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문학작품

[스크랩] 김수영 시집

그림자세상 2009. 12. 5. 13:34

동아시아문학 / 民音社 

金洙暎 全集

 

 

차례

廟庭의 노래 5
孔子의 生活難 6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 7
아메리카 타임誌 8
이( ) 9
웃음 10
토 끼 11
아버지의 寫眞 13
달나라의 장난 14
愛情遲鈍 15
풍 뎅 이 16
付託 17
祖國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同志들에게 18
너를 잃고 21
未熟한 盜賊 22
시골 선물 23
九羅重花 24
陶醉의 彼岸 26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27
나의 家族 28
거 미 30
더러운 香爐 31
PLASTER 33
구슬픈 肉體 34
나비의 무덤 35
矜持의 날 36
映寫板 37
書冊 38
헬리콥터 39
休息 40
水煖爐 41
거 리 (一) 42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43
國立圖書館 44
거 리 (二) 45
煙氣 47
레이판彈 48
바뀌어진 地平線 49
記者의 情熱 52
구름의 파수병 54
事務室 55
여 름 뜰 56
여름 아침 57
白蟻 58
屛風 60
눈 61
金洙暎全集 詩 차례
地球儀 62
꽃(二) 63
자(針尺) 64
玲瓏한 目標 65
瀑布 66
봄 밤 67
채소밭 가에서 68
叡智 69
하루살이 70
序詩 71
曠野 72
靈交日 73
꽃 74
초봄의 뜰안에 75
비 76
말 77
奢侈 78
밤 79
冬麥 80
자장가 81
謀利輩 82
生活 83
달밤 84
死靈 85
조고마한 세상의 智慧 86
家屋讚歌 87
末伏 88
伴奏曲 89
파밭 가에서 90
싸리꽃 핀 벌판 91
凍夜 92
미스터 리에게 93
파리와 더불어 94
하...... 그림자가 없다 95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97
祈禱 99
六法全書와 革命 100
푸른 하늘을 102
晩時之歎은 있지만 103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104
거미잡이 105
가다오 나가다오 106
中庸에 대하여 108
허튼소리 109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110
그 방을 생각하며 111
金洙暎全集 詩 차례
永田鉉次郞 112
눈 113
사랑 115
쌀난리 116
黃昏 118
<四.一九> 詩 119
여편네의 방에 와서 121
檄文 122
등나무 124
술과 어린 고양이 126
모르지? 127
伏中 128
누이야 장하고나 ! 129
누이의 방 130
이놈이 무엇이지 ? 131
먼 곳에서부터 132
아픈 몸이 133
詩 135
旅愁 136
白紙에서부터 137
敵 138
마아케팅 139
絶望 140
파자마바람으로 141
滿洲의 여자 142
長詩(一) 144
長詩(二) 146
轉向記 147
만용에게 148
피아노 149
깨꽃 150
후란넬 저고리 151
여자 152
돈 153
반달 154
罪와 罰 156
우리들의 웃음 157
참음은 158
巨大한 뿌리 159
詩 161
거위 소리 162
강가에서 163
X에서 Y로 164
移舍 165
말 166
現代式 橋梁 167
金洙暎全集 詩 차례
六五년의 새해 168
제임스 띵 170
미역국 172
敵(一) 173
敵(二) 174
絶望 175
잔인의 초 176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177
이 韓國文學史 179
H 180
離婚取消 181
눈 182
식모 183
풀의 影像 184
엔카운터誌 185
電話이야기 187
설사의 알리바이 188
金星라디오 189
도적 190
네 얼굴은 192
VOGUE야 193
사랑의 變奏曲 194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196
꽃잎(一) 197
꽃잎(二) 198
꽃잎(三) 199
여름밤 201
美濃印札紙 202
世界一周 203
라디오界 204
美人-Y여사에게 205
먼지 206
性 208
元曉大師-텔레비를 보면서 209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211
풀 213
廟庭의 노래

1

남묘문고리 굳은 쇠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과부의 청사이어라

날아가던 주작성
깃들인 시전
붉은 주초에 꽂혀있는
반절이 과하도다

아아 어인 일이냐
너 주작의 성화
서리앉은 호궁에
피어 사위도 스럽구나

한아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2

백화의 의장
만화의 거동이
지금 고요히 잠드는 얼을 흔드며
관공의 색대로 감도는
향로의 여연이 신비한데

어드메에 담기려고
칠흑의 벽판 위로
향연을 찍어
백련을 무늬놓는
이밤 화공의 소맷자락 무거이 적셔
오늘도 우는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1945>
孔子의 生活難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1945>
가까이 할 수 없는 書籍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 있다
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
용이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
주변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될 책
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책
가리포루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
확실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줄도 모르는
제2차대전 이후의
긴긴 역사를 갖춘 것같은
이 엄연한 책이
지금 바람 속에 휘날리고 있다
어린 동생들과의 잡담도 마치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이루울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
괴로움도 모르고
나는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
그저 멀리 보고 있는 듯한 것이 온당한 것이므로
나는 괴롭다
오오 그와 같이 이 서적은 있다
그 책장은 번쩍이고
연해 나는 괴로움으로 어찌할 수 없이
이를 깨물고 있네!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1947>
아메리카 타임誌

