. 견물생심이다. 없던 마음도 보면 생긴다고 왜 남자들에게 눈요기를 시키는가. 멋도 중요하지만 내 몸 엉뚱한 자식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성희롱, 성폭력 의 출발점도 여기다. 아, 예쁘고 잘빠진 것도 죄가 되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불행이다. 78.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 이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무도 바위도, 심지어는 하늘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우주도 끊임없이 나고 소멸함을 되풀이하고 있다. 만약 다들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면 세상은 온통 늙은이와 고 물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건 오히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 어야 하고 또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다. 죽음은 또 다른 세계다. 다만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두렵고 고통 스러워서 우리는 다들 그것이 주는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언제까지 영원히 산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가 왜 죽어? 이런 생각은 우리가 육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늙었어도 마음만은 청춘이야”하는 노 인들의 푸념에서도 드러난다.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어느새 몸뚱이가 쭈 굴쭈글해져서 잘 안 된다는 얘기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로 베르베르가 내놓은 소설 (타나토노트)를 보면 사후 세 계의 여행 얘기가 아주 그럴 듯하게 나온다. 살아서는 세상 구경이 힘든 죄수들 을 대상으로 죽음의 상태까지 가는 실험을 통해 그의 영혼이 무엇을 체험하고 오는지를 알아본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전문가(?) 인 내가 봐도 몇 군데를 제외 하고는 별다른 저항감을 주지 않았다. 소설에 따르면 영혼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이른바 저승으로 간다. 완전히 죽지 않은 사람은 육체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끈은 본인의 의지 에 따라 단계별 체험을 통해 계속 이어지거나 끊어진다. 말하자면 삶의 의지가 사라질 때 영혼은 이승을 버리고 저승으로 간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실험 대상자들이 삶의 의지를 버리지 못하도록 예쁘고 잘빠진 간호사를 주겠다 고 하는 등 안간힘을 쓰다가 나중에는 자신들도 저승 여행길에 나서고, 이를 세 상에 발표해 온 세계가 너도나도 저승 간다는 사람들로 아우성을 치르고, 급기 야 종교 전쟁이 저승길에서 벌어지고... 대강 이런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혼과 사후 세계의 존재이다. 유물 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 세계의 석학들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를 능가하는 칼 융 도 죽음의 세계를 접하고는 그 충격적인 체험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 후 어디로 가는가. 티베트 불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자의 서>가 전해져내려오고 있다. 이 책 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은 죽은 후 49일 동안 이승과 저승의 중간을 헤매고 다니 다가 세 단계를 지난다. 처음에는 투명한 빛이 나타나고 이어서 평화의 신과 분 노의 신이 나타나며 마지막으로 섹스하는 남녀의 환상이 나타나는데 그 유혹을 못견뎌 그리로 뛰어든 영혼은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나고 죽기를 반복한다(윤회)’는 불교의 기본적인 인식 이다. 기독교에서는 한 번 가면 오지 않는다. 죄가 많으면 지옥으로 가고 없으면 천 국으로 가는 걸로 끝이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관을 옹호한다. 착하게 살 다가 죽어 천당 가서 째지게 영생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자 지옥이다. 팔자가 좋아 근심 걱정 없이 살면 현세가 극락이요, 더럽게 타고나서 지지리 고생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면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좌우지간, 죽어서 저승 갔다 다시 이 세상으로 오건 말건 죽음은 별게 아닌 것 같다. 고통스럽지만 않다면, 미처 느낄 사이 없이 생을 마감할 수만 있다면, 죽음은 긴 꿈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면 이 꿈은 즐겁고 유쾌할 것이지만 악한 자에게는 악몽이 될 수밖에 없는 꿈일 것이다. 79.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송승환이 부인 양희경에게 이런 대사를 한 적 이 있다. “이런 말세에 아이는 뭐 하러 낳느냐”고. 물론 애를 못 가지는 마누 라가 자격지심 가질까봐 위로의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어떻게 들으면 모골이 송 연하다. 세상이 얼마나 살벌하고 각박하면 대를 이를 자식을 원하면서도 낳지 못한다 는 것인가. 참으로 전대미문의 일이요, 시일야방성대곡 할 노릇이다. 나는 절대로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낙천주의자에 가깝다. 얼마나 산다 고 머리 싸매며 고민하다 가나. 하지만 가만히 팔짱 끼고 이 세상을 내려다보노 라면 도대체 이게 잘될 것 같지가 않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호주에서는 지금 초등학교 사내 아이들에게 콘돔을 나누 어주고 그 사용법을 가르쳐주네 마네로 여론이 분분하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 어차피 좀더 크면 다 알텐데. 아니 지금도 더러 하는 애들도 있으니까 차제에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 일찌감치 가르치는 게 낫다”는 주장이고 다른 쪽에서는 “거 뭔 소리냐, 그거 나눠주면 안하던 녀석들도 실습해 보겠다고 방방 뜰 텐데 지금 어린이 섹스를 조장하자는 거냐”고 반대를 한단다. 세상에!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침을 질질 흘렸다. 짜식들 째지겠다는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서였다. 아니,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 마에 쇠똥도 안 마른 자식들에게 섹스 도구를 나누어주고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를 가르친단 말인가. 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구의 하나로 영화를 꼽는다. 미래 사회를 그리는 공 상과학 영화, 예를 들면 <터미네이터>니 <로보캅>이니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미래 사회도 한결같이 우울하고 음산하다. 인간은 그 때 가서도 추악하기 이를 데 없고 착한 사람은 언제나 쫓기며 사는, 쓸데없이 과학만 발달한 세상이다. 비록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별 차 이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앞날은 조지 오웰의 예언대로 ‘빅 브라더’가 지배할 듯하다. 슈퍼 컴퓨터가 장발장을 악마같이 따라다니던 자베르 경감처럼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 다. 97년이면 우리에게 주어질 전자신분증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된 다. 이 신분증은 신용카드 겸용이자 의료보험증 노릇도 한다하니 정부에서 마음 만 먹으면 우리가 한달에 용돈을 얼마나 쓰는지, 무슨 병을 앓고 있으며 휴일에 는 어디로 놀러다니는지를 고스란히 체크당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카드를 문지르는 것으로 해결되는 세상. 출퇴근 확인도 카드로, 밥도 카드로, 집에 들어갈 때도 열쇠 대신 카드를 꽂고 들어가는 세계. 유전자 조작으로 늙지도 않고 에이즈 백신이 나와 모든 성병에서 해방되는 시대 가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라면 그야말로 소돔성이 따로 없을 것이다. 사고나 병으로, 늙어서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를 않아 노령 인구는 계속 증 가할 것이고 독신자도 계속 늘어 결혼이라는 인륜대사는 무의미해지고 주택은 대부분 원룸 아파트로 바뀔 것이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 마치 정지해버린 것 같은 시간. 값싼 항공료로 좁아진 세계는 우리들에게 에베레스트산 정복을 도봉산 등반쯤 으로 여기게 할 터이고, 아마존 밀림은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남아난 곳이 없을 것이다. 환경단체로 유명한 그린피스는 회복 불가능한 자연 앞에서 스스로 해체를 선 언하고, 지금 독일에서 슬슬 움직이는 네오 나치즘 추종자들은 어쩌면 죽은 히 틀러의 유전자를 구해 그를 되살려낼지도 모른다. 이건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인류가 현재의 이대로 가다가는 기필코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누가 나서서 이 재앙을 막을 것인가. 남극의 오존층은 지 금 이 시점에서도 충분히 심각할 정도로 파괴되어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태평 한 게 현실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80. 포켓볼 123 요즘에는 포켓볼 카페도 생기는 등 외국영화에서나 보았던 포켓볼이 유행이라 해서 포켓볼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도 포켓볼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당구를 배우려면 아는 사람을 데리고 가 게임비 물어가며 하나하나 기초부터 마스터하는 게 최고다. 