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문학작품

[스크랩] 과학혁명의 구조 - 토마스 쿤

그림자세상 2009. 12. 5. 13:40

토마스 쿤 -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Introduction : A Role for History

 

만약 역사가 일화(逸話) 또는 연대기(年代記) 이상의 것들로 채워진 보고(寶庫)라고 간주된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지금 주어져 있는 과학의 이미지에 대한 결정적인 변형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미지는 심지어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서도 예전에는 고전에 기록된 대로,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과학의 새로운 시대마다 그 훈련을 쌓도록 익히는 교과서들에 기록된 대로, 주로 완결된 과학적 업적들의 연구로부터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들의 목적은 필연적으로 설득조인데다 교육용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얻어진 과학의 개념이란 마치 어느 국가의 문화의 이미지를 관광 안내책자나 어학교본에서 끌어낸 격이나 다를 바 없이 실제 활동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 에세이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그런 책에 의해서 오도되어 왔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다. 이 글이 겨냥하는 것은 연구 활동 자체의 사적(史的)인 기록으로부터 드러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과학의 개념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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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빠짐없이 이런 책들에는 과학적 방법들이 단순히 교과서 데이터를 모으는 데 쓰인 손재주의 기법에 의해 예시되는 것들처럼 쓰여져 있으며, 아울러 그들 데이터를 교과서의 이론적 일반화에 연관시키는 경우에 적용된 논리적 조작을 가리켜 과학적 방법인 것처럼 설명한다.

……

만일 과학이 요즈음의 교재에 실린 사실, 이론, 그리고 방법의 집합이라면, 과학자는 성공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 특정한 집합에 한두 가지 요소를 보태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쓰는 사람이 된다. 과학의 발전은, 과학 기술과 지식을 이루면서 날로 쌓여 가는 자료 더미에, 하나씩 또는 여럿이 이들 항목이 덧붙여지면서 뿔뿔이 진행되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과학사는 이들 전승되는 증대와 그것들의 축적을 훼방해 온 장애의 연대사를 기록하는 분야가 된다. 그렇게 되면,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과학사가(科學史家)는 두 가지 주요한 임무를 띠게 된다. 그는, 한편으로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당대의 과학적 사실, 법칙, 그리고 이론이 발견되었거나 창안되었는가를 일일이 결정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의 과학 교과서 구성 내용의 보다 빠른 축적을 방해해 온 오류, 신화, 그리고 미신의 퇴적 더미를 찾아내고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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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뒤지는 이러한 믿음을 신화라 부르기로 한다면, 신화는 현재에도 과학적 지식에 이르는 동일 유형의 방법에 의해 형성될 수 있고, 동일 유형의 이치에 의해 생산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것을 과학이라 부르기로 한다면, 과학은 현재 우리가 가진 것들과는 상당히 부합되지 않는 믿음의 무리를 포함한 것이 된다. 이러한 양자택일이 주어지면, 사가(史家)는 후자를 택해야 한다. 시대에 뒤진 이론들이 폐기되어 버렸다는 이유로 해서 원칙적으로 비과학적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과학의 발전을 증대의 축적 과정이라고 보기가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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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옛 과학이 현재의 우리에게 베푼 영속적 기여를 따지기보다는, 사가들은 바로 그 당대에서의 그 과학의 사적(史的)인 온전성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예를 들면 과학의 관점과 갈릴레오의 관점과의 관계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견해와 그의 그룹, 즉 그의 스승들, 동시대 학자들, 그리고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직계 제자들의 견해 사이의 관계를 묻는 것이다.

……

과학은 아마 과거의 역사 서술의 전통을 따르는 편찬자들에 의해 논의된 것과 같은 활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묵시적으로는 적어도 이런 사적 고찰은 과학의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에세이는 새로운 과학사 서술(historiography in science)이 시사하는 암시를 명백하게 밝혀냄으로써 그 이미지의 윤곽을 잡고자 쓰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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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학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시간을 거의 모두 바치는 활동인데, 이것은 세계가 무엇인가를 과학자 사회가 알고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다. 과학 활동에 있어서 성공의 대부분은, 필요하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 사회가 그 가정을 기꺼이 옹호하려는 의지로부터 나온다. 예컨대 정상과학은 근본적인 새로움(novelty)을 흔히 억제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그러한 새로움이 정상과학의 기본 공약들을 전복시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공약들이 임의성의 요소를 지탱하는 한, 정상과학의 바로 그 성격은 새로운 것이 아주 오랫동안 억제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 때로는 정상적 문제, 즉 기존의 규칙과 과정에 의해 풀려야 하는 문제가 그것을 거뜬히 풀 수 있는 가장 유능한 학자들의 되풀이되는 공격에도 풀리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서는 정상 연구의 목적으로 고안되고 구성된 어느 도구가 예상한 방식대로 들어 주질 않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전문적 예측과는 들어맞지 않는 이상(anomaly)을 나타내게 된다. 이렇듯이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로 정상과학은 거듭 되풀이해서 길을 잃게 된다. 또한 그렇게 될 때―다시 말해서 전문 분야가 과학 활동의 기존 전통을 파괴하는 이상 현상들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을 때―드디어 전문 분야를, 과학의 수행을 위한 새로운 기초인 새로운 공약으로 이끄는 비상적 탐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문 분야의 공약의 변동이 일어나는 비상한(extraordinary) 에피소드들이 바로 이 에세이에서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s)이라 부르는 사건들이다.

……

적어도 물리과학(physical science)의 역사에서는 다른 어느 에피소드보다 더 명료하게 이들 사례는 과학혁명들이 대체 무엇인가를 드러낸다. 이것들은 각기 그 과학자 사회로 하여금 그것과는 양립되지 않는 다른 이론을 택하여 높이 기리던 하나의 과학 이론을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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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의 방정식(Maxwell's equation)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훨씬 작은 전문가 그룹에 대해,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못지 않게 혁명적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저항을 받았던 것이다. 다른 새로운 이론의 창안도 규칙적이고 당연하게 그 영역이 영향을 받게 되는 특수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위와 같은 반응을 유발시킨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새로운 이론은 정상과학의 기존 활동을 다스리던 규칙에서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그것은 이미 성공적으로 완결되었던 과학 업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이 새로운 이론은 그 적용 범위가 얼마나 전문적이든 간에 이미 알려진 것에의 단순한 축적적 보완인 경우가 드물거나 또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이다. 새로운 이론의 동화는 기존 이론의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를 요구하는데, 이는 한 사람에 의해서 또는 하룻밤 사이에 완결되는 일이 거의 없는 본연적으로 혁명적인 과정이다. 그러고 보면 과학사가들이 그들의 용어가 독립된 별개 사건으로 다루어야 하는 이 광범위한 과정을 정확하게 날짜 매김하기가 곤란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산소 또는 X선의 발견과 같은 것은 과학자의 세계에 속한 항목에 단순히 한 종목을 더 첨가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발견은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만, 전문가 사회가 전통적 실험 과정을 재평가하고 오랫동안 익숙해 온 실체에 대한 그 개념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의 조직망을 개편시킨 뒤에서야 일어난다.

……

예기치 않았던 발견이 그 의미에 있어 단순한 사실로 끝나지 않는 이유, 그리고 과학자의 세계가 사실이나 이론의 영역에서 근본적 새로움의 발견에 의해 양적으로 풍요해질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변형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과학자 사회(scientific community)의 분파간의 경쟁은 실제적으로 이전에 수용된 어느 이론을 폐기하거나 또는 다른 것을 채택하는 결과를 빚는 유일한 역사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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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상과학에의 길

 

The Route to Normal Science

 

 

오늘날의 물리학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빛은 광자(photon) 즉, 파동과 입자의 특성을 아울러 나타내는 양자 역학적 실체라고 가르친다. 연구는 그에 따라 진행되거나, 아니면 이런 통상적인 언어 표현이 유도하는 더 정교하고 수학적인 특성화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러나 빛의 그러한 특성을 규정한 지는 반세기 정도밖에 안 된다. 20세기 초 플랭크(Plank), 아인슈타인(Einstein),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학자들이 진전시키기 전까지는, 물리학 교재에서 빛은 횡파(역주 : 진행 방향에 수직되게 진동하는 파동) 운동이라고 가르쳤는데, 이 관념은 19세기 초 영(Young)과 프레넬(Fresnel)의 광학에 대한 저술들로부터 유도되었던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파동 이론은 광학의 거의 모든 과학자들에 의해 수용되기에 이른 첫 번째 학설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18세기 동안 이 분야의 패러다임은 뉴턴의 「광학(Opticks)」에 의해 제공되었는데 그것은 빛을 물질의 입자들(material corpuscles)이라고 가르쳤다.

……

물리광학에서의 패러다임의 이들 전환은 과학혁명이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혁명을 거친 다른 것으로의 연속적 이행은 성숙된 과학에서의 통상적 발달 양상이다. 그러나 뉴턴의 연구 이전 시대의 특징적인 양상은 그렇지 않으며, 여기서 우리가 관심 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득한 고대로부터 17세기 말까지 이르는 시기에 빛의 본질에 관한 널리 수용된 단일한 견해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그 대신 다수의 경쟁하는 학파들과 다시 그 분파가 산재하였고, 대부분이 에피쿠로스주의(Epicurean),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또는 플라톤주의 이론의 이러저러한 입자들이라고 보았다. 또 어느 그룹에게는 빛을 물체로부터 발산되는 입자들이라고 보았다. 또 어느 그룹은 눈으로부터 발산되는 것과 매질의 상호작용에 의해 빛을 설명했다. 이 밖에도 갖가지 조합과 수정의 이론이 존재했다. 해당 학파들은 각각 어느 특정 형이상학에 관련시켜 세력을 키웠으며, 이 각기 패러다임적 관찰로서 그 고유 이론이 가장 잘 설명해 낼 수 있는 광학 현상의 특수한 부분을 강조하였다. 그 밖의 관찰은 특별 취급에 의해 다루어졌거나 또는 앞으로 더 연구할 중요한 문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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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의 발달에서는 어느 개인이나 또는 그룹이 다음 세대의 대다수 전문가들을 유인하기에 충분한 종합을 처음으로 이룩하게 되는 때, 그보다 낡은 학파들은 점진적으로 사라져 간다. 그들의 퇴조는 더러 그들 학파의 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향해 가는 것에도 연유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이든 간에 보다 낡은 이론 중의 이런저런 것에 고착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이후 그들의 연구를 무시해 버리는 그 전문 분야로부터 소외될 따름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 분야의 새롭고 보다 확고한 정의를 내포한다. 자기들의 연구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시키는 것을 원치 않거나 또는 적응시킬 수 없는 사람들은 고립된 채로 계속해야 하든가 아니면 스스로를 어느 다른 그룹에 소속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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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과서가 주어지면 창의적인 과학자는 그 책이 끝나는 곳에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학파의 관심을 끄는 자연 현상에 대한 가장 미묘하고 해득키 어려운 측면에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함에 따라서 그의 연구 보고서들은, 그 진화에 대해서 거의 연구된 바가 없으나 현대적 최종 결과는 모두에게 확실하며 다수에게 구속력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

요즈음 과학 분야에서는 서적이라 하면 흔히 교과서 또는 과학적 생애의 이러저러한 면모를 되돌아보는 회상의 형식을 띤다. 이런 것을 저술한 과학자는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평판이 올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손상되는 것을 발견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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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상과학의 성격

 

The Nature of Normal Science

 

 

하나의 패러다임의 성공―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 행성의 위치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산, 라부아지에의 천평 이용, 또는 전자기장에 대한 맥스웰의 수학화―은 당초에는 주로 아직 불완전한 예제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성공의 약속일 따름이다. 정상과학은 그런 약속의 실재화(actualization)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 특히 시사적이라고 제시하는 그런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고 그런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에 일치 정도를 증진시키면서 그리고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시킴으로써 달성된다.

……

정상과학에 의해 탐구되는 영역들은 물론 소단위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활동은 지극히 한정된 범위에 국한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파생되는 이러한 제한들은 과학의 발전에서 불가결의 것으로 드러난다. 상당히 심오한 문제의 작은 영역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그리고 정상과학은 내장된 메커니즘을 지니는데, 그것은 제한을 유도해 낸 패러다임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언제든지 그 연구를 제한하는 한계성의 완화를 확실하게 한다. 이 시점에 이르면, 과학자들은 저마다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하며 그들 연구 문제의 성격도 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이 잘 들어맞는 얼마 동안, 그 전문 분야는 그 패러다임에의 의존 없이는 그 분야의 구성원들이 상상조차 못하고 도저히 손댈 수 없었던 문제들을 잘 풀어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성취의 일부는 언제나 영속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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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존재는 풀어야 할 문제를 설정해 준다. 흔히 패러다임 이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의 고안에서 직접적으로 암시되는 수가 많다. 예컨대 「프린키피아」가 없었더라면 에트우드 기계를 이용한 측정은 전혀 아무런 의미를 띠지 못했을 것이다.