흘러가는 물결처럼
지나인의 의복
나는 또하나의 해협을 찾았던 것이 어리석었다

기회와 유적 그리고 능금
올바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나는 수없이 길을 걸어왔다
그리하야 응결한 물이 떨어진다
바위를 문다

와사의 정치가여
너는 활자처럼 고웁다
내가 옛날 아메리카에서 돌아오던 길
뱃전에 머리 대고 울던 것은 여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또 활자를 본다
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
와사의 정치가들을 응시한다

<1947>
이( )

도립한 나의 아버지의
얼굴과 나여

나는 한 번도 이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두운 옷 속에서만
이는 사람을 부르고
사람을 울린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수염을 바로는 보지
못하였다

신문을 펴라

이가 걸어나온다
행렬처럼
어제의 물처럼
걸어나온다

<1947>
웃음

웃음은 자기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
푸른 목
귀여운 눈동자
진정 나는 기회주의적 판단을 잊고 시들어갑니다.
마차를 타고가는 사람이 좋지 않어요
웃고 있어요
그것은 그림
토막방 안에서 나는 우주를 잡을 듯이 날뛰고 있지요
고운 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
나에게 무엇이라고 하겠나요
아마 잘있으라고 손을 휘두르고 가지요
문턱에서.
이보다 더 추운 날처럼 나는 여기서 겨울을 맞이하다가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도
이 웃음만은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시간에 달린 기이다란 시간을 보시오
내가 어리다고 한탄하지 마시오
나는 내 가슴에
또하나의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1948>
토 끼

1

토끼는 입으로 새끼를 뱉으다

토끼는 태어날 때부터
뛰는 훈련을 받는 그러한 운명에 있었다
그는 어미의 입에서 탄생과 동시에 타락을 선고받는 것이다

토끼는 앞발이 길고
귀가 크고
눈이 붉고
또는 「이태백이 놀던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
모두 재미있는 현상이지만
그가 입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은 또한번 토끼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은 나의 몇사람의 독특한 벗들과 함께
토끼의 탄생의 방식에 대하여
하나의 이덕을 주고 갔다
우리집 뜰앞 토끼는 지금 하얀 털을 비비며 달빛에 서서 있다
토끼야
봄 달 속에서 나에게만 너의 재주를 보여라
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너의 새끼를

2

생후의 토끼가 살기 위하여서는
전쟁이나 혹은 나의 진실성모양으로 서서 있어야 하였다
누가 서있는 게 아니라
토끼가 서서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캉가루의 일족은 아니다
수우나 생어같이
음정을 맞추어 우는 법도
습득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서서 있어야 하였다

몽매와 연령이 언제 그에게
나타날는지 모르는 까닭에
잠시 그는 별과 또하나의 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하나의 것이란 우리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곡선같은 것일까

초부의 일하는 소리
바람이 생기는 곳으로
흘러가는 흘러가는 새소리
갈대소리

「올 겨울은 눈이 적어서 토끼가 은거할 곳이 없겠네」

「저기 저 하아얀 것이 무엇입니까」
「불이다 산화다」

<1949>
아버지의 寫眞

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는
안경이 걸려있고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처럼
그의 눈은 깊이 파지어서
그래도 그것은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요
나의 기아처럼 그는 서서 나를 보고
나는 모오든 사람을 또한
나의 처를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요

영탄이 아닌 그의 키와
저주가 아닌 나의 얼굴에서
오오 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
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요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
나의 무리하는 생에서
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

그의 사진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
또하나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비참이요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
시계의 열두시같이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 ......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버릇이 있소

<1949>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는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호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가 나를 비웃는 듯이 돌로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도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성인과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3>
愛情遲鈍

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
다리밑에 물이 마르고
나의 몸도 없어지고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나에게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

생활무한
고난돌기
백골의복
삼복염천거래
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
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
일식을 하고
첩첩이 무서운 주야
애정은 나뭇잎처럼
기어코 떨어졌으면서
나의 손 우에서 신음한다
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활은 열도를 측량할 수 없고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갈 것
애정지둔

<1953>
풍 뎅 이

너의 앞에서는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았다
백년이나 천년이 결코 세월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사랑의 테두리 속에 끼여있기 때문이 아니리라
추한 나의 발밑에서 풍뎅이처럼 너는 하늘을 보고 운다
그 넓은 등판으로 땅을 쓸어가면서
네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너도 우둔한 얼굴을 만들 줄 안다
너의 이름과 너와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소금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며
의심할 것인데
등 등판 광택 거대한 여울
미끄러져가는 나의 의지
나의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
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
너의 사랑

<1953>
付託

자라나는 죽순모양으로
부탁만이 늘어간다

귀치않은 부탁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갖다주는 것으로 연명을 하고 보니
거절할 수도 없는

캄캄한 사무실 한복판에서
나는 눈이 먼 암소나 다름없이 선량한데
이 공간의 넓이를 가리키면서
한꺼번에 구겨지자 없어지는 벼락과 천둥
이것이 또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는지

여미지 못하는 생각 위에
여밀 수 없는 부탁이여
차라리 죽순같이 자라는대로 맡겨두련다

일찍이 현실의 출발을 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오늘밤도 보아야 할 죽순의 거치러운
꿈은
완전히 무시를 당하고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부끄러움이 없는
부끄러움을 더한층 뜻있게 하기 위하여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만만치 않은 부탁
내가 너의 머리 위에
너를 대신하여
벼락과 천둥을 때리는 날까지
터전이 없으면 나의 머리 위에라도
잠시 이고 다니며 길러야 할
너는 불행하기 짝이없는 죽순이다

유일한 시간을 연상시키는
만만하지 않은 부탁과 죽순이 자라노니라.

