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문학작품

[스크랩] 사회계약론-루소

그림자세상 2009. 12. 5. 13:41

  사회계약론


  지은이:쟝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옮긴이:이태일, 최현


         차례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사회계약론
  머리말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인간불평등기원론
  즈네브공화국에 바치는 글
  머리말
  총론
  제1부
  제2부
  원주

  해설:루소의 생애와 사상
  연보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인류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기 위한 고난에 찬 투쟁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와 평등은 인간이 형성해 놓은 사회구조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있으며, 또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사회, 정치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과학적 고찰은 근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봉건적 지배 사상의 질곡을 부수고 근대 사상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쟝 자크 루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 루소의 정치사상이 나타나 있는 대표적 저작이라 할 수 있는 "사회계약론"과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먼저 "사회계약론"은,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그 맹아를 보이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정치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 표현된 루소의 혁명적 민주주의 이론은, 그 당시 절대왕정의
구제도를 타파하고 가장 철저한 시민혁명을 수행하여 새로운 민주질서를 세우고자 한 프랑스의
많은 민중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는 이론적 지주가 되었으며, 그 뒤로도 수많은 계몽과
혁명을 촉진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국민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형식과 개념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였습니다.
  한편 "인간불평등기원론"은 그의 또 다른 저작인 "학문과 예술론"처럼 디종의 아카데미에서
모집한 현상 논문으로 씌어진 것입니다. 무명의 그를 단숨에 유명인으로 만든 출세작 "학문과
예술론"과는 달리 낙선되고 말았으나, 루소는 유럽을 통틀어 단 한 사람도 자기의 논문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논문에는 당시 절대군주 치하에서 시달리고 있던 민중의 참상에 대한 의분이 밑바닥에 깔려
있으며, 청년 시절부터 애독해 온 성서와 풀라톤 및 아리스토탤레스의 철학, 그리고 영국의
철학자 로크와 홉즈의 주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요컨대 자연상태로부터 사회화
상태로 옮겨가는 문제라든지, 역사와 문화 형성의 잠재력으로서의 개선 능력이라든지, 이성과
본능의 관계나 언어의 발달에 대한 문제 등이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면서 추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자연과 문화 및 역사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고들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고전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시사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식 자유와 평등 개념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여 자유민주주의의 형식적 모방 속에
적용기키려 했으나 모방 속에 적용시키려 했으나 결국 권위주의적 관료 정치와 봉건적 지배
문화의 식민지적 잔재로 말미암아 좌절을 거듭해온 우리의 정치문화에서 볼 수 있는 사상과
철학의 빈곤은, 우리가 왜 루소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개념을 새롭게 조명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결국 사회과학의 의미는 현실문제의 해결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가운데, 1, 2, 3, ... 은 원주이고 (1), (2), (3), ... 은 역주입니다.
  단, "인간불평등기원론"의 원주는--저자도 '주에 대한 주의'에서 밝히고 있듯이--주제에서
멀리 벗어나 본문과 함께 읽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으므로, 본론 끝으로 돌려 본문의 논지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끝으로, "사회계약론"은 이태일 교수의 구역을 살리고,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최현 선생이
번역을 담당했음을 밝혀 둡니다.

    사회계약론


    머리말

  이 작은 논문은, 자신의 눙력도 알지 못하고 내가 수년 전에 쓰기 시작했다가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던, 훨씬 방대한 저작(1)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저작에서 추려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단편들
가운데 이 논문이 가장 중요하고, 또 일반 독자들에게도 가장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밖의
나머지 부분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역주
  (1) 1744년경부터 루소가 구상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던 "정치제도론"을 말한다. "사회계약론"은
그 구상 가운데 일부이다.

    제 1 편

  나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법률을 있을 수 있는 형태로 파악할 경우에, 사회질서 속에
어떤 정당하고도 확고한 정치의 원칙이 있을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자 한다. 나는 이 연구에서
정의와 이익이 결코 분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법률이 인정하는 바와 이익이 규정하는 바를
향상 결합시키도록 노력할 생각이다.(1)
  나는 내 주제의 중요성을 증명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내가 정치에 대하여
논한다고 해서, 나더러 군주인가 아니면 입법자인가 하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며, 아울러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대하여 논한다고 대답하고 싶다.
  만약 내가 군주나 입법자라면 당연히 실행해야 할 일을 말로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실행해 버리거나 아니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국가(2)의 시민으로 태어나 주권자의 일원인 나의 발언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정치를 연구할 의무가
충분히 지워져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여러 정부를 연구할 때마다, 내가 내 나라의
정부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들을 그 연구 과정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제 1 편의 주제(3)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곳에서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4)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사실은 그들보다 훨씬 더 심한
노예상태에 놓여 있다. 어떻게 하여 이러한 변화가 생겼는가?(5) 나는 알 수 없다.
  무엇이 그것을 정당한 상태로 만들 수 있는가?(6)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폭력과 그로부터 생기는 결과만을 고려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즉 "어떤
인민이 복종을 강요당하여 복종하고 있는 한, 그것은 좋다. 그 인민이 구속을 벗어날 수 있고 그
구속을 벗어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민은 그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아간 것과 똑같은 권리에 의하여 자유를 되찾는 것이 정당하거나 아니면
인민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아간 것이 원래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질서는 다른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사회질서는 약속에 근거를 둔 것이다.(7) 따라서 이 약속이
어떠한 것인가를 아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이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방금 주장한 바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초의 사회에 대하여

  모든 사회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하게 자연적인 것은 가족이라는 사회이다. 게다가
가족에서조차 자식들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필요고 하는 동안만 아버지와
결합되어 있다. 이 필요성이 없어지면 자연적 유대는 곧 끊어지고 만다. 자식들은 아버지에 대한
복종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아버지는 자식들에 대한 양육의 의무에서 벗어나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독립하게 된다. 만약 이들이 계속 결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결합은 더 이상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가족이라는 사회도 결국은 약속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이다. 쌍방에 공통된 이 자유는 인간 본성의 결과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가는
법칙은 자기보존에 유의하는 것이고, 그 제일의 배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이성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기 자신만이 자기보존에 적합한 수단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되며, 따라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말하자면 정치사회의 최초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배자는 아버지에
해당되고 인민은 자식들에 해당된다. 또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그들이
자유를 양도하고 있는 것도 오직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가족과 국가의
차이는, 가족에 있어서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가 자식들을 양육하는 것이지만,
국가에 있어서는 지배자가 인민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배의 희열 때문에 인민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그로티우스(8)는 인간의 모든 권력이 피지배자를 위하여 확보되어 있다는 주장을 부정하면서
노예제도를 그 예로 들었다.1 그가 계속 사용한 추리방법은 항상 사실에 따라 권리를 확립하려는
것이었다.(9) 우리는 이보다 더 논리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폭들에게 가장
유리하게 되어 버린다.
  그로티우스에 따르면, 전인류가 백 명 정도의 인간에게 예속되어 잇는 것인지 아니면 백 명
정도의 인간이 전인류에게 예속되어 있는지가 의심스럽게 된다. 그의 저작을 통해서 본다면
첫번째 견해에 기울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또한 홉즈(10)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류는 많은 가축의 무리로 나누어지고 각 무리마다 주인이 있으며 그 주인은
자기 무리를 잡아먹기 위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 된다.
  목자가 자기의 가축들보다 우월한 본성을 타고났듯이, 인간의 목자인 군주들도 그들의
인민들보다 우월한 본성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필론(11)의 보고에 따르면 로마 황제 칼리굴라도
이와 같이 추론하고 이 이론에 따라 왕은 신이라든지 아니면 인민이 짐승이라는 교묘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칼리굴라 황제의 이러한 추론은 홉즈와 그로티우스의 추론과 일치하고 있다. 이들보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12)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노예가 되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들은 지배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말한 바 있다.(13)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그는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난 인간이 노예가 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만큼 확실한 말은 없다.
노예들은 그들의 구속 안에서 모든 것, 심지어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노예들은, 율리시즈의 친구들이 그들의 짐승과 같은 상태를 좋아했던
것처럼,2 자기들의 노예상태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태어날 때부터의 노예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이전에 이미 본성에 반하여 노예가 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이 최초의 노예들을 만들어 내었고, 노예들의 비겁성이 그들의 노예상태를 영원히
유지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아담 왕이나 노아 황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한 바 없다. 노아 황제는 세 사람의
위대한 군주의 아버지였으며, 이 세 군주가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처럼 세계를 분할했으므로
양자를 동일한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이 점에 대하여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은
사람들의 감사를 받을 만하다고 믿는다. 나도 이들 군주의 직계 아니면 그 집안의 종손이 될지도
모르므로, 자격 심사를 한다면 내가 인류의 정당한 왕이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14) 어쨌든
아담이 세계의 유일한 주민이었던 동안만은, 로빈슨 크루소가 그의 섬의 주권자였듯이, 그가
세계의 주권자였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제국의 장점은, 왕좌에 안전하게 앉은
군주가 반란, 전쟁, 음모 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가장 강한 자의 권리에 대하여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자기의 힘을 권리로 바꾸고 자기에 대한 복종을 의무로 바꾸지
않고서 항상 지배자가 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는 못한 법이다. 여기서 가장 강한 자의 권리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이 권리는 겉으로는 아이러니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칙으로
확립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가장 강한 자의 권리라는 이 말을 설명할 수 없을까? 폭력이란
한낱 물리적인 힘이다. 이 물리적인 힘이 어떻게 하여 도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폭력에 굴복하는 것은 불가피한 행위이지, 자의에 따른 행위는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신중을 꾀한 행위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의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이른바 가장 강한 자의 권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할 경우에 생겨나는 결과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넌센스뿐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만약 힘이 권리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면, 원인이 달라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것이니, 최초의 힘보다 더 센 힘은 최초의 힘에서
생긴 권리까지도 차지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벌을 받지 않고도 힘에 대하여 불복종할 수
있다면 그 불복종 역시 정당한 것이 된다. 이렇게 볼 때 가장 강한 자는 항상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오직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 강한 자가 되도록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힘이 없어질 때 더불어 없어지고 마는 권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만약 힘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면, 의무 때문에 복종할 필요는 없다. 또 복종을 강요받지 않을 경우에는 복종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가장 강한 자의 '권리'라는 말은 다만 '힘'을 나타내는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전혀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권리에 복종하라는 이 말이 만약 힘에 굴복하라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좋은
교훈이지만 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나는 그러한 교훈이 깨뜨려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보증한다. 모든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 또한 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의사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숲속 한 모퉁이에서 강도가 내게 덤벼들었을 때, 내가 강제로 지갑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경우뿐만 아니라 내가 지갑을 내놓지 않아도 될 경우에도, 내게는
양심적으로 그것을 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강도가 갖고 있는 권총도 역시
하나의 권력이니까.
  여기서 힘은 결코 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정당한 권력 이외의 것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하자. 그리고 나서 내가 처음 제기한 문제(15)를 다시 생각해 보자.

   노예 상태에 대하여

  그 누구도 나면서부터 자기의 동료를 지배할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또 힘으로부터는
어떠한 권리도 생기지 않는 것이므로,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 인정되는 모든 정당한 권위의
기초는 오직 약속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로티우스는, 만일 어떤 개인이 자기의 자유를 양도하여 스스로 어떤 주인의 노예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인민 전체가 그들의 자유를 양도하여 어떤 왕의 신민이 될 수 없겠는가
하고 말한다.(16) 이 문장에는 설명을 요하는 모호한 말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양도한다'는
말에 국한시켜 검토해 보자. '양도한다'는 말은 '준다'는 뜻이거나 '판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인간은, 자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생활 수단을 얻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팔겠는가? 왕은 신민들에게 생활
수단을 마련해주기는커녕, 도리어 자기의 생활 수단을 오직 신민들로부터 빼앗아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라블레에 따르면, 왕은 적은 물자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신민들은
왕이 그들의 재산마저 가져간다는 조건으로 왕에게 그들의 몸을 바치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신민들이 보존할 만한 것으로 그들에게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전제군주는 그 신민에게 사회적 안녕을 보장해 준다고 하는 자도 있다.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만일 전제군주의 야심이 신민들 자신의 분쟁상태보다 그들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면, 신민들은
그런 사회적 안녕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이와 같은 안녕 자체가 신민들이 겪는
불행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그들은 그러한 안녕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키클로페스의
동굴에 유폐된 그리스인들(17)은 거기서 대단히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 그들은
잡아먹힐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몸을 아무 대가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행위는, 그것을 하는 사람의 정신이 나갔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정당하지 못하고 무익한 행위인 것이다. 이와 똑같은 것을 인민 전체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 것은 인민을 미치광이로 취급하는 것이다. 광기로부터는 어떠한 권리도 생겨나지
않는다. 설령, 인간이 자기 자신을 양도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자기의 자식들까지 양도할
수는 없다. 자식들도 인간으로서 그리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태어났으며, 그들의 자유는 오직 그들
자신만의 것이므로 그들만이 자기의 자유를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이 철이 들 때까지 아버지가 그들의 생존과 행복을 위하여 그들 대신 여러 가지 조건을
체결할 수는 있지만, 취소할 여지도 없이 무조건 그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증여는 자연의 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부권을 넘어선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전제정부가 정당한 것이기 위해서는, 각 세대마다 인민이 자주적으로 그것을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정부는 이미 전제적인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인간이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의무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포기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로부터 자유를 완전히 빼앗는다는
것은 그의 행위로부터 도덕성을 완전히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컨대 한 편에게는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다른 편에게는 무제한의 복종만을 요구하도록 규정된 약속은 무의미하고 모순에
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동등한 대우도 없고 상호
교환도 없다는 조건 하나만 하더라도, 그 속에는 약속의 무효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내 노예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고 그의 권리가 모두 내 권리로 되어, 특별히 내
권리라고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될 때, 내게 대하여 그가 가질 수 있는 권리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티우스와 그 밖의 사람들은 이른바 노예권이 생긴 또 하나의 기원을 전쟁에서 찾고
잇다.(18)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승자에게는 패자를 죽일 권리가 있으므로 패자는 자기의 자유를
대가로 하여 생명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승자와 패자 쌍방에게 이익이 되므로
더욱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패자를 죽일 이 권리가 전쟁상태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인간이
원시적인 독립상태를 이룰 만큼 지속적인 상호관계가 없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적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서이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가 아니다. 그리고 전쟁상태는 단순한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사적인 전쟁, 즉 개인과 개인간의 전쟁은
고정된 소유권이 없는 자연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없고 모든 것이 법률의 권위 아래 놓여 있는
사회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없다.
  개인간의 투쟁, 결과, 충돌 등은 지속적인 상태를 이룰 만큼의 계속적인 행위는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칙령(19)에 따라 공인되었고 '신의 평화' 선언(20)에 따라 정지된
개인적인
투쟁에 대하여 말한다면, 실상 그것은 봉건제도의 악습이었던 것이다. 봉건제도는 자연법의
제원칙과 모든 훌륭한 '정치제도'에 위반되는 불합리한 제도였다. 그러므로 전쟁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서, 이때의 개인은 인간으로서나 시민으로서가 아니라3 오직
병사로서만 우연히 서로 적이 되고 있다. 조국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조국의 방위자로서
개인은 서로 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각 국가는 다른 국가를 적으로 가질 수 있을 뿐이지
인간들을 적으로 가질 수는 없다. 성질이 다른 사물 사이에는 어떠한 진정한 관계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모든 시대를 통해 확립된 여러 가지 관례와도 합치되고, 또 모든 문명 국민들의
관행과도 합치된다. 선전포고는 권력자에 대한 포고라기보다는 그들의 신민에 대한 포고이다.
군주에 대하여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그 신민들을 강탈하고 살육하고 억류하는 외국인은,
국민이건 개인이건 또는 인민이건 간에 그것은 적이 아니라 강도인 것이다. 한창 전쟁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공정한 군주는 적국의 국가 재산은 모두 몰수해 버리지만 개인의 생명과
재산은 존중한다. 그는 자기네 권리의 기초가 되고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전쟁의 목적은
파괴에 있기 때문에, 방위자가 무기를 손에 들고 있는 한 그들을 죽일 권리가 있으나, 그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즉시 그들은 적이나 적의 도구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므로, 그 누구에게도 그들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게다가 때로는 국가의 구성원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그 국가를 멸망시키는 수도 있다. 따라서 전쟁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직접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어떠한 권리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그로티우스가 세운 원칙도
아니고, 시인(22)의 권위에 근거를 둔 원칙도 아니다. 이 원칙은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이성에 근거를 두로 있는 원칙이다.
  정복의 권리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가장 강한 자의 권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데
불과하다. 만약 전쟁이 강자에게 패전국민들을 살육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승자도 가지고
있지 않는 이 권리가 패전국민들을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권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
누구든지, 적을 노예로 만들 수 없는 경우--무기를 버리지 않는 경우--에만 적을 죽일 수 있는
권리로부터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적에게 자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교환이다. 적의 생명에 대해서는 승자도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노예권을 근거로 하여 생살의 권리를 세우고 나서 그 생살의 권리를 근거로 하여 노예권을
세운다는 것은, 분명히 순환론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 무서운 권리를 인정하더라도, 전쟁에서 생긴 노예나
정복당한 인민은 그들이 복종하도록 강요당하는 동안만 주인에게 복종할 뿐이지 주인에 대하여
어떠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 대신
생명의 대가로 자유를 빼앗는 것은 패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패자를 무익하게
죽이는 대신 유익하게 죽이는 것뿐이다. 결국 승자는 패자에 대하여 힘 이외에는 어떠한 권위도
얻지 못하였으므로 전쟁상태는 그들 사이에 계속되며, 양자의 관계 그 자체도 전쟁상태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한, 어떠한 평화 조약도 성립되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가 하나의 약속을 체결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약속은 전쟁상태를 타파하기는커녕 그 계속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각도에서 보더라도, 노예권은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불합리하고 무의미하다는 이유에서도 무효인 것이다. '노예'라는 말과 '권리'라는 말은 서로
모순될 뿐이며 양립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나는 너하고 한 가지 약속을 하는데, 이 약속의
부담은 모두 네가 지고 이익은 모두 내가 차지한다. 또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동안만 이 약속을
지키지만, 너는 내가 좋아하는 동안 계속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개인에게 한 말이든 전인민에게 한 말이든 간에 항상 잘못된 말이다.

   항상 최초의 약속으로 소급해 보아야 한다.

  설령, 내가 지금까지 반박해온 점들을 모두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전제정치를 지지하는
자들(23)의 입장은 조금도 유리해지지 않을 것이다. 군중을 복종시키는 것과 사회를 통치하는 것
사이에는 항상 커다란 차이가 있다. 흩어져 있던 많은 개인들이 한 사람씩 어떤 인간에게 예속될
때,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인과 노예의 주종관계이지 지도자와 인민의
관계는 아니다. 그것은 막연히 모인 집합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결합체라고 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공공복지도 없고 정치체도 없다. 비록 그 사람이 세계 인구의 절반을 예속시킨다 해도,
그는 역시 하나의 개인에 불과하다. 그의 이익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여전히 사적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죽는 날이면 그의 제국은, 마치 참나무가 불에 타면서
해체되어 잿더미로 변해 버리듯이, 뿔뿔이 흩어져 통일을 잃게 될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말하기를, 인민은 자기를 왕에게 바칠 수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로티우스에
따르면, 인민은 자기를 왕에게 바치기 전에 먼저 인민인 것이다. 자기를 바치는 것은 그 자체가
시민의 행위로서, 공공의 토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민이 왕을 선출하는 행위를
검토하기 전에, 인민이 인민으로 되는 행위를 검토해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민으로 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왕을 선출하는 행위보다 앞서는 것으로서, 사회의 진정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리 정해진 약속이 없다면, 선거가 만장일치로 되지 않는 한, 소수자가
다수자의 선택을 따라야 할 의무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주인을 원하는 백 사람이 주인을 원치
않는 열 사람을 대신하여 투쟁할 권리는 어떻게 하여 생겨나는가? 다수결의 원칙도 원래 약속에
따라 성립된 것으로, 최소한 한 번만은 만장일치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회계약에 대하여

  나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생존하는 것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물의 저항력이 강해져서, 각
개인이 자연상태에서 계속 생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능가하는 시점에 인간이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이 자연상태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생존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멸망해 버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힘을 더 만들어 낼 수는 없고 다만 이미 있는 힘을 결합하여 방향을
새로 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단결에 의하여 힘의 총화를 이룩함으로써
장애물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또 이 단결의 힘은 단 하나의
원동력에 따라 움직이고, 전체를 여기에 조화롭게 협력시키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힘의 총화는 다수인의 협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힘과 자유가
자기보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이상, 어떻게 각자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고 또 자기를 돌보아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전체에 협력하기 위하여--힘과
자유를 희생할 수 있는가?(24) 내 주제와 관련하여 볼 때, 이 어려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원 전체의 공동의 힘으로 각자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며, 각 개인은 전체에
결합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밖에 복종하지 않고, 이전과 같이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결합형태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계약이 해결해 주는 근본 문제인 것이다.
  이 계약의 조항들은 그 성격상 조금만 수정하여도 무효가 되며 무용한 것이 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조항들은 아직까지 명문화되어 공포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어디에서나 같은
내용으로서, 사회계약이 깨어져 각자가 계약상의 자유를 잃고 최초의 권리를 되찾으며 계약상의
자유 때문에 폐기했던 자연적 자유를 회복할 때까지는, 어디에서나 무언중에 받아들여져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계약의 이러한 조항들을 잘 이해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 하나의 조항에 귀착한다. 즉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자기의 모든 권리와 함께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양도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각자가 자기를 전적으로 양도해 버리고 나면 조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되고, 또 조건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되면 그 누구도 타인에게 조건을 무겁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양도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합은 가장 완전해져서, 구성원은 더
요구할 것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만일 개인들에게 약간의 권리라도 남아 있게 되면, 그들과
공주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해 줄 수 있는 공통의 상위자가 없게 되고 따라서 모든 개인들이 어느
점에서는 자기 자신의 심판자이니까 모든 점에 대한 심판자가 되기를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상태는 그대로 존속할 것이며, 결합은 필연적으로 전체적으로 전체적인 것이
되거나 무력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끝으로, 각자는 전체에게 자기를 양도하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자기를 양도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은 자기가 양도하는 것과 똑같은 권리를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받기
때문에, 각자는 자기가 상실한 모든 것과 동등한 가치의 것을 얻고 나아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존하기 위한 더 많은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만약 사회계약으로부터 본질적이 아닌
부분을 제거해버리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의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하여 일반의지(la volont  g n le)의
최고 지도 아래 맡기고--그런 정치 조직 속에서--우리 모두는 각 구성원을 전체 가운데
불가분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이 결합 행위가 성립하는 즉시 계약자인 개인들 대신에 하나의 정신적이고도 집합적인 단체가
형성된다. 이 단체는 집회가 가지는 투표권과 같은 수의 구성원으로 조직되며, 이 결합행위로부터
통일과 공동의 자아, 그리고 생명과 의지를 받는다. 이처럼 모든 개인들의 결합에 따라 형성된
공적인격을 옛날에는 도시국가(Cite)4라고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공화국(R publique) 또는
정치체(corpspolitique)라고 부른다. 그 구성원들은 그것을, 수동적으로는 국가( tat)라고 부르고
능동적으로는 주권자(Souverain)라고 부르며, 그와 유사한 것과 비교할 경우에는
권력체(Puissance)라고 부른다. 구성원에 대해서는, 집합적으로는 인민(peuple)이라 하고, 주권에
참여하는 개인으로서는 시민(citoyens)이라고 하며, 국가의 법률에 복종하는 존재로서는
신민(sujets)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자주 혼동되어 서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다만
이런 용어들이 정확하게 사용될 때 그것들을 구별할 줄 알면 그만이다.

   주권자에 대하여

  이러한 사회계약의 공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결합행위에는 공공체와
개인들 사이의 상호약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각 개인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과 계약을
맺고 있으므로 이중의 관계로 약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권자의 일원으로서는 각
개인에게, 국가의 일원으로서는 주권자에게 약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기
자신과 맺은 계약에는 누구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민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의무를 진다는 것과 자기가 속하는 전체에 대하여 의무를 진다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두 가지 사실도 지적되어야만 하겠다. 즉 신민들 각자는 두 개의 다른 관계에서
고찰되므로, 공공체의 의결은 신민 전체로 하여금 주권자에게 의무를 지게 할 수는 없다는 점과,
따라서 또 주권자가 자기도 어길 수 없는 법률을 자기에게 부과한다는 것은 정치체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하는 점이다. 주권자가 자기 자신과 계약하는 경우는 마치 자기 자신과 계약하는
개인의 경우와 같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기본법도, 심지어 사회계약마저도 인민이라는 단체에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며 또 부과할 수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 단체가
사회계약에 위반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단체와 약속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체도 다른 단체에 대한 관계에서 보면 단순한 한 개체 또는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체 또는 주권자는 신성한 사회계약에 따라 처음으로 생긴 것이므로, 이
최초의 계약행위에 위반되는 행위, 예컨대 자기의 일부를 양도한다든지 또는 다른 주권자에게
복종한다든지 하는 행위를 하여 자기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 다른 정치체에 대해서도 자기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 정치체나 주권자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그 계약행위를 위반한다는 것은 곧
자멸이다. 무에서는 아무것도 창조될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인들이 결합하여 이처럼 하나의 단체를 만들게 되면 그 즉시부터 우리는 단체를 공격하지
않고서는 그 단체의 구성원 한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구성원들의 원한을
사지 않고서는 그 단체를 손상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무와 이익이 동등하면,
계약당사자들이 서로 돕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모든 개인은 이중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이익을 결합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게다가 주권자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로 형성된 것이므로, 개인들의 이익에 반대되는
이익을 갖지 않으며 또 가질 수도 없다. 따라서 주권자의 권력은 신민에게 어떠한 보증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정치체가 그 구성원 전체를 해치는 행위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체가 구성원을 개별적으로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음에 설명하고자 한다. 주권자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항상 주권자로서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권자에 대한 신민의 관계는 이와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양자간에 공통의 이해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권자가 신민의 충성을 확보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주권자에
대한 신민의 약속을 보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한 인간으로서의 각 개인은 시민으로서 가지는 일반의지에 반대되거나 또는 그와는 다른
특수의지를 가질 수도 있다. 각 개인은 그들의 특수이익과 전체의 공동이익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각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독립된, 절대적인 존재이니만큼
공동이익에 대한 의무는 희생적인 기부인 것이고, 따라서 이 기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들이
받는 손해는 기부를 함으로써 자기가 지게 되는 부담보다는 훨씬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정신적 인격이 현실적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허구적인 존재로
보아, 각 개인이 신민으로서의 의무는 수행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만을
행사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정이 계속되면, 결국 정치체의 멸망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계약을 공허한 규정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 계약은,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복종하도록 단체 전체에 의하여 강제된다는 약속을 암암리에
포함하고 있다. 이 약속만은 다른  약속에도 효력을 줄 수 있다. 이것은 각 개인이 자유롭게
되도록 강제한다(28)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각 시민을 조국에 바치게
함으로써 시민을 개인적인 종속으로부터 보호하는 조건이고 정치기구의 구성과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며, 시민으로서의 각종약속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유일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없으면, 시민으로서의 각종 약속도 불합리하고 전체적인 것이 되어 막대한
폐단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사회화 상태에 대하여

  이와 같은 자연상태로부터 사회화 상태로의 이행은 인간에게 극히 현저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본능 대신에 정의를 기본으로 삼게 하고, 이제까지 결여되어 있던
도덕성을 부여해 준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육체의 충동 대신에 의무의 소리가 들리고,
욕망 대신에 권리가 나타나게 된다. 이제까지 자기 자신의 일만을 생각했던 사람도 이제는 다른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기 정에
자기의 이성과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회화 상태에서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누리는 많은 혜택을 잃게 되지만, 그 대신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인간의 능력은 크게 훈련되고 개발되며 인간의 사상은 폭이 넓어진다.
인간의 감정은 고상해지고 영혼은 전체적으로 고양되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새로운 상태를
악용하여 인간이 벗어난 자연상태로 다시 떨어지는 일만 없다면, 인간은 자기를 자연상태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게 하고, 어리석고 몽매한 동물의 상태로부터 지성적인 존재, 즉 인간이 되게 한 저
행복한 순간을 항상 축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득실의 대차대조를 비교하기 쉬운 말로 요약해 보자. 인간이 사회계약 때문에
상실하는 것은 그의 자연적 자유, 그리고 그의 마음을 끌고 그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적인 권리이고, 반면 획득하는 것은 사회적 자유--시민으로서의 자유--그리고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이다. 이 득실의 계산이 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개인의
힘 이외에는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 자연적 자유와, 일반의지에 따라 제한 받고 있는 사회적
자유를 분명히 구별해야만 한다. 또 폭력의 결과로 생긴 것이거나 아니면 가장 먼저 차지한 자의
권리에 불과한 점유와, 명확한 권리에 기초를 두고 성립되는 소유권을 분명히 구별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것 이외에, 우리는 인간이 사회화 상태에서 얻는 것으로 도덕적 자유를 들 수 있다.
도덕적 자유만이 인간을 진실로 자기의 주인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욕망의
충동에 따르는 것은 노예적인 굴종이지만, 자기가 스스로 만든 법률에 복종하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너무 많이 말해 왔으며, '자유'라는 말의 철학적
의미는 내 주제와는 별 관계가 없다.

   토지소유권에 대하여

공동체가 형성될 때 그 모든 구성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과 자기가 점유하고 있는
재산까지도 포함한 자기의 모든 힘을 공동체에 양도한다. 이 행위에 따라 재산의 점유자가
달라지고 점유의 성질이 바뀌어 주권자의 손에서 소유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힘은
개인의 힘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국가의 점유는 훨씬 더 확고하고 안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국가의 점유가 더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며, 적어도 외국인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그 구성원에 대해서는 국가 내의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사회계약에 따라 모든 구성원이 가진 재산의 소유자가 될 수 있지만, 외국에 대해서는 국가가
구성원들로부터 이어받은 선점권에 따라 소유자가 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점권은 가장 강한 자의 권리보다는 실제적이지만, 소유권이 확립된 뒤가 아니면 진정한
권리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어떤 물건의 소유자로 만드는 적극적 행위는 그 인간을 그 밖의
다른 물건의 소유자가 되지는 못하게 한다. 자기의 몫이 정해지면 인간은 그것에만 만족해야
하며, 공동체의 재산에 대해서 그 이상의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상태에서는 그토록 약하던 선점권이 사회화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게 되는
까닭이다. 선점권에 있어서 우리가 타인의 물건을 존중하는 것은, 그것이 타인의 것이라서가
아니라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어떤 토지에 대한 선점권이 정당한 권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첫째, 그 토지에 아직 아무도 살지 않을 것, 둘째,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면적만을 점유할 것, 그리고 셋째, 공허한 형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과 경작에 의해서 점유할
것 등이다. 노동과 경작은, 법률상의 자격이 없더라도 타인의 존중을 받아야만 할 소유의 유일한
표시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우리가 만일 필요와 노동에 따라 선점권을 인정한다면, 선점권의 범위를
무제한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이 권리에 제한을 가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공유지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 그 토지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
토지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잠시 동안이라도 추방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여 그들이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를 영원히 빼앗을 수 있는가? 한 개인 또는 한 국민이, 벌을 받아 마땅한
약탈에 의하지 않고는, 어떻게 하여 광대한 토지를 독점한 뒤 전인류를 그곳에서 몰아낼 수
있는가? 약탈이란, 바로 자연이 인간에게 공동의 것으로 준 거주지와 음식물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빼앗는 행위인 것이다. 뉴네즈 발바오(29)가 해안에 상륙하여 카스틸랴 왕의
이름으로 남태평양과 남아메리카 전부를 점유했을 때, 그것만으로 모든 원주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고 세계의 모든 군주들로 하여금 거기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 형식적 점령을 여러 번 헛되이 되풀이하던 끝에, 마침내 이 카톨릭(스페인) 왕은 자기
방에 앉아서 전 세계를 점유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그 뒤에 이미 다른 군주가 점유한
부분만은 자기 제국에서 제외시키기는 했지만.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하여 개개인의 토지가 통일되고 이어져서 공공의 영토가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여 주권자의 권리가 신민으로부터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토지에까지 확대되어 동시에
대인권과 대물권이 되는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점유자를 점점 더 주권에 의존시키고
그들의 힘까지도 주권에 대한 충성의 보증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점을 고대의
군주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스스로를 페르시아인의 왕이니 스키타이인의 왕이니
또는 마케도니아인의 왕이니 하고 부름으로써, 국토의 지배자로서보다는 인민의 지배자로서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날의 군주들은 이보다 훨씬 현명해서 스스로를 프랑스 왕, 스페인 왕 또는
영국 왕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이처럼 영토를 장악함으로써 그 주민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으로부터 공동체로의 양도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공동체가 개인으로부터 재산을
양도받는 것은 공동체가 개인의 재산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개인의 재산소유권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고 점유를 진정한 권리로, 그리고 향유를 소유권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재산의 점유자는 공공재산의 관리자로 인정되고 그들의 권리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존중되며 외국에 대해서는 전체의 힘으로 보호되므로 공공의 이익도 되고
개인에게는 더 이익이 되는 이 양도에 따라 재산의 점유자들은 말하자면, 그들이 양도했던 모든
것을 되찾게 되는 셈이다. 이 역설은 뒤에 가서 설명하겠지만, 똑같은 토지에 대하여 주권자가
갖는 권리와 소유자가 갖는 권리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때로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소유하기 전에 먼저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런 뒤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토지를 점령하여 이를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거나  아니면 평등하게 또는
주권자가 정한 비례에 따라서 분할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토지의 취득이 어떤 형태로
되든 간에, 각 개인이 자기 토지에 대하여 갖는 권리는 공동체가 모든 토지에 대하여 갖는
권리에 종속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결합에는 안정성이 없을 것이고, 주권의 행사에는
현실적인 힘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 편과 그 마지막 논제를 끝맺음에 있어서, 모든 사회조직의 기초가 될 한 가지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즉 기본적 계약은 자연적 평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연에 의하여
인간을 사이에 주어진 육체적 불평등 대신에 도덕적이고 법률적인 평등을 가져온다는 점과,
인간은 체력이나 재능에 있어서는 불평등할 수도 있지만 계약과 권리에 따라 모두 평등하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5

   역주(괄호 없는 주)
  1. "공법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종종 고대로부터 전해온 악습에 대한 역사에 불과한 때가
많다. 이러한 악습을 지나치게 깊이 연구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다"(다르쟝송
후작 저,"인접국과의 관계에서 본 프랑스의 이해관계론", 암스테르담, 레이 서점 출판).
그로티우스가 한 일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
  2. 플루타르코스의 소논문, "짐승들도 이성을 사용한다" 참조.
  3. 세계의 어느 국민보다도 전쟁의 법을 이해하고 존중했던 로마인은 이 점에 대하여 매우
신중했으므로, 시민이 명확하게 일정한 적을 지적하거나 또는 이러한 적에 대해서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입대하지 않는 한, 의용병으로 복역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 카토는 포필리우스(21) 밑에서 최초의 군무에 복역했는데, 그  군단이 개편되자 카토의
아버지는 포필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 최초의 계약이 무효가 됨에 따라 카토는 그가 처음
지목했던 적과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으므로, 만약 카토가 포필리우스 밑에서 계속
근무하기를 포필리우스가 원한다면, 카토로 하여금 새로 군사선서를 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는 아들에게 다시 글을 보내, 새로 선서를 하지 않는 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삼가라고 했다.
  나는, 클루지움의 공격전이나 그 밖의 개인적인 사실들을 들어 내 주장을 반박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법과 관습을 예로 든 것이다.
  로마인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법을 어기지 않았던 인민들이다. 그들은 또 그처럼 훌륭한 법을
가진 유일한 인민들이었다.
  4. 이 말의 참뜻은 근대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완전히 상실되어 가고 있다. 대부분의
근대인들은 도회지를 도시로, 부르주아를 시민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도회지는
가옥들로 이루어지나 도시는 시민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이와 똑같은 잘못 때문에 옛날
카르타고인들은 값비싼 희생을 치른다.
  나는 시민이라는 칭호가 어떤 군주의 신민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읽어본 적이 없다. 고대
마케도니아인, 그리고 다른 어느 국민들보다도 자유롭다는 오늘날의 영국인에게조차도 이 칭호는
부여되지 않았다. 오직 프랑스인만이 이 호칭을 아무데서나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사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민이라는 말의 참다운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말을 마구 사용함으로써 불경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말은 프랑스에서는 덕을
표시하는 것이지, 권리를 표시하지는 않는다. 보댕(25)은 시민과 부르주아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양자를 혼동하여 큰 실수를 저질렀다.(26)
  달랑베르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백과사전"의 '즈네브' 항목에서 우리들의 도회지에
살고 있는 네 개의 신분--단순한 외국인까지 계산하면 다섯 신분(27), 그 가운데 두 신분만이
공화국을 구성했다--을 명확히 구별했다. 내가 아는 한, 그를 제외하고는 프랑스의 어느
저술가도 시민이라는 말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5. 나쁜 정부 아래서는 이 평등도 다만 외견적일 뿐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쁜 정부는,
가난한 자는 계속 비참한 상태에 머무르게 하고 부자는 항상 약탈하는 지위에 있도록 유지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실상 법률이란 항상 유산자에게는 유익하고 무산자에게는 불리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화 상태는, 모든 인간이 다 같이 일정한 재산을 소유하고 그 누구도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지 않을 때에만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역주(괄호 안에 숫자가 있는 주)
  (1)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루소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루소는 전체의 이익을 확보해 주는 것을 그가 의미하는 법률이
인정하는 바와 이익이 규정하는 바를 항상 결합시키려고 했다. '정치의 원칙'도 이러한 결합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와 같은 정신은 "사회계약론" 전체의 기반이 되고 있다.
  (2) 즈네브공화국을 말한다.
  (3) 즈네브 초고에는 "제 1 편의 주제" 앞에 "인류의 일반사회에 대하여"라는 긴 논문이
첨부되어 있다. 거기서 루소는 디드로에게 답하면서 자연권의 이론을 공격하고 있다.
  (4) 권력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뜻한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가 외면화될 때
반드시 국가권력과 충돌하게 되므로, 여기서 자유와 권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5) 지배와 복종의 관계, 즉 권력이 어떻게 하여 생겼는가 하는 문제이다.
  (6) 권력의 정당성 문제이다. 즉 권력의 근거란 무엇이며, 어떻게 할 때 권력이 인간의 천부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서, "사회계약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7)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에 따라 권력이 수립될 때, 그 권력은 정당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8)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__1645)는 네덜란드의 법학자로"전쟁과 평화의 법"을
저술했다.
  (9) 그로티우스,"전쟁과 평화의 법" 참조.
  (10) 홉즈(T.Hobbes, 1588__1679)는 영국의 철학자, 정치사상가.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저자.
  (11) 필론(Philon, BC 30?__AD50?년)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유태계
철학자. 기원 후 39__40년에 로마로 건너가, 유태인에 대한 로마 황제의 종교적 탄압에 대하여
황제 칼리굴라에게 탄원했으나 실패했다. 이때의 기록 "칼리굴라에의 사절"이 전해지고 있다.
  (1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__322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1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 1 편 제 5 장 참조.
  (14) 여기서 말하는 아담이란 인간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는 아담을 말하고, 노아는 '노아의
홍수'의 주인공을 말한다. 노아의 세 아들이 인류의 삼대 인종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루소가
여기서 말하는 뜻은, '군주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인민을 지배한다'고 하는
필머의 가부장권설을 반박하려는 것이다. 인간의 삼대 인종이 모두 노아의 자손인 이상 루소도
그 직계 자손일지도 모르고, 따라서 그도 왕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5) 제 1 편의 문제 제기를 가리킨다.
  (16) 그로티우스, "전쟁과 평화의 법" 제 1 권 제 3 편 제 8 장 참조.
  (17) 키클로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애꾸눈의 거인족. 오디세우스가 항해 도중
키클로메스족의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잡혀서 동굴 속에 갇혀 잡아먹힐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거인의 눈을 멀게 하여 겨우 죽음을 면했다고 한다.
  (18) 그로티우스, "전쟁과 평화의 법" 제 3 권 제 7 편 제 5 장 참조.
  (19) 루이 9세(재위 1226__1270년)가 귀족들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분쟁이 일어날
경우엔 반드시 40일의 휴전 기간을 가지도록 명령한 칙령.
  (20) 1035년 프랑스의 사제들이 귀족들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발표한 선언.
  (21) 기원전 173__158년에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포필리우스 라에누스를 가리킨다. 로마
원로원의 명령으로 시리아 왕 안토니우스에게 가는 사절로 파견되었을 때, 왕이 교섭을 오래
끌려고 하자 그는 왕의 주변에 원을 그려 놓고, 왕이 원 밖으로 나오기 전에 회답을 해주도록
요구하여 마침내 왕을 굴복시켰다고 한다.
  (22) 그로티우스가 그리스나 로마의 시인을 인용한 것을 가리킨다.
  (23) 홉즈와 그로티우스 등을 가리킨다.
  (24)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제 1 편 역주(1)
참조).
  (25) 보댕(J. Bodin, 1530__1596년)은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경제학자. 주저에 "국가론"(1576)이
있다.
  (26) 보댕은 그의 "국가론" 제 1 편 제 6 장 53 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즈네브에서는 시민은 시평의회 의원도, 25인 소위원회의 위원도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둘 다 될 수 있었다." 여기서 루소는 시민이라는 말과 부르주아라는 말을 서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27) 당시에는 citoyen, bourgeois, habitant, natif, sujet 의 다섯 신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28) 이 점은 자유에 관한 루소의 독특한 견해이다. 올바른 의미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제를 해도 좋다는 이른바 '자유의 역설'을 루소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해설 참조).
  (29) 뉴네즈 발바오(Nunez Balbao)가 아니라, 태평양을 발견한 스페인의 탐험가인
발보아(1475__1517년)를 뜻하는 듯하다. 그는 1513년경 파나마 지협을 횡단하여 태평양을
발견하고, 스페인의 카스틸랴 왕의 이름으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의 점유를
선언했다.

    제 2 편

   주권은 양도될 수 없다

  위에서 도출한 모든 원칙으로부터 생기는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일반의지만이
공공의 복지라는 국가 설립의 목적에 따라 국가의 모든 힘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들의 이해관계의 대립 때문에 사회 건설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들 이해관계의 일치가 사회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서로 대립되는 이해관계 속에 들어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사회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공통점이 없다고
한다면, 어떠한 사회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는 이러한 공동이익을
기반으로 하여 통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주권은 일반의지의 행사에 불과한 것이므로 결코 양도될 수
없으며 또 주권자는 집합적 존재에 불과하므로 집합적 존재 그 자체에 의해서만 대표될 수
있다고. 권력은 양도될 수 있지만 의지는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
  실제고 어떤 때에는 개인의 특수의지가 일반의지와 일치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일치가
영속적이고 항구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의지는 평등을 지향하지만 특수의지는 그 성질상
불공평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해관계의 일치가 항상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증하기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일치란 인위의 결과라기보다는 우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권자는,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원하는 것, 또는 적어도 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실제로 원하고 있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지가 미래에
대해서까지 자기를 구속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고, 또 어떤 의지라도 그 의지를 가진 인간의
이익에 어긋나는 일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인민이 복종하겠다고
손쉽게 약속만 한다면, 그 행위에 따라 주권자로서의 인민은 해체되고 그 자격도 상실하게 된다.
지배자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주권자는 사라지고 정치체는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주권자가 지배자들의 명령에 반대할 자유를 갖고 있으면서 반대하지 않을
경우에도 지배자의 명령을 일반의지의 반영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경우 인민
전체의 침묵은 동의를 뜻하는 것이라고 추측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자세히
설명하겠다.(1)

   주권은 분할될 수 없다

  주권은 양도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분할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지는 일반의지이거나1
그렇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의지는 인민 전체의 의지이거나 아니면 그 일부의
의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민 전체의 의지인 경우, 그것은 특수의지에 불과하며 따라서
행정기관의 행위로서, 기껏해야 일종의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정치학자들(2)은 원리상으로는 주권을 분할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상에 따라
이를 분할하고 있다. 즉 그들은 주권을 힘과 의지로, 입법권과 행정권으로, 그리고 과세권,
사법권, 선전권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국내통치권과 대외조약체결권으로 나누기도 한다. 때로는
이 모든 부분을 혼합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분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주권자를 여러 개의
부분을 모아서 만든 가공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을 만들되 눈만을 가진 부분,
팔만을 가진 부분, 또 다리만을 가진 부분, 이렇게 한 가지씩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몸의 여러
부분을 한데 모아 하나의 인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일본의 어떤 마술사는
관중 앞에서 아이의 사지를 하나하나 뜯어내어 공중에 던진 뒤에 다시 이들을 모아 온전한
아이가 되어 땅에 떨어지도록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네 정치학자의 마술도 이와 꼭
마찬가지다. 그들은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능란한 마술로 정치체를 여러 부분으로
분리해 놓고, 그 다음에 우리로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방법으로 그 부분들을
다시 모아 놓는 것이다.
  이 오류는 주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고, 또 주권의 발동에 불과한
것을 주권의 일부분이라고 잘못 생각한데서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전포고와 강화의 행위는
주권행위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법률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적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법률'이라는 말에 대한 개년을
명백히 정의하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행위는 법률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특수한 행위인 것이다.(3)
  같은 방법으로, 주권이 분할되어 있다는 다른 주장들을 검토해 보면, 주권이 분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늘 잘못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주권의 일부라고 생각되는
권리들도 사실은 주권에 종속된 것이며, 따라서 항상 최고의지를 전제로 하여 최고의지의 집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적 권리에 관한 저자들이, 자기들이 세운 원칙에 따라 국왕과 인민의 권리를 판단하려고
할 때, 이 점에 관한 부정확성 때문에 스스로가 판단을 얼마나 모호하게 하였는지는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로티우스의 저서 제 1 권 제 5 장과 제 4 장을 보면, 이 저자와 그 역자
바르베라크(4)가 자기들이 생각하는 바를 너무 지나치게 많이 말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부족하게
말하지는 않았는지 두려워하고, 또 잘 조절해야 할 여러 이해관계를 해치지는 않았는지 두려워한
나머지 궤변에 빠져 얼마나 많은 자가당착을 일으키고 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로티우스는 자기 조국에 불만을 품고 프랑스에 망명하여, 루이 13세의 총애를 받고자 자기의
저서를 왕에게 바쳤는데, 거기서 그는 인민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 그것을 왕에게 부여하기
위하여 온갖 기교를 다 부렸던 것이다. 그 역서를 영국의 조지 1세에게 바친 바르베라크의
의도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양위라고 표현했던 제임스 2세의
추방으로 말미암아 월리엄 왕이 왕위 찬탈자라는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할 수
없이 신중한 표현으로 말을 돌려 우물쭈물 얼버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 두
저술가가 참다운 원리를 채용했다면 모든 난점은 없어졌을 것이고, 그들의 주장은 항상 일관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더라면 그들은 몹시 괴로운 심정으로 진리를 말했을 것이고, 또
인민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충성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리란 결코 행운에 이르는
길이 아니며, 인민은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에게 대사직이나 교수직 또는 연금을 주지는
않는다.(5)

   일반의지도 잘못일 수 있는가

  앞서 말한 바에 따르면, 일반의지는 항상 올바르고 항상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인민의 결의도 이와 마찬가지로 항상 올바르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자기의 행복을 바라고 있지만, 그 행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항상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민은 결코 부패하지는 않지만 흔히 기만을 당하는 수가 있다. 인민이 악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직 이러한 경우뿐이다.
  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때때로 큰 차이가 있다.(6) 일반의지가 공동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인 데 대하여, 전체의지는 개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특수의지들의 합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특수의지로부터 지나친 것과 모자라는 것을 상쇄하면,2 그 차이의 합계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인민이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어떤 문제를 의결하려고 할 때, 일부 시민들이
사전에 어떤 편파적인 이익을 담합하지 않는다면, 그들간에 생기는 작은 의견 차이의 총계에서는
항상 일반의지가 생겨나고 따라서 그 의결은 항상 올바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파가
생겨나고 이러한 부분적 집단이 정치체라는 큰 집단을 희생시켜 형성될 때, 각 부분적 집단들의
의지는 그 구성원에 대해서는 일반의지가 되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특수의지가 된다.
  이 경우에는, 사람의 수만큼 투표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 집단의 수만큼 투표자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견 차이의 수는 줄어들지만 그 결과는 더 당파적으로 되는 것이다.
끝으로 부분적 집단 가운데 하나가 다른 모든 집단들을 압도할 정도로 커지게 되면, 그 결과는
작은 의견 차이의 합계가 아니라 그 큰 집단과 다른 집단들간의 차이로 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의지는 이미 없어지고 지배적인 의견은 순전히 특수의지가 되고 만다.
  따라서 일반의지가 충분히 표명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에 부분적 사회가 없어야 하고 각
시민이 오직 자기의 의지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3 그 위대한 류쿠르고스(8)의
독특하고 숭고한 제도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만약 부분적 사회가 있다고 하면, 솔론이나
누마나 세르비우스가(9)한 것처럼, 그 수를 증가시켜 부분적 사회간의 불평등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예방조치만이, 일반의지가 항상 명백히 표명되고 인민이 기만당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주권의 한계에 대하여

  만약 국가 또는 도시국가가 구성원의 결합에 따라서만 그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인격이고, 또 그 가장 중요한 배려가 자기보존의 배려라고 한다면, 국가는 각 부분을 전체에 가장
이로운 방법으로 움직이고 배치하기 위하여 보편적이고 강제적인 권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이 인간에게 자기 몸의 모든 부분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계약도 정치체에게 모든 구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의지에 따라서 지도되는 이 권력이 바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권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공적인격 외에 그것을 구성하는 사적인격으로서의 개인도 고려해야
한다. 개인의 생명과 자유는 원래 공적인격과는 독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민의 권리와
주권자의 권리를 구별하고,4 시민이 시민으로서 완수해야 할 의무와 시민이 인간으로서 향유해야
할 자연권을 명백히 구별해야만 한다. 사회계약에 따라 각자가 양도하는 것은 자기의 능력, 자유,
재산 가운데서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뿐이라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무엇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주권자뿐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시민은, 그가 국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주권자가 요구하는 즉시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주권자 측에서도 공동체에 불필요한 어떠한 구속도 신민에게 부과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부과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자연의 법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성의 법칙에서도
원인이 없이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회체에 연결시키는 약속은, 오직 그것이 상호간에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강제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약속의 성질상 우리가 그것을 이행함으로써 남을 위해서 일하면, 반드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결과가 된다. 왜 일반의지는 항상 옳은가? 그리고 왜 모든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라는 말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전체를
위해 투표할 때도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은 권리가 평등해지고
그로부터 정의의 관념이 생기게 되면 각자는 자기의 문제를 가장 중시하게 되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이것은 또, 일반의지가 진정한 일반의지로
되기 위해서는 그 본질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 대상에 있어서도 일반적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따라서 일반의지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개별적 대상을 지향하면, 우리가 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을 판단하게 되어
우리를 인도해 주는 참된 공평의 원칙이 없어지기 때문에, 일반의지는 본래의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도 한다.
  실제로 일반적인 약속에 따라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은 점에 대하여 어떤 특수한 사실이나
권리가 문제되면, 사건은 곧 분쟁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이해관계를 가진 개개인이 한편의
당사자가 되고 공중이 다른편의 당사자가 되는 소송 사건이 되지만, 거기에는 따라야 할 법률도
없고 판결해야 할 재판관도 없다. 이런 경우에, 일반의지의 명백한 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실상 이 결정이라는 것도 한 편의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얻은 결론에
불과하고, 따라서 상대방 측에게는 전혀 관계없는 특수의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우에는 자칫하면 부정에 흐르고 과오에 빠지기 쉽다. 이와 같이 특수의지가 일반의지를 대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의지도 특수한 대상을 상대로 할 때에는 그 성격이 바뀌므로, 한
개인이나 한 사건에 대해서 일반적인 의지로서는 판결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테네의 인민이 그 지배자를 임명하거나 면직시키고, 어떤자에게 명예를 주거나
형벌을 가하며, 또 많은 특별법을 정하여 정부의 모든 시책을 무분별하게 실시한 것은, 당시의
인민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일반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들
인민은 주권자로서가 아니라 행정관으로서 행동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의견을 설명할 시간을 주기 바란다.
  이상 설명한 바로부터, 의지를 일반의지로 만드는 것은 투표자의 수가 아니라 투표자를
결합하는 공동이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제도에 있어서 각자는 자기가
타인에게 부과한 조건에 필연적으로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이익과
정의의 놀라운 조화로서, 공동 결의에 공평이라는 성격을 부여해 준다. 그러나 이 공평이라는
성격도, 모든 개별적인 문제를 토의할 때에는 재판관의 판단 기준과 당사자의 기준을 일치시키고
통일시키는 공동이익이 없어지기 때문에 곧 없어지고 만다.
  어떤 측면에서 이 원리를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즉 사회계약은 모든
시민들 사이에 평등을 확립하는 것으로, 시민은 모두 같은 조건을 따르기로 약속하고 따라서
모두 같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계약의 성질상 주권의 모든 행위, 즉
일반의지의 모든 정당한 행위는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혜택을 베푼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단체로서의 인민을 인정할 뿐,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간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 정확히 주권의 행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위자와 하위자간의 약속이
아니라, 정치체와 그 구성원간의 약속이다. 그것은 사회계약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합법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기 때문에 공평하며, 오직 일반의 행복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유용하고 공공의 힘과 최고의 권력에 의하여 보증되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것이다.
신민이 이 약속에만 복종하는 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사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주권자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가 어느 정도까지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체는 곧 시민들이 자기 자신들과--즉 개인은 전체에 대하여, 전체는 개인에 대하여--어느
정도까지 약속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주권이 아무리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하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약속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며 넘어설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모든 개인은 일반적인 약속에 따라
그에게 남겨진 재산과 자유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알 수 있다. 따라서
주권자는 어떤 특수한 신민에게 다른 신민에게 보다도 많은 의무를 부과할 권리를 가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사람은 개인적인 것이 되고 따라서 주권자의 권한을 벗어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구별이 일단 인정된 이상, 개인이 사회계약으로 인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진정한
권리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실제로 이 계약의 결과 그들이 얻은 지위는 그
이전의 지위보다 나아진 셈이다. 권리를 양도한 것이 아니라 유리한 조건으로 교환을 한 것이다.
즉 그들은 불성실하고 불안전한 생활방식 대신에 훨씬 확실하고 안전한 생활방식을 얻고 자연적
독립 대신에 자유를 얻으며, 타인을 해칠 힘 대신에 자기 자신의 안전을 얻고 언제 정복당할지
모를 자기들의 힘 대신에 사회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얻는 것이다.
  그들이 국가에 바친 생명 그 자체도 국가에 의하여 끊임없이 보호받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내건다면, 그것은 그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것을 국가에 되돌려주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연상태에서는, 그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이 전쟁을 하며 더 자주 그리고 더 위험스럽게 목숨을 내걸고 싸우지 않았던가? 사실 모든
사람은 위급할 때에는 조국을 위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싸울 필요는 없다. 그러니 우리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국가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자신을 위해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될 위험의 일부를 그 국가를 위하여 무릅쓰는 것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생살의 권리에 대하여

  개인에게는 자기의 생명을 처분할 권리가 없는데, 어떻게 자기에게도 없는 이 권리를 개인이
주권자에게 양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생명 보존을 위해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화재를 피하기 위해 창문에서 뛰어내린 사람에게 자살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 때문에 빠져 죽은
사람에게 자살죄가 적용된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사회계약은 계약 당사자들의 생명 보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에게는
수단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수단에는 다소의 위험과 때로는 상당한 희생도 따른다. 타인의
도움으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자는, 필요한 경우에는 타인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칠
줄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시민에게는, 법률이 그로 하여금 무릅쓰기를 요구하는 위험에 대하여
불평할 아무런 권리도 없다. 군주가 시민에게 "그대가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는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현재까지 안전하게 살아온 것이 오직
그와 같은 조건에서였고, 또 그의 생명은 단순히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일 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하여 조건부로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범죄인에게 가해지는 사형도 대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살인을 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는 데 동의하는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은 살인자에 의하여 희생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 계약을 체결할 때, 우리는 자기의 생명을 처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자기 생명의 안전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계약
당사자들은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 사형을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악인들은 그 죄악 때문에 조국에 대한 반역자와
배신자가 된다. 그는 조국의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그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심지어는
조국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존속은 그 자신의 존속과 양립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어느 한 쪽이 멸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죄인을 사형에 처할 때, 우리는
그를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적으로서 처벌하는 것이다. 그 심리와 판결은, 그가 사회계약을
파괴하였고 따라서 이미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증명이며 선언이다. 그러나 이런 죄인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국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므로 사회계약의
위반자로 추방되거나, 아니면 공공의 적으로 사형에 처해져 국가로부터 제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적은 도덕적 인격이 아니라 단순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권리가
피정복자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범죄인의 처벌은 개별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은 주권자가 해야 할 역할은 아니다. 그것은 주권자가 타인에게 부여할 수는
있으나 직접 행사할 수는 없는 권리이다. 나의 이론은 시종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이를
한꺼번에 설명할 수가 없다.
  하기야 형벌이 잦은 것은 항상 정부측이 약하거나 태만하다는 징조이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는 법이다. 살려두면 반드시 해가 될 인물을 제외하고는, 비록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인간을 사형에 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법률에 따라
재판관이 선고한 형벌로부터 죄인을 사면해 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재판관과 법률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 즉 주권자에게만 있다. 이러한 권한도 실제에 있어서는 매우 명확하지 못하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선정이 베풀어지는 국가에서는 형벌도 적은데, 그것은
사면행위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인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많은 범죄가 행해져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쇠퇴의 길로 들어섰을 때이다. 로마 공화국에서는, 원로원도 집정관도
사면을 내리려고 한 적은 없었다.
  인민들조차도, 때로는 그들이 내린 판결을 취소하는 일은 있어도 사면을 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면을 자주 내린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범죄가 사면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점은 그 누구에게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펜을 억제하며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까지 한 번도 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따라서 사면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공정한 사람에게 맡겨 토의해 보도록 하자."