……

이들과 같은 법칙들의 발견에 패러다임이 선수 조건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분명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흔히 그러한 법칙들은,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실험 그 자체를 위해 진행된 측정들을 검토함으로써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듯이 지나친 베이컨 식의 방식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보일의 실험들은 공기를 유체 정력학의 모든 정교한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탄성의 유체(elastic fluid)로 인식하게 되기 전까지는 구상되지 못했다(그전에 만일 보일의 실험을 상상해 냈다고 했더라도, 그 해석은 엉뚱했거나 아니면 전혀 설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쿨롱이 성공을 거둔 것은 점전하(point charges) 사이의 힘을 측정하는 특별한 전기적 힘을 측정했던 사람들은 일관성과 단순한 규칙성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런 장치 고안은 결국 전기 유체의 각 입자는 떨어져 있는 것들끼리 서로 작용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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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형의 연구의 필요성은 하나의 이론과 자연 사이의 접촉점을 전개시키는 데 있어 흔히 당면하게 되는 엄청난 난관들로부터 생겨난다. 이러한 난관은 뉴턴 이후의 역학(dynamics)의 역사를 살핌으로써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18세기 초엽에 이르러 「프린키피아」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을 찾아낸 과학자들은 그 결론의 일반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매우 충분했다. 과학사에서 알려진 업적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과학의 연구의 범위와 정확성을 둘 다 동시에 그만큼 대단하게 증진시키지는 못하였다. 하늘에 대해서 말하자면 뉴턴은 행성의 운행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유도했으며, 달이 케플러의 법칙들을 만족시키지 않았던 결과들의 일부에 대해서도 설명해 내었다. 지구에 대해서는 뉴턴은 진자(pendulum)와 조수의 간만에 대해 몇몇 단편적인 관찰 결과들을 수학적으로 유도해 내었다. 추가적인 그러나 무작위적인 가정을 도입함으로써, 그는 보일의 법칙과 공기 중에서의 소리의 속도에 대한 중요한 관계식도 유도해 낼 수 있었다. 그 당시 과학의 상황으로서는 그런 증명들의 성공은 지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

이제 잠시 정확성의 문제에 주의를 국한시켜 보자. 우리는 이미 그 경험적 측면에 대해서는 다룬 바 있다. 뉴턴 패러다임의 구체적 응용이 요구했던 특수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특이한 장치―카벤디쉬 장치, 애트우드 기계, 또는 개량된 망원경과 같은 기기―가 필요했다. 이론 쪽에서도 일치를 얻는 데에는 그와 비슷한 여러 가지 난관이 따랐다. 뉴턴은 그의 법칙들을 진자에 적응시킴에 있어서, 예컨대 진자의 길이에 특정한 값을 매기기 위해서 추를 질량점(역주 : 질량만 갖고 크기를 갖지 않는)으로 취급해야 했다. 그의 정리(theorems)의 대부분은 가설적이고 예비적인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또한 공기 저항의 영향을 무시하였다. 이런 것들은 건실한 물리적 근사(approximations)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사로서 그것들은 뉴턴의 예측과 실제 실험 사이에서 기대되는 일치성을 제한하였다. 뉴턴의 이론을 하늘에 적용하는 데서는 바로 이 난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간단한 계량적 망원경 관찰에 따르면 행성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지시한다. 그런 법칙들을 유도하기 위해서 뉴턴은 각각의 행성과 태양 사이를 제외하고는 인력에 의한 작용을 모두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행성들은 상호간에도 끌어당기고 있으므로, 적용된 이론과 망원경의 관찰 결과 사이에는 고작해야 근사적인 일치만이 예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치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었던 사람들에게는 물론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지상의 문제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어떤 이론도 그렇듯이 잘 풀어낼 수가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치성에서의 이러한 한계는 뉴턴의 후계자들에게 매력적인 이론적 문제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동시에 서로 끌어당기는 둘 이상의 물체의 운동을 다루기 위해서 그리고 교란된 궤도에서의 안정성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기교들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걸쳐, 이와 같은 문제들은 유럽의 가장 우수한 수학자들을 사로잡았다. 오일러(Euler), 라그랑주(Lagrange), 라플라스(Laplace), 가우스(Gauss)는 모두들 뉴턴의 패러다임과 하늘 세계의 관찰 결과 사이의 일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문제들에 대해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이들 인물들의 대부분은 동시에 뉴턴이나 또는 역학의 당대 어느 대륙 학파도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응용에 요구되는 수학을 전개시키는 일도 했다. 이를테면, 그들은 유체역학(hydrodynamics)과 진동하는 현(弦)의 문제에 대해 방대한 문헌과 몇 가지의 막강한 수학적 기법을 탄생시켰다. 응용의 이들 문제들은 18세기의 가장 빛나고도 심혈을 기울인 과학적 연구가 과연 무엇인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패러다임-이후(post-paradigm) 시대를 검토해 보면 다른 실례들이 발견되는데, 그런 것으로는 열역학(thermodynamics), 빛의 파동 이론(wave theory), 전자기 이론(electomagnetic theory), 또는 그 기본 법칙들이 완전히 정량적인 과학의 여타 분야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적어도 보다 수리적인 과학에서는 이론적 연구는 거의 모두 이런 유형의 작업이 된다.

……

수리적 과학(mathematical sciences)일지라도 패러다임 명료화(articulation)의 이론상 문제는 따르게 마련이다. 과학의 발전이 주로 질적인 성격을 띤 시기에는 이런 문제들이 두드러지게 많다. 보다 정량적이고 보다 정성적인 과학 양쪽에서 문제들의 일부는 단순히 제공식화(reformulation)에 의한 패러다임의 명료화를 목표로 삼게 된다.

……

18세기의 오일러와 라그랑주로부터 19세기의 해밀턴(Hamilton), 야코비(Jacobi), 헤르츠(Hertz)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가장 탁월한 수리 물리학자들은 역학 이론을 동등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심미적으로 보다 만족스러운 형태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하게 되었다.

                                                                       55 ~ 58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식화하는 이와 동류의 작업은 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으나,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위에 언급한 「프린키피아」의 재공식화보다 훨씬 더 뚜렷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 왔다. 그러한 변화들은 앞에서 패러다임 명료화를 겨냥하는 것으로서 설명된 경험적 연구의 결과로부터 나타난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연구를 경험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임의적인 것이었다. 정상과학에서의 다른 어느 유형보다도 패러다임 정련의 문제는 이론적이면서도 동시에 실험적이다.

쿨롱은 스스로 그의 장치를 꾸며서 그것으로 측정을 할 수 있기에 앞서, 그의 장치가 어떻게 꾸며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전기 이론을 원용해야 했다. 그의 측정에서 귀결된 결론은 그 이론에서의 정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는 다시, 압축에 의한 발열 현상에 관한 갖가지 이론들을 구별지을 수 있는 실험을 고안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비교되고 있는 여러 가지 해석들을 내놓았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실과 이론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었고, 그들의 연구 결과는 단순히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보다 정확한 패러다임을 산출했으며 그것은 그들이 연구를 시작했던 원래의 형태가 지닌 모호함을 제거함으로써 얻어지게 되었다. 다수의 과학에서 정규의 연구 활동은 대부분 이런 성격을 띠게 된다.

문제들에 관한 이들 세 가지 유형―의미 있는 사실의 결정, 사실의 이론에의 일치 그리고 이론의 명료화―은 실험적 및 이론적 과학의 양쪽에서 정상과학 문헌을 거의 전부 차지하는 것 같다.

                                                                       59

 

 

4. 수수께기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Normal Science as Puzzle-solving

 

 

우리가 방금 살펴본 정규적인 연구 문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그들 연구가 개념적이거나 현상적인 주요한 새로움을 얻어내는 것은 거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63

 

인간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데에는 갖가지의 이유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유용성에의 욕구, 새로운 영역을 탐사하는 경이감, 질서를 찾아내려는 희망, 이미 정립된 지식을 시험하려는 충동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동기와 다른 동기들 역시 이후에 그 사람이 다루어야 할 특수 문제들을 결정짓는 데 도움을 준다. 물론 경우에 따라 결과는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동기들이 일차적으로는 과학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그 다음에는 그를 이끌어 나가게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66 ~ 67

 

만일 ‘규칙(rule)'이란 용어를 상당히 폭넓게 사용하기로 한다면―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견해(established viewpoint)' 또는 ‘예지(叡智, preconception)'와 동격으로 쓰일 것인데― 주어진 연구 전통 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들은 이 같은 부류의 수수께끼 특성과 매우 유사한 어떤 것을 드러낸다.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기계를 고안하는 사람은 어느 장치가 단지 특정한 스펙트럼 선에 특정한 값을 매겨 준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단순히 탐사자 또는 측정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해야 할 일은 광학 이론의 정립된 개념에 의하여 그의 장치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기기가 알려 준 숫자가 바로 이론에서의 파장과 같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론에서 미결된 허점이 있다거나 또는 그의 장치에서의 분석되지 않은 요소로 인해 그 증명을 완결시키지 못하는 경우, 그의 분야의 동료들은 그가 아무것도 측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짓기가 알맞다.

……

그런 결과들이 어느 것의 척도가 되기까지에는, 그것들은 우선 운동하고 있는 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했던 이론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연관성이 지적된 이후에도 실험 결과가 이론과 양론의 여지없이 분명한 상관 관계로 연관될 수 있도록 장치를 다시 꾸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되기 전까지는 어떤 문제도 해결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68

 

지역과 시대에 덜 구애받고, 그러면서도 변모하는 성격의 과학 특성이 되는 것은, 사적(史的)인 고찰에서 매우 규칙적으로 드러나는 보다 고차원적인 유사-형이상학적(quasi-mataphysical) 입장이다. 예를 들면 1630년경 이후 그리고 특히 물리학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 데카르트의 과학 저술의 출현 이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우주는 미시적인 입자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현상은 모두 입장의 형태?크기?운동 그리고 상호 작용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공약의 한 묶음은 형이상학적이며 또한 방법론적임이 밝혀졌다.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그것은 과학자들에게 우주는 어떤 유형의 실체를 포함하며 또 어떤 것을 포함하지 않는가를 일러주었다. 우주에는 오로지 형태를 갖춘 물질이 운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그것은 과학자들에게 궁극적인 법칙과 기본이 되는 설명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러주었다. 법칙들은 입자의 운동과 상호 작용을 명시해야 하며, 설명은 어느 주어진 자연 현상을 이들 법칙 하에서의 입자의 작용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70 ~ 71

 

과학의 전문 분야의 수행자들은 모두 어느 주어진 시대에서 거기에 집착할 수 있는 규칙들을 지닌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규칙들이 그 자체만으로 그 분야 전문가들의 활동에서 공유되는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바로 이 에세이의 첫머리에서, 공유된 패러다임을 가리켜 공유된 규칙, 가정, 그리고 견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과학 전통의 일관성의 원천이라고 소개했던 까닭이 된다. 나는,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그러나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도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한다.

                                                                       72

 

 

5. 패러다임의 우선성

 

The Priority of Paradigms

 

 

표준 해석 또는 규칙에의 합의적 수렴의 부재가 패러다임이 연구의 방향을 잡는 것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정상과학은 부분적으로 패러다임들의 직접 점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데, 그것은 흔히 규칙들과 가정들의 공식화의 도움을 받게 되나, 그렇다고 그것들에 의존하지는 않는 과정이다. 사실상 하나의 패러다임의 존재는 어느 완벽한 한 벌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조차 할 필요가 없다.

자격을 갖춘 규칙들의 본체가 없이, 과학자를 특정한 정상과학의 전통에 묶어 놓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패러다임의 직접적 점검(direct inspection of paradigms)'이란 문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은, 크게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에 의해 전개되었던 바 있다. 그 내용은 보다 기본적이고 보다 친숙한 것이므로, 그의 논거의 형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의자‘니 ’잎사귀‘니 ’게임‘이니 하는 말들을 애매하지 않게 그리고 논쟁거리가 되지 않게 적용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

이런 물음은 아주 오래된 것이며 대체로 우리는, 의식적이든 또는 직감적이든 간에, 의자니 잎사귀니 게임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대답하여 왔다. 말하자면 오로지 게임들만이 공통으로 지니는 어떤 속성들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주어지고 우리가 그것을 적용하는 세계의 유형이 정해지는 경우, 그런 공통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지었다.

                                                                       77

 

과학자들은 교육을 통해서나 문헌을 계속 접함으로써 터득하게 되는 모델부터 연구하게 되는데, 그러는 동안 어떤 특성에 의해 그러한 모델들이 그 사회의 패러다임의 자격을 얻게 되었는가는 잘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 필요가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규칙의 완벽한 묶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참여하는 연구 전통에서 드러나는 일관성은 역사적?철학적으로 더 연구하면 베일이 벗겨질 수 있는 내재적인 규칙과 가정 본체의 존재조차도 암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보통, 무엇이 특정 문제나 풀이를 정당화시키는가를 묻거나 논쟁 삼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직관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은 답을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물음도 답변도 그들의 연구에 관련되지 않은 듯이 느껴지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패러다임들은 그것들로부터 분명하게 추상화될 수 있는 연구 규칙의 어느 묶음보다도 우선적이며 더욱 구속력 있고 더욱 완전할 수 있다.

……

실제로 패러다임이 그런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명백함과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정한 정상과학 전통을 주도해 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극히 곤란하다는 점이다. 이런 난점은 철학자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할 때 당면하는 어려움과 거의 똑같다. 두 번째 이유는, 사실상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의 필연적 결과인데, 과학 교육의 성격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미 분명해진 사실로서 과학자들은 결코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것들 자체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지능적 수단들은 당초부터 과학자들에게 그 적용과 더불어 또는 적용을 거쳐서 드러나는 역사적?교육적 선행 단계에서 접하게 된다.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어떤 구체적 영역에 적용시킴과 더불어 발표된다.

                                                                       78 ~ 79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응용 연구에 의존하며 여기에는 연필과 종이를 갖고 또는 실험실에서 기기에 의해 실제 문제를 푸는 것이 둘 다 포함된다. 이를테면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힘’?‘질량’?‘공간’, 그리고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는 경우, 대개 이들 개념을 문제-풀이(problem-solution)에 적용시켜 관찰하고 관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지, 교재에 실린 불완전하지만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의들로부터 터득되는 것은 훨씬 적다.

……

많은 과학자들은 당시의 구체적 연구 주제에 내재하는 특정한 개별적 가설에 대해서는 쉽게 그리고 잘 논의하지만, 그들 분야에서 확립된 기반이나 타당성 있는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함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에 비해 별로 나을 게 없다. 과학자들이 그런 추상적 개념화를 터득하는 경우, 그들은 주로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게임의 가설적인 규칙들에 의지하지 않고도 이해될 수 있다.

과학 교육의 이러한 결과들은 패러다임이 개념화된 규칙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 모형이 됨으로써 연구의 지표가 된다고 보는 세 번째 이유를 제공한다는 논의를 성립시킨다. 관련되는 과학자 사회가 성취된 특정 문제-풀이를 의문 없이 수용하는 한에서만 정상과학은 규칙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나 모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규칙들은 중요해지게 될 것이며, 규칙들에 대한 특유의 무관심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바로 실제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특히 패러다임-이전(pre-paradigm) 시대는 으레 합법적인 방법, 문제 및 문제-풀이의 표준―이것들은 합의를 도출하기보다는 학파를 정의하는 구실을 하지만―에 대한 빈번하고 심각한 논쟁으로 특정지워진다. 우리는 이미 광학과 전기학에서의 그러한 논쟁에 관해 몇 가지 살펴보았는데, 그들 논쟁은 17세기 화학과 19세기 초엽 지학(geology)의 발달에서는 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구나 그와 같은 논쟁들은 어느 패러다임이 출현한다고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과학혁명, 즉 패러다임이 공격을 받게 되고 다음 단계에서 바뀌게 되는 시기의 바로 직전과 그 과정에서는 논쟁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곤 한다.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으로의 이행은, 더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eletromagnetic theory)에 의해서 그리고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에 의해서 그와 비슷한 논쟁이 빚어졌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갈릴레오 역학과 뉴턴 역학의 동화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데카르트주의자들, 그리고 라이프니츠 학파와의 사이에서 과학의 적법한 기준에 관해 특히 유명한 일련의 논쟁사를 기록하였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들 분야의 기본적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합의되지 않을 때에는, 규칙을 찾아낸다는 일이 평상시에는 지니지 않던 기능을 맡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합리화에 대한 동의가 없이 또는 합리화 같은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패러다임은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80 ~ 82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개관하면, 오히려 과학은 그 다양한 부분 가운데서 거의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상당히 줏대 없는 구조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흔히 보이는 관찰과 모순될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규칙 대신에 패러다임을 대치하는 것은 과학의 분야와 세부전공의 다양성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명시적인 규칙들은, 그것들이 존재할 때에는, 매우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인 것이 상례이지만 패러다임은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천문학과 식물 분류학처럼 크게 동떨어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책들에서 설명된 다른 업적에 접하며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똑같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동일한 책들과 업적들을 많이 공부하는 것으로 출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 나는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물리학자들로 구성된 방대하고 다양한 과학자 사회를 생각해 보자. 요즈음은 그런 그룹의 구성원은 누구나가 예컨대 양자 역학의 법칙들을 배우며, 그들 대부분은 연구라든지 강의의 어느 시기에 이르러 이들 규칙을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이들 법칙들의 동일한 적용을 배우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양자 역학의 실제 변화에 의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세분화에 이르는 길에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들에만 접하게 된다. 다른 학자들은 이들 원리들의 화학 분야에의 패러다임 적용에 대해 상세히 연구하게 되며, 또 다른 학자들은 고체 물리학에의 적용에 관해 연구하는 등등 다양해진다. 양자 역학이 과학자들의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는 그가 무슨 과목을 택했는가, 무슨 책들을 읽었는가, 어떤 문헌을 공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

단적으로 표현해서, 양자 역학(또는 뉴턴 역학 또는 전자기 이론)은 다수의 과학 그룹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이기는 하나,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패러다임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같은 폭을 갖지 않으면서 중첩되는 정상과학의 여러 전통을 동시에 결정할 수 있다.