<1953>
祖國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同志들에게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의 여정이었다.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현대의 천당을 찾아 나온 것이다.

나는 원래가 약게 살 줄 모르는 사람이다.
진실을 찾기 위하여 진실을 잊어버려야 하는
내일의 역설모양으로
나는 자유를 찾아서 포로수용소에 온 것이고
자유를 찾기 위하여 유자철강을 탈출하려는 어리석은 동물이 되고 말았다.
「여보세요 내 가슴을 헤치고 보세요. 여기 짱빨장이 숨기고 있던 각인보다 더 크고 검은
호소가 있지요.
길을 잊어버린 호소에요.」

「자유가 항상 싸늘한 것이라면 나는 당신과 더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것은 살아있는 포로의 애원이 아니라,
이미 대한민국의 하늘을 가슴으로 등으로 쓸고 나가는
저 조그만 비행기같이 연기도 여운도 없이 살아진 몇몇 포로들의 영령이
너무나 알기 쉬운 말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당신의 뺨에다 대고 비로소 시작하는 귓속이야기지요.」

「그것은 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지요.
누가 거제도 제육십일수용소에서 단기4284년3월16일 오전5시에 바로 철강 하나 둘 셋 네 겹을 격하고 불 일어나듯이 솟아나는 제육십이적색수용소로 돌을 던지고 돌을 받으며 뛰어들어갔는가.」

나는 그들이 어떻게 용감하게 싸웠느냔 것에 대한 대변이 아니다.
또한 나의 죄악을 가리기 위하여 독자의 눈을 가리고 입을 봉하기 위
한 연명을 위한 아유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명이 지루하다고 꾸짖는 독자에 대하여는
한마디 드려야 할 정당한 이유의 말이 있다.
「포로의 반공전선을 위하여는
이것보다 더 장황한 전제가 필요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의 용감성과 또 그들의 어마어마한 전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싸워온 독특한 위치와 세계사적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를 위하여 출발하고 포로수용소에서 끝을 맺은 나의 생명과 진실에 대하여
아무 뉘우침도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자유를 연구하기 위하여「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의 두꺼운 책장을 들춰볼 필요가 없다.
꼭같이 사랑하는 무수한 동지들과 함께
꼭같은 밥을 먹었고
꼭같은 옷을 입었고
꼭같은 정성을 지니고
대한민국이 꽃을 이마 우에 동여매고 싸우고 싸우고 싸워왔다.

그것이 너무나 순진한 일이었기에 잠을 깨어 일어나서
나는 예수 크리스트가 되지 않았나 하는 신성한 착각조차 느껴보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나오려고
무수한 동물적기도를 한 것은
이것이 거짓말이라면 용서하여 주시요,
포로수용소가 너무나 자유의 천당이었기 때문이다.
노파심으로 만일을 염려하여 말해두는 건데
이것은 촌호의 풍자미도 역설도 불쌍한 발악도 청년다운 광기도 섞여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여러분!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시가 아니겠습니까.
일전에 어떤 친구를 만났더니 날더러 다시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어봅니다.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것은
포로로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간억류인으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라고.
그랬더니 그친구가 빨리 삼팔선을 향하여 가서
이북에 억류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UN군의 포로들을 구하여내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하라고 합니다.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북에서 고생하고 돌아오는
상병포로들에게 말할수없는 미안한 감이 듭니다.」

내가 육.이오후에 개천야영훈련소에서 받은 말할수없는 학대를 생각한다.
북원훈련소를 탈출하여 순천읍내까지도 가지 못하고
악귀의 눈동자보다도 더 어둡고 무서운 밤에 중서면내무성군대에게 체포된 일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달아나오던 날 새벽에 파묻었던 총과 러시아군복을 사흘을 걸려서 찾아내고 겨우 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평양을 넘어서 남으로 오다가 포로가 되었지만
내가 만일 포로가 아니되고 그대로 거기서 죽어버렸어도
아마 나의 영혼은 부지런히 일어나서 고생하고 돌아오는
대한민국 상병포로와 UN상병포로들에게 한마디 말을 하였을 것이다.
「수고하였습니다.」

「돌아오신 여러분! 아프신 몸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우리는 UN군에 포로가 되어 너무 좋아서 가시철망을 뛰어나오려고 애를 쓰다가 못 뛰어나오고
여러 동지들은 기막힌 쓰라림에 못이겨 못 뛰어나오고.」

「그러나 천당이 있다면 모두다 거기서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어굴하게 너머진 반공포로들이
다같은 대한민국의 이북반공포로와 거제도반공포로들이
무궁화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진정한 자유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반항의 자유
진정한 반항의 자유조차 없는 그들에게
마즈막 부르고 갈
새 날을 향한 전승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그것은 자유를 위한 영원한 여정이었다.
나즉이 부를 수도 소리높이 부를 수도 있는 그대들만의 노래를 위하여
마즈막에는 울음으로밖에 변할 수 없는
숭고한 희생이여!