당구장에서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생판 모르는 시커먼 사 내에게 잘못하면 성희롱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친구나 애인이 가장 적임자다. 포켓볼 당구란 일반 당구와 달리 포켓, 즉 네 코너에 뚫어놓은 구멍에 지정된 당구알을 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포켓볼은 원래 카페 에서 도박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를 국내에 처음 보급한 건 유학생들과 교포들 인데 처음에는 정해진 규칙이 특별히 없어 혼란을 일으키다가 최근에야 게임 규 칙이 정립되었다고 한다. 포켓볼에서 가장 일반적인 경기는 '에잇 볼(Eight ball)'. 공 15개를 모두 놓되 그 가운데에 8번 공을 놓는 것이다. 게임은 두 사람이나 조를 짠 두 팀이 한다. 두 팀은 각각 1~7번 공이나 9~15번 공을 선택해 수구(큐대로 치는 공)로 순서(공 의 번호)에 관계 없이 지정된 포켓에 넣는데 마지막 8번 공을 먼저 넣는 팀이 이기게 된다. 경기 도중 잘못 쳐서 8번 공을 포켓에 넣거나 이 공이 테이블에서 튕겨 나가면 무조건 지게 된다. 보다 스릴있고 박진감 넘치는 게임을 즐기려면 '나인 볼(Nine Ball)'을 치자. 나인 볼은 1번부터 9번까지 아홉 개의 공을 놓고 치는데 이때 9번 공은 가운데 놓는다. 경기자는 초구에 1번 공을 맞춰야 하며 다음부터는 항상 최소 번호의 공을 먼저 쳐서 포켓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어느 팀이든 9번 공을 포켓에 먼저 넣으면 이긴다. 만약 초구에 1번 공을 맞 추고 9번 공이 포켓에 들어가면 단칼에 승부가 나는 셈인데 이런 경우는 기적이 나 우연이니 기대하지 마쇼. 하지만 다 지나가도 9번 공을 포켓에 넣는 불상사(?)가 생기면 역전승을 거두 는 짜릿함이 있으니 에잇 볼보다 재미는 더하다. '14-1 연속게임'은 공을 삼각틀 안에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넣되 1번 공만 맨 앞에 놓으면 되는 게임. '스트레이트 풀 게임'이라고도 한다. 이 게임은 반드 시 공과 들어갈 구멍을 지정해 놓고 한다. 지명 공당 1점이 주어지며 지명된 공 을 제대로 넣는 한 계속 칠 수 있다. 대개 80점이나 1백점 등 자기 점수를 정해 놓고 친다. '로테이션 게임'은 15개의 공을 모두 사용한다. 맨 앞에 1번 공을 놓고 2번과 3번 공은 나머지 두 꼭지점에 놓으며 그 외의 공은 아무렇게나 놔도 된다. 최소 번호의 공부터 차례로 맞추어 나간다. 1번 공을 포켓에 넣으면 1점, 15번 공을 포켓에 넣으면 15점 등 번호와 같은 점수를 얻게 되며 61점을 먼저 얻는 사람이 이긴다. 이밖에 '골프 포켓'이니 '볼링 포켓', '카켓볼' 등 갖가지 게임이 치는 사람의 임의대로 만들어져 있으나 즐기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므로 억지로 배우지 않아 도 된다. 미리 알아야 머리만 아프다. 81. 컴맹이 뭐 어때서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너도나도 누가 컴퓨터를 잘 모른다고 하면 한번 더 쳐다보며 '아니, 여태 컴퓨터를 모르는 인간이 다 있네?'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는 자신도 기껏해야 워드나 쓰는 주 제에 말이다. 나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를 경멸하는 사람 중 하나였고 그 사용법을 모르는 것에 하나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내가 원고 를 넘긴다니까 하는 소리가 아래아 한글 2.5를 쓰느냐고 묻길래 난 PC가 없다, 원고지에 쓴다 했더니 하품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386 PC를 한 대 사다 집에서 두들기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지금도 이걸 쓰면서 늘 불 안해 한다. 컴퓨터를 쓰는 사람이 원고 입력하다 뭐 하나 잘못 누르면 죄다 날아가버리는 통에 사람 돌게 만드는 거다. 원고지 한두 장 분량이라면 모르되 3, 4백장 되는 게 한 순간에 날아가서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어느 누가 뚜껑이 안 열릴 것이며 입에 게거품을 물지 않으랴. 좀 안다는 사람들은 원고 입력 틈틈이 저장을 해 놓으라고 하지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원고지를 붙잡고 파커 만년필로 소설을 쓰고 있었을 것이고, 출판사에서 그런 소리만 하지 않았던들 386 PC를 사지는 않았을 거다. 컴맹이면 어떤가. 컴퓨터를 몰라도 우리가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직장에 서 "컴퓨터를 모르면 넌 짤리는 거야!" 이러지 않는 한 그걸 배워서 이 다음에 살림에 보탤 것도 아니고 그늘에 널었다가 국 끓여 먹을 일도 없으니 그걸 모른 다고 인생에 고춧가루 낄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전자파 외에도 오존가스가 나온다. 눈을 버리고 견비통, 생리불순도 일어난다. 인터네트 몰라도 되고 빌 게이츠가 누군지 몰라도 현명한 사람은 현자로 남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대로 어리석다. 컴퓨터의 미래는 일종의 가전제품화이다. 전혀 문외한일지라도 사용 가능한 컴퓨터가 조만간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도스가 뭔지, 윈도스 95가 뭔지 몰 라도 아무나 쓸 수 있는 컴퓨터가 출현하는 마당에 지금 컴맹이라고 기죽을 까 닭이 없다. 컴맹이 뭐 어때서? 82. 인터네트 맛보기 언론에서 흔히 인터넷이라고 쓰는데 이는 인터네트라고 써야 옳다. 좌우지간, 요즘 들어서 우리는 이 인터네트 어쩌구 하는 소리를 꽤 많이 듣는다. 인터네트 에 음란물이 많으네, 인터네트에 뭐가 올라갔네 하는데 인터네트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를 얘기다. 인터네트란 우리가 흔히 듣는 PC통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 만 그 범위가 전세계라는 것만 다를 뿐. 인터네트는 각 나라의 PC통신망을 한꺼 번에 묶어 놓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찾고 싶다면 인터네트를 통해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하버드대 도 서관이 인터네트에 올라와 있다면 말이다. 그럼, 인터네트에는 어떻게 들어가나. 현재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하이텔, 포스서브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인터네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일단 통신으로 들어가서 go internet를 입력하면 되는데 이용 요금은 천리안의 경우 분당 30원 정도다. 자, 인터네트에 들어갔다고 치자. 뭘 볼 것인가? 인터네트에 대해 귀동냥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안에 각종 정보가 와글와글하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무조건 들어가기만 한다 고 이걸 죄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얘네들이 줄서서 "놀다 가세요!"라고 소리 치지는 않는다. 컴퓨터에 담긴 정보는 모두 방(이걸 유식한 소리로 디렉토리라라고 부른다)을 하나씩 차고 앉아 있다. 아무리 똑똑한 새끼도 이 방 번호를 모르면 찾아가질 못한다.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룸 넘버를 알아야 들어가서 뭘 어째 보지. 인터네트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그 집 주소를 알아 야 한다. 주소만 알면 들어가서 여기저기 뒤져보다 필요한 건 받아서 나중에 프 린트해 보면 된다. 여기서 잠깐 가슴 아픈 소리를 한 마디 해야겠는데, 인터네트는 그야말로 '인 터내셔널 네트워크'라 모든 용어가 몽창 영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영어가 짧은 사람은 "이게 뭔 소리다냐?"를 연발하게 되고 사전 뒤적거리다가 볼장 다 본다. 어쨌거나 인터네트를 즐기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가 전화요금에 이용료가 만만치가 않다. 더욱이 일반 PC의 모뎀(통신을 주고 받게 하는 장치) 속도가 느 려터져서 청구서의 금액은 더 올라간다.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후진 컴퓨터로 하느니 최근 새로 등장한 인터네트 카페 에 가 음료수도 먹고 인터네트도 배워가며 짭짤한 곳을 안내받자. 교보문고 종로 쪽 출구로 나와 왼쪽 좁은 골목으로 20여 미터 들어가면 사이 버 카페 넷(전화 733-7973)이라고 있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11시에 문 을 다는 이곳은 한 시간에 1천5백원만 내면 지도를 받아가며 인터네트를 즐길 수 있다. 마음 좋은 젊은 사장이 싹싹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므로 한번 들러서 두들겨 보면 "아, 인터네트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게 될 것이다. 83. 남산을 아십니까 나는 남산을 꽤 괜찮은 산이라고 생각한다. 시내에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산이요, 갔다가도 여의치 않으면 후딱 내려올 수 있는 산이 남산이 다. 이 나라에서 그렇게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산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후배나 친구, 여자와 함께 영 마땅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을 때 또는 갑 자기 조용한 곳에 앉아 있고 싶어서 “야, 남산이나 가자!”고 하면 그들은 나를 한참 쳐다본다. “남산?와, 미치겠네....” 갈 곳 없는 노인네들이나 가는 남산을 왜 가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런 대답을 들으면 더 미친다. 남산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보나마나 모르고 하는 소리겠지만) 기가 막힐 뿐이다. 남산을 쭈르르 올라갔다가 쭈르르 내려오는 그런 산이 아니다. 제법 규모가 갖춰진 산인데다가 서울 복판에 자리잡았으니 하산을 어느 쪽으로 하느냐에 따 라 내려오면서도 즐거운 산이 된다. 겨울을 빼놓고 남산은 언제 가도 부담이 없다. 