   법률에 대하여(10)

  사회계약에 따라 우리는 정치체에 존재와 생명을 부여했다. 이제 입법에 따라 정치체에 운동과
의지를 부여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왜냐하면, 정치체를 구성하고 결합하는 최초의 행위는, 정치체가 자기보존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사항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질서에 따라 바르게 사는 것은, 인간 상호간의 계약과는 관계없이 사물의 본성에 따라 그러한
것이다. 모든 정의는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신만이 정의의 원천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와
같이 높은 곳에서 정의를 받아들일 줄 알았더라면, 정부도 법률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오직
이성에서만 나오는 보편적 정의가 있다. 그러나 이 정의가 우리들 사이에서 인정되려면
상호적이어야 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한다면, 정의의 법은 자연의 제재를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서는 효과가 없다. 다시 말하면, 선량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정의의 법을 지키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선량한 사람에 대하여 이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이
법은 악한 인간에게는 이익을 주고 선량한 인간에게는 손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리와 의무를 결합시키고 정의를 그 대상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 약속과 법률이 필요하게 된다.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공유이므로, 내가 아무것도 약속한 바 없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다. 나는 내게 불필요한 것만을 남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화 상태에서는 법률에 따라 모든 권리가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면
도대체 법률이란 무엇인가? 이 말에 형이상학적 관념만을 결부시켜 만족하는 한, 우리는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논쟁만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법이 무엇인가를
정의했다고 해서 국가의 법이 무엇인가를 더 잘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11)
  나는 이미 개별적인 대상을 상대로 하는 일반의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개별적인 대상은 국내에 있을 때도 있고 국외에 있을 때도 있다. 그것이 국외에 있는 경우라면,
국가와 관계가 없는 의지가 국가와의 관계에서 일반적일 수는 없다. 또 그것이 국내에 있는
경우라면, 그것은 국가의 한 부분이 된다. 그렇게 되면 전체와 부분과의 사이에는 양자를 별개의
존재로 만드는 하나의 관계가 성립되는데, 그 하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이 부분을 제외한
전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분을 제외한 전체는 전체일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관계가 존속하는
한, 전체란 있을 수 없고 불균등한 두 부분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편의 의지는 다른
편과의 관계에서 보면 결코 일반적일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전인민이 그들 전체를 대상으로 법을 규정할 경우에는 오직 인민 자신의 문제만을
고려하게 된다. 이때 어떤 관계가 형성되더라도 그것은 대상 전체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지, 전체에 어떤 분열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법이 적용되는 대상도
법을 규정하는 의지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것이 된다. 내가 법률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행위인 것이다.
  내가 법률의 대상이 항상 일반적이라고 하는 것은, 법률은 시민을 전체로서 그리고 행위를
일반적인 것으로서 고려할 뿐, 결코 인간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행위를 개별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은 어떤 특권을 설정하여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특권을 어떤
사람에게 지명해서 부여할 수는 없다. 또 법률은 시민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고 그러한 계급에
소속하게 될 자격까지도 규정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이러한 계급에 소속하게
되는가를 지명하여 규정할 수는 없다. 법률은 나아가 군주제나 왕위세습제의 확립을 규정할 수는
있지만, 왕이나 왕가를 지명하여 선출할 수는 없다. 요컨대 개인을 대상으로 규정하는 어떠한
기능도 입법권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입법행위란 일반의지의 행사에 불과하고 따라서 입법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은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군주도 국가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군주가 법률 위에 있느냐는 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불공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법률이 볼공정할 수 있느냐는 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고, 나아가 법률이란 곧 우리의 의사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로우면서도 어떻게 법률에 복종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법률은 의지의 보편성과 대상의 보편성을 결합하고 있는 것이므로 누구의 명령이든
자기의 개인적 동기에서 나온 명령은 법률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주권자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개별적 대상에 대한 명령인 경우에는 법률이 아니라 행정명령이며,
주권자의 행위가 아니라 행정기관의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떠한 정부 형태를 취하든지 간에, 법률에 따라 지배되는 모든 국가를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국가가 법률에 따라 지배될 경우에만, 공공의 이익이 우위를
차지하고 공공의 것이 중요성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정부는 모두 공화적이다.5
정부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뒤에 설명하겠다.(12)
  법률이란 본래 사회적 결합의 조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민은 법률에 복종하지만, 그
제정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결합하는 자들만이 사회의 조건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회의 조건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공동의 합의에 기댈 것인가? 또는 갑작스런
영감에 기댈 것인가? 정치체는 그 의사를 발표할 기관을 가지고 있는가? 정치체가 그 법령을
작성하고 공포하는 데 필요한 선견지명을 누가 미리 정치체에게 줄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정치체는 어떻게 하면 필요한 때에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가? 무엇이 자기에게 이로운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종종 자기가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무지한 군중이 어떻게 하여
입법조직과 같은 중대하고도 어려운 사업을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할 수 있는가? 인민은 항상
스스로가 자신이 행복은 원하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그 행복이 무엇인지를 항상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의지는 항상 올바르지만, 그것을 인도하는 판단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일반의지에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또 때로는 있어야 할 형태로 보여주어야
하고,  일반의지가 찾고 있는 바른길을 가르쳐주어야 하며, 특수의지의 유혹으로부터 일반의지를
보호하고, 또 시간과 장소에 유의하여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이익의 유혹과 멀리 숨어 있는
위험을 비교할 수도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개인은 참된 행복을 보고도 그것을 배척하는 수가 있고, 공중은 행복을 바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양쪽 모두를 지도해 줄 필요가 있다. 개인들에게는 그들의 의지를
이성에 일치시키도록 강제해야 하고, 공중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중은 계몽되어 정치체에 있어서 그들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따라서 각 부분의 정확한 협력이 이루어져 전체는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입법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입법자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가장 적합한 사회규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인간의 모든 욕정을 잘 알 수 있는 탁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이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샅샅이 다 알고는 있지만 결코 그 본성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으며, 그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기꺼이 전념하고, 끝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
먼 장래의 영광만을 바라보면서, 한 세기에서 노력한 결과가 다음 세기에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6 요컨대 인간들에게 법률을 제정해 주는 것은 신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정치가론"에서 정치가 또는 왕자를 정의하기 위하여, 칼리굴라가
사실문제에 대하여 추론한 것과 같은 방법을 권리문제에 대해서 사용했다.(13) 그러나 위대한
군주가 그리 흔치 않다는 것이 흔치 않다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위대한 입법자는 그 얼마나 더
드물 것인가? 군주는 입법자가 정해 준 모형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입법자는 기계를
발명하는 기사이지만 군주는 그 기계를 조립하여 운전하는 직공에 불과하다. "사회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공화국의 지배자들이 제도를 만들어 내지만, 그 뒤에는 제도가 공화국의
지배자들을 만들어 낸다"고 몽테스키외는 말하고 있다.(14)
  어떤 인민에게 감히 제도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자는, 모름지기 인간성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고, 그 자체만으로서 하나의 완전하고도 고립된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개인을
보다 더 큰 전체로 결합하여 거기서 자기의 생명과 존재의 원천을 부여받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인간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독립적이고 육체적인 존재를 부분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 바꿀 수 있는 능력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요컨대 그런 사람은 인간으로부터 그 본래의 힘을 제거해 버리고, 그 대신 이제까지
관계없던 어떤 새로운 힘을, 남의 도움 없이는 쓸 수 없는 어떤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본래의 힘이 완전히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새로 얻은 힘은 더욱 커지고 영속적인 것이 되며,
새로운 제도 역시 더욱 확고하고 안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시민이 다른 시민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또 전체가 얻은 힘이 모든
개인의 본래적 힘의 총화와 같거나 또는 그보다 크게 되면, 입법은 가능한 최고의 완성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입법자는 모든 점에서 국가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재능에 있어서
탁월해야 하지만, 그 직무에 있어서도 탁월해야 한다. 그의 직무란 행정권도 아니고 주권도
아니다. 그의 직무는 국가를 조직하는 것이므로, 국가의 기구 안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는 특수하고 우월한 기능이다. 왜냐하면, 만약
인간을 지배하는 자가 법률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법률을 지배하는 자도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법률은 입법자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
종종 입법자의 부정으로 얼룩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개인적인 욕망은
필연적으로 그가 만든 법률의 신성을 손상시킬 것이다.
  류쿠르고스가 자기의 조국을 위하여 법률을 만들 때, 그는 먼저 왕위에서부터 물러났다.
그리스의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법률의 제정을 외국인에게 의뢰하는 것을 관례로 삼고 있었다.
근대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도 이 관례를 답습하는 일이 많았다. 즈네브 공화국도 이 관례를
이어받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7 로마는 그 전성기에 있어서 입법권과 주권이 동일한 몇 사람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제정치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죄악상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마침내 로마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십인관(15)조차도 자기네 권위만으로 법률을 제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십인관은,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여러분의 동의 없이는 법률로서 통과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인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줄 법률의 제정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인민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법률을 기초하는 자는 입법권을 갖지 않으며 가져서도 안된다. 또 인민 자신도 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설령 그가 바란다고 하더라도 빼앗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본계약에
따르면 일반의지만이 개인을 구속할 수 있고, 또 어떤 특수의지가 일반의지에 합치되느냐의
여부는 인민의 자유투표에 의하지 않고는 확실히 판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되풀이해도 유익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입법이라는 작업에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이 동시에
발견된다. 하나는 그 작업이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너무나 이룩하기 어렵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권위도 갖지 않은 권위자가 그것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난점이 있다. 현자들이 통속적인 말 대신에 자기네 말로 일반대중에게
말하고자 할 경우, 일반대중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상 통속적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상들이 많이 있다. 너무 일반적인 개념이나 너무 고원한 목적은 다 같이 통속적인 말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각 개인은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에 직접 관계가 있는 정책 이외에는 어떠한
정책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법률이 때로는 계속 곤란을 강요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해서 젊은 세대의 인민으로 하여금
정치의 건전한 원칙을 이해하고 국시의 기본적 규칙을 따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결과가
원인이 되게 바꾸어 놓을 필요가 있다. 즉 입법제도의 결과로 형성되어야 할 사회정신이
입법제도의 설립에 기여해야 할 것이며, 인간은 법률의 제정에 앞서 법률에 따라 형성되어야 할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입법자는 힘도 추론도 사용할 입장이
못되므로, 불가피하게 다른 질서에 속하는 권위, 즉 폭력을 쓰지 않고도 강제할 수 있고 강요하지
않고도 설득할 수 있는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시대의 건국 지도자들이 인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법률을 자연의 법률처럼
따르게 하기 위하여 천국의 간섭에 의존하고 신의 영광을 떠받든 이유이다. 그들 지도자들은
인민들로 하여금 국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처럼 신의 권위를
인정하게 함으로써, 인민들이 자진해서 복종하며 공공의 복지라는 굴레를 얌전하게 견디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입법자는 일반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숭고한 원리를 신의 권위를 벌어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지혜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통솔하려고 한다.8 그러나 신의 권위를 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스스로 신의 대변자라 자칭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쉽사리
믿어주는 것도 아니다. 입법자의 위대한 정신만이 그의 사명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석판에 글을 새기거나, 돈으로 신의 권위를 매수하거나, 어떤 신과
비밀로 대화를 했다고 가장하거나, 새를 훈련시켜 자기 귀에다 속삭이게 하거나, 그 밖에 인민을
속이는 온갖 야비한 방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잔꾀만으로는, 어쩌다가 자기
주변에 우매한 군중을 모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국가를 수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만들어 놓은 부질없는 일들도 그의 죽음과 동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얄팍한
속임수로는 일시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종속되고 있는 유태인의 법률이나,
10세기 동안이나 세계의 반을 지배해온 이스마일의 아들(16)의 법률 등은 아직까지도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위대성을 자랑하고 있다. 오만한 철학이나 맹목적인 당파심은 이들을 운수 좋은
사기한으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이들의 제도에서, 모든 항구적인 제도에서 나타나는
위대하고 강력한 천재를 발견하고 찬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워버튼(17)이 내린 결론처럼(18), 우리들 사이에 정치와 종교가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국가의 생성기에 있어서는 정치가 종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인민에 대하여

  마치 건축가가 큰 건물을 세우기 위해 대치를 조사하여 그 지반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인지를 먼저 검토하듯이, 현명한 입법자는 훌륭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고,
우선 그 법률의 적용 대상인 인민이 법률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가 하는 것부터 검토한다.
플라톤이 아리카디아인과 키레네인들에게 법률을 제정해 줄 것을 거절했던 것도, 바로 이들
인민들이 부유해서 평등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리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크레타섬에,
법률은 좋았지만 악한 인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도 바로 미노스왕이 이미 악에 젖어 있는
인민에 대해서 규율을 부과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상에는, 훌륭한 법률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지만 위대한 업적을 남긴 국민들의
예는 많이 있다. 게다가 훌륭한 법률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국민들도, 그들의 긴 역사에서
보면 극히 짧은 시기 동안만 법률을 지킬 수 있었다.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경우도
대부분 그 청년기에 있어서만 유순할 따름이고 노쇠하여 감에 따라 점차 완고하게 된다. 일단
관습이 확립되고 편견이 뿌리를 박게 되면, 그것을 개혁하려는 노력은 위험하고도 무익한 일이
된다. 의사의 얼굴만 보아도 펄쩍 뛰는 어리석고 겁많은 환자처럼, 이 인민은 그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손만 대어도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질병이 인간의 두뇌를 혼란시키고 과거의 기억을 잊어 버리게 하는 것처럼,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도 때때로 격동의 시기가 있어서, 혁명이 마치 질병이 개인에게 미치는 것과 같은
작용을 인민에게 가하기도 한다. 그때에는 과거에 대한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인민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 버리게 되고 국가는 내란의 불길에 휩싸이지만, 국가는 말하자면 내란의 잿더미
속에서 되살아나 멸망의 함정을 벗어남으로써 젊음의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류쿠르고스
시대의 스파르타나 타르퀴니우스가(19) 이후의 로마,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폭군들을
추방하고 난 뒤의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모두 그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역사상 흔하지 않다. 그러한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으로, 그 원인은
항상 그들 국가의 특수한 구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은 같은 인민에게 두 번 되풀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민은 야만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이미 사회적 활력이 소모되고 나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활력이 소모되게
되면, 소란에 의하여 인민이 파괴된다고 해도 혁명에 의하여 그들을 재건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인민을 결합하는 쇠사슬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들은 분산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에 인민에게 필요한 것은 지배자이지 해방자가 아니다. 자유 인민들이여, 이 격언을 잊지
말지어다. "자유란 획득할 수 있는 것이지,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기는 유년기가 아니다. 인간에 있어서처럼 국민에 있어서도 청년기 즉 성숙기가 있는 만큼,
국민으로 하여금 법률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인민의 성숙기를 판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 시기가 되기 전에 착수하면 입법
사업은 실패하게 된다. 어떤 인민은 처음부터 규율을 잘 지키지 못하는 수도 있다. 러시아인들은
너무 일찍부터 개화되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개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표트르 대제(20)는
모방의 재능은 가지고 있었으나 정말 창조적인 재능, 즉 무에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천재적인 재능은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가 이루어 놓은 일 가운데는 몇 가지
훌륭한 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적당치 못하였다. 그는 러시아의 인민이 야만상태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개화될 만큼 성숙해 있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의 인민이 아직도 훈련을 받고 있어야 할 시기에, 벌써 그들을 개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그들을 러시아인으로 만들어야 할 시기에 독일이나 영국인으로 만들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현실적 존재와는 어떤 다른 존재인 것처럼 믿게 함으로써, 그렇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프랑스의 교사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어릴 때는 신동이 된 듯 똑똑하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게 교육하는 것과 같다. 러시아 제국은
유럽을 정복하려 하겠지만, 도리어 자신이 정복을 당하고 말 것이다. 타타르인은 지금은 러시아의
속국 또는 인접국이지만, 결국에는 러시아의 지배자가 되고 또 우리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이
혁명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럽의 모든 왕들이 서로 협력하여 이 혁명을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민에 대하여(계속)

  마치 자연이 균형 잡힌 인간의 키에 한계를 정해 놓고, 어떤 인간의 키가 그 한계를 벗어나면
거인이 되거나 또는 난쟁이가 되게 한 것처럼, 국가의 이상적인 구조에 있어서도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국토의 면적이 너무 넓으면 잘 통치하기가 어렵고 또 너무 좁으면 스스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정치체제에도 그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힘의 한계점이 있어서, 국토의
면적이 확대되면 오히려 국가의 힘이 줄어드는 수가 있다. 사회적 유대란,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약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소국은 대국보다 국토가 좁은 만큼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원칙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좋은 예를 들 수가 있다. 첫째, 국토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통치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렛대가 길면 길수록 그 끝에 매달린 짐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국토가 확장되면 행정상의 단계가 많아지고 따라서 그
비용도 더 많이 들게 된다. 우선 각 도시는 인민이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할 행정조직을 갖고
있고, 또 각 지방도 역시 인민이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할 행정조직을 갖고 있다. 또 그 위에
각 주와 태수령, 총독령 등 위로 올라갈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대규모의 행정조직이 있어서,
그 모든 비용을 불행한 인민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 모든 행정조직을 관할하는 최고
행정조직인 정부가 있는데, 여기서의 모든 과중한 부담으로 신민은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신민은
여러 단계의 행정조직에 따라 잘 통치되기는커녕, 신민 위에 오직 한 단계의 행정만이 있는
경우보다도 더 나쁘게 통치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상시에 대처할 자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자원을 사용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생기면 국가는 어쩔 수 없이
파멸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법률을 준수하게 하고 국민에 대한 불법행위를 방지하며 폐단을
바로잡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꾸며질지도 모르는 반란 음모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신속성을 거의 갖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인민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통치자에 대해서나
그들의 눈에는 하나의 막연한 세계로밖에 보이지 않는 조국에 대해서 그리고 대부분 그들에게
낯선 사람들인 동포들에 대해서도 거의 애정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관습이 다르고 기후가 달라서 일률적인 정치 형태가 통용되기 어려운 여러 지방들에 동일한
법률이 적용될 수는 없다. 동일한 통치자 밑에서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서로 왕래하고 교제하며
서로 혼인을 맺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관습을 따르며, 자기 집안의 세습적 재산이
정말 자기의 것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인민들 사이에 서로 다른 법률이 적용되면 오직 분쟁과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최고행정부의 소재지에 서로 알지 못하는 군중들이 모여들면, 그들
사이에서는 재능은 매장되고 덕행은 무시되며 악덕은 벌을 받지도 않게 된다. 정무에 지친
지도자들은 아무것도 직접 보고 처리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국가는 하급관리들이 통치하게
되고 만다. 멀리 떨어진 지방의 관리들은 중앙정부의 눈을 피하거나 기만하려 할 것이니, 이를
방지하고 정부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가 국가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며, 위급한 경우에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필요한 핌조차 없어지게 된다. 이처럼 국가의 조직으로서는 지나치게 그 규모가 큰
국가는 스스로의 무게에 못 이겨 무너지거나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국가가 안정을 얻고 자기보존을 위해 노력하며 한 번은 겪어야 할 동요를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는 일정한 기반을 확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민은 일종의
원심력을 갖고 있어서, 그것에 따라 인민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여 데카르트의
소용돌이처럼 이웃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신을 확대해 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자는 쉽사리 희생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어떤 인민이라도 자기를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방의 압력이 실제로 동등하게 되도록 다른 모든 인민과 균형 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의 규모를 확대하는 이유와 축소하는 이유가 각각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확대와 축소 사이에서 국가의 보존에 가장 유리한 비율을 발견하는 일은 정치가의 대단한
수완을 요구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확대의 이유는 대외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대내적이고
절대적인 축소의 이유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강력하고 건전한 국가 조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대한 국토에서 나오는 자원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훌륭한 정치에서 나오는 활력에 더 큰 기대를 거는 것이 보다 좋은 일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어떤 국가는 정복의 필요성을 국가 구성의
성질 속에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영토를 팽창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나라들은 아마도 이 필요성을 큰 다행으로 생각했을 것이지만, 이
필요성은 사실상 그 팽창의 극한에 이르면 몰락의 시기가 필연적으로 온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을 뿐이다.

   인민에 대하여(계속)

  정치체의 크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하나는 영토의 범위에 따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의 수에 따른 방법이다. 그리고 이들 두 가지 기준 사이에는 국가를 실제로 강대하게
만드는 적당한 비율이 있다. 국가를 만드는 것은 인민이고 인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영토이다.
그러므로 이 적당한 비율이란, 토지가 주민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해야 하고 그 토지가 부양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한 많은 주민이 있어야 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일정한 수의 인민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은 바로 이러한 비율 속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지가 너무 넓으면 그
방위가 힘들게 되고 경작은 불충분하게 되며 생산은 과잉상태를 빚게 되어, 머지않아 방어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토지가 너무 좁으면 국가는 그 생산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이웃 국가들에 의존하게 되고, 따라서 머지않아 공격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형편이 무역과 전쟁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인민은
모두가 그 자체로서는 약한 것이다. 그러한 인민의 운명은 이웃 인민들의 태도와 국제적 상황에
좌우되며, 따라서 그 존립은 짧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민은 다른 인민을 정복하여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정복을 당해서 없어지거나 하게 마련이다. 요컨대 그러한 인민은
아주 작아져 버리거나 아니면 아주 강해진 상태에서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영토의 면적과 인구수가 서로 조화되는 고정된 비율을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토질과 그 비옥도, 생산물의 성질, 기후의 영향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고 또 그 토지에
거주하는 주민의 기질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민은 비옥한 지방에 살면서도 소비를
적게 하고, 또 어떤 주민은 메마른 지방에 살면서도 많이 소비한다. 또 여성의 출산 능력의 다소,
그 나라의 인구 증가를 촉진하는 적당한 조건의  여부, 그리고 입법자가 제도에 의하여 기여할
수 있는 영향력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입법자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예견되는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또 그는 현재 나타나는 인구보다는
장차 인구가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는 상황에 더 유의해야 한다. 끝으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
지역의 사정에 따른 일반적인 필요 이상의 영토를 갖는 것이 요구되거나 허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예컨대 산악 지방의 국가는 그 영토가 더 넓어야 한다. 거기서는 목재와 축산 등의
자연적인 산물을 얻는 데 큰 힘이 들지 않는데다가, 일반적인 경험에서 보면 평지에서보다
여자의 출산율이 더 높고, 또 경사진 면적 때문에 전체의 면적은 넓어도 경작지로 쓸 만한
토지는 적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해안 지방의 국가는 그 영토가 좁아도 될 것이다. 그곳은
경작이 불가능한 바위나 모래밭이 대부분이지만 어업이 토지 생산물의 부족한 부분을 상당히
보충할 수 있는데다가, 해적을 격퇴시키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밀집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되고, 또
해안 지방은 식민지를 개척하여 과잉인구를 해외로 이주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민에게 법률을 제정해 주는 데는, 이와 같은 여러 조건 외에 또 하나의 조건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이 조건은 다른 조건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결여되면 다른 조건은 모두
쓸모가 없어져 버리고 마는 조건이다. 이 조건이란 인민이 평화와 풍요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가 형성되는 때는 군대가 편성되는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체의 저항력이 가장
약해지고, 따라서 가장 파괴되기 쉬운 때이기 때문이다. 이 저항력은, 각자가 자기의 지위를 얻는
데에만 마음을 쏟고 위험에 대처하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소란의 시기보다는 전혀 조직이
없는 시기에 더 강할지도 모른다. 이런 위기에 처하여 전쟁이나 기근 또는 폭동이 일어난다면,
국가는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동란기에 수립된 정부가 많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그 정부 자체가 국가를 파괴하고 만다는 것이다. 찬탈자들은 항상 이러한 혼란기를
만들거나 또는 이를 틈타 공중의 공포심을 이용하여, 인민이 냉정한 태도로는 결코 채택하지
않을 파괴적인 법률을 통과시킨다. 그러므로 입법의 시기를 언제로 했는가 하는 것은, 입법자의
행위와 폭군의 행위를 구별지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인민이 입법의 대상으로 적당한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인민이다. 즉 기원이나
이해관계 또는 관습 등의 일치로 이미 결합되어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 법률의 진정한 구속을
느껴보지 못한 인민, 뿌리깊은 관습이나 미신에 빠져 있지 않은 인민, 불의의 침입을 받고도
짓밟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인민, 이웃 나라들의 분쟁에 말려들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웃
나라들에 대항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를 격퇴하기 위하여 이웃 나라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인민, 모든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알려져 있는 동시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과중한
부담을 누구에게도 지울 필요가 없는 인민, 다른 인민의 도움 없이도 지낼 수 있고 또 다른
인민을 도울 필요도 없이 지낼 수 있는 인민,9 부유하지도 빈곤하지도 않으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인민, 그리고 끝으로 옛날 인민의 견실성과 새로운 인민의 온순성을 겸비한 인민이다. 입법
작업에서는 새로 건설해야 할 일보다는 파괴해야 할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며, 입법 작업이
성공한 예가 드문 것은 자연의 단순성과 사회의 요구를 결합시키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실상
이러한 조건이 결합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며, 따라서 입법이 훌륭하게 완성된 국가도 드문
것이다.
  유럽에는 아직도 입법이 가능한 나라가 하나 있다. 그것은 코르시카이다. 그 용감한 인민이
자유를 회복하고 방어하기 위해 발휘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를 현자가 본보기로 삼아 가르칠 만하다고 해도 놓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는 이
작은 섬나라가 유럽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21)

   각종 입법체계에 대하여

  모든 입법체계의 목적이 되어야 할 전체 인민의 최대 행복이, 정확히 말해서 어디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추구해 본다면, 우리는 그것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주요
대상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자유가 그 대상으로 되는 이유는, 모든 개인의
예속은 그만큼 국가라는 정치체의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며, 평등이 그 대상으로 되는 이유는,
평등 없이는 자유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사회적 자유가 무엇인가를 말한 바 있다. 평등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말이 권력과
재산의 정도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동등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권력에
대해서는 그것이 폭력으로 될 만큼 강대해서는 안 되고 오직 지위와 법률에 따라서만 행사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재산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떠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도 않고 그 누구도 몸을 팔 정도로 빈곤하지도 않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10 그것은
강자의 편에게는 재산과 세력의 절제가, 또 약자의 편에게는 인색과 탐욕의 절제가 전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이러한 평등이란 실제로는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평등의 악용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인가? 실제의 사정이 끊임없이 평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입법의 힘은 항상 평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훌륭한 제도의 일반적인 목표인 이들 두 개의 대상은 각국의 지역적인 여건과
주민들의 기질에 따라 이를 취사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률이란 그 자체로서 훌륭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제정되는 국가를 위하여 가장 훌륭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여러
관계를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그 인민에게 가장 알맞는 제도의 체계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토지가 메말라 생산에 부적합하거나 또는 면적에 비해 주민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에는, 인민을 공업과 기술 방면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그 생산물로 부족한 농산물과
교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인민들이 풍요한 평야와 비옥한 구릉지대를 차지하여
좋은 토지에 비해 주민이 부족한 경우에는, 인구를 증가시키는 농업에 인민의 주의를 돌리도록
해야 하고 공업을 배척하도록 해야 한다. 공업은 얼마 안 되는 그 나라의 주민을 몇 군데에
밀집시킴으로써 마침내는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이다.11
  만약 한 국민이 광활하고 편리한 해안 지대에 살고 있다면, 선박으로 바다를 덮게 하고 상업과
항해에 힘쓰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국민은 짧지만 찬란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만일 해안 지대가 접근 할 수 없는 바위로만 덮여 있다면, 국민들로 하여금 야만적인 어식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국민은 보다 평화롭고 아마 더 나으며 확실히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각 국민은 모든 국민에게 공통되는 원천을 제외하고는 여러 원칙을 자기에게 알맞게
적용시켜야 할 원인을 그 자체 속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입법은 구체적으로 자기에게
적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의 유태인들, 그리고 좀더 최근의 아랍인들은 종교를
주요한 목표로 삼았으며, 아테네인들은 문학을, 카르타고와 티르인들은 상업을, 로데스인들은
항해술을,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을, 그리고 로마인들은 덕을 주요한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법의
정신"의 저자는, 입법자가 어떤 수완으로 입법을 이들 각 목표에 적합하게 마련할 수 있는가를
많은 예를 들면서 설명한 바 있다.(23)
  국가의 구조를 진실로 견고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켜서 자연의 여러 관계가 모든 점에서 법률과 일치하도록 하고, 따라서 법률은 말하자면 오직
자연의 여러 관계를 확실히 하고 그에 동조하며 그를 수정하는 데에만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입법자가 목표를 잘못 생각하여 자연의 여러 관계에서 나오는 원칙과 반대되는
원칙을 채택하게 되면, 즉 자연의 여러 관계는 자유를 지향하는데 입법자는 예속을 지향하는
원칙을 채택하거나, 또는 자연의 관계가 인구의 증가를 지향하는데 입법자는 부를 지향하는
원칙을 채택하거나, 아니면 자연의 관계가 정복을 지향하는데 입법자는 평화를 지향하는 원칙을
채택하게 된다면, 법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힘을 잃고 국가의 구조는 변질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분쟁으로 불안상태를 계속하다가 마침내는 멸망하든지 아니면 변화해 버리고, 자연이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그의 지배권을 다시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법률의 분류

  전체에 대하여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에 대하여 최선의 형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계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정치체 전체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행하는 행위, 즉 전체에 대한
전체의 관계 또는 국가에 대한 주권자의 관계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관계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중간항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을
우리는 국법이라 부르는데, 때로는 기본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법률이 현명하게 제정된
경우에는 기본법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만일 한 국가에 단 하나의 훌륭한 제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인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좋은 제도를 고수할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가진 제도가 나쁜 것이라면 인민이 선량하게 되는 것을 방해하는 그 법률은 근본적인 것으로
인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인민은 그들의 법률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 법률을 항상 바꿀 수 있다.
  인민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해를 가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막을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둘째의 관계는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 또는 전체로서의 정치체에 대한 구성원의 관계이다. 이
가운데서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일 경우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정치체에 대한 구성원의
관계일 경우에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각 구성원은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는 완전히 독립된
위치에 있게 되지만, 정치체에 대해서는 극히 종속적인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힘만이
그 구성원의 자유를 보증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관계는 항상 동일한 방법으로 성립된다. 이
둘째의 관계로부터 민법이 생긴다.
  셋째로 우리는 인간과 법률의 관계, 즉 위법행위와 형벌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관계에
따라 형법이 제정되는데, 형법은 근본적으로 법률의 독특한 종류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모든
법률에 대한 보증인 것이다.
  이들 세 가지 법률 이외에 넷째의 것으로서, 대리석이나 청동판에 새겨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법률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진정한 구조를 형성하는 것으로 날로 새로운 힘을 가지며, 다른 법률이 낡거나 효력이 없을
경우에 그것에 활력을 주고 또 그것을 대신하여 인민으로 하여금 국가 설립의 정신을 유지하게
하여, 알지 못하는 사이에 권위의 힘 대신에 습관의 힘이 지배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지금 말하는
것이 바로 도덕, 관습, 특히 여론이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권력이지만, 항상 다른 모든 부분의 성공도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위대한 입법가는
외견상으로는 개별적인 규칙의 제정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몰래 여기에
머리를 쓰고 있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규칙들은 둥근 지붕을 지탱하는 궁륭에 불과하지만,
관습과 도덕은 형성되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그 지붕을 지탱하는 확고부동한
초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상 설명한 여러 종류의 법률 가운데서 나의 주제와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정부 형태를
결정하는 국가의 기본법뿐이다.

   역주(괄호 없는 주)
  1. 일반의지가 성립되는 데는 반드시 만장일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투표는 계산되어야 한다. 제외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일반성을 깨어지고 만다.
  2. 다르쟝송 후작은, "각자의 이해관계에는 각각 다른 원칙이 있다. 두 개의 특수이익의 일치는
제삼자의 다른 이해관계에 대항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고 말했다.(7) 그는 여기에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의 일치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고 덧붙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만일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면 공동이익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가 굳이 공동이익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은 저절로 잘 되어갈
것이고 따라서 정치의 기술도 필요없게 될 것이다.
  3. 마키아벨리는, "사실 분열에는 국가에 유해한 것과 유익한 것이 있다. 분파나 당파를 낳는
분열은 국가에 유해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열은 유익하다. 따라서 국가의 창설자는 의견의 대립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대립이 분패로 형성되는 일은 없도록
막아야 한다"고 했다("피렌체사" 제 7 편)
  4. 주의 깊은 독자들이여, 내 말이 여기서 모순된다고 성급하게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표현력이 부족하여 용어상의 모순을 피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참기 바란다.
  5. 나는 여기서 공화적이라는 말을 귀족정이나 민주정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법률인 일반의지의 지도를 받는 모든 정부로 이해하고 있다. 정부가 합법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주권자와 혼동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군주정도
공화정이 되는 것이다. 이 점은 다른 편에서 좀더 명확히 설명하겠다.
  6. 어떤 인민이 유명하게 되는 것은 다만 그 입법이 타락하기 시작한 때이다. 류쿠르고스의
제도가 그리스의 다른 지방에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스파르타인들이 이 제도 아래에서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7. 칼뱅을 단순한 신학자로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천재적 재능의 영역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는 즈네브의 현명한 여러 법령을 편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 못지 않은 명예를 그에게 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종교에 어떠한 변혁이 일어나더라도, 애국심과 자유에 대한 사랑이 우리들
사이에 남아 있는 한, 이 위인에 대한 추억은 영원히 축복을 받으며 남아 있을 것이다.
  8.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도 신에 의존하지 아니한 위대한
입법자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들의 법률은 승인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명한 사람 같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일반대중들을 쉽게
납득시킬 만큼 자명하지 못한 유용한 진리는 많이 있는 것이다."("로마사론" 제 1 편 제 1 장
참조)
  9. 만일 서로 인접해 있는 두 인민 가운데 한쪽이 다른 쪽의 도움 없이는 지낼 수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도와주는 인민에게는 매우 곤란하고 도움을 받는 인민에게는 매우 위험한 것이
된다. 이런 경우에 현명한 국민은 모두 자기에게 의존하고 있는 다른 국민을 해방시키려고
서두를 것이다.
  멕시코 제국에 둘러싸여 있었던 틀라스칼라 공화국은 멕시코 군인들로부터 소금을 사거나 또는
무상으로 얻어먹기보다는, 소금을 먹지 않고 지내기를 더 좋아했다. 현명한 틀라스칼라인들은
멕시코인들의 관대한 태도 뒤에 숨어 있는 함정을 알았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그들의 자유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나라는 그 큰 제국에 둘러싸여 있긴 했지만, 결국에는 멕시코
제국을 멸망하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10. 따라서 국가에 안정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두 극단을 될 수 있는 한 접근시켜야만 한다.
부자도 거지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래 분리될 수 없는 이들 두 개의 신분은 다 같이
공공의 복리에 치명적인 것이다.
  한편으로부터는 압제의 선동자가 나올 것이고, 다른 편에서는 폭군이 나올 것이다. 공적인
자유가 거래되는 것은 반드시 이 양자 사이에서이다. 한편은 그것을 사고 다른 편은 그것을 파는
것이다.(22)
  11. 다르쟝송 후작은, "전체적으로 보아 해외 무역의 어떠한 부분도 왕국 전체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이익밖에 주지 않는다. 그것은 몇몇 개인이나 도시를 부유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적인 국민은 해외 무역에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고 인민의 생활이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역주(괄호 안에 숫자가 있는 주)
  (1) 제 3 편 "정치체의 멸망에 대하여" 참고.
  (2) 몽테스키외와 그로티우스 등을 가리킨다.
  (3) 제 2 편 "법률에 대하여" 참조.
  (4) 프랑스의 법학자(1674__1744). 낭트칙령 이후 프랑스를 떠나 베를린, 로잔 등에서 법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푸펜도르프와 그로티우스의 저작을 번역했다.
  (5) 그로티우스가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연금을 타고, 프랑스 주재 스웨덴 공사를
역임한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며, 교수직이란 말은 바르베라크에 대하여 비꼬아 한 말이다.
  (6) 즈네브 초고에는, "일반의지가 전체의지인 경우는 드물다"고 표현되어 있다.
  (7) 다르쟝송, "프랑스의 정치에 관한 고찰" 제 2 장 참조.
  (8) 기원전 8세기경 스파르타의 전설적 입법가.
  (9) 솔론, 누마, 세르비우스 모두 아테네와 로마의 전설적인 입법가. 솔론은 아테네인을 재산에
따라 네 계급으로 나누었고, 누마는 로마인을 직업에 따라 분류했으며, 세르비우스는 재산에 까라
백인조를 편성했다. 제 4 편 "로마의 민회에 대하여" 참조.
  (10) 루소는 "에밀"의 제 5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다.
법률의 정의부터 다시 해야만 한다."
  (11) 몽테스키외를 가리켜 한 말이다. "법의 정신" 제 1 편 제 1 장 참조.
  (12) 제 3 편 "정부일반에 대하여" 참조.
  (13) 제 1 편 "최초의 사회에 대하여" 참조.
  (14) 몽테스키외, "로마인의 번영과 쇠퇴" 제 1 장. 여기서 루소가 인용한 구절은 몽테스키외의
초판(1734)에는 없으나, 그 뒤에 보충된 것이다.
  (15) 십이동판법을 만들기 위해 두었던 열 명의 행정관.
  (16) 마호메트를 가리킨다.
  (17) 워버튼(Warburton, 1698__1776년)은 영국의 신학자, 영국 왕실 목사.
  (18) 워버튼, "모세의 신의 사절" 제 2 편 제 5 장 및 "교회와 국가의 동맹" 참조.
  (19) 고대 로마의 4대와 7대의 왕을 배출한 가문. 그 가문 출신의 7대 왕이 로마로부터
추방됨에 따라 로마의 왕정이 끝났다고 한다.
  (20) 러시아의 로마노프조의 황제인 표트르 1세(1672__1725년).
  (21) 이러한 판단에서 루소는 코르시카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들여 "코르시카 헌법
초안"(1765)을 편찬했다.
  (22) "산으로부터의 편지" 참조.
  (23)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제 11__13 편 참조.


    제 3 편

  정부의 각종 형태를 논하기 전에, 아직도 명확히 설명된 것이 없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규정해 보고자 한다.

   정부일반에 대하여

  나는 먼저 독자들에게, 이 논제에 관한 것은 특히 주의하여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주의 깊게
읽어주지 않는 독자들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기술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자유로운 행위에는 서로 협력하는 두 개의 원인이 있다. 그 하나는 정신적 원인 즉
행위를 하도록 결정하는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 원인 즉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힘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먼저 그곳으로 가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그 다음으로
내 다리가 나를 거기로 옮겨 두어야 하는 것이다. 몸이 마비된 환자가 뛰어갈 의지를 가진다거나,
활발한 사람이 뛰어갈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그들은 둘 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게 마련이다.
정치체에도 이와 같은 두 개의 원동력이 있다. 여기에도 역시 힘과 의지의 구별이 있다. 의지에
해장하는 입법권과 힘에 해당하는 집행권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이 둘의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으며 또 되어서도 안 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입법권은 인민에게 속해 있고 또 오직 인민에게만 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집행권은 입법자나 주권자로서의 인민 전체에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설명한 원칙으로부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집행권은 전적으로 법률의 범위 밖에
있는 개별적 행위로만 구성되어 있고, 따라서 그 행위가 항상 법률이 되게 마련인 주권자의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공의 힘은, 그 힘을 한데 모아 일반의지의 지도에 따라 작용할
수 있게 하는 적당한 대리인을 필요로 한다. 그 대리인은 국가와 주권자 사이의 연결 수단이
되어, 인간에 있어서 정신과 육체를 연결해 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집합적 인격에 대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국가에 있어서 정부가 존재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정부는 특히
주권자와 잘못 혼동되고 있지만, 사실은 주권자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정부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민과 주권자 사이의 상호 연락을 위해 설치된 중간적인
단체로, 법률을 집행하고 사회적, 정치적 자유를 유지시키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 단체의 구성원을 우리는 '행정관' 또는 '왕', 즉 '통치자'라 부른다. 그리고 이를 통틀어
'군주'라고 한다.1 따라서 인민 자신을 군주에게 복종시키는 행위는 결코 계약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다. 이 행위는 어디까지나 위임 또는 고용에 불과한 것이다. 통치자는
주권자의 단순한 관리이며 그들에게 맡겨진 권력을 주권자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필요할 때에는 언제라도 이 권력을 제한하고 변경하며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권리를 양도한다는 것은 사회체의 성질상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사회적
결합의 목적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행권의 정당한 행사를 '통치' 또는 '최고행정'이라 부르고, 이 행정을 위임받은
개인 또는 단체를 '통치자' 또는 '행정관'이라 부른다.
  정부에는 중간적인 여러 힘이 있어서, 그들 힘의 관계가 전체와 전체의 관계 즉 주권자와
국가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주권자와 국가의 관계는 연비례의 외항의 관계로 나타낼 수
있는데, 그 비례중항이 정부에 해당하는 것이다.(1) 정부는 주권자로부터 명령을 받아 이를
인민에게 내린다. 그래서 국가가 균형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계산에 넣어, 한 편에는
정부 그 자체의 제곱이나 거듭제곱과, 다른 편에는 주권자이면서도 동시에 신민인 시민들의
제곱이나 거듭제곱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 항목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변경되는 즉시 이 비례는 깨어지고
만다. 주권자가 통치를 하려 들거나 행정관이 법률을 제정하려 하거나 또는 신민이 복종하기를
거절한다면, 질서 대신에 무질서가 나타나고 힘과 의지는 더 이상 협력하지 않게 되며 국가는
해체되어 전제와 무정부상태로 떨어지고 만다. 결국 어떠한 비례에도 비례중항은 단 하나밖에
없으므로, 한 국가 내에도 좋은 정부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여러 관계도
수많은 사건에 따라 변화될 수 있으므로, 한 인민에게 적합하지 않은 정부도 다른 인민에게는
적합할 수도 있고 또 시대가 바뀌면 그 인민에게 적합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비례외항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관계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나는 가장
설명하기 쉬운 예로 인민의 수를 들어 보겠다.
  어떤 국가가 1만명의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주권자는 오직 집합적으로,
그리고 단체로서만 간주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각 시민은 신민의 자격으로서는 하나의
개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권자와 신민의 권력상의 비율은 1만 대 1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각 구성원은 국가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권의 1만 분의
1밖에는 자기의 몫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인민의 수가 10만이 된다. 그래도 신민으로서의
지위에는 변화가 없으며, 따라서 각 신민은 전과 같이 법률의 전적인 지배를 받을 뿐이다.
반면에, 그의 투표의 영향력은 10분의 1로 감소되어 법률의 제정에 있어서는 이전의 10분의
1정도의 영향력 밖에는  갖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신민은 항상 하나의 단위로 머물러 있으므로,
신민에 대한 주권자의 비율은 신민의 수에 비례하여 증대된다. 이렇게 볼 때, 국가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유는 그만큼 감소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비율이 증대된다고 말한 것은, 비례의 균형이 점차 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기하학적 의미에서의 비율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관계는 그만큼
희박해지는 것이다. 기하학적 의미에서의 비율은 양에 따라 고려되므로 나눈 몫으로 표현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관계는 동일성이라는 점에서 고려되므로 유사성에 따라 평가된다.
  그래서 일반의지에 대한 특수의지의 관계, 즉 법률에 대한 도덕과 관습의 관계가 희박하면
희박할수록, 억압하는 힘은 증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훌륭한 정부가 되기 위하여 정부는
인민의 수가 증가하는 데 비례하여 더욱 강력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국가가 커짐에 따라
공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고 또 그러한
유혹에도 더 많이 빠지게 되므로, 정부가 인민을 통제하기 위해서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주권자도 정부를 억제하기 위해서 더 큰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절대적인 힘에 대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여러 다른 부분의 상대적인 힘에 대해서이다.
  이 이중의 관계로부터 우리는 주권자, 군주 및 인민들 사이에 성립되는 연비례가, 결코
독단적인 착상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체의 본성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두 외항 가운데 한 편, 즉 신민으로서의 인민은 하나의 단위로 고정되어
증감되는 것이므로, 복비가 증감함에 따라 단비도 증감하며, 따라서 비례중항 역시 변하게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정부 형태란 존재할 수 없고,
국가의 크기가 다르면 그만큼 다른 성질의 많은 정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이 이론을 비웃으면서, 나의 생각에 따라 그와 같은 비례중항을 발견하여 정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인민수의 평방근을 찾아내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나는 여기서 인구수를 단지 하나의 예로 들고 있을 뿐이며, 내가 말하고
있는 비례란 단지 사람수에 따라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수많은 원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의 양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또 지금 내가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하여
잠시나마 기하학적 정확성이 정신적인 분량에 있어서는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라고.
  정부는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보다 큰 규모의 정치체를 작은 규모로 축소한 것이다. 그것은 몇
가지의 기능이 주어진 정신적 인격으로서, 주권자와 같이 능동적인 동시에 국가와 같이
수동적이기도 한 것이며, 그 밖에도 이와 비례한 관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새로운 비례관계가 생기고, 그 비례에서 행정구역의 순위에 따라 또 하나의 비례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하면 마침내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비례중항, 즉 단 한 사람의 통치자 또는
최고행정관은 그 급수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분수급수와 정수급수 사이에 있는 한 단위로도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항의 이와 같은 복잡성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는 정부를 국가 내의 하나의 새로운 단체, 즙
인민이나 주권자와는 전혀 다르면서 양자의 사이에 있는 중간적인 단체라고만 생각해 두자.
국가와 정부라는 이 두 단체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즉 국가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만,
정부는 주권자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통치자가 지배하는 의지는 곧 일반의지 또는
법률에 불과한 것이며, 그 이외의 어떤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치자의 권력도 역시 그에게
집중된 공적권력인 것이다.
  그러니만큼, 통치자가 어떤 전제적이고 자의적인 행위를 하려고 한다면, 그 즉시로 전체적인
유대는 해체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통치자는 주권자의 의지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특수의지를
갖게 되고, 이 특수의지에 따라 자기가 갖고 있는 공적권력을 사용하게 되면, 두 개의 주권자 즉
법률상의 주권자와 사실상의 주권자가 나타나게 되어, 사회적 결합은 즉시 깨져버리고 정치체는
해체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정부라는 단체가 국가라는 단체와 구별되는 어떤 현실적인 존재로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고 정부의 모든 구성원들이 일치 협력하여 행동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독자적인 개성, 모든 구성원에 공통된 감정, 자기보존을 도모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힘과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 이 독자적인 존재는 각종의 회의와 평의회,
토의하고 결정하는 권한, 각종의 권리, 칭호 및 특권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전적으로 통치자에게 속하며, 그가 그러한 직무 때문에 고생을 하는 만큼 그에게 명예를 가져다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가라는 전체 속에서 정부라는 종속적인 전체가
질서정연하게 작용할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 즉 어떻게 하면 전체의 구조를 변경시키지 않고
전부가 자기구조를 강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정부로 하여금 자기보존을 위해서
쓰도록 되어 있는 특수한 힘과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 쓰도록 되어 있는 공적권력과의 차이를
항상 구별하도록 할 것인가, 요컨대 어떻게 하면 정부로 하여금 정부를 위해서 인민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서 정부를 희생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하기야 정부라는 인위적인 단체는 국가라는 다른 인위적 단체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빌어온 종속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어느 정도의 강력하고
신속성을 가진 행동을 할 수 없다거나 튼튼한 건강을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정부는 그 설립 목적을 정대로 이탈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 구성 방식에 따라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도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모든 차이로부터, 정부가 국가라는 정치체에 대하여 당연히 가져야 할 여러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이러한 관계는 국가 그 자체에 수정을 가져오는 여러 가지 특수하고 우연한
관계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 자체로서는 아무리 훌륭한 정부라도, 그것이 속해 있는
정치체의 결합에 따라 정부의 여러 관계가 변하게 되어 가장 나쁜 정부가 되어버리는 수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여러 형태를 구성하는 원리에 대하여

  위에서 설명한 차이의 일반적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앞서 국가와 주권자를
구별하였던 것처럼 여기서 통치자와 정부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정관이라는 단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수는 형편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신민에 대한 주권자의 비례는 인민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커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명백한 유추에 따라 우리는 행정관에 대한 정부의 비례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총력은 항상 국가의 권력이므로 변화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그 힘을 정부
자신의 구성원을 위하여 많이 쓰면 쓸수록 인민 전체를 위하여 사용할 힘은 그만큼 적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행정관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정부의 힘은 약하게 된다. 이 원리는
기본적인 것이므로 이를 좀더 명백히 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행정관의 인격 속에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 가지의 의지를 구별해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개인의 사적인 의지로서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의지이다. 둘째는 행정관의
공동의지로서 오직 통치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므로 단체의지라고도 한다. 이것은 정부로 보아서는
일반의지가 되지만, 정부도 그 일부인 국가로 보아서는 특수의지가 된다. 그리고 셋째는 인민의
의지 또는 주권자의 의지로서 전체인 국가에 대해서나 전체의 한 부분인 정부에 대해서나 모두
일반의지가 되는 것이다.
  완벽한 입법에 있어서는, 개인의지 또는 특수의지란 완전히 없어져야 하고, 또 정부의 고유한
단체의지도 극히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 결과 일반의지 또는 주권자의
의지만이 항상 지배적으로 나타나 다른 모든 의지를 지도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자연의 질서에 따르면, 이들 여러 가지 의지는 한 곳에 집중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일반의지가 언제나 가장 약하고 단체의지가 그 다음으로
약하며, 개인의지가 가장 강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정부에 있어서 각 구성원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이고 그 다음으로 행정관이며 맨 마지막으로 시민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순서는 사회질서가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순서이다.
  그렇다면 정부 전체가 단 한 사람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특수의지와
단체의지는 완전히 결합되고, 그 결과 단체의지는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강도를 갖게 된다.
그런데 힘의 행사는 의지의 강도에 좌우되고, 정부가 가지는 힘의 절대량은 결코 면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활동적인 정부란 단 한 사람으로 구성된 정부라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정부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주권자를 통치자로 만들며 시민들을 모두 행정관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단체의지는 일반의지와 혼동되어 일반의지 정도의
활동성밖에 갖지 못하게 되고, 특수의지만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정부는
항상 똑같은 힘의 절대량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볼 때 그의 힘이나 활동성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러한 관계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증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쉽사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각 시민이 자기가 속해 잇는 단체, 즉 국가에 대하여 미칠
수 있는 힘보다도 행정관이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 즉 국가에 대하여 미칠 수 잇는 힘보다도
행정관이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 즉 정부에 대하여 미칠 수 있는 힘이 더 크기 때문에
특수의지는 주권자의 행동에 대해서보다도 정부의 행동에 대하여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 하면, 시민은 개별적으로는 주권의 어떠한 기능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비하여,
행정관은 모두 일정한 정부의 기능을 거의 언제나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가
커지면 커질수록, 반드시 그 영토의 넓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국가의 현실적인 힘은
점점 더 증대된다. 그러나 국가의 크기가 그대로 있는데 행정관의 수만 늘어난다고 해서 정부의
현실적인 힘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힘이란 곧 국가의 힘이므로 그 양은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절대적인 힘 또는 현실적인 힘은 증대되지 못하면서
정부의 상대적인 힘 또는 활동력만 감소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정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지면 그 처리 속도가 늦어지고, 또 너무 신중을
기하면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여 행운을 잃게 되며, 나아가 지나치게 생각하면 생각의
목적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 나는 행정관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의 힘은 약해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 나는
인민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민을 통제하는 힘도 커져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여기서 우리는, 정부에 대한 행정관의 관계는 주권자에 대한 신민의 관계와는 반대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비율로 볼 때, 국가가 커질수록 정부는 축소되고 인민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통치자의 수는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정부의 절대적인 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정부의 공정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위에서와는 반대로 행정관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단체의지는
그만큼 일반의지에 가까워지는데 반하여,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단 한 사람의 행정관 아래서는
단체의지란 결국 단순한 특수의지에 불과하게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 쪽으로 치우쳐도 모두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이므로, 입법자의 기술은 항상
반비례의 관계에 있는 정부의 힘과 의지를 국가에 가장 유리한 비례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점을
어떻게 알아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부의 분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여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의 수에 따라 정부의 종류나 형태가
구별되는가를 보았다. 여기서는 정부의 분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고자 한다.
  첫째, 주권자는 정부를 인민 전체 또는 인민의 대다수에 위임함으로써 단순한 개인으로서의
시민보다도 행정관으로서의 시민의 수를 더 많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부 형태를 우리는
'민주정'이라 부른다.
  다음으로, 주권자는 정부를 소수의 인민에게 위임함으로써 행정관으로서의 시민보다도 단순한
개인으로서의 시민의 수를 더 많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부 형태를 우리는 '귀족정'이라
부른다.
  끝으로, 주권자는 정부 전체를 단 한 사람의 행정관에게 위임함으로써 다른 모든 행정관들은
그들의 권력을 이 사람으로부터 받도록 할 수도 있다. 이 세번째 형태가 가장 흔한 형태로서
우리는 이를 '군주정' 또는 '왕정'이라 부른다.
  이러한 형태는 모두, 또는 최소한 앞의 두 형태에서는 같은 형태 내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차이가 있어 그 범위가 꽤 넓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정은 모든 인민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 반수로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귀족정도 역시 인민의 반수로부터 한
사람까지라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도의 수로까지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왕정에
있어서도 다소 구분의 여지는 있다.
  스파르타에는 국법에 따라 항상 두 사람의 왕이 있었다. 또 로마제국에는 동시에 여러 사람의
황제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마제국이 분할되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각 정부
형태가 그 극단적인 점에 있어서 다른 정부 형태의 극단적인 점과 마주치는 하나의 접합점이
생긴다. 따라서 그 명칭은 단지 세 가지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정부의 형태는 국가에 살고 있는
인민의 수만큼 많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같은 정부라도 어느 점에서는 여러 부분으로 세분될 수도 있을 뿐더러 부분마다
각기 다른 정부 형태에 따라 통치될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앞서 말한 세 가지 정부 형태를
결합하여 무수한 혼합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이 혼합 형태의 각각은 모든 단일 형태에
따라 배로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최선의 정부 형태란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는 어느 시대에나 많이 논의되어 왔으나 하나의
동일한 정부 형태라도 어떤 경우에는 최선의 것이지만 다른 경우에는 최악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고려되지 않았다.
  만일 여러 국가에 있어서 최고행정관의 수가 시민의 수와 반비례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면,
일반적으로 민주정은 소국에 적합하고 귀족정은 중간 정도의 나라에, 그리고 군주정은 대국에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규칙은 위에서 설명한 원리로부터 직접 도출된다. 그러나 예외를
만들어 내는 무수한 사정을 일일이 다 고려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정에 대하여

  법률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집행해야 하고 해야 하는가를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권과 입법권이 결합되어 있는 제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제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집행권과 입법권이 결합되어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이 제도가 결점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당연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며, 또 통치자와 주권자가 동일한 인격이 되므로, 말하자면 '정부없는 정부'를 형성하고
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법률을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집행한다거나 또는 인민이라는 단체가 그들의 주의를 일반적인
고려에서 특수한 대상으로 옮기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공공의 사무에 사적인 이익이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정부가 법률을 남용하는 폐단도, 입법자가 사적인 고려에
치중한 결과 필연적으로 빠지는 부패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입법자가 부패하게 되면
국가는 그 근본에 있어서 부패되어 있는 것이므로 어떠한 개혁도 불가능하게 된다. 통치권을
남용하지 않을 정도의 인민이라면 결코 독립도 남용하지 않을 것이며, 항상 잘 통치하는 인민은
통치를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민주정이라는 말을 엄밀히 해석한다면, 진정한 민주정은 이제까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가 통치하고 소수가 통치받는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다. 인민이 공공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계속 모여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 처리를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게 되면 그만
통치의 형태가 바뀌어 버리고 만다.
  실상 정부의 기능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경우에는 결국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 최대의
권위를 장악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의 원칙으로 인정할 수 있다. 첫째, 국민 모두가 한
곳에 쉽사리 집합할 수 있고 쉽사리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다.
둘째, 사무가 복잡하지 않고 귀찮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풍습이 극히 단순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셋째, 인민의 지위와 재산이 상당한 정도로 평등할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못하면 권리와 권위의 평등도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사치가 아주 적거나
전혀 없을 것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사치는 재산에서 생기거나 재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치는 부자도 빈자도 다 같이 타락시킨다. 부자는 소유에 의하여, 그리고
빈자는 탐욕에 의하여 타락하고 마는 것이다. 사치는 인민으로 하여금 국가를 팔아서라도 안일과
허영심을 달성하게 만들고, 국가로부터 모든 시민들을 끌어내어 서로 노예가 되게 만들며, 모든
시민을 편견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한 유명한 저술가는 덕성을 공화국의 근본 원리로 삼았던 것이다.(2) 왜냐하면,
이와 같은 모든 조건은 덕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사상가도
필요한 구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 정확하지 못하고 명석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주권은 어떤 국가에서나 똑같은 것이므로--정부 형태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잘
조직된 국가에서는 어디에서나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정 또는 인민정체의 정부만큼 내란과 내분이 일어나기 쉬운 정부는 없다는 사실을 덧붙여
두고 싶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부만큼 강력하고 끊임없이 그 정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도
없으며, 또 이 정부만큼 그 유지에 경계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정체 아래서의 각 시민은 실력과 인내로 무장하여, 덕성이 뛰어난 폴란드의 지사2가 폴란드
국회에서 했다는 "나는 노예상태의 평화보다도 위험한 자유를 선택한다"는 말을 일생 동안
날마다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신들로 구성된 인민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정부는 아마 민주적이겠지만, 그토록 완벽한
정치체는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귀족정에 대하여

  귀족정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정신적인 인격, 즉 정부와 주권자가 있다. 그 결과 두 개의
일반의지가 있으니, 하나는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구성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의지이다. 그래서 정부는 그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규제할 수 있지만, 인민에 대해서는 주권자 즉 인민 그 자체의 이름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초의 사회는 귀족정에 따라 통치되었다. 가부장들이 모여 공공의 사무를 토의하고,
젊은이들은 아무런 이의없이 경험의 권위에 복종했다. 사제, 장로, 원로원, 노관 등의 이름은
여기서 생긴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미개인들은 아직까지도 이런 식으로 통치하고 있는데, 그들의
통치는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제도 때문에 생긴 인위적 불평등이 자연적 불평등보다 심화됨에 따라 재산이나 권력3이
연령보다 중시되었고, 귀족정은 선거제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재산과 함께 아버지의
권력이 그 자손에게 계승되자, 귀족 가문이 나타나고 정부의 세습제가 생겼으며 겨우 스무 살 난
원로원 의원도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귀족정에는 자연적인 것, 선거에 따른 것, 세습적인 것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자연적인 귀족정은 소박한 인민에게 적합하고, 세습적인 귀족정은 모든 정부 가운데 최악의
것이며, 선거에 따른 귀족정은 최선의 정부로서 이것이 곧 본래 의미의 귀족정이다.
  귀족정에는 두 가지 권력이 확실히 구별된다는 장점 이외에도, 그 구성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인민정체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행정관이 되지만,
귀족정에서는 행정관을 소수에 한정하고 있으며 더구나 선거에 따라서만 행정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4 이것은 곧 성실, 지식, 경험 등으로 공중의 호평과 경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행정관으로 발탁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것은 장래 선정의 새로운 보증이 되고 있다.
  더구나 귀족정에서는 집회도 훨씬 쉽게 이루어지고 토의도 잘 진행되어, 사무가 보다
질서정연하고 신속하게 처리된다. 외국에 대한 국가의 신용도, 이름없고 경멸 당하는 군중에
의해서 통치될 때보다는 존경받는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서 통치될 때 더 잘 유지되는 것이다.
  요컨대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는 것만 보장되면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좋고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다. 쓸데없이 정부의 기관을 확장할 필요도 없고, 선출된 1백 명의 인원이면 거뜬히 할 수
있는 일을 2만 명의 인원에게 처리하도록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귀족정에서는, 정부라는 단체의
이익 때문에 공적인 권력을 일반의지의 규칙에 따라 행사할 기회가 적어지고 집행권의 일부가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쉽다는 불가피한 경향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귀족정의 특유한 조건에 대해서 말한다면, 훌륭한 민주정에서처럼 법률이 공공의 의지에 따라
직접 집행될 수 있을 만큼 국가가 너무 작다거나, 인민이 너무 소박, 성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국가가 너무 커서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행정관을 여러 곳에 분산해 두어야 하는
상황 때문에, 그들 행정관들이 자기의 임지에서 주권자처럼 행세하고 독립을 주장하여 마침내
그곳의 통치자가 되어 버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귀족정은 인민정체에 요구되는 모든 덕성을 다 요구하지는 않지만 귀족정 특유의 다른
덕성을 요구한다. 예컨대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절제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스파르타에서조차도 달성되지 못했던 완전한 평등이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귀족정이 어느 정도 재산의 불평등을 수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칙상 자기의 모든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공 사무의 처리가 위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처럼, 부유한 자가 항상 그런 직책을 먼저 위임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5) 반대로 때로는 가난한 자를 선출함으로써, 인간의 가치에는
재산에 우선하는 여러 가지 선출이유가 있음을 인민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군주정에 대하여

  이제까지 우리는 통치자를 법률의 힘에 따라 결합되고 국가 내에서 집행권을 위임받은,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인간으로서 고찰해 왔다. 이제 우리는 이 권력이 하나의 자연적 인격, 즉
하나의 현실적 인간의 손에 집중되어, 이 사람만이 법률에 따라 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경우를 고찰해야겠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군주 또는 왕이라 부른다.
  하나의 집합적인 존재가 개인을 대표하고 있는 정부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군주정에서는
한 개인이 하나의 집합적 존재를 대표하고 있다. 따라서 통치자를 구성하는 정신적 단위는
동시에 육체적 단위로서, 다른 정체의 경우에는 법률의 힘으로 겨우 결합할 수 있는 일체의
권능이 자연적으로 하나의 단위에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인민의 의사, 통치자의 의사, 국가의 공적인 권력, 그리고 정부의 특수한 힘 등이 모두
동일한 원동력에 따라 움직인다. 국가 기관의 모든 명령권이 동일인의 손에 장악되어 있어,
전체가 같은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운동의
충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보다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활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체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조용히 바닷가에 앉아 힘 안 들이고 큰 배를 물에 띄워 보내는 아르키메데스(6)는, 자기
사무실에서 광대한 국가를 통치하고 자신은 움직이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상은 모든 것을
다 움직이고 있는 유능한 군주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군주정만큼 활동력이 강한 정부는 없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그만큼 특수의지가 우위에
서서 다른 의지를 쉽사리 지배하는 정부도 없다. 모든 것이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적이란 결코 공공의 복지는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행정의 힘조차도
끊임없이 국가를 해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군주는 절대군주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민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멀리서 사람들은 항상 군주에게 외치고 있다. 이 격언은 대단히 좋고 또
어느 면에서는 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궁정에서는 그것이 늘 조소거리가 되고 만다.
인민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물론 가장 강대한 권력이지만, 그것은 불안하고 조건이 붙어
있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군주들은 결코 거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군주라도,
자기의 지배권을 잃지 않으면서 마음내키면 간악한 짓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법이다.
  인민의 힘은 곧 군주의 힘이므로 군주의 가장 큰 관심은 인민이 번영하고 그 수가 늘어나며
강해지는 것이라고 아무리 정치 설교자들이 설명하더라도, 군주들은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개인적 관심은 무엇보다도 인민이 약하고 빈곤하여 그들에게 반항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인민이 항상 군주에게 완전히 복종한다는 조건만 성립되면 인민의 힘이 곧
군주의 힘이 되는 것이므로, 인민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군주의 이익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경우에 군주는 그 힘으로 이웃 나라에 위세를 떨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익은 3차적이고 종속적인 것에 불과한데다 인민의 힘이 강력해지는 것과 인민이 계속 복종하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으므로, 군주는 자연히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원칙을 택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바로 사무엘이 헤브라이인들에게 강조한 것이며,(7) 마키아벨리가 명백히
증명해 보인 것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을 가르치는 듯이 하면서, 사실은 인민에게
위대한 교훈을 주었다. 그의 저서 "군주론"은 공화주의자의 교과서이다.5
  우리는 이미 일반적인 관계에 따라, 군주정은 대국에만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군주정 자체를 검토해보더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치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통치자와 신민 사이의 비율은 점점 작아져서 균등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민주정에서는 그 비율이 1 : 1, 즉 절대균등이 된다.
  한편 정부가 소수의 손에 장악될 때는 그 비율도 점점 커져서, 정부가 한 사람의 손에 장악될
때는 그 '최대치'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하면, 통치자와 인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국가는 결합의 유대를 잃고 만다. 그러한 결합의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중간적인 계층이
필요하다. 즉 왕족, 고관, 귀족 등이 그 계층을 메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소국에는 적합하지 않다. 만약 소국에 이러한 계층이 있으면, 그 나라는 곧 망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국을 잘 통치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대국을 통치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국왕이 대리인을 두어 통치할 때는, 머지않아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군주정을 항상 공화정보다 못한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이고도 불가피한 결점은, 공화정에
있어서는 자기의 직무를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는 학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인민의
소리(여론) 때문에 최고의 공직에까지 올라갈 수 없는 반면에, 군주정에 있어서는 출세를 하는
자의 대부분이 소인배, 협잡꾼, 모사꾼들이라는 점에 있다. 그들은 잔재주로 궁정의 요직에는 잘
올라가지만 일단 요직에 앉게 되면 곧장 그들의 무능을 민중들에게 폭로하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족속들이다.
  그러한 선택 문제에 있어서는 인민이 군주보다도 훨씬 현명하고 실수가 적다. 그러므로 군주의
대신들 가운데서 참으로 유능한 인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마치 공화 정부의 요직에서
참으로 무능한 인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따라서 다행히도 선천적으로
통치자의 재능을 타고난 자가 나타나 약삭빠른 관리자들 때문에 거의 국운이 기울어진 군주국의
정무를 보살피게 되면, 사람들은 그가 보여주는 솜씨에 오직 놀라움을 표시할 것이며 그의
업적은 그 나라의 역사에 새로운 기원을 이루게 된다.
  군주국이 잘 통치되기 위해서는 그 인구와 영토의 크기가 통치자의 능력에 적합해야 한다.
정복은 통치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다. 길이가 충분한 지렛대만 있으면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지구를 움직일 수 있지만, 그것을 받치고 있으려면 헤라클레스의 어깨가 필요하다. 가령,
어떤 나라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군주의 인품은 항상 나라의 크기에 비해 적은 법이다.
반대로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라의 크기가 지배자에게 너무 작은 경우가 있다면, 이때에도
통치는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통치자는 항상 자기의 위대한 계획을 추구한 나머지
인민의 이익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능력이 없는 통치자가 능력부족 때문에
인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런 통치자는 자기의 능력을 남용함으로써 인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9)
  그러므로 왕국은 군주의 능력에 따라 각 치세마다 영토를 확대하거나 축소해야만 한다. 그러나
(귀족정에 있어서는) 원로원의 능력에 보다 확실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가는 통치에 손상을
입지 않고도 고정된 국경을 가질 수 있다.
  군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결점은, 다른 두 정부 형태에 있어서는 중단되지 않는
통치자의 계승이 중단되기 쉽다는 점이다. 국왕이 죽으면 다른 국왕이 필요하게 된다. 새로운
왕을 선출할 때까지는 위험한 공백기가 생기게 되고, 선거도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시민들이 군주정에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공평하고 올바르지 않는 한, 각종의
음모와 부패가 횡행할 것이다. 국가를 돈으로 사들인 자도 이번에는 자기가 그것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강자로부터 약탈당한 금전을, 약자를 희생시켜 보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통치 아래서는 조만간 모든 것이 금전에 좌우될 것이므로 이런 국왕 아래서의 평화는 공백기의
무질서보다 훨씬 못한 것이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들이 취해져 왔는가? 우선 왕위가 일정한 가족에
세습되도록 만들어졌다. 왕위계승의 순서가 정해져, 국왕이 죽었을 때 일어나는 일체의 분쟁을
예방하도록 되었다. 즉 선거의 폐단을 피하기 위하여 섭정이라는 다른 불편한 제도를 만들어
냄으로써 현명한 통치보다는 표면상의 평온만을 유지하도록 했다.
  훌륭한 국왕을 선택하기 위하여 분쟁을 일으키기보다는 어린애나 불구자 또는 바보 같은 자를
통치자로 삼은 모험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한 모험을 저지르는 과정에서도, 인간은 대개 그
모험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디오니시오스가 자기 아들의
수치스런 행위를 꾸짖으면서 "내가 언제 그런 짓을 한 적이 있더냐?"고 했을 때, 그의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국왕이 아니었습니다"라고(10) 대답한 것은 도리에 맞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도록 교육을 받은 인간도, 모든 주위 사정에 영향을 받아 정의감과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어린 군주에게 통치 기술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많은 노력이 기울여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교육은 군주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 그들에게는 복종하는 방법부터 가르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역사상 이름 있는 위대한 국왕들은 그 누구도 통치하기 위한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통치라는
기술을 많이 배운다고 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명령하기보다는 복종함으로써 더 잘
알게 되는 기술이다. 왜냐하면,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단신이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을 때 단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바라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일"(11) 이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계승이 중단되기 쉬운 데서 오는 또 하나의  결과는, 왕정이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즉
왕정은 통치자인 국왕이나 또는 국왕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자들의 성격에 따라서, 오늘은 이런
계획을 쓰다가 내일은 다른 계획을 쓰곤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정한 목표를 가질 수도 없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일관성이 없는 정책은 국가로 하여금 이런
원칙에서 저런 원칙으로, 그리고 이런 계획에서 저런 계획으로 방황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통치자가 항상 동일한 다른 정부 형태에서는 이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군주정의) 궁정에서는 보다 많은 음모가 들끓고 있다고 한다면, (귀족정의)
원로원에는 보다 많은 지혜가 있으며, 공화국은 보다 일관성 있고 신중한 정책에 따라 그들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군주국에서는 거의 모든 국왕이나 대신들이 모든 점에 있어서 선임자들과는 다른 정책을
취하는 것을 공통의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내각에 변동이 생긴다는 것은 곧 국가에 변동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통치자의 계승에 연속성이 없다는 사실은, 군주정을 옹호하는 통치자가 즐겨 쓰는
궤변의 구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궤변은 국정을 가정에 비교하고 군주를 가부장에 비교할
뿐만 아니라--이 오류에 대해서는 이미 논박한 바 있다--나아가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미덕을 군주가 정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고, 현실의 군주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그러한 가정이 성립된다고 하면, 왕정은 다른 어떤 정부 형태보다 확실히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왕정은 의문의 여지없이 가장 강력한 정부이고, 따라서 거기에다 일반의지에
적합한 단체의지만 있으면 가장 좋은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6 천생의 국왕이 드물다고 한다면, 자연과 요행이 일치하여
그런 인물을 왕위에 오르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게다가 왕에 대한 교육이 그것을
받은 자로 하여금 반드시 부패의 길을 걷게 한다면, 지배자가 되도록 교육을 받은 인간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주정 그 자체와 현명한 국왕에 의한 정치를 혼동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군주정 그 자체가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능하거나 악질적인 군주 아래 있을 때는 어떠한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군주란
무능하거나 악질적인 인간이 되어서 왕위에 오르거나, 아니면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렇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저술가들이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을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이런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말하기를, 잔소리하지 말고 복종하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한다.
하느님이 노하여 악한 군주를 준 것이니, 천벌로 알고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 훌륭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런 설교는 설교단 위에서나 할 일이지 정치 서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환자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이나 하고 그저 참으라는 권고밖에 할
줄 모르는 의사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악한 정부 아래 있을 때는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좋은 정부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혼합정체에 대하여

  엄밀히 말한다면, 단일정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우두머리가 다스린다고 해도 그 밑에 여러 명의 부하가 있어야 하고, 인민전체의 정부라고 해도
한사람의 우두머리는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집행권의 분할에는 항상 다수로부터 소수에까지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다만 때로는 다수가 소수에 종속하고 때로는 소수가 다수에 종속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로는 집행권이 등분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정부에 있어서와 같이 구성 부분들이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경우나, 폴란드에서와 같이 각 부분의 권력이 독립해 있지만 불완전한 경우가
그러하다. 폴란드와 같은 정부 형태는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정부내에 통일이 없어져
국가 내부의 유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단일정체와 혼합정체는 어느 것이 더 좋은가? 이 문제는 정치학자들 사이에 늘 논의돼온
문제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역시 '모든 정부 형태 가운데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것과 같은 대답을(12)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단일정체는 그것이 단일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가 최선의 것이다. 그러나 집행권이
입법권에 충분히 의존하고 있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하면 주권자에 대한 통치자의 관계가
통치자에 대한 인민의 관계보다 더 강한 경우에는, 정부를 분할함으로써 관계의 균형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를 분할하면 정부 전체로서는 신민에 대하여 같은 권위를 갖게 되지만,
정부 각 부분의 주권자에 대한 지배력은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함은 양편을 중개하는 중간 관리를 임명함으로써 제거될 수도 있다. 중간 관리는
정부를 분할하지 않고도 두 권력의 균형을 지탱하고, 그들 각각의 권리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13) 그렇게 되면 정부가 혼합된 정부 형태가 아니라 조절된 정부 형태인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결함도 똑같은 방법으로 제거할 수 있다. 즉 정부가 너무 이완되어 힘이 약할
때는 집정 관청을 설치하여 정부의 힘을 집중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모든
민주정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첫번째 경우 정부를 분할한 것은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두번째 경우는 정부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의 힘이 강화되든
약화되든 간에 그 양극단은 다 같이 단일정체에사 나타나지만, 반면에 정부의 균형 잡힌 힘은
혼합정체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정부 형태가 모든 국가에 다 적합한 것은 아니다(14)