나의 노래가 거치럽게 되는 것을 욕하지 마라!
지금 이 땅에서 온갖 형태의 희생이 있거니
나의 노래가 없어진들
누가 나라와 민족과 청춘과
그리고 그대들의 영령을 위하여 잊어버릴 것인가!

자유의 길을 잊어버릴 것인가!

<1953. 5. 5>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있는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모욕의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의 원주 우에 어느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1953>
未熟한 盜賊

기진맥진하여서 술을 마시고
기진맥진하여서 주정을 하소
기진맥진하여서 여관을 차저 들어갔다
옛날같이 낯선 방이 그리 무섭지도 않고
더러운 침구가 마음을 괴롭히지도 않는데
의치를 빼어서 물어 담거놓고 들어 누우니
마치 내가 임종하는 곳이 이러할 것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
옆에 누은 친구가 내가 이를 뺀 얼골이 어린 아해 갔다고 간간대소하며 좋아한다
이 친구도 술이 취한 얼골을 보니 처참하다
창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도 불안하지도 않고
도회에서 태어나서 도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젊은 몸으로 죽어가는 전선의 전사에 못지않게 불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생각을 함으로써 하로하로 도회의 때가 묻어가는 나의 몸을 분하다고 한탄한다
친구가 일어나서 창밖으로 침을 뱉고 아래로 내려갔다 오드니 또 술을 마시러 나려가자고 한다

기진맥진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차가운 이를 건져서 끼고 따라서 나려간다
그중 끝의 방문을 열고보니 꺼먼 사람이 셋이나 앉었다
얼골은 분간할 수도 없는데
술 한병만이 방 한가운데
광채를 띠우고 앉어 있다
나는 의치를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 앉자
선뜻 인사를 하고
음시를 한바탕 읊었드니
여간 좋아들 하지 않는다
나이를 물어보기에 마흔여덜이라고 하니 그대로 곧이듣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
눈알에 백테가 앉은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 모두 몽롱하다
청한지 반시간만에 떠다 주는 냉수를 한 대접 마시고
계단을 내려와서
어제ㅅ밤에 술을 마시든 방을 드려다보니 이불도 벼개도 타구 하나 없이 깨끗하다.

「도적질을 하는 것도 저렇게 부지런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무어야, 빨리 나가서 배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세.」하고 친구가 서두른다
「그러니까 초년생도적이지」
하고 쑥스러운 대ㅅ구를 하면서
기진맥진한 머리를 쉬일 곳을 찾아서 친구의 뒤를 따라서 걸어나왓다.
우리의 잔등이에는「미숙한 도적」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을 것이다.
시골 선물

종로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있다
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살도 넘을까말까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수수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없이 처먹고 있다
신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저녁의 술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나는 중앙선 어는 협곡에 있는 역에서 백여리나 떨어진 광산촌에 두고온 잃어버린 겨울모자를 생각한다
그것은 갈색 낙타모자
그리고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진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모자이다
거기다가 나의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있는 검은 바위같이 큰 머리에는 둘레가 작아서 맞지 않아서 그 모자를 쓴 기분이란 쳇바퀴를 쓴 것처럼 딱딱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시골이라고 무관하게 생각하고 쓰고 간 것인데 결국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아까워서가 아니라
서울에 돌아온 지 일주일도 못 되는 나에게는 도회의 소음과 광증과 속도와 허위가 새삼스럽게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지고
그러할 때마다 잃어버려서 아깝지 않은 잃어버리고 온 모자생각이 불현듯이 난다
저기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있는 여자와 젊은 학생을 내가 시골을 여행하기 전에 그들을 보았더라면 대하였으리 감정과는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는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이 보다 더 거만하여지고 순화되어진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1954>
九羅重花
―어느 소녀에게 물어보니
너의 이름은 글라지오라스라고

저것이야말로 꽃이 아닐 것이다
저것이야말로 물도 아닐 것이다

눈에 걸리는 마지막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듯
영롱한 꽃송이는 나의 마지막 인내를 부숴버리려고 한다

나의 마음을 딛고 가는 거룩한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나는 마지막 붓을 든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 나의 붓은 이 시대를 진솔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치욕

물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
나란히 옆으로 가로 세로 위로 아래로 놓여있는 무수한 꽃송이와 그 그림자
그것을 그리려고 나의 붓은 말할수없이 깊은 치욕

이것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글이기에
(아아 그러한 시대가 온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나의 동요없는 마음으로
너를 다시한번 치어다보고 혹은 내려다보면서 무량의 환희에 젖는다

꽃 꽃 꽃
부끄러움을 모르는 꽃들
누구의것도 아닌 꽃들
너는 늬가 먹고 사는 물의것도 아니며
나의것도 아니고 누구의것도 아니기에
지금 마음놓고 고즈너기 날개를 펴라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마당은 아닐지나
(그것은 골고다의 언덕은 아닌
현대의 가시철망 옆에 피어있는 꽃이기에)
물도 아니며 꽃도 아닌 꽃일지나
너의 숨어있는 인내와 용기를 다하여 날개를 펴라