말마따나 찾는 사람이 별로 없 어 어느 시간대라도 헐렁해서 복닥거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뭐 개포동에 사는 사람이나 인천에 직장을 둔 사람더러 일부러 남산을 찾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남산이 빤히 보이는 동네에 살거나 남산 가까운 곳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 오르라는 것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83번이나 83-1번 버스를 타고 남산 시립도서관 정류장에서 내리면 서울타워가 버티고 서 있다. 이제 귀찮거나 버스 타기가 애 매하면 택시를 타도 요금에 부담이 없다. 종로나 세종로에서 보통 2천원 안팎이 니까. 남산은 등산 개념이 통하지 않는 산이다. 배낭 메고 남산 가는 거봤냐. 차가 다니는 길 빼놓고는 정상(팔각정)으로 오르는 모든 길이 계단화되어 있어 쉬엄 쉬엄 오르면 아이들도 다리 아프다는 소리를 안한다. 남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국립극장 옆 찻길이 내가 보기에는 가장 경 치가 좋은데 나무가 우거지고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운치를 더 한다. 연인끼리 호젓하게 오르면 분위기도 잡을 수 있다. 키스는 좀 곤란하고. 이 길로 슬금슬금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남산순환도로가 나온다. 여기는 평 상시에 차가 다니지 못하게 해 더 조용하다. 길도 평탄해 걷기는 힘들지 않지만 무덤덤해서 재미가 모자라다. 다리 아픈데 미쳤다고 거길 가느냐고 말할 사람은 케이블 카를 타라. 택시 타 고 남산 케이블 카 나는데 가자면 다 알고 데려다 준다. 거리서 편도만 끊든지 왕복을 끊고 타면 서울타워 바로 밑까지 올라간다. 어떤 사람은 남간 가면 부득부득 서울타워에 올라가자고 하는데 남산을 망친 괴물이야말로 이 거대한 탑이다. 또 올라가봐야 볼 것도 없다. 맑은 날이면 인천 바다가 보인다는데 보이긴 개코도 안 보인다. 스모그가 두껍게 깔린 서울 하늘 밑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셈이다. 그걸 몇 천원씩 주고 올라 가는 사람들이 난 희한하다. 남산에 올라가서 뭘 먹을 생각은 안 하는게 낫다. 음료수나 맥주 한 잔 정도라면 몰라도 밥은 꽝이다. 84. 나는 왜 여자가 더 좋을까 나는 내 자신이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다 닐 때 담임 선생이 매주마다 일기장 검사를 하는 바람에 죽지 못해서 쓴 것 외 에는 뭘 스는 걸 즐겨 하지 않았고 국어도 잘 할지 못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난 이과를 선택했다. 집에서 공대를 가라길래. 공대를 나 와야 밥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적성검사를 해보니 문과 로 나왔다. 나는 이게 왜 이렇게 나왔나, 뭐가 잘못됐나 했다. 이과 적성은 형편 없는데 문과 적성은 엄청나게 노게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공대를 다니다 죽어도 못하겠어 때려치우고 문과대 국문과를 다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비로서 내가 문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이런 걸 천형이라고 한다. 이런 나처럼 우리들 중에는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천형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 다. 나는 남자니까 당연히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여자보다 자꾸 남 자가 좋아지면 처음에는 아마 돌아버릴 것이다. `이 거 내가 왜 이러지? 내가 무 슨 후레디 머큐리냐, 보이 조지냐, 알랭 들롱이냐`(이 사람들은 게이이거나 소문 난 사람들이다. 호모는 게이의 틀린 말). 여자도 마찬가지다. 알다시피, 여자 동성연애자를 레즈비언이라고 하는데 의학 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동성연애는 병이 아니라는게 통설이다. 아직 이 현상에 대해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아 설이 구구하다. 일부 학자들은 사춘기 시절 억압적인 환경을 지녔던 사람에게서 동서애가 나 타나기 쉽다는 가설을 제기하지만 큰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관습적 으로 용인받지 못해 당사자에게 엄청나 고통을 준다. 누굴 붙잡고 하소연도 못 하고 부모나 형제에게도 말 못할 비밀 아닌 비밀로 가슴 속 응어리가 되는 것이 다. 특히 혼기가 차오면 안팎으로 결혼 안하냐고 묻는 바람에 끝내는 버티지 못하 고 집을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고 있다. 해 마다 6월 27일이면 미국 뉴욕에서는 전세계의 동성애자들 수만 명이 모여 대규 모 집회를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동성애자들의 모임이 늘고 활동도 드러 내놓고 하는 중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면 절망하지 말 것. 사랑의 대상자가 남들 과 다를 뿐 그밖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당신이다. 자신의 사랑이 평범하지 못 하다는 사실을 너무 인식하지 말고 가능한 자연스럽게 살자. 정상적인 사람도 하루 종일 사랑을 생가하지는 않는다. 독신주의자가 느는 세상 아닌가. 이 세상 어떤 일도 고민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 떳떳할것도 없지만 떳떳치 못할 것도 없는 게 동성애다. 85. 내 필자가 왜 이래 사주란 사람이 태어난 해, 달, 날, 시간으로 이를 주역으로 풀면 그 사람의 운 수가 나온다. 팔자라는 말은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를 뜻하는 명사. 그러므로 사 주가 좋은 사람은 팔자가 좋을 수도 있다. 주역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이치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태어 난 순간에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하늘과 땅의 기가 시시각각으로 달라서 그렇고 뭐 어쩌고저쩌고 많은데 깊이 들어가면 너무 어려워서 나도 모른다. 하여간, 주역은 점을 치는 것으로 출발해서 나중에는 일종의 철학이 된 분명 한 학문이다. 사서삼경 중의 하나가 주역이다. 주역을 근거로 사주를 봐주는 사람을 흔히 역술가라고 부른다. 대학로나 종로 2가 파고다 공원 근처에 가면 파라솔을 쳐놓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 는데 이들은 대개 사이비 역술가다. 사주를 보는 이유는 미래를 알려는데 있다. 내 팔자는 어떨까? 나는 장차 무 엇이 될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나? 이는 누구에게라도 최대 관심사가 아 닐 수 없다. 어렸을 적 내 습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다음에 내가 저 하늘을 쳐다보 고 있을 때, 그때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생각하는 거였다. 그 후 세월이 지 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나는 더러 죽을 생각도 해보고 가끔은 체념하며 살았다. 94년 가을이던가. 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의 소개로 우리나라에서 다서 손가 락 안에 꼽히는 역술가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충청북도 진천에서 침거 중인 그는 마침 도내 유지들의 방문을 받고 담소 중이어서 우리 일행은 조용하기 그 지없는 마당의 잔디에 앉아 노가리나 풀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기는 그는 저녁이 되자 푸짐한 음식으로 우리를 환대했는데 호기심에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내게 그가 결정적으로 내놓은 말 은 단 한 마디였다.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자신이 걸맞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요 나빠도 굳 은 의지로 헤쳐나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길흉화복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주가 좋고 허벌나게 노력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마냥 퍼져서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제 팔자 제가 만든다`는 말도 있다. 정상적으로 살면 큰 불편 없이 잘 지낼텐 데 괜힌 찧고 까불며 고생을 만들어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을 보면 최 선을 다하지 않거나 적극적이지 못해 아무 계획 없이 자꾸 이일 저일을 벌인다. 별 준비도 하지 않고 일을 벌이다 보니 재대로 되는 일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내 팔자가 왜 이렇까` 한탄만 하지 말고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가 현명하다. 잘 나가는 사람은 그만큼 제 인생에 공을 들인다. 삶에 공자는 없다. 또또복권이 당첨돼 3억이나 되는 돈벼락을 맞은 사람도 다 그만한 노력(돼지꿈을 구면 꼭 복권을 산다든지, 복권을 살 땐 터가 좋다는데 가서 산다든지, 면 년 동안 계속 복권을 산다든지)을 한 때문이다. 86. 독신으로 살려면 앞에서 나는 `전문가가 되려면 혼자 살라`는 말을 했다. 혼자 살면 가족들의 결혼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일하다 밤 늦게 들어가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 혼자 살다 보면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한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막 상 살아 보면 장난이 아님을 실감한다. 식구들과 함께 생활할 때는 몰랐던 부분 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자명 종이 울리기 전에 엄마가 먼저 악을 써서 일어났지만 혼자 살면 이게 없다. 알 람 맞추어 놓고 잔다는 걸 깜박 하고 그냥 자면 퍼질러 자다 지각을 다반사로 하는 거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고 처량한 일 중의 하나가 혼자 밥 퍼먹고 있 는 것. 