  자유란 아무 풍토에서나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국민들이다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몽테스키외가 수립한 이 원리(15)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 이 원리에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새로운 증거에 따라 이 원리를 입증할
기회를 얻게 될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정부에서도, 공적인격이라는 것은 소비만 할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소비하는 물자는 모두 어디에서 오는가?
  구성원의 노동에서 온다. 공공의 필수품은 모두 개인들의 여분으로 충당된다. 따라서 사회화
상태는 인간의 노동이 그 수요 이상의 것을 생산하는 경우에만 존속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 여분의 양은 세계 모든 국가에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국가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많은가 하면, 다른 국가에서는 보통 정도이고, 또 어떤 국가에서는 전혀 없는가 하면, 또
다른 국가에서는 약간 부족하기도 하다. 이 관계는 기후에 따른 토지의 비옥도, 토지가 요구하는
노동의 종류, 토지 생산물의 성질, 국민의 정력, 국민이 필요로 하는 소비량의 다소, 기타 이
관계를 구성하는 몇 가지 다른 조건들에 따라 결정된다.
  한편 모든 정부가 같은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탈이 심한 정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정부도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다른 원리, 즉 공공의 조세 부담은 조세
원천으로부터 정부까지의 거리가 멀어지는 데 따라 더욱 커진다는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조세 부담은 과세액의 양에 따라 측정될 것이 아니라, 세금이 그것을 납부한 사람의 손에
되돌아가는 과정의 거리에 따라 측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유통이 신속하고 순조롭게 되면,
납세액의 다과는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인민은 항상 부유하며 재정은 항상 건전할 것이다.
  반면에 인민이 지불하는 세액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것이 조금도 인민의 손에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인민은 계속 지불만 하게 되므로 결 국 그 재산은 모두 고갈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국가도 결코 부유해질 수 없으며 인민도 언제나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민과 정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조세 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볼 때, 민주정에 있어서는 인민의 부담이 가장 가볍고, 귀족정에 있어서는
그것이 좀더 무거우며, 군주정에 있어서는 인민의 부담이 가장 무거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정은 부유한 국민에게만 적합하고, 귀족정은 면적이나 재산 정도가 중간쯤 되는 나라에
적합하며, 민주정은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 적합하다.
  사실 이러한 점을 잘 생각하면 할수록 자유국가와 군주국가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즉 자유국가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지만,
군주국가에 있어서는 공공의 힘과 개인의 힘이 서로 상반되는 관계에 있어서, 한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은 약해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제정치는 신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신민을 지배하기 위하여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각 풍토에는 자연적인 여러 원인들이 있어서, 그것을 잘 고려하면 풍토의 힘이
요구하고 있는 정부 형태를 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주민이 그 풍토에 적합한가
하는 것까지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노동에 비하여 수확이 적은 불모지는 미개척의 황무지로 남아 있거나 아니면
미개인들이나 살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필수품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토지에는 야만인들이나 살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곳에서는
어떠한 정치조직도 불가능하다.
  노동에 비하여 생산물의 잉여가 보통 정도인 토지는 자유로운 인민에게 적합하다. 토지가 넓고
비옥하여 조금만 노동을 해도 많은 생산물을 얻을 수 있는 곳에서는 신민의 과잉 생산물이
군주의 사치에 의하여 소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군주정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잉
생산물은 개인들에 의하여 탕진되기보다는 국가에 흡수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그러한 예외들도 조만간 혁명을 일으켜 사물을 자연 질서로
복귀시키기 때문에 예외 그 자체가 오히려 이 규칙이 올바르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 법칙은 그 법칙의 결과를 변경시킬 수 있는 특수한 원인과는 항상 구별되어야 한다.
비록 남방이 모두 공화국으로 되고 북방 전체가 전제국가로 된다고 하더라도 풍토가 미치는
영향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전제 정치는 더운 나라에 적합하고 야만상태는 추운 지방에 알맞으며
좋은 정치는 온대 지방에 적합하다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나는, 이 원리 자체는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적응 방법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추운 지방에도 아주 비옥한 토지가 있는가 하면 더운 지방에도 불모의 토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난점은 문제를 모든 각도에서 검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제기되는 문제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노동, 체력, 소비 등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기 면적이 똑같은 두 개의 토지가 있는데, 그 한쪽의 수확량을 5, 다른 쪽의 수확량을
10이라고 가정해 보자. 전자의 주민이 4를 소비하고 후자의 주민이 9를 소비한다고 하면, 전자의
과잉생산은 5분의 1이 되고 후자의 그것은 10분의 1이 된다. 따라서 양자의 과잉생산의 비례는
생산의 반대가 되어, 5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토지는 10을 생산하는 토지의 두 배의 과잉
생산물을 내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생산이 두 배가 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도 추운 지방의 생산고가 일반적으로 더운 지방의 생산고와 같다고는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양자가 같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필요하다면, 영국과 시실리 섬, 폴란드와 이집트가
각각 그 생산고에 있어서 같다고 생각해 보자. 더 남쪽으로 가면 아프리카와 인도 여러 나라가
있지만, 북쪽으로 가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어쨌든 이들이 같은 생산물을 얻으려고 할 때,
경작 방법에 있어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시실리 섬에서는 다만 땅을 파헤치기만 하면
되지만, 영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하는가! 그래서 같은 양의 생산물을 얻는 데
사람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그 잉여가 적어진다.
  뿐만 아니라 같은 수의 사람이라도 더운 지방에서는 훨씬 적은 양을 소비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운 기후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절제해서 먹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운 지방에서도 유럽인들이 본국에서 살던 것처럼 살아간다면, 모두 이질이나
소화불량에 걸려 죽고 말 것이다.
  샤르댕(16)은 "우리는 아시아인들에 비하면 육식동물이고 이리떼와 같다. 페르시아인의 절제는
그 나라가 충분히 경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페르시아에 식료품이 적은 것은 그 주민이 우리만큼 그것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만일 그들의 절제가 국내의 식량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면, 가난한 자들만
적게 먹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사람이 다 적게 먹는다. 게다가 토지의 비옥도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는 그 비옥도에 따라 더 먹기도 하고 덜 먹기도 해야 할 터인데, 실제로 절식은 그
나라 어디서나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매우 자랑하면서, 그것이 기독교도들의 생활 방식보다
얼마나 더 우월한가를 알려면 그들의 혈색을 보면 곧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그들의
혈색은 좋고 피부는 아름답고 고우며 윤기가 있다. 이와는 달리 그들의 속국인 아르메니다인들은
유럽식의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혈색은 거칠고 부스럼 투성이이며 신체는 너무
뚱뚱하여 우둔하다"(17)라고 말하고 있다.
  적도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적게 먹는다. 그들은 거의 육식을 하지
않는다. 쌀, 옥수수, 조, 수수, 카사버 등이 그들의 주식물이다. 인도 여러 나라에서는 하루의
식비가 1수(sou, 프랑스의 옛 화폐단위, 1/20 프랑에 해당--편집자)도 안되는 사람들이
수백만이나 살고 있다.
  같은 유럽에서도 북방의 인민과 남방의 인민 사이에는 식욕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독일인이 단 한 번 식사하는 비용으로 스페인 사람은 일주일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식성이 좋은 나라에서는 음식물로 사치를 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는 육류로 가득한
식탁으로 사치를 하며 이탈리아에서는 사탕과 꽃으로 사람을 대접한다.
  의복의 사치에도 역시 같은 차이가 나타난다. 계절의 변화가 급격한 지방에서는 사람들의
의복도 질기고 수수하다. 그러나 오직 몸을 치장할 목적으로 의복을 입는 지방에서는 실용적인
것보다도 화려한 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지방에서는 이미 의복 그 자체가 하나의
사치품인 것이다. 나폴리에서는 금으로 장식을 한 웃옷을 입은 사람들이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포실리포(18) 유원지를 산보하고 있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주택이
없어도 대기의 해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지방에서는 오직 호화로움만을 고려하여 주택을
짓는다. 파리나 런던에서는 따뜻하고 편안한 집을 요구하지만, 마드리드에서는 호화로운 객실은
있어도 여닫을 창문도 없이, 침실이 마치 쥐구멍 같은 집을 짓는다.
  더운 지방에서는 음식물도 훨씬 질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 이것이 세번째의 차이점인데,
두번째 차이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인들은 어째서 야채를 그렇게 많이
먹는가? 그것은 이탈리아의 야채가 질이 좋고 양분이 많으며 맛이 좋기 때문이다. 물만으로
재배되는 프랑스의 야채는 양분이 거의 없어 식탁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를 재배하는 데 좁은 땅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며 노력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바르바리 지방의 소맥은 다른 점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소맥보다 못하지만,
맥분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것보다 많이 난다. 그런데 프랑스의 소맥도 북방 국가에서 나는
소맥보다는 맥분이 더 많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적도에서 북극으로 올라감에 따라
품질에 있어서 점차적인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추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양의
생산물에서 보다 적은 양의 영양분이 나온다는 것은 불리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주장에 한 가지를 더 보탤 수 있다. 이것은 위에 든 주장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더운 나라는 추운 나라만큼 많은 주민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훨씬 많은 주민을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두 배의 잉여가
생기게 하는 것이며, 항상 전제정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같은 수의 주민이라도 그들이 거주하는 영토가 넓으면 넓을수록 반란은 더욱 일어나기가
어려운 법이다. 왜냐하면, 비밀 모의를 신속히 할 수가 없고, 또 정부는 쉽사리 음모를 간파하고
연락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의 인민이 밀집해서 살면 살수록 정부는 주권자의 권리를 빼앗기 어려워진다. 결국
인민의 지도자들은 마치 어전회의를 하고 있는 군주만큼이나 안전하게 자기들 집에서 모의를 할
수 있을 것이며, 군중들은 마치 군대가 연병장에 모이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광장에 모여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제정부의 이점은 먼 거리에서 지배하는 데에 있다. 전제정부는 그것이
이룩한 거점의 도움으로, 지렛대의 힘과 같이 그곳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힘은
강해진다.7
  이와 반대로, 인민의 힘은 집중되었을 때 강력해진다. 다시 말하면, 인민의 힘이 분산되었을
때는 마치 땅 위에 흩어져 화약이 한 알 한 알씩 불이 붙어 없어지는 것처럼 발산하여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면적에 비해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에 전제정치가 가장 적합하다. 맹수는
오직 황야에서만 군림하는 것이다.(20)

   좋은 정부의 특징에 대하여

  어떤 정부가 절대적으로 가장 좋은 정부인가 하는 문제는 막연하고도 답변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는 모든 국민들의 절대적 상황과 상대적 상황의 결합이 가능해질 수 있는
수만큼이나 많은 수의 좋은 대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인민이 선정 아래 있는가 아니면 악정 아래 있는가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이와는 다른 문제이다. 이 문제는 사실의 문제이므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사람마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대답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이란
있을 수가 없다. 군주국의 신민은 국가의 평온을 찬양하지만 민주국의 시민은 개인의 자유를
찬양한다.
  전자는 재산의 안전을 바라지만 후자는 신체의 안전을 바란다. 또 전자는 가장 엄격한 정부를
가장 훌륭한 정부라고 생각하지만 후자는 가장 관대한 정부를 가장 훌륭한 정부라고 주장한다.
전자는 범죄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지만 후자는 범죄를 예방할 것을 주장한다. 전자는
인접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국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후자는 오히려 인접 국가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국가를 원한다. 전자는 화폐가 유통하면 만족하지만, 후자는 인민들이 빵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이런 점이나 이와 비슷한 점에 있어서 의견이 일치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해답을 얻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정신적 성질을 결정할 수 있는 정확한 척도는 있을 수 없으므로, 어떤
특징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평가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그처럼 간단한 특징이 인정되지 않고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만큼의 악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늘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 정치적 결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 구성원의
보존과 번영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보존과 번영을 표시해 주는 가장 확실한 특징은 무엇인가?
그들의 수, 즉 인구이다. 따라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특징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고 하면 외국의 원조도 받지 않고 귀화나 이민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시민의 수를 가장 잘 증가시킬 수 있는 정부야말로 틀림없이 가장 훌륭한 정부인
것이다. 인민의 수를 감소시키는 정부는 최악의 정부이다. 통계가들이여! 여기 그대들의 일이
남아 있으니, 계산하고 측정하며 비교해 보라.8

   정부의 악폐와 타락의 경향에 대하여

  특수의지가 끊임없이 일반의지에 대항하여 움직이는 것과 같이 정부도 주권에 대항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노력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의 구조도 점점 악화된다. 그러게 되는 경우,
통치자의 의지에 저항하여 그것과 이룰 수 있는 단체의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
통치자가 주권자를 억제하여 사회계약을 파괴하는 사태가 틀림없이 오게 된다. 이것을 마치
늙음과 죽음이 마침내 인간의 육체를 파괴해 버리는 것처럼, 정치체가 생겨날 때부터 끊임없이
그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불가피한 고유의 결함인 것이다.
  정부가 타락하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정부가 축소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해체되는 경우이다.
  정부가 축소되는 경우는, 그 구성원의 수가 다수에서 소수로 바뀔 때, 즉 민주정에서
귀족정으로 바뀌고 귀족정에서 군주정으로 바뀔 때이다. 이것은 바로 정부가 갖고 있는 자연적인
경향이다.9
  만약 거꾸로 정부 구성원의 수가 소수에서 다수로 바뀐다면, 그것은 정부가 이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행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정부가 형태를 바꾼다는 것은 그 힘이 완전히 고갈되어 종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을 때뿐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배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혀 이완되면 그 힘은 영이
될 것이며, 정부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태엽이 풀어지면 그것을 잘 감아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무너지고 만다.
  국가가 무너지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통치자가 법률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지 않고 주권을 찬탈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현저한 변화가 일어난다. 즉 정부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축소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큰 국가가 무너지고 그 내부에서 오직 정부의 구성원들로만 구성되는 별개의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하여 생긴 국가는 모든 인민에 대해서는 다만 지배자 또는 폭군의 역할밖에
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주권을 찬탈하면 곧바로 사회계약은 파기되고 개인으로서의
모든 시민은 당연히 자연적 자유를 회복하며, 따라서 복종을 강요당하더라도 복종할 의무는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는 정부의 구성원들이 단체로서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개인적으로 남용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이것도 역시 첫번째 경우에 못지 않은 법률 위반이며,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이 경우에는,
말하자면 행정관의 수만큼 통치자의 수가 많아져서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가도 분열되기 때문에
국가는 멸망하거나 그 형태를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가가 무너지는 경우에 정부의 악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무정부 상태'라는 공통의
성격을 띤다. 이것을 구별해서 말하자면, 민주정치는 '중우정치'로, 귀족정치는 '과두정치'로
타락한다. 덧붙여 말한다면, 왕정은 '참주정치'로 타락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최후의 말은
모호하게 때문에 좀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통속적인 뜻으로 참주라는 것은 정의와 법률에 구애되지 않고 폭력에 따라 통치하는 국왕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뜻에 있어서의 참주란, 왕의 권리를 소유할 만한 권한이 없는 사람으로서
왕권을 찬탈한 개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참주라는 말을 이와 같은 뜻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좋은 군주든 나쁜 군주든 간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권위를 획득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참주라는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10 이와 같이 '참주'와 '찬탈자'는 완전히
동의어였다.

   정치체의 멸망에 대하여

  이러한 정치체의 멸망은 가장 잘 조직된 정부에 있어서도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스파르타와 로마까지도 멸망한 이상, 어떤 국가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는 정부 형태를 만들고 싶으면, 우리는
그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견고성을 인간의
사업에 부여하려고 노력해서도 안 된다.
  정치체도 인체와 마찬가지로, 생겨나면서부터 멸망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며 그 자체
안에 멸망의 원인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체와 인체는 모두 다 그 구조의 강약에 차이가
있고, 그에 따라 수명의 장단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체격은 자연이 만들고, 국가의 구조는
사람이 만든다.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써는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에 가장 훌륭한 제도들 부여함으로써 국가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진 국가라도 결국에 가서는 멸망하겠지만, 뜻밖의 사건이
국가의 갑작스런 멸망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좋은 제도를 가진 국가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체의 생명의 근원은 주권에 있다. 입법권은 국가의 심장이고, 집행권은 모든 부분에 운동을
보내주는 두뇌이다. 두뇌가 마비되었는데도 개인이 살아 있는 경우는 있다. 바보처럼 되어서라도
그 생명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기능을 멈추게 되면, 동물은 곧바로 죽어
버린다.
  국가가 존속하는 것은 법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입법권에 의해서이다. 어제의 법률도 오늘이
되면 구속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침묵은 무언의 승인으로 추정된다. 또 주권자는 원하면
언제나 법률을 폐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권자가 법률을 폐지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그것을
승인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주권자가 한번 하고 싶다고 선언한 것은, 그가 그 말을
취소하지 않는 한 항상 유효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오래된 법률을 그렇게도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확실히 그
법률이 오래 되었다는 그 자체 때문이다. 오래된 법률이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옛 사람들의 예지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권자가
그 법률을 계속 유익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몇 번이고 그것을 취소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잘 조직된 국가에서는 법률이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새로운
힘을 얻어가게 된다. 오래된 것을 존경하는 마음이 매일같이 그러한 법률에 대한 경의를 높여
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법률이 오래됨에 따라 힘을 잃게 되는 곳에서는 어디나 그러한 현상
자체가, 이미 입법권이 없어지고 국가가 멸망해 간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주권은 어떻게 하여 유지되는가

  주권자는 입법권 이외에는 어떠한 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법률에 따라서만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법률은 오직 일반의지의 정당한 행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권자는 인민이
집회하였을 때밖에는 행동할 수가 없다. 인민의 집회란 어림도 없는 망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망상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3천 년 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 변했다는 말인가?
  정신적인 활동 분야는 그 가능성의 범위가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좁은 것은 아니다. 이 범위를
좁히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무기력과 결점, 그리고 편견인 것이다. 옹졸한 인간은 위대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비굴한 노예는 자유라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을 비웃는 것이다.
  지난날 인류가 이뤄온 업적을 기초로 삼아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고대 그리스의 여러 공화국에 관해서는 여기서 아무말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모기에는
로마 공화국은 위대한 국가였고 로마시는 큰 도시였다. 최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로마에는
무기를 가질 수 있는 시민들만 40만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또 그 조사에 따르면 로마 제국에는
속령민, 외국인, 부녀자, 어린이, 노예를 제외하고도 400만 이상의 시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도와 그 주변에 사는 막대한 수의 주민들이 가끔 집회를 연다는 일이 얼마나 곤란한
일이었을까는 상상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도 집회를
열었던 때도 있었다. 로마 사람들은 주권자로서의 권리뿐만 아니라 정부 권리의 일부까지도
행사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는 사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어떤 사건에 관해서는 재판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민으로서 집회를 여는 것 못지 않게 행정관으로서 집회를
열었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국민들의 초창기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본다면, 그대의 대부분의 정부들은
마케도니아인이나 프랑크인의 정부처럼 군주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까지도 이러한 집회를 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제시한 이와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바로
모든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된다고 하겠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기초로 삼아 앞으로의
가능성을 추론한다는 것은 훌륭한 논리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권은 어떻게 하여 유지되는가(계속) (25)

  광장에 모인 인민들이 일련의 법률을 승인함으로써 일단 국가의 구조를 결정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또 그들이 영속적인 정부를 설립한다거나 단번에
행정관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은 아니다.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면
열어야 할 임시집회 외에, 누구도 폐지하거나 연기할 수 없는 고정된 정기집회가 있어야 한다. 즉
인민들이 다른 어떤 공식적인 소집 절차도 필요없이 법률에 따라 정해진 날에 소집될 수 있는
정기집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에 따라 기일이 정해져 있는 정기집회 이외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집회도,
집회의 소집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관에 의하여 소집되지 않거나 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소집되지 않는 경우에는 모두 불법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집회에서
행해진 것도 모두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소집 명령 그 자체가 법률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집회를 어느 정도로 자주 개최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규칙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주권자는 그만큼
더 자주 집회를 열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하나의 도시로 된 국가라면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여러 도시를 포함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권을 각 도시에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한 도시에 주권을 집중시켜
다른 모든 도시를 거기에 종속되도록 해야 하는가 하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쪽도 다 옳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첫째로 주권은 단일한 것으로서,
분할하면 반드시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 둘째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합법적으로 종속될 수
없는 것과 같이, 도시도 다른 도시에 합법적으로 종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체의
본질은 복종과 자유가 합치되는 데 있고, '신민'과 '주권자'라는 말은 동일한 내용의 양면을
나타내 주는 것에 불과하며, 양자의 개념이 모두 '시민'이라는 하나의 말 속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대답하였다. 여러 개의 도시를 하나의 도시국가로 통합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며,
가령 우리가 그러한 통합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때문에 각 도시가 가지는 본래의
불편한 점이 제거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작은 나라만을 보고자 원하는 자에게 큰 나라에 수반되는 폐단을 열거한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것은, 옛날에는 그리스의 여러 도시가 페르시아 대왕에 저항한 것처럼, 또 근래에는
네덜란드나 스위스가 오스트리아 왕가에 저항한 것처럼 하면 된다.
  그러나 국가를 적당한 한계까지 축소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방법이 더 남아 있다.
즉 수도를 고려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정부의 소재지를 여러 도시로 옮겨가면서 정해 두고
거기서 차례대로 집회를 여는 방법이다.(26)
  국내의 인구 분포를 고르게 하고 모든 지역의 주민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며 모든 곳에서
부와 생명을 증대시켜 나가면, 국가는 머지않아 가장 강대해질 것이며 가장 잘 통치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성벽은 시골의 농가를 부순 조각으로만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도에 세워진 모든 궁전을 볼 때마다 나는 한 지방 전체가 폐허화하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주권은 어떻게 하여 유지되는가(계속)

  인민이 주권을 가진 단체로서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는 순간부터, 정부의 재판권은 모두
정지되고 집행권도 중지되며, 가장 비천한 시민의 인격이라도 최고행정관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신성불가침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대표자를 내세우는 본인이 직접 출석하고 있는 곳에서는 이미
대표자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의 민회에서 일어난 소동의 대부분은 이런 규칙을 잘
몰랐거나 무시한 데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 당시 집정관은 인민의 의장에 불과하였고, 호민관은
단순한 대변자11에 지나지 않았으며, 원로원도 유명무실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통치자가 그때만은 사실상의 상위자를 인정하고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권한정지
기간은, 통치자에 있어서는 항상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체를 지키는 방패였고 정부를
구속하는 고삐였던 이 인민의 집회는, 어느 시대에서나 통치자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들 통치자들은 시민들이 이러한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배려와 반대, 방해와
약속 등을 다 동원했던 것이다. 시민들이 욕심이 많고 비겁하며 무기력하여 자유보다도 안일을
더 좋아하게 되면, 정부가 완강하게 가해오는 압력에 대항하여 오래 견딜 수가 없다. 그 결과,
정부의 압력이 끊임없이 증가됨에 따라 주권은 드디어 소멸하게 되고, 도시국가의 대부분도 그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와해되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권과 전제정부 사이에는 때로 중간적인 권력이 개재하는 수가 있으므로, 이 점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의원 또는 대표자에 대하여

  시민들이 공공의 의무를 자기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게 되고, 그들이 몸소
국가에 봉사하기보다는 재물을 갖고 국가에 봉사하려고 생각하게 되면, 국가는 벌써 멸망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한 시민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군대에 돈을 주고 자기는
집에 머물러 있으며,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리인을 지명하고 자기는 집에 머물러
있는다. 게으름과 돈 때문에, 그들은 병사를 사들임으로써 조국을 그 노예로 만들고 대리인을
지명함으로써 나라를 팔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들이 국가에 몸소 봉사하기보다 돈으로 대신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상업과 공업에
지나치게 열중하고 이윤을 추구하려는 이기심이 지나치게 탐욕스러우며 안일에 너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윤의 일부를 내놓는 것은 기회를 보아 더 큰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돈으로 선물을 하는 자는 머지않아 속박의 사슬에 매이게 마련이다. (의무나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대신 지불하는 돈을 뜻하는) '피낭스(finance)'라는 말은 원래 노예의 말로서,
도시국가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말이었다.
  정말로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모든 일을 직접 자기의 손으로 하지 무엇이나 돈으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의무를 면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더라도 자기의 의무는 자기가 하려고 할 것이다. 내 생각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다.
나는 조세보다는 부역이 훨씬 더 자유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27)
  국가가 잘 조직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시민들의 마음속에 공적인 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사적인
일보다 더 큰 법이다. 또 사적인 일은 공적인 일보다 그 중요성이 훨씬 적어져 간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공동의 행복이 개인적인 행복보다도 개인의 마음속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마련이므로, 개인들이 자기의 행복을 찾기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질서가 잘 잡혀 있는 나라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집회에 모여들지만, 나쁜 정부 밑에서는
아무도 집회에 나가려고 발을 떼어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거기서 행해질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고, 또 거기서는 일반의지가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미리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모두 가사에나 몰두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법률은 점점 더 좋은 법률을 만들어 내고, 나쁜 법률은 점점 더 나쁜 법률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만약 누군가가 국가의 사무에 대하여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고 말한다면,
그 국가의 운명은 이미 끝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애국심의 감퇴, 이기심의 횡행, 국토의 지나친 면적, 정복, 정부의 악폐 등이 국민의 집회에
인민의 대의원 또는 대표자를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내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어떤
나라(28)에서는 감히 제 3 신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일이다. 따라서 두 신분의 특수이익이
첫번째 및 두번째의 지위를 차지하고, 공공의 이익은 겨우 세번째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주권이 양도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주권은 대표될 수 없다. 주권은 본질적으로 일반의지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일반의지는 결코 대표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의지란 그 자체이든지
아니면 별개의 것이어서 그 중간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의원은 인민의 대표자가 아니며
대표자가 될 수도 없다. 그들은 인민의 사용인에 불과하며, 따라서 무슨 일이든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민이 직접 승인하지 않은 법률은 모두가 무효이며, 결코 법률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짧은 기간에
영국 인민들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면, 그들이 자유를 상실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표라는 개념은 근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그것은 봉건정치, 다시 말하면 그토록 간악하고
불합리하며 인간을 타락시키고 인간이라는 이름을 모독하는 봉건정치에서 유래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고대의 공화국에서는, 아니 군주국에 있어서까지 인민은 결코 대표자를 갖지
않았고, 또 대표자라는 말조차 알지 못하였다.
  호민관이 그토록 신성시되었던 로마에 있어서조차 호민관이 인민의 기능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집회 때 그토록 많은 인민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호민관이 한 인민의 투표권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좌우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수가 너무 많으면 때로는 어려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락쿠스 형제(29) 시대에 있어서도 인민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시민의 일부는 건물의 지붕 위에서 투표를 하는 일까지 있었던 것이다.
  자유와 권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곳에서는 약간의 불편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
현명한 인민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의 한계가 올바르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들은 호민관까지도
감히 하려 들지 않았던 일을 선두호위관으로 하여금 하도록 시켰지만, 호위관들이 인민을
대표하려 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호민관이 어떻게 하여 때로는 인민을 대표하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떻게 하여 주권자를 대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충분하다. 법률이란 일반의지의 표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법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대표자를 내세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법률에 효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적용되는 힘에 불과한 집행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는 대표자를
내세울 수 있고, 또 내세워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자세히 검토해보면, 극히 소수의 국가만이
법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호민관들은 집행권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자기들에게 위임된 권한으로서는 로마
인민을 결코 대표할 수 없었으며, 다만 원로원의 권리를 찬탈함으로써만 인민을 대표할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그리스에 있어서는 인민이 해야 할 일은 모두 인민 스스로가 직접 처리했다. 그들은 늘
광장에서 집회를 했다. 그들은 온화한 풍토에서 살았으며, 지나친 욕심을 갖지 않았다. 노예가
그들을 위해 일해 주었으므로 그들의 관심은 주로 자유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만큼
좋은 환경을 갖지 못한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권리를 보존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처럼 엄격한 풍토에서는 불편한 점이 그만큼 더 많아진다.12 우리나라에서는 일년
가운데 6개월은 공공 광장을 사용하지 못하고, 우리들의 분명하지 못한 언어는 야외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들은 자유보다도 돈벌기에 더욱 여념이 없고,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가난하게
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자유란 노예의 도움이 따라야만 유지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극단과 극단은 서로 통하는 법이니까.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에는 무엇이나
불편이 따르게 마련이며, 특히 정치사회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상에는 타인의 자유를 희생시켜야만 자기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고, 노예가 철저히
노예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시민들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불행한 상황도 있다.
스파르타의 경우가 그러했다.
  여러분은 근대인이므로 노예를 거느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러분들 자신이 노예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자유를 지불하고 노예의 자유를 산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길을 선택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지 모르나,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나로서는 거기서
인간성보다는 비굴함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 말이, 노예를 거느리는 것이 필요하다거나 노예를 거느리는 권리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예를 거느리는 권리가 부당하다는 것은 이미 내가 증명한 바 있다. 나는 다만 고대의
인민들이 대표자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고 있는 근대의 인민들이 왜
대표자를 갖고 있느냐 하는 데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건, 인민이 대표자를 내세우는 순간부터 그 인민은 이미 자유롭지 않게
되고 인민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처럼 모든 점을 고려해 보면, 국가가 대단히 작지 않은 한 주권자가 그 권리를 행사해
나가는 일이 앞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가가 아주 작다고 하면 정복될 게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하면 대국의 대외적인 힘과 소국의 통치하기 쉽고 질서를
유지하기 쉬운 점을 결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겠다.13

   정부의 수립은 계약이 아니다

  입법권이 일단 확립되면, 다음 문제는 같은 방법으로 집행권을 확립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행위에 따라서만 운영되는 집행권은 입법권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입법권과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주권자가 주권자의 자격으로서 집행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권리와 사실이 심히 격동되어, 무엇이 법률이고 무엇이 법률이
아닌가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체가 이처럼 변질되면, 그 정치체는 원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곧 폭력의 희생물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시민들은 사회계약에 따라 모두 평등하게 되었으므로, 모두가 같이 해야 할 일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라고 명령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자기 정부를 수립할 때, 통치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 권리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체에 생명과 활동력을 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권리인 것이다.
  한때 이러한 정부의 수립 행위는 인민과 인민 스스로가 추대하고 있는 지배자와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계약에 따라 당사자간에 한쪽은 명령하는 의무를
지고 다른 한쪽은 복종하는 의무를 진다는 조건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구나 계약치고는
정말 괴상한 계약이라고(32)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검토해 보자.
  첫째로, 최고의 권력은 양도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경될 수도 없다. 그것을 제한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주권자가 스스로 자기 위에 상위자를 추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모순되는 일이다. 주권자가 지배자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곧 절대적
자유(자연적 자유)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인민과 어떤 특수한 개인과의 사이에 맺어진 이러한 계약은 명백히 하나의 개인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이 행위는 법률일 수도 없고 주권자의 행위일 수도 없으니,(33) 결과적으로
그것은 불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 계약당사자는 서로 자연법 아래에만 있으므로, 서로간의 계약을 이행할 보증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사회화 상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권력을 장악한 자는
항상 그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계약은 마치 "당신에게
나의 모든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당신이 돌려주고 싶은 만큼만 내게
돌려주십시오"라고 한 행위에 계약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국가에는 단 하나의 계약밖에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계약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결합의 계약(사회계약)이다. 그러므로 사회계약에 위배되지 않는 공공의 계약이란 어떠한 것도
상상할 수 없다.(34)

   정부의 수립에 대하여

  그러면 정부 수립 행위는 어떤 각도에서 고찰해야 할 것인가? 나는 우선 이 행위가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두고 싶다. 즉 이 행위는 법률의 제정과 법률의 집행이라는 두 개의
다른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 1의 행위, 즉 법률을 제정하는 행위에 따라, 주권자는 이러이러한 형태로 정부라는 하나의
단체를 수립한다는 점을 규정한다. 이 행위는 분명히 법률이다.
  제 2의 행위, 즉 법률을 집행하는 행위에 따라, 인민은 수립된 정부를 위임받을 통치자를
임명한다. 이 임명은 하나의 개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제 3의 법률이 아니라 다만 제 1의
법률의 결과이며 정부의 한 기능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존재하기 전에 어떻게 하여 정부의 행위가 있을 수 있으며, 또 오직 주권자
또는 신민에 불과하던 인민이 상황에 따라서는 어떻게 하여 통치자 또는 행정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정치체가 갖는 놀라운 특징의 하나가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이 특징에 따라
정치체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작용을 조화시키고 있다.
  실상 이 특징은 주권이 갑자기 민주정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므로, 그 결과 시민들은
별다른 변화도 없이 다만 전체와 전체의 새로운 관계에 따라 행정관이 되고 일반적 행위에서
개인적 행위로 옮겨 가며 입법에서 법률의 집행으로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현실에서 그 예가 없는 관념의 산물은 아니다. 그것은 영국의 의회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영국의 의회에서는 사건을 더욱 잘 토의하기 위하여, 하원이
전원위원회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권자의 회의였던 하원이, 이제는
단순한 위원회로 되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하원은, 전원위원회로서 결정한 사항을 하원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보고하여,
이미 하나의 명의로 결정한 사항을 다른 명의로 다시 심의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의지가 단순한 행위에 따라 실제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정치의
특별한 장점이다. 그리하여 일단 수립된 임시정부의 형태가 그대로 채택되면 그 정부가 그대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주권자의 이름으로 법률에 따라 정해진 정부를
수립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법률에 따라 시행되는 것이다.
  그 이외의 방법으로서는 합법적으로, 그리고 앞에서 말한 여러 원칙에 따라 정부를 수립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의 월권을 방지하는 수단

  내가 앞에서 설명한 것은 "정부의 수립은 계약이 아니다" 부분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점을 명백히 해주고 있다. 즉 정부를 수립하는 행위는 계약이 아니라 법률이라는 것,
집행권을 위임받은 자들은 결코 인민의 주인이 아니라 그 공복이라는 것, 인민은 마음대로
그들을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다는 것, 집행권을 위임받은 그들에 있어서 문제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체결된 계약에 복종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국가에 의하여 부과된
직무를 수행하는 것도 다만 시민으로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을 뿐, 그
조건에 대해서 논의할 권리는 그들에게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인민이 세습제 정부를 수립하는 경우에, 그것이 어느 왕가에 한정되는 군주정이거나
한 계급에 한정되는 귀족정이거나를 막론하고 인민이 행하는 것은 결코 계약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정부를 선택할 때까지 인민이 갖고 있는 잠정적인 정부 형태에 불과하다.
  이러한 변혁은 항상 위험하며, 따라서 일단 수립된 정부가 공공의 이익과 양립할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것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중한 태도는
정치적인 격언은 될지언정 권리에 관한 규칙은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군사상의 권력을
장군들의 손에 넘겨 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정치상의 권력을 통치자의 손에 넘겨 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
  또 이런 경우에 정당하고 합법적인 행위와 폭동을 구별하고, 전체 인민의 의지와 일부 도당의
불평을 구별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절차를 강구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신중하게 행동을
취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불온한 사태가 일어나면, 법률을 가능한 한 엄격히
해석하고, 그래도 거부할 수 없는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특히 이러한 경우이다.
  그런데 (정부 형태를 변경하는 데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이 의무를 이용하여, 통치자는
인민의 권리를 찬탈했다는 말을 듣지 않고서도 인민의 의지에 반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큰 이익을 얻고 있다. 왜냐하면, 이 경우 통치자는 위임받은 권리만을 행사하는 것처럼
가장하면서도 쉽사리 그 권리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공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구실
아래, 올바른 질서를 새로 조직하려는 집회를 방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치자는
인민에게 침묵은 지치도록 강요하면서 그 침묵을 이용할 수도 있고, 일부러 위법 행위를
조장하면서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으며, 그 결과 공포 때문에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 자를
통치자를 지지하는 자라고 우겨대면서 감히 입을 여는 자를 처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로마의 십인관도 처음에는 1년 임기로 선출되었으나, 그 다음 해에도 권력을 장악하여 끝내는
민회의 소집을 금지시킴으로써 그 권력을 영구히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세계의 모든 정부가
일단 정권을 잡기만 하면 조만간 주권을 찬탈하고야 마는 것은 모두 이런 용이한 수단 때문이다.
  내가 앞서 말한 주권자의 정기집회는(35)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고, 또 그 폐단이 다가오는
시기를 늦추는 데 효과가 있다. 특히 집회가 아무런 형식적인 소집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 통치자는 스스로가 법률 침범자이고 국가의
적이라는 것을 공언하지 않고서는 이 집회를 정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계약의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 집회는 반드시 다음 두 가지 의안을 다루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의안은 결코 생략되어서는 안 되며, 각각 따로 투표에 붙여져야 한다.
  제 1의 의안--"주권자는 현재의 정부 형태를 그대로 요구하기를 원하는가?"
  제 2의 의안--"인민은 현재 통치를 위임받고 있는 자들에게 앞으로도 그것을 계속
위임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여기서 내가 이미 증명한 바 있는 사실, 즉 국가에는 폐지될 수 없는 기본법이란 없으며
사회계약도 폐지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36)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시민이
집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이 계약을 파기한다면, 이 계약이 가장 합법적으로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로티우스는 심지어, 각자는 그가 속하고 있는 국가를 버릴 수도 있고, 국외로 나감으로써
자기의 자연적 자유와 재산을 회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14 그러니만큼 각 시민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온 시민이 모인 집회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은 실로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주(괄호 없는 주)
  1. 이 때문에 베네치아에서는 통령이 출석하지 않았을 때에도, 원로원을 '군주전하'라고 불렀던
것이다.
  2. 포즈나니(포센)주의 지사. 폴란드 국왕의 아버지인 로렌공(3).
  3. 고대인들은 'optimates'라는 말을, '가장 선량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지 않고 '가장 권력이
센 사람'이라는 뜻으로 썼을 것임은 분명하다.
  4. 행정관의 선거 형식을 법률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선거를 통치자의
의사에 맡겨버리면 베네치아와 베른의 두 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습적 귀족정으로
전락하는 것을 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미 오래 전에 국가로서의
모습이 해체되어 버렸다. 베른 공화국은 그 원로원들의 뛰어난 지혜에 의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은 명예롭기는 하나 매우 위험한 예외가 되고 있다.(4)
  5. 마키아벨리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메디치가에 봉사라고
있었으므로, 조국의 압제 아래 있으면서도 자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가장 미워하고 있는 인물로 시저와 보르지아를 들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숨은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가 "군주론"에서 주장한 원리와 "로마사론"이나 "피렌체사"에서 주장한 원리의 내용을
대조해 보면, 이 심오한 정치사상가가 이제까지 피상적이거나 또는 부패한 독자밖에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궁정은 그의 저서를 엄금했는데, 그것은 알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궁전이었기 때문이다.(8)
  6. 플라톤, "정치가" 참조.
  7. 이것은 내가 앞(제 2 편 "인민에 대하여(계속)")에서, 대국의 불편한 점에 대하여 설명한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정부가 그 구성원들에게 갖는 권위가
문제였지만, 여기서는 정부가 신민들에게 미치는 힘을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흩어져 있는 정부의 구성원들은 머리 있는 인민에 대한 정부의 행동 거점의 구실을 하고
있지만, 정부가 그들 정부 구성원들에게 직접 행동을 취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이처럼 지렛대의
길이는 어떤 경우에는 약점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장점이 된다.(19)
  8. 같은 원칙에 입각하여, 어떤 시대가 인류의 번영을 위한 훌륭한 세기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학문과 예술이 융성하던 시대를, 그들 문화가 가지는
숨은 목적을 확실히 이해하지도 않은 채, 그리고 그들의 치명적인 영향도 고려해 보지 않은 채
너무 칭찬만 해왔다. "무지한 사람들은 노예상태의 시초가 되는 것을 인간성이라 부르고
있었다"(타키투스, "아그리콜라"제 31 장).
  우리들이 책 속에서 훌륭한 격언들을 읽을 때, 거기에 숨어 있는 저속한 이해관계를 우리는
정녕 간파하지 못할 것인가? 그들이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든, 한 나라가 명성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구가 줄어든다면,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며, 또
시인이 10만 리브르를 받고 그의 시대를 찬양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지배자들의 외관적인 평온과 안일보다는 전체 국민의 복지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우박이
떨어져 몇몇 지방이 황폐될 수는 있지만 그 때문에 나라 전체가 기아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폭동이나 내란이 지배자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지만, 인민들에게는 참다운 재난이 되지
않는다. 인민은 누가 압제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오히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진정한 번영과 재난은 그들의 항구적인 상태에서 나온다.
모든 것이 전제의 속박을 받아 괴멸될 때 모든 것은 멸망하고 국가의 지배자들은 마음대로
인민을 유린하며, 또 "그들은 인민을 고립시켜 놓고는 평화라고 부르는 것이다"(타키투스,
"아그리콜라" 제 31 장).
  프랑스 왕국에서 귀족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국내가 소란하고 파리의 보좌주교가 주머니에
단도를 숨겨 고등법원에 나타났을 때도, 이와 같은 일들은 프랑스 인민이 위엄과 안일, 그리고
자유를 누리며 번영하고 그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옛날에 그리스는 가장 참혹한
전쟁이 계속되는 곳에서도 번창했다. 거기서는 희생자의 피가 냇물처럼 흘렀지만 나라 전체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말하기를, "학살과 추방, 그리고 내란 속에서도
우리의 공화국은 더욱 강대해졌으며 시민들의 덕성과 도덕심, 그리고 독립심은 모든 내란이
국가를 약화시킨 것 이상으로 국가를 강화시킨 것 같다"(21)고 했다. 약간의 내란은 인간의
정신에 탄력을 준다. 그러므로 인류를 진실로 번창하게 하는 것은 평화라기보다 자유인
것이다.(22)
  9. 베네치아 공화국이 강 하류의 작은 섬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발전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경우의 좋은 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200년 이상이나 지났는데도 베네치아인들이 1198년의
세라르디 콩실리오(평의회 폐쇄)에서 비롯된 제 2 기의 상태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베네치아인들이 비난하고 있는 고대의 통령에 대하여 "베네치아의 자유사"(23)가 어떻게
표현하고 있든 간에, 이들 통령들이 결코 베네치아의 주권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명백해지고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로마 공화국의 예를 들어 내 의견을 반박할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마 공화국은 군주정에서 귀족정으로, 귀족정에서 다시 민주정으로
이행하여 전혀 반대의 발전을 했지 않느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러한 견해에
동의할 수가 없다.
  처음 로물루스가 세운 정부는 혼합정부였지만 그것은 곧 전제정부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
국가는 마치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 수가 있듯이 여러 가지 특수한 원인 때문에
갑자기 멸망하였다. 타르퀴니우스 왕가가 추방된 뒤에 비로소 로마 공화국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도 처음부터 불변의 정부 형태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귀족계급을 폐지하지
않아, 일이 반쯤밖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합법적 통치 형태 가운데서 가장
나쁜 형태인 세습적 귀족정이 폐지되지 않고 민주정과 계속 투쟁을 하다가, 마키아벨리가 입증한
바와 같이,(24) 호민관 제도가 확립되고 나서야 비로소 민주정의 정부 형태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처음으로 진정한 정부, 참된 민주정이 수립된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의 인민은
단순히 주권자였을 뿐만 아니라 행정관이었고 재판관이기도 했다. 원로원은 다만 정부의 권력을
조절하거나 집중하기 위한 하급 관청에 불과했다. 게다가 집정관들까지도 원래는 귀족이었고
행정관이었으며, 전시에는 절대권을 가진 사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에서는 인민의 의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정부는 그 본래의 경향에 따라 귀족정으로 강하게 기울어졌다. 말하자면 귀족계급은
자연히 폐지되어 버렸고, 귀족정도 베네치아나 즈네브에서 볼 수 있는 귀족 단체들 속에서는
없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귀족과 평민으로 구성되는 원로원에서, 그리고 호민관이 적극적으로
권력을 찬탈하기 시작하면 호민관들의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 명칭과 실제의
내용과는 다를 수 있으므로--인민이 자기들을 지배하는 지배자를 갖게 되는 이상--그
명칭이야 어떻든 항상 그 정부는 귀족정인 것이다. 귀족정의 악폐로 말미암아 내란과 삼두점치가
나타났다. 술라와 케사르,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의 군주가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티벨리우스의 전제정치 아래서 국가는 해체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로마의 역사는 나의
원리를 뒤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10. "왜냐하면, 자유를 누리고 있던 국가에서 항구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모두 참주로
불리고, 또 그렇게 인정되기 때문이다"(코르넬리우스 네포스, "밀티아데스전" 제 8 장).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참주와 국왕을 구별하여, "참주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하는 자이고, 국왕이란 오직 신민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하는 자"(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8
권 제 10장)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그리스 저작가들도 이 '참주'란 말을,
크세노폰의 "히에로"에 가장 명확히 나타나 있듯이, 다른 뜻으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별에 따른다면, 유사 이래 이제까지 단 한 사람의 국왕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다른 사물에는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기 때문에, 나는 왕권을 찬탈한 자를 '참주'라고 부르고,
주권을 찬탈한 자를 '전제군주'라고 부른다. 참주란 법률을 위반하여 왕권을 장악했지만 법률에
따라 통치하려는 자를 말하는 것이고, 전제군주란 법률 그 자체를 초월하려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참주가 전제군주일 수는 없지만 전제 군주는 항상 참주인 것이다.
  11. 이 말은 오늘날 영국의 의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집정관과 호민관은 그 맡은 직무가 비슷하기 때문에, 모든 권한이 정지된 때에도 서로 충돌을
일삼았던 것 같다.
  12. 추운 나라에서 근동 여러 나라의 사치와 안일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그곳의
쇠사슬에 얽매이려고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러한 사치와 안일이 근동에서보다
추운지방에서 훨씬 더 우리를 구속하게 될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13. 나는 이 책의 속편에서(30) 대외관계를 논할 때 연방제도(31)의 문제가 나오게 되면, 그
때 이 문제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문제로서, 앞으로 그 원칙들을
세워가야 할 문제이다.
  14. 물론 이것은 자기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나 조국이 필요로 하는 봉사를 피하기 위해서
국외로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도망은 범죄행위가 될 것이며 처벌받을 행위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이미 탈퇴가 아니라 도주인 것이다.(37)

   역주(괄호 안에 숫자가 있는 주)
  (1) 루소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연비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주권자를 S, 국가를 E, 정부를
G라고 하면, S:G=G:E, 따라서 S*E=G*G이 된다. 말하자면, 주권자와 국가의 관계가 달라짐에
따라 정부의 힘도 달라진다는 말이 된다.
  (2)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제 3 편 제 3 장 참조.
  (3) 루소 연구가인 본에 따르면, 이는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라스 레진스키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한다.
  (4) 루소의 베른 공화국에 대한 견해로는 "폴란드 정치론" 제 11장 참조.
  (5)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 3 편 제 10__13장 참조.
  (6)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__212년)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7) 사무엘은 헤브라이의 예언자. "구약성서"(사무엘 상) 제 8 장 제 11__18절 참조.
  (8) 이 주는 1782년 판에서 처음으로 편자에 의해 보완되었다.
  (9) 루소, "정치경제론" 참조.
  (10) 플루타르코스, "왕과 위대한 장군의 명언집" 제 21 절 참조.
  (11) 타키투스, "역사" 제 1 편 제 16 장 참조.
  (12) 제 3 편 "정부의 분류" 끝 부분 참조.
  (13) 제 4 편 "호민관에 대하여" 참조.
  (14) 이 장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참고로 삼은 듯하며, 특히 풍토에 관한 설명의
영향을 받을 듯하다.
  (15)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제 14 편, 제 17 편 참조.
  (16) 샤르댕(J. Chardin, 1643__1713년)은 프랑스의 여행가로서, 페르시아에 여러 차례 여행한

"페르시아 여행기"(1711)를 저술하여 높은 평판을 얻었다. 몽테스키외도 여기서 많은 자료를
얻었다고 한다.
  (17) 샤르댕, "페르시아 여행기" 제 3 편 참조.
  (18) 나폴리 서남쪽에 있는 유원지.
  (19) 이 주는 인쇄 중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1762년 2월 18일 레이에게 보낸 편지를 참조.
  (20) 루소는 아마도 디오게네스 라엘티우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던 것
같다. 즉 "가장 악질적인 맹수는 압제자이고, 가장 나쁜 가축은 아첨꾼이다."
  (21) 마키아벨리, "피렌체사" 참조.
  (22) 인쇄 중에 추가된 부분. 1762년 2월 18일 레이에게 보낸 편지 참조.
  (23) 이 책은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한 신성로마황제의 영유권을 지지하기 위하여 1612년에
간행된 익명의 저서.
  (24)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 1 편 제 4 장 참조.
  (25) 여기서부터 제 3 편 "정부의 월권을 방지하는 수단"까기는 루소가 즈네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쓰고 있다.
  (26) 루소, "코르시카 헌법 초안" 참조.
  (27) 루소, "코르시카 헌법 초안" 참조.
  (28) 프랑스의 경우를 말한다. 시에예스(A.E.J. Sieyes, 1748__1836년)의 유명한 팜플렛 "제 3의
신분이란 무엇인가?"을 참조.
  (29) 형 티베리우스(BC 163?__133년), 동생 가이우스(BC 153__121년). 둘 다 로마의
호민관으로서 토지균분법 등 민주적 개혁을 시도했었으나,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상층 계급의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30) 루소가 원래 구상했던 "정치제도론"의 속편을 뜻한다. 이것은 결국 발표되지 않았다.
  (31) 루소의 연방제도에 관한 견해는 그의 "영구평화론", "에밀" (제 5 편) 및 "폴란드 정치론"
등에 나타나 있다.
  (32) 제 1 편 "노예상태에 대하여"참조.
  (33) 제 2 편 "주권의 한계에 대하여" 참조.
  (34) 이 장은 구체적으로 종래의 군주정치 이론에 대한 부정으로 일관되어 있다.
  (35) 제 3 편 "주권은 어떻게 하여 유지되는가(계속)" 참조.
  (36) 제 1 편 "주권자에 대하여" 참조.
  (37) 이것은 그로티우스를 두고 한 말이다.

    제 4 편

   일반의지는 파괴될 수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결합하여 스스로 일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들은 공동의 생존과
전체의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의지만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될 때 국가의 모든 기능은 활발해지고
단순해지며, 그 통치 원리도 명백해지고 빛나게 된다. 그리고 이해관계의 혼란이나 모순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 공동의 이익은 어느 곳에서나 분명하게 나타나서, 공식만 있으면 누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평화와 단결, 그리고 평등은 정치적 권모술수의 적이다.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순박하기
때문에 잘 속지 않는다. 유혹이나 감언에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속임을 당할 만큼
교활하지 않은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인민의 나라에서(1) 한 무리의 농민들이 떡갈나무
그늘 밑에 모여 국가의 여러 문제를 결정하고 항상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을 볼 때, 온갖
권모술수를 써서 유명하게는 되지만 결국 불행하게 되고 마는 다른 국민들의 세련된 방법을
우리는 경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순박하게 통치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그리 많은 법률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생기면, 그 필요성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느낀다. 그것을 처음 제안하는
사람은, 이미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을 다만 말로 표현하는 데 지나지 않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마음먹고 있는 것을 법률로 제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므로 이미 어떠한 술책이나 웅변도 필요하지 않다.
  세상의 이론가들이 오류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나쁘게 구성된 국가밖에 보지 못한
탓으로, 그와 같은 정치를 실행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활한
사기꾼이나 궤변을 잘 토하는 연사들이 파리나 런던의 인민들을 그럴 듯하게 속여넘긴 온갖
불합리한 짓을 상상하며 비웃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만약 베른의 인민이라면 크롬웰(2)을
중형에 처했을 것이고, 즈네브의 인민이라면 보포르공(3)을 감옥으로 보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유대가 이완되어 국가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개인적 이익이 대두되며 여러
소집단이 대집단(국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공동의 이익은 변질되고 그에 대한 적대자가
나타난다. 그렇게 되면 벌써 만장일치의 의견이란 없어지고, 일반의지는 이미 모든 인민의 의지가
아니게 된다. 그리하여 모순된 견해와 논쟁이 일어나, 아무리 훌륭한 의견이라도 논쟁을 거치지
않고는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국가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환영과 같은 공허한 형태로밖에 남지 않게 되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회의 유대가 끊어져, 가장 천박한 이익이 후안무치하게 '공공 복지'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둔갑하게 되며 일반의지는 침묵을 지키고 세상 사람들은 사리사욕에 이끌려,
마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시민으로서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게 된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부당한 포고가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가결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하여 일반의지가 파괴되었다거나 부패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의지는 언제나 존재하고 변하지 않으며 순수하다. 다만 우세한 다른 의지에 압도되었을
뿐이다. 각자는 공동이익으로부터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을 분리해 내면서도, 이 양자를 완전히
분리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분리함으로써 자기가
ㅇ으려고 하는 배타적인 행복에 비하면 분리 때문에 받는 공공의 손해가 자기에게 미치는 불행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만 제외하고 나면,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누구 못지 않을 만큼 강하게 공동의 이익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투표권을
돈받고 팔았을 때에도,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반의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피한
것이다.
  그가 범하는 과오는, 질문의 의미를 변경하여 자기에 대한 질문과는 관계없는 다른 것을
대답한다는 점이다. 즉 투표를 통해 "이것이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대답하는 대신, "이러이러한
의견이 통과되면, 이런 사람 또는 이런 당파에 이익이 된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따라서 집회에서
지켜야 할 공공질서에 대한 규칙은 집회 장소내에서 일반의지를 유지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반의지가 항상 질문을 받고 또 항상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주권자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투표를 한다는 단순한 권리, 즉 그 누구도
시민으로부터 빼앗을 수 없는 이 권리에 대하여, 그리고 정부가 그 구성원에게만 부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발언권, 제안권, 표결권, 토의권 등에 대해서도 많은 고찰을 했으면 한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제를 논하려면 별개의 논문이 필요하겠으므로 여기서는 이런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다.

   투표에 대하여

  앞 항의 설명에 따라 명백해진 바와 같이, 우리는 공무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가를 보면
정치체의 덕성과 건강의 현상을 충분히 알 수 있다.(4) 회의에 있어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즉 의견이 만장일치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일반의지도 역시 우세한 것이다. 반대로
토의가 길어지든지 의견이 분열되든지 회의장이 소란하든지 하는 것은, 모두 개인적인 이익이
우세하여 국가가 쇠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안에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신분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위와 같은 현상이
뚜렷한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로마에는 귀족과 평민이라는 두 개의 신분이 있어서, 그들간의
분쟁은 공화국의 전성기에 있어서까지도 가끔 민회(5)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는 피상적인 관찰의 소치이지, 실제로는 예외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정치체에 내재하는 고유의 결함으로 말미암아, 말하자면 한 국가 안에 두 개의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개의 국가를 하나로 볼 경우에는 위에 말한 것이 진리가 되지는
않지만, 두 개의 국가를 따로 생각할 경우에는 진리가 되는 것이다. 사실 가장 극심한 혼란기에
있어서조차 원로원이 간섭하지 않았을 때에는, 민회의 투표는 언제나 평온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안건은 절대다수로 가결되었다. 개인적인 시민으로서 각자가 모두 하나의 이해 관계밖에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전체로서의 인민도 하나의 의지밖에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에도 만장일치를 볼 수 있다. 시민들이 노예상태로 전락하여 자유와 의지를
모두 잃었을 때 만장일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때에는 공포와 아첨 때문에, 투표는 박수갈채로
변하고 토론은 없어지며 맹목적인 숭배나 저주가 행해질 따름이다. 제정 로마의 원로원은 그와
같은 비굴한 방법으로 회의를 진행시켰던 것이다. 때로는 가소로울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여
회의를 진행시키기도 했다. 타키투스의 말에 따르면(6) 오토시대에 원로원 의원들은
비텔리우스(7)에게 극심한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귀가 먹을 만큼이나 회의장을
시끄럽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만일 비텔리우스가 뒤에 지배자가 되는 일이
있더라도, 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가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으로부터, 일반의지를 발견하기가 어느 정도로 쉬운가, 그리고 국가가
어느 정도로 쇠퇴하고 있는가에 따라, 투표를 계산하고 의견을 비교하는 방법을 결정지을 몇
가지 원칙이 나오게 된다. 그 성질상 만장일치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법률은 사회계약 하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민의 결합은 모든 행위 가운데서 가장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어떤 종류의 구실을
붙이든지 간에 그의 동의 없이는 그를 복종시킬 수가 없다. 노예의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라고 단정하는 것은, 노예의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회계약을 체결할 때 반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계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는 다만 반대자가 계약에 포함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시민
속에 들어 있는 외국인인 것이다. 국가가 건설될 때 그 국토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
국가를 승인하는 것이 된다. 국가의 영토 내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 국가의 주권에 복종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1
  이 최초의 계약(샤회계약) 이외의 경우에 있어서는, 다수의 의견이 항상 다른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 그것은 이 계약 자체의 당연한 귀결이다.(8)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유로우면서도
어떻게 자기의 의지가 아닌 의지에 복종하도록 강요당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반대자들은 스스로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여 그들이 동의하지 않은 법률에 복종해야만
하는가?
  나는 이에 대하여, 그것은 질문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대답하겠다. 시민은 자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법률까지도 포함한 모든 법률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반하면
자기 자신도 처벌받는다는 것을 규정한 법률에 대해서까지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가
구성원의 변함없는 의지가 일반의지이다. 이 일반의지에 따라 그들은 시민이 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2 어떤 법률이 인민의 집회에 제출되었을 때 그들이 대답해야 할 문제는, 정확히 말하면,
이 제안을 그들이 승인하는가 또는 부인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법률이 인민의 의지, 즉
일반의지에 합치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의 각자는 투표로 이 문제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표시하고, 따라서 투표수의 계산에 따라 일반의지가 판명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이 우세를 차지했을 때, 그것은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 즉 자기가
일반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실은 일반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한 데 지나지 않는다.
만약 나의 개인적 의견이 일반의지를 눌러 우세했다고 한다면 나는 내가 바랐던 원래의 것과는
다른 짓을 한 셈이 된다. 그럴 경우에 나는 자유로웠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반의지의 모든 특징이 아직 다수의 의견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한 특징이 다수의 의견 가운데 존재하지 않게 되면, 어느 편에도 이미 자유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는 앞에서, 공공의 토의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 개인의 의지가 일반의지를 대신하게 되는가를
설명하면서, 그 폐단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충분히 제시했다.(9) 그 문제에 관해서는
다시 뒤에 설명하고자 한다.(10)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비율의 투표수가 있어도 동수는 아니게
되고, 단 한 표의 반대자가 있어도 만장일치는 깨어지고 만다. 그러나 만장일치와 찬반 동수
사이에는 찬반의 비율에 많은 차이가 있으며, 어떤 비율을 기준으로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체의 상황과 필요성에 따라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이 비율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일반적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토의 사항이 증대하면
증대할수록 승리를 거두는 의견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토의
사항이 긴급을 요하는 일이면 일일수록 정해진 비율의 차이가 좁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즉
당장 결정지을 필요가 있는 사항의 경우에는 한 표의 차이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둘 가운데서 첫째 원칙은 법률을 제정하는 데 적합하고, 둘째 원칙은 행정 처리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11) 어쨌든 이 두 가지 원리를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의결에 필요한 다수를
정할 수 있는 최선의 비율을 결정할 수 있다.

   선거에 대하여

  통치자와 행정관의 선출은 앞서(12) 말한 바와 같이 복합적인 행위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절차로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즉 선거와 추첨이 그것이다. 두 가지 모두 많은 공화국에서
행해져 왔고, 현재까지도 베네치아의 통령 선거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이 복잡하게 얽혀
사용되어 왔다.(13)
  "추첨에 따른 선출이 민주정치의 본질에 적합하다"고 몽테스키외는 말하고 있다.(14) 나도 같은
의견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몽테스키외는 계속해서 말한다. "추첨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선거 방법이다. 그것은 각 시민에게 조국에 봉사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통치자를 선출하는 것은 정부의 기능이지 주권의 기능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한다면, 추첨에
따른 방법이 왜 다른 방법보다 민주정치의 본질에 적합한가를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정치에 있어서는 행정이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그만큼 더 훌륭한 행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정치에 있어서는 어느 곳에서나, 행정관이 된다는 것은 이익이 아니라 무거운
부담이 되므로, 이것을 어느 특정 개인에게 지게 하는 것은 확실히 정당하지 못하다.
  오직 법률에 따라 당첨자에게 이것을 부담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조건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여 누가 당첨될 것인가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므로, 누가 당첨되든 법률의 보편타당성에 위반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귀족정에 있어서는 통치자가 통치자를 선출하고, 정부는 정부 자신에 의하여 유지된다. 따라서
투표제가 가장 적합한 곳이 바로 이 정체인 것이다.
  베네치아의 통령 선출의 예는, 투표와 추첨의 구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두 가지가 혼합된 이런 방법은 혼합정부에 적합한 것이다. 왜냐하면, 베네치아 정부를
진정한 귀족정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는 인민이 정체에 전혀 참여하지 않지만, 귀족 그 자체가 인민인 것이다. 수많은
가난한 바르나보트(15)들은 어떠한 행정관의 직위에도 접근한 적이 없었고,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단지 '각하'라는 유명무실한 칭호와 대평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데
불과했다. 이 대평의회는 우리 즈네브의 총평의회(16)와 같은 정도의 다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고귀한 의원들도 우리 시민과 같은 정도의 특권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두 공화국
사이의 극단적인 차이를 제외하고 말하면, 즈네브의 부르주아지는 베네치아의 귀족에 해당하고,
즈네브의 제 2세 거주민과 주민은 베네치아의 도시민과 인민에 해당하며, 즈네브의 종민은
베네치아 본토의 종속민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7) 요컨대 규모가 큰 것은 별 문제로
한다면,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베네치아 정부는 즈네브 정부보다 귀족적인 요소를 덜 갖고 있다.
두 정부 사이의 모든 차이는, 우리는 종신 통치자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베네치아에서처럼
추첨을 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는 것이다.
  추첨에 따른 선출은 진정한 민주정에 있어서는 아무런 폐단도 자아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정에 있어서는, 생활 신조와 재산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도덕과 재능에 있어서도 모두가
평등한 탓으로, 누가 선출되든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정이란 다만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18)
  선거와 추첨이 혼용되는 경우 군직과 같이 특수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지휘는 선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또 양식과 정의감, 그리고 결백성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재판관 같은
지위는 추첨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잘 구성된 국가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다 이와
같은 자질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정에서는 추첨도 투표도 행해질 여지가 없다. 군주만이 유일한 통치자이고 행정관이기
때문에, 그 보좌관의 선임권도 오직 군주에게만 속해 있다. 생 피에르 신부(19)가 프랑스 왕실
고문회의의 수를 늘리고 그 구성원을 투표에 따라 뽑을 것을 제안했을 때, 그 자신도 자기가
정부 형태의 변경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인민의 집회 때 투표하는
방법과 투표를 계산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해야겠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는 로마 정치제도의
역사를 봄으로써, 내가 입증하려는 모든 원칙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0만 명이나
참가한 회의에서 공사의 사무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다소 상세히 알아보는 것도, 사려 깊은
독자에게는 결코 무익한 일이 아닐 것이다.