물이 아닌 꽃
물같이 엷은 날개를 펴며
너의 무게를 안고 날아가려는 듯

늬가 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사의 선조뿐
그러나 그 비애에 찬 선조도 하나가 아니기에
너는 다시 부끄러움과 주저를 품고 숨가뻐하는가

결합된 색깔은 모두가 엷은 것이지만
설움과 힘찬 미소와 더불어 관용과 자비로 통하는 곳에서
네가 사는 엷은 세계는 자유로운 것이기에
생기와 신중을 한몸에 지니고

사실은 벌써 멸하여있을 너의 꽃잎 우에
이중의 봉오리를 맺고 날개를 펴고
죽음 우에 죽음 우에 죽음을 거듭하리
구라중화

<1954>
陶醉의 彼岸

내가 사는 지붕 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수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우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보아 두려워하는 것도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
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얇은 지붕 우에서 솔개미같은
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
더운 날과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
늙은 버섯처럼 숨어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있을 운명---
그것이 사람의 발자욱소리보다도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

나야 늙어가는 몸 우에 하잘것없이 앉아있으면 그만이고
너는 날아가면 그만이지만
잠시라도 나는 취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나의 초라한 검은 지붕에
너의 날개소리를 남기지 말고
네가 던지는 조그마한 그림자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의 귀에다 너의 엷은 울음소리를 남기지 말아라

차라리 앉아있는 기계와같이
취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와 나의 겨울을 한층더 무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눈이랑 한층 더 맑게 하여다우
짐승이여 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도취의 피안에서 날아온 무수한 날짐승들이여

<1954>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비가 그친 후 어느날---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고가는 것이 직선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맞닥드리는 것같은 속에서
나의 설움은 유유히 자기의 시간을 찾아갔다

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
우둔한 일인줄 알면서
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
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느냐

흐르는 시간 속에 이를테면 푸른옷이 걸리고 그 위에
반짝이는 별같이 흰 단추가 달려있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자꾸 뻐근하여만가는 목을 돌려
시간과 함께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것
그것은 혹시 한자루의 부채
--- 그러나 그것은 보일락말락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것---
하나의 가냘픈 물체에 도저히 고정될 수 없는
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이며

이 밤이 기다리는 고요한 사상마저
나는 초연히 이것을 시간 위에 얹고

어려운 몇고비를 넘어가는 기술을 알고있나니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
빈 방안에 나는 홀로이 머물러앉아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

<1954>
나의 家族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한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없는 우리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1954>
거 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 10. 5>
더러운 香爐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같이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같이
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
그리고 모든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

검은 철을 깎아 만든
고궁의 흰 지댓돌 우의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잃어버린 애아를 찾은 듯이
너의 거룩한 머리를 만지면서
우는 날이 오더라도

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보다는 훨씬 급하게
스쳐가는 나의 고독을
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잡을 수 있겠느냐

향로인가보다
나는 너와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인가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원인을
네가 지니고 있는 긴 역사였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였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여보는
향로가 이러하고
내가 그 향로와 같이 있을 때
살아있는 향로
소생하는 나
덧없는 나

이 길로 마냥 가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티끌도 아까운
더러운 것일수록 더한층 아까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으면서
비로소 마음 취하여보는
이 더러운 길

<1954>
PLASTER

나의 천성은 깨어졌다
더러운 붓끝에서 흔들리는 오욕
바다보다 아름다운 세월을 건너와서
나는 태양을 줏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이런것이 올줄이야
괴물이여

지금 고갈시인의 절정에 서서

이름도 모르는 뼈와 뼈
어디까지나 뒤퉁그러져 나왔구나
---그것을 내가 아는 가장 비참한 친구가 붙이고 간 명칭으로 나는 정리하고 있는가

나의 명예는 부서졌다
비 대신 황사가 퍼붓는 하늘아래
누가 지어논 무덤이냐
그러나 그 속에서 부패하고 있는 것
---그것은 나의 앙상한 생명
PLASTER가 연상하는 냄새가 이러할 것이다

오욕·뼈·PLASTER·뼈·뼈
뼈·뼈······················

<1954>
구슬픈 肉體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과 조화와 영원과 귀결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대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

조화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사이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1954>
나비의 무덤


나비의 몸이야 제철이 가면 죽지만은
그의 몸에 붙은 고운 지분은
겨울의 어느 차디찬 둥잔 밑에서 죽어 없어지리라
그러나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않다

나는 노염으로 사무친 정의 소재를 밝히지 아니하고
운명에 거역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밀려내려간다

등잔은 바다를 보고
살아있는 듯이 나비가 죽어누운
무덤 앞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한다

나비의 지분이
그리고 나의 나이가
무서운 인생의 공백을 가르쳐주려 할 때

나비의 지분에
나의 나이가 덮이려 할 때
나비야
나는 긴 숲속을 헤치고
너의 무덤을 다시 찾아오마

물소리 새소리 낯선 바람소리 다시 듣고
모자의 정보다 부부의 의리보다
더욱 뜨거운 너의 입김에
나의 고독한 정신을 녹이면서 우마

오늘이 있듯이 그날이 있는
두겹 절벽 가운데에서
오늘은 오늘을 담당하지 못하니
너의 가슴 우에서는
나 대신 값없는 낙엽이라도 울어줄 것이다

나비야 나비야 더러운 나비야
네가 죽어서 지분을 남기듯이
내가 죽은 뒤에는
고독의 명맥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는 이다지도 주야를 무릅쓰고 애를 쓰고 있단다