어지간히 꼼꼼하고 야무진 사람이 아니면 저 혼자 먹겠다고 장봐다 찌개 끓이고 반찬 만들게 되지 않는다. 아침은 잘해야 빵 쪼가리 하나 씹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으니 그걸로 때우고 저녁은 먹는 날 보다(그것도 사서)안 먹는 날이 더 많다. 통제해 주는 사람이 없어 자칫하면 생활이 불규칙해지기 쉽다. 일이 빨리 끝 나도 집에 가봐야 별 볼일이 없어서 바깥으로 돈다. 그러다 보면 지출도 상당히 늘어난다. 그렇다고 생각날 때마다 식구들이 있는 집으로 가 밥을 해결하다 보 면 “미친년, 그럴 걸 왜 나가 사냐!”는 소리나 듣는다.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더 서럽다. 독신을 선언하고 나가 살기 전에 마음의 준 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한번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패배를 선언하는 것과 같다. 가능하면 혼자보다는 둘이 사는 게 여러 모로 낫다. 마음 잘 맞는 사람과 같 이 지내면 경제적으로도 이롭고(전세금, 월세, 전기, 수도요금 분담 등( 정신적으 로도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어 훨씬 든든하다. 이때,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지 않으면 혼자 사는 것만 못한 일이 벌어진다. 공 동체 삶이란 서로 알아서 잘 해야 유지된다. 지내다 보면 밥을 하는 사람은 늘 밥만 하게 되고 청소도 하는 사람만 하게되는데 “아, 열 받아서 못 살겠네!” 하고 싸움이 나면 끝장이다. 여자가 혼자 산다고 하면 넘겨다보는 사내들이 많다. “어떻게 좀 안될까...” 이런 흑심을 품고 슬금슬금 다가서는 늑대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수를 뻗쳐오는 것이다. 또,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결혼을 안한다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걸로 치부하거나 어디 이상이 있어서, 더 심하게는 과 거의 상처 때문에 그런 걸로 지레 짐작하고 뒤에서 수근거린다. 이런 같지 않은 얘기에는 일정 신경 쓰지 말라. 당사자가 개의치 않으면 이런 헛소리는 곧 들어 가게 마련이다. 아직 이 사회는 여자 몸으로 혼자 살기가 만만히 않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다 고 자기 꿈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부딪히자. 87. 남자들만 아는 은어.속어 남자들의 세계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하면 야성인데 이걸 더 물어 설 명하면 폭력성과 성욕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아무리 고상하고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동물성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겉으로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어쩌다 보면 “어머머, 저럴 수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태도나 언변을 보이는 게 발로 그것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 그런 남자는 없다고 보면 틀림없다. 관습과 도덕으로 꽉 묶인 이 세상은 우리에게 폭력과 성욕의 자제를 엄격히 요구한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악으로, 성욕의 최대 절제는 선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이건 사람의 마음까지 통제하지는 못하므로 우리는 표현만 안할 뿐 속 으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 남자들의 은어나 속어는 이의 한 표현 수단으로 보인다. 남자가 여자를 지칭하는 은어로 가장 대중적인 말 `조개`는 다 알것이다. 이말 은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은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조개 대신 등장한 말이 `냄비`. 냄비라는 말이 왜 여자의 그것을 상징하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어느 것도 그럴 듯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추리하기에 는 냄비라는 용기가 보통 찌개를 담아 먹는 것으로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숟가락 을 넣고 먹는다는데서 아마 유흥어에 종사하는 여자를 뜻하는 것 같다(이게 뭔 소리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거다. 한 마디로 임자가 없는 여자, 돈만 주면 아무 나 되는, 그래서 이놈도 숟가락을 디밀고 저놈도 숟가락을 디미는 것). `맛있게 생겼다`는 표현은 아주 미묘한 의미를 지녔는데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다르나 포괄적인 뜻은 얼굴과 몸매가 성욕을 불러일으킨다는 말. `떡`이라는 은어는 여자 그 자체를 의미하며 `떡 먹으로 간다`는 말은 여자와 같이 자러 간다는 뜻. `선수`는 호스티스 등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선수촌`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동네를 의미한다. `기쁨조`는 경우에 따라 뜻이 달 라지는데 함께 술을 마시거나 놀러갈 때 동행한 여자(직장 동료든 누구든 상관 없다)를 남자들끼리 뒤에서 부르는 은어. `천연기념물`은 나이가 찼는데도 아직 처녀이거나 총각인 사람. `보사부 처녀`는 숫처녀이고 `법무부 처녀`는 시집만 안 간 처녀 아닌 처녀. 남자들의 은어나 속어를 알고 나면 아마 협오감이 들 것이다. 거의 모든 속뜻 이 섹스와 관련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말을 늘 쓴 건 아니고 어쩌다 한번 친구나 동료끼리 조용히 주고받으니 염려하지는 않아도 된다. 내가 이를 공개하는 까닭은 더러 못된 놈들이 여자들 들으라는 듯이 “아, 어 제 오랜만에 냄비 좀 닦았더니 고단해 죽겠구만!”하고 즈이들끼리 시시덕거릴 때 혼을 내주라는 차원에서이다. 뚜껑이 열리도록 패줘도 되고. 88. 굶을 것이냐, 먹을 것이냐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건강 비결 한두 가지쯤은 있게 마련이다. 하루에 녹차를 열 잔 이상 마시면 암에 안 걸린다느니, 일어나자마자 냉수를 한 컵 마신다느니, 매주 등산을 간다거나 술 담배를 안하는 게 장땡이라는 등 별의별 비법이 다 많 다. 다 일리있는 방법이다. 녹차는 지방을 분해하고 정신을 말게 하며 아침 냉수 는 위를 흥분시켜 장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고, 등산은 전신운동이니 당연히 좋을 것이고, 몸에 나쁜 술이나 담배를 멀리 한다는데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직장 생활을 10년 넘게 한 나로서 주변의 여자들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들 은 건강보다 다이어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대개는 음주나 흡연을 안하니까 상대적으로 남자에 비해 건강상 문제는 덜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큰 오산이다. 집이 멀어서,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살 빼려고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는 여자 들이 너무 많다. 지금 나와 근무하는 여자 동료들의 90%가 아침을 먹지 않고 출 근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 아침밥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은 없다.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라. 아침은 보통 7시에서 8시 사이에 먹는다. 점심은 12시나 12시 30 분에 먹고 저녁은 7시. 늦어도 9시 안에는 먹는다. 아침과 점심 식사의 간격은 4 시간 가량이다. 점심과 저녁의 간격이 7시간 정도라면 저녁과 그 다음 날 아침 의 공복 시간은 10시간이 웃돈다. 그런데 아침을 거르면 이 간격은 12시간이 넘 는 것이다. 그러니까 출근해서 조금만 지나도 배가 고프고, 아침부터 먹을것을 찾는다. 빵 을 사다 먹지 않으면 슬그머니 나가서 라면을 사먹는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꾹 참았다가 점심 시간에 과식을 한다. 쫄쪽 굶었다가 왕창 때려먹으니 위가 늘 어난다. 요즘 여자들이 아랫배가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불규칙한 식사 습관은 변비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 신체의 리듬을 깨트린 다. 끼니늘 제때 찾아먹는 게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아침은 꼭 먹 어라. 밤새 비었던 속을 적당한 양의 음식으로 채움으로써 소화기 계통의 잠을 깨우는 것이다. 특히 추운 겨울날, 빈 속으로 출근하면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진 다. 눌은밥이라도 한 공기 끓여 먹고 나서면 속도 쓰리지 않고 시간도 크게 줄 일 수 있다. 아침잠 30분을 투자해 당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침을 먹는다고 밥 대신 빵으로 때우는 사람이 있는데 안 먹는 것보다야 낫 지만 밀가루는 화기가 많아 소화가 잘 안된다. 잘못 먹으면 안 먹느니만 못하다. 오히려 찰떡 하나가 훨씬 든든하다. 점심을 거르는 직장인은 거의 없으니 논외로 치자. 다만 과식만 피하면 된다. 문제는 저녁이다. 여자들 중 일부는 저녁을 꼭꼭 챙겨먹거나 (아침을 안 먹고) 다이어트 한다며 간식만 먹다가 배고픔을 못 참고 밤늦게 라면이나 빵을 먹는데 이는 현명치 못한 짓이다. 불가에서는 원래 오후불식이라 해서 저녁을 먹지 않았다. 잠자리를 앞두고 음 식을 먹으면 머리가 흐려진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굶지는 않 고 죽 등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있다. 저녁을 먹는다면 일찍 먹자. 퇴근 전 5시쯤이 가장 배고플 시간이니 이때 간 단히 김밥이나 떡볶기 등을 먹어 두면 허기는 면한다. 그후 잠자기 전까지는 가 능하면 먹지 않는 게 좋고 만약 정 못 참겠다면 과일이나 우유 정도로 참아라. 