   로마의 민회에 대하여(20)

  로마의 초기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확실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 당시에 대해 알려지고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신화에 가까운 것뿐이라는 말은 거의 옳다고 볼 수 있다.3 일반적으로
여러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교훈이 풍부한 부분은 건국의 역사이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들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다. 하기야 우리는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국가의 혁명이 일어나는가를 알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는 국민이 형성되는
일이란 없기 때문에 국민이 어떻게 하여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거의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관습이 현재 확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그 관습에는 기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여러 전설 가운데서 그 기원을 알아낼 수 있고 가장 확실한 권위에 따라 지지되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증명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전설을 우리는 가장 확실한 전설로 보아야 한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우며 가장 강대했던 로마 국민이 그들의 지상권을 어떻게
행사하였는가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도 나는 이런 한 원칙에 따르고자 한다.
  로마가 새로운 공화국으로 건설되었을 때, 그 건국자의 군대가 알바인, 사비나인 그리고 여타
외국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공화국은 결국 셋으로 분할되었다. 이러한 구분 때문에
그들은 '부족'이라고 불렸다.
  이들 부족은 각기 열 개의 쿠리아로 나누어졌고, 각 쿠리아는 다시 데쿠리아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쿠리아의 우두머리를 '쿠리온'이라 했고 데쿠리아의 우두머리를 '데쿠리온'이라 했다.
  그 외에 각 부족으로부터 백인조라 불리는 백 명의 기병단이 선발되었다. 이렇게 볼 때, 이들
구분은 로마의 시내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구분이었다기보다는 단순한 군사상의 구분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함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조그만 도시 로마로 하여금 세계의
수도가 되기에 적합한 정치 조직을 채택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최초의 구분으로부터 곧 불편한 문제가 생겼다. 즉 알바인의 부족과 사비나인의 부족은
항상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었는데 비하여, 외국인의 부족은 외국인이 끊임없이 로마로 이주해
옴에 따라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다른 두 부족을 압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위험한 폐단을
제거하기 이하여 세르비우스가 생각해낸 종래와 같은 구분 방법을 바꾸는 것이었다. 즉 종족에
따른 구분 방법을 폐지하는 대신, 각 부족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따라 다시 구분하려고
했다. 그는 세 부족을 폐지하는 대신에 로마를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으로 하여금
로마의 언덕을 하나씩 차지하게 하여 그 언덕의 이름에 따라 구역의 명칭을 붙이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당면한 불평등을 제거함과 동세에 장래의 불평등까지도 예방하였다.
게다가 이 구분이 단지 지역상의 구분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구분의 구실까지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는 한 구역의 주민이 다른 구역을 이주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 결과 각 종족간의
혼합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세르비우스는 또 종래의 세 개의 백인조 기병단을 배로 늘리고, 이어서 같은 명칭을 붙인
12개의 기병단을 증설했다. 이 간단하면서도 현명한 방법에 따라 세르비우스는 기사의 단체와
인민의 단체를 구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민으로부터 불평을 듣지 않았다.
  위에 말한 네 개의 도시구역에다 세르비우스는 다시 '전원구역'이라 불리는 15개의 구역을 더
증가시켰다. 이들 구역들은 15개로 구분되어 농촌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다시
15개의 전원구역이 더 증가되었기 때문에 로마의 인민은 결국 35개의 구역으로 분할되었고, 이
구역의수는 로마 공화정의 말기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도시구역과 전원구역의 이러한 구분은 주목할 만한 효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구분은 다른 곳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였는데다, 이 제도의 덕택으로 로마 제국이
습관과 도덕을 잘 유지하고 세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시구역이 얼마 안 가서 권력과 명예를 독점함과 동시에 전원구역의 지위를 하락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전혀 그 반대였다. 초기 로마인의 전원 생활에 대한
취미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취미는 로마의 현명한 건국자 덕택으로 얻게 된 것이다. 그
건국자는 전원의 노동과 군대의 작업을 자유와 결부시켜 기술, 수공업, 음모, 집산, 노예 등을,
말하자면 도시로 추방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의 유명한 시민들이 모두 농촌에 살면서 토지를 경작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공화국의 중요한 인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예 농촌으로 사는 것이 습관처럼 되고 있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가장 권위 있는 귀족들의 생활 방식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로마 도시인들의 한가하고 나태한 생활보다 시골사람들의 순박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도시에 살았으면 한낱 불행한 하층민에 지나지 않았을 사람도
농촌에서 일함으로써 존경받는 시민이 되었던 것이다.
  바로오(21)는 말하기를,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이 전시에는 자신을 방위하고 평시에는 자신을
양육하는 굳세고 용감한 인간의 양성소를 농촌에 설치한 것은 실로 이유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폴리니우스(22)는 한층 더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전원구역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질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존경을 받은 데 비하여, 비열하고 나태한 사람들은 창피를 당하는 표시로
도시로 보내졌다고 했다. 사비나인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23)가 로마에 살기 위하여
이주해 왔을 때, 그는 크게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전원구역으로 편입되는 명예를 얻었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그 전원구역은 그의 이름을 따라 불리게 되었다. 끝으로,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민은 모두 도시구역에 편입되었고 전원구역에 편입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들
해방된 자유민들은 공화정의 전기간 동안, 시민으로서의 대우는 받았지만 행정 관청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실시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정치조직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와 폐단을 가져왔다.
  첫째로 호구감찰관들은 시민을 어느 한 구역으로부터 다른 구역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를
오랫동안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구역을 옮기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허락은 전혀 좋은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호구감찰관의
가장 중요한 직권의 하나를 빼앗았던 것이다. 게다가 뛰어난 인물이나 세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원구역으로 옮겨가 버리고 도시에는 노예에서 해방된 시민이 하층민과 뒤섞여 사록 있었기
때문에, 구역제는 이미 일정한 장소나 영역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기 되었다. 더구나 모든 구역의
사람들이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등록부에 의하지 않고는 각 지역의 구성원을 분간해 낼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구역이라는 말은 지역에 관한 의미로부터 인간에 관한 의미로 바뀌어
버렸고, 나아가서는 거의 무의미한 말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도시구역은 민회의 개최 장소와 가까웠던 탓으로, 가끔 민회에서 가장 유력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래서 때로는 도시구역에 살고 있는 다수 하층민의 표를 매수하려는 무리들에게
국가를 팔아먹는 일까지도 있었다.
  로마의 건국자는 원래 각 부족마다 10개의 쿠리아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 시의 성벽 안에서
거주하던 로마 인민은 결국 30개의 쿠리아로 나누어졌고, 각 쿠리아는 각기 고유의 신전, 신,
관리, 사제, 제사 등을 갖고 있었다. 이 제사는 '콤피탈리아'라고 불렸으며 뒤에 전원구역에서
행한 '파가날리아'와 같은 것이었다.
  세르비우스가 구역을 새로 책정했을 때, 이 30이라는 쿠리아의 수는 그가 만든 네 개의
부족으로 등분될 수 없었는데다 그가 구태여 그것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리아는
부족과는 관계없이 로마 주민의 구역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원구역과 그 주민은
쿠리아와는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역의 구분은 순수한 정치적인 제도에 불과했고,
또 군대의 징집에는 별개의 제도가 도입되었으므로 로물루스가 설치한 군사상의 구분은 소용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은 모두 부족에는 편입되었지만, 모든 시민이 쿠리아에 편입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세르비우스는 세번째로 구분을 다시 책정했다. 이것은 앞의 두 구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으나, 그 결과로 보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로마의 모든 시민을
여섯 계급으로 나누었다. 그는 이 여섯 계급을, 지역이나 인간에 따르지 않고 재산에 따라
구분했다. 즉 부자를 제 1 계급에 넣고 빈민을 제 6 계급에 넣은 다음, 그 중간에는 중간 재산
소유자를 그 재산 정도에 따라 넣었다. 그는 이들 여섯 계급을 다시 백인조라는 193개의 단체로
세분했다. 그런데 이들 단체는 제 1 계급이 단독으로 그 반 수 이상을 차지하고, 제 6 계급은
단지 하나밖에 차지하지 못하도록 각 계급에 배분되었다. 그래서 인원수에 있어서는 가장 적은
계급인 제 1 계급이 가장 많은 수의 백인조를 차지하게 되고, 로마 전시민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제 6 계급은 단 한 개의 백인조 밖에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인민이 이 최후의 구분법으로부터 생기는 결과에 대하여 너무 깊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세르비우스는 그것을 군사적인 구분인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는 제 2 계급에다 무기 상인의
백인조 두 개를 배치하고, 제 4 계급에는 무기 제조인의 백인조 두 개를 배치했다. 또 제 6
계급은 제외한 각 계급에는 청년과 노인을 구별하게 했다. 즉 법률에 따라 군무를 져야 할
청년과, 연령 때문에 법률에 따라 그 의무를 면제받은 노인을 구별하게 했던 것이다. 재산상의
구분보다도 이 구분 때문에 더욱 빈번한 국세 조사는 인구조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마르스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군무에 복역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연령의 전원이
무장하고 집합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세르비우스가 청년과 노인의 구별을 제 6 계급에까지 실시하지 않은 것은, 이 계급의
구성원들에게는 조국을 위하여 무기를 잡을 수 있는 명예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을
지키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늘날 국왕의 군대에
영광을 주고 있는 무수한 하층 병사들 가운데는, 병사가 자유의 방위자였던 시대라면
로마의 보병부대에서 멸시를 받아 쫓겨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 6 계급 속에서도 무산자와 천민은 구별되었다. 무산자는 전혀 아무런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가에 시민을 공급하고 위급할 때는 때때로 병사까지 공급하기도
했었다. 한편 천민은 전혀 아무런 재산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단지 머릿수에 따른 수효로만
계산되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비로소 이들도 병사가 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마리우스(24)였다.
  이 세번째의 구분법이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었는가 나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그만두고라도, 나는 다음과 같은 잠은 단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러한 구분법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초기 로마인들의 특질이었던 소박한 관습, 공평무사한 태도, 농업의 중시,
상업과 영리에 대한 경멸감 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칠 줄 모르는 탐욕과 불안한 정신
상태를 갖고 음모를 꾸미며, 끊임없는 주거의 이동이나 재산의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의
인민들이 이러한 제도를 20년 동안만 유지하게 되면, 아마 그 국가는 틀림없이 뿌리째 뒤집혀
버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은, 이 구분 제도보다 더 강력한
도덕과 호구감찰제도가 로마에 있었기 때문에 이 제도가 가져오는 폐단이 제거될 수 있었다는
점과, 부자라도 지나치게 호사에 치우치면 빈민계급으로 전락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접이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고려하면, 실제로는 로마에 여섯 계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거의
언제나 다섯 계급밖에 논의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제 6 계급은 군대에 병사를
보내는 일도 없었고, 마르스 광장에서 행해지던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아,4 국가내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 인민의 구분은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이번에는 이러한 구분이 각종 집회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자. 이들 집회가 합법적으로 소집된 경우에는 민회라 불렸다.
민회는 보통 로마의 공공 광장이나 마르스 광장에서 열렸으며, 위에 말한 세 가지 구분 가운데
어느 것에 의하여 소집되느냐에 따라 쿠리아 민회, 백인조 민회, 구역 민회로 분류되었다.
  쿠리아 민회는 로물루스가 창설한 제도이고, 백인조 민회는 세르비우스가, 그리고 구역 민회는
호민관이 창설한 제도이다. 어떠한 법률의 승인도, 그리고 어떠한 행정관의 선출도 오직 민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쿠리아나 백인조 또는 구역에 등록되지 않은 시민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투표권을 갖지 않은 시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로마 인민은 법률적으로나 실제에
있어서나 어느 모로 보더라도 참된 주권자였던 것이다.
  민회가 합법적으로 소집되고 거기서 결의된 것이 법률로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였다. 첫째는 민회를 소집하는 단체나 행정관이 그것을 소집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집회가 법률에 따라 허가된 날짜에
열려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점을 친 결과가 길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규정에 대한 이유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둘째의 규정은 정책상의 이유에 따른 것이었다.
즉 당시 로마에서는 축제날이나 장날에는 민회를 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날에는
농촌의 주민들이 자기의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로마 시내로 나와야 하므로, 민회를 위하여
공공광장에서 하루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셋째의 규정에 따라 원로원은 자존심이
강하고 다루기 어려운 인민을 억제하고 반항적인 호민관의 격정을 완화시켰다. 그러나 호민관은
이 구속으로부터 빠져 나가는 방법을 여러 번 찾아 내었다.
  법률과 행정관의 선거만이 민회의 판단에 위임된 사항은 아니었다. 로마의 인민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거의 다 빼앗았기 때문에, 유럽의 운명이 로마의 민회에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들 민회의 결의 사항이 다양하였으므로, 민회는 그 사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취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형식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비교해 보기만 하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로물루스가 쿠리아를 창설하였을 때, 그는 인민으로 하여금 원로원을 억제하게 하는 한편,
원로원으로 하여금 인민을 억제하게 하면서 자신은 양자를 모두 지배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귀족이 갖고 있는 세력과 재산의 권위에 인민들이 맞서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인민에게 수의 권위를 부여해 주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시 군주정의 정신을
존중하여, 귀족들이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평민인 피보호민의 표를 이용하여 투표 전체의
대세를 좌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익을 귀족들이 차지하게 만들었다.
  이 피보호민과 보호자라는 놀라운 제도는 실로 정치가와 인류의 걸작품이었다. 이 걸작품이
없었던들 공화정의 정신과는 그렇게도 모순되는 귀족 제도는 도저히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모범을 세계에 보여준 것은 로마뿐이었다. 이 제도는 로마에서는 어떤 폐단도
자아내지 않았지만, 그것을 계승한 나라는 아무데도 없었다.
  이 쿠리아의 집회는 역대의 왕을 거쳐 세르비우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했으며, 최후의 왕
타르퀴니우스의 치세는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일반적으로 그때까지의 왕의
법률을 '쿠리아의 법률'이라고 불러 다른 것과 구별했다.
  공화정이 되어서도 쿠리아는 역시 네 개의 도시구역에 한정되었고, 따라서 로마시의
하층민만이 이에 소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족의 지도부인 원로원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같은 평민이면서도 부유한 시민을 이끌고 있던 호민관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쿠리아는 신용을 상실하여 극도로 쇠퇴해지고 말았다. 그 결과, 쿠리아의 민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이 민회의 선두호위관 30명이 모여 처리하기에 이르렀다.
  백인조에 따른 구분은 귀족정에 매우 유리한 것이었다. 따라서 집정관, 호구 감찰관, 기타
고의관리들을 선거하는 기관이었던, 백인조라 불리는 이 민회에서 원로원이 왜 우세하지
못하였는지 얼핏 보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실상 여섯 개의 계급으로 이뤄진 로마인이 모두 소속하고 있는 193개의 백인조 중에서, 제 1
계급은 단독으로 98개의 백인조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투표는 오직 백인조를 단위로
실시되었으므로, 투표수에 있어서는 제 1 계급만으로도 다른 계급 전체를 합한 것보다 우세했다.
그래서 제 1 계급의 백인조가 모두 의견이 일치되면 나머지 투표는 계산할 필요도 없었으며
계산도 하지 않았다.
  결국, 가장 소수의 인원이 결정한 것이 대다수의 인원이 결정한 것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백인조의 민회에 있어서는, 의사의 결정이 투표구에 따라 좌우되었다기보다는 돈지갑의
무게에 따라 좌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권력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따라 제한을 받았다. 첫번째로 호민관은
대체로 부유한 계급에 속해 있었고, 또 평민들 가운데서 상당수가 부유한 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 양자는 힘을 합쳐 제 1 계급 내의 귀족 세력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두번째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백인조의 순서에 따라 투표하게 되면 항상
제 1 계급부터 투표하게 되지만, 투표 순서를 따르지 않고 가장 먼저 투표할 백인조를 추첨으로
정하여 그 백인조부터5 투표하게 한 뒤, 그것이 끝나면 다른 날을 정하여 나머지 백인조를
계급의 순서에 따라 투표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두번째
투표는 첫번째 투표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첫번째의 투표가 항상
제 1 계급에 위하여 독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주정치의 원칙에 따라 이를 추첨에 부친
것이다.
  이 관계로부터 또 하나의 이점이 생겼다. 즉 시골의 시민은 첫번째 선거와 두번째 선거 사이에,
지명된 후보자의 재능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상황을 잘 알고 난 후에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선거를 신속히 치러야 한다는 구실 아래 이 제도는 폐지되어
버리고, 두 선거가 같은 날에 시행되었다.
  지역 민회는 원래 로마 인민의 평의회였다. 그것은 호민관에 의해서만 소집되었다. 호민관은 이
평의회에서 선출되었고, 평민의 결의도 이 평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원로원은 이 회의에 의석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참석해보는 권리까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원로원 의원은, 그들이 참석할 수도 없는 이 회의에서 제정된 법률에
복종하도록 강요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그들이 최하급의 시민보다도 자유롭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불공정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으로서, 그것만으로도 전원의 참가가
인정되지 않은 단체가 의결한 명령은 무효라고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설령 귀족 전원이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이 평의회에 참석했다고 하더라도, 이
회의에서는 그들도 한 표의 투표권밖에 행사할 수 없어 결국 원로원의 대관도 최하급의 무산자와
같은 한 표의 표수로 밖에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머릿수로 계산하는 투표의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막대한 수의 인민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하기 위하여 설정한 여러 가지 형태의
구분으로부터 생긴 질서를 별도로 한다면, 이들 여러 가지 구분법은 그 자체로서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기 그것이 설정된 목적에 상응하는 효과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는 것만은
우리가 알 수 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앞서 설명한 바로부터, 구역의 민회는 민주 정치에 가장
적합하였고 백인조의 민회는 귀족정치에 가장 적합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로마시의 하층민이
대부분이었던 쿠리아의 민회는 오히려 폭정과 음모의 온상이 되었던 탓으로, 자연히 평판이
나빠졌다. 선동가들조차도 그들의 계획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이유로 민회의 이용을
꺼렸을 정도였다.
  요컨대 쿠리아의 민회에는 전원구역이 제외되었고 구역의 민회에는 원로원과 귀족이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로마인 전채로 구성되어 조직이 완전하였던 백인조의 민회만이 로마인의
위대성을 나타내는 유일한 민회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투표를 실시하는 방법은 스파르타에서만큼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초기 로마에 있어서는 그들의
풍속만큼이나 간단했다. 각 투표자가 큰 소리로 찬반을 외치면 서기가 차례로 기록했다. 그리하여
극 구역내의 표의 다소에 따라 그 구역의 표결이 실시되고, 각 구역간의 표의 다소에 따라
전국민의 표결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절차는 쿠리아에 있어서나 백인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방법은 모든 시민들이 정직하고, 옳지 못한 제안이나 무가치한 사항에 공공연히 표를
던지는 것을 각자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인민이 부패하고 투표의
매매가 성행하면서부터는 비밀투표가 더 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다. 비밀투표는 표를 사는
인간에게는 불신감을 일으키게 하여 매표행위를 억제하게 만들고, 표를 파는 악한 인간에게는
조국에 대한 배신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키케로(25)가 이 변경을 비난하면서 로마 공화국이 몰락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단정한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키케로의 말에 대해서는 많은 권위를 인정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26) 도리어 이러한 변경을 한층 더 철저히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의 멸망이 빨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의 섭생법이 환자에게는 오히려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선량한 인간에게나 적합한
법률을 갖고 부패한 인민을 통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을 입증하는 예로서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존속을 따를 만한 것이 없다. 이 공화국은 그 법률이 오직 사악한 인간들에게만
적합했던 탓으로 지금은 그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시민들은 투표지를 배부 받아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의견을 나타내지 않고도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투표지를 모으고 투표수를 계산하며 그 수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도 각종 새로운 방법이 강구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의 강구에도 불구하고 선거 사무를
담당하는 관리6의 진실성이 의심받는 일이 많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음모와 투표 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법령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런 법령의 수가 많았다는 사실은, 실상 그 많은 법령으로도 음모와 투표 매매를 방지하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공화정의 말기에는 법률의 불비를 보완하기 위하여 가끔 비상 수단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기적을 날조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인민을 속일 수는 있어도 인민을 지배하는
사람을 속일 수는 없었다. 또 때로는 후보자가 활동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하여 갑자기
회의를 소집하는 때도 있었다. 또 매수된 인민들이 불리한 결정을 내릴 우려가 있을 때는 회의
시간 전부를 연설로 보내 버리는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야심이 법망을 피해 횡행하였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모든 폐단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수의 인민은 그들
선조들이 세운 규칙에 따라, 소수의 원로원이 처리했던 만큼이나 손쉽게 행정관을 선출하고
법률을 제정하였으며, 소송사건을 재판하고 공사의 사무를 처리하였던 것이다.

   호민관에 대하여

  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 사이에 정확한 비례 관계(27)를 설정할 수 없을 때나, 제거할 수
없는 원인 때문에 그 비례 관계가 끊임없이 변동되어야 할 때에는, 이들 각 부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독특한 관직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관직으로 하여금 각 부분의 관계를
올바르게 조정하게 하고, 통치자와 인민 사이나 통치자와 주권자 사이 또는 필요하면 양자
모두를 동시에 서로 연결시켜 주거나 중간 부분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관직을 '호민관'이라 부르기로 한다. 호민관은 법률과 입법권의 유지자이다. 이것은
때로는 로마의 호민관과 마찬가지로 정부로부터 주권자를 보호하기도 하고,(28) 때로는 현재
베네치아의 10인 평의회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반항으로부터 정부를 지키기도 하며, 또 때에
따라서는 스파르타의 감독관처럼 정부와 인민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호민관은 국가의 구성 부분이 아니다. 따라서 입법권이나 집행권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호민관의 권력은 두 권력보다도 크다. 왜냐하면, 호민관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반면에 무슨 일이나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민관은 법률의 수호자이기 때문에
법률의 집행자인 정부나 법률의 제정자인 주권자보다도 더 신성하고 존경받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를 예로 들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로마에서는 거만한 귀족들이 항상 인민을 멸시하면서도, 점을 칠 수 있는 권한이나 재판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일개 인민의 관리(호민관)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명하게 절도를 지키는 호민관은 훌륭한 국가조직의 가장 견고한 기둥이 된다. 그러나 그
힘이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반면에 호민관은 태생적으로 그
힘이 너무 약해질 수는 없다. 호민관은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하기만 하면 필요한 만큼의 힘은
반드시 갖게 되는 것이다.
  원래 집행권을 감독하거나 법률을 수호하는 임무만 갖고 있는 호민관이 집행권을 찬탈하거나
법률을 폐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즉시 폭정으로 타락해 버린다. 감독관의 거대한 권력도
스파르타가 옛 관습을 지키고 있는 동안만은 아무런 위험도 자아내지 않았지만, 타락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을 촉진시켰다. 이들 난폭한 감독관에게 살해당한 아기스(29)의 피는 그
후계자에 의하여 복수되었다. 이런 죄와 벌은 모두 공화국의 멸망을 촉진시켰다. 그리하여
클레오메네스(30)가 죽은 이후의 스파르타는 이미 보잘것없게 되었다.
  로마도 똑같은 길을 걸어서 멸망하였다. 즉 찬탈에 의해서 증대된 호민관의 거대한 권력은
결국 자유를 위하여 만들어진 법률을 악용하여, 자유를 파괴한 황제들을 옹호하였던 것이다.
베네치아의 10인 평의회의 경우도 역시 마치 피의 법정과 같이 되어, 귀족에게나 인민에게 다
같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법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난 뒤에는, 그것이 고매한 태도로
법률을 수호하기는 커녕, 어둠 속에서 갖은 난폭한 짓을 다 저질렀던 것이다.
  호민관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그 구성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약해진다. 처음에는 둘이었다가
다음에는 다섯 명이 되었던 로마의 호민관이 그 수를 두 배로 늘리려고 했을 때, 원로원은
그렇게 되면 내부 대립을 이용하여 호민관 전체를 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여 늘리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그 뒤의 사태는 원로원이 생각한 그대로 되어 버렸다.
  이처럼 무서운 단체가 권력을 찬탈하지 못하게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직 그 어떤 정부도
실시해 보지 못한 방법이지만, 아마도 이 단체를 상설로 둘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정하여
그 동안만 임시로 설치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 기간은 법률로 정하되, 집무 기간이 너무 길어서
각종 폐단이 뿌리를 박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 필요에 따라서는 특별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쉽사리 단축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 방법에는 조금도 불편한 점이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호민관은
국가의 구성 부분이 아니므로, 가끔 이것을 폐지하더라도 국가의 구조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새로 임명된
호민관은 선임자로부터 이어받은 권력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그에게 부여한 권력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독재에 대하여

  법률이란 원래가 융통성이 없는 것이므로 상황의 변화에 일일이 적응하지 못할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유해한 작용을 할 때도 있고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는 국가의 멸망을 초래하기도
한다.
  법률의 절차가 요구하는 순서와 번거로움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를 필요로 하지만,
때로는 상황이 이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입법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법자라 하더라도 모든 일을 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치제도를 강력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나머지, 그 작용을 중지시킬 수 있는 힘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스파르타에 있어서조차 법률을 정지시킨 일이 있다.
  그러나 공공질서를 변경시키는 위험이야말로 최대의 위험이므로,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신성한 법률의 힘을 정지시켜서는 안 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확실히 위험한 경우가 발생하면, 특수한 행위에 따라 가장 적합한 인물에게 공안유지의 임무를
위임함으로써 공안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 위임은 다가올 위험의 성질에 따라 두 가지의
방법으로 할 수 있다.
  만일 위험이, 정부의 활동력을 증대시키기만 하면 제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정부의
권력을 한두 사람의 구성원에게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변경되는 것은 법률의 권위가
아니라 그 집행 형식뿐이다. 반면에 위험이, 법률을 운용하면 도리어 더 증대되는 성질의
것이라면, 한 사람의 최고 지도자를 지명하여 그로 하여금 모든 법률을 정지시키게 하고 당분간
주권을 정지시키게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경우에도 일반의지의 존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인민이 가진 최대의 관심은 확실히 국가가 멸망하지 않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입법권의 정지는 결코 입법권의 폐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지도자는 입법권을 침묵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다시 말하게 할 수는 없다. 그는 입법권을 지배할 수는 있으나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법률 제정만은 할 수 없다.
  첫째의 방법은, 로마의 원로원이 공화국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진 형식에 따라
집정관을 임명했을 때 채용한 바 있다. 둘째의 방법은, 두 사람의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을
독재자로 임명했을 때 채용되었다.7 이 관례는 알바(31)가 로마에 선례를 준 것이다.
  공화국의 초기에는 독재정치가 종종 실시되었다. 국가가 확고한 기반을 갖추지 못하였던
탓으로, 헌법의 힘만으로는 자립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도덕이 순박하여, 다른
시대 같았으면 필요하였을 여러 가지 걱정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독재자가 권위를
남용한다거나 그 기간이 지나도 권위를 계속 유지하려 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거대한 권력은 그것을 지닌 자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법률의
대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너무 위험한 것이라 느껴져, 하루빨리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을 정도였다.
  따라서 공화국의 초기에 이 최고 관직이 무분별하게 행사되었다고 내가 비난하는 것은,
독재자가 권위를 남용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실추시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선거라든지 신전의 헌납식(32)이라든지 하는 순전히 형식적인 의식을 위해서 독재자를
마구 임명하게 되면 그 권위가 실추되어, 정말로 위험한 경우에 임명된 독재자도 그저 의식을
위해서 임명되는 공허한 관직처럼 소홀히 생각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로마인이 훨씬 신중하게 되어, 좀처럼 독재자를 두지 않았다.
그것도 마치 초기에 독재자를 너무 많이 두었던 것과 같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불안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당시 수도의 약한 점이 바로 수도 안에 살고 있는
행정관으로부터 올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해 주었다는 것, 독재자는 어떤 경우에는 공고의 자유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침해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로마를 속박하는 쇠사슬은 로마인 자체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군대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등은 모두 명백한
사실이었다.
  마리우스가 술라에 대하여, 그리고 폼페이우스가 케사르에 대하여 거의 아무런 저항도
못했다는 사실은, 외부로부터 오는 힘에 대항하는 데 있어서 국내의 권위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오류가 로마인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큰 잘못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가령, 카틸리나
사건(33) 때 독재자를 임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한 잘못의 한 예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로마시에 한정된 문제였고 기껏해야 이탈리아의 어느 한 지방의 문제에 불과했으므로, 독재자가
법률에 따라 주어진 무제한의 권력을 가지고 처리했다면 이 정도의 음모는 문제없이 분쇄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음모는, 인간의 지혜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고
행운에 의해서 겨우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로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독재자를 두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전권을 집정관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 결과 키케로는 유효한 행동을 취하기 위하여 부득이 중요한 점에 있어서
월권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34) 그리하여 처음 일이 잘 되어 인민이 환의에 차 있는 동안은
키케로의 행위도 긍정되었지만, 그 다음에 그는 법률에 반하여 시민이 흘린 피에 대하여 당연히
문책을 당하였던 것이다.
  이런 문책은 독재자의 행위에 대해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정관 키케로의 웅변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키케로는 로마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조국보다는 자기 자신의 명예를 더 사랑하여 국가를 구하기 위한 가장 합법적이고 확실한 수단을
강구하는 대신, 이 사건 해결의 명예를 혼자8 차지할 수단을 강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로마의 해방자로서 존경을 받은 것도 정당하지만, 그가 법률 위반자로서 처벌된 것도 정당한
일이었다. 그의 로마 귀환이 아무리 화려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특사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이런 중요한 위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간에, 항상 그 임기를 극히 짧은
기간으로 한정하고 결코 그것을 연장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재자를 임명해야 할
만큼 절박한 위기에 있는 국가는 단시일내에 붕괴하거나 구출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절박한
필요성이 사라지면 독재자는 폭군이 되든지 무용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로마에선 독재자의 임기가 단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1년의 임기를
연장하려고 했던 것처럼 임기의 연장을 바랐을 것이다. 독재자는 그를 임명하게 된 위급 사태에
대처할 시간밖에 갖지 않았다. 그들에겐 다른 계획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감찰에 대하여(35)

  일반의지가 법률을 통해서 표명되듯이, 공중의 판단은 감찰을 통해서 표명된다. 여론은
감찰관이 집행하는 일종의 법률이며, 감찰관은 통치자가 법률에 대하여 하는 것과 같이 그것을
오직 개별적인 경우에만 적용한다.
  그러므로 감찰관의 법정은 인민의 여론을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것을 표명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법정이 인민의 여론으로부터 이탈되면 그 결정은 무효이며 무의미한 것으로
된다.
  한 국민의 더덕과 그 국민이 존경하는 대상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동일한 원리에 의거하고 있어, 필연적으로 동일시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상의 모든 인민은 그들의 쾌락을 자연에 따르지 않고 여론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론을 바로잡으면 도덕은 저절로 정화된다.
  사람들은 항상 선한 것, 또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무엇이 선한 것이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잘못을 저지른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이 판단을 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덕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곧 명예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며,
명예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려는 사람은 그 원리를 여론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인민의 여론은 그 국가의 구조로부터 생긴다. 법률이 도덕을 규제하지는 않지만, 도덕을
만드는 것은 입법이다. 입법이 약해지면 도덕도 타락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찰관의 판정이
법률의 강제력으로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감찰은 도덕을 유지시키는 데는 유효하지만, 이미 타락해 버린 도덕을 회복시키는 데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법률이 활력을 가지고 있을 때 감찰관을 설치해야 한다.
법률이 활력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은 회복될 가망이 없어지고 만다. 법률이 강제력을 잃게 되면
어떠한 합법적인 힘도 강제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감찰제도는 여론의 부채를 방지하고 현명한 판단에 따라 여론을 올바르게 유지시키며, 여론이
아직 불안정할 때는 그것을 안정시키기도 함으로써 도덕을 유지시킨다. 결투할 때 입회인을
세우는 프랑스 왕국에서 극도로 성행했지만, 그것은 '결투에서 입회자를 부르는 비열한 행동을
하는 자에 대해서는...'이라고 시작되는 매우 간단한 칙령에 따라 금지 당했다. 이 판단은 공중의
판단을 예상하여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 여론을 안정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칙령이
결투를 하는 것까지도 비열한 행위라고 선언하려 하자, 실제로 결투는 비열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공중의 여론에 반대되는 판단이었으므로 공중은 그것을 조소할 뿐이었다. 이
점에 관한 공중의 판단은 이미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데서,9 공중의 여론은 그 어떠한 강제력에도 굴복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론을
대표하기 위하여 설치된 법정에서는 조금도 강제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없어져 버린 이 수단이 로마인 사이에서, 그리고 특히 스파르타인
사이에서 얼마나 교묘히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파르타의 평의회에서는, 어떤 부도덕한 사람이 훌륭한 의견을 발표하였다고 하더라도
감찰관이 그것을 무시하고 똑같은 의견을 덕망 있는 시민으로 하여금 제안하게 하였다.(36)
그것은 두 사람 어느 쪽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거나 책망을 하지도 않으면서, 한 사람에게는
대단한 명예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대단한 불명예를 준 처사였다. 또 사모스의 술주정꾼10들이
어느 날 감찰관의 법정을 더럽힌 적이 있었다. 다음날 감찰관은 사모스인에 대해서는 천민의
행세를 허용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이러한 처벌 아닌 처벌은 실제의 처벌보다 훨씬 더 엄한
느낌을 주었다. 스파르타가 옳고 그른 일에 대하여 판단을 내렸을 때, 그리스인들은 그 판단에
대하여 항의하려 들지는 않았다.

   시민의 종교에 대하여(38)

  처음에 인간은 신 이외에는 왕을 갖지 않았고, 신정정치 이외에는 정치를 갖지 않았다. 그들은
칼리굴라와 같은 추리를 하였다.(39) 당시에 있어서 그들의 추리는 옳은 것이었다. 그들이 자기와
같은 인간을 지배자로 하기로 결심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에는 상당히 긴 세월이 흘렀다.
  신이 각 정치사회의 통솔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민족의 수만큼 신의 수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고 항상 적대시하고 있는 두개의 민족이 동일한 통솔자에게
오랫동안 복종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싸우고 있는 두 군대가 동일한 지휘자에게 복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각
민족이 국가로 구분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다신교(40)가 생겼고, 다신교에서 다시 종교적, 정치적
불관용이 생겼다. 이 종교적 불관용과 정치적 불관용은 다음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원래는
동일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미개의 여러 민족들도 역시 그리스의 신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환상은
그들이 처음부터 이들 미개 민족의 주권자라고 생각한 데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몰렉'(41)과 로마의 '사투르누스' 및 그리스의 '크로노스'를 같은 신이라고 한다든지, 또는
페니키아의 '바알'과 그리스의 '제우스', 그리고 로마의 '쥬피터'를 같은 신이라고 하면서, 다른
이름이 붙어 있는 이들 가공적 존재에 어떤 공통된 점이 있으리라 생각하여 다른 민족의 신들을
동일시하려는 주장은 전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겠다.
  각 국가가 각기 다른 신앙과 신을 가졌던 이교시대에 왜 종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고
내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그것은 각 국가가 독자적인 정부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종교도 갖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신과 법률이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정치전쟁은 동시에 종교전쟁이었다. 신의 지배영역은 말하자면 국가의 경계선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이다. 어떤 국민의 신은 다른 국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했다.
이교도의 신들은 결코 질투가 많은 신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계를 나누어 지배하였다.
  모세 자신과 헤브라이인들도 이스라엘의 신에 관해서 말할 때는 때때로 그와 같이 생각했다.
그들이 가나안인의 신을 무력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가나안인이란 이미
신으로부터 저주받고 멸망을 선고받은 인민이므로 자기들이 그들을 대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금지 당하고 있는 이웃 나라의
신들에 대해서,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 좋다.
  예프타는 암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들의 신 케모시에게 속하는 것을 너희들이
소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신이 획득한 토지를 같은 권리에 의하여
소유하고 있다."11 이러한 것을 볼 때 케모시의 권리와 이스라엘 신의 권리는 같은 성질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들이 바빌론 왕에 이어 시리아 왕에게 정복당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
자신의 신 이외에는 어떠한 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러한 부인은 정복자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되어, 그들은 그들 역사에 기록된 대로 수많은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이는
크리스트교 이전에는 그 유래가 없는 박해였다.12
  따라서 종교는 그것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법률에 완전히 부속되어 있었으므로, 어느
국민을 개종시키려고 하면 그 국민을 정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정복자가 되지 않고서는
전도자가 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개종의 의무는 피정복자가 복종해야 할 법률이었으므로
개종을 요구하기 전에 정복부터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인간이 신을 위하여 싸운 것이 아니라, 호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신들이 인간을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각 국민은 승전을 위해 그들의 신에게 기도하고, 승리했을 때는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신에게 보답했다.
  로마인들은 어떤 도시를 점령하기에 앞서, 그곳의 신들에게 먼저 퇴거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로마인이 타렌툼(42)인들로 하여금 노한 그들의 신에게 계속 예배하도록 한 것은, 그렇게 하면
타렌툼인들의 신이 로마인의 신에게 굴복하여 충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피정복자들에게 그들의 옛 법률을 허용해 주었고, 나아가 그들 본래의 신에게
예배하는 것도 허용해 주었다. 카피톨의 쥬피터 신전에 하나의 화환을 바치는 것이, 로마인의
피정복자에게 요구한 유일한 조공이었던 때도 가끔 있었다.
  끝으로 로마인은 제국의 판도를 확대함에 따라, 그들의 종교와 신들을 전파하고 가끔 그들
자신도 피정복 국민의 신들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나아가 이 양편의 신들에게 동일한 권리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 대제국의 국민은 자연히 매우 많은 신들과 종교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신들과 종교는 어디에서나 다 같은 상태였으므로, 당시 모든 세계에 있는 이교가 결국 단
하나의 동일한 종교처럼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영혼의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기 위하여 출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이
영혼의 왕국은 종교의 체계를 정치체계로부터 분리하였기 때문에, 국가의 일체성은 깨어지고
국가는 분열되었다. 이 분열은 크리스트교 국민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그런데 영혼의 왕국이라는 새로운 사상은 이교도들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항상 크리스트교도를 진짜 반역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크리스트교도들이란
위선적으로 복종을 가장하면서도 사실은 독립하여 자기가 지배자가 되려고 하며, 지금은 힘이
약하여 권력에 경의를 표하는 체하면서도 권력을 교묘하게 찬탈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트교에 대한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이교도들이 두려워하고 있던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모든 사태가 돌변하였다.
얌전하던 크리스트교도들의 태도가 표변했으며, 이른바 영혼의 왕국이라는 것이 현세의
지도자(교황)를 내세워, 이 지상에서 가장 과격한 전제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는 항상 통치자와 법률이 있었기 때문에 이중의 권력이 생기게 되고 그 결과
끊임없이 관할권 투쟁이 생겨, 크리스트교 국가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선정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정치적 지배자에게 복종할 것인지, 아니면 종교적 성직자에게 복종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 있어서조차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기야 유럽이나 그 근처에 있는 몇몇 인민들조차 옛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든지 아니면
재건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에 크리스트교의 정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신성한 예배는 항상 주권과는 관계없이 독립되어 있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곧
독립을 회복하였다. 그리하여 크리스트교와 국가라는 공동체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끊기고
말았다.
  마호메트는 극히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정치조직을 훌륭하게 통일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통치 형태가 그의 뒤를 이은 칼리프 밑에서 존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여 국가는 완전히 일체를 이루었고, 따라서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라비아인이 점차 번영하고 개화되며, 문약에 흐르고 무기력해짐에 따라 야만인들에게 정복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두 개의 권력간에 다시 분열이 일어났다. 그 분열은 크리스트교국에
있어서만큼 그리 현저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특히 알리 종파에 있어서는 분열이
더욱 현저하였으며, 페르시아처럼 현재까지 이 분열이 계속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국왕들이 교회의 수장을 겸했다. 러시아의 황제들도 역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칭호를 얻기는 하였지만,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교회의 지배자가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용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얻은 것은 교회를 변혁하는 권리가
아니라 교회를 유지하는 권리였다. 그들은 교회의 입법자가 아니라 집행자에 불과했다.
  성직자가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곳에서는 성직자가 곧 그 나라의 지배자이고 입법자이다.13
따라서 영국과 러시아에서도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권력, 두 개의 주권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트교국의 모든 학자들 가운데 위에서 말한 폐단과 그 구제책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철학자 홉즈뿐이었다. 그는 정치적 통일이 없으면 어떠한 국가나 정부도 그 조직이 바로
구성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독수리의 두 머리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 즉 정치적 통일을
단호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홉즈 역시, 크리스트교의 지배 정신은 결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성직자의 이익은 국가의 이익보다 항상 강력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정치이론이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것이 어떤 무시무시하고 잘못된 주장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4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검토해 보면, 베일과 워버튼이 내세우고 있는 두 의견을 쉽사리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일은 어떠한 종교도 정치체에는 무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워버튼은 크리스트교야말로 정치체에 있어서 가장 견고한 지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베일에 대해서는 종교적 기반 없이 건설된 국가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며,
워버튼에 대해서는 크리스트교의 규칙은 근본적으로 강력한 국가조직에 있어서 유익하기보다는
유해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를 좀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하여, 나는 이 문제에 관련된
종교라는 너무 막연한 개념을 좀더 정확히 규정하고자 한다.
  사회는 일반사회와 특수사회로 구성이 되는데, 종교도 사회와의 관계에서 생각하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즉 인간의 종교와 시민의 종교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종교란, 사원도 없고 제단도 없으며 의식도 없이 오직 최고의 신에 대한 순수한 내적
숭배와 도덕에 대한 영원한 의무에 한정된 것으로서,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의 종교이며 참된
유신론이다. 이를 우리는 자연적 신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민의 종교란 어느 한 국가에만 한정된 것으로서, 그 국가에 고유한 신을 부여하고 그 신이
동시에 국가의 수호자 역할도 하는 종교이다. 이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의식을 갖고 있으며
법률에 따라 정해진 예배 형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신봉하는 국민 이외의 사람들은, 이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 사교 신자이고 이방인이며 야만인인 것이다. 이 종교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그 제단의 범위 안에서만 허용하는 것이다. 원시 민족의 종교는 모두 이와 같은
종교였다. 우리는 이것을 시민적 신법 또는 실정적 신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보다 더 기묘한 제 3의 종교도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입법과 두 사람의 통치자,
그리고 두 개의 조국을 주고 서로 모순된 의무에 복종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충실한 신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종교이다. 라마교와 일본의 종교가 그런 종교이고, 로마의 크리스트교가 그런
종교이다. 이것은 성직자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종교에 나오는 법은 일종의 혼합된
반사회적인 법이므로 여기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들 세 종류의 종교를 정치적 관점에서 고찰하면 어느 것이나 다 결점을 갖고 있다. 제 3의
종교는 나쁘다는 것이 명백하므로, 이를 증명하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사회적 통일을
깨뜨리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인간을 자기와 모순되게 만드는 제도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제 3의 종교는, 신에 대한 예배와 법률에 대한 사랑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또 조국을 시민이
존경하는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국가에 봉사하는 일이 곧 국가의 수호신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종교이다. 그것은 일종의 신정정치로서, 군주가 곧 교주이며
행정관이 곧 성직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곧 순교가 되고,
법률을 위반하는 것은 곧 신성모독이 되며, 죄인을 공형에 처하는 것은 곧 그를 신의 노여움에
바쳐 '신의 저주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종교는 오류와 허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기만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쉽사리 미신에 빠지게 하며, 신에 대한 진실한 신앙을 공허한 의식에 빠져 버리도록 한다는
점에서 역시 나쁜 종교이다. 게다가 이 종교는 배타적이고 포학하게 되어 인민을 잔인하고
관용이 없게 만들 때 나쁜 종교가 된다. 그렇게 되면 인민은 살육과 학살만을 갈망하게 되어,
자기들의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도 신성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 결과, 이러한 인민은 다른 모든 인민과 전쟁을 해야 하는 필연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므로,
그것은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극히 해로운 것이다.
  끝으로 남는 것은 인간의 종교, 또는 크리스트교이다. 여기서 말하는 크리스트교라는 것은
현재의 크리스트교가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복음서의 크리스트교이다. 이 신성하고
숭고하며 진실한 종교에 따라 동일한 신의 아들인 인간은 서로를 형제로 생각하게 되며, 그들을
결합하는 사회는 멸망에 이르러서도 해체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종교는 정치체와는 아무런 특수한 관계도 갖지 않기 때문에, 법률에 대해서는
그것이 원래 갖고 있는 힘 이외에 다른 어떠한 힘도 보태주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를 결합해
주는 강력한 유대의 하나가 아무런 효과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이 종교는 시민들의
마음을 국가에 묶어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민들의 마음을
유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사회적 정신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진실한 크리스트교 인민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가정에는 하나의 중대한 난점이 있는 것 같다. 즉 진실한
크리스트교의 사회는 이미 인간의 사회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나아가서 나는 이러한 가상적인 사회는, 아무리 완전한 것일지라도 결코 가장 견고한 사람도
가장 영속적인 사회도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는 너무 완전한 탓으로
결합의 유대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를 멸망하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그것이
완전하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각자는 자기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고 인민은 법률을 준수할 것이며 통치자는 공정하고
자비로울 것이다. 또 관리들은 청렴결백할 것이고 병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허영도 없고 사치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보자.
  크리스트교는 전적으로 심령의 종교이다. 따라서 오직 천국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이다.
크리스트교의 조국은 이 세계가 아니다. 크리스트교도들이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하는 데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이 오직
의무만을 수행할 뿐이다. 자기 자신만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잘
되든 못 되든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설령 국가가 번영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거의 사회의 행복을 향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나라의 영광에 따라 자기의 마음이 오만해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국가가
쇠퇴해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네 인민들 위에 무겁게 뻗친 하느님의 손을 축복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가 평온하고 조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량한 크리스트교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거기에 야심가나 위선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하면, 예컨대 카틸리나나 크롬웰 같은 인물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하면,
그는 신앙심이 두터운 자기의 동포들을 반드시 이용할 것이다.
  크리스트교의 박애정신은 이웃 사람에게 악의를 품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야심가가 어떤 간계를 쓰든지 간에 인민을 기만하여 정치 권력의 일부를 잡게 되면, 그는 당장
신의에 따라 위엄을 부여받게 된다. 즉 그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모드 신의 뜻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곧 권력이 생겨나게 되고, 사람들이 권력에 복종하는 것도 역시
신의 뜻으로 여겨지게 된다. 게다가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을 남용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내리신
벌이라고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트교도들은 이러한 찬탈자를 추방하는 것도 망설일 것이다. 그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안녕을 어지럽히고 폭력을 쓰며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크리스트교의 온화한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결국 이 슬픔의 골짜기에 있는 동안에 자유롭다든지 자유롭지 못하다든지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요컨대 천국에 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종만이 천국에 가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런 시민들은 불평없이 전쟁터로 나간다. 도망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승리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기는 것보다는 죽는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 자신보다도 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이와 같은 금욕적 태도에 대하여, 거만하고 용감하며 승리의
열망에 불타고 있는 적이 얼마나 유리한 입장에 있을 것인가 상상해 보라. 명예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용감한 인민들이 그들에게 대항한다고 생각해 보라. 여러분들의 크리스트교
공화국이 스파르타나 로마와 대결한다고 상상해 보라. 경건한 크리스트교도들은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격파되고 분쇄되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구조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이 그들에게 경멸감을 품은 나머지
그들을 내버려 두는 경우뿐이다.
  내가 볼 때, 파비우스의 병사들이 행한 선서(43)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그들은
정복인가 죽음인가를 맹세하는 대신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올 것을 맹세하였고, 또 그들은 그
맹세를 지켰던 것이다. 크리스트교도라면 결코 이런 선서는 못 하였을 것이다. 그런 일은 신을
시험하는 일이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크리스트교 공화국이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크리스트교와 공화국과는
도저히 서로 결합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트교는 굴종과 의존만을 설교하고 있다.
크리스트교의 정신은 폭군에게는 너무나 유리한 것이기 때문에, 폭군은 반드시 그것을 이용하게
된다. 진실한 크리스트교도는 노예가 되도록 되어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개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이 짧은 생애란 너무도 가치가 적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크리스트교도의 군대는 우수한 군대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예가 있다면 그 증거를 내게 보여주기 바란다. 나로서는 크리스트교도의 군대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십자군의 예를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용기는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십자군이란 크리스트교도가 아니라 성직자의 군대였으며 교회의 시민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십자군은 심령의 나라를 위하여 싸웠지만, 교회는 어찌된 셈인지 이 심령의 나라를 지상의
나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를 잘 생각해 보면, 십자군은 이교에 속하는 것이다. 복음의
종교는 개별적인 국가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크리스트교도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종교전쟁도 있을 수 없다.
  이교도의 황제 밑에서는 크리스트교도의 군대가 용감하였다. 모든 크리스트교 국가의 학자들은
그것을 주장하고 있고, 나도 그것을 믿는다. 그것은 이교도의 군대에 대한 명예의 경쟁이었던
것이다. 황제가 크리스트교도가 되자마자 이 전쟁은 없어지고, 십자가가 독수리를 쫓아 버렸을
때에는 로마인의 용기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치적인 고찰은 이 정도로 해두고 권리의 문제로 돌아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원칙을 세워 보자.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사회계약에 따라 주어진 주권자의 신민에 대한 권리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다.15 따라서 신민은 자기의 의견이 공동체에 중대한 결과를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권자에게 자기 의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시민들로
하여금 자기의 의무를 사랑하도록 하는 종교를 갖게 하는 것이 국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종교의 교의는, 그것을 믿는 사람이 타인에 대하여 지켜야 할 도덕과 의무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에도 그 구성원에게도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자는 가지
마음대로 자기의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주권자는 그 의견을 알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내세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현세에 있어서 신민이 선량한 시민으로만
머물러 준다면, 내세에 가서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주권자의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권자가 그 항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순수한 시민적인 신앙 고백이 필요하다.
이 때 주권자가 결정하는 항목이란 종교의 교의로서가 아니라 선량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나
충실한 신민이 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사회적 감정으로서 요구되는 항목이다.16 주권자는
이런 항목을 믿도록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국가로부터 추방할 수는 있다.
  여기서 주권자가 그를 추방하는 것은 불신자로서가 아니라 반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이다. 즉
그런 인간은 법률과 정의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가 없고, 긴급할 때에는 의무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 수가 없는 인간으로 인정되어 추방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겉으로는 이 교의를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죽음으로 그를 처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범죄 가운데서 가장 나쁜 범죄, 즉 법률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시민적 종교의 교의는 그 항목의 수가 적고 단순해야 하며, 정확히 표현되어 설명이나 주석이
필요 없도록 되어야 한다.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우며 선견지명과 섭리를 가진 신의 존재, 내세의
생활, 정의는 축복 받고 죄악은 벌받는다는 것, 사회계약과 법률의 신성함, 이러한 긍정적
교의여야 한다. 나는 부정적 교의에 대해서는 단 한 가지로 한정시킨다. 그것은 불관용이다.
불관용은 이미 우리가 배척해 버린 종교의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종교적 불관용과 정치적 불관용을 구별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다. 이 두 가지
불관용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신의 저주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저주받은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을 벌하는 신을 미워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다시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책망하든지, 어느
것이든 적극적으로 해야만 한다.
  종교적 불관용이 인정되고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어떤 정치적인 영향이 따르게 마련이다.17
게다가 그것이 정치적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치게 되면 주권자는 벌써 속계에 있어서조차
주권자로서의 역할은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성직자가 사실상의 지배자가 되고, 국왕은
성직자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배타적인 국교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게 된 이상, 그 교의가 시민의 의부에
배치되지 않는 한, 다른 종교를 허용하는 종교는 모두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교회가
아니고 통치자가 교주가 아닌 한, "교회 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누구나
국가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의는 오직 신정정치에만 적합한 것으로, 그 외의 정치에는
극히 유해한 것이다.
  앙리 4세가 로마의 구교를 받아들이면서 주장하고 있는 이유란, 실상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그
종교를 버려야 하고, 특히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모든 군주도 그 종교를 버려야만 할
이유인 것이다.(46)

   결론

  지금까지 나는, 정치적 권리의 진정한 원리를 수립하고 이 원리의 기초 위에 국가를 세우는
길을 모색해 왔다. 이제 남을 문제는 그 대외관계에 따라 국가를 강화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국제법, 통상, 전쟁과 정복에 관한 법률, 공법, 동맹, 협상, 조약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든 것은 내 좁은 지식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한 새로운 연구
대상이다. 나는 내 범위를 너무 넓히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역주(괄호 없는 주)
  1.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국가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자유국가가 아닌
경우에는 가축, 재산, 거주지의 부족, 생활상의 필요, 폭력 등 때문에 주민의 의사와는 달리 그
나라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그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이나 계약의 파기에 동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2. 제노바에는 감옥의 입구와 갤리선 죄수의 철장에 '자유'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렇게 한
것은 훌륭하고 정당한 일이다. 사실 시민의 자유를 방해하는 자는 어느 신분에나 있는
악인들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인들이 모두 갤리선에서 벌을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가장 완전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3. '로물루스(Romulus)'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주장되고 있는 '로마'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힘'이란 뜻이다. '누마(Numa)'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 초기의
왕이었던 이들 두 사람의 이름이, 그들이 남겨 놓은 사업과 그토록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4. 내가 '마르스 광장'이라고 한 것은 백인조의 민회가 거기서 열렸기 때문이다. 다른 두 가지
민회는 '공공 광장(Fourum)'이나 다른 장소에서 열렸다. 그리고 후자의 회의에서는 천민도 제 1
계급의 시민과 마찬가지의 세력과 권리를 갖고 있었다.
  5. 이처럼 추첨에 따라 뽑힌 백인조는 가장 먼저 투표하게 되므로
'프라에로가티바(praerogativa)'라 불렸다. 이 말에서 '특권(perogative)'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6. Custodes, Diribitores, Rogatores suffragiorum, 즉 선거감시인, 투표집계인, 선거 요청자
등의 관리.
  7. 이 임명은, 마치 인간을 법률 위에 놓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되기나 하는 것처럼
밤중에 몰래 행해졌다.
  8. 그는 자기가 독재자의 임명을 제안할 경우, 명예를 혼자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자신이
없었다. 자기가 자기를 독재자로 지명할 수도 없었고, 게다가 동료가 자기를 지명해 주리라는
확신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9. 나는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 자세히 취급한 것을 여기서는 간단히 지적하는 데
그친다.
  10. 이 주정꾼들은 실상 다른 섬으로부터 왔지만, 그 섬에 대한 프랑스어의 표현이 좀 미묘하여
오해의 우려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37)
  11. 라틴어 역 성서에는, "Nonne ea quae possidet Chamos deus tuus tibijure debentur?"(Jug.
XI. 24)로 되어 있다. 카리에르 신부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신
케모시에게 속하는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헤브라이의 원문에는 어느 정도의 어조로 표현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라틴어 역
성서에는 예프타가 케모시 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과, 프랑스어의 역자는
라틴어의 원본에는 없는 "너회들에 따르면"이란 구절을 넣음으로써, 그 권리를 승인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다.
  12. 성전이라 불리고 있는 포세아에인의 전쟁도 사실은 종교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전재의 목적은 신성모독 행위를 벌하는 것이었지, 이교도를 정복하는 것은 아니었다.
  13. 성직자를 일체가 되게 결합시키는 것은, 프랑스의 종교회의와 같은 형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교회 동맹과 같은 것이라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동맹의 회원이 되는 일과
파문되는 일은 바로 성직자의 사회계약인 것이다. 이 계약에 따라 성직자는 항상 인민과 국왕의
지배자가 된다. 이 동시에 가입된 성직자는 어디에 살고 있든 간에 모두가 같은 공동체의 시민인
것이다. 이러한 동맹은 정치가 만들어 낸 하나의 걸작품이다. 이교도의 성직자 사이에는 이런
것이 없다. 그들이 성직자의 단체를 형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1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1643년 4월 11일자로 그로티우스가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홉즈의 저서 "시민에 대하여" 가운데서 어떤 점을 찬성하고 어떤 점을 비난하고 있는가를 읽어
보라. 그로티우스는 관대한 성품을 지녀, 홉즈의 나쁜 점을 감싸주기 위하여 좋은 점을 칭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관대하지는 않다.
  15. 다르쟝송 후작은 "공화국에 있어서는,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각자는 완전히
자유롭다"(44)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도 그 이상 더 정확히 정할 수 없는 불변의 한계이다.
나는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초고를 가끔 인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대신의
자기에 있었을 때에도 참된 시민의 정신을 잃지 않았고 자기 나라의 정부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건전한 의견을 갖고 있었던, 이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을 회상하여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16. 케사르는 카틸리나를 변호하기 위하여, '영혼은 사멸한다'는 교의를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카토와 키케로는 이를 반박하려는 그 어떤 철학적 설명도 제시하지 않은 채, 다만
케사르의 말은 나쁜 시민들이 하는 말이며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국가에 유해한 짓이라는
것만을 지적했을 뿐이다. 실제로 로마의 원로원이 판단을 내려야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였지 신학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17. 예컨대 결혼은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므로 사회적인 효과를 수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가 수반되지 않으면 사회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혼 행위를 승인하는 권리,
즉 관용이 없는 종교에서는 반드시 성직자가 가로채게 마련인 이 권리를 성직자가 독점하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그 성직자는 교회의 권위는 높이겠지만 통치자의 권위는 분명히 떨어뜨릴 것이다.
그 결과, 통치자는 분명히 성직자가 허용해 주는 만큼의 신민 밖에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교의를 믿고 어떤 신앙 형식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신앙심이 어느 정도 되는가에 따라 그들을 결혼시킬 수도 있고 결혼시키지 않을 수도 있는
권리가 오직 성직자에게만 주어지게 되므로, 재산과 관직 그리고 시민과 국가 그 자체까지도
성직자의 손에 좌우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아가 국가가 이미 사생아로만 구성되게 되면, 그
국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군주가 성직자의 직권 남용을 들어
성직자를 고발하고 소환하며 영장을 발부하여 교회의 수입을 차압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성직자가 '용기라고 말할 것도 없이'
상식만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는 그런 일에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해버릴 것이다.
그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기소를 당하여 소환과 차압에 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끝내
지배자의 위치에 머무를 것이다. 모든 것을 얻을 확신이 있을 때, 그것을 위하여 일부를
포기한다는 것은 대수로운 회생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45)

   역주(괄호 안에 숫자가 있는 주)
  (1) 이것은 스위스 농촌 지방의 여러 주를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2) 크롬웰(O. Cromwell, 1599__1658년)은 영국의 군인, 정치가.
  (3) 보포르(Beaufort, 1616__1669년)는 앙리 4세의 서손으로서, 프롱드 반란의 지도자. 그는
특히 파리의 시민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시장의 왕'이라 불리었다.
  (4) 제 3 편 "좋은 정부의 특징에 대하여", "정부의 악폐와 타락의 경향에 대하여" 참조.
  (5) 제 4 편 "로마의 민회에 대하여" 참조.
  (6) 타키투스, "역사" 제 1 편 제 85 장.
  (7) 오토(AD 23__69년)와 비텔리우스(AD 15__69년)는 모두 로마의 군인이었으나 나중에
황제로
추대되었다.
  (8) 제 2 편 "일반의지도 잘못일 수 있는가" 참조.
  (9) 음모와 도당에 대해서는 제 2 편 "일반의지도 잘못일 수 있는가"를, 정부의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제 3 편 "정부의 월권을 방지하는 수단"을 참조.
  (10) 제 4 편 "선거에 대하여" 및 "로마의 민회에 대하여" 참조.
  (11) 루소, "폴란드 정치론" 제 9 장 참조.
  (12) 제 3 편 "정부의 수립에 대하여" 참조.
  (13) 루소를 연구해온 보올라봉에 따르면, 13세기부터 공화정 말기까지 베네치아의 통령 선거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대평의회가 우선 30명의 시민을 선출하고,
이들이 9명의 시민을, 그리고 그 9명이 40명의 시민을 뽑으며, 그 40명이 추첨에 따라 12명의
시민을 다시 뽑는다. 그리고 그 12명이 25명의 시민을 다시 뽑고, 그 25명이 추첨에 따라 11명의
시민을 선출하며, 그 11명이 다시 41명의 시민을 선출한다. 그래서 그 41명이 통령을 선출했다고
한다.
  (14)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제 2 편 제 2 장 참조.
  (15) 베네치아 귀족 가운데 비교적 빈곤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베네치아의 성 바르나베
구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론이 붙었다고 한다.
  (16) 즈네브의 주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민과 부르주아의 총회를 말한다. 여기서 25인
위원회라는 소워원회가 선출되어 법의 집행을 위임받았는데, 루소는 이러한 형태의 정부를
생각했던 것 같다.
  (17) 당시 즈네브에는 시트와양(시민), 부르주아(도시민), 아비탕(거주민), 나티프(제 2세
거주민), 쉬제(예속민)의 다섯 계급이 있었다. 시민과 부르주아는 모두 합하여 1천 6백 명이 못
되었지만 입법과 행정에 참가할 수 있는 특권계급이었고, 거주민은 시의 거주권을 산
외국인이었으며, 제 2세 거주민은 시내에서 태어난 거주민의 자식들로서, 모두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과세의 대상이 되었을 뿐 권리를 갖지 못했다. 예속민은 그 지구에 거주하는
농민으로서 최하층 계급이었다.
  (18) 제 3 편 "민주정에 대하여" 참조.
  (19) 생 피에르(Saint-Pierre, 1658__1743년)는 프랑스의 성직자.
  (20) 이 장은 고대 로마에 대한 루소의 찬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항과 다음 세 항을
쓰는 데 있어서, 루소는 시고니우스의 "고대 로마의 민법" 과 마키아벨리가 쓴 "로마사론" 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21) 로마의 문학자(BC 116__27년)로, "농업론" 을 저술했다.
  (22) 로마의 저술가(AD 23__79년).
  (23) 로마의 집정관(생몰 연대 불명). 사비나인이었으나 로마와 싸우기를 싫어하여 동족 5천
명과 함께 로마로 이주했다.
  (24) 가이우스 마리우스(BC 152__86년)는 로마의 장군, 정치가.
  (25) 키케로(Marcus T. Cicero, BC 106__43년)는 로마의 정치가, 철학자. 웅변에 능했다고
한다.
  (26) 키케로의 "법률에 대하여" 제 4 편 제 15__17 장,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제 2 편 제 2
장 참조.
  (27) 제 3 편 "정부일반에 대하여" 참조.
  (28)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 1 편 제 4 장 참조.
  (29) 스파르타 왕 아기스 4세(재위 BC 244?__241년). 류쿠르고스 헌법의 부활과 토지의 재분배
등을 꾀하려 하였으나, 감찰관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증오를 받아 살해되었다.
  (30)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 3세(재위 BC 236?__222년). 아기스 4세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귀족을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31) 알바는 라티움의 도시. 주변의 30여 도시에 패권을 휘둘렀으나, 로마와 싸워 패한 뒤
로마에 흡수되었다.
  (32) 헌납식이란 새로 건축된 신전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말한다.
  (33) 카틸리나(BC 108__62년)는 로마의 음모가. 당시 통령이 되기 위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집정관 키케로 등의 노력에 의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34) 이것은 키케로가 카틸리나의 공범자들을 처형하기 위하여, 원래 그 법적 권한이 없는
원로원의 허가만 얻은 뒤 인민의 재판을 행하지도 않고 처형시켜 버린 일을 말한다. 키케로는 그
결과 추방당했다.
  (35) 이 항은 단편 "법에 대하여"와 비교하여 볼 것.
  (36) 플루타르코스, "스파르타인의 격언" 제 69 장 참조.
  (37) 이 주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나, 본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즈네브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로소 자필의 "사회계약론" 원고에는 "키오스인으로서 사모스인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여기서 "표현이 좀 미묘하다"는 말은 chios(kios) 가 변소를 뜻하는 
shittes를 연상하기 쉽다는 뜻인 듯하다.
  (38) 이 장은 1761년 여름이나 가을에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사회계약론"의 처음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의 종교에 대한 본질적 개념은, 볼테르의 "리스본의
재난" 과 "자연법"에 관한 두 편의 장시에 대해 루소가 볼테르에게 보낸 편지(1756년 8월
18일자)에 이미 나타나 있고, 루소의 "산으로부터의 편지" 제 1 부 제 1 의 편지에 설명되어
있다. 또 "에밀" 제 4 편의 "자연종교론" 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39) 즈네브 초고 참조.
  (40) 여기서 다신교란, 많은 국민이 각각 그 고유의 신을 갖고 있어, 결국 국가의 수만큼 많은
수의 신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41) 몰렉(Molech)은 고대 셈족의 신으로 어린아이를 희생물로 받았다고 한다.
  (42) 이탈리아의 도시로 상공업이 발달했다. 스파르타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뒤에 로마에
합병되었다. 현재 이름은 타란토.
  (43)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 2 편 제 45 장 참조.
  (44) 루소가 인용한 다르쟝송 후작의 이 말은 루소가 그 원전을 보지 않고 쓴 것인 듯하다.
1827년 전집판의 편자 주에 따르면, 다르쟝송 후작의 저서 "프랑스의 정치에 관한 고찰" 은
루소가 "사회계약론" 을 낼 때에는 아직 초고밖에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45) 이 주는 루소에게 상당한 고민을 주었던 것 같다. 1762년의 초판에서는 마지막에 가서
삭제되었다가, 뒤에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첨가되었다. 그러나 또 곧 삭제되었다가 1782년 판
이후에는 계속 첨가되었다.
  (46) 앙리 4세가 프로테스탄트의 목사로부터 어떤 종교에 의해서도 구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즉 공공의 이익을 첫째로 생각해야 할
군주가 불관용의 카톨릭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불평등기원론