<1955. 1. 5>
矜持의 날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1955. 2>
映寫板

고통의 영사판 뒤에 서서
어룽대며 변하여가는 찬란한 현실을 잡으려고
나는 어떠한 몸짓을 하여야 되는가

하기는 현실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
영사판을 받치고 있는 주야를 가리지 않는 어둠이
표면에 비치는 현실보다 한치쯤은 더
소중하고 신성하기도 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두 어깨는 꺼부러지고
영사판 우에 비치는 길잃은 비둘기와같이 가련하게 된다

고통되는 점은
피가 통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
비둘기의 울음소리

구 구 구구구 구구

시원치않은 이 울음소리만이
어째서 나의 뼈를 뚫으고 총알같이 날쌔게 달아나는가

이때이다---
나의 온 정신에 화룡점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영사판 우의 모오든 검은 현실이 저마다 색깔을 입고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비둘기의 두 눈동자에까지
붉은 광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다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있는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우에

<1955>
書冊

덮어놓은 책은 기도와 같은 것
이 책에는
신밖에는 아무도 손을 대어서는 아니된다

잠자는 책이여
누구를 향하여 앉아서도 아니된다
누구를 향하여 열려서도 아니된다

지구에 묻은 풀잎같이
나에게 묻은 서책의 숙련---
순결과 오점이 모두 그의 상징이 되려 할 때
신이여
당신의 책을 당신이 여시오

잠자는 책은 이미 잊어버린 책
이 다음에 이 책을 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1955>
헬리콥터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1950년7월 이후에 헬리콥터는
이나라의 비좁은 산맥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아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지만 린드버어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안에 느끼고야 만다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우리는 좁은 뜰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서부터라도 내어다볼 수 있고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을
헬리콥터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자유
----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손을 잡고 초동물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1955>
休息

남의 집 마당에 와서 마음을 쉬다

매일같이 마시는 술이며 모욕이며
보기싫은 나의 얼굴이며
다 잊어버리고
돈 없는 나는 남의집 마당에 와서
비로소 마음을 쉬다

잣나무 전나무 집뽕나무 상나무
연못 흰 바위
이러한 것들이 나를 속이는가
어두운 그늘 밑에 드나드는 쥐새끼들

마음을 쉰다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속임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
쉬어야 하는 설움이여

멀리서 산이 보이고
개울 대신 실가락처럼 먼지나는
군용로가 보이는
고요한 마당 우에서
나는 나를 속이고 역사까지 속이고
구태여 낯익은 하늘을 보지 않고
구렁이같이 태연하게 앉아서
마음을 쉬다

마당은 주인의 마음이 숨어있지 않은 것처럼 안온한데
나 역시 이 마당에 무슨 원한이 있겠느냐
비록 내가 자란 터전같이 호화로운
꿈을 꾸는 마당이라고 해서

<1955>
水煖爐

견고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팔을 고이고 앉아서 창을 내다보는
수난로는 문명의 폐물

삼월도 되기 전에
그의 내부에서는 더운 물이 없어지고
어둠이 들어앉는다

나는 이 어둠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어두운 신은 밤에도 외출을 못하고 자기의 영토을 지킨다
---유일한 희망은 겨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이 가치는
왼손으로 글을 쓰는 소녀만이 알고 있다
그것은 그의 둥근 호흡기가 언제나 왼쪽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보나
그의 머리 위에 반드시 창이 달려있는 것은
죄악이 아니겠느냐

공원이나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름이면 그의 곁에 와서
곧잘 팔을 고이고 앉아있으니까

그는 인간의 비극을 안다

그래서 그는 낮에도 밤에도
어둠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둠과는 타협하는 법이 없다

<1955>
거 리 (一)

오래간만에 거리에 나와보니
나의 눈을 흡수하는 모든 물건
그 중에도
빈 사무실에 놓인 무심한
집물 이것저것

누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망설이면서
앉아있는 마음
여기는 도회의 중심지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태연하다
---일은 나를 부르는 듯이
내가 일 우에 앉아있는 듯이
그러나 필경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일을 끌고 가는 것은 나다

헌 옷과 낡은 구두가 그리 모양수통하지 않다 느끼면서
나는 옛날에 죽은 친구를
잠시 생각한다

벽 우에 걸어놓은 지도가
한없이 푸르다
이 푸른 바다와 산과 들 우에
화려한 태양이 날개를 펴고 걸어가는 것이다

구름도 필요없고
항구가 없어도 아쉽지 않은
내가 바로 바라다보는
저 허연 석회천정---
저것도
꿈이 아닌 꿈을 가리키는
내일의 지도다

스으라여
너는 이 세상을 점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나의 눈을 찌르는 이 따가운 가옥과
집물과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리들을
커다란 해양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조고마한 물방울로
그려보려 하는데
차리리 어떠할까
---이것은 구차한 선비의 보잘것없는 일일 것인가.