……

어떤 연구자가 과학자들은 원자론(atomic theory)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 특출한 물리학과 유명한 화학자에게 헬륨의 단일 원자는 분자인가요,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양쪽 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으나, 그들의 답변은 같지 않았다. 화학자에게는 헬륨의 원자는 하나의 분자였는데, 왜냐하면 기체의 운동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분자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편 물리학자에게는 헬륨 원자는 하나의 분자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분자 스펙트럼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일한 입자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었으나, 자신들 특유의 연구 훈련과 활동을 통해서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풀이에서의 그들의 경험은 분자는 무엇이라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의 경험은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었으나, 이 경우 그 경험들은 두 전문가에게 동일한 내용을 말해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82 ~ 84

 

 

6. 이상(異常) 현상과 과학적 발견의 출현

 

Anomaly and the Emergence of Scientific Discoveries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적인 경우, 그 어떤 새로움을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그리고 뜻밖의 현상들이 과학 연구에 의해 끊임없이 베일이 벗겨졌다.

                                                                       87

 

기체 과학(pneumatic chemistry)의 이 경우에서, 정상과학의 진보는 매우 철저하게 비약적 발전에의 돌파구를 열어 주었다. 비교적 순수하게 산소 기체의 시료를 처음으로 얻었다는 사람은 스웨덴의 약제사인 셀레(C.W.Sheele)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업적을 무시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다른 데서 산소의 발견이 거듭 선언되기까지 그것은 공표되지 않았던 까닭에 결국 여기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두는 역사적 양상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기로 보아 산소 발견을 주장한 두 번째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이며 신학자인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로서, 그는 여러 가지 고체 물질로부터 방출되는 ‘공기(airs)'에 대해 정규적인 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하던 중, 수은의 붉은 산화물을 가열할 때 방출되는 기체를 모으게 되었다. 1774년에 그는 이렇게 생성된 기체를 아산화질소(nitrous oxide)라고 확인하였다가, 좀더 시험한 결과 1775년에는 플로지스톤이 그 통상적인 양보다 좀 덜 들어 있는 보통 공기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주장자인 라부아지에(A.L.Lavoisier)는 1774년의 프리스틀리의 실험 후, 그리고 아마도 프리스틀리에게서 힌트를 얻은 결과로서, 산소까지 이끌어 간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775년 초, 라부아지에는 수은의 붉은 산화물을 가열해서 얻은 기체는 ’바뀐 것이 없는 공기 그 자체로서(다만 다른 것은)…… 보다 순수하며 호흡하기에 더욱 좋은‘ 것이라 하였다. 177년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프리스틀리로부터 두 번째 힌트를 얻은 결과이겠는데, 라부아지에는 그 기체는 별개의 화학종으로서 대기의 두 가지 주성분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으며, 이는 프리스틀리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었던 견해였다.

발견의 이러한 양상은 과학자들의 인식 영역에 들어왔던 새로운 현상에 대하여 한결같이 묻게 되는 질문을 제기한다.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만약 둘 중 하나라면 프리스틀리인가 라부지에인가? 어느 경우이거나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질문은 마찬가지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권(priority)과 발견 시기에 대한 판정으로서,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우리에게 별 문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찾고 있는 대답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발견의 본질을 밝혀줄 것이다. 발견이란 거기에 대해 적절하게 질문이 제기되는 그런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 물음을 묻게 된다는 사실―산소에 대한 발견의 우선성에 대해서는 1780년대이래 줄곧 논쟁이 되어 왔다―은 발견에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과학의 이미지에서 좀 빗나간 증상이 된다. 산소의 실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후에 특이한 종(species)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기체를 먼저 분리해 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얻은 시료는 순수하지가 못했다. 만일 불순한 산소를 얻은 것이 그것을 발견해 낸 것이라면, 대기 중의 공기를 병에 담았던 사람은 모두 산소를 발견했다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프리스틀리가 발견자라면 그 발견은 언제 이루어진 것인가? 1774년에 그는 자기가 얻은 기체를 그가 이미 알고 있었던 종인 아산화질소라고 생각했다. 1775년에는 그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dephlogisticated air)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직 산소는 아니었고 플로지스톤 화학자에게는 심지어 전혀 예기치 못한 종류의 기체였다.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보다 강점을 지니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우리가 프리스틀리의 공로를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가 그 기체를 ‘온전한 공기 자체(air itself entire)'라고 보았던 1775년의 연구를 들어 그에게 영예를 돌릴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단순히 그 기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1776년과 1777년의 연구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판정조차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데, 왜냐하면 1777년 그리고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원자력 ’산성의 원리(principle of acidity)'라고 주장했고 산소 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caloric), 즉 열의 물질과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777년에도 산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성의 원리라는 개념은 화학에서 1810년이 지나도록 소멸되지 않았으며,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산소는 이들 연대들의 어느 시기보다 일찍이 표준적 화학 물질로 자리잡았다.

산소의 발견과 같은 사건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분명히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요구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옳기는 하지만, ‘산소가 발견되었다’라는 글귀는, 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그리고 또한 미심쩍은) 관념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도 일회적인 단순행위라고 암시함으로써 오해를 유발시킨다. 이것이 바로, 보거나 만지는 것처럼 발견하는 것도 똑 떨어지게 한 사람 손으로 어느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쉽사리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발견을 한순간의 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사람에 의한 것으로 발견을 돌리는 것도 흔히 마찬가지이다. 셀레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1774년 이전에는 산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며, 아마도 1777년쯤 또는 그 바로 직후에 산소가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 또는 그 비슷한 여러 한계 내에서의 발견의 시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합적 사건으로서 무엇인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둘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산소가 우리에게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dephlogisticated air)였다면, 언제 발견했는지는 모르는 채로라도 주저 없이 프리스틀리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찰과 개념화, 사실과 이론에의 동화, 이 두 가지가 발견 과정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면 발견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며 시간이 소요되어야만 한다. 관련되는 개념적 범주가 모두 미리 갖추어진 경우, 즉 현상이 새로운 유형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그것을 발견하는 일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함께 즉각적으로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이제 발견에서는 개념적인 동화라는 확장된, 그러나 반드시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닌, 과정이 개재한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자. 그러면 발견은 패러다임에서의 변화를 포함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가?

……

라부지에가 1777년부터 줄곧 그의 논문에서 공표한 내용은 산소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소에 관한 산소 이론(oxygen theory of combution)이었다. 그 이론은 매우 광범위하게 화학의 계통적 재구성에서의 쐐기가 되었던 까닭에 보통 화학혁명(chemical rovolution)이라 불린다. 실제로 만일 산소의 발견이 화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의 요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묻기 시작했던 우선 순위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산소에 대한 연구가 기여한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라부아지에의 초기의 느낌에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갖추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라부아지에에게 그가 발견하도록 이미 마련되어 있던 것―연소가 대기로부터 제거시키는 물질의 본질―을 일러주었다. 잘못된 것을 이렇게 미리 인지했던 것은 라부아지에가 프리스틀리의 것과 같은 실험을 하면서, 거기에서 그가 볼 수가 없었던 기체를 볼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바꾸어 말하면, 라부아지에가 보았던 것을 보기 위해서 패러다임의 대폭 수정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프리스틀리가 그 긴 생애의 종말까지 어째서 그것을 볼 수 없었던가를 설명하는 주된 이유임에 틀림없다.

                                                                       88 ~ 93

 

산소의 발견과는 달리 X선의 경우는, 적어도 그 사건 뒤 한 10년 동안 과학 이론상의 어느 격변에서도 암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발견의 동화는 과연 어떤 의미에서 패러다임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한 변화를 부정하는 입장은 상당히 강경하다. 확실한 것은 뢰트켄과 그 시대 연구자들에 의해 동의(同意)되었던 패러다임으로는 X선을 예측해 낼 수 없었다[그 때까지만 해도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eletromagnetic theory)은 널리 인정받지 못했으며, 음극선이 입자로 이루어진다는 이론은 그 당시의 여러 추측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패러다임은 플로지스톤 이론이 프리스틀리의 기체에 대한 라부아지에의 설명을 방해했던 것처럼, 적어도 어떤 분명한 의미에서 X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1895년에는 수용된 과학 이론과 실제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복사파―가시 광선, 적외선, 그리고 자외선―를 인정하게 되었다. 어째서 X선은 자연 현상의 잘 알려진 부류의 부가적인 한 형태로서 수용될 수 없었던 것일까? 어째서 X선은 이를테면 화학 원소의 한 가지를 더 발견해 낸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것일까? 주기표상의 빈  자리에 새로운 원소들을 찾아 넣는 일은 뢰트겐의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으며 실제로 발견되고 있었다. 그러나 노력의 추구는 정상과학의 표준형 프로젝트였으며, 성공을 거두는 것은 놀라움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었다.

그러나 X선은 놀라움뿐만 아니라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켈빈 경은 처음에는 X선을 가리켜 정교한 속임수라고 선언했다. 다른 학자들은, 그 증거를 의심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 발견에 의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X선은 확립된 이론에 의해 이단시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확고부동한 예상들을 위배하고 있었다.

                                                                       94 ~ 95

 

정규 프로젝트에서 이미 완료된 연구는 이제 다시 검토되어야 했을 것인데, 왜냐하면 이전의 과학자들은 X선에 관련되는 변수를 인식하고 조절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말할 나위 없이, X선은 새로운 장(場)을 열었고 그럼으로써 정상과학의 잠재적 영역에 덧붙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X선은, 현재로서는 보다 중요한 측면으로서 또한 기존의 분야들까지 변화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X선은 기기 장치의 종전의 패러다임적 형태로부터 그 패러다임적 권리를 박탈해 버렸다.

                                                                       95 ~ 96

 

‘공기의 정수(the goodness of air)'에 대한 표준 시험을 통해서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는 둘 다 그들의 기체를 산화질소와 2대 1의 부피비로 섞어, 물 위에서 그 혼합물을 흔들고, 기체 잔여물의 부피를 측정했다. 이런 표준 과정에까지 이르게 된 과거의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대기 중의 공기로 실험하면 잔여 기체의 부피가 1이 될 것이며, 그 밖의 다른 기체(또는 오염된 공기)에 대해서는 부피가 그보다 커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케 했다. 산소 실험들에서 두 사람은 모두 잔여 기체를 부피 1에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결과에 근거해서 기체를 확인하였다. 한참 지난 후에야, 그리고 더러는 우발적인 사건을 거쳐, 프리스틀리는 표준 과정을 버리고 산화질소를 그의 기체와 다른 비율로 섞어 보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산화질소 부피를 4배로 늘려 섞으며 도대체 남는 기체가 거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의 시험 방법―훨씬 이전의 경험으로 성역화된 과정―을 고수한 것은 또한 산소처럼 작용하는 기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고집한 것을 의미했다.

……

우리는 그러한 기기적인 방법에 대한 믿음이 오류로 판명되는 횟수로 보아, 과학은 표준 시험과 표준기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어도 좋은 것일까? 그런 일은 상상도 못할 연구 방법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패러다임 실험법과 응용은 패러다임 법칙과 이론만큼이나 과학에 필수적인 것이며, 그 영향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할 수 없이 패러다임 과정과 응용은 어느 주어진 시기에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상학적 영역을 제한하게 된다. 이 정도를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X선과 같은 발견이 과학자 사회의 특정 분파에 대하여 패러다임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본질적 의미를 아울러 깨닫게 된다. 그 결과 X선의 발견이 어떻게 해서 다수의 과학자들에게 신기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으로 보였는가, 그리고 그럼으로써 20세기 물리학에 이르게 했던 위기에서 어떻게 막중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96 ~ 97

 

심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훨씬 잘 알려질 만한 이유가 충분한 심리학의 한 실험에서, 브루너(Bruner)와 포스트먼(Postman)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트럼프 한 벌을 잠시 조정해서 보여 주고 가려내게 했다. 대부분의 카드는 정상적인 것이었으나, 몇 장은 이상스럽게 만들어서, 예컨대 스페이드의 6장을 빨강으로, 하트의 4를 검정색으로 만들었다. 한 차례 실험은 한 사람에게 카드 한 장씩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점차로 횟수를 늘려 보여주었다. 매번 패를 보여 줄 때마다 실험 대상자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고, 연달아 두 번을 옳게 맞추는 경우 한 차례가 종료되는 식이었다.

아주 잠깐 보는 것으로도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거의 모든 카드를 알아보았고, 좀더 늘린 결과 피실험자들은 카드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것의 과정에 있어서는 정상적인 카드에 대해서는 보통 옳게 맞추었으나, 이상한 카드는 거의 예외 없이, 외관적인 망설임이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정상적인 카드로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하트 검정색 4는 스페이드 4 또는 4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것은 기존의 경험이 마련해 준 개념적 범주 중 하나에 즉각적으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피실험자들은 자기들이 대답했던 것과는 다른 카드를 보았다고는 아무도 말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스런 카드를 점점 자주 보여줌에 따라, 피실험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이상의 감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빨강 스페이드 6을 여러 번 보여주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스페이드 6인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걸, 검정색에 붉은 테두리가 둘렸나.” 더 자주 보여 주는 것은 보다 오랜 망설임과 혼돈을 초래하다가 드디어 어느 시점에서, 때로는 아주 갑자기,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망설이지 않고 제대로 맞추게 되었다. 더욱이 이상스런 카드를 두세 개 써서 이런 실험을 한 후에는, 그들은 다른 이상한 카드에 대해 더 이상 별로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그들 범주에 제대로 적응해 내지를 못했다. 정상 카드를 옳게 알아맞출 수 있는 데 필요했던 평균치보다 40배나 더 카드를 접하면서도, 이상한 카드의 10% 이상이 제대로 맞춰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99 ~ 100

 

하나의 은유로서 또는 그것이 정신의 본질을 반영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심리학의 실험은 과학적 발견의 과정에 대해 신통하리만큼 단순하고 수긍이 가는 도식적 설명을 제공한다. 트럼프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는 신기한 새로움은 예측되었던 바에 거스르는 저항에 의해 두드러지게 되는 난관을 뚫고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후에는 이상 현상이 관찰되도록 마련된 상황일지라도, 초기에는 예상되고 통상적인 것만이 경험된다. 그러나 더 깊이 인식하게 되면 무언가 잘못이란 것을 깨닫게 되거나 또는 이전에는 잘못되었던 그 무엇이 그 결과를 연관시키기에 이른다. 異常의 이러한 인지는 개념적 범주가 조정되는 시기의 막을 열게 되며, 드디어 당초에는 이상하던 것이 결국 예측되는 것으로 바뀌기에 이른다. 그 시점에서 그 발견은 완료되는 것이다.