  디종의 아카데미가 제기한 문제, '인간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관한 논문

  자연이라는 것을, 부패한 인간들 속에서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인간들 속에서 고찰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즈네브 공화국에 바치는 글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고귀한 경들이여!(1)
  자기 조국에 대해 그 조국이 인정할 만한 경의를 표시하는 것은 덕망 높은 시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굳게 믿어 왔기에, 나는 여러분에게 공공연한 경의를 표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고 30년 전부터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부족했던 나의 노력을 보충해준 운좋은 이번
기회는, 나로 하여금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권리보다도 나를 고무시킨 정열 때문에
가능했다는 행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당신들과 더불어 태어난 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평등과 인간이 스스로 만든 불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저 깊은 예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예지에 따라 이 나라에서는 자연의 평등과 인간의 불평등이 훌륭하게 조화되어, 자연법에
가장 합치되고 사회와 공공질서의 유지, 그리고 개인의 행복에 가장 유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구성에 대해 양식이 명령할 수 있는 최상의 법칙들을 찾는다고 할 때, 그것들이 모두
당신들의 정부에서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여러분의 공화국 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민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장점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 폐단을 가장 슬기롭게 방지해 왔다고 생각되는 국민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인간 사회의 그림책을 바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일 자기의 출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인간 능력의 범위 내에서, 다시 말하면 훌륭히
통치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각자가 능력에 상응하는 직업을 갖고, 따라서 각자 자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아무도 자기의 직무를 남에게 맡길 필요가 없는 그런 규모의 사회를 택했을
것입니다.
  그런 국가라면 개개인이 서로 가까이 사귀게 되므로, 은밀하게 저지른 악덕이나 숨은 미덕도
사람들의 심판과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조국애는 서로 만나거나 알고 지내는
바람직한 관습에 따라, 땅에 대한 애착보다 오히려 시민에 대한 사랑이 될 것입니다.
  나는 국가 기관이 항상 전체 인민이 행복을 지향하는 그러한 목적을 향해 나가도록, 주권자와
인민이 오직 하나로 일치되는 이해를 갖는 나라에 태어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인민과 주권자가 동일한 인간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결과적으로 나는 현명하게
조화된 민주적인 정부 아래 태어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나는 자유로이, 다시 말하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법률이라는
명예로운 속박에 복종하여 살다가 죽을 수 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이 유익하고도 달가운
속박이야말로, 제 아무리 자존심 강한 사람일지라도--그 외에는 어떤 속박도 받지 않을
터이므로--군소리 없이 받아 들일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이면 누구나 한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이상 자기가 법률을 초월하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기를 희망하며, 한편 국가 밖에 있는 사람이 무리하게 국가에 법률을
강요하여 그것을 인정하도록 하는 일이 없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든 간에, 만일 그 정부의 관할권 안에 법률을 지키지
않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나머지 사람은 반드시 그런 사람의 의견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1 만일 한 사람의 인민의 통치자 외에 또 한 사람의 국외 통치자(2)가 있다고 하면,
두 사람이 아무리 권력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둘에게 다 인민이 잘 복종하거나
나라가 잘 통치되어 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법률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나는 새로운 제도의 공화국에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면한 필요에 부합되지 않게 정부가 구성되어 새로운 시민들에게는
적합하지 않거나 시민들 쪽이 새로운 정부에 적합하지 못하여, 결국 그와 같은 국가는
태어나자마자 흔들려 붕괴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란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거나 진한 포도주와 같은 것이라서, 거기에 익숙해 있는 튼튼한
체질을 기르는 데는 적합하지만 거기에 맞지 않는 허약한 체질은 압도하고 파괴하거나 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단 군주에 대한 복종에 길든 국민은, 이미 군주 없이는 마음이 놓이지를
않습니다. 만일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들은 자유로부터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자유와는 반대되는 방종을 자유라고 착각하므로, 그들이 혁명을 한다고 해도 거의
언제나 자기들을 채우고 있는 족쇄를 무겁게 만들어 버릴 뿐인 선동가들에게 자기 몸을 내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국민의 전형적 본보기인 로마인들까지도, 타르퀴니우스가(3)의 압제에서 벗어났을 때
자치를 운영해 나갈 능력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로마인은 타르퀴니우스가에서 강요한 노예상태와
굴욕적인 고역으로 말미암아 타락해 버렸으므로, 처음에는 최대의 지혜를 기울려 돌보아 주면서
통치해야 하는 어리석은 백성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압제 아래에서
무기력해졌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리석게 되어 버린 이들 영혼은 건강에 좋은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는 데 조금씩 익숙해지자, 드디어 로마인을 모든 인민 중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민들로
만든 저 엄격한 도덕 관념과 자랑스러운 용기를 차차 획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조국을 위해 행복하고 평온한 공화국을 찾을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
공화국은 태고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정도로 그 기원이 아득하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용기와 조국애를 발휘하고 그것을 강화시키는 데 알맞은 공격밖에 받은 적이 없는 그런
곳입니다. 그 시민들은 오래 전부터 현명한 독립에 길들여져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그 자유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다행히도 무기력하기 때문에 잔인한 정복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리적으로 유리되어
다른 나라에 의해 정복될 우려가 없는 조국, 즉 몇몇 인민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어느
인민도 침략할 엄두를 내지 않으며 그들 인민 모두가 다른 인민들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갖는 자유로운 도시, 한마디로 말하면 이웃 나라의 야심을 조금도 유발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는 이웃 나라의 원조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공화국을 택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공화국은 그와 같이 행복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 이외에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만일 그 시민들이 군사 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방위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진정으로 자유에 부합되며 자유를 사랑하는 저 무사다운
열정과 자랑스러운 용기를 그들 내부에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또한 모든 시민이 입법권을 공유하는 나라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동일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과연 어떤 조건이 자기들에게 적합한가 하는 문제를
시민들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로마인들이 실시한 바 있는
인민투표(plebiscito)는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투표에서는 국가의 통치자나
국가의 보전에 가장 깊숙이 관여한 사람들이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토의에서 제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터무니없는 모순이지만, 위정자들이 일반 시민까지도 갖고
있었던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나는 그것과 상반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즉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기 위한 어설픈 계획이나 아테네 사람들을 결국 멸망으로 인도한 위험한 개혁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률을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아무에게나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은 권리는 위정자만이 행사할 수 있으며 아울러 위정자들이 그 권리를 매우
신중하게 행사하도록 규제해야 합니다.
  한편, 국민도 그 법률을 경솔히 찬성해서는 안 되고 법률의 공포는 엄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따라서 국가의 조직이 법률에 의해 전복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민들이 확신할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법률이 신성하고 존중할 만한 것이 되는 이유는
그 법률이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인민은 날마다 법률이 달라지면 마침내는 그것을
소홀히 여기고 개선한다는 구실로 구습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며, 그럼으로써 조그마한
악을 시정하려다가 오히려 큰 악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특히 인민이 위정자 같은 것은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거나 위정자에게는 일시적인 권력만
떼어주면 된다고 생각하여, 경솔하게도 시민에 관한 공무의 관리와 그 법률의 집행을 자기들이
맡으려고 하는 공화국은, 통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이를 피했을 것입니다.
직접 자연상태에서 출발한 최초의 엉성한 정부 구성은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며, 아테네
공화국을 멸망으로 이끈 결함의 하나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공화국이라면 서슴지 않고 택했을 것입니다. 즉 개개인이 법률에
동의하는 일과 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국사나 통치자의 제안을 결정하는 일에 만족하며, 위신
있는 법정을 확립하고 주의 깊게 그 관할을 구분하며, 재판의 관리와 국가의 통치를 위해 인민
가운데서 가장 유능하고 공정한 사람들을 해마다 선출하는 공화국, 그리고 위정자들의 미덕은
바로 국민이 지혜롭다는 증거가 되어 양자가 서로 존중하는 공화국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불행한 오해 때문에 공공의 평화가 흔들릴지라도, 그와 같이 어둡고 오류로 얼룩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절제와 상호 신뢰, 법률에 대해 공동으로 경의를 표하는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실하고 영구적인 화해의 조짐이며 보장이기도 합니다.
  너그럽고 존경하기에 부족함 없는 경들이여, 이상과 같은 점이 내가 택한 조국에 요구했으리라
생각되는 여러 가지 장점들입니다. 이에 덧붙여서 만일 하느님이 유리한 지세나 온화한 기후,
비옥한 땅,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까지 보태주셨더라면, 나는 이 복된 조국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즉 이런 모든 평화로운 축복을 만끽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또한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려 평화롭게 살면서, 그들에 대하여 그들의 관례에 따라 자비와 우애 등 모든 덕을
베풀기를 바랐을 것이고, 훌륭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성실하고 덕망 높은 애국자로서 명예로운
업적을 후세에 남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설령, 내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거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시기가 너무 늦었거나 하여
청년시절에 경솔하게 잃었던 안식과 평화를 외국에서 병으로 늙어 헛되이 놓치더라도, 나는
적어도 고국에서는 실행할 수 없었던 위와 같은 견해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동포 시민에 대해 사심 없고 두터운 애정을 느끼면서 진심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포 시민 여러분, 아니 형제 여러분, 혈연과 법률이 우리들 대부분을 결합하고
있으므로, 내가 당신들을 생각할 때마다 당신들이 받고 있는 모든 혜택을 아울러 생각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아마도 당신들 가운에 어느 누구도 그 혜택을 잃어버린 나만큼은 그 가치를
절실히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정치, 사회적인 처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인간만사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더
이상 좋은 처지가 허용될 수 있는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어떤 정부를
보더라도 국가의 가장 큰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경우, 모든 것은 관념상의 계획,
그리고 기껏해야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행복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것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들이 완전히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복에
만족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무력에 호소하여 손에 넣거나 되찾고 용기와 지혜로 2세기 동안 유지해 온 당신들의 주권은,
드디어 완전하고도 광범위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명예로운 계약이 당신들의 한계를 정하고
당신들의 권리를 보증하며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헌법은 훌륭합니다. 그 헌법은 숭고한 이성이 명한 것이며 우애와 존경심을 가진
열강들에 의해 보장되어 있습니다. 당신네 나라에는 걱정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전쟁이나
정복자를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스스로가 만든 훌륭한 법률 이외에는
주인이 없으며, 그것은 당신들이 선출한 공정한 위정자들에 위해 시행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무기력 때문에 연약해지거나, 헛된 향락으로 참된 행복과 견실한 덕에 대한 사랑을
잃을 만큼 부유하지도 않습니다. 또 당신들의 생산 기술로 손에 넣는 것 이상으로 외국에 원조를
요구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귀중한 자유는, 큰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무거운
세금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지만 당신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런 희생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여러 나라 국민의 모범으로서 매우 현명하고도 행복하게 구성된
공화국이여, 부디 영원히 존속할지어다.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이 완수해야 할 유일한 소원이자
유일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당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조상들이 당신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앞으로 그것을 선용하는 지혜로써 행복을 영속시키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들의 영원한 단결과 법률의 준수, 그리고 법률의 집행자에 대한 존경이 당신들의 안전과
생활을 좌우하게 됩니다. 만일 당신들 사이에 조금이라고 원망이나 의혹의 싹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조만간 당신들의 불행과 국가의 멸망을 초래할 불길한 씨앗으로 간주하고 얼른 없애
버리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모두 자기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당신들의 은밀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세계에서 당신들의 위정자만큼 공정하고 지혜롭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집단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있을까요? 당신들의 위정자들은 모두 중용의 덕과
소박한 풍습, 법률에 대한 존경과 성실한 화해의 모범을 당신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와 같은 현명한 위정자들에 대해서는 이성이 미덕에게 바쳐야 하는 유익한 신뢰를
아낌없이 바치십시오. 즉 당신들이 스스로 선출한 그들은 그 선출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당신들이 요직에 앉힌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명예도 반드시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법률의 효력과 그 옹호자의 권력이 정지되는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안전과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만큼 무지한 사람은 당신들 가운데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이 참된 이득과 의무와 아울러 도리를 위해 기꺼이 올바른 자신을 가지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정체의 유지에 무관심한 것은 혐오해야 할
죄악이므로, 당신들 가운데 가장 유식하고 열의가 있는 사람들의 현명한 의견이 필요한 경우에
이를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공평과 중용과 존경할 만한 엄격한 기품으로 당신들의 행동을 자제하고, 자기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수호하려는 자랑스럽고도 겸허한 국민의 모범을 여러분들은 온 세계에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악의를 품은 해석이나 독기가 서린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충고입니다. 그런 해석이나 말 속에 숨은 동기는 때때로 그
목적인 행위보다 더욱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도독이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절대로 짖지 않는 선량하고 충실한 개가 일단 짖기 시작하면
온 집안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나 신속하게 경계태세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람들의
안식을 방해하면서도 막상 정확한 경보가 필요한 경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개는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너그럽고 존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들이여, 품위 있고 존경할 만한 자유로운 국민의
위정자들이여, 내가 특별히 당신들에게 나의 경의와 의무를 표시하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만일
이 세상에 사람들의 이름을 널리 드날리기에 합당한 지위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재능과 덕이 있기 때문에 얻은 지위이며 당신들 자신에게 어울리는 지위, 즉 동포 시민들이
당신들을 올려놓은 지위 바로 그것입니다.
  시민들의 가치는 당신들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선출되었으므로, 다른
위정자들보다 더욱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인민, 특히 자기들을 다스릴 수
있는 명예를 당신에게 부여한 인민은 뛰어난 지혜와 이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여러
나라의 민중보다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가장 훌륭한 기록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예,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 예를 여기 응용하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에게 이 세상의
삶을 주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당신들을 존경하라고 가르쳐준 한 덕망 높은 시민(4)을 생각할
적마다, 나는 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가 자기 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영혼을 가장 숭고한 진리를 향해 고양시키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의 앞에는 생업을 위한 도구와 함께 타키투스(5)나
플루타르코스(6), 그리고 그로티우스(7)의 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한 귀여운 아들이 대대의 어느 아버지보다도 가장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애정 어린
교육을 받으면서도 너무나 빈약한 결실밖에 올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리석은
내 청춘의 미혹이 한동안 그처럼 현명한 가르침을 잊어 버리게 했으나 드디어 나는, 인간이
아무리 악에 빠지기 쉬운 경향을 갖고 있더라도 사랑이 담긴 교육이 영원히 헛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행복한 심정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너그럽고 존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들이여, 당신들이 통치하는 나라에 태어난 시민들, 아니
평범한 주민들(8)일지라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는 직인이나
하층민이라는 명칭으로 말미암아 그처럼 비천하고 그릇되이 인식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교양 있고 사리분별에 밝은 사람들입니다.
  거리낌없이 고백하지만, 나의 부친은 다른 동포 시민들에 비해 조금도 훌륭한 점이 없었습니다.
그는 여느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나 그는 있는 그대로의 생김새로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교제해줄 것을 요청 받고 같이 사귀었으며 오히려 그들보다 더 교양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 당신들로부터 과연 어떤 경의를 받을 수 있는지는 내가 말할 것이
못 되며, 또 고맙게도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교육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천부의 권리에
있어서도 당신들과 대등하며, 당신들보다 낮은 지위에 머물러 있음은 스스로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신들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도
그들에 대해 일종의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그들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취함으로써 법률의
집행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압적인 태도를 완화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또 그들이
당신들에게 해야 할 복종이나 존중에 대해 당신들이 얼마나 경의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잘
알고, 이에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와 지혜에 충만한 행위이며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잊어 버려야 하는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떨쳐 버리는 데 큼 도움이 되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공정하고 고귀한 인민이 자기의 의무를 흔쾌히 수행하고 자연스럽게 당신들을 존경하게
되며, 자기의 권리를 가장 열심히 강조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들의 권리를 가장 존중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그것은 더욱 정당한 행위하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그 사회의 영광과 행복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못 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보다 신성하고 숭고한 조국의 위정자(9), 아니 오히려 지배자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을 양육하고 있는 지상의 조국에 대해 어떤 애정을 표시하는 것은 인긴의 평화를
위해서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10)
  우리를 위해 보기 드문 예외를 내세워 법률에 따라 허용된 신성한 교의를 받아들이는 저
열성적인 사람들, 즉 존경할 만한 영혼의 목자들을 우리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민들의 대열에
끼게 하는 것은, 나로서는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의 생기에 넘치는 훌륭한 열변은
복음서의 격률을 차츰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넣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그 일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즈네브에서는 훌륭한 설교의 기법에 대해 연구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너무 자주 보았으므로, 기독교 정신이나 풍속의
신성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태도나 타임에 대한 관용이 우리 목자들을 어느 정도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것의 없습니다.
  신학자와 문학자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완전한 결합의 유일한 실례를 보여주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즈네브뿐일 것입니다. 내가 즈네브의 영원한 평화에 대해 희망을 걸고 있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들의 지혜와 절제 때문이며 국가의 번영에 대한 그들의
열의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저주받고 야만스러운 사람들의 가혹한 격률에 대해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가를 놀라움과 존경이 뒤섞인 기쁨을 느끼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그 실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 그들은 이른바 하느님의 권리, 다시
말해서 그들의 이익을 주장하기 위해 인간의 피를 별로 아끼지 않았는데, 그것은 자기들의 피가
언제나 존중된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1)
  여기서 나는 공화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자들의 행복을 조성하고 친절과 지혜로 나라의
평온과 양속을 유지하고 있는 저 귀중한 나머지 절반의 여자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상냥하고 정숙한 여성 시민 여러분, 우리네 남성들을 지배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입니다. 부부의
결합에 따라서만 발휘되는 당신들의 순결한 힘이 오로지 국가의 영광과 공공의 행복을 위해서만
쓰인다면 우리는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여성들이 명령을 내렸던 것처럼 즈네브에서도 당신들이 명령을 내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상냥한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명예와 이성의 목소리에 어떤 야만스러운 남자가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조용히 광채를 발하고 있는 당신들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데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당신들의 간소하고 겸손한 옷차림을 보고 나서 헛된 사치를 경멸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당신들의 완곡한 영향과 천진스럽고 상냥한 다스림으로써 국가에는 법률에 대한 사랑을,
시민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결합을 유지하게 하며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행복한 결혼으로
결합시키고, 특히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몸에 익히는 악습을 설득력 있는
부드러운 훈계와 품위 있는 온화한 대화로써 시정하는 것 역시 당신들이 할 일입니다.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배울 수 잇는 일들이 산더미 같이 많은데도 타락한 여자들 사이에서
익힌 어린애 같은 태도와 우스꽝스러운 모순과 더불어 뭔지 잘 알 수 없는 이른바 위대한 것에
대한 찬미만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그것은 굴종에 대한 보잘것없는 보상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엄숙한 자유와 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언제나 지금과 같이 양속의 순결한 수호자이자 평화의 부드러운 옹호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의무와 미덕을 위해 어디까지나 심성과 자연의 권리를
굽힘없이 주장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상과 같은 보증을 토대로 하면 시민들의 공통된 행복과 공화국의 영광에 대한 나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믿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을 모두
갖고 있어도 이 공화국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저 화려함으로 빛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호화로움을 찾는 유치하고도 불행한 취미는 행복과 자유의 가장 나쁜
적입니다.
  방자한 젊은이들은 다른 고장에 가서 안이한 쾌락과 오랜 후회거리나 찾는 것이 좋겠지요.
허영심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 다른 고장에 가서 웅장한 궁전이나 주위의 아름다운 환경,
호화로운 가구나 화려한 연극, 그 밖에 무기력과 사치의 온갖 세련된 모습들에 대해 감탄하는
것이 좋겠지요. 이렇게 되면 즈네브에는 인간밖에 자랑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나름대로의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을
찬양하는 사람들보다도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너그럽고 존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들이여, 부디 당신들의 공통된 번영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관심의 이 경건한 증거를 똑같은 선의로써 받아 주십시오. 만일 내라 불행하게도 나의
진정을 이렇듯 격하게 토로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솔한 감격이라도 하여 핀잔 받을 점이 있으면
진정한 애국자의 따뜻한 애정 탓으로, 그리고 당신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기쁨 이상을 바라지
않는 한 인간의 불타는 정열 탓으로 돌리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그럽고 존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들에게,
  당신들의 비천하고 겸허한 종이며 동포 시민인
  쟝 자크 루소
  샹베리에서 1754년 6월 12일

   역주
  (1) 루소는 이 헌사를 즈네브 공화국의 시민 전체로 구성된 총평의회에 바쳤으나, 즈네브의
실제 권리는 25명의 소평의회에서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에 루소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이 사실을
모르고 이 헌사에서 즈네브 공화국을 이상화하고 있다. 루소가 즈네브의 실정을 알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에밀"이 출판된 1762년 이후의 일이다.
  (2) 로마 교황을 가리킨다.
  (3) 기원전 6세기경의 로마의 왕가.
  (4) 루소의 아버지 이삭 루소.
  (5) 로마의 역사가(55?__117년).
  (6) 그리스의 역사가(46__120년).
  (7) 네덜란드의 법학자(1583__1645년).
  (8) 즈네브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네 계급 중에서 세번째에 해당되며, 참정권은 없고 노동의
권리를 갖고 있는데, 루소는 이 가운데서도 하층에 속해 있었다.
  (9) 하느님 왕국의 위정자, 곧 교역자.
  (10) 기독교와 애국심이 양립되기 어렵다는 이러한 사상은 뒤에 "사회계약론" 제 4 편 "시민의
종교에 대하여" 에서 한층 더 발전된다. 여기서 루소는 즈네브의 복자들은 예외로 하고 있다.
  (11) 루소는 여기서 볼테르나 백과전서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광신자의 범죄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머리말

  나는 인간의 모든 지식 가운데서 가장 유용하지만 동시에 가장 뒤떨어져 있는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1 그래서 나는 델포이(1) 신전에 새긴 글(2)만으로도, 인간성에
대한 비평가들의 모든 두툼한 서적보다도 중요하고 어려운 교훈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이 논문의 주제를 철학이 제출할 수 있는 가장 흥미 있는 문제의
하나로, 그리고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철학자들이 해결하는 데에는 가장 까다로운 문제의
하나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를 알지 못하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기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지금까지 계속돼온 시대와 사물에 따라 인류의 본원적인 구조 속에서
일어났음에 틀림없는 모든 변화 가운데 자연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는가?
또한 인간 자신의 본질에 관련되는 것과 환경이나 인간의 진보로 인해 인간의 원시상태에
덧붙여졌거나 그 자체를 변화시킨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시간과 더불어 폭풍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모습이 변했기 때문에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맹수와
비슷한 글라우코스(3)의 상처럼, 인간의 영혼은 사회 속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수많은 원인에 따라
많은 지식과 오류를 얻음으로써, 그리고 신체의 구조에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와 정념의
끊임없는 격동으로 말미암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변했다. 그리하여 이제 거기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일정한 불변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며 창조주의 손으로 새긴
저 거룩하고 엄숙한 단순성도 아니다. 거기에서는 다만 이성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 정념과,
망상에 빠져있는 오성의 기이한 대조만이 발견될 뿐이다.
  그리고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인류의 모든 진보가 끊임없이 인간을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흡수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연구한 탓에 인간을 알 수 없는 실정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을 구별하는 차이의 근원을, 인간의 구조에 끊임없이 일어난 그 변화(4)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모두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인간은 본래 서로
평등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종류의 동물도, 여러 가지 물리적인 원인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인정하는 것 같은 변종을 발생시키기 전에는 모두 평등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 최초의 변화가 어떤 수단에 따라 일어났건 간에 그리고 동시에 같은 방법으로
종자의 모든 개체를 변질시켰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개체는
우수해지거나 열악해지기도 하고, 조금도 그 본성대로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좋은 성질과 나쁜 성질을 획득하는 데 비해 어떤 개체는 무척 오랫동안 그 최초의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인간들 사이에 생겨난 평등의 최초의 기원은 이러한 것이었으니, 그것을 일반적으로
논증한다는 것은 그 참된 원인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을 이해하였다고 자부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어느 정도의 추리를 시작했으며 어느 정도의 억측도 감히
해보았으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희망에서라기보다 문제를 분명히 하여 그것을 올바른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길을 좀더 쉽사리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점에 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현재 지니고 있는 성질 속에서 애초부터 있었던
것과 나중에 인위에 따라 덧붙여진 것을 구별해 내는 것, 더욱이 이미 존재하지 않거나 과거에도
도대체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할 것 같지 않는 하나의 상태, 그리고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태를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는 그런 상태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결정하려는
사람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철학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현대의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리니우스(5) 같은 사람들이 다룰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인을 알려면 어떤 실험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 실험을 사회에서 행하는 수단은
무엇일까?"
  나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지만, 그 주제를 충분히 고찰했으므로
미리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즉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그
실험을 지도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지 않으며, 제아무리 권력이 막강한 군주라고 할지라도 그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자의 협력을 기대하는 것, 특히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 양측에다 인내 또는 그보다 지식과 선의의 계속적인 협조를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일 뿐이다.
  이처럼 어려운, 그리고 오늘날까지 거의 아무도 미처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이런 탐구야말로,
인간 사회의 진정한 기초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우리들의 노력을 가로막고 있는 많은 어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수단이다. 자연법의 참된 정의가 그 만큼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러한 무지 때문이다. 왜냐하면, 뷔를라마키(6)의 말처럼 법의
관념, 더구나 자연법의 관념은 분명히 인간의 본성에 관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이 본성 자체, 인간의 구조와 상태로부터 이 학문의 원리들을
연역해야 한다."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해 논한 저자들 사이에서 거의 의견일치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놀라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진실한 저자 사이에서도 이
점에 관해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 마치 서로 모순을
빚어내기 위해 노력한 듯이 생각되는 고대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로마의 법률가들은 인간과 다른
모든 동물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자연법에 묶어 놓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법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이 다른 제 삼자에게 명하는 법칙보다 오히려
자연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법칙을 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들 법률가들이
'법'이라는 말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특수한 의미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경우에 그들은
이 법이라는 말을, 주로 자연이 생물의 공통된 보전을 위해 모든 생물 사이에 확립하고 있는
일반적인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의 법학자들은 법이라는 이름 아래 도덕적인 존재, 즉 지적이고 자유로우며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된 존재에 부과되는 규칙밖에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그 결과 자연법의 범위를
이성이 주어진 유일한 동물, 즉 인간에 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법을 각각 자기류로 정의하여 매우 형이상학적인 원리 위에 세워 놓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도 이들 원리를 스스로 발견하기는커녕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이들 학자의 정의는 모두 언제나 서로 모순되어 있지만, 다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만은 일치하고 있다. 즉 위대한 추론가요 심원한 형이상학자가 아니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에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사회자체 속에서, 그리고 겨우 극소수의 인간들에 위해서만 발달해온 큰
지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뜻한다.(7)
  자연이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법'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거의 일치를 보지 못했으므로,
자연법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책에서 볼 수 있는 정의는 모두
조금도 같지 않다는 단점 말고도, 그것들은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지니지 못한 몇 가지 지식과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뒤가 아니면 생각해 낼 수 없는 입장에서 내리고 있다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 쓸모가 있기 위해서는 서로가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규칙의 탐구로부터
시작하고, 그 다음이 규칙을 모아 자연법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데 그것을 널리 실시해 보니
결과가 좋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증거도 없다. 이것은 분명히 정의를 만들어 내서 자기 편리한
대로 사물의 자연을 설명하는 매우 안이한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연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한, 자연이 받아들인 법 또는 그의 체질에
가장 적합한 법을 아무리 결정하려고 해도 모두 헛수고가 될 뿐이다.(8) 우리가 이 법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법의 강제를 받는 사람의 의지가 그 법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연적이기 위해서는 그 법이 자연의 소리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보는 학술 서적을 제쳐두고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거기에는 이성에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의 안녕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자연스러운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사교성의 원리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자연법의 모든 규칙은 우리의 오성이 이 두 가지 원리
사이에 조성하는 일치와 조화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9) 나중에 이성이 계속 발달하여
드디어 자연을 질식시켜 버렸을 때, 이성은 이들 규칙을 또 다른 기초 위에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자를 인간으로 만들기 전에 인간을 철학자로 만들 필요가 결코 없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지혜의 힘으로 뒤늦게나마 깨달음으로써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연민이라는 내적 충동에 역행하지 않는 한 다른 인간에게도, 그리고 어떤
감성적인 존재에게도 결코 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자기보존을 앞세워야 할 당연한 경우는
별문제이다.
  이 방법에 따라, 동물도 자연법에 관계되느냐 하는 옛부터의 논쟁도 역시 막을 내리게 된다.
왜냐하면, 지식도 자유도 갖지 못한 동물들이 법칙을 알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물도 그 주어진 감성에 따라 어느 정도 우리의 자연에 관계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도 자연법에 관여할 것이며 인간은 그들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상 내가 동포에게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가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특질은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므로, 적어도 동물은 인간에 의해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10)
  본래적인 인간과 그 참된 욕구, 그리고 그 의무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연구야말로 도덕적
불행 등의 기원이나 정치체의 진정한 토대, 그 구성원들 상호간의 권리, 그리고 중요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해명되어 있지 않은 무수한 문제들에 따르는 많은 어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유효한 방법이다.
  인간 사회를 냉정하게, 이해 관계에 사로잡히지 않은 눈으로 고찰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강자의 폭력과 약자의 억압상태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11) 그래서 인간의 정신은
전자의 냉혹성에 대해 반항하거나 후자의 맹목을 한탄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지혜보다는 종종 우연에 따라 조성되고 약하다거나 강하다거나, 또는 부유하다거나 가난하다고
부르는 저 외면적인 관계처럼 불안정한 것은 없으므로, 인간이 만든 제도는 언뜻 보기에
허물어지기 쉬운 사상누각처럼 생각된다. 그것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건물을 싸고 있는 먼지와
모래를 제거해야만 비로소 건물이 서 있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보게 되어, 사람들은 그 토대에
대한 존중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인간과 자연의 여러 가지 능력과 그 능력의 계속적인 발달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은 현재의 사물 구성 속에서 신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것과 인간의 기술이 만들어
낸 것을 결코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검토하고 있는 이 중요한 문제에서 생기는
정치적, 도덕적인 탐구는 모두가 유용한 것이며, 여러 가지 형태의 가설적인 역사는 모든 점에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이다.
  우리가 만일 자기 혼자 내버려진 채 살아왔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 자비로운 눈길에 따라 우리의 제도를 바로잡고 그 제도에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부여하여 그 제도에 그러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무질서를 예방하는 동시에,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리라고 생각되었던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신을
축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신이 너에게 무엇이 되라고 명하였는지, 그리고 네가 인간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총론

  내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서이다. 그런데 내가 검토하고 있는 문제는 내가 결국
인간들에게 말해야 함을 나 스스로에게 가르쳐 준다. 진리를 존중하기가 두려울 때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결코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자들의 재촉을 받으며 그들 앞에서
자신있게 인류를 위해 변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의 논제와 나 자신의 판단에 적합한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한 일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인
불평등이다. 이것은 자연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연령이나 건강이나 체력, 그리고 정신 또는
영혼의 자질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정해지며 적어도 그렇게 정당화되고 있으므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줌으로써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으로,
예컨대 다른 사람보다 풍요하다거나 존경을 받고 있다거나 권력을 갖고 있다거나 사람들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는 특권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자연적인 불평등이 어디서 오는지 문제삼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의 정의 자체 속에
어떤 본질적인 대답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불평등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관계가 있지 않나 하고 문제삼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 쪽이
그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보다 반드시 뛰어난 인간인가, 구리고 한 인간에게 육체나 정신의 힘과
지혜나 미덕이 언제나 권력이나 부에 비례하여 주어지는가를 표현만 달리하여 묻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주인들이 방황하는 가운데 노예들끼리 토론하기에는 적합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이성적인 자유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문제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논문에서는 정확히 말해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물이
진보하는 가운데 폭력에 이어 권리가 생기고 자연이 법에 굴복한 시기(1)를 지적하는 것,
그로부터 연속되는 어떤 기적으로 인해 강자가 약자에게 봉사하고 인민이 현실의 행복을 대가로
하여 관념 속에서 안식을 찾으려고 결심했는가를 설명하는 일이다.
  사회의 기초를 검토한 철학자들은 저마다 자연상태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에 대하여 정의와 부정의 관념을 상정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으나, 인간이 이런 관념을
가졌음에 틀림없다는 것과 그 관념이 그에게 유용했으리라는 것까지도 증명해 보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권에 관하여 말하기를 각자는 자기에게 속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그들은 '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유선
약자에 대한 권위(권력)를 강자에게 주면 여기서 바로 정부가 탄생된다고 주장했으나, 권력이나
정부라는 말의 의미가 사람들 사이에 알려질 때까지 지나갔던 시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끝으로 그들은 누구나 욕구, 탐욕, 압박, 욕망, 교만 등에 대해 끊임없이 논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자기들이 사회에서 얻은 관념을 자연상태 속에 옮겨 놓은 데 불과했다. 그들이 미개인에
대해 운운한 것은 결국 사회인에 대한 묘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근대 철학자들은
자연상태의 존재에 대해서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서를 읽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최초의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지혜와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지 스스로가 이와 같은
자연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독교 철학자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지만, 모세의 책(2)을 믿는다면 인간은 홍수(3)
이전에도 순수한 자연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어떤
비정상적인 사건에 따라 다시 자연상태로 떨어진 셈이 된다. 이것은 변호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며
증명이 불가능한 역설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이 모든 사실을 무시하고 나가려 한다.(4)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주제를 가지고 행할 수 있는
연구는, 역사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만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리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추리는
사물의 진정한 기원을 표시하기보다 사물의 본질을 명시하는 데 적합하며, 또 우리의 자연
과학자들이 세계의 생성에 대해 매일같이 행하고 있는 추리와 유사하다.
  종교가 우리에게 믿으라고 명령하는 바에 따르면, 하느님 자신이 만물을 창조하신 직후에
인간을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니, 인간이 불평등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류를 홀로 내버려 두셨다면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인간과 인간을 에워싼 존재 사이의 자연(본성)만을 근거로 하여 추리하는 것은
종교도 금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바요 내가 이 논문에서 검토하려는 것이다. 나의 주제는
인간일반에 관계가 있으므로, 나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도록 힘쓰려고
한다. 아니 차라리 내가 언급하고 싶은 사람들만 등장시키기 위해, 일단 시간과 장소를 떠나
자기가 지금 아테네의 학원에서 선생들의 가르침을 외고 있으며, 플라톤이나 크세노크라테스(5)와
같은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하고 인류를 청중으로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오, 인간이여, 그대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떤 견해를 갖고 있든지 간에 내 말을 잘 들어다오.
재가 서술한 것은 거짓말장이인 그대의 동포들이 쓴 책 속에서가 아니라,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연 속에서 내가 읽은 그대의 역사이다. 자연에서 비롯되는 것은 모두가 진실한 것이다.
거짓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무심코 인간의 견해를 섞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제부터 말하려고 하는 시대는 아득한 옛날이다. 그대는 원래의 모습에서 얼마나 많이
변한 셈인가? 나는 앞으로, 그대가 자연에서 받아들였으며 그대의 교육과 습관이 손상을 입힐 수
있었으되 파괴할 수는 없었던 바로 그 특질에 기초하여, 그대들 종의 생애를 표현해 보고자 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므로 그대에게도 그대의 종이
머물러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되는 시대(6)가 있을 것이다.
  자기의 불행한 자손에게 더욱 큰 불만을 예고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현재의 상태에
불만을 품고 있는 그대는, 아마 다시 한 번 옛날로 돌아갔으면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그대의 최초의 조상에게는 찬사를 던지지만 그대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비판이
되며, 불행하게도 그대의 뒤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제 1 부

  인간의 자연상태에 대해 잘 판단하려면, 인간을 그 기원에서 고찰하고 종의 최초의 발아
속에서 검토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인간의 계속적인 발전을 통하여 그
신체적인 구조를 더듬어 보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나는 인간이 오늘날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최초에 어떠했던지를 동물의 조직 속에서 탐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길게 자란 인간의 손톱은 아마도 최초에는 동물의
그것처럼 갈퀴같이 구부러져 있었을 것이라거나, 인간은 곰처럼 털로 뒤덮여 있었다거나, 네 말로
걸어다녔으므로1 그 시선이 몇 발자국 앞의 지면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이
가지는 성격과 한계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었을 것이라는 등등에 대해 나는 검토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막연한 상상으로 억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교해부학은
아직 그다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생물학자의 관찰은 아직 너무나 불확실하므로, 이런 토대 위에
견고한 추리의 기초를 세울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초자연적인 지식에 의지하지 않으며, 아울러
인간이 점차로 그 손발을 새로운 습성에 적응시키고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서부터 인간의 외면과
내면의 구조에 일어난 변화 또한 고려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은 어느 시대에도 오늘날
목격하는 것과 같은 구조, 즉 두 발로 걸어다니고 현재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손을 사용하며 지면
전체에 시선을 돌려 광대한 하늘을 쳐다보고 눈으로 그 넓이를 가늠해 보는 등의 구조를
가진다고 가정하자.(1)
  이와 같이 구성된 존재로부터 그가 받을 수 있었던 모든 초자연적인 재능과 오랜 세월에 걸친
진보를 통해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었던 모든 인위적인 능력을 제거해 버린다면, 요컨대 인간을
자연의 손에서 갓 나온 그대로의 상태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거기서 어떤 동물보다도 약하고
그다지 민첩하지는 않지만 결국 어느 동물보다도 유리한 구조를 가진 한 동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잣나무 아래서 배불리 먹고 샘물을 찾아 목을 축이며, 자기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준 이
나무 아래에다 잠자리를 마련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욕구는 충족될 수 있었다.
  대지는 기름진 자연 그대로 방치되고2 아직 도끼질을 받은 것이 없는 광대한 산림에 뒤덮여
모든 동물들에게 먹이창고와 은신처가 되어 있다. 인간은 이런 동물들 사이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관찰하고 모방하여 동물의 본능까지 획득한다. 모든 동물이 자기에게
고유한 본능만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자기 고유의 본능은 전혀 없는 듯이 생각되는 인간은 모든
본능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른 동물들이 각각 나눠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먹이의 대부분을
마찬가지로 자기 먹이로 하여3, 그 결과 어느 동물보다도 쉽사리 자기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찾아내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불순한 기후와 매서운 계절의 변화에 익숙해지고 피로를 이겨내도록 훈련을
받으며, 벌거벗은 몸으로 무기도 없이 다른 야수로부터 자기 생명이나 먹이를 지키거나 그들
앞에서 재빨리 도망쳐야 했으므로, 인간은 매우 건장한 체질을 갖게 되었다. 어린이들은
부친으로부터 건장한 체격을 물려받아 자람에 따라 부친이 한 것과 같은 훈련을 쌓음으로써
인류로 하여금 최대한의 건장한 체력을 얻게 했다.
  이 경우에 자연은 스파르타(2)의 법률이 그 나라 시민의 자녀들을 다루는 방식과 똑같이
인간들을 다루게 된다. 즉 자연은 훌륭한 체격을 가진 자들은 더욱 건장하게 만들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탈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연은 지금의 우리 사회와는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가 아이들을 양친의 무거운 짐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차별하게 죽여 버리고 만다.
  미개인의 신체는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도구이므로, 그는 그것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
신체로써는 연습 부족 때문에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용도에 사용한다. 바로 이 미개인이 필요에
따라 얻지 않을 수 없는 힘과 민첩성이 우리에게는 결여되어 있는데, 그것은 실로 우리의
생활기술(산업)이 그것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도끼를 갖고 있었다면 그의 손목이
그처럼 튼튼한 가지를 꺾을 수 있었을까? 만일 투석기를 갖고 있었다면 그처럼 경쾌하게 나무에
기어 오를 수 있었을까? 만일 말을 갖고 있었더라면 그처럼 재빨리 뛰어갈 수 있었을까?
  이런 도구나 기계를 모두 신변에 거느릴 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문명인에게 주어 보라. 그러면
그는 미개인과 겨루어 쉽사리 이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일 당신들이 힘의 균형을 잃은
승부를 보고 싶다면, 쌍방을 알몸으로 만들어 무기 없이 대결시켜 보라. 그러면 당신들은 자기의
모든 힘을 자유롭게 구사하여 언제 어떤 일에도 대비할 수 있는 것, 이를테면 언제나 자기의
전부를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가를 곧 알 수 있을 것이다.4
  홉즈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담대하여 공격하고 싸우는 것밖에 몰랐다고 한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3)는 이와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컴벌랜드(4)나 푸펜도르프(5)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즉 자연상태의 인간만큼 비겁한 자는 없다. 그는 언제나 덜덜 떨면서 바삭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조금만 무엇이 움직여도 곧 도망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가 알 수 없는 사물에 대해서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당연히 기대해도 좋은
육체적인 행복이나 불행을 스스로 구별하지 못하거나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에 저항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없을 경우에는 언제나, 눈앞에 나타나는 새로운 광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다만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일이 매우 단조롭게
진행되지 때문에 토지의 표면도 거기 모이는 사람들의 정념이나 기분에 따라 일어나는 저
갑작스럽고 끊임없는 변화를 받는 일이 전혀 없으므로, 위에서와 같은 상황은 매우 드문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개인은 동물 사이에 흩어져 살아가며 일찍부터 동물들과 힘을 겨루는 처지에
있으므로, 그는 곧 자기를 동물과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동물이 힘에 있어서 우월한 이상으로
그가 지혜에 있어서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 그는 동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버릇을 갖게 된다.
  건장하고 민첩하고 용감한 미개인--그들은 모두가 그렇지만--의 한 사람을 돌과 적당한
몽둥이로 무장시켜 곰이나 늑대 한 마리와 겨루게 해보라. 그렇게 하면 적어도 위험은 서로에게
엇비슷할 것이다. 그와 같은 경험을 여러 번 되풀이한 뒤에는, 원래 서로 공격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야수들은 인간이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광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자진해서 습격하는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인간의 슬기 이상으로 힘이 강한 동물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그런 동물에 대해서는 보다 약한
다른 동물의 입장에 놓이게 되지만, 모든 약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럭저럭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경우에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발이 빠르고 나무 위에 거의 안전한 피난처를
갖고 있으므로, 언제 만나도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도 신변에 위협을 받거나 극도로 배고픔을 느끼는 경우 이외에는 본래
인간에 대해 싸움을 걸어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또 어떤 종류는 자연의 섭리상 다른
종류의 먹이가 되도록 정해져 있음을 말해 주는 것 같은 저 격렬한 적대감을 인간에게
보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흑인이나 미개인들이 숲속에서 만나는 야수를 거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카리브인(6)은 특히 이 점에서는 완전히 안심하여 아무 불편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프랑스와 코레알(7)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거의 벌거벗은 몸에다 활과 화살만
걸치고 태연스럽게 숲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야수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일찍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보다도 더욱 무서운 적으로서 인간이 자기를 방어하는 데 적절한 수단을 갖지 못하는
대상들은 어릴 때의 연약함과 유소 및 노쇠와 온갖 종류의 병인데, 이것은 모두 우리가
연약하다는 슬픈 증거다. 그 가운데 처음 두 가지는 모든 동물에게 공통되지만 마지막 것은 주로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유소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어머니는 언제나 가지
아기를 데리고 다니므로 동물의 암컷보다 아기를 기르기가 훨씬 쉽다. 동물의 암컷은 한편으로는
자기 먹이를 찾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새끼들에게 젖을 먹여 기르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 인간의 어머니가 위험에 놓이게 되면 그녀와 함께 어린이도 목숨을
잃을 위험이 크지만, 이 위험에 새끼들이 오랫동안 자기 스스로 먹이를 찾을 능력일 없는 다른
동물에게도 공통된 현상이다.
  그리고 유년 시절은, 우리가 동물의 그것보다 길더라도 수명이 그만큼 길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거의 평등하다.5 다만 유년 시절의 기간이나 출산되는 자식의 수에 대해서는
다른 법칙6이 있지만, 그것은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다.
  몸을 움직이거나 땀을 빼는 일이 거의 없는 노인은, 식욕도 음식물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도
모두 줄어든다. 그들은 미개한 생활 덕분에 중풍이나 류머티즘에 걸리지는 않지만, 노쇠는 다른
모든 질병과는 달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으므로 나중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고 자기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가는 것이다.
  병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들과 같이 의술을 비난하는 공허하고 그릇된
허풍 따위는 떨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나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이러한 의술이 상당히 발달하여
있는 지역보다 그것이 매우 등한시되고 있는 지역에서 더 짧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확실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의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법보다 더 많은 병에 걸려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활 양식의 심한 불평등,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여가가 주어지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과중한 노동이 강요되는 심히 불평등한 생활 양식, 쉽사리 자극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식욕과 정욕, 부자에게 변비성의 영양을 제공하여 소화불량으로 괴롭히는 미식, 가난한
사람들의 조식--그나마도 그들은 때때로 굶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배가 터지도록
포식한다.--그리고 밤샘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절제, 온갖 정념의 지나친 폭발, 정신적인 피로와
소모, 누구나 자주 경험하는, 영원토록 영혼을 좀먹는 무수한 비애와 고통, 이것들은 우리가
당하는 불행의 대부분이 우리 자신의 탓이며 따라서 우리가, 자연이 명령한 간소하고 일정하고
고독한 생활 양식을 지켜나갔던들 아마도 이런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되는 상서롭지
못한 증거다.
  만일 자연이 우리를 운명적으로 건강하도록 정했다면 이렇게 단언해도 좋으리라. 즉 사색은
자연에 위배되는 상태이며 명상하는 인간은 타락한 동물이라고.(8) 미개인의 훌륭한 체격이나,
적어도 독한 술로 몸을 망치지 않은 사람들의 훌륭한 체격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들이 부상과
노쇠 이외에 거의 병을 모르고 산다는 것을 알면, 인간의 질병사는 정치, 사회의 역사를
더듬어봄으로써 쉽사리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 플라톤의 견해다.
  그는 트로이의 포위전 때에 포달레이리오스와 마카온(9)이 처방했거나 인정한 몇 가지 약에
대해서나 그 약들이 일으킨 여러 가지 병에 대해서 당시의 사람들이 아직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켈수스(10)는 오늘날 그 필요성이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는 식이요법은
힙포크라테스(11)에 위해 발명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병의 원천이 거의 없었으므로, 자연상태의 인간에게는 약이 거의 필요 없었고
의사는 더욱 필요가 없었다. 인류는 이 점에서도 다른 어떤 동물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사냥꾼들이 사냥을 할 때 과연 허약한 동물들을 많이 보게 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는
무척 쉽다. 심하게 다쳤거나 뼈가 부러졌을 경우에도 시간 이외에는 이렇다 할 의사도 없고 일상
생활 이외에는 아무런 양생법도 없이 치유된 흔적을 갖고 있는 짐승들을 사냥꾼들은 자주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 동물은 절개수술로 고통을 당하지도 않고 약품에 중독 되지도 않으며
금식으로 쇠약해지는 일도 없이 완전히 쾌유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적절히 사용하는 의약이 우리에게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자연치유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미개인이 자기의 병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낳게 되는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미개인의 처지가 오히려 우리의 처지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상 보는 현대인과 지금 말하고 있는 미개인을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자연은 자기가 돌보아야만 하는 동물을 특별히 보살핀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얼마나 이
권리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말이나 고양이, 소나 당나귀까지도 우리네 집에
있을 때보다는 숲속에 있을 때 대체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건장하며 힘도 세고 용기도 있다.
가축이 되어 버린 뒤에는 그런 이점을 대부분 잃어버린 이 짐승들을 우리가 아무리 소중히
돌보며 잘 키우려고 애써도, 그것은 오히려 그들을 퇴화시키는 결과가 되기 쉽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화하고 노예화한 인간은 연약해지고 겁이 많아지고 비굴해진다.
게다가 여성화한 생활양식은 인간의 힘과 용기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든다. 미개의 상태와 사육된
상태를 비교해 보면, 인간들간의 차이가 동물들간의 차이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간과 동물은 자연에 의해 평등한 대우를 받으므로, 인간 스스로가 사육하는 동물보다 그들
자신에게 더 많은 안락을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을 더욱 타락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벌거벗은 채 집도 없이 산다거나 그 밖에 지금의 인간들이 그처럼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갖가지 무용지물들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 최초의 인류가 불행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들 자신을 보존하는 데 큰 장해가 된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그들은 털이 많은 피부를 지니고 있지 못한 대신, 따뜻한 지방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추운 지방에서는 정복한 동물의 털가죽을 자기 소유로 만들 줄 안다. 달리는 데는 두
다리가 사용되고 자기 방어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들의 아기들은 걸음마가 더디고 몸동작도 늦게서야 익히게 된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며, 이것은 어미가 쫓기게 되어 새끼를 버리거나
새끼들에게 보조를 맞춰야 하는 다른 동물보다 유리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을지
모른다.
  예컨대 니카라과 지방에 사는 어떤 동물의 경우가 그렇다. 여우와 비슷하게 생긴 이 동물은
인간의 손과 같은 발을 갖고 있다. 코레알의 말에 따르면, 이 동물의 아랫배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어 어쩌다 어미가 쫓기게 될 경우에는 그 속에 새끼를 넣고 뛸 수 있다고 한다. 라에(12)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볼 수 있는 트라카찬이라는 동물의 암컷 역시 그런 주머니를 달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언급할 생각이지만, 요컨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저 진귀하고 우연한
상황의 일치를 가정하지 않는 한, 옷이나 가옥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은 사실상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낸 셈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때까지 옷이나 집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왔으며, 어른이 되니까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온 생활 양식에 맞지 않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언제나 위험에 직면해 있는 미개인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잠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거의 생각하는 일이 없으며 생각하지 않을 때엔 언제나
졸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동물들처럼 언제나 가볍게 잠든 상태로 있다. 자기 자신의 보호가
미개인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관심거리이므로, 그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자기 몸을 수호하기 위한 공격과 방어에 밀접히 연관된 기능들을
단련시켜야 한다.
  반대로 부드러움과 정욕에 의해서만 비로소 완성되는 기관은 조잡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이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어떤 섬세한 감정도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된다. 이 점에서 그의
감각은 분열되어 촉각, 미각은 극도로 둔해지는 반면, 시각, 청각, 후각은 대단히 예민해질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동물의 상태이며, 여행자들이 보고하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미개 민족이 처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희망봉의 호텐토트인들은 네덜란드인이 망원경으로나 볼 수 있는 먼 바다의 배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운 일이 못 되며, 아메리카의 미개인들이 품종이 우수한
개와 마찬가지로 냄새를 맡아 스페인 사람을 추적하거나, 이 모든 야만 민족이 나체 생활에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먹거나 유럽인의 술을 물처럼 마시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이 못 된다.
  지금까지 나는 물리적인 인간만을 고찰해 왔으나 이제는 인간을 형이상학적 및 도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모든 동물을 정밀한 기계로밖에는 보지 않는다.(13)
자연은 그 기계가 스스로 작동할 수 있도록,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을 고장내거나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는 장애물을 모두 제거하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그것에 감정을
부여하고 있다. 나는 인간이란 기계도 역시 그러하다고 본다. 다만, 동물의 활동에서는 자연이
모든 것을 행하는 데 반해 인간은 스스로가 자유로이 자연의 활동에 협력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즉 한편으로는 본능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행위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동물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리 유리하다 하더라도 자기에게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인간은 종종 그 규칙을 벗어나 자신의 편견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하여
비둘기는 맛 좋은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 옆에서도 굶어 죽고 고양이는 산더미처럼 쌓인
과일이나 곡식 위에서도 굶어 죽기 일쑤다. 그 동물들이 먹으려는 엄두만 낸다면 그 경멸하고
있는 음식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텐데도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타락한 인간은 절제를 못한 탓으로 열병이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이 감각을
변질시키고 자연이 침묵하고 있을 때에도 의지는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은 감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념 또한 가지게 마련이며, 어느 정도까지는 그
관염들을 서로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은 동물과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몇몇 철학자들은 이 점을 강조하여, 어떤 경우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보다 인간들간의 차이가
더 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는 것은 오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자로서의 특질이다.
  자연은 모든 동물에게 명령하고 동물은 이에 따른다. 인간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그것에 복종할 것인지 저항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기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이 자유의 의식을 통해 그의 영혼 속에 있는 영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리학이 감각의 기제와 관념의 형성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서는 역학의 법칙만으론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영적인 행위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
좀더 논의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양자를 이렇게 구별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또 하나의 매우 특수한 성질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완성해 가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그 능력이란, 환경의 도움을 얻어 다른 모든 능력을 점차로 발전시켜 가는
각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도 해당되는 능력이다.
  이와는 달리 동물은 생후 몇 달이 지나면 한 평생 변치 않는 모습을 갖추게 되며 그 종 전체를
보아도 천 년이 지나도 최초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만이 늙어서 노망이
들기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이와 같이 하여 원시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즉 동물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므로 잃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본능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인간은
노쇠와 그 밖의 사고로 말미암아 그의 '완성능력(perfectibility)' 덕분에 얻게 된 모든 것을 잃어,
동물보다 더욱 저열한 상태로 다시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양자를 분명히 구별하는 거의 무제한적인 이 능력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며, 평온하고
무사한 나날이 계속되는 저 원초적인 상태로부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인간의 지식과 오류, 악덕과 미덕을 몇 세기의 흐름 속에서 부화시켜 드디어 인간을 그
자신과 자연에 대한 폭군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이 능력이다. 이 능력을 인정해야 하는 것7은
우리에게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리노코 강(14) 연안의 인디언들이 자기네 자녀들의 관자놀이에 대는 판자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그 주민에게 제시해준 사람을 은인으로서 찬양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그 판자는 적어도 어린이들의 어리석음과 본래의 행복
일부를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의해 단지 본능만이 주어진 미개인,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에게 결핍되어 있을지
모르는 본능을 우선 보충하고 이어서 그 자신을 자연 이상으로 훨씬 높일 수 있는 능력으로써
보강하는 미개인은 처음에는 순수한 동물적인 기능만을 수행할 것이다.8 즉 처음에는 보고
느끼는 기능만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태는 다른 모든 동물들과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사태가 조성되어 새로운 발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의지를 발동하는 것과 발동하지 않는
것, 욕망을 갖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그의 정신이 수행하는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작용이
될 것이다.
  모럴리스트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인간의 오성은 정념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의
이성은 실로 이 양자의 활동에 따라 완성된다. 우리가 사물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욕망도 공포도 느끼지 않는 자가 무엇 때문에 애써 이성을 발동시키려고 할
것인가?
  정념도 그 기원은 우리의 욕망에서 비롯되며 우리의 지식을 통해 진보하여 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관념에 의거하거나 다만 자연의 충동에 의거하지 않으면, 사물을
탐내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개인은 여러 가지 지식이 결핍되어
있으므로, 이 마지막 종류의 정념(충동)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그의 욕망은 육체적인 욕구를
초월하지 않는다.9 그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행복은 음식물과 이성과 휴식뿐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불행은 고통과 굶주림뿐이다. 나는 고통이라고 말할 뿐 죽음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동물은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테니까. 죽음과 그 공포에 대한 지식이란 인간이
동물적인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 오성, 즉 세계의 모든 국민에게 있어서 오성의 진보는 자연으로부터 주어지거나
환경에 따라 그들에게 강요된 필요에 비례하며, 따라서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재촉하는
정념에 비례한다는 견해를, 나는 어렵지 않게 입증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기술이 발달되어 널리 퍼져간 이집트의 예로써 증명할 수 있으며,
그리스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의 진보 과정을 통해서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의 경우, 그런 기술이 비옥한 에우르타스의 연안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데 비해 아티카의 사막이나 바위 사이에서는 무럭무럭 자라나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서 북방의 여러 민족이 남방의 여러 민족보다
부지런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마치 자연이 땅에 주기를 거절한 비옥함을
대신 정신에 주어 사물을 평등하게 만들기라도 할 양이면, 북방 민족은 남방 민족에 비해 더욱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치 못한 역사상의 증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미개인들로 하여금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유혹과 수단 모두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과연 누가 모르겠는가?
그의 상상력은 아무것도 묘사하지 못하며 그의 마음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의
소소한 필수품은 쉽사리 손이 닿는 곳에 있으며 보다 높은 지식은 그가 얻으려고 원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선견지명이라든지 호기심도 거의 가질 수 없다. 자연의 광경은 너무나
눈에 익숙하여 더 이상 그의 관심을 끌지 않게 된다. 보고 들은 것은 언제나 한결같으며, 같은
주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기이한 것에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보아온 것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철학을 그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것으로도 교란시킬 수 없는 그의 마음은 오직 눈앞의 자기 생존에 대한 생각에만
몰두하여 곧 닥쳐올 장래의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가 세우는 계획은 그의 시야와
마찬가지로 좁아 기껏해야 그날 하루에 대한 것일 뿐이다. 오늘날의 카리브인도 이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는 밤에 필요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침에 자기 이불을 팔아버리지만,
저녁이 되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그 이불을 다시 사들인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록, 우리 눈에는 순수한 감각에서 가장 단순한 지식까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 보인다. 그리고 인간이 상상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필요한 자극도 없이
자기만의 힘으로 이처럼 큰 간격을 뛰어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 태양 이외의 불을 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인간이 불이라는 원소의
가장 흔한 용법을 배우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갖가지 우연이 필요했던가! 불 피우는 기술을
얻기까지 몇 번이나 불을 꺼뜨렸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비결을 알리지 못한 채
그 비결과 더불어 사라지고 말았던가!
  농업의 경우는 어떤가. 농업은 많은 노동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필요로 하며, 다른 많은
기술과 관련된다. 그것은 적어도 한 사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실행이 불가능한 기술이며,
그것 없이도 대지가 얼마든지 공급 할 수 있는 식량이 아니라 우리의 입맛에 가장 적합한 식량을
능동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가령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자연의 생산물로는 이미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가정은 그러한 생활 양식이 인구에게 대단히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정이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경우도 가정해 보자. 대장간도 공장도 없어서 경작 도구는 하늘에서 떨어져
미개인들의 손에 쥐여지는가 하면, 이들이 저마다 쉴새 없이 계속되는 노동에 대해 느끼는
증오감을 극복하고 그들 스스로가 필요한 것은 일찌감치 예견할 줄 알며, 또 경작과 파종, 식수
등의 방법을 터득하고 보리 타작법과 포도주 제조 기술을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물론 이러한
일들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배웠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예컨대 신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고 하자.
  어쨌거나 위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수확기에 맞추어 가장 먼저 온 자--그것이 인간이건
짐승이건 간에--가 모두 수확해 가 버릴 밭을 애써 경작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간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노동의 대가가 자기가 필요로 하면 할수록 더 획득하기 어려울 때, 누가 그런
노동에 일생을 바치려고 마음먹겠는가?
  요컨대 토지가 그들 사이에 분배되어 있지 않은 이상, 다시 말해서 자연 상태가 조금도
소멸되어 있지 않는 한, 어떻게 그와 같은 상황에서 땅을 경작할 마음이 생기겠는가?(15)
  여기서 우리는 철학자들이 가르쳐주는 것에 못지 않게 슬기로운 생각을 하는 한 사람의
미개인을 가정해 보기로 하자. 한 사람의 철학자로 간주되는 이 미개인은 혼자서, 가장 숭고한
진리를 발견하고 질서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그 창조자의 의지에서 비롯된 정의와 진리의 격률을
아주 추상적인 추리를 통해 생각해 낸다고 하자. 지성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우직함과 어리석음 못지 않게 이렇게 지혜와 지식을 갖춘 미개인을 상정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생각해낸 개인과 함께 소멸해 버리는 이와 같은
형이상학에서 인류가 어떻게 효용을 얻을 수 있겠는가? 숲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뒤섞여 있는
인류가 무슨 진보를 할 수 있겠는가? 일정한 거처도 없고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한평생 두 번 다시 만날까말까 할 처지에서 서로 얼굴을 익히지도 못하고 대화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발전시키고 서로 일깨워 줄 수 있겠는가?
  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념을 얻고 있으며, 문법이 얼마나 정신 작용을 잘
훈련시켜 원활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최초로 언어를 발명하기 위해 쏟았을 것이
분명한, 상상을 초월한 노고와 무한한 시간을 생각해 보라. 또한 이와 같은 고찰을 먼저의 고찰에
결부시켜 보라. 그렇게 하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이러한 언어의 작용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수천 세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의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나의 의견을 완전히 확인해 주는 콩디약(16) 신부의 연구를 인용하거나 되풀이하는
것으로 그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철학자가 기호설정의 기원에 대해 스스로가 제기했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그는 내가 의문시하고 있는 점, 즉 언어의 발명자들 사이에 이미
일종의 사회가 성립되어 있었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나는 그의 고찰을
참고하면서도 그와 똑같이 어려운 문제를 나의 주제에 적합하도록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여기에 나 자신의 고찰을 첨가하고자 한다.
맨 처음에 부딪치는 어려움은, 어떻게 하여 언어가 필요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서로 아무런 의사 소통도 없고 그럴 필요도 전혀 없었다면, 다시 말해서 언어의
발생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 발명의 필요성이나 가능성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사이의 가정적인
의사 소통에서 언어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서는 조금도 반론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하며, 이미 일부의 사람들이 저지른 오류를 다시 밟게 되는 셈이다. 그것은,
자연상태에 대해 추리할 경우에 사회 속에서 얻은 관념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가족은 언제나
같은 집안에 모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그 성원이 많은 공통된 이해관계에 따라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가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친밀하고 영속적인 결합을 서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원시상태에서는 집도 재산도 없고, 우연한 기회에 하룻밤을 함께 지내기 위해
거처를 정하고는 했다. 그리하여 남성과 여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욕망에 따라 우연히
결합했으므로, 언어는 그들이 주고받아야 하는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는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었다.10 어머니는 맨 처음에 자기 자신의
필요를 위해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 이와 같이 젖을 먹이는 습관이 붙게 되자 점차 자식들이
귀엽게 생각되어 이번에는 아이들을 위해 젖을 먹이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나 자기 자신의
먹이를 찾아낼 만한 힘을 갖게 되자 곧 그들은 어머니를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의 모습을 잊어 버리지만 않으면 되었기 때문에, 마침내는 그들은 서로 모습을
기억하는 일조차 없게 되었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자식은 그 모든 욕구를 어머니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 할말보다는 자식이 어머니에게 할말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언어를 발명하기
위해 더욱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식 쪽이며 사용한 언어는 거의가 자기 자신이 손수 지어낸
것이 되게 마련이었다.
  그 결과, 언어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늘어나며 어떤 독특한 어법에 대해 훈련시킬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 정처없는 방황의 생활이 이것을 더욱 조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린애가 어머니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말을 어머니가 어린애에게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말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말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는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첫째의 어려움이 일단
극복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순수한 자연상태와 언어의 필요 사이에 놓여 있는 먼 거리를
뛰어넘어 일단 말(parole)이 필요했다고 가정하고11 이제 어떻게 해서 그것이 확립되었는지를
탐구해 보자.
  이것은 전보다 더욱 까다로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말이
필요했다면, 그들은 말하는 기술을 발견하기 위해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인간의 음성이 우리의 관념을 관습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는가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관념에 대한 이 관습의 대변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우리가 여전히 탐구해야 할 과제다.
  관념은 감각적인 대상을 전혀 갖지 않으므로 거동이나 목소리로는 나타낼 수 없다. 그러므로
사상을 전달하여 정신과 정신 사이의 교류를 확립하는 기술의 발생에 대해서는 겨우 가능한
한에서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숭고한 기술은 비록 그 기원으로부터는 멀리 떠나 있지만 철학자들은 그것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도 엄청난 거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설사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가 이 기술을 위하여 중지되었다 하더라도, 또한 그릇된 편견이 학계(아카데미)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그 앞에서 침묵하며 아울러 학계가 몇 세기에 걸쳐서 이 까다롭기 짝이 없는
대상에 끊임없이 전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그 기술이 완성될 것이라고 단언할 만큼
대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최초의 말,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정력적인 말, 즉 모여든 사람들을 설득하기 전에
인간에게 필요했던 유일한 말은 단순한 자연의 외침이었다. 이 외침은 절박한 경우에는 도움을
바라고 심한 고통을 당했을 때에는 위안을 요청하기 위해 일종의 본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가장 온화한 감정이 지배하는 일반적인 생활의 분위기 속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의 관념이 확대되고 증가하기 시작하여 사람들 사이에 더욱 긴밀한 교섭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더욱 많은 기호와 더욱 광범위한 언어를 요구했다.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외치고 거기에
몸짓까지 덧붙였다. 몸짓은 그 본성으로 보아 더욱 표현적이며, 그 의미는 이전의 형태에
의존하는 정도가 적었다. 즉 그들은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사물은 몸짓으로 표현하고, 귀에
들리는 것은 그것과 흡사한 소리로 표현했다.
  그러나 몸짓은, 눈앞에 있고 묘사하기 쉬운 대상과 눈에 보이는 행위 이외에는 의사 표시가
거의 불가능하여 어둠 속이나 다른 물체에 가려 있을 경우에는 쓸모가 없으므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주의를 환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드디어
거동 대신에 음성을 음절로 나눠서 발음하는 것을 생각해 내게 되었다. 이 음성의 구분은 어떤
특정한 관념에 대해 동일한 대응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기호로써 그런 관념들을
모두 표시하는 데는 더욱 적합한 것이다.
  이와 같은 대치는 공통된 동의에 따라야 했으며, 또한 아직 조금도 연습하지 않은 둔한 기관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만 행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전원 일치의 동의에는 적절한 동기가
있어야 하며 언어의 용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절실한 요청을 자각해야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용한 최초의 단어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는 이미 형성되어 언어로 쓰이고 있는
단어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갖고 있으며 말을 그 구성부분(품사)으로 나눌 줄 몰랐으므로 그들은
우선 각각의 낱말에 문장 전체의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주어와 술어, 동사와 명사를 구별하기 시작했을 때--이것만도 상당한 재능을 발휘하여
노력한 결과이지만--처음에는 명사 속에 고유명사밖에 없었으며 부정법의 현재가 동사의 유일한
시작이었다. 형용사에 대하여 말하면, 그 관념은 큰 어려움을 겪은 끝에 겨우 발달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형용사도 추상적인 말이며, 추상은 알기 어렵고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당초 각각의 사물은 그 속이나 종에는 관계없이 특정한 이름을 가졌다. 그 이름을 맨 처음에
정한 자들은 그런 것을 구별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개체는 마치 자연의
화면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립된 것으로서 그들의 정신에 나타났다.
  가령, 한 그루의 잣나무가 A라고 불렸다면 다른 잣나무는 B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두개의
사물에서 비롯되는 최초의 관념은 양자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의
공통점을 관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식이 한정되어 있을수록 어휘는
점점 확대되어 갔다. 용어 전체에 따르는 이와 같은 장애는 쉽사리 제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존재를 공통된 종에 따른 명칭으로 배열하기 위해서는 그런 존재의 특성과 상위점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관찰과 정의, 다시 말하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닐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생물학과 형이상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관념은 많은 말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인식될 수 없으며, 오성은 문장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파악될 수 없다. 동물이 그와 같은 관념을 형성할 수 없고 거기 의존하는
자기 완성의 능력을 얻을 수 없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한 그루의 호두나무에서 다른 그루의 호두나무로 옮겨갈 때, 이런 과일나무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갖고 있어서 그 원형을 이 두 개의 개체와 비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다. 다만 원숭이가 한 호두를 보았기 때문에 그 호두에서 받은 감각을
기억에 되살리고, 그 원숭이의 눈이 어느 정도 변용되어 그의 미각이 장차 받아들이려고 하는
변화를 그의 미각에 알릴 뿐이다.
  모든 일반적인 관념은 순전히 지적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거기에 상상이 섞이면, 그 관념은 곧
개별적인 것이 된다. 나무 일반의 이미지를 머리에 그려 보라. 당신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작거나 크거나 잎사귀가 듬성하거나 무성하거나, 또는
색깔이 옅거나 짙은 나무를 제각기 그려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무에 공통된
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이미 그것은 나무라고 할 수 없다.
  순수한 추상적인 존재는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떠오르거나 언어에 따라서만 생각된다.
삼각형의 정의만이 삼각형의 참된 관념을 준다. 당신들이 마음속에 하나의 삼각형을
그리자마자, 그것은 하나의 특정한 삼각형이지 이미 다른 삼각형은 아니게 된다. 그리고 당신들은
마음속에서 그 삼각형의 선을 분명히 하거나 면에 색깔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관념을 갖기 위해서는 문장으로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상상이 멈추자마자
정신은 말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벌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최초의 발명자들이 그들의 기존 관념에 따라서만 명칭을 부여할 수 있었다면 결과적으로
최초의 명사는 고유명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한 방법에 따라 우리의 새로운 문법학자들이 그들의 관념을
확대하여 그들의 용어를 일반화하기 시작했을 때, 발명자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이 방법은 매우
좁은 범위로 국한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에 속이나 종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개체의 명칭을 함부로 많이 만든 것처럼, 이번에는 여러 가지 존재를 그 상위점에
따라 고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이나 종의 수를 터무니없이 적게 만들었다.
  구분을 세밀히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경험과 지식이,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기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도 우리의 관찰에서 벗어나 있던 새로운 종이 매일같이 발견된다면 얼마나 많은 종들이
사물을 최초의 외관으로써만 판단하던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었던가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기본적인 분류와 가장 일반적인 개념도 역시 그들의 주의를 받지
못했었음에 틀림없다. 예컨대 그들은 어떻게 물질, 정신, 신체, 양식, 형태, 운동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이해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철학자들은 이런 말을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데 매우 고심해 왔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결합한 관념은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것이므로, 그들 미개인은 자연 속에서 그 원형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자 한다. 그리고 내 논문의 심사원들에게 여기서 이 글을 읽는
것을 중지해 주도록 요청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명사만의 발명을 근거로 하여, 다시 말해서 말
가운데 가장 발견하기 쉬운 부분을 근거로 하여, 언어가 사람들의 모든 사상을 나타내거나
일정한 불변의 형태를 취하거나 대중들 사이에서 사용되어 사회에 영향을 주기에 이르기까지
아직 언어에 남아 있는 도정을 고찰해 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수나12 추상어나 동사의 부정사법이나 단음철어나 통사법을 발견하고 문장과 추리를
연결시킴으로써 말에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지식이 필요했었던가를 생각해
보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은 점점 더 증대해 가는 곤란에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언어가 순전히 인간적인 필요에 따라 탄생되고 확립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거의
입증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17)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의 논의는 그것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즉 언어가 제정되기 위해서는 이미 결합한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과,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이미 발명된 언어가 필요한데 이 가운데서 어느 것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이다.(18)
  이와 같은 기원의 문제는, 자연이 사람들을 서로의 욕구에 따라 접근시키고 그들에게 언어의
사용을 쉽게 하기 위한 배려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보아, 자연이 얼마나 그들의 사교성을
마련하는 일에 인색하였으며, 또한 그들이 이와 같은 욕구를 위해 시도한 모든 일에 대하여
자연이 기여한 바가 얼마나 적었던가를 알게 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원시상태에서 원숭이나 늑대가 그 동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인간 쪽이 다른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그 필요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어떤 동기에 따라 다른 인간이 이 필요를 충족시켜 주며 최후의 경우에
어떻게 해서 그들이 서로 조건을 결정할 수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태에 놓인 인간처럼 비참한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되풀이하여 일컬어지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내가 입증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만일 인간이 몇 세기가 지난
뒤에 비로소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라면, 자연을 탓할
일이지 자연이 그렇게 만든 인간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이 '비참한'이라는
말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지니고 있지 못하거나 처참한 궁핍과 심신의
괴로움만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평화롭고 신체가 건강한 자유로운
존재의 비참함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설명해 주고자 한다.
  나는 사회 생활과 자연 생활의 어느 쪽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이 되기 쉬운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거의 자기 삶을 될 수 있는 대로
포기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을 합쳐 보아도, 간신히 이 무질서를 막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미개인이 일찍이 삶을 한탄하여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러므로 좀더 겸허한 마음으로 어느 쪽이 과연
비참한가를 판단해 보기 바란다.
  이와 반대로 지식의 빛에 눈이 어두워지고 정념에 시달려 자기 처지와는 다른 처지에 대해
추리하는 미개인이 있었다면, 이보다 더 비참한 것이 없을 것이다. 미개인이 잠재적으로 갖고
있던 능력은 그것을 사용할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발달하게 된 것이 분명한데, 이것은 매우
총명한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또 그것은 그러한 능력이 적당한 시기에 먼저 나타나 그들에게
없어도 무방한 것이 되지 않으면 무거운 짐이 되거나, 또는 적당한 시기를 맞추지 못하여 필요할
때에 쓸모가 없게 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연상태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본능 속에 갖고 있으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을 훈련된 이성 속에 갖고 있었다.
  우선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서로간에 도덕적인 관계도 분명한 의무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선인일 수도 악인일 수도 없었으며 악덕도 미덕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런 말을 물리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개인의 자기보존에 해가 되는 성질의 것을
악덕이라고 부르고 자기보존에 유용한 것을 미덕이라고 부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데, 그
경우에는 다만 자연의 충동에 가장 거역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유덕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단어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고서, 공평한 저울을 손에 들고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검토하기까지는 그러한 상태에 대하여 우리가 범하기 쉬운 성급한 판단을 중지하고
우리의 선입견을 믿지 않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명인 사이에도 악덕보다 미덕이 더 많은지, 또는 그들의 미덕은 그 악덕이
해로운 이상으로 유익한 것인지, 또는 그들이 가진 지식의 진보는 그들이 서로 행해야 할 선을
배우는 데 따라서 피차에 행하게 마련인 악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는지, 요컨대
보편적인 의존관계에 복종하여 그들에게 무엇 하나 줄 의무가 없는 사람들에게서 모든 것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보다는, 누구에 대해서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 더욱 행복한 처지가 아닐지를 미리 검토해 보아야 한다.
  특히, 홉즈와 같이, 인간은 선에 대해 아무 관념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본래 악하다거나, 또는
미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악에 빠지기 쉽다거나, 동료에 대한 봉사를 의무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그것을 거부한다거나, 또는 인간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리석게도 자기가 우주 전체의 유일한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등등의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홉즈는 자연법에 관한 근대의 모든 정의에 담겨 있는 결함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정의에서 도출해낸 결과는 그 자신도 역시 그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기가 정한 원리에 대해 추리할 때, 자연상태란 우리의 자기보존을 위한
배려가 타인의 보존을 위해서는 가장 해를 미치지 않는 상태이므로, 이와 같은 상태는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가장 적합하며 인류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그는
미개인의 자기보존을 위한 배려의 하나로서, 그 자체 사회의 산물이며 법률의 제정을 필요하게
만든 수많은 정념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부당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가
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는 악인이란 건장한 어린이라고 말한다.(19) 그러나 미개인이 건장한
어린이인지의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 설사 이것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그는 거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건장한 미개인이 만일 연약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터무니없는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에게 젖을 늦게 준다고 해서 어머니를 때리고
동생이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목을 조르며 다른 사람의 다리가 자기에게
부딪치거나 방해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다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건장하면서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상태에서는 두 가지 모순된 가정이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에는 인간은 연약한 법이다. 그리고 건장하게 되기 전에 그는 자유로워진다.
  홉즈는, 우리 법률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개인이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
원인이, 바로 홉지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개인이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따라서 미개인들은 선인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악인이
아니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로 하여금 나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지식의 발달이나 법의 구속이 아니라, 정념의 평온과 악덕을 모르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악한 일을 모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알고 있다는 것보다
유익하다."(20)
  게다가 홉즈가 지나쳐 버린 원리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자존심(13)이
크게 완화되도록, 또는 이 자존심이 생기기 전에는 자기 보존의 욕구가 완화되도록 인류에게
주어진 원리인데,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동포의 괴로움을 보고 싶지 않다는 선천적인 감정에서
자기 행복에 대한 욕구를 완화하게 된다.
  나는 인간의 미덕을 아무리 부정하는 자(맨데빌)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유일한
자연적인 미덕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어떤 큼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동정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처럼 연약하고 여러 가지 불행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에게는 걸맞은 성향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반성에 앞서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보편적이고 그만큼 인간에게 유용한 덕이며, 또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동물들도
뚜렷한 징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어미가 새끼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 새끼를 지키려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물론, 말이 등에서 떨어진 사람을 발로 밟지 않는다는 것 등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동물은 동류의 시체 곁을 지나갈 때에는 으레 불안을 느낀다. 그 중에는 일종의 매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가축의 슬픈 듯한 신음 소리는 그가 뼈아프게 느낀
두려운 광경에서 받은 인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꿀벌 이야기"의 저자(21)가 인간을 동정심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그 예로 한 비통한 죄수의 모습을 쓰기 위해 그가 냉정하고 치밀한 문체에서
이탈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기뻐한다. 그 죄수는 감옥 밖에서 한 마리의 야수가 한 어린애를
그 어머니의 젖가슴으로부터 빼앗아, 날카로운 이빨로 그 아이의 연약한 손발을 물어 뜯고,
꿈틀거리는 내장을 발톱으로 찢어 발기는 것을 바라본다. 전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
목격자도 어찌 마음에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광경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에게나
곧 숨이 넘어가려는 어린애에게 아무런 구제의 손길도 뻗칠 수 없는 사실에 어찌 고뇌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모든 반성에 앞서는 순수한 충동이며, 또 아무리 타락한 풍속이라 하더라도 파괴하기
어려운 자연적 연민의 힘이다. 그 증거로 극장에서는 날마다, 만이 폭군의 위치에 있었더라면
적의 고통을 더욱 무섭게 할 포악한 자가 불우한 사람의 재난을 보고 동정하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인간은 자기가 일으키지 않은 불행에 대해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던 저
잔인한 술라(22)와 비슷하며, 또한 자기의 명령으로 날마다 죽어가는 많은 시민들의 울음소리를
태연히 귓전으로 흘리면서 (무대의) 안드로마코스나 프리아모스에게 동정하여 우는 것을 남들이
보지 않을까 하여 어떤 비극의 상연에도 가볼 용기를 내지 않던 저 펠로스의
알렉산드로스(23)와도 비슷하다.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인류가 자연에게서 물려받은 눈물겨운 선물의 증거이다.
  --유베나리스, "풍자" 제 15 권 제 5 장 131--133행