잠자기 전에 배를 채우는 것은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다음날 일어나도 미처 소화가 되지 않아 아침을 먹지 못하게 된다. 하루 두 끼, 아침 점심은 꼭 먹고 저녁은 간식으로 해결한다는 기분으로 생활 하면 다이어트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배변도 원활해지고 아침 컨디션도 가벼 워진다. 89. 정치와 여성의 함수 아마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도 없을 것이다. 서넛이 모 였다 하면 반드시 정치문제가 화제에 오른다. 그때마다 정말 평론가 빰치는 분 석과 전망이 오가는데 나는 늘 감탄을 금치 못한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정보와 식견을 갖게 되었을까? 하기야 신문이나 방송, 잡지에서도 하도 떠 들어대니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박찬종씨가 지금 어느당에 소속되어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무소속인지를 모른다. 지금이 7공화국인지도 한참 생각해 봐야 알고, 노태우씨나 전두환씨가 왜 이제서야 단죄를 받아야 하는지 더더욱 알지 못한다. 이 나라 정치판이라는 게 워낙 복마전이어서 정치가들도 헷갈리는 마당인데 하물며 문외한이야 감히 그 속내를 어찌 짐작이나 하랴. 정치부 기자조차 기사 를 감으로 쓴다지 않는가. 그러나 모든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나라가 제대로 서질 않는다. 달마다 꼼짝없이 갑근세 꼬박꼬박 내는 우리가 왜 저들 좋은일 시키는가. 지난 연말. 나는 출퇴근 때마다 열 받아 혼났다. 아니 제기랄, 멀쩡한 보도 블 럭을 뜯어내고 새걸로 가는 것이 아닌가. 동료 하나는 카메라 출동에 고발해 버 리겠다고 방방 떴다. 이런 짓거리는 남는 예산을 그해 안에 다 써버리겠다는 수 작에서 나온 것이다. 지방자치 원년 어쩌구 하면서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하니 어이가 없다. 언젠가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사람이 한국인을 들쥐에 비견한 적이 있다. 앞의 쥐 한 마리를 따라 모든 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졸졸 따라다닌다는 것이 다. 매우 서글픈 발언이지만 나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외국인은 한국인들은 정부의 말을 너무 잘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뭐든 지 하루 아침에 실시된다. 쓰레기종량제도, 금융실명제도, 대입 자율화도 국민의 의견 수렴과 검증 없이 정권이 제 마음대로 정하고 실시한다. 그런데도 반대는 거의 없다. 일부 언론이나 단체가 몇 번 떠들고 나면 그만이다. 정권은 지나가는 행상인과 다를 바 없다. 제멋대로 떠들다 가면 그만이다. 그 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쓰레기만 수북했다.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비겁하고 야비하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학문을 벼슬 과 바꾸고, 언론은 비판과 감시를 포기하는 대가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 한국은 서울대와 육사가 말아먹고 있다는 말도 있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활성화되기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일로 보이지만 여성들이 정치는 남자들의 몫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치 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넓혀간다면 나라꼴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 틀 림없다. 선거 때면 악착같이 투표하자. 누가 나은지 철저히 비교해서 그를 찍자. 여성 들의 표를 놓치면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게 만들고, 행정적인 불이익을 당하면 소송을 걸어서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남자보다 여자가 더 무섭다는 말 이 나오게 하자. 90. 여자가 남자보다 나은 이유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말이 있다. 닭이 먼저라면 닭은 그럼 어디서 났 느냐는 물음이 생기고, 계란이 먼저라면 계란을 품었을 닭은 어디 있느냐는 질 문에 빠진다. 같은 인간으로서, 남자가 나은가 아니면 여자가 더 나은가 하는 질문도 아마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을까? 서로가 상대방보다 더 낫다면 그 이유를 대야 한 다. 남자는 여자보다 뭐가 더 나을까 우선 육체적으로 힘이 세다. 그러나 앞으로 이러한 비교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남자보다 더 기운을 쓸 것 같은 여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나만 해도 우리 사무실에서 만약 그녀와 한판 붙는다면 심사숙고 해보아야 할 여직원이 있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나보다 더 나간다. 난 그녀를 이길 자신이 없다. 힘이 세다는 고정관념 빼놓고 남자가 여자보다 더 나은 점을 찾기는 쉽지 않 다. 머리가 더 좋은가? 그건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알려진 바로는 남자가 여자 에 비해 추리력과 판단력이 낫다지만 그것으로 지능이 완전히 결정되는 것은 아 니다. 그 다음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면 여자가 남자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 백 번을 양보해도 여자는 남자보다 아름답다. 나는 신디 크로포드나 클라우디 아 시퍼, 나탈리 우드, 왕조현같은 여자들을 보면 몸살이 난다. 그들을 어떻게 해보았으면 해서가 아니라 미의 극치를 대하는 느낌 때문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분명 대단한 미학자일 것이다. 아름다운, 너무 아름다워 악 마적이기까지 한 여자를 보면 같은 여자들도 그 미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남 자는 아름답지 않다. 미남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가지 않지만 미녀는 오래 간다.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의 이름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알랭들롱은 기 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자들의 껍데기인 외모에 대해서만 남자들과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미 그 자체에서 남자는 여자와 비교가 될 수 없다 는 얘기다. 아름다움은 여자들이 타고난 축복이다. 그에 비하면 남자는 불행한 존재다. 서로 동등하다고 가정한다면 아름다움으로 해서 여자는 남자보다 충분히 비교 우위에 서있다. 이것이 여자가 남자보다 나은 이유이다. 하지만 남자가 낫건 여자가 더 낫건 그것이 뭐가 중요한다. 중요한 것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서로 더 나을 필요도, 더 못날 이유 도 없다. 91. 눈물의 타이밍 사람이 살면서 언제나 웃을 수만은 없다. 울화통이 터지면 성질도 낼 수 있고 분을 못 이기면 싸울 수도 있는 것이다. 울음도 마찬가지다. 슬플 때 실컷 울고 나면 슬픔이 조금은 가라앉는다는 것은 누구나 한두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런데 걸핏하면 짜는 사람이 있다. 천성이 그래서 그런 것이라면 굳이 할 말 은 없지만 남 보기에 꼴 사나운 것만은 틀림없다. 소리만 꽥 질러도 찔찔, 가볍 게 야단을 쳐도 찔찔, 할 말이 없을 때도 흑흑... 이러면 상대방은 한편으로는 황 당하고 짜증난다. 고장난 수도꼭지도 아니건만 이건 툭하면 울고 짜니 주변에서 곱게 봐줄 리 만무하다. 당사자는 울만하니까 우는 거라고 항변하겠지만 그 말을 곧이 듣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남자 직원이 나이 어린 여자직원과 농담 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실실 웃으며 여자를 골리고 있었는데 여자의 안색이 변 하더니 급기야는 화장실로 뛰어가는 것 아닌가. 그녀는 한참 뒤에야 돌아왔다. 물론 오줌이 마려워서 간 건 아니다. 직장생활 을 하다 보면 더러 여직원을 장남감처럼 다루는 남자들을 본다. 제깐에는 악의 없이 웃고 놀자는 거였는데 듣는 여자 쪽에서는 장난이 아니니까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는 화장실 가서 울 게 아니라 다부지게 쏘아붙여야 한다. 울기는 왜 울어. 여자들은 눈물을 일종의 무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울므로써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고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 식시키려는 의도 강하다. 그러한 방법이 대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입 뒀다 뭐에 쓰려고 우나. 눈물은 남에게 보이지 않고 혼자서 소리 없이 흘리는 게 아름답지 않을까? 부모가 돌아가셨다면야 대성통곡을 해도 부끄럽지 않지만 사소한 일에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내 모습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울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때라도 꾹 참았다가 내 방에서 문 잠가놓고 혼자 울자. 혼자 흘리는 눈물은 자신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인간사 1백년도 채 되지 않는 삶에서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고 그 슬픔을 내면에서 삭이는 일에 분명 자기 눈물만큼 훌륭한 약은 없다. 우는 동안 비애는 가슴 속에 한 줄기 주름으 로 남아서 우리를 성장시키고 나중에 우리에게 세상을 관조하는 눈을 갖게 한 다. 그렇다고 까딱하면 문 잠가놓고 울라는 것은 아니다. 울만큼 술픈 일은 우리 생에서 별로 많지 않다. 눈물을 아끼자. 내가 보인 눈물은 슬픔을 전파시킬 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92. 