……

어느 과학의 발달에서나 최초로 수용된 패러다임은 보통 그 과학의 종사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관찰과 실험의 대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듯이 느껴지게 된다. 따라서 더욱 발달됨에 따라 정교한 장치의 제작, 심오한 의미의 어휘와 기술의 개발, 그리고 상식에 대한 일치성이 점점 감소되는 개념들의 정련이 요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전문화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시키며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상당한 저항으로 작용한다. 과학은 점점 경직되어 간다. 다른 한편으로 패러다임이 그룹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그런 분야에서는 정상과학은 정보의 세부화로 유도하며, 다른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관찰-이론 일치(observation-theory match)의 정확성으로 유도한다. 더구나 그런 상세함과 일치의 정확성(precision-of-matc)은 항상 대단히 높지는 않은 그들의 본유적 관심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다. 예측되는 기능을 위주로 제작된 특수 장치가 없었더라면, 궁극적으로 새로움으로 이끈 결과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장치가 갖추어진 경우라도, 무엇을 예측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면서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새로움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100 ~ 102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Crisis and the Emergence of Scientific Theories

 

 

발견이 동화된 이후,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의 보다 넓은 영역에 관해 설명할 수 있었거나 또는 이미 알려진 현상들의 일부에 관해 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득은 기존의 표준 이념이나 방법을 더러는 포기하거나, 동시에 이전 패러다임의 그런 구성 요소들을 다른 것으로 대치함으로써 성취되었다.

                                                                       105

 

이상(anomaly)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종류의 현상의 출현에 한몫을 한다면, 그와 유사하면서도 더욱 심오한 인식이 수긍할 만한 이론의 변화 모두에 선수 조건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점에 관한 역사적 증거는 재론의 여지없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상황은 코페르니쿠스의 선언 이전에 하나의 스캔들이었다. 운동 연구에서의 갈릴레오의 공헌은 스콜라 학파의 아리스토텔레스 이론 비판에서 나타난 난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뉴턴의 빛과 색깔에 대한 새로운 이론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패러다임-이전 이론들 중 그 어느 것도 스펙트럼의 길이를 설명하지 못했음을 발견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뉴턴 이론을 대치한 파동 이론은 회절(diffraction)과 편광(polarization) 효과를 뉴턴 이론에 관련지으면서 이상 현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표되었다. 열역학은 19세기의 두 기존 물리과학 이론의 충돌로부터 탄생하게 되었고, 양자 역학은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 비열(specific heats) 그리고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를 둘러싼 갖가지 난제들로부터 탄생되었다. 더욱이 뉴턴 이론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서 이상 현상에 대한 인식이 매우 오래 지속되었고 아주 깊숙이 침투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분야들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태라 묘사하는 것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대규모의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문제 및 기술(techniques)에서의 주요 변동을 요구하는 까닭에, 새로운 이론들의 출현은 대체로 전문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치게 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그런 불안정함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데서 발생된다. 그리고 기존 규칙의 실패는 새로운 규칙에의 탐사를 향한 전조가 된다.

                                                                       106 ~ 107

 

천문학적 전통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으며, 인쇄술이 없는 상황에서 천문학자들 사이의 견해 교류가 한정되었었기 때문에 이들 어려움은 매우 느리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는 깨닫게 되었다. 13세기 무렵 알폰소 10세(Alfonso X)는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그에게 의논했더라면, 신은 훌륭한 충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16세기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공동 연구자인 노바라(Domenico da Novara)는 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이 전개되었던 바와 같은 엉성하고 부정확한 체계가 자연에 대한 진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코페르키쿠스 자신은 「천구(天球)들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의 서문에서 그가 계승한 천문학 전통은 결국 괴물을 창조했을 따름이라고 적었다. 16세기 초엽에는 유럽의 최고 천문학자들 중 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의 패러다임을 그 고유의 전통적 문제에 적용함에 있어 제구실을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의식은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식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하는 데 요구되었던 선행 조건이었다. 그의 유명한 서문은 아직까지도 위기 상황에 관한 고전적 서술의 하나가 되고 있다.

                                                                       108

 

상대성 이론(relativity theory)의 탄생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던 물리학에서의 19세기 말의 위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위기의 뿌리 하나는 17세기 말로 거슬러 오르는데, 이 시절 다수의 자연철학자(natural philosopher)들은, 그들 중에서도 라이프니츠(Leibniz)가 가장 심하게, 절대 공간의 고전적 개념을 새롭게 수정해서 고수하는 것에 대해 뉴턴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근사하게,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절대 위치와 절대 운동은 뉴턴 체계에서는 전혀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간과 운동에 대한 완벽한 상대적 개념이 후에 전개될 상당히 심미적인 매력을 암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은 순전히 논리적인 것이었다. 지구의 부동성(不動性)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명을 비판했던 초기의 코페르니쿠스 학파처럼, 이들 자연 철학자들은 상대론적 체계로의 전환이 관측에서의 새로운 결과를 주리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어느 시점에서도 뉴턴 이론이 자연에 적용될 때 야기되었던 어떤 문제에도 그들의 견해를 관련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의 견해는 18세기 초 몇 십 년 사이의 그들과 더불어 사라졌으며, 그 후 19세기 말 수십 년 동안 물리학의 실제에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때 비로소 부활되었던 것이다.

                                                                       112 ~ 113

 

상황은 19세기 말의 20년 사이에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electromagnetic theory)의 점진적 수용과 더불어 바뀌게 되었다. 맥스웰 자신은 빛과 전자기(electromagnetism)는 일반적으로 기계적 에테르(mechanical ether)의 입자가 일정하지 않은 변위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긴다고 믿었던 뉴턴주의자였다. 전기와 자기(magnetism)의 이론에 관한 맥스웰의 가장 초기의 견해는 그가 이 매질에 부여한 가설적 성질을 직접 이용하였다. 그 견해들은 그의 최종 수정안으로부터 탈락되었으나, 그는 아직도 자신의 전자기 이론이 뉴턴의 역학적 견해의 어떤 명료화와 양립된다고 믿고 있었다. 적절한 명료화를 전개시키는 작업은 그와 그의 계승자들에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에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실제에서 요구되는 명료화를 얻어내기가 엄청나게 힘든 것으로 밝혀졌다. 글쓴이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이론의 제안이 운동에 관한 기존 이론들에 대해 고조되는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듯이 맥스웰 이론도 뉴턴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이 파생되었던 패러다임을 향해 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더욱이 위기가 가장 심각하게 고조되었던 초점은 우리가 방금 고려하고 있던 문제들, 즉 에테르에 대한 운동의 문제들에 집약되었다.

운동하는 물체의 전자기적 거동을 다룬 맥스웰의 논의에서 에테르 끌림(ether drag)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그의 이론 속에 이런 끌림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에테르를 통한 흐름을 검출하기 위한 초기의 일련의 관찰들은 모두 이상 현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1890년 이후 몇 해 동안 실험적?이론적으로 에테르에 상대적인 움직임을 검출하고, 에테르 끌림을 맥스웰 이론에 도입하기 위해 길고 끈질긴 시도가 경주되었다. 몇몇 분석가들은 그들의 결과를 모호하다고 생각했으며, 흐름을 검출하는 실험의 경우도 한결같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맥스웰 이론과 에테르 끌림을 연결시키려는 이론학자들의 경우는 여러 가지 고무적인 출발을 내디딤으로써 특히 로렌츠(Lorentz)와 피츠제럴드(Fitzgerald)의 연구가 두드러졌으나, 그들 역시 여전히 다른 수수께끼들을 노정시켰고, 결국에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위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현상인 것으로 발견했던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의 난립을 낳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1905년에 출현했던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에 그 배경을 둔 것이다.

……

새로운 이론은 위기의 직접적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114 ~ 115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탈쿠스(Aristarchus)에 의해 코페르니쿠스 식의 태양중심 체계가 이미 제안되었던 경우이다. 만약 그리스 과학이 보다 덜 연역적이고 독단에 의해 덜 지배되었더라면, 태양중심의 천문학(heliocentric astronomy)은 실제 일어났던 것보다 18세기쯤 앞당겨 전개되기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흔히 논의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이다. 아리스탈쿠스의 제안이 이루어졌을 당시에는 압도적으로 더 합리적이었던 지구중심체계(geocentric system)는 태양 중심 체계가 혹시라도 만족시켰을지도 모를 부족함을 갖고 있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전반적인 전개, 즉 그것의 승리와 몰락은 둘 다 아리스탈쿠스의 주장이 있은 뒤 몇 세기가 지나서 일어난다. 게다가 아리스탈쿠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한 뚜렷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다 정교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조차도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비해 더 단순하거나 더 정확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로서 얻을 수 있었던 관측 시험은, 이제부터 더 확실히 보게 되겠지만, 그 두 이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만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천문학자들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로 유도한 요인(그리고 천문학자들을 아리스탈쿠스설로 유도할 수 없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당초 혁신을 일으키는 첫째 이유가 되었던 위기의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천문학의 문제들을 푸는 데 실패했다. 시기가 무르익자 경쟁 이론에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

위기들의 의미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계제에 도달했음을 가리키는 지표가 된다.

                                                                       116 ~ 117

 

 

8. 위기에 대한 반응

 

The Response to Crisis

 

 

위기(crsis)가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있어 필수적 선행 조건이라 가정하고, 다음에는 과학자들이 위기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묻도록 하자. 그 대답의 일부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분명한 것으로서, 우선 과학자들이 심각하고 만연된 이상(anomaly) 현상에 부닥쳤을 때 결코 취하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주목함으로써 찾아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신념을 잃기 시작하고 이어서 다른 대안을 궁리하기 시작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기로 몰고 간 그 패러다임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과학 철학적 어의상으로는 그 의미가 성립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상 현상들을 반증 예(counter-instance)로 여기지는 않는다. 부분적으로 이런 일반화는 단순히 앞에서 제시한 그리고 더 넓게 이제부터 제시하려고 하는 실례에 근거하여, 역사적 사실로부터 얻어지는 서술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패러다임의 포기에 관해 후에 검토할 내용이 보다 완전히 드러낼 것이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일단 하나의 과학 이론이 패러다임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면, 그 이론은 그 지위를 차지할 만한 다른 후보 이론이 나타날 경우에 한해서 쓸모 없는 것이 된다.

                                                                       121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단은 언제나 그와 동시에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결단이 되며, 그 결정까지로 이끌어 가는 판단은 패러다임과 자연의 비교 그리고 패러다임끼리의 비교 두 가지를 포함한다.

                                                                       122

 

우리는 돌턴(dalton) 이전에는 지극히 애매한 일반성의 실험 결과였던 화학의 정비례 법칙(chemical law of fixed proportion)이, 돌턴의 연구 이후로는 어떤 실험 연구에 의해서도 교란시킬 수 없는, 화학물의 정의에서의 필수 요소가 되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

과학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반증 사실들 그 자체가 유도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패러다임 폐기인 것 같다. 그것을 통해서 자연을 해석하게 될 최초의 패러다임 폐기인 것 같다. 그것을 통해서 자연을 해석하게 될 최초의 패러다임이 일단 발견되면, 아무런 패러다임도 존재하지 않는 연구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것을 대치하지 않은 채로 하나의 패러다임을 파기하는 것은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패러다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동료들에게 ‘자기 연장을 탓하는 목수(the carpenter who blames his tools)'로 보이게 될 것이다.

                                                                       123 ~ 124

 

하나의 이상 현상이 정상과학의 또 다른 수수께끼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되는 때, 위기로 그리고 비상과학(extraordinary science)으로의 전이는 시작된 것이다. 이상 현상은 그 자체로서 이제 전문분야에 의해 점점 일반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그 분야의 가장 탁월한 많은 학자들이 그것에 차츰 더 많은 주의를 쏟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만일 그것이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경우, 학자들 다수가 그 풀이를 그들 연구 분야의 제1 주제로 삼게 된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그 분야는 더 이상 이전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른 양상으로 보이는 것은 더러는 과학적 탐색에서의 새로운 정착점으로부터 초래되는 결과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변천의 원천은 그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가능케 되었던 다수의 부분적 풀이가 지닌 다양한 성격이다. 끈질기게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초기의 공격은 매우 긴밀하게 패러다임 규칙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여전히 잘 풀리지 않음에 따라, 그것에 대한 공격은 점차로 사소한 또는 그리 사소하지 않은 패러다임의 명료화를 포함하게 될 거이며, 그런 것들은 제각기 서로 달라서, 어떤 것은 일부 성공적일 것이나, 그 그룹에 의해서 패러다임으로 수용될 만큼 만족스런 것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여러 갈래의 명료화를 거치면서[점점 자주 그런 것들은 되는 대로의(ad hoc) 수정이라고 묘사되기에 이를 것이다], 정상과학의 규칙들은 점증적으로 모호해진다. 패러다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실제로 연구에 종사하는 이들 가운데 그것에 관하여 전적으로 합의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미 풀린 문제들의 표준 풀이조차도 의문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심각한 경우, 그런 상황은 관련되는 과학자들에 의해서 인식되는 때도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 시대의 천문학자들이 “이들(천문학상의) 연구에서 일관성이 도무지 없어서……공전 주기의 일정한 길이를 설명조차 할 수 없거나 또는 관찰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들은 마치 한 화가가 다양한 모델로부터 멋대로 손, 발, 머리 등의 부위를 합쳐서 회상을 구성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각 부분으로서는 뛰어나게 잘 그렸으나 단일한 신체로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 부위가 서로 조화를 전혀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깝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당시의 비교적 수수한 표현에 국한시켜, “그것은 마치 바닥이 그 밑바닥으로부터 거덜나서, 그 위에 쌓아올릴 수 있는 확고한 기초가 아무것도 없는 격이다”라고만 적었다. 그리고 파울리(Wolfgang Pauli)는 행렬 역학(matrix mechanics)에 관한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의 논문이 새로운 양자론(quantum theory)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기 몇 달 전에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지금 현재 물리학은 다시 극심한 혼돈의 상태이다. 어떻든 간에 내게는 매우 힘든 일이며, 차라리 희극배우나 그 비슷한 무엇이 되어 물리학에 대해서는 듣지도 않았더라면 싶다.” 그 후 다섯 달도 채 못 되어 파울리가 한 말과 비교한다면, 이 증언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역학의 형태는 내게 다시금 생의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분명히 그것은 수수께끼에 풀이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그러나 나는 다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128 ~ 129

 

위기에 처한 패러다임으로부터 정상과학의 새로운 전통이 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천이는 옛 패러다임의 명료화나 확장에 의해서 성취되는 과정, 즉 축적적 과정(cumulative process)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천이는 오히려 새로운 기반으로부터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 그 분야 패러다임의 많은 방법과 응용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일반화조차도 변화시키게 되는 재건 사업이다. 그 이행 시기에는 옛 패러다임과 새 패러다임에 의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크게 중복될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완전히 중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의 양식에서도 역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런 천이가 완결되는 때, 그 전문 분야는 그 영역에 대한 견해, 방법, 목적을 바꾸게 될 것이다. 통찰력 깊은 어느 과학사학자는 최근 패러다임 변화에 의한 과학의 재편성에서의 고전적 사례를 고찰하면서, 그런 천이는 “지팡이의 다른 쪽 끝을 집어 올리는 것”으로서, 그것은 “똑같은 자료 더미를 이전처럼 다루되 그것들에게 종전과는 다른 테두리를 부여함으로써 서로 서로 새로운 관련 체계 속에 놓이도록 함”이 포함되는 과정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130 ~ 131

 

이론에서의 뚜렷한 근본적 이상(異常) 현상에 부닥치게 되면, 과학자는 흔히 우선 그것을 보다 정확하게 분리시켜 그것에 구조를 부여하고자 시도하게 된다. 이제 그것들이 꼭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자는 어려움에 처한 영역의 어디에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그것들이 적용되도록 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정상과학의 규칙들을 종전보다 더 강력하게 구사할 것이다.