<1955. 3. 10>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너와 나 사이에 세상이 있었는지
세상과 나 사이에 네가 있었는지
너무 밝아서 나는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게 웃는 것은 아니리
너를 보고
너의 곁에 애처로울만치 바싹 다가서서
내가 웃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서가 아니라
너를 보고 짓는 짓궂은 웃음인줄 알어라

음탕할만치 잘 보이는 유리창
그러나 나는 너를 통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려운 세상과같이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
그래서 나는 구태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서
그리움도 잊어버리고 웃는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너는 살아왔고
또 너는 살 것인데
투명의 대명사같은 너의 몸을
지금 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기대고 앉아서
안도의 탄식을 짓는다
유리창이여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1955>
國立圖書館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
누구나 어른들은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구태여 달관하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
샘솟아나오려는 이 설움은 무엇인가
모독당한 과거일까
약탈된 소유권일까
그대들 어린 학도들과 나 사이에 놓여있는
연령의 넘지못할 차이일까......

전쟁의 모든 파괴 속에서
불사조같이 살아난 너의 몸뚱아리---
우주의 파편같이
혹은 혜성같이 반짝이는
무수한 잔재속에 담겨있는 또 이 무수한 몸뚱아리---들은
지금 무엇을 예의 연마하고 있는가

흥분할 줄 모르는 나의 생리와
방향을 가리지 않고 서있는 서가 사이에서
도적질이나 하듯이 희끗희끗 내어다보는 저 흰 벽들은
무슨 조류의 시뇨와도 같다

오 죽어있는 방대한 서책들

너를 보는 설움은 피폐한 고향의 설움인지도 모른다
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로 창이 난 이 도서관은
창설의 의도부터가 풍자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1955. 8. 17>
거 리 (二)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눈에서는 독기를 빼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여보아라

여기는 서울안에서도 가장 번잡한 거리의 한 모퉁이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모양으로 쾌활하다
피곤을 잊어버리게 하는 밝은 태양 밑에는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
나폴레옹만한 호기는 없어도
나는 거리의 운명을 보고
달큼한 마음에 싸여서
어디고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
무한히 망설이는 이 마음은 어둠과 절망의 어제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기쁜 이 마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텐데
---극장이여
나도 지나간 날에는 배우를 꿈꾸고 살던 때가 있었단다
무수한 웃음과 벅찬 감격이여
소생하여라
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잘것없는 설움이여
진시왕만큼은 강하지 않아도
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을 아는 것같다
어두운 도서관 깊은 방에서 육중한 백과사전을 농락하는 학자처럼
나는 그네들의 고민에 대하여만은 투철한 자신이 있다

지이프차를 타고 가는 어느 젊은사람이
유쾌한 표정으로 활발하게 길을 건너가는 나에게
인사를 한다
옛날의 동창생인가 하고 고개를 기웃거려보았으나
그는 그사람이 아니라
○○ 부의 어마어마한 자리에 앉은 과장이며 명사이다

사막의 한 끝을 찾아가는 먼 나라의 외국사람처럼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번잡한 현실 우에 하나하나 환상을 붙여서 보지 않아도 좋다
꺼먼 얼굴이며 노란 얼굴이며 찌그러진 얼굴이며가 모두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서서 있기에
나는 식인종같이 잔인한 탐욕과 강렬한 의욕으로 그중의 하나하나를
일일이 뚫어져라 하고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은 달과 바람모양으로
서늘하다

그네, 마지막으로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찌그러진 입술을 펴라
그네의 얼굴이 나의 눈앞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도르라미모양으로 세찬 바람에 매암을 돌기 전에

도회의 흑점---
오늘은 그것을 운운할 날이 아니다
나는 오늘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모양으로 쾌활하다
---코에서 나오는 쇠냄새가 그리웁다
내가 잠겨있는 정신의 초점은 감상과 향수가 아닐 것이다
정숙이 나의 가슴에 있고
부드러움이 바로 내가 따라가는 것인 이상
나의 긍지는 애드발룬보다는 좀더 무거울 것이며
예지는 어는 연통보다도 훨씬 뾰족하고 날카로울 것이다

암흑과 맞닿는 나의 생명이여
거리의 생명이여
거만과 방만을 잊어버리고
밝은 대낮에라도 겸손하게 지내는 묘리를 배우자

여기는 좁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거러운 거리의 한모퉁이
우울 대신에 수많은 기폭을
흔드는 쾌활
잊어버린 수많은 시편을 밟고 가는 길가에
영광의 집들이여 점포여 역사여
바람은 면도날처럼 날카러웁건만
어디까지 명랑한 나의 마음이냐
구두여 양복이여 노점상이여
인쇄소여 입장권이여 부채의 여인이여
그리고 여인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그네여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들의
어색한 모습이여

<1955. 9. 3>
煙氣

연기는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해발 이천육백척의 고지에서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바닷바람이 무섭다고
구름을 향하여 도망하는 놈
숫자를 무시하고 사는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연기

자의식에 지친 내가 너를
막상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네가 나에게 보이고 있는 시간이란
네가 달아나는 시간밖에는 없다