비오는 날에는 고궁으로 지난 여름, 강남의 어느 아파트촌에서 밤에도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어 잠을 못 잔다는 뉴스가 있었다. 매미가 얼마나 많았으면 무더운 여름 시원함마저 느 끼게 하는 그 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잤을까. 대도시에 사는 우리는 온갖 소음에 시달려 이제 웬만한 소리에는 만성이 되어 있다시피 하다.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듣지 않으려고 별수없이 너도나도 카세트 이어폰이라도 귀에 꽂고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놈은 이걸 하도 크게 틀고 다니다가 귀가 어떻게 되었다면서 징코민을 먹고 다니기도 했다. 근 데 징코민이 귀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서부터 버스기사가 제멋대로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 시도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삐삐 소리, 돈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면서 찬 송가를 늘어지게 부르는 맹인의 노랫소리, 소형 트럭에 야채와 생선을 싣고 동 네 구석구석 누비며 “친애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 어쩌구 하는 행상의 녹음 기 소리. 잠 좀 잘라치면 들려오는 이웃집 애 우는 소리. “죽여라 죽여!” 악쓰 는 소리,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 등등 일일이 신경 쓰고 살다 보면 돌아버 린다. 온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다 보니 더러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려 해도 여 의치가 않다. 귓구명에 솜 틀어먹고 사색에 빠지겠달수도 없지 않는가. 이럴 땐, 비 오는 날 고궁에 가 보자. 비 쏟아지는데 거긴 뭐하려 가느냐고? 누가 장마철에 가라고 그랬냐. 이슬비나 가랑비가 부슬부슬 또는 추적추적 내리 는 날 시간내서 가 보자는 얘기다. 혼자 가는 게 좋다. 둘이 가면 잡담이 많아지니 사색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득 이 없어진다. 비 오는 날 고궁에 가면 사람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평일이라면 고즈넉하기 가 이를 데 없어 겁이 많은 사람은 좀 으시시할 정도다. 조용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방이 괴괴하여 우산 접고 추녀 밑에 앉아서 떨어지는 낙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노라면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거창한 철학적 명제가 저절로 떠오른다. 이런 사색이 내키지 않는 사람은 그냥 멍하니 있다 와도 그만이다. 고요 속의 빗소리를 즐기면서 잎새에 튀는 물방울도 바라보고 연못에 무수히 그려지는 동 심원을 마냥 바라보고 어슬렁어슬렁 거닐다 와도 누가 뭐랄 사람 없다. 그렇지만 시청 앞에 있는 덕수궁은 갈 만한 곳이 못 된다. 워낙 도심지에 있 어 항상 사람이 들끓는데다가 (이곳은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도 사람이 많다) 궁의 규모가 작고, 석조전이 자리잡고 있어 고색창연한 맛이 없다. 그러니 덕수 궁엔 가나마나다. 고궁 중에는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울창한 수림이 있는 비원까지 안고 있 는 창덕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궁궐이지만 이곳은 문화재를 보호한답시고 안 내원이 정해진 시간마다 관람객을 우르르 데리고 다니는 바람에 한 시간 남짓이 면 거리로 쫓겨난다. 조용하고 사람 없기로는 종로 4가 세운상가 맞은편에 있는 종묘가 최고다. 조 선왕조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이 궁은 일반 궁과는 달리 제사만 지내는 그 특수성에 따라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도 숲이 우거져 있고 일반일들의 발길이 뜸 해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도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여기의 명칭이 `묘`라서 아무래도 썰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창경궁 으로 넘어가자. 종묘와 창경궁은 육교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입장료는 한군데 에서만 내면 된다. 창경궁은 창경원에서 궁으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는다. 복원 사업으로 궁 전체가 새로 지은 것 같아 정취는 떨어지나 그런대로 괜찮다. 비와 함께 정적을 즐기기에 가장 무난한 궁궐은 경복궁이다. 넓다란 경회루 연못의 잉어에게 과자 던져주는 재미도 그럴 듯하고 향원정의 연꽃을 바라보며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벗삼아 고독을 씹어 보기에도 적당한 궁이다. 그런데 이 경복궁은 바로 옆에 청와대 경비대가 있어 느닷없이 기합 소리가 내질러지기도 하니 놀라지 마시라. 93. 바캉스냐, 휴가냐 7,8월 여름만 오면 이 나라는 온통 `피서 신드롬`에 바진다. 직장마다 휴가 일 정표가 부서별로 돌아다니면 전화기는 슬슬 불이 나기 시작한다. 가까운 사람끼 리 휴가 일정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휴가철이 되면 애고 어른이고 다들 고민에 빠진다. 언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러다가 대부분은 `7말8초` 동해안, 설악산으로 잡는다. 7월 초는 아직 안 덥고 7 월 중순에는 장마가 있으며 8월 초가 지나면 바다에 못 들어가니 7말8초에 다들 왕창 몰린다. “가는 길이 고생스럽기는 해도 피서야 더울 때 가는 거지 뭐. 왜 사람 구경 하러 간다는 말도 있잖아. 서해안은 물이 더럽고 남해안은 너무 멀고, 뭐니뭐니 해도 역시 피서는 동해가 최고라구. 산과 바다가 같이 있으니 그리루 몰리는 건 당연한 거 아뇨?” 이 얘기는 `휴가는 제일 더울 때 좀 고생스럽더라도 시원한 데 가서 놀다 와 야 한다`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휴가 때 피서 다녀오는것 뭐랄 사람은 없다. 고 생을 하거나 말거나 제가 좋아 갔다 왔는데 누가 뭐라겠나. 하지만 3박4일, 4박5일 휴가 갔다 와서 골골거리는 직원을 수고했다고 등 두 들겨줄 상사는 분명히 없다. 더 골때리는 건 바로 본인이다. 피곤이 풀리지 않아 일주일은 헤매고 다닌다. 휴가는 말 그대로 재 충전의 시간이다. 직장생활에 찌든 직원들에게 잠시나마 조직을 벗어나 숨 한번 쉬게 해주는데 휴가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휴가 를 통해 충전은 커녕 스트레스만 쌓여와서 더 겔겔거리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여름 휴가는 단지 피서라는 발상에서 벗어나 보자. 아니면 남들이 하는 식대 로의 피서에서 탈피해보자. 1년에 한번 주어지는 휴가에 왜 생고생을 사서 하는 가. 최소한 7말7초는 피하자. 이렇게 말하면 “여보쇼. 요즘 세상에 누가 그때 피 서 간답니까? 다 옛날 얘기요”할지 모르나 아직도 7말8초 선호는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부터도 그러니까. 유명 피서지에 갈거라면 일찍 가는 것이 현명하다. 시즌이 끝나고 가면 그동 안 피서개들이 어지럽히고 간 자리를 찾아드는 꼴이므로 안 가느니만 못하다. 피서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일찌감치 가면 물가도 싸고 상인들도 덜 불친절하다. 대도시 출신에게 가장 바람직한 휴가는 친구나 직장 동료의 시골고향 (저수지 나 강, 바다가 가까이 있되 피서지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보내는 것이다. 돈 적 게 들지, 조용하고 한적하지, 잘만 하면 평소 휴일에도 찾아가 쉬었다 올 수 있 는 제2의 고향을 만들 수도 있다.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찾아보면 이런 시골을 가진 사람이 당신 주변에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우아하게 휴가를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특급 호텔 서머 패키지가 짭짤하다고 한다. 2박3일에 10만원대의 가격인 이 패키지는 보통 때는 하룻밤에 10만원이 넘는 방에서 잠을 자고 (나도 자봤는데 서비스며 인테리어가 캡이다. 단 냉장고 물건은 건드리지 말것. 꺼내서 만져만 보고 넣어놔도 체크 아웃할때 돈을 내야 되는 경우가 있다. 센서가 달려 있어 자동으로 계산이 된다나) 아침에 일어나면 밥 주지. 하루 종일 부설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있지 정말 괜찮다고 한다. 단, 점심과 저녁밥은 안 준다. 사발면을 꼬 불쳐서 갖고 들어가든지 밖에 나와서 떡볶기를 사 먹든지 알아서 해결할 것. 이나마도 돈이 아깝고 몸매에 자신 없어 그런 데는 거저 가라고 해도 못가겠 다는 사람은 `동네남아시아`에서 `방골라ㄷ시아`하다가 `방콕`이나 가자 (동네에 남아서 이 방 저 방 헤매며 굴러다니다가 방에 콕 처박히자는 말이다). 만화책 잔뜩 빌려다가 차강ㄴ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보는 맛은,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정말 죽인다.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94. 여보세요, 김건모 있어요? 흔히 여자들은 ‘3M'에 약하다고 말한다. Manner, Money, Mood가 그것이다. 매너 좋고 돈 많아도 무드를 못 잡으면 진도가 안 나가니 갑갑하고, 돈 많고 무 드 잘 잡아도 매너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개판이면 곤란하고, 아무리 매너 좋고 무드 잘 잡아도 이게 생판 개털이면 원수 같은 기둥서방과 다 를 바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볼 노릇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3M을 다 갖춘 여자라면 “어서 옵쇼!”다. 그러나 내 경 험상 이런 여자는 없다. 남자는 여자가 단지 매너만 좋아도 그녀를 괜찮은 여자 로 인정한다. 돈이야 서로 더치 페이하면 될 것이고 무드도 내가 잡으면 그만이 지만 매너가 ‘우라질!’이면 남자는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는데 굳이 그 녀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다. 