                                                                       133

 

단독으로 또는 합동으로 이들 비상적(非常的) 과정들이 전개됨과 더불어 또 한 가지 일이 벌어진다. 문제가 생긴 좁은 영역에 과학적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그리고 과학 정신이 실험적 이상 현실을 그 자체로서 인식하도록 대비함으로써, 위기는 흔히 새로운 발견들을 양산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위기의 인식이 산소에 관한 라부아지에의 연구를 프리스틀리의 연구로부터 어떻게 차이 나게 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산소는 화학자들의 이상 현상에 대한 인식이 프리스틀리의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새로운 기체는 아니었다. 또한 새로운 광학적인 발견들이 빛의 파동 이론 출현 이전에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마구 쏟아져 나왔다. 반사에 의한 편광(polarization)처럼, 어떤 현상들은 문제가 생긴 영역에서의 집중적 연구가 빚어낸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였다[이 발견의 주인공인 말뤼(Malus)는 미제의 상태에 있음이 널리 알려져 있었던 주제인 이중 굴절(double refraction)에 관한 과학 아카데미의 현상 논문의 연구를 막 착수하고 있었다.]

                                                                       135

 

아인슈타인은 고전 역학(classical mechanics)을 대치하는 어떤 것을 갖기 이전에, 자신은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 그리고 비열(specific heats)이라는 이미 알려진 이상 현상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볼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한 구조는 의식적으로 미리 예시되지 않는 일이 더 흔하다.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 또는 이후의 명료화를 허용하는 충분한 암시는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때로는 한밤중에, 위기에 깊숙이 잠겨 버린 사람의 정신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러한 근본적 창출을 이루어낸 사람들은 아주 젊다든가 아니면 그들이 변형시키는 패러다임의 분야에 아주 새롭게 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점은 명시적으로 밝혀야 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이유는 확실히 없고, 특히 이전의 규칙들이 해볼 만한 게임을 더 이상 정의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대치할 다른 규칙들에 착상하기가 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36 ~ 137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The Nature and Necessity of Scientific Revolutions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서로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 대치되는 비축적적(non-cumulative)인 발전에서의 에피소드들로 간주되었다.

……

정치적 혁명이란, 기존 제도가 주위 상황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이제 더 이상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의식이 흔히 정치적 사회의 집단에 편재되어 팽배하면서 시작된다. 이와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과학혁명이란, 기존 패러다임이 자연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탐사에서 이전에는 그 방법을 주도했으나 이제 더 이상 적절하게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의식이 과학자 사회의 좁은 분야에 국한되어 점차로 증대되면서 시작된다. 정치적?과학적 발전의 양쪽에서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기능적 결함을 깨닫는 것은 혁명의 선행 조건이다.

……

일반적으로 정치적 혁명은 기존 정치제도 자체가 금지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개혁하는 것을 겨냥한다. 그러므로 정치적 혁명의 성공은 다른 제도를 위하여 기존 제도의 일부를 파기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며, 그러는 동안 사회는 기존 제도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지 못한다. 이미 앞에서 위기가 패러다임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을 보았듯이, 당초 정치적 제도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도 위기뿐이다. 수효가 늘어 가면서 점차로 많은 사람들이 정치 생활로부터 소원해지고 그 속에서 점점 더 정상 궤도를 벗어나게 행동한다. 다음,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새로운 제도의 틀 속에서 사회를 재구성하는 어떤 구체적 대안을 밝히게 된다. 이 시점에 이르면 그 사회는 여러 갈래의 경쟁적 진영이나 당파로 나뉘게 되는데, 한 편은 구 제도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다른 한 편은 새로운 제도의 수립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 진영의 양극화가 발생하면, 정치에의 의존은 무너져 버린다. 그들 진영들은 그 속에서 정치적 혁명이 수행되고 평가되는 제도적 모형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기 때문에 그리고 혁명에서의 차이를 조정하는 데 제도 이상의 골격(supra-institutional framework)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의 투쟁에 나선 당파들은 결국 흔히들 무력을 포함한 대중 설득의 기술에 호소해야 하기에 이른다. 혁명은 정치 제도의 진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 왔지만, 그런 역할은 혁명이 부분적으로 정치 외적(外的) 또는 제도 외적인 사건들이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141 ~ 143

 

패러다임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처럼, 패러다임 선택에 관한 논쟁에 끼어들게 되면, 패러다임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순환성을 띠게 된다. 그룹마다 제각기 그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논증에 그 고유의 패러다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

순환적 논증의 상태는 다만 설득의 상태일 뿐이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또는 심지어 확률적으로 그 순환에 끼어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에는 패러다임에 관한 논쟁의 두 파에 의해 공유되는 전제와 가치는 포괄성이 부족하다. 정치적 혁명에서처럼 패러다임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해당 집단의 동의보다 상위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패러다임 선택이라는 이 주제가 논리와 실험만으로 확고하게 풀릴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곧 전통적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을 혁명적인 후계자들과 구별짓는 차이들의 성격에 관해 살펴보아야 한다.

……

원칙적으로 새로운 현상은 과거의 과학 활동의 어느 부분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출현할 수 있다. 달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은 오늘날 현존 패러다임에는 파괴적이겠지만(이들 패러다임은 달에서의 생명체의 존재와 모순되어 보이는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은하계의 보다 미지의 장소에서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새로운 이론은 그것에 선행했던 다른 것과 모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오늘날 에너지 보존 이론(theory of energy conservation)은 역학, 화학, 전기학, 광학, 열 이론 등 사이에서 바로 그런 연결을 맺어 주고 있다. 이런 것 말고도, 옛 이론과 새로운 이론 사이에는 서로 양립될 수 있는 관계들이 얻어질 수 있다. 그런 관계들은 전부 과학이 전개되어 온 역사적 과정들에 의해서 예시될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러하다면, 과학의 발전은 원칙적으로 축적적일 것이다.

……

과학의 진화에서 새로운 지식은 다른 모순되는 종류의 지식을 대치하기보다는 무지(無知)를 대치하게 될 것이다.

                                                                       142 ~ 145

 

원칙적으로 새로운 이론이 전개되는 데 있어서는 오로지 세 가지 종류의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첫 번째 것은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서 이미 잘 설명된 현상들로 이루어지며, 이것들이 이론 구축에 대한 동기라든가 새 출발의 시점을 제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

두 번째 부류의 현상은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 그 본질은 지시되지만 상세한 내용은 이론의 보다 진전된 명료화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과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연구에 집중하는 현상들이지만, 그런 연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안을 겨냥하기보다는 기존 패러다임의 명료화에 목표를 둔다. 명료화를 위한 이들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에 한해서 과학자들은 세 번째 형태의 현상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것들은 인식된 이상 현상들로서 그 특성적 성격은 기존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강경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세 번째 형태의 현상만이 새로운 이론들의 작인이 된다.

……

만일 자연 현상에 대한 기존 이론의 관계에서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을 환기시키게 하려면, 성공적인 새 이론은 어딘가 그 이전의 것으로부터 유도된 것들과는 다른 예측들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두 가지가 논리적으로 양립될 수 있는 경우라면 그 차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동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두 번째 이론은 첫 번째 것을 대치시켜야 한다.

                                                                       147 

 

과학 이론에 대한 이런 제한된 관념을 보여 주는 경우로서 가장 잘 알려지고 분명한 것은 현대의 아인슈타인 역학과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로부터 파생된 보다 오랜 역학의 관계식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이 에세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 두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체계에 대한 관계에서 설명된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서로 모순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만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이것은 소수의 견해로 머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반대 의견에 대해 검토해야만 한다.

이들 이견(異見)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수 있다. 상대론적 역학은 뉴턴 역학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해 낼 수 없다. 뉴턴의 역학은 아직도 대부분의 공학자들에 의해서 매우 성공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다수의 물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선별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다 옛 이론의 이러한 이용의 타당성은 여타의 응용에서 옛 이론을 대치한 바로 그 이론으로부터 증명될 수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소수의 제한 조건이 충족된 모든 적용에서 뉴턴 방정식의 예측들은 우리의 측정 기기만큼 훌륭한 구실을 할 것임을 증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예컨대 만약 뉴턴 이론이 그럴 듯한 근사적 해를 제공하게 되려면, 고려되는 물체들의 상대 속도는 빛의 속도에 비해 작아야만 한다. 이 조건과 그 밖의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된다면,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따라서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특수 경우가 된다.

……

뉴턴 이론이 타당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참으로 과학적인 이론이 되는 범위에서의 주장은 여전히 성립된다. 그 이론에 대한 엉뚱한 주장들만이―정통 과학의 일부가 되지 못했던 주장들―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 있었다. 이들 원초적 인간성의 무모함을 배제한다면, 뉴턴 이론은 도전 받았던 적도 없었으며 또한 도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149 ~ 150

 

어느 패러다임에 매이지 않고는 정상과학이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그런 공약은 완벽한 전례가 없는 분야들에까지, 그리고 전례가 없는 정확도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패러다임은 일찍이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전혀 제공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패러다임에의 공약에 의존하는 것은 정상과학뿐만이 아니다. 만일 현존 이론이 과학자를 기존 응용에 대한 관계에만 묶고 있다면, 거기에는 놀라움도, 이상 현상도, 또는 위기도 존재할 수가 없다.

                                                                       151 ~ 152

 

이미 확립된 친숙한 개념들이 의미하는 바를 뜯어고쳐야 하는 이런 필요성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혁명적 충격에 핵심 되는 요소이다. 지구중심설(geocentrism)으로부터 태양중심설(heliocentrism)로, 플로지스톤으로부터 산소로, 또는 입자로부터 파동으로의 변화보다도 더 미묘함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개념적 변환은 이전에 확립된 패러다임의 파괴 못지 않게 결정적으로 파괴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학에서의 혁명적 재배치(reorientations)의 원형(原型)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사물 또는 개념을 추가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뉴턴으로부터 아인슈타인 역학으로의 천이는 특히 명징적으로 개념적 조직망(conceptual network)―과학자들이 그것을 통해 세계를 보는―의 변화로서 과학혁명을 기술한다.

……

계속 이어지는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우주의 구성 요소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들의 특징적 거동에 관하여 서로 다른 사항들을 일러준다. 다시 말하면, 원자의 하부 입자들(subatomic particles)의 존재, 빛의 물질성(materiality of light), 그리고 열 또는 에너지의 보존 등과 같은 물음에 관해서 그들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이런 것들은 계승되는 패러다임들 사이의 상당한 차이이며, 그것들은 더 이상의 예증(例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패러다임은 물질 이상의 것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 까닭은 패러다임이 자연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 패러다임을 생산한 과학을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은 방법들의 원천이요, 문제 영역(problem field)이며,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풀이의 표본이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문제풀이의 표본이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재정의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옛날 문제들은 더러 다른 과학 분야로 이관되거나 또는 완전히 ‘비과학적(unscientific)'인 것이라 선언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또는 사소해 보였던 여러 문제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과 더불어 유의미한 과학적 성취의 원형(原型) 바로 그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들이 바뀜에 따라서 단순한 형이상학적 추론, 용어 놀음, 또는 수학적 조작으로부터 참된 과학적 해답을 구별짓는 기준도 바뀌는 일이 흔하다. 과학혁명으로부터 출현하는 정상과학적 전통은 앞서 간 것과는 양립되지 않을(incompatible) 뿐만 아니라, 실상 동일 표준상의 비교 불능이다Iincommensurable).

                                                                       154 ~ 155

 

1740년대까지, 예컨대 전기학자들은 1세기 이전에 몰리에르의 상대로서 의사 선생이 겪었던 조롱을 당하지 않으면서 전기적 유체의 끌어당기는 ‘힘(virtue)'에 관하여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함에 따라서 전기적 현상은, 점차 오로지 접촉에 의해서만 작용을 나타낼 수 있는 역학적 전기소(電氣素, mechanical effluvium)의 영향이라고 간주했던 것과는 다른 규칙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서로 떨어진 위치에서의 전기적 작용(electrical action-at-a-distance)이 그 자체의 중요성 때문에 연구의 주제가 되었을 때는, 오늘날 이른바 유도에 의한 충전이라고 하는 현상이 그 효과 중의 하나로서 인식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어쩌다 관찰되는 경우, 전기적 ’대기((atmospheres)'의 직접 작용 때문이라거나 또는 어느 전기 실험실에서나 있게 마련인 누전의 탓으로 돌려졌다. 유도 전류 효과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이어서 라이덴 병(Leyden jar)에 관한 프랭클린(Franklin)의 분석에 관건이 되었고, 따라서 전기에 대한 새로운 뉴턴 식의 패러다임 출현에 관건이 되었다. 물질의 본유적 힘에 대한 탐사의 정당화에 의해 자극된 과학 분야는 역학과 전기학만이 아니었다. 화학적 친화력(chemical affinities)과 치환 계열(replacement series)에 관한 18세기 문헌의 대부분도 역시 뉴턴주의(Newtonianism)의 이런 초역학적(supramechanical) 관점으로부터 유도된다. 다양한 화학종 사이에서의 이렇게 구별되는 인력을 믿었던 화학자들은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실험들을 꾸몄고, 새로운 종류의 반응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 데이터와 그런 과정에서 전개된 화학적 개념이 없었더라면, 라부아지에의 후기의 연구 그리고 더욱이 돌턴의 연구는 이해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허용되는 문제, 개념, 그리고 설명을 다스리는 기준에서의 변화는 과학을 변형시킬 수 있다.