  맨데빌은 만일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을 밑받침하는 동정심을 주지 않았던들, 인간은 그 모든
도덕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한갓 괴물에 지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그는 이 유일한 특징으로부터 그가 인간에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모든 사회적인 미덕이
비롯되는 것은 알지 못했다. 사실상 관대함이나 자비 또는 인간애란 약자나 죄인 또는 인류
일반에게 적용된 동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친절이나 우정까지도 그것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특정의 대상에 쏠린 변함없는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바고 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동정이란 괴로워하는 처지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뚜렷하지 않지만 생생하게 드러나 있고, 문명인들 사이에서는 발달되어 있지만 약한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실은 결과적으로 나의 주장이 올바름을
확인해 줄 따름이다.
  사실, 동정은 고통을 목격하고 있는 동물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동물과 내면적으로 깊이
동화할수록 점점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일체화는 추리의 상태에서보다 자연상태에서
내면적으로 훨씬 깊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자존심을 낳는 것은 이성이며, 그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반성이다. 이 반성에 따라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를 훼방하고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다.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은 철학이다. 철학 덕분에 인간은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너는 죽을
테면 죽어라. 나는 안전하다"고 몰래 중얼거린다. 철학자의 단잠을 깨워 그로 하여금 침상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벌써 사회 전체에 걸친 위험이 될 뿐이다. 사람들이 철학자의 창문 밑에서
그들의 동포를 살해하더라도 철학자에게서 책망을 받는 일은 없다. 살해되는 자와 일체가 되려고
마음속에서 반항하는 자연(동정심)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그는 자기 귀에 두 손을 대고 조금만
이치를 따지면 된다.
  미개인에게는 이와 같은 훌륭한 재능이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지혜와 이성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인류 최초의 감정에 경솔히 몸을 내맡긴다. 농민들이
소란을 부리거나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모여드는 것은 하류층뿐이며, 조심성이 있는
사람은 슬쩍 외면을 한다. 싸움을 말려서 신사 분들이 서로 살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하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거리의 아낙네들이다.
  그러므로 동정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것은 각 개인이
자기애의 활동을 조절하고 종 전체의 상호 보호에 협력하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곰곰이 생각하지 않고도 그를 도우려고 나서는 것은 바로 동정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상태에서는 법률과 풍속과 미덕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동정이며,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는
누구나 거역하려고 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건장한 모든 미개인이 어딘가 밖에서 자기의 생활 물자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연약한 어린이나 병약한 노인들이 애써 손에 넣은 생활 물자를 빼앗으려는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것이 동정이다.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는 합리적인 정의의 저 숭고한
격률 대신에, 그다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그보다 더 유용한 저 자연의 선에 대한 또
하나의 격률, "타인의 불행을 되도록 적게 하고 그대의 행복을 줄여라"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품게 하는 것이 동정이다.
  요컨대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격률과는 별 관계가 없더라도 인간이 악을 행하였을 때 느끼는
혐오감의 원인은 정밀한 이론 속에서보다 오히려 자연의 감정 속에서 구해야 한다. 이성에 따라
덕을 얻는 것은 소크라테스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속하는 일일지 모르지만, 만일 인류의
보존이 인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추리에만 의존해 있었더라면 인류는 벌써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정념과 대단히 유효한 자제력을 가진 당시의 사람들은, 사악하기보다는
야성적이며 타인을 해치고 싶은 마음보다는 타인에게서 입을지 모르는 피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데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으므로 위험함 분쟁에 휩쓸릴 우려는 없었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교섭도 없었다. 따라서 허영심도 존경심도 높은 평가도 경멸도 모르고 지냈다. 그리고
그들은 남의 것과 자기 것이라는 관념이 전혀 없었고, 정의에 대한 참된 관념도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폭행을 당할지라도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손해라고만 생각했지,
처벌해야 하는 부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을 던지면 덤벼드는 개처럼 본능적으로
무의식중에 저지르는 경우는 별도로 치고, 보복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싸움은 먹을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라도 있지 않는 한, 피를 흘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더욱 위험한 일이 한 가지 머리에
떠오른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러 가지 정념 속에는 서로 이성을 그리워하는 불타는 정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장애를 물리치며, 본래는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면 인류를 파멸로 인도하기에 알맞다고 생각될 만큼 무서운
정념이다. 만일 이 방자하고 포악한 격정에 사로잡혀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억제할 줄도 몰라
날마다 피를 흘리면서까지 색정을 위해 싸운다면 인간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정념이 격하면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정념이 날마다 우리들 사이에서 일으키고 있는 무질서와 범죄가 이 점에 대한 법률이 불충분함을
이미 보여주고 있지만, 그러한 무질서가 법률 자체와 함께 생긴 것이 아닌지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 만일 법률이 그런 무질서를 억제할지라도 그 법률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도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도 법률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 해악을
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선 연애 감정 속에 깃들여 있는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구별하도록 하자. 육체적인
것이란 이성끼리 서로 결합시키는 바로 일반적인 욕망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것이란 그 욕구를
결정하여 그것을 주로 유일한 대상에 고정시키거나 또는 적어도 그 선택된 대상을 위해 더욱
고도의 정력을 그 욕구에 쏟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인 것이란 사회적 관례에서 생기는 인위적인 감정으로, 부인들이
자기의 지배력을 확립하고 본래 복종해야 할 성을 우위에 두기 위해 이 감정을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교묘히 찬양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 감정은 미개인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어떤 가치 또는 미의 관념과 미개인들은 전혀 행할
수 없는 '비교'에 의거해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거의 무가치한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신이 질서 있고 균형 잡힌 추상적인 관념을 가질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심정이 이와 같은
관념을 적용함으로써 무의식중에 발생할 수 있는 감탄이나 연애 감정을 품는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이 그에게 심어준 성격에 따를 뿐이며, 자기가 얻지 못한
취미에는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여성이면 누구나 족한 것이다.
  연애의 생리적인 욕구만을 느낄 뿐 감정을 격화시키거나 어려움을 무릅쓰는 저 사랑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행복한 사람들은, 심한 애욕을 그다지 자주 또는 강하게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서로 싸우는 일도 드물고 또 설사 싸우더라도 그다지 잔인한 국면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심한 해악을 미치는 상상도 미개인의 마음에는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는 조용히 자연적인 충동을 기다리며, 열광하기보다는 차라리 쾌감을 느끼면서
상대에게 비자발적으로 몸을 내맡긴다.
  욕구가 충족되면 그 욕망은 자연히 해소된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정념과 마찬가지로 연애도
그토록 인간에게 많은 재앙을 가져오게 만드는 저 격렬한 열광을 사회 속에서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개인은 그 야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살육을 거듭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견해가 경험에 위배되는 만큼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또한 현존하는 모든 민족 가운데 현재까지 자연상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민족인
카리브인(24)들은 언제나 이 연애 감정이 더욱 활발히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기후 속에서 살아 가는데도 매우 평온하며 연애 감정 때문에 질투를 느끼는 일도 매우
드물다는 예만 보더라도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어떤 동물들은, 암컷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컷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바람에 언제나
보금자리가 피투성이가 되는가 하면, 봄에는 숲속에서 수컷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기도 한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자연이
양성의 상대적인 힘 속에 인간 사이의 그것과는 다른 관계를 분명히 설정해 놓은 종은
제외시키고 논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탉의 싸움으로부터 귀납된 결론은 인류에게는 맞지 않는다.
  암컷과 수컷의 비율이 가장 잘 지켜지고 있는 종에 있어서 수컷의 수에 비해 암컷의 수가 아주
적거나 암컷이 일정한 기간 이외에는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투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제 2 의 원인도 결국은 제 1 의 원인에 귀착된다.
왜냐하면, 가령 어떤 암컷이든지 1년 동안에 겨우 두 달 동안만 수컷의 접근을 허용한다면 결국
암컷의 수는 수컷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경우의 어느 쪽도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은 대체로 남성의 수보다
여성의 수가 많으며, 미개인들 사이에서도 여성이 다른 종의 암컷처럼 정열의 시기와 거부의
시기를 따로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몇몇 동물 사이에서는 종 전체가
동시에 흥분 상태에 들어가므로 공통의 열광과 소란과 무직서와 투쟁의 한때가 찾아온다. 이것은
연애가 결코 주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류 사이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동물이 암컷을 손에 넣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과 같은 일이 자연상태 속의 인간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리고 설사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분쟁을 함으로써 다른 동물이
파멸되어 버리는 일은 없으므로 적어도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혐오스러운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분쟁에서 오는 손해는 사회 속에서보다 자연상태에서 훨씬 적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아직 풍기가 어느 정도 존중되고 있기 때문에 연애하는 남자의 결투나
살인, 그 밖의 더욱 잔인한 사건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들, 영원한 정절의 의무가 다만
간통하는 자를 만들어 내는 데 유용할 뿐이며 정조와 명예의 법률 자체가 필연적으로 음탕을
조장하고 낙태를 증가시키고 있는 나라들에서 그러하다.(25)
  결론을 내려 보자. 미개인은 숲속을 헤매며 기술도 없고 언어도 집도 없다. 전쟁도 하지 않고
동맹도 맺지 않을 뿐더러 동포의 도움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그들을 조금도 해치려고 하지
않는다. 개개인을 판별조차하지 않는 미개인들은 자족적이며 극히 사소한 정념에 따를 뿐, 자기가
처한 경우에 알맞은 것 이외에는 어떠한 감정이나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참된 욕망만을 느끼고, 눈으로 보아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 이외에는 모두
무시해 버렸다. 그의 지성은 허영심과 마찬가지로 발달하지 못하였다. 우연히 어떤 발견을 사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식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미개인이 그 발견을 남에게
전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니 기술은 발명자와 함께 사라져 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교육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진보도 없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대가 이어져 갈
뿐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세대는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므로 하고많은 세기가 초기의
원시적인 상태 속에서 지나가 버렸다. 종은 이미 늙어 버렸는데, 인간은 언제까지나 어린아이
그대로였다.
  내가 이와 같은 원시상태의 가정에 대해 이처럼 길게 언급하는 것은, 오랜 오류와 뿌리깊은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근원까지 파고 들어가, 불펑등이 설사 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근대의
저술가들이 주장하는 바가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가를 참된 자연상태의
화면 속에서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차이 가운데서 몇몇은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관습 속에서 채택하는 여러 가지 생활 양식의 산물이라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강한 체질이냐 약한 체질이냐, 이로 말미암아 힘이 강하냐 약하냐 하는 것은 최초의
체질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오히려 그 육성 방법이 엄격한가 아니면 유약한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력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은 교양이 있는 정신과 교양이 없는 정신 사이에 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전자
사이에도 교양에 비례하여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거인과 노인이 같은 길을 걸어갈 때 두 사람
다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디뎌 놓을 적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의 여러 계급을 지배하고 있는 교육과 생활양식의 놀라운 다양성을.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을 하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물이나 미개인의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미개인의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단순성이나 획일성과 비교해 보면, 인간과 자연상태에서는 사회화
상태보다 훨씬 적으며, 아울러 자연의 불평등이 인류에게 있어서는 제도의 불평등에 따라 한층
증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인간에게 혜택을 베풀어 줄 때,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어떤 사람들에게
치우치게 베푼다고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어떠한 상호관계도 허용하지 않는 상태라면,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일지라도 남을 희생함으로써 대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연애가 전혀 없는 곳에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지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책략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언제나 강자는 으레 약자를 억압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 억압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자가 폭력으로 지배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만 그 주먹에 굴복하여 한탄하면서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미개인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는 복종과 지배가 무엇인지 이해시키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남이 따온 과일이나 잡아온 먹이 또는 은신처인 동굴을 빼앗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남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주종관계의 사슬이 있을 수 있겠는가?(26)
  한 나무에서 쫓겨났다면 그때는 다른 나무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어떤 장소에서 괴로움을
당하다 못하여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데 그것을 누가 방해하겠는가? 또 나보다 힘이 강하고
게다가 상당히 타락하고 게으르며 사납기까지 한 사나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생활
재료를 제공하라고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잠시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자는
동안에도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나를 자기에게 꼼짝없이 매어두려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도망치거나 그를 잡아 죽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자기가 피하려고 하는
고통이나 그가 나에게 주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자진하여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의 경계가 잠시나마 해이해지거나 뜻하지 않은 소리에 얼굴을 돌리기라도
하면, 나는 재빨리 숲속으로 30보쯤 뛰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나를 얽어맨 사슬은 끊어지고 그는
두 번 다시 나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세세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주종관계란 사람들의 상호의존과 그들을
결합시키는 서로의 욕구가 있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것은, 미리 그를 다른 사람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처지에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처지는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거기서는 누구나 구속에서 떠나 자유의 몸이며 강자의 법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불평등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으며 그 영향도 거의 무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했으므로, 이제부터는 그 불평등의 기원과 발전을 인간 정신의 연속적인 진보 속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완성 능력이나 사회적인 미덕, 그밖에 자연인이 잠재적으로 받은
여러 가지 능력이 그 자체만으로 결코 발전할 수 없으며, 그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적인
원인--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그것이 없었다면 인간은 영원히 원시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의 우연한 협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므로, 다음에는
인간이 종을 손상시킴으로써 이성을 완성하고 인간을 사교적으로 만듦으로써 사악하게 하며
마침내는 인간과 세계를 까마득한 출발점으로부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지점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우연을 고찰하여 결합시켜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기술하고자 하는 사건들은 형태를 달리하여 발생할 수 있는 것이므로,
추측 말고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었음을 밝혀 둔다.(27) 그러나 이와 같은 추측은, 그것이
사물의 본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개연성 있는 것이며 진리의 발견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때, 논거로서 존립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추측을 통해 내가 연역하려고 하는
결론은 단지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앞에서 확립한 여러 가지
원리에 따르는 한 같은 결론을 제공하지 않는, 또 내가 그것으로부터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무엇인가 다른 체계를 만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써 다음 문제들을 논하지 않은 데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될 것이다. 즉 사안의 진실성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풀릴 것인가 하는 점과, 아주 사소한 원인도
끊임없이 작용하면 놀라운 힘을 미치게 되며 어떤 가설은 사실과 같은 정도의 확실성을 부여받을
수 없는 한편 그것을 파괴할 수도 없다는 점, 그리고 두 가지 사실이 현실적으로 주어지고
그것이 알 수 없거나 그러리라 간주되고 있는 일련의 중간적인 사실에 따라 연결되어야 하고
그것을 연결짓는 사실을 제시해야 할 때, 역사가 있을 경우는 역사의 범주 속에 있으며 역사에서
풀 수 없을 때는 철학의 범주에서 그것과 같은 목적에 이를 수 있는 유사한 사실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 끝으로 여러 가지 사안의 경우에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소수의 각기
다른 분류로 사실을 축소시키는 유사성의 영향에 대한 점이다.
  이런 논점들이 우리 심사원 여러분에게 참고 자료로 제공될 수 있다면, 그래서 일반 독자들이
그것을 고찰하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정리된다면 나로서는 그것으로 만족이다.

   역주
  (1) 루소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것을 분명히 인정하지는 않지만 원시인은 동물과의
근사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2) 스파르타에서는 불구아가 태어나면 곧 사회에서 매장되어, 일종의 우생학적인 선택이
이루어졌다.
  (3) 몽테스키외를 말한다.
  (4) 영국의 국교회 감독. 홉즈의 논적으로, 자연상태는 평화롭다고 주장했다(1603__1718년).
  (5) 독일의 법학자, 역사가(1632__1694년).
  (6)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 부족.
  (7) 스페인의 여행가(1648__1708년).
  (8) 디드로의 입장과는 정반대이다. "이성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자는 인간의 자격을 포기한
것이며, 타락한 동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백과전서" 가운데 '자연권' 항목).
  그러나 이 문장은 앞뒤로 생각해 보면 반성, 명상을 모두 나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이나 인간 이성의 발달에 따라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여러 가지 원인도 아울러 발생하게
되었다는 진보의 모순에 대한 루소의 판단을 표시한 문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9) 두 사람 모두 그리스의 의신 아시클레피오스의 아들이며 당대의 명의로, 트로이 원정에
참가했다.
  (10) 로마의 의학저술가(BC 30__AD 45년).
  (11) 고대 그리스의 명의로 의학의 아버지라 불린다(BC 460?__375?년).
  (12) 네덜란드의 생물학자(1593__1649년).
  (13)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데카르트에서 비롯된 것으로, 18세기에 들어와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14) 대서양 쪽으로 흘러드는, 베네수엘라의 큰 강.
  (15) 루소는 여기서 토지의 개인적인 소유가 없었더라면 농업이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자연상태란 고립된 개인의 상태이다.
  (16)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1715__1780년)로, 백과전서파.
  (17) 요컨대 루소는 언어의 기원을 문제삼을 때 따르는 난점은, 언어를 신이 부여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자 한다.
  (18) '고독한 미개인'을 가설로 한 루소에게 언어의 기원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19) 흡즈가 자연인을 비유하여 사용한 유명한 말. 루소에 따르면 약한 육체는 정신력도
약화시키고 인간은 성잠에 따라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얻을 수 있으며 육체의 힘이 정신의
요구에 따를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20) 스티노스, "역사" 제 2 권 제 2 장 참조.
  (21) 맨데빌. 네덜란드 태생의 영국 의사, 사상가(1670__1733년).
  (22) 로마의 장군, 독재적인 정치가(BC 138__78년).
  (23) 기원전 369__358년 사이에 집권했던 그리스의 참주. 몽테뉴의 "수상록" 제 2 권 제 27 장
참조.
  (24) 몽테뉴, "수상록" 제 1 권 제 31 장 "식인종에 대하여" 참조.
  (25) 루소는 여기서 18세기 귀족 사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있다.
  (26) 사회적 불평등은 사유재산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루소 사상의 중요한 점이 여기
나타나 있다.
  (27) 이 대목이 바로 이 논문의 약점이다. 그는 고독한 미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옮겨가게 된
원인을 단지 우연 또는 우연적인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제 2 부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 땅이다" 하고 선언할 생각을 가졌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은 시민 사회의 진정한
창립자였다. 그 말뚝을 뽑아 버리거나 도랑을 메우면서, "그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이
땅에서 나는 온갖 곡식과 과일들은 모두 만인의 것이며 대지는 어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여러분은 신세를 망치게 됩니다." 하고 동포들을 향해 외친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참상과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제해
주었을 것인가?(1)
  그러나 그 무렵에 이미 사태는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 사유의 관념은 순차적으로만 발생할 수 있었던 그 이전의 많은
관념에 의존해 있으며, 인간의 정신 속에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자연상태의 이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져 다양한 생활
기술을 획득하고 많은 지식을 축적하여 그것을 시대에서 시대로 전달하고 증가시켜 와야만 했다.
그러므로 다시 새롭게 고찰하여 가장 자연적인 순서에 따라 서서히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과
지식을 오직 하나의 논점으로 집중시켜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이 가진 최초의 감정은 자기의 생존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최초의 배려는 자기
보존에 대한 것이다. 땅에서 나는 생산물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게 되었다. 굶주림이나 그 밖의 욕구가 그에게 그때그때 다른 생활
방법을 경험하게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종을 영원히 번식시키도록 하는 방법이다.
마음에서 우러난 감정이 전혀 없는 이 맹목적인 경향은 다만 하나의 순수한 동물적인 행위밖에
낳지 못했다. 욕망이 충족되면 남성과 여성은 이미 서로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식들까지도 어머니 없이 살 수 있게 되면, 곧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것이 원시의 인간 상태였다. 최초에는 순수한 감각에 국한되며, 자연이 준 선물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아무것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동물의 생활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러자 이윽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나타나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나무가 높아서
그 과일에 손이 닿지 않는가 하면, 동물들끼리 같은 과일을 따먹으려고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목숨을 빼앗으려는 사나운 동물이 노려보기도 했으므로, 그는 신체의 훈련에 힘써야만 했다.
동작을 민첩하게 하고 빨리 달려야 했으며 싸울 때는 강해야만 했다. 이윽고 나뭇가지나 돌과
같은 자연의 무기가 그의 손에 들어 왔다. 그는 자연의 장해를 극복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다른
동물과 싸우기도 했으며, 자기의 생활 수단을 놓고 다른 사람과 싸우는가 하면 강자에게
양보해야만 했던 것을 다른 데서 보충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고충도 늘어났다. 토지나 기후 또는 계절이 차이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생활 양식에 차이를 가져오게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리는 불모의 세월이나
장기간에 걸친 엄동이나 찌는 듯한 여름이 그들에게 새로운 생활 방법을 강요했다. 바다나
강가에서 그들은 실과 바늘을 발명하여 어부가 되고 어식 민족이 되었다. 숲속에서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사냥꾼이 되고 전사가 되었다. 추운 지방에서는 자기가 잡아온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우레나 화산 또는 어떤 행운에 따라 그들은 불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추운
겨울에 대비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 원소를 보존하고 이것을 다시 생산하여
마침내는 지금까지 날것으로 먹던 고기를 조리하는 방법까지 배우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사물을 스스로에게 또 인간 상호간에 되풀이하여 적용한 결과, 인간의
정신 속에는 자연히 어떤 관계에 대한 지각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 대소, 강약,
지속, 비겁, 대담 등과 같은 말이나 무의식중에 필요에 따라 비교되는 개념에 따라 표현하는
관계는 마침내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반성,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무의식적인 신중함을 낳게
했는데 그것이 그의 안전에 가장 필요한 경각심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와 같은 발전의 결과인 새로운 지식은, 다른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인간에게
자각하게 함으로써 그 우월성을 더욱 증가시켰다. 인간은 동물들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방법을
연습하고 여러 가지 계략으로 그들을 속였다. 그리고 몇몇 동물은 싸우는 힘에 있어서나 달리는
속도에 있어서는 인간을 능가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자기에게 유용한 동물에
대해서는 그 주인이 되고 자기에게 해를 주는 동물에 대해서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이리하여 인간은 스스로에게 눈길을 보냄으로써 그의 마음속에는 비로소 자존심이 생겨나게
되었고, 존재의 서열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인류라는 자기의 종이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일찍이 개인으로서도 우수함을 요구하려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당시 그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는 현재 우리 동포들의 관계와는 달라서 다른 동물들만큼
교섭이 빈번하지는 않았으나, 그 동포들이 그의 관찰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는 동포들 사이나 이성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나타난 일치점에 따라 자신이 아직
느끼지 못했던 일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도 같은 처지에
있었더라면 의당 그렇게 했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고 방식이나 감정이
자기와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중요한 진리가 그의 머리 속에 확립되자, 추론법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그보다 더욱
재빠른 예감에 따라 그들은 규칙을 지키게 되었다. 이 규칙은 그가 자기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그들과 함께 지키기에 합당한 것이었다.
  안락의 추구가 인간 행위의 유일한 원동력임을 경험에 따라 배우게 된 인간은, 공통된
이해관계에서 동포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와 그보다는 드물지만 경쟁을 위해 그들을
경계해야 하는 경우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의 경우에, 그는 가축의 무리들처럼 동포들과
결합하거나 기껏해야 일종의 자유로운 협동에 따라 결합하였다. 그 협동은 아무도 구속하지 않고,
그 협동을 이루게 한 일시적인 요구가 존재하는 동안만 지속되었다. 둘째의 경우, 각자는 만일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때로는 폭력에 호소하기도 하고  또는 자기가 약하다고 느끼면
재주나 교지를 써서 이득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이와 같이 해서 사람들은 어느새 피차 약속을 지키는 것이 서로 이득이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현재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앞을 내다본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먼 장래의 일에 마음을 쓰기는커녕 내일의 일도 생각지 않았다.
  가령, 사슴을 잡으려고 할 경우에 각자가 자기 위치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만일 토끼
한 마리가 마침 어떤 사람의 손에 닿는 곳을 지나간다면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토끼를 쫓아
가서 붙잡아 버린다. 그 때문에 자기 동료가 사슴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교섭을 하는 데도, 인간과 거의 비슷하게 떼를 지어 사는 새나 원숭이들보다 세련된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음절이 분명치 않은 외침과 많은 시늉,
그리고 몇몇 모방음이 오랫동안 일반적인 언어를 구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지방에서나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이 어떻게 정해졌는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약간의 분절된 관습적인 음이 첨가됨으로써 그 지방 특유의 언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들은
조잡하고 불완전했다. 그 언어는 오늘날에도 많은 미개 국민이 쓰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시간의 급박한 흐름으로 내가 할 말은 많아지고 초기에 있어서의 진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으므로 나는 여러 세기를 화살처럼 날아다닌다. 왜냐하면, 사건의 연속이 느릴수록 그 묘사는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초기의 진보로 말미암아 인간은 더욱 신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정신이 계몽됨에
따라 기능이 점점 향상되었다. 머지않아 되는 대로 아무 나무 아래에서 잠들거나 동굴 속에
틀어박히거나 하지 않게 된 인간들은 견고하고 잘 드는 돌도끼와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나무를 자르거나 흙을 파거나 나뭇가지로 오두막을 만드는 데 쓸모가 있었다. 점차로
사람들은 그 오두막에 진흙 같은 것으로 벽을 바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가 바로
가족이 형성되고 그 구별이 생겼으며 일종의 사유재산을 도입한 최초의 혁명 시대이다.(2) 
그리고 그 사유재산은 이미 여러 차례 싸움의 원인이 되었을 것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그것을 스스로 지켜 나갈 힘이 있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강자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약자들로서는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모방하는
것이 보다 간단하고 실속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전부터 오두막을 갖고 있던 자들로
말하면, 아무도 이웃의 오두막을 빼앗아 자기 소유로 삼으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빼앗으려면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큰 싸움을
벌이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이 공통된 거처에서 함께 사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자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이 넓어지게 되었다. 함께 생활하는 습성이 가장 친밀한 감정이라 할 수
있는 부부애와 부성애를 낳게 했다. 어떤 가족이든 상호간의 애착과 자유가 그 유일한 유대가
되어 있으므로, 더욱 긴밀히 결합된 하나의 작은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동일했던 남녀의 생활 양식 속에 처음으로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여성들은
점점 집안에 머물러 있게 되고 오두막과 어린 것들을 돌보는데 익숙해졌으며 남성들은 가족의
생활용품을 찾으러 나갔다. 남성과 여성은 전보다 다소 유약한 생활로 말미암아 그 사나움과
원기를 어느 정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자가 뿔뿔이 헤어지면 전과 같이 야수와
싸우기가 불리하지만, 그 대신 공동으로 이 야수들과 싸우기 위해 모이는 일은 전보다 쉬워졌다.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간소하고 독립된 생활을 하여 매우 한정된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명한 도구를 가진 사람들은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었고 그들의 선조들이 알지 못했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이 여가를 활용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무의식중에 스스로에게
부과한 최초의 속박이며, 그들이 자손을 위해 마련한 불행의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연약하게 만들어 갔을 뿐만 아니라 그 안락이
습관이 되자 별다른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동시에 그 안락이 실질적인 욕구로 변질되어
버렸으므로, 그것이 없는 고통은 그것이 있을 때 즐거웠던 만큼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안락을 누려도 별로 행복하지 않은 반면에 그것을 잃으면 몹시 불행해졌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 가족들 속에서 어떻게 하여 무의식중에 말이 사용되어 일정한 언어로
완성되었는가를 전보다 좀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떻게 해서 여러 가지 특수한 원인이
언어를 점점 더 필요하게 만듦으로써 언어를 널리 보급시키고 그 발달을 촉진시켜 왔는지 추측할
수도 있다.
  큰 홍수나 지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지역을 물과 낭떠러지로 에워쌌다. 지각의 변천이 대륙의
몇몇 부분을 잘라내어 섬으로 만들었다. 대륙의 삼림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사람들 사이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섬에서 서로 가까이 하면서 함께 살아야 했던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공통된
방언이 형성되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섬의 주민들이 처음으로
항해를 했을 때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언어의 사용법을 퍼뜨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회와
언어는 섬에서 비롯되었으며 대륙에 알려지기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는 주장은 적어도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된다.
  이제 모든 것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숲속을 방황하던 사람들도 보다 안정된
장소를 얻게 되었으므로 점차 서로 근접하여 무리를 이루고 드디어 각 지방에서 개개의 국가를
형성하는데 이들은 규칙이나 법률에 따라서가 아니라 풍속과 성격에 따라, 즉 같은 생활
양식이나 음식에 따라 또는 기후의 공통된 영향에 따라 결합되어 있다. 끊임없이 이웃이
되어가는 상태는 드디어 각각 다른 가족간의 결합을 촉진시키게 마련이다.
  젊은 남녀들이 이웃이 되어 오두막에 살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자연이 요구하는 일시적인
성적 교섭이, 거듭되는 상호 왕래로 말미암아 즐겁고 영속적인 또 다른 교섭을 낳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여러 가지 사물을 고찰하고 비교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가치와
미의 관점을 얻게 되고 그것이 다시 좋고 나쁨에 대한 감정을 낳는다. 서로 자주 만나는 동안에
사람들은 벌써 서로 만나지 않고서는 살지 못할 지경이 된다. 정신 속에 일종의 부드럽고 달콤한
감정이 흘러들어, 때때로 극히 사소한 반박을 받게 되면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 사랑과 함께
질투가 싹튼다. 불화가 승리를 차지하면 정열 가운데 가장 감미로운 것이 인간의 피로 얼룩지게
된다.
  여러 가지 관념이나 감정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서, 인류는 점차로
유순해지며 결합이 확대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연애와 여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틈을 내어 모여든
남녀의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일거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기도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여, 이윽고 남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아름답게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거나 얼굴이 가장 잘생긴 사람, 가장 억센 사람,
재주가 가장 뛰어난 사람 또는 말을 가장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악덕으로 가는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 최초의 선택을 통해
한편으로는 허영과 경멸이, 또 한편으로는 수치와 선망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효모에서
생긴 발효소가 마침내 행복과 순결에 대해 불길한 합성물을 낳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평가하기 시작하여 존경이라는 관념이 그들의 마음속에 형성되자마자,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에겐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면
누구도 무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예의 범절의 의무가 심지어는 미개인들 사이에서도
생기게 되었으며, 고의적인 범행은 모두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피해자는 그 범행으로
초래되는 손해는 물론이거니와 그 피해 자체보다도 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자기의 인격에 대한
모욕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자기가 받은 모욕에 대하여 자기가 만족할 만큼 벌을
가했으므로 복수도 더욱 포악해지고 살생까지 저지르게 되어 인간은 한층 잔인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대부분의 미개 민족이 도달한 단계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몇몇
사람들은 여러 가지 관념들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하고 또 이들 민족이 이미 최초의 자연상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본래 잔인하므로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 원시상태에 있는 사람만큼 온순한 자는 없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자연에 의해
짐승들의 어리석음과 사회인의 꺼림칙한 지식의 중간에 놓여져 본능과 이성에 따라 자기를
위협하는 악으로부터 몸을 수호하는 데 그치고, 자연스러운 연민으로 인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으며 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해칠 마음이
우러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자 로크(3)의 격언과 같이 사유가 없는 곳에 범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4)
  그러나 이렇게 해서 사회가 시작되고 어느덧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자 그들에게는 원시적 구조에서 물려받은 것과는 상이한 성질이 요구되었으며, 도덕이
인간의 행위 속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는 점, 그리고 법률이 있기 전에는 각자가 자기가 받은
보복의 유일한 판정자이고 복수자였으므로 순수한 자연상태에 적합했던 선은 새로운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게 되었으며, 범행의 기회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처벌은 더욱 엄해질 수밖에
없었고 복수의 두려움이 법의 제재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점 등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전보다는 인간들의 인내심도 약해지고 자연적인 연민도 이미 다소간의 변질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 인간 능력의 발달 시기는 원시상태의 게으름과 현대의 이기주의가 낳은
맹렬한 활동 사이에서 올바른 중용을 유지하였으므로 가장 행복하고 가장 견실한 시기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수록 이 상태가 가장 혁명이 일어나기 어려운, 인간에게 최고로
바람직한 상태였다는 사실,1 그리고 인간의 공동이익을 위해서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던
혐오스러운 우연에 의하지 않았던들 인간은 이 상태에서 이탈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개인 대부분이 이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인류가 영원히 이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과 이 상태는 참으로 세계의 청년기라는 점, 그리고 이후의 모든 진보는
표면상으로는 그만큼 개체의 완성으로 향하면서도 사실상 종의 노쇠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누추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한, 그리고 짐승 가죽을 가시나 물고기 뼈로 꿰매어 옷을
만들거나 새털이나 조개껍데기로 몸을 치장하고 몸에 울긋불긋 색을 칠하며 활이나 화살을
만들거나 다듬고 잘 드는 돌칼로 몇 개의 고기잡이용 카누나 조잡한 악기를 만드는 데 그치는
한, 요컨대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나 기술에만 전념하는
한, 인간은 그 본성에 따라 자유롭고 건장하고 선량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서로 독립된 상태에서
교제를 나누는 즐거움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자마자,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사람 분의 저축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느끼자마자, 평등은 소멸되고 사유가 도입되었으며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게다가 광대한 산림은 아름다운 평야로 변했으며 그 평야를 사람들의 땀으로 기름지게
만들어야 했고 머지않아 그곳에서 수확과 함께 노예제도와 빈곤이 싹트고 자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야금과 농업은 이러한 거대한 혁명을 낳은 두 가지 기술이었다. 시인의 눈에는 인간을
개화시키고 아울러 인류를 타락시킨 장본인은 금과 은이지만, 철학자가 볼 때 그것은 철과
밀이다.(5) 따라서 그 어느 것도 아메리카의 미개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여전히 미개인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민족도 이 기술의 한쪽에만 힘을 기울였던들 여전히
야만상태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보다 빠르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보다 꾸준하게 보다 고도로 문명화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아마도 철뿐만 아니라
밀도 역시 유럽에서 가장 많이 생산해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철을 알고 사용하게 되었는가를 추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알지 못한 채 광산에서 철광석을 캐내고 용융시키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 내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광산은 나무도 풀도 없는 불모의 땅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자연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비밀을 알리지 않으려고 무척 고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우연히
불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방법이 발견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용해된
금속성의 물질을 토해내어 관찰자들에게 이 자연의 작용을 모방하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리라고 추측되는 화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일을 계속하여 언젠가는 그로부터 얻어 볼 수 있는
이익을 그토록 오랜 옛날부터 예상했다면, 그들에겐 이만 저만한 용기와 선견지명이 있지
않았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질은, 그들의 정신 속에 애초에 상정되고 있었던
상태보다 더욱 많은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거의 육성될 수 없는 것이다.
  농업의 경우는 어떤가. 농업의 실행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에도 그 원리는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나 풀에서 생활용품을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있었으므로, 자연이 식물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그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농업 생산은 아마도 훨씬 나중에야 이뤄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냥이나 낚시질과 함께
인간에게 식품을 제공해온 나무가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밀의 사용법을
몰랐거나 그것을 재배할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 말고도 장래의 필요를
내다볼 힘이 없었거나 자기 노동의 산물을 타인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막는 수단이 없었거나
했기 때문이다.
  전보다 슬기로워진 그들은 날카로운 돌과 뽀족한 막대기를 가지고 자기 오두막 주위에 몇
포기의 야채나 풀뿌리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밀의 재배법을 알고 대량으로
수확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갖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농사일에서 나중에 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얼마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앞에서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저녁에 필요한 물건을 아침에 생각해 내는 데도 몹시 애를 써야 하는
미개인의 정신 수준으로서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인류가 농업 기술의 연마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다른 여러 가지 기술의 발명이
필요했다, 철을 녹이고 단련하기 위해 사람의 손이 필요하게 되자, 곧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또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노동자의 인원수가 증가할수록 생활 물자를 제공하기 위한 일손은 점점
적어지는 반면에 그것을 소비하는 입은 늘어만 갔다. 자기가 생산한 철을 식량과 교환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 내기 위해 철의 이용 방법을 발견해 내고자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경작과 농업 기술이, 다른 한편으로는 금속을
가공하고 그 용도를 넓히는 방법이 확립되었다.
  토지의 경작은 필연적으로 토지의 분배라는 문제를 가져왔으며, 일단 사유재산이 인정되자
비로소 정의의 규칙이 생겼다. 각자의 소유를 확인해 주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로소 미래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누구나 장차 잃을지도 모르는 재산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자기가 남에게
끼칠지도 모르는 피해가 자기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걱정하게 되었다.
  이제 막 생겨난 사유의 관념이 육체 노동 이외의 것에서 유래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니만큼, 이러한 기원은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자기가 직접 만들지 않은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과연 인간은 자기의 육체 노동 말고 도대체 무엇을 구 물건에 가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작자에게 그가 경작한 토지의 산물을
적어도 수확기까지 소유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 다시 말하면 토지에 대한 권리를 해마다 보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의 노동뿐이다.
  이와 같이 계속적인 점유가 반복되면 그것은 쉽사리 사유로 전환된다. 그로티우스(6)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케레스(7)에게 입법자라는 명칭을 주고, 이 여신에게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올린
제전에 '테스모포리아'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토지의 분배가 새로운 종류의 권리, 즉
자연법에서 생겨난 권리와는 다른 사유라는 권리를 창출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만일 사람들의 재능이 균등하여 예컨대 철의 사용과 식량의 소비가 언제나 정확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면 모든 사물은 이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평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등을 유지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곧 붕괴되었다. 힘이 센
사람은 보다 더 많은 일을 하였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노동을 교묘히 이용하였으며
머리 좋은 사람들은 노동을 절감시키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경작자는 더욱 많은 철을 필요로 하였고 대장장이는 더욱 많은 밀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으나 어떤 사람은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을 뿐인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하여 자연의 불평등은 새로운 원인의 결합에 따른
불평등과 더불어 부지불식간에 발전되었으며, 상황의 차이에 따라 발전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더욱 현저해지고 더욱 오랫동안 지속되어 사람들의 운명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면 그 뒤의 일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나는 계속되는 기술의 발명이나
언어의 발달, 재능의 시험과 활용, 재산의 불평등, 부의 이용 또는 남용, 그리고 그 뒤에 계속되는
일체의 왜곡에 대해서는 일일이 서술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각자가 쉽사리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이 새로운 질서 속에 놓인 인류를 일별해 보는 데 그치고자 한다.
  보라! 우리 인간의 모든 능력은 발전하였고 기억력과 상상력은 마음껏 나래를 폈으며, 이기심은
이해에 눈뜨고 이성은 활발하게 되었으며, 정신은 도달할 수 있는 한 거의 완성의 정점에 도달해
있다. 이제야 자연의 모든 요소는 활동을 시작하여, 각자의 지위와 운명은 재산의 다과나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아름다움, 체력, 능력, 장점이나
재능 등에 기초해서도 확립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라야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으므로 그 소질들을 실젤
갖추거나 적어도 갖고 있는 체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신의
실제 상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실체와 외관이 전혀 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구별을 통하여 그럴듯한 위엄과 기만적인 책략과 이에 따르는 모든 악덕이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
  한편 이전에는 자유롭게 독립하여 살아가던 인간이 이제는 무수한 새로운 욕구로 말미암아,
이를테면 자연 전체에 특히 그 동포에게 복종하게 되어, 결국 그는 그 동포의 주인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즉 그가 부유하다면 동포에 대한 봉사가 필요하고 가난하다면
동포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중간쯤 되는 자도 동포가 없이는 도저히 살아 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그 동포가 자기 운명에 관심을 갖도록, 실질적으로나 표면상으로
그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기들의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만적이고 교활하며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난폭하고
냉혹하다. 그리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협하여 복종시킬 수 없거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기에게는 그리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악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탐욕스러운 야심이나 절박한 필요에서라기보다는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자기 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갈망 때문에 인간은 서로를 해치려고 하는 옳지
못한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게다가 더욱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때때로 친절로 위장된 가면을 쓰는 경우가 있는
만큼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은밀한 질투심이 일어나게 된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경쟁과
대항심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의 대립이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남을 희생시켜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는 은밀한 욕망일 뿐이다. 이 모든 악은 사유가 낳은 최초의 결과이며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불평등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부를 나타내는 기호(화폐)가 발명되기 전에는 부는 주로 토지와 가축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런데 상속 재산의 수나 범위가 아울러
증대되어 땅 전체를 덮고 서로 경계를 접하게 되자,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이미 자기
재산을 늘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력했거나 무관심했기에 제대로 상속을
받지 못한 자들은, 주위에서는 모두 변화되고 있는데 그들만이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지만, 가난뱅이가 되어 부득이 자기의 생활용품을 부자에게서 얻거나
빼앗아야만 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 각자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부유한 자 쪽에서도 남을 지배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자 그들은 곧 다른 모든 쾌락을
경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부자들은 새로운 노예를 얻기 위해 기종의 노예를 부려 이웃
사람들을 정복하고 예속시키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일단 사람의 고기 맛을
알게 된 저 굶주린 늑대가 다른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생각만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해서 가장 강한 자 또는 가장 가난한 자가 그의 힘 또는 빈곤을 타인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그들이 볼 때 고유권과 등가인--로 전환함에 따라 평등은 깨어져 버렸고 뒤이어
더욱 무서운 무질서가 초래되었다. 즉 이렇게 해서 부자의 횡령과 가난한 자의 약탈과 만인이
방종한 정념이, 자연스러운 연민의 정과 아직은 약한 정의의 목소리를 질식시켜 사람들을
욕심쟁이와 야심가와 악한으로 만들었다. 가장 강한 자의 권리와 최초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투쟁과 살해에 따라 종식될 수밖에 없었다.2
  갓 태어난 사회화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전쟁상태로 변해 버렸다. 타락하고 비탄에
빠진 인류는 이미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었고 불행하게도 스스로 얻은 것을 버릴 수도 없게
되었으며, 자기에게 명예를 가져다주는 모든 능력을 남용함으로써 치욕만을 더하게 되어
드디어는 스스로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

  이토록 새로운 악에 따라,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오직 재물에서 떠나기를 원하며 일찍이
탐내던 것을 이제 와서는 혐오한다.
  --오비디우스, "변신보" 제 11 권 제 5 장 127 행