남자고 여자고, 애고 늙은이고 간에 매너, 즉 예의는 우리가 살아 가는데 꼭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여기서는 전화에 대한 매너만 짚고 넘어 가겠다. “여보세요. 순자 있어요?” “그런 사람 없는디요.” 뚝! 집에서 더러 전화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전 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아무개 있느랴고 묻고는 잘못 걸었다고 하면 그대로 끊어 버리는 이 몰상식이 지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보세요. 순자 있어요?” “순자요? 누구세요?” “친군데요.” “친구 누구세요?” “그건 왜 물으세요?” “누군지 알아야 누구에게 전화 왔다고 전해 줄거 아닙니까. 친구가 단체로 전화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순자한테 전화 왔다고 하면 걔는 누구 전화냐고 물 을 텐데 나도 몰라 하면 어떻게 해요.” 전화 예의는 누구나 상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이런 식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쪽에서 이렇게 물으면 그걸 이상하게 여긴 다. “여보세요. 순자네 집이지요? 저는 순자 친구 삼순인데요. 순자 있습니까?” 전화는 이렇게 걸어야 옳다. 먼저 전화를 걸고자 하는 곳이 맞는지 확인하고 이쪽의 신분을 밝힌 다음 통화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 야 받는 쪽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여보세요. 순자 있어요?” “없다!”뚝! 아니면 “잘못 걸었어! 손가락이 삐뚤어졌냐 전화도 제대로 못걸게!”꽝! 받는 쪽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무식하게 걸어와도 이쪽에선 제대로 바꾸어 주고 사람이 없으면 행선지를 알려 주거나 “메모를 남겨 주랴?”하고 묻는 것 이 바른 전화 받기이다. 매너가 별건가. 매너는 상식이다. 95. 불륜은 없다 요즘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부남 유부녀가 눈 이 맞아서 새삼스럽게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얘기다. 30대의 사랑을 산뜻하고 감각적으로 그린 데다 현실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라는 의견도 있지 만, 불륜을 미화하고 외도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난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과연 불륜이란 무엇인가. 윤리에 어긋나는 게 불륜이다. 우리가 아는 불륜의 범주는 막연하기 이를 데 없다. 통상적으로 뭔가 어색하고 상식에 어긋나 보이면 우린 그걸 불륜이라고 부른다. 임자 없는 처녀 총각이야 만나서 무슨 짓을 해도 그건 사랑놀음이지 불 륜은 아니다. 그러나 임자 있는 놈이 임자 없는 여자 만나고 돌아다닌다거나 임 자 있는 여자가 임자 없는 몸 만나서 돌아다녀도 우리는 손가락질을 한다. 임자 있는 남녀가 만나 그러는 건 더 하고. 그런데 우리는 왜 불륜 이야기에 빠져드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나나 당신이나 우리는 모두 불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괜찮은 남자가 하나 있다. 직장 동료라도 상관 없고 그저 아는 사람, 점 심 때마다 혹은 출근할 때마다 만나는 사람이라도 관계 없다. 나는 그 남자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마주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꾸 생각이 나서 심란할 지 경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유부남이다. 그럼 깨끗이 포기해야 하나? 아, 염병! 지 지리 복도 없지 하필이면 유부남이람, 이러고 말아야 할까. 그럴 수 있으면 좋다. 어쩌면 그러는 것이 당연하고, 당사자도 머리 복잡할 일 없으니 좋지 않은가. 그러나 사랑하고픈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평생 단 한번도 사랑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만 유부남이라 는 이유로 포기해 버린다면 삶의 의미는 그 가치의 폭락을 면치 못하리라. 윤리는 사회적이다. 개인적으로 윤리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 앞 에서 개인적으로 무너진 윤리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라. 사랑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지만 그건 일시적이며 자기 도취일 뿐이다. 사랑에도 냉정한 이성은 힘을 발휘한다. 사춘기 소녀의 감 성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에 진지해질 수 있다면 당신은 그와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질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랑은 환상이다. 처음에는 그걸 모른다. 그를 직접 만나 서 천천히 들여다보면 당신의 느낌과 그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바랐던 이상형이라도 그와 당신은 관습적으로 그리 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랑의 짜릿함만 취하라. 그리고 물러서서 그 슬픔을 간직하고 사는 것도 나 쁘지 않다. 그걸 누가 불륜이라고 말하면 뺨을 후려 갈겨라. 나는 지금도 더러 만나는 여자를 갖고 있다. 애가 둘이나 딸린 자식이 마누라 놔두고 그 무슨 꼴이냐고 주변에서는 그러는데 그거야 말로 모르는 소리이다. 어차피 이성끼리는 친구가 될 수 없다지만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느껴도 그저 그뿐, 내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다는 걸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들도 안다. 그래도 나와 그녀들은 같이 만나 시시덕거리며 즐겁기만 하다. 좌우지간 우리 는 서로 사랑하며 이렇게 만나므로 더 무얼 바라랴. 96. 전생 타령 소고 “에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일이 꼬일 때 노인네들이 내뱉는 푸념이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으면 현생에 그 죄를 갚느라고 되는 일이 없다는 해석이다. 요즘 전생 타령이 늘고 있다. 책도 꽤 나와 있고 전생을 이야기하는 노래도 유행하는 모양이다. 나의 전생은 어땠을까?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호기심이 가는 질 문이다. 나는 간혹 가다가 뜬금없는 꿈을 꾸는데,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죽거나(옛날 에), 아니면 총에 맞아 죽는다(현대에). 재수없는 꿈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날 아침이면 '이거 내가 전생에 곱게 죽진 않은 개벼!' 하는 생각을 한다. 전생의 그 극적인 죽음이 지금 꿈 속에서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 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야. 전생은 정말 있을까?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나고 죽기를 거듭한다는 윤회를 주장하고 있다. 깨달 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전에는 누구도 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이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누구나 수천 수만 번의 윤회를 거듭 해 오늘에 이르게 된 셈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부처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다음 생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한 정신과 의사는 최면 상태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무의식 속의 한 장면일 뿐 이지 그게 진짜 전생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게 전생인지 아닌지 누가 증명할 것이냐는 말이다. 최면으로 전생을 추적하는 실험은 서구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퇴행 최면 을 통해 전생의 전생까지 들어갔는데 대상자가 일러준 마을과 당시의 이름을 추 적해 본 결과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최면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전생을 마치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술술 얘기했는데 확인해 보니 맞더라는 얘 기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전생이 있다는 건가? 전생이 있거나 말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전생에 왕이었으면 어떻고 개였으면 어떠랴. 공주였으면 또 무엇 하는가. 중요한 건 지금의 나다. 지금의 나를 왕으로 만드는 것도 나요 개로 만드는 것도 나다. 전생이 있다면 후생도 있을 것이니 후생에서 부끄럽지 않은 현생의 나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전생에 관심을 쏟는 까닭은 지금이 세기말이기 때문일것이다. 무엇 이든 확실해 보이는 것이 없고 가치 판단이 흐려지는 세상에 살다 보니 죽음 이 후의 세계, 전생, UFO 등에 필요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신비주의에 빠짐으로써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심리의 산물이다. 전생에 관심 갖지 말고 후생을 위해 살자. 전생에서 바르게 살면 후생이 즐겁 고 아름답다 한다. 추하게 살면 후생에서 개나 소로 다시 나고, 맑게 살다 가면 선남선녀로 태어나 근심 걱정 없이 산다는데.... 어이구 이놈의 전생, 살기가 여간 까다로워야지. 97. 크고 맛있는 것은 없다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거기에서는 뭐든지 다 크다고 한다. 