                                                                       158 ~ 159

 

맥스웰(Clerk Maxwell)은 19세기 빛의 파동 이론의 지지자들과 뜻을 같이 함으로써, 빛의 파동이 물질 에테르를 통해 전파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빛의 파동성을 뒷받침하는 역학적 매질(mechanical medium)을 고안하는 것은 당대의 가장 우수한 학자들 다수에게 하나의 표준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맥스웰 자신의 이론인 빛의 전자기 이론(electromagnetic theory)은 빛의 파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매질에 대하여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그 이론은 분명히 예전에 여겨졌던 것보다 설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초기에는 맥스웰 이론이 널리 배격되었다. 그러나 뉴턴 이론과 마찬가지로, 맥스웰 이론은 버리기에 어려운 것임이 밝혀졌고, 패러다임의 지위로 올라서게 됨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과학자 사회의 태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159 ~ 160

 

패러다임을 익히면서 과학자는 이론적 방법과 기준을 모두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은 보통 한데 뒤엉킨 혼합체로 얻어진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문제 그리고 제안된 풀이 등 양쪽의 타당성을 결정짓는 기준에서도 상당한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

서로 겨루는 기준의 주제와 마찬가지로, 가치관에 대한 이런 질문은 총괄적으로 정상과학의 외곽에 위치한 기준에 의해서만 답해질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패러다임 논쟁을 가장 확실하게 혁명적으로 만드는 외부적 기준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준과 가치보다 더욱더 근본적인 그 무엇이 또한 문제거리가 된다. 나는 지금까지는 패러다임들이 과학을 구성한다는 것만을 논의하였다. 이제부터 나는 패러다임이 그 뿐만 아니라 자연을 구성한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162 ~ 163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Revolutions as Changes of World View

 

 

사람이 무엇을 보게 되는가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도 달려 있지만, 이전의 시각-개념상의 경험(visual-conceptual exprience)이 그에게 무엇을 보도록 가르쳤는가에도 달려 있다.

                                                                       167

 

16세기 말기의 천문학자들은 그 이전에는 불변의 행성과 항성에게만 허용되던 공간에서 멋대로 떠돌아다니는 혜성들을 계속 발견하고 있었다. 옛 대상을 옛 기기로 관측하면서 천문학자들이 그토록 쉽고 빠르게 새로운 것들을 보았다는 사실은, 코페르니쿠스 이후의 천문학자들이 전과는 다른 세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171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오가 흔들리는 돌을 보았을 때, 거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속박 상태의 낙하 현상을 보았고 갈릴레오는 진자를 보았다고 말함으로써 야기되는 곤란한 점들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절의 서두에서는 바로 그런 어려움이 보다 더 근본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다. 세계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하지는 않지만, 그 이후의 과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우리는 적어도 이것들과 유사한 진술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하리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과학혁명 동안에 일어나는 일은, 개별적인 안정된 데이터의 재해석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데이터들이 양론의 여지없이 안정되지는 못한 상태다. 진자는 떨어지는 돌이 아니며 산소는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제 곧 보게 되겠지만, 과학자들이 이들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는 그 자체가 서로 다른 것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느 과학자 개인 또는 과학자 사회가, 속박된 낙하 운동으로부터 진자로, 또는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로부터 산소로의 이행을 성취한 과정은 해석과 흡사한 과정이 아니다. 해석할 수 있는 고정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과학자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한 과학자는 해석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거꾸로 보이는 렌즈를 낀 사람과 비슷하다. 이전과 똑같은 무수한 대상들을 마주 대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변함 없는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자는 대상들의 세부적인 것의 여기저기에서 속속들이 그 대상들이 변형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177

 

패러다임들은 도대체 정상과학에 의해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정상과학은 궁극적으로 이상 현상들의 인지 그리고 위기로 인도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심사숙고와 해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게슈탈트 전환과 같은 비교적 돌발적이고 비구조적인 사건에 의해 끝을 맺게 된다. 그러면 과학자들은 “눈에서 비늘이 걷혔다(scales falling from the eyes; 잘못을 깨달았다)”고 말하거나, 또는 전에는 모호하던 수수께끼에 ‘넘쳐드는(inundates)' 그런 ’번득이는 섬광(lightning flash)'에 관해 자주 말하게 되며, 그리하여 수수께끼의 구성 요소들을 최초로 해결 가능한 새로운 방식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든다.

                                                                       178

 

속박된 낙하 운동(constrande fall)을 관측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는 돌의 무게와 운동에서 그것이 올려진 수직 높이, 그리고 그것이 떨어져 정지하기까지 걸린 시간 등을 측정할 것이다(아니면 적어도 논의할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측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매질의 저항과 더불어 이런 것들은, 낙하체를 다룸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과학에 의해 사용되는 개념적 범주들이었다. 그것들에 의해 인도된 정상 연구는 갈릴레오가 발견했던 법칙들을 생산해 냈을 리가 없다. 그것은 다만 흔들리는 돌(swinging stone)에 대한 갈릴레오의 생각을 낳게 한 일련의 위기 국면으로 인도할 수 있을 뿐이었으며 다른 경로를 따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한 위기들과 그 밖의 지적인 변화의 결과로서, 갈릴레오는 흔들리는 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

                                                                       179

 

낙하하는 돌을 관찰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과정(process)보다는 오히려 상태의 변화(change of state)를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운동의 의미 있는 척도들은 움직인 전체 거리와 경과한 전체 시간이었으며, 이것들은 우리가 오늘날 속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평균 속도라고 불러야 할 것을 제공하는 파라미터들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을 그 본성에 의해 그 최종의 정지 위치에 이르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운동이 일어나는 도중의 어느 시점에서의 의미 있는 거리 파라미터를 운동의 시발점으로부터의 거리가 아니라 운동의 최종 지점까지의 거리로 보았다.

                                                                       180

 

18세기 동안,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y)의 이론은 훌륭한 화학 패러다임으로서, 화학 실험법의 설계와 분석에 널리 그리고 때로는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

물 속의 소금이나 질소 중에 섞인 산소는 구리를 산화시켜 얻는 결합과 마찬가지의 화학적 결합의 한 실례로 여겨졌다. 이처럼 용액(solutions)을 화합물(compounds)로 간주하는 견해는 매우 완강했다. 친화력 이론은 그 자체로서 잘 입증되었다. 게다가 화합물의 생성은 용액에서 관찰되는 균질성을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만일 산소와 질소가 공기 중에서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섞여 있기만 한 것이라면 보다 무거운 기체, 즉 산소가 바닥으로 가라앉아야 할 것이다. 공기를 혼합물이라고 보았던 돌턴은 산소가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의 원자론의 동화는 궁극적으로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상(anomaly)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

18세기에는 혼합물(mixture)과 화합물(compound)이 조직상의 실험에 의해서 완전히 구별되지 않았으며, 아마도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화학자가 그러한 검증을 모색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용액을 화합물로 만드는 기준을 추구했을 것이다. 혼합물-화합물의 구분은 그들의 패러다임의 일부―그들이 연구 영역 전체를 보았던 방식의 일부―였고, 그것은 전반적으로 화학의 축적된 경험보다 우선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특정 실험적 검증보다도 선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학이 이런 방식으로 생각되었던 다른 한편에서, 화학적 현상들은 돌턴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동화로부터 출현된 것들과는 상이한 법칙을 예시하고 있었다. 특히 용액이 여전히 화합물이라고 생각되었던 동안, 그렇게 많았던 화학 실험은 그 자체로서 일정 성분비의 법칙(law of fixed proportions)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18세기 말에는 몇몇 화합물들이 그 구성 성분들의 무게로 볼 때 성분비가 통상적으로 일정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몇 가지 종류의 반응에 대해서 독일 화학자 리히터(Richter)는 현재의 화학 당량의 법칙(law of chemical equivalents)에 포함되는 보다 진전된 규칙성까지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조법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화학자들도 이들 규칙성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으며, 거의 18세기 말 이전까지는 아무도 그 규칙성을 일반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리나 소금 수용액에서처럼 확실한 반대 실례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친화력 이론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화학자 영역의 범위를 재개념화하지 않고서는 일반화란 도대체 불가능한 것이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스 화학자 프루스트(Proust)와 베르톨레(Berthollet) 사이의 유명한 논쟁에서 그 결과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자는 모든 화학 반응이 일정 성분비로 일어난다고 주장한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견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실험적 증거를 수합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논쟁은 전혀 결론이 날 전망이 없었다. 베르톨레가 성분비에 있어 달라질 수 있는 하나의 화합물을 보았던 곳에서, 프루스트는 단지 물리적인 혼합물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논쟁에는 실험도 정의상 관례의 변화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갈릴레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 근본적으로 엇갈려 있었던 것이다.

                                                                       188 ~ 190

 

돌턴에게는 성분들이 일정한 비율로 대입되지 않는 반응은 그 어느 것도 사실상(ipso facto) 순수한 화학적 과정이 아니었다. 일단 돌턴의 연구가 받아들여지자, 그의 연구 이전에 실험으로는 확립될 수 없었던 법칙이, 어떠한 한 벌의 화학적 측정으로도 뒤엎을 수 없는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

대다수의 화학자들에게 있어, 돌턴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프루스트의 패러다임이 미흡했던 부분에서 설득력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이유는 돌턴의 패러다임은 혼합물과 화합물을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 이상의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만약 원자가 간단한 정수비로만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화학 데이터의 재검토는 일정 성분비 법칙뿐만 아니라 배수 비례 법칙의 예증까지도 드러내 줄 것이다. 화학자들은 이제, 예컨대 탄소의 두 가지 산화물은 무게로 각각 산소 56%와 72%를 포함한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탄소 무게 1이 산소 무게 1.3이나 2.6과 결합한다고 표현하게 되었다. 과거의 실험 조작의 결과들이 이런 방식으로 기록되자, 2 : 1이라는 비율이 눈에 곧 띄게 되었다. 잘 알려졌던 여러 반응들과 그 밖의 새로운 반응들의 분석에서도 이런 관계가 나타났다. 게다가 돌턴의 패러다임은 리히터의 연구를 동화시키고, 완전히 일반화시키는 것을 가능케 했다. 또한 그것은 특히 결합 부피(combining volumes)에 대한 게이-뤼삭(Gay;Lussac)의 실험을 비롯한 새로운 실험을 제안해 주었고, 그런 실험들은 화학자들이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다른 규칙들도 내놓게 되었다. 돌턴으로부터 화학자들이 취했던 것은 새로운 실험적 법칙이 아니라 화학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이었고 [그 자신은 그것을 「화학 철학의 새로운 세계(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라고 불렀다], 이것이 유용하다는 것은 매우 급속히 판명됨으로써 프랑스와 영국의 구식 화학자들 중 소수만이 그것에 저항할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 결과 화학자들은 화학반응이 이전의 것들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

자연을 하나의 패러다임에 맞추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왜 그렇게 도전적인가, 그리고 패러다임이 없이 수행된 측정이 왜 그렇게 어떤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드문가를 말해 주는 이유이다.

                                                                       191 ~ 192

 

 

11. 혁명의 비가시성

 

The invisibility of Revolutions

 

 

교과서는 정상과학의 영속을 위한 교육적 수단으로서 언어, 문제 구조(problem-structure), 또는 정상과학의 기준 등이 바뀔 때마다 그에 따라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다시 쓰여져야 한다. 요컨대 교과서들은 매 과학혁명을 거칠 때마다 바뀌는 것이며, 이렇게 새롭게 쓰여진 교과서들은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생산했던 혁명의 역할뿐만 아니라 혁명의 존재 자체까지도 가려 버리고 만다. 그 자신의 생애에서 직접 과학혁명을 겪었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나 교과서 문헌을 읽는 일반인 어느 쪽이든 간에 그 역사적 감각은 그 분야의 가장 최근에 있었던 혁명의 결과까지로만 한정된다.

따라서 교과서들은 자신의 분야의 역사에 대한 과학자의 감각을 절단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음 단계로 그것들이 제거해 버렸던 것들에 대한 대치물을 제공하기 위해 전진한다. 특징적으로 과학 교과서들은 서론의 장에서나 또는 더 흔하게는 이전 시대의 거장들에 대한 산발적 인용에서, 역사에 대해서는 편린만을 다룰 뿐이다. 그러한 인용들로부터 학생들과 전문가들은 양쪽 다 오랜 세월의 역사적 전통에 대한 참여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그들의 역할을 느끼게 되는 교과서-유도적 전통(textbook-derived tradition)은 사실상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과학 교과서들(그리고 너무나 많은 구식 과학사(科學史)들)은, 명백하게 동시에 고도로 기능적이라는 이유로 해서, 교과서의 패러다임 문제들의 서술과 해결에 기여했다고 쉽사리 평가될 수 있는 과거 과학자들의 연구 중 그런 부분만을 인용한다. 더러는 선택에 의해, 더러는 왜곡에 의해 이전시대의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과 방법의 가장 최근의 혁명에 의해 과학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었던 바로 그 일련의 고정된 규범들에 부합되도록, 고정된 문제들의 한 벌에 대해 연구를 수행해 왔던 것으로 암묵적으로 표현된다. 교과서와 그것이 함축하는 역사적 전통은 매 과학혁명 이후에 다시 쓰여져야 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쓰여짐에 따라, 과학이 다시금 대체로 매우 축적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도 이상할 바가 없다.

……

과학의 현재에 대해서든 과거에 대해서든 간에, 보다 역사적인 세부 사항 또는 제시된 역사적 세목에 대한 보다 강한 얽매임은 인간의 특성?과오?혼돈에 작위적인 지위만을 부여할 것이다. 과학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폐기하게 된 것을 어째서 존중하는 것일까? 역사적 사실을 경시하는 태도는, 다른 종류의 사실적 항목들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전문 분야, 즉 과학 전문 분야의 이데올로기에 깊숙이 그리고 기능적으로 침투되어 있는 것 같다. 화이트헤드(Whitehead)가 ‘그 분야의 창시자들을 잊기를 주저하는 과학은 패배한 것이다’라고 적었을 때, 그는 과학자 사회의 비역사적 기질을 간파했던 것이다.

                                                                       199 ~ 200

 

과학 교재에 실린 아직 눈에 보이는 자료의 배열은 혁명의 기능을 부정하게 될 과정―만일 그런 과정이 있다면―을 묵시적으로 시사한다. 왜냐하면 교과서란 학생들로 하여금 당대의 과학자 사회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빨리 익히는 것을 겨냥하므로, 교과서는 현행 정상과학의 다양한 실험, 개념, 법칙, 이론들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다루게 된다.