  인간이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재해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부자들은 자기들만이 일체의 비용을 부담해온 지루한
전쟁이 결국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손해만을 주었는가를 곧 깨달았을 것이다. 그 전쟁에서
생명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었지만 재산의 위험은 개인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횡령에 어떤 색채를 부여하든 그것은 단지 일시적이고 부당한 권리를 내세우고 있는 데
불과하며, 또 그 횡령은 오직 힘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것을 다시 힘에 의해 약탈당해도
그들에게는 아무 할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간계나 술책만으로 부자가 된 자도 자기의 사유재산에 대해 좀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울
수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이 울타리를 세운 것은 나다. 나는 내 노동으로 이 땅을 손에
넣었다"고 우겨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누가 당신에게 경계선을 정해 주었느냐고 누군가가
그에게 대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에게 요청한 적도 없는 것을 무슨 권리로 우리에게
하도록 요구하느냐?" 고 하거나 "당신은 주체를 못 할 정도로 많이 갖고 있지만 그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당신의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또는 "당신이 자기 몫 이상을 공동의
생활용품으로부터 취하여 그것을 소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만장일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자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논리도 없고 충분한 자위력도 없으며, 사람
한 명쯤은 쉽사리 짓밟아 버릴 수는 있어도 도적의 무리에게는 오히려 짓밟힘을 당하기도 하며,
피차의 질투심 때문에 약탈이라는 공통된 목적으로 뭉쳐진 적에 대항하여 자기의 동지들을
규합할 수도 없어 혼자서 여럿을 상대해야 하는 이 부자는, 드디어 절실한 필요에 따라 일찍이
인간이 궁리해 내지 못했던 가장 심오한 계획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공격한
자들의 힘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고, 자기의 적을 자기의 방어자로 만드는 일이다. 이 계획은
자연법이 자기에게 불리한 입장에 있는 만큼 자기에게 유리한 다른 격률을 그들에게 주입하거나
다른 제도를 그들에게 마련해 주자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의도에서, 모든 이웃 사람들이 서로 적대하여 무장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소유를
그들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부담스럽게 만드는 상황, 즉 부유함이나 가난함 속에서 모두가 안전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의 두려움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나서, 부자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웃 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쉽사리 찾아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약자를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고 야심가를 억제하며 각자에게 그의 소유를 확실히 해주기 위해
단결하자. 정의와 평화의 규칙을 정하자.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하며 어느 쪽도 두둔함이
없이 강자와 약자를 평등하게 피차의 의무에 따르게 하여, 이를테면 운명의 장난을 보상하려는
규칙이다. 요컨대 우리의 힘을 스스로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리지 말고 그것을 하나의
최고권력에 집중시키자. 현명한 법에 따라 우리를 다스리고 사회의 모든 성원을 보호 방위하며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 영원히 우리를 단합시키는 권력으로!"
  야만스럽고 기만당하기 쉬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런 설명조차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 피차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중재자를 꼭 필요로 하기는
했으며, 욕심과 야심이 지나쳐 통솔자 없이는 더 이상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누구나 자기 자유를 지켜 나갈 심산이었으나, 사실은 스스로가 쇠사슬을 향해 달려가는 꼴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제도의 이점을 인식할 만한 이성은 갖고 있었지만, 거기 따르는 위험을
내다볼 만큼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가장 잘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을 이용하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가장 현명한 자들까지도, 마치 부상자가 신체의 나머지 부분을 구하기 위해 팔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듯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자유의 일부를 다른 부분을 보존하기 위해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와 법률의 기원은 결국 이와 같은 것이었거나 당연히 이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사회와 법률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유한 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줌으로써3
자연의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 버리는가 하면, 사유와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히 고정시키고 교묘한
약탈을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 몇몇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 온 인류를 영원한 노동과 예속과
빈곤에 복종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한 사회가 성립하기 이해서는 다른 많은 사회의 성립이 필요하다는 것, 또 단결된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역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사회는 급속도로 그
수가 증가하고 영역이 확대되어 이윽고 지구 표면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그리하여 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속박에서 해방될 수 없게 되었으며, 누구에게나 자기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검(8)이 떨어질 때 목을 움츠려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기란 벌써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하여 시민법이 각 공동체 성원들의 공통된 규칙이 되었으므로, 자연법은 서로 다른
사회 사이에서만 유지되었다. 이로써 자연법은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국제법이란 명칭으로
통상을 가능하게 하고 자연의 연민을 대신하여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제한된 자격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의 연민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행사하고 있던 거의 모든 힘을 사회와 사회
사이에서는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에, 이미 여러 민족을 구분 짓고 있는 상상에 따른 경계선을
뛰어넘어 그들을 창조한 최고의 존재를 본떠서 인류 전체를 선의 가운데 포옹하려는 몇몇 위대한
세계 시민적인 인간의 영혼 속에서만 존재할 따름이었다.
  이와 같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여전히 자연상태에 머물러 잇는 다양한 정치체들은 이윽고 각
개인이 그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태는 그들 대규모 단체 사이에서는, 그 구성원 각 개인 사이에서 있었던 것보다 더욱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전율케 하고 이성의 숨통을 막는 국민간의 전쟁이나
전투, 살육, 복수, 그리고 인간의 유혈로 얻은 명예를 미덕으로 간주하는 저 두려운 편견이
이러한 상태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성실한 사람들조차도, 필요하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의 의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내는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서로 수천 명씩 살해하며 자연상태의
인간들일 지구의 온 지역에서 몇 세기에 걸쳐 자행한 것보다 더 많은 살육이 이제는 하루 동안의
전투 가운데 일어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도시가 점령되었을 때는 더욱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인류가 서로 다른 사회로 분할된 데서 예상할 수 있었든 최초의
결과이다. 그러면 화제를 바꾸어 이러한 사회들의 제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나는 몇몇 사람들이, 정치적 사회 국가는 강자의 정복이나 약자의 단결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위에서 든 원인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해도 내가 여기서
증명하려고 하는 내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로, 앞에서 말한 강자의 정복이란 경우에, 정복의 권리는 그 자체 아무런 권리도 아니므로
다른 권리를 설정할 근거가 될 수 없었다.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를 구가하던 국민이 자진하여
정복자를 자기의 우두머리로 선택하지 않는 한 그 정복자와 피정복자인 국민은 언제까지나 서로
전쟁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설사 항복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폭력에 따라
강요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금 전에 든
가설에서는 진정한 사회나 정치, 그리고 강자의 법 이외의 어떤 법률도 존재할 수 없다.
  둘째로, 약자의 단결이라는 경우를 놓고 볼 때, 이 강하고 약하다는 말 자체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소유권 또는 선점권의 확립과 정치적 지배의 확립 사이에 놓인 중간 시기에서는
'강하다'거나 '약하다'는 말보다 '가난하다'거나 '부유하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법률이 생기기 전에는, 누군가가 자기와 동등한 자를 복종시키려고 한다면
상대방의 재산을 빼앗거나 자기 재산을 얼마간 상대방에게 나눠주는 도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자유 이외에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가 그들이 교환 조건으로 얻은 것은
전혀 없는데도 자기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재산을 자진하여 포기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이와 반대로 부자는, 이를테면 자기 재산의 모든 부분에 대하여
민감하므로 그들에게 손해를 주는 편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손해를 면하기
위해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사물의 발생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는
사람들보다는 덕을 보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정부는 질서가 전혀 잡혀 있지 않았다. 철학과 경험의 부족으로
눈앞의 불편을 없애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밖의 불편에 대해서는 그것이 코앞에
닥친 뒤에야 겨우 시정할 생각을 했다. 가장 현명한 입법자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상태는 언제나 불안정했다. 왜냐하면, 국가의 정치상태는 거의 우연의 소산이며
출발부터가 좋지 않았던 까닭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점이 발견되고 해결 방법이 시사되었지만
원초적인 결함을 보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류쿠르고스(9)가 스파르타에서 한 것처럼 우선 부지를
청소하고 모든 낡은 건축 재료를 제거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수리만 해나갔다. 초기의
사회는 모든 개인이 준수할 것을 서약하며 온 공동체가 그 서약의 이행을 보증하는 몇 가지
규약만으로 성립되어 있었다.
  그와 같은 조직이 얼마나 무력하며, 또한 공중만이 증인이자 재판관이어야 했을 때 범죄자들이
얼마나 손쉽게 판결이나 형벌을 피할 수 있었는가는 경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이렇듯 수월하게 법망을 벗어날 수 있게 되고 게다가 불편과 무질서가 끊임없이
증가하게 되자 드디어 사람들은 위험스럽게도 동적인 권위를 사적인 개인에게 위임하고 국민의
의결 사항에 대한 복종을 위정자들에 대한 복종으로 강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합체가
결성되기 전에 통치자가 먼저 선출되었다거나 법률보다 앞서서 법률의 집행자가 존재했다는 것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가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애당초 아무런 미련 없이 절대군주에게 무조건 몸을 내맡겼다거나, 또는 자존심 세고
쉽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공동의 안정을 위해 생각해낸 최초의 수단이 노예상태 속에
뛰어드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그들이 억압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들의 존재 요소인 재산이나
자유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자기보다 높은 인간을 내세우려
하겠는가?
  그런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한 쪽이 다른 쪽의 자의에
맡겨지는 것이므로, 통치자의 도움을 빌어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모두 통치자의 손에 완전히
맡겨 버린 것은 양식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처럼 소중한 권리를 양도한 대가로
그들은 과연 통치자로부터 이와 대등한 그 무엇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 통치자가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수호한다는 구실로 그 권리를 자기에게 양도하라고 말하기라도 했다면, 그는 곧
우화(10)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적이 우리에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인민들이 통치자를 세우는 이유는 자기들을 그 우두머리에게 예속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모든 국법의 기본적인
격률이다. 플리니우스(11)는 트라야누스(12)에게, "제가 왕후를 섬기는 것은 주인을 갖게 될까
두려워서입니다" 하고 말했다.
  자유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정치가들은 철학자들이 자연상태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궤변을
곧잘 늘어놓는다. 그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사물을 가지고 아직 본 적이 없는 전혀 상이한
사태를 판단한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노예상태를 참아 나가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예속에 이끌리는 자연적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유란 순결이나 미덕과 같은
것으로서 인간이 그것을 지니고 있을 때만 그 가차를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에 대한 취미도 곧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기원전 5세기경의
스파르타 장군인 브라시다스는 스파르타의 생활을 페르세폴리스(13)의 생활과 비교하는 태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네 나라의 행복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당신은 우리 나라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오."
  잘 훈련된 말은 참을성이 강하여 채찍이나 박차를 잘 견디지만, 길들이지 못한 말은 재갈만
가까이 대도 갈기를 곤두세우고 발버둥을 치며 날뛰기 쉽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인은 문명인이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멍에를 향해 절대로 목을 내밀지 않는다. 그리고 평온한 굴종보다는
파란만장한 자유를 택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굴종에의 자연적인 성향이 있는지의 여부를
노예가 되어 버린 민중의 타락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모든 자유인들이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행한 기적적인 행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나는 전자가 쇠사슬에 매어 누리고 있는 평화와 안식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비참하기
짝이 없는 굴종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14)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로부터 심한 멸시를 받고 있는 저 자유라는 유일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쾌락과 안식, 부와
권력, 심지어는 생병까지도 희생시키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자유롭게 태어난 동물이 속박을 몹시
싫어하여 우리의 쇠창살에 머리를 부딪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또한 벌거벗은 많은 미개인들이
유럽인의 관능적인 쾌락을 경멸하고 오로지 자기들의 독립을 지켜 나가려고 굶주림과 불, 칼과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자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노예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몇몇 사람들이 전제정치와 모든 사회가 그로부터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권에 대해
말한다면, 로크나 시드니의 반증을 이용할 것도 없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유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즉 이 세상에 온건한 권력처럼 전제정치의 잔인한 정신에서 거리가 먼 것은
없다. 그것은 명령하는 자보다도 복종하는 자의 이익을 더 많이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자연법에 따르면, 부친은 그의 도움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동안만 그들의 주인이며, 이 기간이
지나면 양자는 평등해지게 된다. 자식은 부친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며, 아버지를 존경할 의무는
있어도 그에게 복종할 의무는 없게 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은혜에 대해서는 분명히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누구라도 그것을 강요할 권리는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사회(국가)는 아버지의 권력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력이 주로
정치사회로부터 유래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식들이 그의 곁에서 모여 살
때까지는 아버지로 인정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사실상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재산은 자식들이
그에게 의존하도록 매어두기 위한 사슬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아버지의 의지에 언제나 경의를
표시하여 재산 상속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자기 뜻대로 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 전제 군주로부터 이와 비슷한 혜택을 기대할 수
있기는 커녕,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모두 군주의 것이거나 또는 적어도 군주가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들은 자기 재산 가운데서 군주가 적산하듯 주는 것을 하나의 은혜로
받아들여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다. 군주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며 그들을 살려주는 것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셈이다.
  이와 같이 권리를 통해 사실을 검토해 나가면, 전제정치의 자발적인 성립이라는 주장에는
확실성이나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양자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의무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 쪽만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이러한 계약의 유효성을 내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다. 이 저주스러운 제도는
오늘날에도 현명하고 선량한 군주들, 특히 프랑스 국왕들의 제도와는 매우 인연이 먼 이야기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국왕들이 내린 칙령의 곳곳에, 특히 루이 14세의 명령에 따라 1667년에
왕의 이름으로 발표된 유명한 칙령의 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그 국가의 법률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반대의 명제가 국제법의 진리이며, 아첨배들이 수시로 이 진리를 공격할 때에도 선량한
군주들은 언제나 이것을 국가의 수호신으로 옹호했다, 현자 플라톤과 더불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 일이겠는가? '국왕의 완전한 행복은, 군주가 그 신민의 신임을 얻어 신민들이
복종하고 군주는 법률에 복종하며 그 법률은 공정하고 언제나 공공의 복지를 지향하는 데
있다.'"
  여기서 나는, 자유는 인간의 여러 가지 능력 가운데서도 가장 고귀한 것이므로 잔인하고
무분별한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 대지의 창조주가 부여한 가장 귀중한 것을 무작정
버려두거나 창조주가 금하고 있는 모든 죄악을 마구 저지르는 행위는, 인간의 자연성을 타락시켜
짐승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며 자기 존재의 창조자마저 욕되게 되지 않을까를 따질 생각은 없다.
또한 이 숭고한 장인이 볼 때 자기가 만든 아름다운 작품이 파괴당하는 광경을 보는 것보다
그것에 대한 자신의 명예가 손상 당하는 것에 더 큰 분노를 느끼지 않을까를 규명할 생각도
없다.
  로크의 뒤를 이어, "어떤 사람도 자기를 제멋대로 다루는 전제적인 권력에 굴종할 정도로
자기의 자유를 팔아 넘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 소유가 아닌 자기 생명을 팔아 넘기는 일이
될 것이므로" 하고 선언한 바르베라크(15)의 권위 있는 말도 원한다면 무시하겠다. 다만
이렇게까지 자기의 품위를 떨어뜨려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권리로 자손을 똑같은
불명예에 복종시킬 수 있는지, 또는 자손들이 그들의 은혜를 입어 얻게 된 것이 아닌 자유라는
재보--세상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없다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를 그들은 무슨 권리로 자손들 대신 버려둘 수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푸펜도르프(16)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합의나 계약에 따라 재산을 남에게 양보하듯
누군가를 위해 자기의 자유를 버릴 수도 있다."(17) 이것은 매우 잘못된 추리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째로 내가 양도하는 재산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되며 그것이
남용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나, 남이 내 자유를 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며, 억지로 강요되어 저지르는 악에 대해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범죄의 도구가 되는 위험을 무릅쓸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유권은 사람 사이의 합의와 제도에 불과하므로 누구나 자기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데 반해 생명의 자유와 같은 천부적인 선물은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지만 그것을 버릴 권리까지 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즉 양자 가운데 한
쪽을 제거하면 인간의 품위는 저하되고, 다른 쪽을 제거하면 인간의 존재는 소멸된다. 이 세상의
어떤 재산으로도 그 양자 가운데 어느 것도 보상할 수 없으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것을
내버리려고 하는 것은 자연과 이성을 동시에 침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설사 사람들이 재산과 마찬가지로 자유 또한 양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권리를
이전함으로써 비로소 부친의 재산을 향유하게 된 자식들에게는 그 차이가 상당할 것이다. 자유는
그들이 인간이라는 자격으로 자연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선물이므로, 어느 부모에게도
자식들로부터 이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권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거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 권리를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자연을 변경시켜야만 한다.
  법률가들은 노예의 자식들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된다고 엄숙히 선고하였는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태어나지 않는다고 단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볼 때
정부는 단지 전제적인 권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제적인 권력은 정치의
타락이 극에 달한 형태에 불과하며 결국은 정부를 유일한 강자의 법으로 이끌고 말지만, 애당초
그런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가 세워진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면 그 권력은 본래 비합법적인 것이므로 사회의 제반 법률에 대해서도,
결과적으로 제도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적절한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정부의 기본적인 계약이 갖는 성질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는 다만
세상의 통념을 채택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그것은 정치적 집단의 성립을 인민과 그들이 택한
통치자 사이의 현실적인 계약이라고 보는 견해다. 이 계약의 양 당사자는 그 속에 명시된
법규들을 준수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쌍방의 결합은 확고하게 된다.
  인민은 사회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그들 모두의 의지를 오직 하나의 의지로
결합시켰으므로, 이 의지가 표명되고 있는 모든 조항은 각각 기본적인 법률이 되어 국가의 전체
성원들에게 예외없이 의무를 부가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법률의 집행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위정자의 선택과 그 권력을 규정하고 있다. 이 권력은 정치 구조(constitution)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면 어느 것에나 적용되지만 그것을 변경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법률과
그 집행자들을 존경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명예가 주어지고, 위정자에게는 그들이 선정을 위해
기울인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서 여러 가지 특권이 부가된다. 그 대신 위정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권력을 오직 위탁자의 의향에 따라 행사하고, 각자가 자기의 소유물을 언제나 안전하게 향유할
수 있게 하며,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와 같은 정치 구조가 갖는 폐해를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게 되거나 인간의
마음을 통해 예상하기 전에는 이 정치 구조의 유지를 감시하는 임무를 받은 자들이 그 유지에
가장 큰 이해 관계를 갖는 만큼, 그 정치 구조는 가장 훌륭한 것으로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위정자의 직분과 그 권리는 오직 기본적인 법률을 토대로 해야만 성립될 수 있으므로,
그 법률이 폐기되기라도 하면 위정자는 곧 비합법적이 되며 국민이 그들에게 복종할 의무는 이미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의 본질을 구성한 것은 위정자가 아니라 법이므로 각자는
당연한 권리에 따라 자연적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여 반성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사실에 따라
확인될 것이다. 아울러 계약이 갖는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언제고 취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령 계약자의 충실한 이행을 보증하거나 그들에게 피차의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우월한 권력이 없다면, 계약 당사자만이 자기들의 소송을
판결하는 심판자로 남게 되고, 당사자는 상대가 그 계약 조건을 어기거나 그 조건이 자기에게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면 언제고 곧 계약을 취소할 권리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폐기의
권리는 이 원리에 입각하는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제도의 인간적인 요소만을
생각해 볼 때 일체의 권력을 장악하고 그 계약에서 오는 모든 이익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는
위정자가 권력을 버릴 권리마저 보유하고 있다면, 통치자들의 잘못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인민들에게 종속을 벗어날 권리가 있음은 더욱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위험한 권력이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불화와 끊임없는 혼란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즉 인간의 정부는 단순한 이성보다 더욱
견고한 토대를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주권을 행사하는 위험스러운 권리를
신민들로부터 박탈할 수 있는 저 신성불가침의 성격을 주권의 권위에 부여하기 위해 신의 의지가
개입되는 것이 얼마나 공공의 안녕에 필요했던가 하는 점이다.
  비록 이 점을 제외하고는 종교가 인간에게 베풀어준 이득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모든 인간이 종교를 다소의 폐해까지도 포함하여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켜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광신 때문에 흘려야 했던 피보다 훨씬 많은 피를 절약하게
해주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내린 가설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여러 가지 정부의 형태는 그 기원을 살펴보면, 그것이 수립되는 시기에 개개인 사이에서 볼 수
있었던 불평등의 크고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능력이나 덕망, 재산인 개인적인 영향력에 있어서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이 위정자로 선출되고 이로써 국가는 군주정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만일 다 같이 출중하지만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사람들이 몇 명 있다면, 그들은
함께 선출되어 귀족정을 형성하였다. 재산이나 재능이 그다지 불균형을 이루지 않고
자연상태에서 그리 멀리 이탈하지 않은 사람들은, 최고의 행정권을 공동으로 보유하는 민주정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 형태 가운데서 어는 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한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명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법률에만 복종했고 어떤 사람들은 결국 주인에게 굴복했다. 시민들은 자기의
자유를 수호하려고 했다. 그리고 신민들은 자기들이 누리고 있지 못한 행복을 남들이 누리는 데
분개하여 이웃 사람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을 궁리만 했다. 요컨대 한쪽에는 부와 정복이 일어났고
다른 쪽에는 행복과 덕이 일어났다. 이와같이 정부 형태는 서로 달랐지만 누가 어떤 관직을
맡을 것인가는 처음에는 모두 선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부가 아직 우세한 힘을 갖지 못했을
때는 자연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재능과, 일에 있어서는 경험을, 토의에 있어서는 침착성을
보여주는 노령층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헤브라이인 장로들, 스파르타의 게론테스,(18) 로마의 원로원, 그리고 우리의
세뇨르(Seigneur)(19)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옛날에는 노인층이 얼마나 존경받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선거를 하면 으레 노인들이 뽑히게 되었고 그럴수록 선거를 빈번하게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니 이에 따르는 폐단도 점점 심각해지게 되었다. 즉 어느새 협잡이 개입되고
도당이 형성되어 당파의 갈등이 심해졌으며 마침내는 내란이 일어나 시민들의 피가 국가의
행복을 참칭하는 자들을 위해 바쳐지고 사람들은 다시 옛날의 무정부 상태로 굴러 떨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야심에 찬 통치자들은 이와 같은 사태를 이용하여, 자기 가족의 테두리 속에 지위와 직권을
영구화하였다. 인민은 이미 종속과 휴식과 생활의 안락에 길들여져 있었고 이미 쇠사슬을 끊을
만한 힘도 없었으므로 자기들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 예속상태를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
이와 같이 하여 세습제를 확립시킨 통치자들은 위정자의 직분을 가산처럼 생각했으며, 애당초
국가의 행정관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스스로를 국가의 소유자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하여 동포 시민들을 노예라고 부르고 그들을 가축처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신과 동등한 존재, 즉 '왕 중의 왕'으로 자칭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이 모든 변혁 속에서 어떻게 불평등이 발달해 왔는가를 더듬어보면, 법률과 소유권의 설정이
그 제 1 기이고 관직의 설정이 제 2 기이며, 끝으로 제 3 기는 합법적인 권력에서 전제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시기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자와 가난뱅이의 상태가 제 1
기에서 용인되고, 강자와 약자의 상태는 제 2 기에서, 그리고 제 3 기에서 주인과 노예의 상태가
용인되었는데, 이 제 3 의 시기가 바로 불평등의 최후 단계이며 결국은 다른 모든 시기가
귀착되는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새로운 변혁들이 일어나 정부를 완전히 해체시키거나
이것을 합법적인 제도로 접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이 진보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의 성립 동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속에서 취하는
형태와 그것이 나중에 일으키는 여러 가지 장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제도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악덕은 사회제도의 남용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악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스파르타--이곳에서는 법률이 주로 아동의 교육을 감독하는 데만 관계되며,
류쿠르고스가 따로이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거의 없을 만큼 미풍양속을 세워 놓았다. 법률은
대체로 정념만큼은 강하지 못하므로 인간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를 유일한 예외로 간주하면, 부패하지도 변질되지도 않고 언제나 정확하게 그 제정의
목적에 따라 운영되는 정부는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는 데 세워졌다고 볼 수 있으며, 또 아무도
법망에서 벗어나지 않고 위정자의 직분을 남용하지도 않는 나라는 위정자도 법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상의 차별은 필연적으로 시민들 사이에 차별을 가져온다. 인민과 통치자들 사이에
증가되어 가는 불평등은 이윽고 개개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지되며, 정념이나 재능에 따라
그리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남용된다. 위정자는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탈취할
경우에 그 일부를 양도해 주어야 하는 부하를 만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압제를 용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맹목적인 야심에 이끌려 자기 위보다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독립보다는 권위에 복종하는 편을 더 좋아하고 그들이 타인을 쇠사슬에 묶기 위해
자진하여 쇠사슬에 묶이는 데 동의하는 동안뿐이다.
  인간을 부리려는 야심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자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또 아무리 교묘한 정치가라도 자유롭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예속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운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되느냐
불리하게 되느냐에 따라서 거의 무작정 지배하기도 하고 봉사하기도 하는 야심가이자 비겁한
자들 사이에서는 불평등이 얼마든지 확대되어 간다. 그리하여 인민의 눈이 멀어 지도자들이 가장
열등한 자들을 향해 "위대할지어다, 그대와 그대의 가문은!" 하고 한마디 던지기만 하면, 곧 그는
자기 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멀어질수록 점점 지위가 올라갔다. 원인이 모호하고
불확실할수록 결과는 점점 위대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일가 가운데 게으른 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가문은 점점 유명해졌다.(20)
  여기서 좀더 상세히 들어간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쉽사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설사 정부가 간섭하지 않더라도 개개의 인간이 동일한 사회 속에 결합되어 서로 비교하고
끊임없이 이용하는 가운데 찾아볼 수 있는 차별을 고려하게 되면, 곧 그들 사이에 신용과 권위의
불평등이 불가피하게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4
  이와 같은 차별은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 부, 신분, 지위, 권력, 개인적인
장점이 주요한 구분이 되며 여기에 따라 사람들은 사회 속의 자기 위치를 차지하므로, 나는 이들
서로 다른 세력의 조화나 충돌이 국가 구성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자료임을
증명할 수 있다. 즉 이 네 가지 불평등 속에서 개인적인 성질의 것이 다른 모든 것의 기원이므로,
나는 부가 다른 불평등들이 귀착되는 근원적인 불평등임을 보여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직접적인 안락을 위해 유용하며 가장 쉽사리 전할 수 있으므로 인간은 그 밖의 모든 것을
사들이기 위해 이 부를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서만 우리는 각 민족이 원시제도로부터 떨어져 있는 정도와 타락의
궁극점으로 향하게 된 과정을 상당히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번민하게
만드는 저 평판과 명예와 특권에 대한 보편적인 욕구가 얼마나 자주 재능이나 능력을 훈련시키고
비교하는지를, 그리고 그 욕구가 얼마나 정념을 자극하고 증대시키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욕구가 얼마나 사람들을 서로 경쟁하게 하고 대항하게 하는지, 아니면 차라리
그들을 적대시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같은 투기장을 달리게
함으로써 날마다 얼마나 많은 실패와 성공, 그리고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열망, 거이 언제나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저 남보다
돋보이려는 열광 덕분에 우리는 인간 속에 있는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 즉 우리의 미덕과 악덕,
우리의 학문과 오류, 정복자와 철학자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다시 말해서 소수의 선한 것과
더불어 다수의 악한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끝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것도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즉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담함과 비참함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몇몇 권력자와 부자가 권세와 부의 절정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여타의
사람들이 없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만큼 후자가 이것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인민의
불행이 끝나는 순간 아무런 조건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들의 행복도 끝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목들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저술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21) 그리고
이런 저술에서는 자연상태의 여러 가지 권리와 비교하여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모두 평가될
것이며, 그런 정부의 본질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여러 가지 변혁에 따라,
오늘날까지 불평등이 보여 왔고 또한 앞으로 몇 세기에 걸쳐서 보여줄지 모를 모든 상이한
양상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하여 애쓴 결과 오히려 내부에서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억압이 끊임없이 증대되는 가운데, 억압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억압이 과연 어디까지 미칠 것이며, 또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합법적인 수단이 자기들에게 남아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음도 아울러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권리나 인민의 자유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약자들의 요구가 반항 어린
불평으로 취급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수완으로, 공동의 이해를 수호하는 명예를
인민들 가운데 돈으로 고용한 부분(22)에만 부여함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과세의
필요성이 생기며 실망한 농민이 평화로울 때에도 자기 밭을 떠나 삽 대신 칼을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명예에 관해서도 불길하고 기묘한 규칙(23)이 생길 것이다. 조국의 방위자가
마침내 조국의 적이 되어 동포 시민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이 자기 나라의 억압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대가 많이 우리를 향해 우리 형제의 가슴에, 우리 부친의 목에, 또는 임신한 내 아내의 배에
단검을 꽂으라고 명령한다면, 비록 본의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못 할 짓은 없노라.
  --루카수스, "파르사르스" 제 1 편 37__38행

  신분과 재산의 불평등, 정념과 재능의 차이, 무익한 기술과 해로운 기술, 보잘것없는
학문으로부터 이성에도 위배되고 행복과 덕에도 한결같이 위배되는 무수한 편견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는 집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분리시켜 약하게 만들 수 있다면, 겉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듯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분열의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이라면, 또한 권리나 이해의
대립을 통해 여러 계급들에게 서로의 불신과 증오감을 불어넣음에 따라서 그 여러 계급을
억압하는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조장하는 통치자들도 볼 수
있다.
  바로 이 무질서의 변혁 속에서 그 추악한 머리를 내밀게 되는 전제정치는 국가의 어느
부문이건 훌륭하고 건전한 것이 눈에 띄면 닥치는 대로 삼켜버려 마침내는 법률과 국민까지 발
아래 짓밟고 국가의 폐허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 최후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기대는 혼란과 재해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전제정치라는 괴물이 모든 것을 삼켜 버려 인민은 이미 통치자도 법률도 갖지 못하게 되고 오직
전제군주만을 갖게 된다. 이 순간부터는 풍습이나 미덕이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명예에
대하여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전제정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전제군주 이외에는 다른
어떤 주인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제정치가 입을 열자마자, 거기에는 고려해야 할 성실이나
의무는 이미 없고 극도로 맹목적인 복종만이 노예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미덕이 된다.
  이것이 불평등의 마지막 도달점이며, 한 바퀴 돌아서 우리가 출발한 기점에 닿게 되는 종국의
지점이다. 여기서는 모든 개인이 다시 평등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이며 신민은 벌써
주인의 의지 이외에는 아무런 법률도 갖지 않고, 주인은 자기의 정념 이외에는 아무 규범도 갖지
않으므로 선의 관념이나 정의의 원리가 다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는 모든 일이
다만 최강자의 법률로, 다시 말하면 하나의 새로운 자연상태로 환원되어 있는데, 이 자연상태가
이전의 자연상태와 다른 점은, 후자가 순수한 자연상태인 데 비해 전자는 지나치게 부패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상태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정부의 계약은 전제 정치에 따라 파기되어
있으므로, 전제군주는 자기가 최강자로 있는 동안만 지배자이며, 사람들이 그를 추방하려고
한다면 그는 그들의 이러한 폭력에 대해 전혀 저항할 수 없게 된다.
  술탄(24)을 죽이거나 퇴위시키는 폭동도, 그가 전에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제멋대로 처리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행위이다. 오직 힘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으므로 그를 타도하는 것도
힘뿐이다. 모든 일은 이와 같이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빈번한 혁명의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아무도 타인의 부정을 한탄할 수 없으며, 다만 자기 자신의 경솔과 그
불행을 한탄할 뿐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을 자연상태에서 사회화 상태로 이끌었음에 틀림없는, 망각되고 상실된
행로를 찾아내고 추적한다면, 내가 방금 보여준 중간적인 상태들과 더불어 시간에 쫓겨
생략했거나 나의 상상이 미치지 못한 상태들을 복원한다면, 조심스러운 독자는 누구나 이 자연과
사회의 두 상태를 떼어놓는 광대한 공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다름 아닌 이러한 완만한 연속운동 속에서 철학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인간들도 서로
다르므로, 독자들은 디오게네스(25)가 인간을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존재하기 이전 시대의 인간을 자기와 같은 시대의 인간 속에서 찾았던 데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독자들은, 카토(26)는 자기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못 되었기 때문에 로마 및 자유와
함께 멸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위대했던 이 인물은 5백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다만 세계를 놀라게 하는 데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정신과 정념이 얼마나 부지불식간에 바로 자신들의 본성을 변질시키는지, 왜
우리의 욕망과 쾌락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새로운 대상을 원하는지, 어찌하여 원초적인 인간이
점차 소멸돼 가고 사회가 우리들의 눈에 이들 모든 새로운 관계의 산물이자 자연 속에 아무런
참된 토대도 갖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인간과 거짓 정념의 결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인지를
독자들은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가 반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관찰에 따라 완전히 확인할 수 있다. 즉
미개인과 문명인은 심정과 기질이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한쪽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것이 다른 쪽은 절망에 빠뜨릴 정도다. 전자는 다만 안식과 자유만을 호흡하고 무위도식만을
바란다. 그런가 하면 스토아 학파의 완전한 평정(아타락시아)까지도 미개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문명인은 어제나 활동적이고 땀을 흘리면서 돌아다니며, 더욱 힘든 일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한다. 때때로 살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는 경우도
있으며, 불후의 명성을 얻기 위해 삶을 버리기도 한다. 그는 자기가 미워하는 권력자나 경멸하는
부자들에게 아첨하여 그들로부터 봉사하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어떤 일도 마다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비열함과 그들의 보호를 의기양양하게 자랑한다. 그리고 자기의 노예상태를 과시하고
그런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유럽의 대신들이 하는 일--비록 힘은 들지만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은 카리브인에게 과연
어떻게 보일 것인가? 이 게으른 미개인은 선행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을 가지고도 위안 받을 수
없는 그같은 두려운 생활보다는 차라리 비참하게 죽는 것을 선택하리라. 그러나 카리브인들의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권력과 명성에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신 속에서 '권력'과 '명성'이라는 말이 일정한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며, 또
자기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판을 상당히 중요시하여 자기 자신보다 오히려 타인이 입증해 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것이다.
  사실상 이 모든 차이의 진정한 원인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즉 미래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의 외부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은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27)
  그토록 훌륭한 도덕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경향으로 말미암아 선악에 대해
그렇게까지 무관심하게 되어 버렸으며, 그 어느 것이나 외관만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명예나
우정이나 도덕, 그리고 때때로 악덕까지도 그것을 자랑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하게 되어,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인공적이고 가식적이 되어 버렸는가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요컨대 그처럼 많은 철학이나 인간애나 예절이나 숭고한 격언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언제나
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타인에게는 던지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묻지 않으며, 기만적이고
경박한 외관, 즉 덕이 없는 명예, 지혜 없는 이성, 행복 없는 쾌락을 갖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따지는 것은 나의 주제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것은 조금도 인간의 본원적인
상태가 아니며, 이와 같이 우리의 자연적인 경향을 모두 변형, 변질시키는 것은 사회의 정신과
사회가 낳은 불평등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나는 불평등의 기원과 발전, 정치적인 사회의 성립과 폐해를, 인간의 본성에서 연역할
수 있는 한, 오로지 이성의 빛에 따라 그리고 통치권에 대해 신권의 재가를 내리는 신성한
교의와는 무관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을 통해 우리는, 불평등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정법에 따라서만 인정되는 인위적 불평등은,
그것이 신체적 불평등과 균형이 잡히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나 자연법에 위배된다는 결론도
나오게 된다.
  이러한 구별은 모든 문명국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불평등의 형태를 이 점과 관련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해답을 내려준다. 왜냐하면,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건 간에, 아이들이 늙은이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인간을 지도하거나,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활 필수품도 손에 넣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만
흥청거리며 살아가거나 하는 등등은 모두 분명히 자연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역주
  (1) 사회적인 불평등의 기원이 사유재산제도에 있음을 암시한 루소의 이 말은 후세에 자주
인용되는 명구이다.
  (2) 선사시대의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최초의 집단생활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화 이전
상태로, 아직 본업도 생기지 않았다.
  (3) 영국의 철학자, 정치학자(1632__1704년).
  (4) 로크, "인간오성론" 제 4 편 제 3 장 제 18 절 참조.
  (5) 이것은 루소의 유명한 말이다. 금과 은은 야금술과 사유제도와 시회에서 비롯되며, 사회의
폐해를 상징한다. 디드로도 "백과전서" 의 '농업' 항목에서 농업이 소유권의 기원과 일치된다고
주장했다.
  (6) 네덜란드의 법학자(1583__1645년).
  (7) 그리스의 여신 데메트르의 로마 명칭으로, 농업과 법률의 여신.
  (8) 기원전 5세기경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가 영광 속에도 위험이 따름을 가르치기
위해 신하 다모클레스의 머리 위에 말총으로 검을 늘어뜨렸다고 한다.
  (9) 고대 스파르타의 전설적 입법가.
  (10) 라 퐁텐, "우화" 제 6 편 제 8 화.
  (11) 로마 제정기의 장군, 정치가, 학자.
  (12) 기독교도를 박해한 로마의 황제(53?__117년).
  (13) 이란의 옛 도시, 다리우스 1세 이래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 당시에 문화의 황금기를
자랑했다.
  (14) 타키투스, "역사" 제 4__17 장 참조.
  (15) 프랑스의 법학자(1674__1744년).
  (16) 독일의 법학자(1632__1694년).
  (17) 푸펜도르프, "자연법과 만민법" 제 7 편 제 3 장 제 1 절 참조.
  (18) 60세 이상으로 구성된 원로원.
  (19) 영국 귀족을 뜻한다.
  (20) 여기에서도 당시의 귀족제도에 대한 루소의 비판을 볼 수 있다.
  (21) 루소는 여기서 이미 나중에 쓰려고 한 "정치제도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 "정치제도론"은 완성하지 못하고 대신 "사회계약론"을 썼다.
  (22) 직업 군인을 말한다.
  (23) 군인이나 귀족의 결투에 관한 법령.
  (24) 이슬람 세계의 전제적인 통치자의 칭호.
  (25) 그리스의 철학자. 그는 인간의 부와 사회의 관습을 무시하고 나무통 속에서 살았다.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아테네 시내를 다니면서, "나는 인간을 찾고 있노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BC 412?__323년).
  (26) 로마의 정치가(BC 95__46년).
  (27) 여기에서 루소는 불평등에 따라 구성된 사회에서의 왜곡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기 자신 밖에서만 머물면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인간에 대하여, 루소는 그의 모든
저작을 통하여, 인간은 다시 한 번 자기 안에 있는 풍요로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주(괄호 없는 주)
   주에 대한 주의

  나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일하는 게으른 습관에 따라 이 작품에 몇 가지 주석을 달았다.
때때로 이 주석들 가운데는 주제에서 동떨어져 본문과 함께 읽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본론 끝으로 돌려, 본론에서는 가능한 막힘없이 논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시 한 번 읽어 볼 용기가 있는 사람은 이번에는 뭔가 찾아낸다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주를 훑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주석을 전혀 읽지 않아도 거의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바치는 글
  1. 헤로도토스(그리스의 역사가, BC 484?__425?년)의 말에 따르면, 가짜
스메르디스(페르시아 왕 키로스의 차남으로 형 캄비세스에게 피살되었는데, 그의 죽음이 비밀에
붙여졌으므로 많은 사기한들이 스메르디스라는 이름을 도용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다리우스에게
살해된 '가우마타'라는 승려를 가리킴)가 살해된 뒤로 7인의 페르시아 해방자(1)가 국가의 정부
형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모였을 때, 오타네스는 공화정치를 찬성했다고 한다. 그가 태수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다. 특히 그가 자기의 지배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은 자기가 국민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를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당연한 결과로, 오타네스의 말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동이 한 사람의
군주를 선출하려는 것을 목격한 그는, 복종하는 것 못지 않게 명령하는 것도 원치 않았으므로,
왕위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기꺼이 다른 경쟁자들에게 양보하고 그 대가로 자기와 자기 자손들이
자유롭게 독립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만을 바랐다. 마침내 그는 그렇게 하도록 승인을 받게
되었다.
  설사 헤로도토스가 이 특권에 가해진 제한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제한은 반드시
상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았던들 오타네스는 어떤 법률도 인정하지 않고 그 누구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는 국가 안에서 전능해지고 국왕보다 더 강력한 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그 정도의 특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그 특권을 남용했을 리는
없을 듯하다. 실제로 현자 오타네스나 그의 어떤 자손이 이 권리를 남용하여 왕국 내부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은 전혀 들지 못했다.

   머리말
  1. 나는 처음부터 철학들이 존중하는 저 권위 있는 주장의 하나를 믿고 이에 따르기로 한다. 그
권리가 철학자들만이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견실하고 격조 높은 이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아는데 아무리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는 각자 자기보존만을 위한 기관을
자연으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계의 인상을 받아들이는 데만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기를 밖으로 확장하고 자기 밖에서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감관의 기능을
증가시키고 우리 존재의 외면적인 영역을 확대하기에 분주한 나머지, 우리는 자기의 진정한
위치를 되찾아 자기를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모든 것과 구별하는 내적인 감각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알려면 반드시 이 감각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감각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까? 이 감각이 자리하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정신이 갖는 모든 미망에서
구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영혼을 사용하는 습관을 잊고, 영혼은 우리의 혼란스러운 육체적
감각에 정신을 빼앗겨 항상 활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의 정념이 내뿜는 불길 때문에 메말라
버렸다. 심정, 정신, 감각 등 모든 것이 영혼에 반하여 활동하고 있다."(뷔퐁(2), "박물지"중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제 1 부
  1. 두 발로 걷는 오랜 습관 때문에 인간의 구조에 생겼을지도 모르는 변화나 인간의 팔과
네발짐승의 앞발 사이에 지금도 볼 수 있는 관계, 또는 그들의 걸음걸이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했다. 어린애들이 네
발로 걸어 다니는 데서 시작하여 직립보행을 배우려면, 우리의 시범과 가르침이 필요하다.
호텐토트족(3)처럼, 아이들을 멋대로 팽개쳐 두고 상당히 오랫동안 손으로 걷게 하기 때문에
직립보행을 익히는 데 무척이나 고생하는 미개 민족도 있다.
  서인도 제도에서 살고 있는 카리브인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네발 가진 인간의 예도 많이
있지만, 나는 그 가운데서도 1344년에 헤센 근처에서 발견된 어떤 아이의 예를 들 수 있다.
늑대들에게 양육되었던 그 아이는 하인리히공의 궁정에서, 만일 자기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면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느니 늑대들의 무리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들처럼 네 발로 걸어다니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으므로 그로 하여금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균형을 잡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기 하나를 마련해 주어야만 했다.
  1694년에 리투아니아의 숲속에서 발견된, 곰들과 함께 살고 있던 어린이도 마찬가지였다.
콩디약에 따르면, 그 소년에게서는 이성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손발을 다 이용해
걸어다니고 말할 줄도 몰랐으며 인간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한다. 몇 해
전에 영국 궁정으로 데리고 온 하노버의 미개인 아니는 두 발로 걷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피레네에서는 1719년 미개인 두 명이 발견되었는데 그들도 네발짐승처럼 산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많은 이득을 보고 있는 두 손의 사용을 스스로 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론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한 주장은 원숭이의 예를 들어 반박할 수 있다. 원숭이는
손을 두 가지로 사용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례는 인간은 자연이
정해준 것보다 더 편리하게 자신의 손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이, 인간은 자연이 가르친 바와 다른 방식으로 걷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두 발 가진 짐승임을 주장하는 데는 훨씬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듯이
생각된다. 첫째로 지구상에 최초로 나타난 인간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달랐으나 차차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왔다는 점을 입증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뒤에는 그 변화를
인정하기에 앞서 적어도 그것의 진실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팔이 필요에 따라서는 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론에 적합한 단 하나의 관찰일 뿐이며, 이와는 반대되는 다른 관찰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것으로는, 먼저 인간이 네 발로 걷게 되면 몸통 위에 머리가 붙어
있는 다른 모든 동물들의 경우나 인간이 서서 걸어다닐 때처럼 시선을 수평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면으로 향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개체의 보존에는
대단히 불리한 자세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달려 있지 않고 두 발로 걷는 데 별로 쓸모없는 꼬리가 네발 짐승에게는
유용하여 그들 모두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과, 또한 부인의 젖통은 자식을 팔로 껴안는
두발 짐승에게는 알맞은 위치에 있지만 제발 짐승에게는 매우 거북하므로, 젖통이 그런 위치에
있는 네발짐승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 또한 후반신이 앞발에 비해 높게 솟기 때문에 네 발로
걸을 때는 무릎을 꿇게 되므로 전신의 균형을 잡기 어려워 결국 걸음걸이가 어색한 동물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인간이 손과 마찬가지로 발을 땅에
밀착시키면 다른 동물에 비해 뒷발의 관절이 하나 적게 된다는 것, 즉 관골을 경골에 결합시키는
관절이 모자라게 되리라는 것과 결국 부득이하게 발끝만 땅에 붙이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부골은--그것을 구성하는 뼈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관골
대용이 되기에는 너무 굵고 또 척골과 경골의 관절이 너무 접근하여 이 위치에서도 인간의 발이
네발짐승의 발과 마찬가지로 유연성을 갖지 못하리라고 생각되는 점 등이 문제가 된다. 자연의
여러 가지 힘이 아직 조금도 발달되지 못하고 손발도 강하지 못한 나이의 아이들을 예로 들어
보아도 거기서는 아무런 결론도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도 두 발로 걷도록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개들은
나면서부터 몇 주일 동안은 기어다니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개개의 특수한 사실은 인간의
보편적인 습관에 거스르는 힘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민족과 아무런 교류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간에 아무런 모방도 할 수 없었던 민족들의 경우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아직 걷지 못하는 동안에 숲속에 버려져 짐승에게 양육된 아이는 자기를 양육한 짐승의
본보기에 따라 걷는 연습을 했을 것이다. 습관은 그가 자연으로부터 받지 않은 능력을 그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이 연습에 따라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을
무엇이나 발로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드디어 손을 발과 마찬가지로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 1 부
  2. 만일 독자들 가운데 이와 같은 기름진 땅을 가정하는 내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심술궂은 과학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구절로 대답을 대신하려고 한다.
  "식물은 그 양분으로서 땅에서보다 공기나 물에서 훨씬 많은 물질을 흡수하므로 그 식물이
썩게 되면 땅에서 흡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땅에 되돌려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숲은 물기를 보존하여 홍수를 막아준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오랫동안 말을
들여놓지 않아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된 숲속에는 식물을 위해 유용한 지층이 크게 증대될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땅에서 이득을 보는 것보다 땅에 돌려주는 것이 적으며 인간은 불이나 그 밖의
용도를 위해 목재나 초목을 많이 소비하므로, 그 결과 사람이 사는 지역의 식물 지층은 끊임없이
감소되어 마침내 중앙 아라비아나 근동지방처럼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이 근동 지방은 사실상
먼 옛날부터 인간들이 거주해 왔지만 소금과 모래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식물이나
동물의 모든 다른 부분은 기화되어 버리는 데 비하여 비휘발성 염분만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박물지" 가운데 "지구 이론의 증거" 제 7 항)
그리고 이 몇 세기 사이에 발견된 거위 모든 무인도가 갖가지 종류의 많은 초목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과, 지구의 새로운 지역이 개척되고 사람들이 이주해 옴에 따라 지상의 도처에서
광대한 삼림을 베어내야 했다고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내가 말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아울러 나는 다음의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만일 뷔퐁의 추리에 따라 동물에 의한
식물질의 소모를 보상할 수 있는 식물이 있다면, 그것은 특히 삼림 속에 있는 수목이며 그
가지와 잎이 모여 다른 식물보다 많은 수분과 수증기를 흡수하는 식물이라는 것.
  둘째로 토양의 파괴, 즉 식물에 적합한 물질의 손실은, 토지가 점점 개간되어 한층 근면한
주민들이 갖가지 종류의 산물을 다량으로 소비하는 데 비례하여 증대되리라는 것.
  셋째로 더욱 중요한 사실은, 과일은 다른 식물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풍부한 자양을
동물에게 공급한다는 점이며, 이것은 내가 직접 시험해 보았다. 즉 같은 넓이와 토질을 갖춘 두
곳의 토지에, 한쪽에는 밤나무를 심고 다른 쪽에는 보리를 심어 그 소득을 비교해 보았다.

   제 1 부
  3. 네발짐승 가운데 육식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의 생김새로, 또 하나는 장의 구조로 보아 알 수 있다. 식물만으로 살아가는 동물은 말, 소, 양
토끼처럼 모두 평평한 이를 갖고 있지만 육식동물은 고양이, 개, 늑대, 여우들처럼 뾰족한 이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장에 대해서는, 과일을 먹고 하는 동물은 육식동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결장과 같은 것을 여러 개 갖고 있다. 인간은 과일을 먹는 동물과 같은 치아와 장을 갖고
있으므로, 본래 이 부류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해부학적인 관찰이 이 견해를 증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기념물도 이 견해를 크게 뒷받침하고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4)는 말한다. "디카이아르코스(5)는 고대 그리스에 관한 저술에서 대지가 아직
비옥했던 사투르누스 왕의 치세 아래서는 아무도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누구나 자연에서 나는
과일이나 야채로 살아갔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견해는 근대의 몇몇 여행가의 견문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프랑스와 코레알의
증언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이 쿠바나 산토 도밍고나 그 밖의 섬들로 이주시킨 바하마 제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이것으로도 내가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이점을 등장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먹이가 육식동물 사이에서는 거의 투쟁의 유일한 이유가 되어 있으며
과일을 먹는 동물은 언제나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므로, 만일 인류가 이 후자의 종류에
속해 있다면 인류에게는 자연상태 속에서 살아가기가 훨씬 쉬우며 그 자연상태에서 벗어날
필요나 기회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제 1 부
  4. 미개인들은 반성을 요구하는 모든 지식, 관념의 연결에 따라서만 얻게 되며 지속되지 않으면
완성을 보지 못하는 모든 지식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미개인들은 이웃들과 서로
연락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 연락에 유용한 도구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욕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지식과 생산 활동이란, 뛰고 달리고 싸우고 돌을 던지고 나무에 기어오르는 일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일밖에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을 그들처럼 필요로
하지 않는 우리보다 훨씬 잘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은 주로 신체의 훈련에 의존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습시킬 수 없고 발달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최초의 인간이나 최후의 자손이 똑같은
수준으로 숙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가들의 견문록에는, 야만족이나 미개 민족들의 억센 힘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관찰하는 데는 눈만 있으면 되므로 현장 목격자의 증언을
확인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 나는 마침 손에 잡히는 책에서 몇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코르벤(6)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호텐토트인들은 케으프타운의 유럽인들보다 어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물을
던지거나 낚시질을 하거나 작살로 찌르는 솜씨가 해변이나 강 어디서고 능숙하다. 그들의 수영
솜씨는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데, 그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재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몸을 똑바로 하고 두 손을 밖으로 벌리면서 헤엄을 친다. 그러므로 마치 지상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의 물결이 매우 사나워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그들은 한 조각
코르크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파도에 실려 유연하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호텐토트인들은 사냥 솜씨에도 놀랄 만하며, 그들의 경쾌한 주력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이다."
  이 저자는 그들이 이렇게 민첩한 힘을 별로 악용하지 않는 데 놀라고 있다. 하긴 그가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데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가끔 탈선도 한다.
  "어느 네덜란드의 선원이 케이프타운 희망봉에 상륙하여 한 호텐토트인에게 약 20파운드의
담배를 가지고 시내까지 오라고 일렀다. 두 사람이 일행에게서 얼마간 떨어졌을 때 그
호텐토트인은 선원에게 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잘 뛸 수 있지요' 하고 그 선원은
대답했다.
'그럼 어디 겨루어 볼까' 하고 그 아프리카인이 말하고 나서 담배를 갖고 달음질을 치더니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선원은 그 재빠른 발에 놀라 감히 뒤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담배도 그 운반인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유럽인이 흉내도 낼 수 없는 날카로운 시력과 정확한 손을 갖고 있다. 백 보나 떨어진
곳에서 돌을 던져 반 수(sou) 동전 만한 크기의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킨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그들은 우리들처럼 눈을 들어 목표물을 주시하지 않고 언제나 몸을 움직이거나 뒤트는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돌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운반되는 것 같다."
  희망봉의 호텐토트인에 대해 방금 한 말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테르트르 신부(7)가 서인도
제도의 미개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그들이 날아 다니는 새나 헤엄치는 물고기를
정확히 쏘아 맞히는 것에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물에 뛰어들어 그 물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북아메리카의 미개인들도 그 힘과 슬기로운 솜씨로 유명하다. 그리고 다음의 한
예는 남아메리카 인디언의 힘과 능란한 솜씨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17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떤 인디언이 카디스에서 노예선을 타야 하는 형벌을 받고 제례
때에 자기 목숨을 내거는 모험을 하여 자유를 손에 넣겠다고 총독에게 제의했다. 즉 그는 손에
밧줄 하나밖에는 아무런 무기도 갖지 않고 혼자서 사나운 황소를 공격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황소를 쓰러뜨려 밧줄로 결박하고 안장을 얹은 다음 고삐를 매어 타고
다니겠다고 했다. 그리고 트리로(8)에서 뛰쳐 나오는 황소 가운데 가장 사나운 두 마리의 황소와
싸워, 지정된 순간에 두 마리를 차례로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드디어 그에게 허락이 떨어졌다.
그 인디언은 약속을 지켰다. 그가 어떻게 행동했으며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고티에의 "박물지고" 제 1 권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

   제 1 부
  5. 뷔퐁은 이렇게 말한다.
  "말의 수명은 다른 모든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성장 기간의 길이에 비례하고 있다.
인간은 성장하는 데 약 14년이 걸리므로 그 기간의 6__7배, 즉 90년에서 100년쯤 살 수 있다.
말은 4년 걸려 성장하므로 그 6__7배, 즉 25년에서 30년까지 살 수 있다.
  이 기준에 위배되는 실례는 매우 드물며, 혹 그런 예가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예외로 간주해야지, 거기서 어떤 결과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뚱뚱한
말은 갸름한 말보다 성장 기간이 짧으므로 그들이 사는 기간도 짧아, 15년만 되면 노마의 행세를
한다. ("박물지" 가운데 "말에 대하여")

   제 1 부
  6.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사이에는 내가 앞의 주 3에서 지적한 것보다도 더 일반적인 다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차이는 조류에게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새끼들의 수로 이루어지며, 초식동물은 한 배에 두 마리를 넘지 않지만 육식동물은 대체로 이
수보다 많다.
  이점에 대해서는 젖통의 수를 보면 자연의 목적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것은 말이나 소나
산양, 사슴, 염소와 같은 종류의 암컷들은 젖통이 둘밖에 없지만 개나 고양이, 늑대, 호랑이와
같은 종류의 암컷들은 여섯 개 또는 여러 개의 젖통을 갖고 있다. 닭이나 거위나 오리도 솔개나
매, 올빼미 등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육식 조류로, 이들 역시 많은 알을 낳아서 부화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비둘기나 꿩처럼 절대로 곡물밖에 먹지 않는 조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조류는 한 번의 산란기에 두 개 이상의 알을 부화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하여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풀이나 나무만으로 살아가는 동물은 거의 하루 종일 풀밭에서 떠나지 않고 있으며 영양
섭취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많은 새끼들에게 젖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육식동물은 거의 순식간에 식사를 마치므로 보다 쉽사리 그리고 보다 자주 새끼들이 있는
곳이나 먹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또한 많은 젖의 소모도 회복시킬 수 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많은 특별한 관찰과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계제가 못 되며
나로서는 이 부분에서 자연의 가장 일반적인 체계, 즉 인간을 육식동물의 부류에서 끄집어 내어
과일을 먹는 동물로 간주하는 하나의 새로운 이유를 획득한 체계를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제 1 부
  7. 어떤 유명한 저자는 인간이 일생 동안에 행한 선과 악을 계산하면 악이 선을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 그리하여 결국 인생은 인간에게 그다지 좋은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결론에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논의를 숙명 속의
인간으로부터 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추론이 자연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던들
그는 상당히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아울러 인간은 스스로 초래한 것 이외에는 악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연의 정당성도 입증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이처럼 불행하게 만든 과정에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막대한 사업들--방대한 학문 연구, 수많은 기술의 발명, 막대한 노력이 소요된 심연매립과 산을
깎고 바위를 쪼개고 운하를 만드는 등의 대역사, 토지 개간, 호수 개착, 소택지의 간척, 거대한
건물의 축조, 바다를 덮고 있는 거대한 배의 건조 등등--을 생각할 때,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이 모든 것에서 비롯된 참된 이들을 조금이라도 깊이 연구해 볼 때, 이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불균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인간의 무분별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분별하게도 인간은 어리석은 교만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자기 예찬을 위해, 호의적인
자연이 친절하게 그들로부터 멀리 있도록 한 모든 참상을 오히려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악하다. 슬프고도 연속적인 체험에 따라 이를 증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나는 그러한 사실을 증명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이토록 타락하게 한
것은, 그의 체질 속에 일어난 변화와 그가 이룬 진보, 그리고 그가 획득한 지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인간 사회를 얼마든지 찬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함에 따라 서로 미워하며 표면상으로는 상부상조하나 사실은 서로 가능한
모든 해독을 끼치도록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공공의 이성이 사회라는 집단에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격률을 각 개인의 이성이 그들
자신에게 강요하고, 각자가 남의 불행 속에서 자기의 이익을 찾는 상호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부유한 사람으로서, 탐욕스러운 상속인들이나 때로는 자기 자식까지도 은근히 그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자는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가운데서, 그 난파
소식을 어떤 상인도 반기지 않을 그런 배는 한 척도 없을 것이다. 악의를 지닌 채권자가 집 앞에
있는 일체의 서류와 함께 불에 타 죽기를 바라지 않는 채무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웃
민족의 재해를 기뻐하지 않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동포의 손해 속에서 자기 이익을 발견하고, 한 쪽의 파멸은 거의 언제나
다름 쪽의 번영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위험한 것은, 공공의 재해를 많은
개인들이 기대하고 희망한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사람은 병을, 어떤 사람은 죽음을, 어떤 사람은
전쟁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풍년이 들 징조를 보고 슬퍼하는 무서운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많은 불행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잃게 한 처참한 런던의 대화재(9)로 말미암아, 아마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몫 챙겼을 것이다. 아테네인 데마데스(10)가 한 번은 관을 비싸게 팔아 시민들이
죽음을 이용해 큰 돈을 번 어느 목수를 처벌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몽테뉴가 비난한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몽테뉴가 내세우는 논거는, 그렇게 하면 다른 여러 사람도 모두 처벌해야
된다는 데 있으므로, 그것은 분명히 내 증거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보잘것없는 표면적인 친절을 넘어서 마을 한 구석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한편 서로 파멸시켜야 하며, 또한
그들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적이 되고, 이해 관계의 충돌로 말미암아 사기꾼이 된다는 상태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 누가 나에게 사회는 각자가 타인에게 봉사함으로써 이득을 보도록 되어 있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이에 대해 해를 끼침으로써 더욱 많은 이득을 얻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적어도 정당한 이익이 부당한 수단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능가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그리고 이웃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손해는 언제나 봉사보다 실속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처벌에서 벗어날까 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이를 위해 강자는 온갖 힘을 기울이고
약자는 모든 책략을 생각하게 된다.
  미개인은 식사를 마치면 자연 전체와 친밀해지며 모든 동포를 친구로 삼는다. 때때로 먹이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미리 상대를 넘어뜨리는 어려움과 밖에는 음식을 찾아내는
어려움을 비교한 다음이 아니면 결코 주먹다짐까지 이르지 않는다.
  그리고 투쟁 속에는 교만이 들어와 박히는 일이 없으므로 두세 번 주먹질을 하고 그만두게
마련이다. 이긴 자는 먹고 진 자는 다른 데로 먹을 것을 찾으러 감으로써 모든 일이 해결된다.
그러나 사회 속의 인간에 있어서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즉 그들에게는 우선 생활 필수품을,
다음에는 사치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뒤에는 환락에 이어서 엄청난 부와 시종과
노예가 따른다. 그는 잠시도 쉴 수 없다. 더욱 기묘한 것은 욕망이 자연적이고 절박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정념이 점점 고조된다는 점이며, 더욱 나쁜 것은 그것을 만족시키는 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번영하여 많은 재보를 삼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뒤에, 우리의
주인공은 드디어 모든 것을 착취하여 세계의 유일한 주인이 될 것이다. 이상이 요컨대 인생의
아니 적어도 모든 사회화된 인간 심정의 은밀한 요구를 묘사한 것이다.
  사회인의 상태를 미개인의 상태와 편견없이 비교해 보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회인이 그
사악한 욕망과 참상 이외에 고통과 죽음을 향해 얼마나 많은 문호를 개방해 놓았는가를 연구해
보라.
  만일 우리를 소모시키는 정신적인 고통, 우리를 피곤하게 하여 괴롭히는 걱정,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있는 과도한 고통,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핍되어 있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지나쳐서 탈이 되고 마는 위험한 안일, 이런 것들에 대하여 반성한다면,
그리고 음식물의 비정상적인 혼합, 해로운 조미료, 썩은 식료품, 변조된 약품, 그것을 파는 자들의
사기 행위, 그것을 복용시키는 자들의 과오, 그것을 조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기의 독,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둔다면, 당신은 자연의 교훈을 경멸한 대가가 얼마나 값비싼 것인가를 너무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취약한 생활양식이나 집 안팎을 드나드는 데서 생기는 질병, 또는 너무 조심성 없이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의 사용법이나 우리의 지나친 정욕 때문에 필요한 습관이 되어 버려
그것을 등한시하거나 그것이 결여되면 결국은 생명 또는 건강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 등에 유의할 때, 그리고 많은 도시를 전멸시키거나 전복시켜 몇천 명이나 되는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화재나 지진을 고려에 넣는다면, 즉 이 모든 원인이 끊임없이
우리의 머리 위를 위협하는 위험들을 생각해 볼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서 전쟁에 대해서는, 다른 데서 언급했으므로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 군대의 군수물자 담당자나 병원의 청부업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비리의 상세한 내막에 대해,(11) 한번 대중에게 알렸으면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는 그들의 협잡은, 가장 훌륭한 군대일지라도 순간적으로 와해시킬 수 있으며 적의 칼에
쓰러진 것보다 더 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백일하에 드러낼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항해 중에 기근이나 괴혈병, 해적, 화재, 파선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게 놀라운 수에 이르고 있다. 말살, 독살, 납치 등의 범죄에 대한 조치도 역시
명백하게 사유제의 탓, 따라서 결국은 사회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처벌은 더욱 큰
악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살해를 위해 둘 또는 그 이상의 인명을 잃게
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인류의 손실을 배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출생을 방해하여 자연을 속이는 수치스러운 수단(12)이 얼마나 성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자연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을 모독하는 저 기만적이고 타락한 취미, 미개인도 동물도
알지 못했으나 문명국에서 오로지 부패한 상상력에 따라 또는 방종과 불명예의 당연한 결과인
은밀한 낙태에 따라 또는 양친의 빈곤이나 모친들의 야만적인 치욕의 희생으로 수많은 아기들이
유기되거나 살해됨으로써, 또는 끝으로 자기 생존의 한 부분과 자손의 전부가 공허한 노래(13)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어떤 사람들의 잔인한 질투에 희생된 저 불행한
사람들의 거세에 따라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후자의 경우는 거세된 사람들이 받는
대우로 보나 그들이 이용되는 목적으로 보나 이중으로 자연을 모독하고 있다.
  그러나 부친의 권리가 공공연히 인간성을 모독하는 위험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부친들의 경솔한 속박 때문에 매장된 재능이나 강요된 자질이 얼마나 많은가! 알맞은 환경이
주어졌더라면 두각을 나타냈을 텐데, 자기가 전혀 달갑게 여기지 않는 환경에 놓였기 때문에
불행과 불명예 속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연의 질서와 배치되는 질서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그러나 서로의 신분이 다른 결혼이 얼마나 무수하게 좌절되거나 방해받았으며,
그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정결한 아내들이 오욕을 덮어써야 했는가!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성실하고 덕망 높은 부부까지도  서로 어울리는 배우자가 되지
못하여 피차에 괴로움을 주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불행한 젊은이들이 그들 부모의 탐욕에
희생되어 악습에 빠지거나 눈물로 나날을 보내며, 마음속으로는 배격하는 황금으로 야기된
벗어날 수 없는 속박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일까.
  야만스러운 폭력 때문에 일생을 죄책감과 절망 속에서 보내기보다 자기의 용기와 미덕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들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영원히 측은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여, 나를 용서하십시오.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들의 고통에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권 가운데서 가장 신성한 것을 자연의 이름을 빌어 벌하려는 자에 대해 당신들의
고통이 영원토록 두려운 선례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우리 사회 조직의 소산인 이와 같은 잘못된 결합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과 동정이 지배하는 결합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만일 인류가 근원에 있어서 그리고 모든 관계 가운데서 가장 신성한 일(결혼)에 있어서까지
부당한 침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벌써 재산과 의논한 뒤가 아니면 구태여 자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사회의
무직서가 미덕과 악덕을 혼동하고 있으므로 절제는 조심스러운 죄악으로 간주되고, 동포에게
생명을 주려 하지 않는 것이 인도적인 행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두려운 광경을 은폐하고
있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치료해야 할 악을 제시하는 데 그치기로 하자.
  이상에서 밝혀진 것 외에도 광산 노동, 그리고 납, 구리, 수은, 코발트, 비소, 계완석 등의
광물이나 금속의 제조와 같이 수명을 단축하거나 체질을 파괴하는 수많은 건강치 못한 직업이
추가될 수 있다. 그 밖에 와공, 목공, 미장이, 석공 등 많은 노동자의 생명을 날마다 좀먹고 있는
위험한 직업을 추가해 보자. 그리고 그것들을 한데 모아 보라. 그렇게 하면 많은 철학자들이
관찰하고 있는 종(인간을 말함)이 감소되는 이유를, 사회의 성립과 완성 속에서 찾아내게 될
것이다.
  사치는 안일함을 추구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열망하는 사람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이윽고 그것은 이 사회가 배태한 약을 완성한다. 그리고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가난뱅이를 먹여 살린다는 구실 아래 사치는 여타의 모든 사람들을 가난뱅이로 만들며 머지않아
국가의 인구를 감소시킨다.
  사치는 악을 치유한다고 하지만 그 악보다 훨씬 나쁜 치료법이다. 아니 사치는 그 자체가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어떤 국가에서나 모든 악 가운데서 최악의 형태이며, 그 자체가 창출해 낸
무수한 종복들이나 부랑자들을 기르기 위해 시민과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파멸시킨다. 그것은
마치 해충으로 하여금 푸른 초목을 파먹게 하여 동물의 유일한 먹이를 앗아감으로써 곳곳에
기아와 죽음을 가져오게 하는 남방의 열풍과 같은 것이다.
  사회와 사회가 발생시킨 사치에서, 미술, 공예, 상업, 학문, 기타 산업을 발달시켜 국가를
풍요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그 사회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모든 무용지물이 생겨난다. 이러한
파괴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농업은 그 성질상 모든 기술 가운데서 가장 실속이 없다는 것은
쉽사리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농산믈은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므로, 그 가격을 사장 가난한
자들의 능력과 균형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규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기술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 기술의 유효성에 반비례하며, 가장 필요한 것이 결국은 가장 등한시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산업의 진정한 이익과, 그 산업의 발달에서 생기는 현실적인 효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장 훌륭한 국민일지라도 부유하기 때문에 빠지게 되는 모든 불행의 현저한
원인에 대해 말해 왔다. 산업이나 기술이 널리 보급되고 번성해감에 따라 농민은 더욱 멸시를
받고 사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부담하면서 노동과 굶주림 속에 일생을 보내게
마련인지라, 본래는 그들이 만들어서 도시에 공급해야 하는 빵을 구하러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간다. 그리하여 대도시가 인민의 어리석은 눈을 놀라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면
낼수록, 논밭은 버려진 채 땅은 황폐해가고 거리에는 불행한 시민들이 넘치는 광경을 보고 점점
개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시민은 거지나 노상강도로 전락하여 결국 언젠가는
극형을 당하거나 가난의 밑바닥을 헤매다 비참한 일생을 마감하게 될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국가는 한편으로는 부유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화되어 인구가 줄어들게 된다.
그 때문에 가장 강력한 군주국가도 부유해지는 동시에 인구가 줄어들어 마침내 가난한 다른
나라의 약탈 대상이 되고 만다. 이 가난한 국민은 그런 부유한 나라를 침략하려는 그릇된 유혹에
빠져 이번에는 이쪽에서 부유해지고, 이어서 무기력하게 되어 마침내는 또다시 다른 국민의
침략을 받고 멸망하기에 이른다.
  몇 세기 동안이나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횡행하던 야만인들의 대군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누가 한번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그처럼 수많은 인구를 갖게 된 것은 뛰어난
기술이나 발달된 산업, 훌륭한 법률이나 뛰어난 정치조직 때문일까? 이처럼 사납고 거칠며
지식도 억제력도 없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이 그렇게까지 크게 번식하는 대신에 목초나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살육을 저지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의 학자들이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즉 그런 보잘것없는 자들이 어떻게 그처럼 훌륭한 군사훈련과 그렇게 뛰어난
법률을 갖고 있는 슬기로운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서 우리 조상들에게 정면으로 대적하려는
대담성을 가질 수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끝으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 사회가 완성된 이래 또한 사람들이 그처럼 수고를 아끼지
않고 피차의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즐겁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한 이래,
그 나라들에서 일찍이 볼 수 있었던 사람들과 닮은 사람들을 이미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나는 누군가가 결국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즉 이 모든
위대한 것, 그러니까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기술이나 과학이나 법률 같은 것은, 마치 우리들에게
거주 공간으로 제공된 이 세계가 드디어 사람들이 거주하기에는 너무 비좁게 되어 버리지 않도록
종의 지나친 번식을 억제하는 유익한 페스트와 같은 것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를 파괴하여 내 것과 네 것을 다 없애 버리고 숲속에라도 들어가 곰과 함께 살아야 할까?
  이것이 나의 논적들이 흔히 쓰는 논법이지만, 나는 그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임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동시에 그에 대한 예방책도 마련하고자 한다.
  아, 하늘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자기들의 종을 위해 평화롭게 짧은 생애를 마치는 것
이외에는 아무 목적도 인정치 않는 여러분! 불길한 획득물, 불안한 정신, 부패한 심정, 터무니없는
욕심을 도시의 한복판에 버릴 수 있는 여러분! 아직도 그리 늦지는 않았으니 저 태고의 원시적인
순진성을 되찾도록 하자. 여러분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의 범죄를 보거나 기억하지
않기 위해 숲속으로 가도록 하자. 그리고 인류의 악덕을 버리기 위해 그 지식도 버림으로써
인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나와 같은 인간들은 어떠냐 하면, 그 정념이 원시의 순수성을 영원히 파괴해 버렸으므로
이제는 풀이나 도토리로 연명할 수도 없고 법률이나 통치자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최초의 조상(아담)이 살아 있을 때에 초자연적인 교훈을 받는 영광을 누린 사람들, 오랜 세월에
걸쳐서도 획득할 수 없었던 도덕성을 처음부터 인간 행위에 부여하기 위해 그 자체로서는 아무
가치가 없으며 다른 체계 속에서는 설명할 수도 없는 어떤 계율의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
요컨대 신의 목소리가 천상의 지혜가 발하는 광명과 행복에로 온 인류를 초대할 것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그런 사람들은 미덕을 배우면서 실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당연히
기대해도 무방한 영원한 상을 타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 성원이 되는 사회의 유대를 존중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동포를
사랑하고 힘을 다하여 동포에게 봉사할 것이다. 그들은 법률과 법률을 만들어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신중히 복종할 것이다. 특히 언제나 우리를 압도하려고 하는 저 무수한 폐해나 악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선량하고 현명한 군주들을 존경할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하거나
아첨하지 않고, 훌륭한 통치자들에게 그들의 일의 위대성과 그 의무의 엄숙함을 보여주고 그들의
열의를 고무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하여도 졸처럼 만날 수 없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사회 구성을 경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
구성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조심하여도 언제나 표면상의 이익보다 현실적인 재해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제 1 부
  8. 우리는 직접 자기 눈으로나 역사가의 저술 또는 여행가들의 기록을 통해, 피부가 검은
인종도 있고 흰 피부를 가진 인종도 있으며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은 길고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하다. 또 어떤 사람은
털투성이인데 비해 턱수염 하나 안 나는 사람도 있다.
  전에는--지금도 그럴 테지만--키가 엄청나게 큰 민족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과장에
지나지 않을 왜소한 민족(피그미족)의 이야기는 별도로 치더라도, 라포니아인(14)이나 특히
그린란드인의 평균 신장이 상당히 작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민족 전체가 네발 짐승처럼
꼬리가 달린 경우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헤로도토스나 크테시아스(15)의 견문을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이 진실에 가까운 의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즉 여러 민족이 현재와는 매우 다른 생활 양식에 따라 살아간 고대에 대해 충분한 관찰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신체의 형태나 습관 속에서 훨씬 많은 다양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명백한 증거를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이 모든 사실들도, 자기 주변의 사실밖에 보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기후나 공기, 음식, 생활양식 등의 다양성, 일반적으로 관습의 다양성이 보이는
강력한 효과, 그리고 특히 같은 원인이 몇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작용할 때 나타나는 놀라운
위력을 모르는 사람들만을 놀라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은 무역이나 여행 또는 정복이 여러 민족을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켜 그들의 생활양식은
빈번한 교류에 따라 끊임없이 닮아 가므로, 국민적인 차이가 어느 정도 감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컨대 오늘의 프랑스인은 예전에 라틴 역사가들에 의해 묘사된 바와 같이 살결이
희고 금발에다 커다란 몸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다만 주민의 체격이나
피부색에 대해서는, 로마인과의 접촉 때문에 기후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었던 특징이 역시
살결이 희고 금발인 프랑크인과 노르만인의 혼합과 아울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수한 원인이 인류 가운데서 발생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발생했던 다양성에 관한 이 모든
관찰은 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한다. 즉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거나 또는 겉으로만
나타난 약간의 차이 때문인지 또는 단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인지, 여행가들에게
짐승으로 생각된 인간과 비슷한 여러 가지 동물이 사실은 진정한 미개인이 아니었을까? 이미
오래 전에 삼림 속에 흩어진 그 인종은 자기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완성도 보지 못한 채 지금도 원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바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여행기" 의 번역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콩고 왕국에는 동인도에서 오랑우탕이라고 부르는, 인류와 원숭이의 거의 중간에 위치하는
커다란 동물들이 많다. 로앙고 왕국(16)의 '마욤바'라는 숲속에는 두 가지 괴물이 있는데 큰
놈은 퐁고, 작은 놈은 엔조코라고 부른다고 바테르(17)는 말하고 있다.
  전자는 인간을 그대로 닮은 데가 있지만 인간보다 훨씬 뚱뚱하고 키가 크다. 얼굴은
인간이지만 눈이 움푹 들어가 있다. 손이나 뺨이나 귀에는 털이 없지만 눈썹만은 예외적으로
무척이나 길다. 몸의 다른 부분에는 털이 상당히 많은데, 털의 색깔은 그다지 진하지 않은
갈색이다. 끝으로 그들과 인간을 구별짓는 유일한 부분은 종아리로, 그들의 종아리에는 살이 붙어
있지 않다. 그들은 손으로 목을 잡고 똑바로 서서 걸어간다.
  그들의 은신처는 숲속에 있다. 나무 위에서 잠을 자는데, 잠자리 위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과 같은 것이 달려 있다. 그들은 절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들이 먹는 것은 야생
과일이나 호두류이다. 흑인들이 숲속을 지나갈 때에는 밤 사이에 그곳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 있는데, 그들이 아침에 출발하려고 할 때면 퐁고는 불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그 불이 꺼질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퐁고는 매우 영리하기는 하지만 나무를
모아서 불을 지필 정도의 지능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때때로 떼를 지어 다니면서 숲속을 지나가는 흑인들을 잡아가 죽이기도 한다. 때때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코끼리와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들은 주먹이나 막대기로
맹렬히 공격하여 코끼리들이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한다. 퐁고가 생포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건장하므로 열 사람의 장정으로도 그들을 사로잡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퐁고의 어미를 죽인 뒤에 그 몸에 달라붙어 있는 많은 새끼들을
사로잡는다. 이들 가운데에 죽는 놈이 있으면 다른 놈들은 그 시체를 나뭇가지나 잎사귀로
뒤덮는다.
  퍼차스(18)는 바테르에게서 들은 말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바테르 자신이 말한 바에 따르면,
한 마리의 퐁고가 바테르에게서 흑인 아이를 빼앗아 갔는데, 이 아이가 그 퐁고들 사이에서 꼭
한 달 동안을 지냈다고 한다. 그들은 이 흑인 아이가 목격한 것처럼, 적어도 인간이 그들을
노려보지 않으면 인간을 습격하더라도 전혀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테르는 또 다른
괴물 엔조코에 대해서는 한 줄고 쓰지 않았다.
  다페르(19)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오랑우탕 즉 '숲속의 주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인은 '코자 모로'라고 부르는 동물이 콩고 왕국에 많다고 한다. 이 짐승은
인간을 많이 닮았으므로 몇몇 여행가들은 그것들이 여자와 원숭이 사이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한다. 하기야 흑인들조차 이러한 공상은 배격하고 있다. 이 동물 한
마리가 콩고에서 네덜란드로 운반되어 오렌지공 프리드리히 하인리히에게 헌납되었다. 그것은 세
살쯤 되는 어린아이 만한 키에 살결은 중간 정도이지만 튼튼하고 균형 잡힌 몸집을 하고 매우
민첩하고 활발하며 다리는 살이 붙어 건장하고, 신체의 앞부분에는 털이 나지 않았지만 허리는
온통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 얼굴은 언뜻 보아 인간과 비슷했지만, 코가 유난히 납작하고 구부러져 있었다. 귀도 인간과
비슷했다. 그리고 젖통--그것은 암컷이었다.--이 꽤 부풀어 오르고 배꼽은 쑥 들어가고 어깨는
날씬하며, 손은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으로 구분되고 종아리와 발뒤꿈치는 통통하게 살이
붙어 있었다. 때때로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걸으며, 상당히 무거운 짐짝을 들어 올리거나
운반하기도 하였다. 술이 먹고 싶으면 한쪽 손으로 항아리 뚜껑을 잡고 다른 손으로 밑을 받치고
입술로 들이마셨다. 잠잘 때는 머리를 베개 위에 얹고, 마치 침대에서 자는 사람처럼 드러누웠다.
  흑인들은 이 동물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이 동물이 부녀자들을 침범할
뿐 아니라, 무기를 갖고 있는 남자도 대담하게 공격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동물은 고대인이
말하는 사티로스(20)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메롤라(21)는 흑인들이 사냥을 할 때면 미개인 남녀를
사로잡기도 했다고 말했는데, 그 미개인 남녀란 아마도 이 동물을 가리킨 것이리라."
  이와 같이 인간의 모습을 한 동물에 대해서는 같은 "여행기" 의 제 3 권에서 벡고와
망드릴(22)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적은 보고에만 따르면, 그
차이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보다 오히려 적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 글 속에는 문제의 동물에 대하여 미개인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저자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이유는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그 동물이 우매하고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발성기관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 자체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또는
인간의 개선 능력이 문명인을 그 원시상태로부터 어디까지 더 높일 수 있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빈약한 이유이다. 그와 같은 묘사를 내포한 글이 적은 것으로 보아, 우리는 이
동물에 대한 그들이 관찰이 얼마나 엉성했으며 또 그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보았는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들이 아기를 낳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바테르는 어떤 대목에서, 퐁고가 숲속을 지나가는 흑인을 잡아 죽였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퍼차스는 퐁고가 비록 흑인을 습격하는 경우에도 적어도 흑인이
그들을 노려보지만 않으면 흑인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퐁고들은 흑인들이 사라지면
그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다가 불이 사그라지면 그곳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이에 대한 관찰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대단히 영리하지만 그 모닥불에 나무를 더 넣어 불을 계속해서 피울 수 있는 분별은
전혀 없다."
  바테르나 그 편집자 퍼차스는 퐁고가 물러나는 것은 그들의 의지라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은 결과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나는 이 점을 추측해 보고자 한다.
  로양고와 같은 기후에서는 불은 동물들에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흑인이 불을 지피는 것은
추위 때문이라기보다 야수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잠시 불꽃을 즐기거나 충분히
몸을 데우고 나면, 퐁고는 같은 장소에 계속 머물러 있는 데 싫증을 느껴 먹이를 찾아 그곳을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초식은 육식을 하는 경우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동물이 본래 게을러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닌 한 이러저러한 수고로운 일들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영리하고 힘이 세다고 칭찬 받으며, 죽은 놈을 매장하고 나무 잎사귀로
지붕을 만들 줄도 아는 퐁고가, 나무를 불 속에 집어 던질 줄 모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나는
퐁고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러한 동작을 어떤 원숭이가 능히 해치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내가 이 방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가들에 대해 지금 내가 비난하고 있는 실수를 나 자신이 저질렀다는 것과, 원숭이에게
실제로 불을 보존하고 싶다는 의향이 있었는지 아니면 단지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는데 그친 것인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튼 원숭이가 인간의 변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게 입증된다. 그것은 원숭이에게 말하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원숭이 종에게는 인류만이 갖고 있는 자기 개선의 능력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실험(23)은 퐁고나 오랑우탕에 대해서도
그것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주의를 집중시켜 실시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기야 만일 오랑우탕이나 그 밖의 동물이 인류에 속해 있다면, 아무리 조잡한 관찰자라도
뚜렷한 근거에서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을 위해서는 한
세대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게다가 이 실험은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실험을 아무 선입견 없이 실시하기 전에, 단지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개발된 이성의 열매가 아닌 성급한 판단은 극단으로 달리기 쉽다. 우리의 여행가들은
고대인들이 사티로스나 파우누스(24), 실바누스(25)와 같은 이름 아래 신으로 간주한 그 같은
존재를 퐁고 망드릴, 오랑우탕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덮어놓고 짐승 취급을 하고 있다. 아마
좀더 정확하게 연구한다면, 그것이 짐승도 신도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들 동물에 대해서 유식한 선교사로서 현장을 목격한 적도 있는 매우 순박하고
유능한 메롤라, 상인 바테르, 다페르, 퍼차스, 그리고 다른 편집자들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내가 앞에서 말한, 1694년에 발견된 어린이(26), 즉 이성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손발로 기어다니며 말도 하지 못하고 인간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음성을 내고 있던
어린이를 이 관찰자들이 목격한다면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사실을 나에게
제공해준 그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상당히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야 그는 겨우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그는 그 말을 많이 더듬었다. 그가 말을 하게 되자 곧 사람들은 그의
최초의 상태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요람 속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도 역시 그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만일 불행하게도 이 어린이가 우리 여행가들의 손에 붙잡혔더라면, 분명히 그들은 그가 말도
못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숲속으로 돌려보내거나 가축 우리 속에 넣으려고
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훌륭한 보고서에서 그 아이를 인간과 상당히 비슷한 괴상한 짐승으로
취급하며 제법 학자들처럼 이야기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들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여행기와 보고서를 끊임없이 발표하게 된 이래로
3,4백 년이 경과했으나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유럽인에 한정되고 있다. 누구나 인간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을 내걸고는 있지만, 학식이 있는 사람들조차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편견 때문에 거의 자기 나라 사람들의 연구밖에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빈번한 왕래는 아무런 소용도 없으며 철학자는 조금도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27)
  그러므로 각 민족의 철학은 다른 민족에게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 그 원인을 적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원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은 우선 선원, 상인,
군인, 선교사의 네 부류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처음 세 부류의 사람들은 훌륭한
관찰자가 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넷째 부류의 관찰자는 그들이 믿고 있는
숭고한 천직에 전념하고 있으므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직업상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순수한 호기심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연구, 게다가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중요한 일에서
그들을 멀리 떠나게 하는 듯이 보이는 연구에 자진해서 몰두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가르침을 유효하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열의만 있으면 족하며 그 이상은 신이
부여해 주신다.
  그러나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 이 재능은 신이 누구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한 것도 아니며 더구나 반드시 성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어떠한 여행기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성격이나 풍속에 대한 기술이 있음을 곧 알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내용을 기록한 사람들이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밖에는 말하지 않고
있으며, 세계의 다른 쪽 끝에 가서도 자기가 머무르는 거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자기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여러 민족을 구별하게 해주는,
보기 위해 만들어진 눈이라면 강한 인상을 받게 마련인 진정한 특징을 거의 언제나 보지
못했다는 것 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사이비 철학자들이 그토록 되풀이하여 말해온 "인간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라는 저
훌륭한 도덕적인 격언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즉 인간은 어디서나 같은 정념과 동일한 악덕을
갖고 있으므로 여러 민족의 특징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피에르도 자크도 모두 눈, 코, 귀, 입을 갖추고 있으므로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주장이다.
  대중이 철학이란 것에 전혀 개의치 않던 저 행복한 시대, 플라톤이나 탈레스나 피타고라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알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 오직 학문을 하기 위해 긴 여행을 계획한 것처럼,
민족적 편견을 털어 버리고 사람들을 그 유사점과 차이점에 따라 인식하고자 하며, 한 세기나 한
국가에 국한된 지식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속하여, 이를테면 현자들의 공통된
지혜인 저 보편적일 지식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시대는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오두막을 스케치하거나 비명을 해독하거나 모사하기 위해 학자나 화가들을 데리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가면서 동양으로 여행하거나 또는 여생을 시키는 호사가들의 선심에 칭찬을
보낸다. 그러나 훌륭한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 이 세기에 돈이 많은 사람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불사를 원하는 이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자기 재산에서 2만 에퀴를, 또 한 사람은
생애의 10년을 바쳐 돌이나 초목이 아니라 인간과 풍습을 연구하기 위한 세계 일주 여행을
추진했다고 하자. 그리하여 집을 측량하거나 시찰하는 일에 몇 세기를 소모한 뒤에 드디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어째서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유럽 북부와 아메리카 남부를 돌아다닌 아카데미 회원들은 철학자라기보다 기하학자로서 그
지역을 시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하학자이자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으므로,
라 콩다민(28)이나 모페르튀와 같은 사람들이 묘사한 지역을 전혀 미지의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플라톤처럼 여행한 보석 상인 샤르댕(29)은 페르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볼만한 것을 남기지
않았다. 중국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잘 관찰한 것으로 생각된다. 켐페르(30)는 일본에서 목격한
약간의 것들에 대해 그런대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보고를 별도로 하면, 우리는 머리보다는 주머니를 먼저 채우려고 하는 유럽인들만이 교섭을
해본 동인도의 여러 민족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아프리카 전토와 그 많은 주민들은 그
성격이나 피부색이 독특하므로, 여기서부터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구 전체는 우리가
이름밖에 모르는 여러 국민으로 뒤덮여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류가 어떠하다는 평가를 곧잘
입에 올린다.
  가령 몽테스키외나 뷔퐁, 디드로(31), 듀크로(32), 달랑베르, 콩디약, 기타 이와 비슷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나라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여행하고,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키, 이집트,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지방, 모로코 제국, 기니아 동남 아프리카,
아프리카 내륙 및 그 동해안, 말라바르 지방(33), 무갈, 갠지즈강의 양쪽 기슭, 샴(타이), 페구,
아바(버마) 등 여러 왕국, 중국, 타타르 특히 일본, 그리고 또 하나의 반구에서는 멕시코, 페루,
칠레, 마젤란 해협 지방, 그리고 진짜 또는 가짜 파타고니아인(34),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도 잊지
않고, 가능하면 브라질과 끝으로 카리브인, 플로리다, 그 밖의 모든 미개 지역을 관찰하고 이에
관하여 기술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모든 여행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며 가장 주의 깊게 다녀야만 하는 여행이다. 이들
새로운 헤라클레스들이 이 기념할 만한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틈틈이 자기들이 목격한 자연과
도덕과 정치의 역사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되면 우리는 그들의 펜을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세계의 진면목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관찰자들이 어떤 동물을 가리켜 인간이라 부르고 다른 동물에 대해, 그것은 짐승이라고
단정할 때,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조잡한
여행자들을 신뢰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태도일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그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다른 동물에 관한 의문과 똑같은 의문을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던지고 싶어한다.