스테이크가 우리나라 파전만 하고 햄버거는 무지막지하게 커서 먹성 좋은 사람 도 절반 이상을 먹기가 버겁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콜라 컵은 , 좀 거짓말 보태 서, 작은 양동이 크기란다. 늙은 호박만한 복숭아도 있다는 설명에는 기가 질린 다. 짬뽕도 세숫대야만한 그릇에 담아 주어서 혼자서는 도저히 못 먹는다나. 물론 우리나라에도 큰 것은 있다. 이영자 얼굴만한 뻥튀기, 평양식 왕만두, 어 린애 머리통만한 나주의 신고 배, 지금은 어떤 중국집에서도 만들어 팔지 않는 공갈빵이 그것이다. ‘크다’라는 말 속에는 허구와 과장, 고소(苦笑)가 깃들어 있다. ‘크다’는 부피를 말함이니 ‘많다’는 말과도 통한다. 큰 것은 보는 이에게 기대를 품게 한다. 대상의 이미지를 강화시켜 작았을 때 의 그것보다 더 맛있거나 더 강하거나 더 오래갈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크고 맛있거나, 강하거나 더 오래가는 것은 거의 없 다. 유전자 조작으로 앞으로는 슈퍼 소, 슈퍼 닭이 나와 크면서도 맛은 끝내주는 고기를 우리가 먹게 될지는 모른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변강쇠, 톰 크루즈의 유전자를 결합시켜 미남이면서도 근육질의 몸매에 여자를 죽여 주는 남자가 나 타날지 누가 아냐.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슈퍼 닭이 아무리 맛있어도 나라면 토종닭을 먹을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아. 변.톰이 아무리 끝내줘도 좀 시원치는 않지만 평범한 우리 남자를 선택하겠다. 맛에도 한계 효용의 법칙은 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산해진미도 눈에 질리게 퍼안기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처럼 좋은 것도 당사자에게 적당해야 맛이 나고 흥 이 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큰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남으면 두었다 먹지!” “일단 챙기고 보는 거야.” “작은 것보다 낫지 않겠어?” 큰 것 쫓아다니다가 큰코 다친다. 한 건 크게 올려서 인생을 바꿔 보려고 애 쓰는 사람은 신세를 망친다. 큰 것은 큰 사람에게나 어울린다. 소인배가 대의를 꿈꾼다고 일이 성사될 것인가. 그는 결국 쓴 웃음을 짓고 물러날 뿐이다. 음식도 조금 먹을 때 맛이 있듯, 욕심도 작아야 삶에 탈이 없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소박하게 살자. 방방 뜨고 살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어 지러운 세상, 나까지 크고 맛있는 것 따라다니다가 엎어지면 어쩔 것인가. 98. 선배님을 챙겨라 세상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는 한에는 누구든 선배는 있기 마련이다. 선배 란 사전적인 의미로 보아도 ‘학문. 덕행. 경험. 연령등이 자기보다 많거나 나은 이’를 뜻한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내가 배울 뜻이 있다면 하다못해 도둑질 을 나보다 잘해도 선배요 남의 돈 꿔서 안 갚는데 도사여도 선배인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물론이지만 사회에 나와서 만난 선배도 엄청난 재산이 된다. 어느 집단에서 만난 사람이더라도 일단 나보다 노하우가 많은 사람은 선배가 되 는 것이다. 나는 선배가 없다. 체질이 워낙 독불장군이어서 그랬는지 선배는 없고 후배만 우글우글거린다. 후배들을 만나면 나는 기분이 좋다. 1년에 두어 번도 되지 않는 그들과의 자리에서 나는 선배의 입장이라기 보다 친구나 형과 같은 사이처럼 스 스럼이 없다. 후배들도 그런 나를 환영하는 편이다. 여자라고 해서 선배가 없으랴. 친구는 같은 연배로서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나누지만 그 이상의 해법은 제시 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아, 죽고 싶다!” “너도 그러냐? 나도 그래. 우리 같이 죽을래?” 이게 친구의 한계다. 친구 덕분에 강남 간다고, 잘못 만나면 황천간다. 하지만 선배라면 “야, 너 미쳤냐? 죽긴 왜 죽었어. 그만 일로 죽는다면 난 아마 열 번 도 더 죽었을 거야. 미친년!” 이럴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좋은 선배 만나기 힘든 것처럼 직장에서 마음에 드는 선배 만나기는 더 어렵다. 첫 출근해서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자리에 앉으면 우선 얼이 빠져 누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두어 달 지나면 친구도 생기고 그러면서 피 차 호구 조사를 하다가 어머, 어쩌구 하면서 동창이네, 후배네 확인이 된다. 그 런 연고가 없더라도 일을 통해 선배나 후배의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후배는 잘 챙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선배는 그게 아니다. 사회가 얼마나 냉정 한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요즘 회사가 아무리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 을 채용한다고 하지만 직장은 능력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일 잘한다고 해도 회사는 조직이다. 윗사람이 나를 틈날 때마다 씹는다면 나는 ‘뺑이 치고’(죽어라고 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야근해도 수고했다는 소리 한마디 못 듣는다. 오히려 피박(걔하고 일 못하겠다는 둥)만 쓰 기 십상이다. 이 나라 현실에서 회사 선배는 대부분 남자일 것이다. 과장이나 차장, 실장 등 당신의 상사들은 최소 3년에서 5년, 많게는 10년 정 도의 업무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일반적인 사무직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전문직 종사자라면 그 노하우를 선배 들에게서 빼먹는 재주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휴머니즘이 깔 려야 하지만. 웬 휴머니즘이냐구? 인간적으로 친해지라는 말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일 속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다 보면 일종의 전우애가 생기기 마련이다. 노하우는 이런 과정 속에서 저절로 터득된다. 일이 막히면 선배에게 도움을 청하라.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막히는 일 이라면 선배는 웃으면서 도와줄 것이다. 뺀질거리다가 적당히 기회봐서 “선배 님, 저 이게....” 어쩌구 하면서 빌붙는 후배는 살아남기 힘들다. 선배들은 그런 과정을 다 겪었기 때문에 후배의 잔머리에 속지 않는다. 후배가 선배에게 진정한 후배로 남을 수 있으려면 매사가 똑부러지되 인간미 가 있어야 한다. 이게 기껏 가르쳐놨더니 그 다음부터 선배 알기를 똥 친 막대 기 취급하면 선배가 열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선배는 영원하다. 열 후배 키우는 것보다 선배 하나 잘 건사하는 것이 당신의 삶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99. 공주는 도끼에 맞지 않는다 과거에는 소설가나 시인들 중에는 난치병인 폐결핵에 걸려 콜록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워낙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으니 가만히 있어도 폐결핵에 걸림 판이었는데 글 쓰고 술 먹고 굶기를 예사로 했던 그들이 병에 안 걸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었다. 지금의 난치병은 다 알다시피 암과 에이즈다. 이거에 걸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고, 이제 난 가는 일만 남았구나!”하면서 반은 실성한다. 그런데 이런 내 과성 난치병 말고 일종의 정신질환에 속하는 난치병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그게 뭔고 하니 이른바 ‘공주병’과 ‘왕자병’이다. 주제 파악을 못하고 우 월감에 빠진 이 부류의 인간들은 사회적으로도 우려를 자아낼 정도이다. 특히 공주병 환자들은 증세가 더 심각하다. 그들은 대개 상위 지향적이라 평범한 남 자들을 좌절감에 빠지게 하고 심지어는 여자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주병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환자는 자기 자신이 엄청나게 예쁜 줄 안다. 몸 매에도 자신이 있고 그에 걸맞게 옷이나 액세서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게 다가 소비 지향적이라 지출이 많으므로 일반적인 샐러리맨은 거들떠 보지도 않 는다. 그들이 염두에 두는 상대자는 전문직 종사자로소 연봉이 3천만원은 되어 야 성에 찬다. 남자의 외모도 자신에 맞춰 미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는 180센티미터 이상은 되어야 쳐다본다. 그녀는 언제나 눈을 굴린다. 누가 자기를 봐주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러나 불 행하게도 공주병 환자들은 대개 지능지수는 보통이나 머리가 비어 있다. 그러므 로 무식하다. 아는 거라곤 유명 브랜드, 카페 이름과 전화번호 정도. 성적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인 척하나 처녀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신은 비싼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 남자다 싶으면 그를 잡기 위해 몸을 허락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공주병 환자는 난치병답게 치료가 어렵다. 자신은 남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생 각을 버리지 않으므로 약이 없는 것이다. 만장하신 가운데 왕창 쪽팔리게 만드니 그 다음부터 선배 알기를 똥 친 막대기 취급하면 선배가 열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선배는 영원하다. 열 후배 키우는 것보다 선배 하나 잘 건사하는 것이 당신의 삶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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