……

과학은 한데 통합되어 현대의 기술적 총체를 구성하게 된 일련의 개별적 발견과 발명에 의해 현재 과학의 상태에 이르렀다. 교과서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과학 활동의 시초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의 패러다임들 속에 구현된 특정 목표들을 향해 진력해 왔던 것이 된다. 흔히 건축에서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에 비유되듯이, 과학자들은 당대의 과학 교과서 속에 제공된 정보 더미에 또 다른 사실, 개념, 법칙 또는 이론들을 하나씩 하나씩 추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발전되어 온 방식이 아니다. 현대의 정상과학에서의 수수께끼들은 대부분 가장 최근의 과학혁명이 완결되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

교과서 패러다임이 자연에 일치시키는 사실과 이론의 전체 조직망 구조가 변동을 엮은 것이다. 예컨대 화학적 조성이 일정하다는 사실은 화학자가 활동했던 어느 세계 속에서 실험에 의해 발견해 낼 수 있었던 단순한 경험적 사실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돌턴이 도중에 그 경험을 변화시키면서 전반적으로 이전의 화학적 경험에 일치시켰던 관련 사실과 이론의 새로운 체계 속에서의 한 요소―그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불가결의 요소―인 것인가? 또는, 마찬가지 논리로서, 일정한 힘에 의해 생겨나는 일정한 가속은 역학을 다루는 연구자들이 항상 추구해 왔던 단순한 사실에 불과한 것인가, 또는 그것은 뉴턴 이론의 맥락에서 그 질문이 제기되기 이전에 주어졌던 전체 정보로부터 대답될 수 있었던 것인가?

                                                                       202 ~ 203

 

보일에 따르면―그는 확실히 옳았다―그의 원소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전통적인 화학적 개념의 부연 설명에 불과했다. 보일은 다만 화학 원소 따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정의‘를 내놓은 것이었다. 역사적으로는 보일의 공헌에 대한 교과서의 해석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204

 

 

12. 혁명의 해결

 

The Resolution of Revolutions

 

 

정상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수수께끼의 해결자일 뿐 패러다임의 검증가는 아니다.

                                                                       208

 

일차적으로 경쟁적인 패러다임의 제안자들은 흔히 패러다임의 어느 후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항목에 대해 의견이 상치될 것이다. 과학에 대한 그들의 기준이나 정의도 동일하지 않다. 운동 이론은 물질 입자간에 작용하는 인력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운동 이론은 단순히 그러한 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한가? 뉴턴의 역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의 이론과는 달리, 그 질문에 대한 후자의 대답을 암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널리 거부되었다. 그리고 뉴턴의 이론이 받아들여졌을 때, 그에 따라 하나의 질문이 과학으로부터 사라져 버렸다.

……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옛것들로부터 탄생된 것이므로, 그것들은 보통 전통적 패러다임이 이전에 사용해 왔던 개념적이며 조작적인 용어와 장치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옛것들로부터 탄생된 것이므로, 그것들은 보통 전통적 패러다임이 이전에 사용해 왔던 개념적이며 조작적인 용어와 장치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차용한 이 요소들을 전통적 방식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 내에서 옛 용어, 개념, 실험은 서로서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두 경쟁적 학파들 간에 오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12 ~ 213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같은 방향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어느 것을 본다는 뜻은 아니다. 양쪽이 모두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영역에서는 그들은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며, 또 서로 다른 관계에서 그것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한 그룹의 과학자들에게는 증명될 수도 없는 법칙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서 충분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려면, 한 그룹 또는 다른 그룹이 우리가 패러다임 변동(shift)이라 불러온 개종(conversion)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그들은 그런 전위를 일으키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그가 죽은 지 거의 1세기가 지나도록 소수의 전향자밖에 얻지 못했다. 뉴턴의 연구는 「프린키피아(Principia」의 출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특히 대륙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프리스틀리는 산소 이론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켈빈 경 역시 전자기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밖에도 그런 예는 계속된다. 개종의 어려움은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서도 자주 주목을 받아왔다. 다윈은 그의 「종(種)의 기원(Origin of Species)」의 마지막 부분의, 유난히 깊은 통찰력이 드러나는 구절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 책에서 제시된 견해들이 진리임을 확신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나의 견해와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아 왔던 다수의 사실들로 머리 속이 꽉 채워진 노련한 자연사학자들이 이것을 믿어 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갖고 미래를 바라본다―편견 없이 이 문제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을 젊은 신진 자연사 학자들에게 기대를 건다. 그리고 플랑크는 그의 「과학적 자서전(Scientific Autobiography))」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서글프게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

패러다임으로부터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은 강제될 수 없는 개종 경험(conversion experience)이다. 특히 정상과학의 옛 전통을 신봉하는 이들이 일생에 걸쳐 벌이는 저항은 과학적 기준의 위반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의 성격 자체에 대한 지표가 된다. 저항의 근원은 결국 옛 패러다임이 모든 문제를 풀어주리라는 확신, 즉 자연이 패러다임에 의해 제공되는 틀 속으로 맞춰진다는 확신에 있다.

……

때로는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한 세대가 걸리기도 하지만, 과학자 사회는 다시 또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들로 계속 전향해 왔다. 더욱이 이들 개종들은 과학자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 특히 나이가 많고 보다 노련한 과학자들은 무작정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견해를 움직이는 쪽으로 접근될 수 있다. 최후의 저항이 사라지고 난 뒤, 전문가 사회 전체가 다시금 단일한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 아래 연구를 수행하기까지는 개종이 한 번에 몇 가지씩 발생할 것이다.

                                                                       214 ~ 217

 

우리는 실제로 이 사람 저 사람을 개종시키는 논거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단일 그룹으로서 조만간에 재형성될 과학자 사회의 성격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

아마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유력했던 유일한 주장은 그들이 옛 패러다임을 위기로 이끌고 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경우에는, 흔히 이 주장은 있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된다. 그러한 주장이 진전된 영역에서 그 패러다임은 난관에 처한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 난관은 거듭 탐사되어 왔으며, 그것을 제거하려는 시도들은 되풀이되어 허사로 드러났다. ‘결정적 실험들(crucial experiments)’―두 가지 패러다임을 특히 날카롭게 구분시켜 줄 수 있는 실험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미처 창안되기도 전에 인식되어 왔고 시험되어 왔다. 그렇게 하여 코페르니쿠스는 오랜 세월 동안 말썽이었던 1년의 길이라는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주장했고, 뉴턴은 지상계의 역학과 천상계의 역학을 조화시켰노라고 주장했으며, 라부아지에는 기체의 정체(gas-identity)와 중량 관계의 문제들을 해결했노라고 주장했고, 아인슈타인은 수정된 운동의 이론과 부합되는 전기역학(electrodynamics)을 탄생시켰노라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218

 

이제까지 논의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모든 논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경쟁 패러다임의 상대적 능력에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과학자들에게는 그러한 논거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설득력 있는 것이다.

……

새로운 이론은 옛것에 비해 ‘보다 간결하고(neater)', '보다 적합하고(more suitable)', '보다 단순하다(simpler)'고 얘기된다.

……

새로운 패러다임 후보가 최초로 제안될 때, 이는 그것이 당면한 문제들 가운데 소수만을 풀어낼 수 있을 뿐이며, 대부분의 그런 풀이들도 아직은 매우 미흡한 상태이다.

……

통상적으로 명백히 결정적인 논거들이 전개되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개되고 수용되고 탐사된 이후 훨씬 지나서의 일이다―지구의 자전을 입증하는 푸코(Foucault) 전자나 빛이 물 속에서 보다 공기 중에서 더 빠르게 운동한다는 것을 보여 준 피조(Fizeau)의 실험이 모두 그러했다. 그것들을 생산하는 일은 정상과학의 일부이며, 그것들의 역할은 패러다임 논쟁에서가 아니라 혁명 이후의 교과서에서 나타난다.

                                                                       220 ~ 222

 

위기에 처한 영역에서조차도, 논증과 반대 논증(counterargument)의 균형은 때로는 참으로 그 우열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 영역 밖에서는 흔히 균형은 결정적으로 전통 쪽에 기울게 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고대로부터의 지상계에서의 운동에 대한 전통 이론을 대체함이 없이 그것을 파괴시켜 버렸다. 뉴턴도 중력에 대한 옛 전통적 설명에 대한 마찬가지 파괴를 일으켰으며, 라부아지에는 금속의 공통성에 대해 그러한 결과를 빚는 등 그밖에도 많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요컨대 새로운 패러다임 후보가 처음부터 상대적 문제 해결 능력만을 검토했던 완고한 사람들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과학은 극소수의 주요 혁명만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패러다임의 동일 표준상 비교 불능성이라 칭한 것에 의해 형성된 반대 논증들까지 덧붙인다면, 과학은 혁명이라고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러다임 논쟁이 대체로 그러한 견지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이 상당히 타당하기는 하지만, 그 논쟁들은 참으로 상대적 문제 해결 능력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논의의 핵심은 어떤 경쟁 패러다임도 완전히 풀었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다수의 문제들에 대해 과연 어느 패러다임이 장차 연구의 지침이 될 것인가에 있다.

                                                                       222 ~ 223

 

선택된 특정 패러다임 후보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 그 근거가 합리적이거나 궁극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떤 근거가 아울러 존재해야 한다. 무언가가 적어도 몇 명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제안이 올바른 궤도에 올라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이고 불분명한 심미적인 고찰뿐일 때가 종종 있다.

                                                                       223 ~ 224

 

과학자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인 까닭에, 여러 가지 논거를 거쳐가면서 결국 많은 과학자를 설득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설득할 수 있거나 설득시켜야 하는 단일한 논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일어나는 일은 단일 그룹의 개종이라기보다는 전문 분야의 신념의 분포에서 점차로 전이가 증대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새로운 후보는 당초에는 지지자도 거의 없고 지지자의 동기도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유능한 경우에는 패러다임을 개량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것에 의해 인도되는 과학자 사회가 어떤 것이 되는가를 보여 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행됨에 따라, 만일 패러다임이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운명이라면, 설득력 있는 논증들의 수효와 강도가 증강될 것이다. 그에 따라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개종하게 될 것이고, 새 패러다임의 탐사 작업이 계속될 것이다. 그 패러다임에 기초한 실험, 기기, 논문 그리고 서적 등의 수효가 점차 불어날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이 효과적임에 납득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과학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서, 결국 소수의 나이 많은 저항자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조차도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사학자는 역사에서 항상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틴 비합리적이었던 사람들―이를테면 프리스틀리―을 만날 수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의 저항을 가리켜 비논리적 또는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껏해야 과학사학자는 전문 분야가 온통 개종된 후에도 계속 버티는 사람은 사실상(ipso facto) 과학자이기를 거부한 것이라 말하고 싶을 것이다.

                                                                       224 ~ 225

 

 

13. 혁명을 통한 진보

 

Progress through Revolutions

 

 

어째서 앞에서 묘사한 과학 활동은 예컨대 예술, 정치 이론, 또는 철학이 변천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꾸준히 전진해 나가는가?

                                                                       229

 

회화와 조각이 그 목표로서의 묘사를 명백히 부인하고 원시적인 모델로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는 간극이 현재의 깊이만큼 깊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다시 한 번 분야를 바꾸어서 과학과 기술 사이의 심오한 상이성을 보는 데 있어서의 우리의 어려움은 진보가 두 분야 모두의 뚜렷한 속성이라는 사실과 일부 관련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

우리는 흔히 결과라고 여겨져 왔던 것을 원인으로서 인식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과학적 진보(scientific progress)', 그리고 심지어 ’과학적 객관성(scientific objectivity)'이라는 어구는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

그것이 과학이기 때문에 어느 분야가 발전을 이룩하는 것인가, 아니면 발전을 이룩하기 때문에 그것이 과학인 것인가?

                                                                       231 ~ 232

 

철학 분야에는 발전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Aristotelianism)가 발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

한 분야의 기초적 교의가 다시 한 번 논쟁거리가 되는 혁명의 시기에는, 반대되는 패러다임의 이런저런 것이 채택되는 경우 지속적 발전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거듭해서 표출된다. 뉴턴주의(Newtonianism)를 거부했던 이들은 그 이론이 물질에 내재하는 본유적 힘(in-nate forces)에 의존함으로써 과학을 중세의 암흑 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부아지에의 화학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실험실의 원소를 택하기 위해 화학적 ‘원소’의 개념을 배격하는 것이 유명론에 도피하려는 사람들에 의한 화학적 설명의 거부라고 보았다.

                                                                       232 ~ 233

 

음악, 회화, 문학 등에서는 다른 예술가들, 특히 앞서 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함으로써 배움을 얻게 된다. 독창적인 창작에 대한 요약(compendia) 또는 편람(handbooks)을 제외하고는, 교과서는 단지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역사, 철학, 그리고 사회과학에서는 교재 문헌이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에서도 대학의 기초 과정에서는 원전 자료를 병행하여 강독하게 되는데, 일부는 그 분야의 ‘고전(classics)'들이고 나머지는 학자들이 서로를 향해 집필한 당대의 연구 보고서들이다. 그 결과 이들 분야의 학생은 그의 미래 그룹의 구성원들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해결을 시도하게 될 지극히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경쟁적이고 동일 표준상 비교 불능의 풀이들, 즉 궁극적으로 그 스스로 평가를 내려야만 하는 풀이들에 직면하게 된다.

이 상황을 적어도 현대 자연과학에서의 상황과 대조해 보라. 이들 자연계 분야의 학생은 대학원 과정 3,4년에서 독자적 연구를 시작하게 되기까지는 주로 교과서에 의존한다. 다수의 과학 교과과정은 대학원 학생들에게까지도 학생용으로 쓰여지지 않은 저작들을 읽으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연구 논문과 전공 논문을 보충 독서자료로 부과하는 경우에서도 그러한 과제는 최상급반에 국한되며, 사용하는 교과서에 없는 부분을 다소 보완하는 자료에 제한된다. 과학자 교육의 최종 단계에 이르게 되면서, 교과서는 교과서를 가능케 했던 독창적인 과학 문헌으로 체계적으로 대치된다. 이러한 교육 기법을 가능하게 하는 그들의 패러다임에 확신이 얻어진 상황에서, 그것을 바꾸고 싶어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런 연구들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모두 보다 간결하고 정확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최근의 교과서에 요약되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뉴턴, 패러데이(Faraday), 아인슈타인, 슈뢰딩거(Schrodinger)의 연구 보고서를 읽어야 하겠는가?

이런 형태의 교육이 매우 오랫동안 수행되어 온 것을 변명하는 대신, 우리는 이 방법이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효과적이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폭이 좁고 경직된 교육으로서, 아마도 정통 신학을 제외한 다른 어느 분야에서보다도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정상과학적 연구에 대해서, 즉 교과서들이 규정하는 전통 속에서의 수수께끼 풀이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거의 완벽하게 대비를 갖추고 있다. 더욱이 이것은 또 다른 임무―정상과학을 통한 유의미한 위기의 형성―에 대해서도 잘 대비되어 있다.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과학자는 물론 그렇게 잘 대비된 상태가 못 된다. 만연된 위기가 덜 경직된 교육의 실제에 반영될지라도, 과학적 훈련은 쉽사리 새로운 접근법을 발견해 낼 인물을 양성하도록 잘 짜여져 있지 못하다.