   제 1 부
  9. 나로서는 이것이 너무나 명명백백하다. 우리의 철학자들이 자연인에게 상정하고 있는 모든
정념을 어디서 일으킬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자연 자체가 요구하는 유일한
물질적인 필요를 제외한 다른 모든 우리의 욕구는, 습관 때문에 그렇게 되어서 그 습관이 생기기
전에는 적어도 욕망이 아니었든지 또는 우리의 욕망에 따라 비로소 욕구가 되었든지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탐내지도 않는다. 여기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미개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밖에는 탐내지 않으며, 자기가 소유할 수 있거나 손에 넣기 쉬운
것밖에 알지 못하므로, 그의 영혼만큼 평온하고 그의 정신만큼 제한된 시야를 가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제 1 부
  10. 나는 로크의 "시민정부론" 속에서 하나의 반대론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너무나 그럴 듯하여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 철학자는 말한다.
  "암컷과 수컷 사이에 이루어지는 결합은 단지 생식만이 아니라 종의 지속에도 그 목적이
있으므로 생식 이후에도 적어도 산아의 양육과 영혼을 위해 필요한 동안은, 다시 말해서 그들이
자기의 힘으로 구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규칙은, 창조주가 무한한 지혜의 힘으로 손수 지은 창조물에 대하여 정해준 것으로,
인간보다 못한 피조물은 그 규칙을 언제나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그런데 초식동물의 경우,
암컷과 수컷 사이의 결합관계는 그때그때의 성행위보다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새끼들이 스스로 풀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자라는 데에는 어미의 젖만으로 충분하므로, 수컷은
새끼를 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그 뒤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데, 암컷이나 새끼의 생존에 아무
새끼의 생존에 아무 도움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수의 경우는 그 결합 관계가 더욱 길어진다. 그 이우는 어미가 획득한 먹이만으로는
어미 자신의 배를 채우고 동시에 새끼들도 기를 수 있을 만한 분량이 되지 못한데다가 풀을 뜯어
먹고 살아가는 동물보다 어렵고 위험한 방식으로 먹이를 구하므로, 그들의 공동 가족--이런
말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면--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수컷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끼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서기까지 수컷과 암컷이 돌보아주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먹이가 넉넉하여 수컷이 새끼를 키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사는 몇몇 가금을
제외하면 지금 말한 바와 같은 현상을 모든 조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그 둥지 속의
새끼들이 먹이를 필요로 하는 동안은, 다시 말해서 그 새끼들이 날아다니면서 스스로 자기들의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암컷과 수컷이 먹이를 일일이 날라다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왜 인간의 부모는 다른 생물들의 자웅보다 더 오랫동안 결합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더라도, 주요한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란 여성에게는 임신할 능력이 있으며, 대개 먼저 낳은 자식이 양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기 훨씬 이전에 배가 다시 불러 새
아기를 낳게 된다는 데 있다.
  이리하여 부친이 그 자식들을 오래 보살펴 주어야 하므로, 그는 다시 자기 자식을 낳은 같은
여성과 부부라는 결합 관계를 갖고 생활을 계속하면서 다른 동물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결합관계를 유지할 의무를 갖게 된다. 그러나 다른 동물의 경우는 새끼들이 다음 생식 시기가
되기 전에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므로 암컷과 수컷의 결합은 자연히 끊기게 된다.
그리하여 쌍방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들어가며 이윽고 언제나처럼 발정이가 되면 그들은
새로운 상대를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창조주의 지혜를 아무리 찬미해도 부족할 것이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대비할 만한 특질을 부여하였고, 인간의 결합 관계가 다른 동물들
사이에 볼 수 있는 암컷과 수컷의 결합 관계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서로 살아가는 지혜를 더욱
자극 받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더욱 긴밀해져 자식들을 위해 저축을 하고 재산을 남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부부의 결합관계가 불안하거나 쉽사리 해소될 경우에 자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반대론을 성실하게 서술한 것과 동일한 진리애의 발로에서 여기에 몇 가지 견해를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이 반대론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적어도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이다.
  1. 나는 먼저 도덕적인 증명이 물리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과,
그것은
현존하는 사실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실제로 존재함을 입증하는데는
유용하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인용한 구절 속에서
로크가 사용하고 있는 부류의 증명이다. 왜냐하면, 남녀의 결합이 영속적이라는 사실이 인류에게
아무리 유리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에 따라 확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사회나 예술이나 상업이나. 인간에게 유용하다고 말하는 그 모든 것도 역시
자연이 지정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맹수들 사이에서는 수컷과 암컷의 결합관계가 초식동물 사이보다 오래 계속되며, 새끼들을
기를 때 수컷이 암컷을 도와준다는 것을 로크가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개나 고양이, 곰, 늑대 등이 말이나 양, 소 사슴이나 그 밖의 모든 네발짐승보다도
자기의 암컷을 잘 식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암컷이 새끼를 보존하는 데 수컷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특히 초식동물의 경우에
그렇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암컷이 풀을 먹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또 그 동안에
암컷은 새끼를 방치해 두어야 하지만, 어미 곰이나 어미 늑대는 먹이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므로
배고픔에 허덕이지 않고서 새끼들에게 젖을 줄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추리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구별하는 젖통과 새끼와의 상대적인 수에 대하여
관찰함으로써 확인된다. 이에 대해선 원주 6에 언급한 바 있다. 만일 이 관찰이 옳고
보편적이라면, 여성은 두 개의 젖통밖에 갖지 않고 아기를 보통 한 번에 하나씩밖에 낳지
않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본래 육식동물이라는 주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하나의 유력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로크의 결론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의 추리를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
  같은 구별을 조류에 적용해도 역시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솔개나 까마귀 쪽이
산비둘기보다 암컷과 수컷의 결합이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저자의 학설에
정반대 되는 실례로는 집오리와 비둘기가 있다. 곡식만으로 살아가는 비둘기는 언제나 암컷과
수컷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힘을 합쳐서 새끼를 키운다. 욕심쟁이 집오리는
자기의 암컷도 새끼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새끼를 기르는 암컷에게 전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육식종인 암탉들 사이에서도 병아리를 돌보는 수탉을 전혀 볼 수 없다.
만일 다른 새의 경우에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수고를 분담한다면, 그것은 새끼들이 처음 얼마
동안 날 수 없고 암컷 또한 새끼들에게 먹이를 줄 수 없어서 적어도 잠시 동안은, 어미의 젖으로
충분한 네발짐승보다 수컷의 도움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3. 로크가 전개한 추리 전체의 기초가 되어 있는 주요한 사실에는 정확하지 못한 점이 많다.
왜냐하면,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순수한 자연상태에서는 여성은 보통 먼저 낳은 아이가 자기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자라기 훨씬 전에 다시 배가 불러 새 아이를 낳을 지
어떨지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실험을 필요로 하지만, 로크는 그 실험들을 하지 않았으며 또
어느 누구에게도 이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가 계속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새로 임신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는 의미도
있으므로 순수한 자연상태에서 우연한 만남이나 단순한 기질의 충동에 따라서 부부가 결합되어
있을 때처럼 빈번한 결과가 발생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그다지 빈번히 접촉하지 않는 것이 아마
아이들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데 유용할 것이며, 또 젊었을 때 임신능력을 너무 남용하지 않은
여성이 보다 많은 연령에까지 그 능력이 연장됨으로써 보상을 받을 것이다.
  어린이에 대해 말하면, 그들의 힘과 기관은 내가 말하고 있는 원시상태에 있어서보다 더욱
뒤늦게 발달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많다. 그들이 양친의 체질에서 물려받는 선천적인 약질,
그들의 손발을 묶어 버리고 그 운동을 방해하는 지나친 보호, 그들이 자라는 환경의 취약성,
그리고 아마도 모유 이외의 젖을 애용하는 일--이런 일들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훼방하고
지연시킨다. 언제나 무수한 사물에 그들의 주의를 고정시키고 열의를 갖도록 강제하면서도
그들의 체력 단련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을 크게 억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신에 여러 모로 지나친 부담을 주어 피로하게 하는 대신에 자연이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끊임없는 운동에 따라 신체를 단련시킨다면, 그들은 조속한
시일 내에 걸을 수 있게 되고 행동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자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4. 끝으로 로크는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 남자가 여자 곁을 떠나지 않는 하나의 동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할 뿐, 분만 전이나 임신 9개월 동안에 남자가 여자 곁에 지켜
서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전혀 증명하고 있지 않다. 만일 이 아홉 달 동안에 남자가 그 여자를
방치해 두거나 잊어 버리게 되었다면 아이를 낳은 뒤에 그가 어떻게 그 여자를 도울 수
있겠는가? 그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난, 알지도 못하는 아이를 기르는
그녀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로크는 명백히 의문이 되는 사항을 전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문제는 왜 남자가 분만 뒤에 여자와 동서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찌하여
임신 뒤에 여자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는가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 충족되기만 하면,
남자는 그 여자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며 여자도 그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어떠한 관념도 갖고 있지 않다.
  서로 제각기 갈 길을 가 버리니, 9개월 뒤에는 그들이 서로 알고 지냈었다는 기억조차 갖고
있을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본문에서 증명한 것처럼 어떤 개인이 생식행위를 위해 특정한
개인을 택하는 기억은,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동물상태에서 상정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인간
오성의 진보 또는 타락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여자가 남자의 욕망을 이미 그가
알고 있었던 여자와 마찬가지로 편리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또 다른 남자가 그
여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임신 중인 여자라도 같은 욕망에
사로잡히면 역시 다른 남자를 통해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자연상태에서 여자가 임신한 뒤에는 애욕의 감정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면 남녀의 결합에
대한 장해는 그로 인해서 더욱 커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벌써 자기를 임신시킨 남자도
또 그밖에 어떤 남자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로서는 동일한 여자를 요구할
아무런 이유도 없고 여자로서도 동일한 남자를 요구할 이유가 없게 된다.
  로크의 추리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아, 이 철학자의 변증법은 홉즈나 다른 학자들이 범한
오류로부터 그를 지켜 낼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자연상태, 즉 사람들이 고립된 채 살아가며 또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살아야 하는 아무런 동기도 없는 상태, 그리고 더욱 좋지 않은
것이지만 사람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아무런 동기도 없던 상태라는 하나의 사실을 먼저
설명했어야 했다.
  그들은 몇 세기 동안 유지해온 사회, 즉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접촉하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항상 존재하며 남자가 어떤 남자 또는 어떤 여자와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그러한 시대를
넘어서 훨씬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제 1 부
  11. 나는 이 언어의 성립에서 오는 이득과 폐단에 대해서는 철학적인 고찰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통속적인 오류를 공격하는 것은 나의 임무가 아니다. 더구나 학식 있는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기의 편견을 존중하므로, 나의 이른바 역설을 참을성 있게 듣지 못한다. 이쯤 해서
때로는 다수의 의견에 반대되는 이유를 과감하게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비난을 받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자.
  "만일 사람들이 갖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불행하고 혼란한 상태를 일소하고 기호나 동작이나
거동으로써 자기 의견을 나타낼 수 있는 단 하나의  획일적인 방법에 숙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인류는 별다른 지장 없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점에 있어서는
흔히 우둔하다고 생각되는 동물 쪽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들은 통역 없이 어떤 인간보다도, 특히 외국어를 사용하는 인간보다도 신속하게, 그리고
아마도 더욱 충실하게 자기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때문이다."(이삭
포시우스(35), "가요와 운율의 특성에 대하여")

   제 1 부
  12. 플라톤이 불연속량(36)과 그 관계들의 관념이 가장 사소한 기술에 있어서도 얼마나
필요한가를 보여주면서 같은 시대의 저자들을 비웃고 있는 것인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이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마치 아가멤논이 자기에게 다리가 몇 개나 있는지를 그
당시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파라메데스(37) 수라는 것은 트로이를 포위할 당시에
파라메데스가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플라톤, "국가론" 제 7 권 제 6 장)
  실제로 사람들이 수와 계산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면, 사회와 기술이 트로이를 포위할
당시의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다른 지식을 획득하기
이전에 수를 알 필요가 있었다고 해서 수의 발명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의 명칭이
일단 알려지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설명하고 그 명칭이 나타내는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념을 상기하기 전에 이를테면 철학적인
명상에 익숙해져서 다양한 존재를 그 유일한 본질에 따라, 게다가 다른 모든 개념에서 독립시켜
고찰하는 훈련을 쌓아 둘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대단히 힘들고 대단히 형이상학적이며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추상이지만, 그것이 없으며
결코 그런 관념이 하나의 종 또는 유에서 다른 종이나 유로 이전될 수 없으며, 수가 보편적이 될
리도 없었을 것이다.
  미개인은 자기에게 다리가 두 개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따로 생각하거나 한 쌍이란 불가분의 관념 아래 함께 조망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을 그려 보이는 표상적인 관념과 그 대상을 결정하는 수적인 관념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개인이 다섯까지 센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 손을
서로 겹쳐서 양손의 손가락이 정확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이 수적으로
같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그는 자기 머리카락은 커녕 자기 손가락도
셀 줄 몰랐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인가를 알린 다음에 발에도 손과 마찬가지 수의 발가락이
있다는 점을 말했다면, 그는 아마 그 발가락을 비교해 보고 나서 그것이 정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을 것이다.

   제 1 부
  13. 자존심(이기심, amour propre)과 자기애(amour desoimeme)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두
정념은 그 성질로 보거나 효용으로 보거나 크게 다른 것이다. 자기애는 하나의 자연적인
감정으로, 모든 동물로 하여금 자기보존에 관심을 갖게 하고 인간의 경우에는 이성에 따라
인도되고 동정심에 따라 변용되어 인간애와 미덕을 낳는다. 자존심은 사회 속에서 생기는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각 개인이 자기를 누구보다도 중시하도록 하며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행하고 있는 모든
악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명예의 진정한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하면 우리의 원시상태, 즉 참된 자연상태에는 자존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유일한 관찰자로, 우주에
있어서 그에게 관심을 가진 오직 한 사람의 존재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심판자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하는 비교라는 것에서 솟아나는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싹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그른 인간은 증오도 복수심도 갖지 못할 것이다. 증오나 복수심은 어떤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욕을 일으키는 것은
경멸이라든지 위해를 가하겠다는 의도이지 (현실의) 죄악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 평가하고 비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들에게 어떤 이득이 될 경우에는 서로 모욕을 주지 않고서
난폭한 짓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각 개인은 동료 인간들을 거의 다른 동물 정도로밖에 보지 않으므로 약자에게서 그
먹이를 빼앗고 강자에게는 자기의 먹이를 양보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교만심이나
경멸감은 조금도 품지 않고 성공의 기쁨이나 실패의 슬픔 이외에는 아무런 정념도 없다.

   제 2 부
  1. 유럽인들은 세계 여러 지방의 미개인들을 자기들의 생활 양식에 적응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고심했으나 그들은 아직 그와 같은 미개인들 한 사람도 얻지 못했으며, 기독교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교사들은 때때로 그들을 기독교도로 만들 수는 있었으나 문명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느니 풍습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하라고 요구할 때 그들이 느끼는 억제할 수
없는 혐오감은 그 무엇으로도 해소시킬 수 없다. 만일 이 가엾은 미개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행하다면, 도대체 어떤 퇴영적인 판단을 내렸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본받아
개화하거나 우리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한편 우리는 일부러 이들 미개인 사이에 뛰어든 프랑스인들이나 그 밖의 유럽인들이
색다른 생활양식에 젖어 버린 채 그곳에서 온 생애를 보냈다는 기사를 수없이 읽고 있으며, 지각
있는 선교사들까지도 그처럼 경멸을 받고 있는 이 미개 민족들 사이에서 살아온 평화롭고 순결한
세월을 감명 깊게 회상하는 광경을 보고 있지 않은가?
  만일 사람들이,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처지와 우리의 상태를 올바로 판단할 만한 지식이 없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이것을 반박하여, 행복의 평가는 이성보다 오히려 감정에 관계된다고 답변하고
싶다. 하긴 이 답변은 더욱 큰 힘을 가지고 우리 자신들에게 되돌아올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념과 미개인이 자신의 생활양식에서 찾아내고 있는 취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 생태 사이에는, 미개인들의 관념과 우리의 생활양식을 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관념과의 사이보다 훨씬 더 큰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약간 관찰을 하고 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두 개의 대상, 즉 자기 생활의 안락과
타인들로부터 존중받는 일에 쏠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개인이
숲속에서 일생을 보내거나 낚시질을 하거나 또는 한 가지 화음도 제대로 못 내면서도 그것을
배우려는 생각도 없이 서투른 솜씨로 피리를 불 때 느끼는 즐거움을 우리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미개인을 파리나 런던이나 그 밖의 도시로 데려온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의 사치와 부와 가장 유용하고 진기한 모든 기예를 열심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들 사이에 어리석을 경탄을 일으켰을 뿐, 그것을 탐내는 낌새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특히 30년쯤 전에 영국의 궁정으로 데려온 몇 사람의 북아메리카인 가운데서 한
추장이 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그 추장의 마음에 들 만한 선물을 하려고
그의 눈앞에 여러 가지 물건을 꺼내 보였으나, 그의 마음을 끌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쓰는 무기는 그에게는 너무 무거워 불편한 듯이 보였고 우리가 신는 구두는 그의 발만
상하게 할 뿐이며 우리가 입는 옷은 갑갑하게 느껴져, 그는 마침내 모든 것을 거절해 버렸다.
끝으로 담요 한 장을 보자 이 추장은 그것을 들어 자기 어깨를 휘감고 기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다.
  "적어도 이 물건이 쓸모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지?"
  "그렇소" 하고 그는 대답했다. "이것은 짐승의 털가죽 만큼이나 놓아 보이는군."
  만일 그가 비올 때 그 담요를 둘러써 보았다면,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고유한 생활양식에 애착을
느끼므로 미개인이 우리의 생활양식 속에서 좋은 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습관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습관은 유럽인을 그 복지의 향락에 매어두기보다는 미개인을 그 빈곤에의
취미에 매어두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 되므로 우리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마지막 반론에 대해 한 치의 반박도 허용하지 않는 답변을 하기 위해, 나는
유럽인들이 문명화하려다가 실패한 모든 젊은 미개인들을 인용할 것 없이, 그리고 사람들이
덴마크에서 양육하려고 했으나 비애와 절망 때문에 시달리다가 죽어 버리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자기 나라로 헤엄쳐 돌아가려고 하다가 익사하고 만 저 그린란드인이나 아이슬란드인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단지 충분히 증명된 오직 하나의 예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유럽의 정치사회를
찬미하는 사람들은 내가 제공하는 이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주기 바란다.
  "희망봉의 네덜란드인 선교사들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호텐토트인도 개종시킬
수 없었다. 케이프타운의 총독 판 슈텔은 호텐스토트인 한 명을 어렸을 때부터 데려다가
기독교의 교리에 입각하여, 그리고 유럽의 관습에 따라 양육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몇 나라의 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교육에 쏟은 많은 노력들에 보답이나 하듯
그의 진보는 진실로 눈부신 바 있었다. 총독은 그의 재능에 큰 기대를 걸고 감독관과 함께 그를
인도로 보냈는데, 그 감독관은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데 그를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감독관이 죽자 그는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왔다. 돌아온지 며칠 만에 친척되는 몇몇
호텐토트인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유럽풍의 장신구를 버리고 다시 양가죽을 몸에 걸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옷을 넣은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새로운 옷차림을 한 채
성채에 돌아왔다.
  성채로 돌아온 그는 보따리를 총독에게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하, 나는 양복을 입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이제부터는 기독교도 버리겠습니다. 조상들의 종교와 풍속 속에 살다가
죽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오직 내가 달고 있는 목걸이와
단검을 이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이것을 각하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보존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판 슈텔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그 뒤 케이프타운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38)

   제 2 부
  2. 혹은 나에게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즉 이와 같이 무질서한 상태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혈투를 벌이기보다, 만일 분산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면 산산이 흩어져
버렸을 것이라고. 그러나 처음에는 이 한계라는 것이 적어도 이 세계의 한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자연상태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인구를 계산에 넣는다면, 사람들은 지구가 그렇게
해서 모여들지 않을 수 없었던 인간들에 의해 곧 가득 채워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만일 불행이 급속도로 증가하거나 그것이 갑자기 일어난 변화였다면 그들은 분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처음부터 그 멍에를 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들이 그 무게를 느꼈을 때는
이미 그 멍에를 지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속박을 벗어 버릴 기회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끝으로 그들은 자기들이 집단을 이루지 않을 수 없게 한 많은 편의에 이미 익숙해 있었으므로
분산은 이미 초기에 있어서처럼 쉽지는 않았다. 즉 초기에는 누구나 자기 자신밖에는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각자는 남의 동의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의 의사를 결정했었다.

   제 2 부
  3. 빌라스의 원수(39)의 말에 따르면, 어느 야전에서 식량청부업자의 지독한 사기에 걸리는
바람에 군대가 괴로움을 당하여 불평이 대단했으므로, 그는 청부업자를 엄하게 질책하고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그 악당은 말했다.
  "그런 위협쯤은 나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10만 에퀴의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교수형을 당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원수가 순진하게 반문했다. 어쨌든 실제로 그는 백 번 사형 당해 마땅한 짓을 저지르고도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았다.

   제 2 부
  4. 분배의 정의는, 설사 정치사회에서는 실행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상태의 저 엄격한
평등과는 대립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성원은 국가에 대해 재능과 능력에
따르는 봉사를 해야 하므로 시민들도 자기들의 봉사에 따라 구별되고 우대 받지 않으면 안된다.
저 이스크라테스(40)의 말은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 유리한가를 올바로 구별할 줄
알았다는 점을 칭찬하고 있다. 즉 하나는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하게 동일한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가치에 따라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 웅변가는 이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능란한 정치가들은 악인과 선인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는 부당한 평등을 배제하고
각자에게 그 가치와 공적에 따라 상을 주거나 벌을 가하는 평등에 끝까지 집착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패해도 악인과 선인을 조금도 구별하지 않는 사회는 아직 존재한 적이 없다. 그리고
풍속의 문제에 대해서는 위정자를 위해 규칙으로서 유용할 정도로 정확한 척도를 법률이 정할
수는 없지만, 시민의 운명과 지위를 위정자의 자의에 맡겨 두지 않기 위해서 위정자는 행위의
판정만을 할 수 있을 뿐 인격에 대해서는 판정할 수 없도록 법률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방법이다."
  고대 로마인들의 풍속처럼 순결한 풍속을 제외하고는 감독관의 심판을 감당해 낼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 법규가 있었다면 모든 것을 일변시켰을 것이다. 선인과 악인 사이에 차별을 두는
것은 공공의 평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위정자는 엄격한 법규에 대해서만 심판자가 될
뿐이다. 그러나 공중은 진정한 도덕적 심판자이다. 즉 그들은 도덕적 면에서 가끔 남용을
저지르는 경우는 있으나 결코 부패하는 일이 없는, 공명정대하고 풍부한 식견을 갖는 심판자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지위는 그 개인적인 가치에 따라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위정자에게
법률을 마음대로 적용하는 수단을 제공하게 되므로, 그러기보다는 그들이 국가에 대하여 표시한
실질적인 봉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이 봉사에 따라 국민의 지위를 보다 정확히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41)

   역주(괄호 안에 숫자가 있는 주)
  (1) 가우마타를 타도한 총독과 귀족들. 다음의 오타네스는 그 가운데 한 사람.
  (2) 프랑스의 생물학자(1707__1788년).
  (3) 아프리카 인종의 하나.
  (4) 로마 교회의 교부, 성인(342?__420년).
  (5) 그리스의 역사가, 철학자(BC 348?__285?년).
  (6) 독일의 여행가, 생물학자(1675__1726년).
  (7) 도미니크의 신부, 선교사(1610__1687년).
  (8) 투우장에서 황소가 대기하는 곳.
  (9) 1666년에 일어난 화재 사건을 말한다.
  (10) 그리스의 정치가(BC?__BC319년).
  (11) 여기서 루소가 말하고 있는 것은, 17,8세기에 군대에 물품을 납입함으로써 재산을 모은
금융업자들이다.
  (12) 피임이나 낙태를 말한다.
  (13) 로마 교황청 성가대원의 노래.
  (14) 스칸디나비아 북부의 주민.
  (15)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역사가.
  (16) 이디오피아 남단에 있는 왕국.
  (17) 영국 여행가.
  (18) 영국의 여행기 편집자(1575?__1626년).
  (19) 네덜란드의 의사, 지리학자(?__1690년).
  (20)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상반신은 사람이고 아래는 양의 다리를 가졌다.
  (21) 이탈리아의 선교사. 1682년에 "콩고 여행기"를 썼다.
  (22) 둘 다 같은 동물의 명칭이다. 토인은 벡고라고 부르고 백인은 망드릴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23) 다른 종의 교미, 즉 잡교를 말한다.
  (24) 고대 로마 신화 가운데 농경, 목축의 신.
  (25) 고대 로마의 삼림의 신. 파우누스나 판과 동일시된다.
  (26) 리투아니아의 숲속에서 곰들과 함께 살고 있다가 발견된 어린이.
  (27) "에밀" 제 5 편 "여행에 대하여" 참조.
  (28) 프랑스의 수학자, 여행가(1701__1774년).
  (29) 프랑스의 여행가(1643__1713년).
  (30) 독일의 의학자, 식물학자(1651__1716년).
  (31) 프랑스의 철학자(1713__1784년).
  (32) 프랑스의 소설가. 루소와 볼테르의 친구(1704__1772년).
  (33) 인도의 서남단.
  (34) 당시의 여행기에는 정확하지 못한 기술이 많아, 파타고니아인을 때때로 몸집이 거대하고
키가 큰 인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35) 네덜란드의 언어학자(1618__1689년).
  (36) 연속향은 기하학의 대상이고, 불연속량은 산수의 대상인 수의 비연속.
  (37) 호메로스이 작품 "일리아드"에 나오는 인물로, 발명의 천재로 묘사되어 있다.
  (38) "여행기" 총람 제 5 권.
  (39) 프랑스의 외교관, 장군(1654__1743년).
  (40) 아테네의 웅변가(BC 436__338년).
  (41) "사회계약론" 제 2 편 "각종 입법체계에 대하여" 참조.

    해설
    루소의 생애와 사상

   *루소의 생애
  쟝 자크 루소(Jean Jadques Rousseau)는 1712년 6월 28일, 아버지 이삭 루소와 어머니
쉬잔느의 차남으로 주네브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종교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이주해온 이래
거의 100년 이상이나 즈네브에서 살았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리 넉넉하지 못하여, 시계공인
아버지의 노력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면서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루소가 태어난 지 불과 9일만에 어머니 쉬잔느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의 수많은
불행 가운데서 최초의 것이었다"고 직접 술회하고 있듯이 그가 일생 동안 겪은 개인적인 불행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형과 함께 숙모의 손에서 자랐다. 숙모가 알뜰히 보살펴 주었다고는 하나,
갓난아기 때부터 어머니를 모르고 자란다는 것은 그에게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독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게다가 감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루소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일고여덟 살 되던 때부터 그는, 평소에 책을 좋아했던 그의 아버지와 함께 소설과 역사책 등을
읽기 시작했다. 뒷날 그는, 이때의 독서 덕택으로 스스로의 자의식을 끊임없이 전개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역사책 가운데서도 특히 플루타르코스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막연하게나마 '자유롭고 공화주의적인 정신'을 감지하게 했다. 이러한 독서는, 그
뒤 그가 차가운 세파에 부딪치면서도 스스로의 안목으로 사회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열 네 살 되던 해, 아버지 이삭은 군인과 싸움을 벌인 끝에 집을 나간 뒤 영원히
즈네브를 떠나고 말았다. 이어서 형마저 집을 떠나 버리니, 루소는 그만 가정을 잃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외삼촌의 주선으로 즈네브에서 약7킬로미터 떨어진 보아세 마을에 있는
랑베르셰 목사에게로 가서 거기서 약간의 초보적인 교육을 받았다.
  열 세 살이 되자 그는 조각가의 도제로 들어갔다.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횡포와 속박이 뜻밖으로 지나쳐 많은 고통과 번민 속에
허덕이다가, 열 여섯 살이 되자 그는 그곳을 떠나 모험과 방랑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3년
동안 그는 스위스와 프랑스 각지를 유랑하면서, 때로는 급사 노릇도 하고 때로는 가정교사나
음악교사를 하는 등 손에 잡히는 대로 갖은 일을 다해 가면서, 사정이 허락하면 머무르고 안
되면 또 예정도 없는 방랑을 계속했다.
  도제 생활과 방랑 생활을 하는 동안 루소는 극히 무질서하고 번민에 찬 생활 속에서
방황했지만, 이때의 생활에서 그는 뒷날 그의 사상의 방향을 결정짓는 귀중한 사실들을 체험했다.
비록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고아에 불과했지만 선량한 마음으로 착실히 일하려고 했던 그에게
주어진 도제제도의 부조리와 주인의 횡포, 절대주의 아래에서 거리낌없이 자행되었던 특권
계급의 온갖 타락과 만행, 그 밑에 짓밟히고 있던 수많은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감정과 의지 등을 체험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는 자연과 인공,
선량한 인간의 본성과 사회 제도, 민중과 특권 계급, 감정과 이성 등 일련의 대립적 개념이
형성되어 갔다.
  1731년 그가 열 아홉 살 되던 해, 그는 오랜 방랑 생활 끝에 샹베리의 바랑 부인을 만나
정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생애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사상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바랑 부인에게서 어릴 때 느껴보지 못한 모성애를 느꼈고, 그리하여
그녀는 그에게 '친절한 어머니'였으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바랑 부인과
지낸 10여 년 동안 그는 몇 차례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성직자가 되려고 생각했다가, 음악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음악을 공부하여
성가대 지휘자가 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여의치 않자 그는 1735년 독학을
열심히 하고 샹베리에서 멀지 않은 샤르메트에 가서 독서에 열중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로서는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때 그는 볼테르를 비롯하여 많은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라이프니츠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고, 그 밖에도 음악, 문학, 자연과학 및 신학에
대해서도 상당한 소양을 쌓았다.
  1740년 루소는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 몽테규의 비서가 되었다. 정치에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당한 기대를 건 그는 열심히 그리고 의욕적으로 일했다. 형식적으로는 비서에
불과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사의 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대사는 루소를 건방지다고 생각했고, 루소는 대사의 무능하면서도 오만하고 게다가 불공정한
태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루소는 1년 만에 면직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에서 루소는 정치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처럼 평판이
좋은 정부의 결함에 주목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물은 결국 정치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 그리고 국민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부의 성질에 따라 제한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사회 현상은 결국
정치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어릴 때부터 받은 온갖 천대와 멸시도
인간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사회제도의 정치와 부조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선량한 본성과 자연적인 감정, 천부의 자유를 토대로 해서 올바른 사회질서만
정립된다면 사회의 모든 부조리는 제거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사회질서와 정부를 정립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순수한 감정과 자유의 혼이 그의
가슴에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그는 "정치제도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19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사회계약론"이라는 작은 작품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러한 마음의
자세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베네치아에서 돌아온 루소는 또다시 실의와 역경의 밑바닥을 헤매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으며 병까지 걸려 신음했다. 이때 그의 유일한 위안은
그보다 아홉 살 아래인 세탁부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관계였다. 그러나 이 관계 역시
비정상적인데다가 경제적인 곤란마저 겹쳐, 1746년부터 1755년 사이에 태어난 다섯 명의 아이를
그들은 모두 고아원 문앞에 내다버릴 정도였다.
  그러던 가운데 1749년 루소는 "학문과 예술의 발달은 도덕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라는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모집 문제를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는 무수한 광명, 강렬한 관념이 한꺼번에
몰려와 형용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질 지경"이었다. 격렬한 충격과 번득이는 영감을 얻은 그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 것인데 인간이 만든 문명과 제도 때문에 폐단이 생기고 따라서 사회
조직과 학문, 예술을 발달은 도덕의 순화에 기여하기는커녕 온갖 모순과 타락과 부패를 초래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글을 썼다. 그로부터 일년 뒤 그의 "학문과 예술론(Discours sur lis sciences et
les arts)"는 당당히 당선되었다. 이에 대한 평가로 파리 전체가 온통 떠들썩했고, 루소는 일약
시대의 '풍운아'가 되었다.
  그 뒤 그는 다시 디종의 아카데미가 내건 현상모집 문제 "인간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연법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응모했으나 낙선되자, 그것을 그는 1755년
"인간불평등기원론(Diacours sur l`origine de l`negalite parmi les hommes)"으로 출판했다 인간
상호간에 생기는 불평등은 자연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그것은 토지의 소유, 즉 사유재산에 따라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해 그는
"백과전서(Encycopedie)"에 "정치경제론(De l`economie politique)"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독특한
사상적 입장을 하나 하나 정리해 갔다.
  일단 명성을 얻자 루소는 다시 자기 교육을 위하여 파리 근처의 엘미타쥬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많은 방문객들 때문에 '매력 있는 고독'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새로운 작품 "신
엘로이즈(Nouvelle Heloise)"를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1761년 출판되자 마자 대단한 인기를
얻어 1800년까지 72판을 거듭할 정도였다. 이때부터 루소는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이른바
'백과전서파'들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개인적인 감정의 차이도 있었지만, 서로가 지향하는 사상의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그는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는 생각으로 그들과 절교한 뒤
엘미타쥬를 떠나 근처에 있는 몽루이로 옮겨 갔다.
  몽루이로 옮겨온 1758년 이후로 그는 저작에 전념하여 1761년 여름에는 "에밀(Emile)"과
"사회계약론(Du contract social)"을 완성하였다. 이 두 저작은 루소를 불멸을 사상가로 만들어
주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에게 심한 박해를 가져다 주었다. 위대한 사상은 언제나 현실의 변혁을
지양하고, 그 변혁 사상은 현실에 의해 탄압 받게 마련인 것이다. 이 저작들이 출판되던 1762년
6월 9일 파리의 고등법원은 "에밀"을 판매금지시키고 저자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즈네브로 도망했으나, 그곳 정부도 두 저작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를 취했으므로 다시
프러시아령으로 도망, 뇌샤텔 총독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현실의 개혁을 부르짖는 사상가에 대한 현실의 보답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위대한 사상가가 그렇듯이 특히 그를 실망시킨 것은 그가 신변의 위협을 피해 생
피에르 섬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의 사상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민중들이, 오직 현실의 편견에만 사로잡혀 그의 집에 돌을 던지며 그에게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민중들에게조차 배반을 당했다는 비애는 그로 하여금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확신에 찬 사상가답게 '나 자신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다시 방랑을 계속했다.
  1766년에는 데이비드 흄의 초청으로 영국에까지 건너갔으나 그와 의견이 맞지 않아 돌아왔고,
다시 파리로 간 그를 친지들이 위험 인물로 취급하며 기피했으므로, 이름을 바꿔 가며 각지를
떠돌기도 했다.
  그는 악보 베끼는 일로 겨우 생계를 이어 가면서도 "고백록(Les Confessions)"의 집필을
계속하여 1770년에는 이를 완성했다. 1772년에는 지나친 박해와, 또 자식을 버렸다는 극심한
후회를 동기로 "대화--루소, 쟝 자크를 심판하다(Dialogue:Rousseau juge de Jean Jacques)"를
쓰기 시작하여 1776년에 완성했고, 그해 가을부터는 "고독한 산보자의 꿈(Les reveries du
promeneur solitaire)"을 쓰기 시작했다.
  모진 박해와 고통에 지친 나머지 스스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기 시작한 그는,
누구보다도 선량하고 사교적이며 정다운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주의의 엄청난 부조리를
고발한 탓으로 고독 그 자체로 일관된 자기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조용히 그것을 정리하려고 한
것이다.
  1778년 5월, 그는 파리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엘므농빌에 갔다. 그가 좋아하던
시골이었지만, 그곳은 곧 그의 죽음의 자리였다. 그해 7월 2일 그는 "고독한 산보자의 꿈"을 다
끝내지도 못한 채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오직 테레즈 르바쇠르만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틀 뒤에 그는 호수 가운데 있는 포플러 섬에 운반되어 즈네브의 풍습에 따라 조용히
묻혔다. 그렇게도 그를 박해하던 프랑스 절대주의가 타파되기 11년 전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의 일생은 참으로 무질서하고 불안정하며 부도덕한 방랑의 연속이었지만,
그가 애초부터 고아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또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일보다는 자유와 인간애를 위하여 끊임없이 현실의 부조리와 싸우면서 살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도덕이라는 것도 역시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그의 방랑의 일생을, 위대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연약한 자유의 혼이 종말에 가까운 포악한
절대주의의 부조리와 싸워온 역경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인 1794년 4월, 프랑스 국민공회가 루소의 유해를 '위인의 전당'인 팡테옹에
옮겨 묻기로 결정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루소의 정치 사상

  역사상 루소만큼 다방면에 걸친 사상가도 드물다. 문학, 예술, 경제, 교육 등 실로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 걸친 그의 사상은 각 방면마다 근대적인 사상을 확립했다는 점에서도 위대하지만, 그
범위의 방대함에 있어서도 뛰어났다. 그를 '최초의 근대인'이라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또 루소만큼 상반된  해석을 받고 있는 사상가도 드물다. 인간의 미래를 약속하는 유토피아나
감동적인 이데올로기, 또는 압정과 부정에 반대하는 정치적 주장들은 한결같이 루소의 이론을
인용하면서도, 때로는 그를 개인주의자로 이해하는가 하면 또 때로는 정반대의 전체주의자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렇듯 루소의 사상은 너무 방대하고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다만 그의 대표작인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의 말처럼 모든 사회 현상은 결국 정치에 따라 좌우되므로, 정치 사상은 그의 방대한
사상체계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그가 생존하던 시대는 절대주의의 말기였다. 기본적으로 봉건적 토지
소유와 신분적 지배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겉으로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지만 안으로는 날이 갈수록 심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빚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국민 전체의 5퍼센트도 안 되는 지배층이 신분과 면세의 특권을 비롯한 각종
특권을 독점하면서 온갖 낭비와 부패로 국가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갔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비의 비용을 부담하는 여윈 젖소의 취급밖에 받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도 전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생활은 가장 비참했다. 국가와
영주와 교회에 대해서 각각 따로 여러 종류의 세금을 바쳐야 했고, 영주를 위해서는 각종
부역까지 해야 했으며, 심지어 여름밤이면 영주의 안면을 위해서 밤새도록 개구리를 쫓아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들과 함께 생활한 루소에게는 그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절대주의라는 사악한 사회제도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소수의 부당한 특권을 위하여 선량한
절대다수의 국민을 비애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절대왕정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제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시되었다.
  루소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본성이고 자격이며 인간으로서의 가치였다. 그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양도되거나 포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억압될 수 없는 존엄한
가치였다. 따라서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는 루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으며, "사회계약론" 제 1
편의 주제 설명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고 한 것은 그의 모든 사상의 기본적인
전제를 표시한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정치적 자유가 외면화하게 되면 반드시 국가권력의 권위와 충돌하게
되므로, 자유의 문제는 곧 자유와 권력의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할 때 자유를 보장하는 권력이
가능하게 되는가, 다시 말하면 도대체 국가권력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권력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 되는 것이다. 루소 사상의 기본적 출발점은 이처럼 권력의 정당성 문제로 집약된다.
  국가 권력의 근거에 관하여 루소는 독특한 정치 이론의 공식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는 동의에
따라 성립된다", 즉 우리가 복종할 의무가 있는 정당한 국가권력은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약속'에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 상호간에 자연적, 육체적 불평등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서로 평등한 조건 위에서 "공동의 힘으로
공동의 힘으로 공동의 이익을 실현" 할 것을 약속하게 되고, 이 약속으로부터 개개의 인간들
대신에 "정신적이고도 집합적인 하나의 단체"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곧 국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권력의 근거는 국가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동의에 따른 사회 계약이다. 그런데 그
국가권력이 어떻게 구성되고 행사될 때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에 따르면, 사회계약에 따라 성립된 국가권력이 가장 상위에 위치한 일반의지의
지도에 따라 행사될 때 비로소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보장하고 나아가 전체의 목적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일만의지란 어떤 것인가? 이것이 바로 루소의 독창적이고도 핵심적인 개념이다. 우선
일반의지는 국가 구성원들의 동질성을 전제로 하여 성립할 수 있다. 같은 사회계약론자인 존
로크나 토마스 홉스와는 달리, 루소는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계약을 체결할 때 "구성원 각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권리와 함께 자기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양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자가 모든 것을 양도해 버리고 나면 각자의 조건은 평등하게 되고" 이해
관계가 일치되어 상호간의 동질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동질적인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이 다 같이 바라는 공공의 복지와 의지가 곧 일반의지이다.
그러므로 일반의지는,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항상 정당하고 항상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파괴되거나 분할할 수 없는데다가 절대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루소는
특수의지의 합계인 전체의지와 일반의지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특수의지란 어디까지나 사회의
동질성을 파괴하는 개인의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므로, 그것이 일시적으로 전원 합치가 되어
전체의지를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구히 공공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반의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당시 계몽사상가들과 루소가 근본적으로 의견을 달리 한 점이다. 당시의
사상가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최대의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에 관한 문제였다. 그들은 중세의
종교적 속박과 신분제도의 억압이라는 인간외적 제약을 거부한 뒤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모든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러한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이 갖는 이기적인 욕망과 자애를 모든
사회 발전의 기본적인 요소로 생각했다. 여기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곧 인간의
무한한 '완성가능성'을 제시했고, 이성에 지도되는 이기심은 곧 미래에 대한 끝없는 낙관주의를
낳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심에 토대를 둔 자유방임적 이론이었고 또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
  그러나 루소가 보기에는 모든 인간외적인 제약과 그 현실적 기구로서의 구제도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새로 등장하는 시민 충돌의 이기심에서 완성가능성을 기대할
수는 없었고, 외부의 간섭 없는 자유방임에서 모든 국민의 실질적인 자유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시민층의 이기심은 실상 개인의 사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의지에 불과하고, 그
특수의지가 공공복지를 지향하는 일반의지에 우선할 때 사회의 동질성은 무너지고 사회는
분열되어 국가의 안정성은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모든 인간의 자유와 이익을 공평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개인의
이기심에 맡길 것이 아니라 항상 공공의 복지만을 지향하는 일반의지의 지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반의지란 동질적인 사회에 토대를 둔 국가의 최고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반의지를 행사하는 것이 곧 주권이다. 국가에 있어서 일반의지를 집행하는
최고권력이 주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은 일반의지의 주체인 모든 사회 구성원, 즉 인민의
주권이 된다. 이렇게 하여 루소의 주권론은 인민주권론으로 성립하는데, 그에 있어서 주권은 그
성립 근거가 인민일 뿐만 아니라 그 행사도 인민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한다고 한다. 주권의 소재가 군주로부터 전체로서의 인민에게 주어졌다는 점이 바로 루소
주권론의 획기적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루소의 이러한 혁명적 주권론은 프랑스 대혁명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어 마침내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는 루소의 이론이 거의 대부분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그 제
1 조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 3
조에는 "모든 주권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인민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 6 조에는
"법률은 일반의지의 표현이다"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모든 국가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형성된 셈이었다.
이러한 주권재민의 원칙은, 루소 이후 국가주권설과 같은 많은 주권 이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되어 있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주권에 따라 이익과 자유가 더욱 철저히 보장된다고 한다. 서로
평등하고 따라서 동질적인 집단의 공통된 의지가 인반의지이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주권이기
때문에, 주권의 행사는 곧 공동이익의 확보 과정이고 자유의 실현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만일 개인이 자기의 사적이익을 추구한 나머지 일반의지에 따르지 않는다면,
국가권력은 당연히 그를 일반의지에 따르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강제가 아니라 "자유롭게 되도록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체적인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부분적인 그릇된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자유의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루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자유와 권력의 문제에 있어서는, 국가권력이 그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지의 표현인 '동의'에 따라 수립될 때 자유는 보장되며 국가권력의
행사에 따라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로크나 그의 계몽사상가 등 근대 자유주의자들의
자유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 데 비하여, 루소의 자유는 '국가에 의한 자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에 의한 자유는 극단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적 자유가
국가권력에 따라 보장된다고 할 때, 국가권력을 장악한 모든 사람은 '자유의 전제'를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루소는 가끔 전체주의자로 이해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자기합리화에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루소를 그렇게 해석하기 전에, 먼저 그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는 일반의지에
대하여 한 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의지는 단순히 권력을 장악한 사람에게 명분을 주기
위하여 제시되는 허울좋은 간판이 아니라, 서로 이해 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을 만큼 평등하고
동질적인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함께 지향하는 공동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동질적인 사회가 형성되지 않는 한 일반의지는 나타나기 어렵고, 따라서 일반의지를 실행하지
않는 국가권력은 정당한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권력의 장악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이 일반의지를 실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훨씬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기본 사상은 시민사회의 상대적 안정과 더불어 그 현실적 의미를 많이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권력의 근거에 대해 인민의 동의를 주장했을 때 그것은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하였고 이 주권재민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으로 되어
있다. 또 그가 국가에 의한 자유의 실현을 주장했을 때 그것은 자유방임의 종말과 함께 자유의
현대적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일반의지 이론은 오늘날의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점을 제기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할 먼 목표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연보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의 그랑 뤼 거리에서 태어남. 당시 시계수리공이던 아버지 이삭
루소(Isaac Rousseau)는 40세, 어머니 쉬잔느 베르나르(Suzanne Bernard)는 39세였음. 생후
9일 만에 어머니 사망. 그 후 고모 손에서 양육됨.
  1720년  이즈음 아버지와 더불어 문학, 역사, 서적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을 읽으며
감동을 받음.
  1722년  가을,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의 싸움 때문에 즈네브를 떠나 리용으로 감. 쟝 자크는
외삼촌 베르나르에게 맡겨졌고, 그 뒤에 다시 사촌 아브람므와 함께 즈네브 근교에 있는
보아세의 랑베르셰목사 댁에 맡겨짐.
  1724년  즈네브로 돌아감.
  1725년  처음에 서기 마스롱에게 고용되었다가 이어 4월 말에 5년 계약으로 조금사 뒤곰망의
도제가 됨.
  1728년  3월 14일, 친구와 교외에서 놀다가 시의 문이 닫혀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탈출을
결심, 이튿날 즈네브를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 3월 21일, 사봐아 공령 안 느시에 도착하여
바랑(Warens) 부인(28세)을 처음으로 만남. 부인의 지시에 따라 토리노의 구호소에 들어가
4월 21일, 카톨릭으로 개종. 3개월쯤 베르셀리 부인의 종자 노릇을 함. 이즈음 갬므
신부를 알게 되고, 구봉 신부의 비서가 됨.
  1729년  6월경 안느시의 바랑 부인 집으로 돌아감. 라자리스트 신학교에 들어가 음악가
르메트르의 제자가 됨.
  1730년  봄에 르메트르와 함께 리용으로 갔다가 그를 버리고 돌아옴. 바랑부인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며 음악교사를 함.
  1731년  6월에 파리로 가서 군인의 종복이 됨. 9월에 샹베리의 바랑 부인집에 정착.
지적조사소의 서기가 됨.
  1732년  서기를 그만두고 음악교사가 됨. 바랑 부인의 애인이 됨.
  1735년  (또는 1736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바랑 부인과 함께 레 샤르메트에 체재
  1737년  화학 실험의 사고로 실명할 뻔함. 여름에 즈네브로 가서 어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고
가을에 요양차 몽펠리에로 감.
  1738년  봄에 샹베리로 돌아갔으나 바랑 부인의 사랑이 식었음을 알고, 이듬해까지 레
새르메트에서 자기 교육에 몰두.
  1740년  샹베리를 떠나 리용으로 감. 마블리가의 가정교사가 됨. 연말에 "생트 마리의 교육을
위한 계획안"을 씀.
  1741년  5월에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샹베리로 돌아감.
  1742년  레 샤르메트에서 병이 남. 독서와 연구에 몰두. 리용을 거쳐 8월에 파리에 도착.
"악보신기호안"을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 그 이듬해 "현대음악론"으로 출간. 디드로 둥과 사귐.
  1743년  "보르도 씨에게 보내는 편지" 출간. 봄에 뒤펭 부인의 소개를 받아 그 사위와 사귐.
오페라 "사랑의 시신"을 작곡함. 6월에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 몽테규의 비서가 되어
9월에 베네치아에 도착.
  1744년  "정치 제도론", "사회계약론" 에 대한 최초의 구상을 얻음. 대사와 다투고 10월에
파리로 돌아옴.
  1745년  봄에 테리즈 르바쇠르(23세)와 알게 됨. 오페라 "사랑의 시신"을 완성하여 리쉘리에와
같은 사람들 앞에서 상연. 디드로, 콩디약의 합작 오페라 "라미르의 잔치" 개작을 부탁
받음. 볼테르와 편지 교환. 가을에 뒤펭 부인의 사위 프랑퀴이으의 비서가 됨.
  1746년  연말에 테레즈와의 사이에 첫 아이가 탄생, 고아원에 맡김.
  1747년  5월에 아버지 사망, 유산을 받음.
  1748년  데피네 부인을 알게 됨. 테레즈가 낳은 두 번째 아이를 고아원에 보냄.
  1749년  달랑베르로부터 "백과전서" 음악 부문의 의뢰를 받고 집필 시작. 10월에 벵센느의
옥중에 있던 디드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읽고 있던 잡지에서 디종의 아카데미가 현상모집
하고 있는 문제 "학문과 예술의 발달은 도덕의 순화에 기여했는가?"에 응모하기로
결심하고 논문을 집필. 연말쯤부터 테레즈와 살림을 시작함.
  1750년  7월, "학문과 예술론" 당선, 그해 연말에 출간.
  1751년  자기 개혁을 결심하고 프랑퀴이으의 비서 노릇을 그만두고 악보 필사로 생계를 이음.
봄에 세 번째 아이를 고아원에 보냄. "학문과 예술론" 의 반론에 대해서 "그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응수.
  1752년  "보르도 씨에게 보내는 회답"을 출간하여 붐을 일으킴.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작곡하고 10월에 상연하여 호평을 받았지만, 국왕의 알현과 연금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연말에 오페라 "나르시스" 상연. "나르시스 서문", "프랑스 음악에 관한 편지"를 씀.
  1753년  11월에 또 다시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응모할 것을 결심하고 생 제르망의
숲속에서 구상. "프랑스 음악에 관한 편지" 출간으로 오페라 극장의 무료 입장권을 정지 당함.
  1754년  5월, 테레즈와 파리를 출발하여 즈네브로 향함. 도중에 샹베리에서 바랑 부인과 만남.
8월에 즈네브에서 재개종한 뒤 시민권 획득. "정치제도론" 초고를 씀. 10월에 파리로
돌아감.
  1755년  4월, "인간불평등기원론" 출간. 가을에 데비네 부인의 엘미타쥬를 방문.
"정치경제론"을 "백과전서"에 발표.
  1756년  4월 9일, 테레즈 모녀와 함께 엘미타주로 옮겨 삶. 생 피에르 신부의 "영구 평화론",
"다원의회론"의 발췌문을 씀. 여름부터 가을까지 "신엘로이즈" 구상.
  1757년  엘미타쥬를 방문한 두데토 부인과 사랑에 빠짐. 11월 "소피아에게 보내는
편지--도덕 서한"을 씀. 12월, 엘미타쥬를 떠나서 몽루이로 옮김.
  1758년  3월,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완성. 9월, "신엘로이즈" 완성을 출판사에 통보함.
"에밀" 편집.
  1759년  5월 뤽상브르 원수의 프티 샤토에 살면서 "에밀" 제 5 권 집필.
  1760년  "에밀", "사회계약론" 집필.
  1761년  1월에 "신엘로이즈" 출간, 성공을 거둠. 여름에 "에밀"과 "사회계약론" 완성. 11월,
"에밀"의 인쇄가 진행되지 않아 음모가 아닌가 의심함.
  1762년  1월, "마르제르브 장관에게 보내는 네 통의 편지" 집필. 4월 초에 "사회계약론", 5월
말에 "에밀" 출간. 6월 초, 파리의 소르본느와 고등법원이 "에밀"을 금서 처분하고 
루소에게 체포령을 내리자 쉬이스베르누 공화국으로 도망. 즈네브에서도 위 두 서적에
대해서 금서 처분. 7월 10일에 스위스를 떠나 프러시아 왕의 영지 모티에로 옮김. 바랑
부인 사망. 11월, "교서"에 대하여 "크리스토프 드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를 씀.
  1763년  3월, "크리스토프 드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출간. 4월 뇌샤텔의 시민권 취득. 5월,
즈네브 시민권 포기.
  1764년  7월, 식물학에 전념. "산으로부터의 편지"를 써서 10월에 출간. 연말에 볼테르의
"시민의 소감"을 읽고 "고백록"을 쓸 결심을 함.
  1765년  3월, "산으로부터의 편지" 가 파리에서 분서 처분됨. 여름에 생 피에르 섬에서 휴가.
9월, 모티에 부락민의 습격으로 생 피에르 섬으로 옮김. 10월 초, 베르느 시회로부터 퇴거
명령 받음. 10월 말, 베를린을 향해서 출발. 스트라스부르에 도착. 11월 말, 영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 12월 16일에 파리에 도착.
  1766년  1월 4일, 흄 일행과 함께 파리 출발. 13일, 런던에 도착. 2월에 테레즈도 옴. 3월 19일
웃톤으로 옮김. 흄과 다툼. 흄과 체재 중 "고백록" 제 1 부를 씀.
  1767년  3월, 조지 3세로부터 연금을 당함. 5월 초, 테레즈와 함께 웃톤 출발. 6월, 파리 근처
콩티공의 트리에 성에 도착. 가을에 병이 남. 11월, "음악사전" 출간.
  1768년  봄, 파리에서 "고백록" 평판에 오름. 6월, 루소 혼자서 리용에 감. 식물 채집. 여름에
부르고엥에서 테레브와 정식 결혼.
  1769년  1월, 근처 몽캥의 농가로 이주. 봄, "고백록"의 집필을 잠시 중단. 11월, "고백록"
거의 완성.
  1770년  4월, 몽캥을 떠나 리용으로 감. 오패라 "피그마리옹" 완성. 6월, 파리로 감. 악보 필사와
식물 채집에 열중. 12월, "고백록" 완성, 아는 사람들을 모아 낭독회를 엶.
  1771년  2월, 스웨덴 황태자 앞에서 "고백록" 낭독. 봄, "마을의 점쟁이", "피그마리옹"을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 5월, 데피네 부인의 요청으로 "고백록" 낭독회 금지 당함. 가을,
"폴란드 정치론" 집필.
  1772년  "대화--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를 쓰기 시작.
  1773년  악보 필사와 식물 채집. 고통 속에서 "대화" 집필 계속.
  1775년  10월, 루소의 오페라 "피그마리옹"을 본인에게 알리지도 않고 프랑새즈에서 상연,
대성공을 거둠.
  1776년  "대화" 완성. 2월 24일, "대화"의 원고를 노트르담 성당의 대제단에 바치려고 하다가
실패. 1월, 팜플렛을 통행인에게 배부. 가을, "고독한 산보자의 꿈(제 1의 산보)"을 씀.
10월, 산책 도중에 다치자 그가 죽었다고 소문이 남. 연말부터 "제 2의 산보"를 씀.
  1777년  2월, 테레즈의 오랜 병고로 생활이 매우 어려워짐. 봄에서 여름까지 "제 3-7의 산보"를
씀. 악보 필사를 그만둠.
  1778년  봄까지 "제 8__10의 산보(미완)"을 씀. 5월, 미간행 원고 "고백록", "대화" 등을
즈네브의 옛 친구 무르토와 그 아들에게 맡김. 5월 20일, 지라르뎅 후작이 호의를 받아들여
파리 근처 엘므농빌의 후작 저택으로 옮김. 7월 2일 오전 11시 발작이 일어나서 사망. 3일,
우돈에 의하여 데드마스크 제작. 4일 엘므농빌 공원 포플러 섬에 묻힘.

    옮긴이 소개

  이태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수료.
  현재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논문으로 "J.J 루소의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 외 다수.

  최현
  시인, 번역문학가,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역서로는 "융 심리학 입문", "미적 차원(외)", "한국의 비극"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엔트로피의 법칙" 외 다수.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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