……

정상 상태에서 과학자 사회는 그 패러다임이 규정하는 문제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있어 굉장히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더욱이 그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발전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만큼 이해하는 것은 과학의 진보라는 문제에서 제2의 주요부를 부각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방향을 돌려 비상 과학(extraordinary science)을 통한 발전에 대해 묻기로 하자. 어째서 진보는 과학혁명에서도 역시 확실하게 보편적인 부수물이 되어야 하는가?

……

과학 교육에서는 예술 박물관이나 고전 도서실에 상응하는 어떤 것도 이용하지 않으며, 그 결과는 그의 분야의 과거에 대한 과학자의 인식에서 극적인 왜곡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창조적 분야의 종사자들 이상으로, 과학자는 그 결과가 그의 분야를 현재의 유리한 지위로 곧장 이끌어 주는 것이라 보게 되며, 또한 그는 그 결과를 발전이라고 본다. 과학자가 그 분야에 머물러 있는 한, 그에게는 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

성숙한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은 오웰의 「1984년」의 전형적 인물처럼, 그 사회에 존재하는 힘에 의해서 다시 쓰여진 역사의 희생물이 된다는 것을 제시할 것이다.

                                                                       235 ~ 237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문명은 기술, 예술, 종교, 정치체제, 법률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옛 문명의 이러한 영역들은 우리들의 문명에서 만큼이나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로부터 전승되었던 문명만이 가장 원초적인 과학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었다. 과학지식의 대부분은 지난 4세기 동안 유럽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 밖의 다른 지역, 다른 시대는 과학적 생산 활동이 나타나는 그런 특별한 과학자 사회를 뒷받침하지 못했던 것이다.

……

그들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그 범위상 전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루는 문제들은 세부적인 문제들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를 만족시키는 해답은 단순히 사적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풀이로서 수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공유하는 그룹은, 전반적으로 사회로부터 무작위로 끌어내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정의된 과학자의 전문 동아리 사회가 된다. 아직도 쓰여지지 않았다면, 과학적 생애에서의 가장 강력한 규칙들 중 하나는 과학적인 주제들에 대해 국가 원수 또는 일반 대중을 향한 호소의 금지를 들 수 있다.

                                                                       238 ~ 239

 

우리는 모두 과학을 자연에 의해 미리 설정된 어떤 목표를 향해 부단히 다가가는 하나의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

만약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향한 진화(evolution-towarde-what-we-wish-to-know) 대신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진화(evolution-from-what-we-do-know)로 대치할 수 있게 되면, 다수의 혼동스런 문제들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다윈이 1859년에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한 그의 진화 이론(theory of evolution)을 처음 출판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종(species) 변화의 개념도 아니었고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으리라는 가능성도 아니었다. 인간의 진화를 비롯한 진화를 가리키는 증거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되어 왔으며, 진화의 개념은 이전에도 제안되었고 널리 퍼져 있었다. 진화의 개념 자체는 특히 종교 집단들로부터의 저항에 부닥쳤지만, 그것은 다윈주의자들(Darwinians)이 직면했던 가장 큰 난관은 결코 아니었다. 그 어려움은 다윈 자신의 발상과 매우 가까운 견해로부터 비롯하는 것이었다. 다윈 이전 시대의 유명한 진화 이론들―라마르크(Lamarck), 쳄버스(chambers), 스펜서(Spencer), 그리고 독일의 자연철학자들(Naturphilosophen)의 이론들―은 모두 진화를 목표-지향적 과정(goal-directed process)으로 간주하였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당시의 식물군, 동물군에 대한 ‘개념(idea)'은 최초 생명의 창생으로부터 어쩌면 신(神)의 정신 속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러한 개념이나 계획은 전체적 진화 과정에 방향을 설정했고 길잡이가 되었다. 진화적 발전에서의 각각의 새로운 단계는 출발에서부터 존재했던 계획의 보다 완전한 실제화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런 목적론적 성격의 진화론(teleological kind of evolution)의 붕괴는 다윈의 제안에서 가장 의미 깊고 가장 수용하기 곤란한 문제였다. 「종(種)의 기원(Origin of Species)」은 신(神)이나 자연 그 어느 것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어진 환경에서 그리고 자료가 주어진 실제 유기체들에서 작용하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이 보다 정교하고 복잡하며 훨씬 더 분화된 유기체들(organism)의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출현의 원인으로 설정되었다.

……

생존을 위한 유기체들 간의 단순한 경쟁의 결과인 자연선택이 고등 동?식물과 더불어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믿음을 다윈 이론에서 가장 난해하고 혼돈스런 측면이었다. 특정한 목표가 없는 터에 ‘진화(evolution)', '발전(development)', '진보(progress)'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용어들은 갑자기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유기체의 진화를 과학적 개념의 진화에 관련시키는 유비(analogy)는 너무 지나치게 비약하기가 쉽다.

                                                                       242 ~ 244

 

인간이 알 수 있으려면 세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

증거에 의한 과학의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 자연에 관한 그 어떤 개념도 여기서 전개되었던 과학의 진화적 관점과 양립될 수 있다. 이 견해는 또한 과학 활동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도 양립 가능한 것인 만큼 아직도 미결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것을 적용할 만한 강력한 논거가 존재한다.

 

 

※ 과학사학자들은 유난히 충격적인 형태로 이런 맹목성에 직면하는 수가 많다. 과학 분야로부터 과학사로 넘어오는 학생 집단은 언제나 그들에게 있어 가장 가르칠 만한 대상이다. 그러나 또한 통상적으로 처음에는 가장 난처한 가르칠 만한 대상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처음에는 가장 난처한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과학도들은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옛날 과학을 그 당시의 맥락에서 분석하게 하는 일이 각별히 어렵기 때문이다.

                                                                       245

 

후기 - 1969

 

패러다임은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은 그런 집합에서 한 유형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형이나 또는 예제로서 사용되어, 정상과학의 나머지 수수께끼에 대한 풀이의 기초로서 명시적 규칙들을 대치할 수 있는 구체적 수수께끼-풀이를 나타낸다.

……

하나의 패러다임은 어느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며, 또한 바꾸어 말하면, 하나의 과학자 사회는 어느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248 ~ 249

 

패러다임은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은 그런 집합에서 한 유형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형이나 또는 예제로서 사용되어, 정상과학의 나머지 수수께끼에 대한 풀이의 기초로서 명시적 규칙들을 대치할 수 있는 구체적 수수께끼-풀이를 나타낸다.

                                                                       248

 

위기란 그것을 겪고 그리고 때로는 그 결과로서 혁명을 거치게 되는 그 과학자 사회의 연구에 의해 발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 현미경 같은 새로운 기기 또는 맥스웰의 법칙 같은 새로운 법칙이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 생겨나서 그것들의 동화가 다른 분야에서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255

 

나는 요즈음 모든 혁명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전에는 어느 부분에서 동어반복의 위력이었던 일반화의 포기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258 ~ 259

 

이상 현상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방법에 의해 해결된다. 새로운 이론들에 대한 제안은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만일 어느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매번 이상 현상에 대해 위기의 원천으로서 반응을 나타낸다거나 또는 어느 동료가 진전시킨 새로운 이론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과학은 중단되고야 말 것이다.

                                                                       262

 

‘표준예(examplars)'라는 용어의 사용에서 내가 의미하는 내용은, 실험실에서든 시험 문제에서든 또는 과학 교재의 장(章) 말미에서든 간에, 과학교육의 시작에서부터 학생들이 직면하게 되는 구체적인 문제풀이들이다. 그러나 이들 공유된 실례에는 최소한도 정기 간행물에서 볼 수 있는 기술적 문제-풀이의 일부가 추가돼야 하는데, 그것들은 과학자들이 교육 과정을 밟은 뒤의 연구 생활에서 당면하는 것들이며, 또한 과학자들에게 그들의 연구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를 실례로서 보여 주는 것들이다.

……

예컨대 물리학자는 모두 동일한 예증들을 배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빗면, 원추형의 추, 그리고 케플러의 궤도 같은 문제들이 그것이다. 부척(副尺, vernier), 열량계(calorimeter), 그리고 휘트스톤 브리지(Wheatstone bridge) 같은 기기도 포함된다. 그러나 과학자의 수련이 진전됨에 따라서 그들이 공유하는 기호에 의한 일반화는 점차로 서로 다른 표준예들에 의해 설명된다.

                                                                       262 ~ 263

 

금속을 화합물의 무리로부터 원소의 무리로 옮긴 것은 연소에서, 산성(酸性)에서, 그리고 물리적?화학적 결합에서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79 ~ 280

 

나는 뉴턴의 역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보완하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수수께끼-풀이의 도구로서 뉴턴의 이론을 향상시킨 것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의 승계에서 존재론적 진전의 시종일관된 방향성을 볼 수가 없다. 그 반대로, 그렇다고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중요한 관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더 가까운데, 이는 아인슈타인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뉴턴 이론에 근접한 것보다는 더 가깝다.

                                                                       287

 

이 책이 과학의 발전을 비축적적인 단절들에 의해서 매듭지어지는 전통에 묶인 시대의 연속으로서 묘사하고 있는 한에서는, 그 명제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이유는 그 주제들이 다른 분야들로부터 빌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289

 

과학적이건 아니건 간에 어느 특정한 사회에서 어떻게 회원을 뽑으며, 어떻게 회원으로 뽑히게 되는가? 그 과정은 어떤 것이며, 그 그룹의 사회화 단계들은 무엇인가? 그 그룹은 그 목적으로서 총체적으로 무엇을 보는가? 그것은 개별적이건 총체적이건 간에, 어떤 탈선지까지를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탈선을 어떻게 조성하는가? 과학의 보다 철저한 이해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도 의존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연구를 이렇듯 심각하게 필요로 하는 영역은 다시없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과학지식은 본래적으로 한 그룹의 공통되는 성질이거나 반면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지식을 창출하고 또 사용하는 과학자 그룹들의 고유한 특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290 ~ 291.

 

 

역자 해설

 

그의 패러다임 명제가 실린 「과학혁명의 구조(The Stuctru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1962년 그 초판의 출간과 동시에 열광적 찬사와 비판의 대상이 됨으로써 광범위한 영역에서 ‘쿤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과학 변천 및 발전에 관한 이론은 특히 과학철학 분야에서 심각한 논쟁을 유발시켰고, 자연과학 분야에서 나아가 사회과학(社會科學) 분야에 더욱 심오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95

 

「코페르니쿠스 혁명(The Copernican Revolution)」의 업적으로 학문적 역량을 널리 인정받게 된 쿤은 1956년 버클리 대학으로 옮겨 과학사(科學史) 과정의 개설을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 스탠포드 대학의 행동과학 고등 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에서 사회과학자들과 생활한 것을 계기로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의 창안에 이르게 된다.

……

패러다임(paradigm)이란 언어학습에서 사용되는 ‘표준예(exemplar)'란 뜻의 단어이다. 과학지식의 발전 이론에 이 용어가 도입된 것은, 어느 측면에서는 언어학의 영향을 보여 주는 셈이 된다. 쿤의 견해에 따르면, 학생들이 과학 교육에서 습득하게 되는 것은 흔히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인 과학적 개념의 정의(定義)라기보다는 오히려 용어들이 사용된 예제(例題)들을 푸는 표준 방법에서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과학 연구가 수행된다는 실제 과학의 특성에 주목함으로써, 과학 활동을 어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표준형으로부터 여러 가지의 변형들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비유하게 된 것이 ’쿤의 패러다임의 출현‘을 낳았던 것이다.

                                                                       296

 

쿤의 과학관(科學觀)은 근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변천 및 발전에 혁명적이라는 데 요지를 둠으로써, 과학의 진보가 축적적(蓄積的)으로 이루어진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歸納主義的) 과학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의 발전 모델에 의하면,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비축적적(非蓄積的)인 변화의 에피소드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혁명에 의해 과학이 변화하려면 그런 혁명들 사이에는 과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안정된 활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정상과학(正常科學; normal science)이라 규정한다. 따라서 과학혁명은 어느 정상과학이 심각한 이상(anomaly) 현상들의 빈번한 출현에 의해 위기(crisis)에 부딪침으로써 붕괴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그 결과는 새로운 정상과학이 된다. 정상과학은 과학자 사회의 전형적 학문 활동의 형태로서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297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사회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며, 쿤의 과학지식 이론에서는 과학자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정상과학에서는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비판적 질문, 예컨대 기본 이론의 성립 여부에 관한 논의 등은 제기되지 않는다. 정상과학의 출현은 그 분야가 성숙된 단계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며, 패러다임의 부재(不在)는 과학-이전의 단계를 가리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과학의 제 분야가 과연 과학의 자격을 얻었는가에 관한 논란이 제기된다.

                                                                       298

 

정상과학은 수수께끼-풀이(puzzle-solving)에 비유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푸는 사람들이 확실해 해답이 존재함을 알고, 풀이를 얻는 데 필요한 규칙과 지침을 터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규적 연구에서 패러다임의 기본 이론과 상치되는 결과를 얻는 경우에는, 이론의 성립 여부가 의심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능력 여부가 의문시되는 것이 상례이다. 성급하게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과학자는 마치 ‘연장을 탓하는 목수 격’이 된다.

그러나 그 과학자 사회가 더 이상 설명해 낼 길이 없는 기본 이론과 모순되는 이상 현상들이 누적되는 경우 정상과학은 위기를 맞게 되며, 그 반응은 과학연구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기존 패러다임에 기초한 활동과 판단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급기야 이론 체계들이 나타나며 과학자 사회는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이 때 연구 방법과 현상을 지각하는 관점에서의 대규모 재조정이 수반되며, 개념 체계 역시 재구성의 과정을 겪게 된다. 쿤은 이것을 가리켜 과학혁명이라 일컫는다.

                                                                       298 ~ 299

 

쿤의 이론은 과학사학자?과학사회학자?과학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평소의 과학 활동에서 체험한 쿤에 의해 구체적으로 체계화됨으로써, 쿤의 기본 개념들은 과학사적(科學史的) 의식과 설명에 요긴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자 사회의 구조?규범?제도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의 출발점이 제공됐기 때문이다.

당초 그의 이론에서의 혁명적 불연속성(革命的 不連續性)에 관한 발상은 정치?문화?음악?미술 등의 역사로부터 영감을 얻었던 것인데, 이제 쿤의 발전 이론은 그들 분야로 되돌아가 지식의 변천에 관한 모델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300 ~ 301

 

그것은 과학과 과학 활동의 본질에 내재한 원천적 모호성, 즉 그것들 자체가 명시적(明示的) 요소뿐만 아니라 논리에 부합되지 않는 묵시적(?示的)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중요한 이유 때문이다.

                                                                       302. 끝.
 

출처 : 토머스 쿤, 김명자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 개정판(원본 제2판 번역), 두산동아.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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