평화와 조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선수
백화가 만발한 언덕 저편에
부처의 심사같은 굴뚝이 허옇고
그 우에서 내뿜는 연기는
얼핏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필 꽃밭 넘어서
짓궂게 짓궂게 없어져보려는
심술맞은 연기도 있는 것이다

<1955>
레이판彈

너를 딛고 일어서면
생각하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나의 가슴속에 허트러진 파편들일 것이다

너의 표피의 원활과 각도에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나의 발을
나는 미워한다
방향은 애정---

구름은 벌써 나의 머리를 스쳐가고
설움과 과거는
오천만분지 일의 부감도보다도 더
조밀하고 망막하고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애정은 절박하고
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

너는 기류를 안고
나는 근지러운 나의 살을 안고

사성장군이 즐비한 거대한 파아티같은 풍성하고 너그러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는 잔이 없다
투명하고 가벼웁고 쇠소리나는 가벼운 잔이 없다
그리고 또하나 지휘편이 없을 뿐이다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
네가 떠나가기 전에
나는 나의 조심을 다하여 너의 내부를 살펴볼까
이브의 심장이 아닌 너의 내부에는
「시간은 시간을 먹는 듯이 바쁘기만 하다」는
기계가 아닌 자옥한 안개같은
준엄한 태산같은
시간의 퇴적뿐이 아닐 것이냐

죽음이 싫으면서
너를 딛고 일어서고
시간이 싫으면서
너를 타고 가야 한다

창조를 위하여
방향은 현대---

<1955>
바뀌어진 地平線

뮤우즈여
용서하라
생활을 하여나가기 위하여는
요만한 경박성이 필요하단다
시간의 표면에
물방울을 풍기어가며
오늘을 울지 않으려고
너를 잊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
로날드 골맨의 신작품을
눈여겨 살펴보며
피우기 싫은 담배를 피워본다

어는 매춘부의 생활같이
다소곳한 분위기 안에서
오늘이 봄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날개돋친 마음을 위하여
너와 같이 걸어간다
흐린 봄철 어느 오후의 무거운 일기처럼
그만한 우울이 또한 필요하다
세상을 속지 않고 걸어가기 위하여
나는 담배를 끄고
누구에게든지 신경을 피우고 싶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활이 비겁하다고 경멸하지 말아라
뮤우즈여
나는 공리적인 인간이 아니다

내가 괴로워하기보다는
남이 괴로워하는 양을 보기 위하여서도
나에게는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한 것이다
지혜의 왕자처럼
눈 하나 까닥하지 아니하고
도사리고 앉아서
나의 원죄와 회한을 생각하기 전에
너의 생리부터 해부하여보아야겠다
뮤우즈여

클락 게이블
그리고 너절한 대중잡지
타락한 오늘을 위하여서는
내가 「오늘」보다 더 깊이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웃을까보아
나는 적당히 넥타이를 고쳐매고 앉아있다
뮤우즈여
너는 어제까지의 나의 세력
오늘은 나의 지평선이 바뀌어졌다

물은 물이고 불은 불일 것이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의 차이를 정시하기 위하여
하다못해 이와같이 타락한 신문기자의
탈을 쓰고 살고 있단다

솔직한 고백을 싫어하는
뮤우즈여
투기와 경쟁과 살인과 간음과 사기에 대하여서는
너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적당한 음모는 세상의 것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나에게는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하다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
아슬아슬하게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이여
너무나 가벼워서 내 자신이
스스로 무서워지는 놀라운 육체여
배반이여 모험이여 간악이여
간지러운 육체여
표면에 살아라
뮤우즈여
너의 복부를랑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그러면
아름다움은 어제부터 출발하고
너의 육체는
오늘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골맨, 게이블, 레이트, 디보오스,
매리지,
하우스펠 에아리아
---(영국인들은 호스피탈 에아리아?)

뮤우즈여
시인이 시의 뒤를 따라가기에는 싫증이 났단다
고갱, 녹턴 그리고 ]
물새

모두 다같이 나가는 지평선의 대열
뮤우즈는 조금쯤 걸음을 멈추고
서정시인은 조금만 더 속보로 가라
그러면 대열은 일자가 된다

사과와 수첩과 담배와 같이
인간들이 걸어간다
뮤우즈여
앞장을 서지 마라
그리고 너의 노래와 음계를 조금만
낮추어라
오늘의 우울을 위하여
오늘의 경박을 위하여

<1956>
記者의 情熱

사면의 신문 위에 육호활자가 몇천개 박혀있는지 모르지만 너의 상상에서는 실제의 수십배는 담겨있으리라
이 무수한 활자 가운데에
신문기자인 너의 기사도
매일 조금씩은 끼이게 되는데
큰 아름드리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너는 네가 한 신문기사를 매일아침 게시판 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너도 모르게 어느덧 생기고 말았다
생각하면 그것은 둥근 옹이같이 어지러웁기만 한 일이지만
거기에는 초점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이 초점을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낭만적 위대성을 잊어버린 지 오랜 네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것도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래도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신문 한구석에 너의 피가 어리어있는 것이
반가워서 보고 있는 것인가
기사라 하지만 네가 썼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가히 무관한 것
그러기에 한결 가벼운 휴식의 마음으로 쓰고 있을 수 있었던 것

오랜 피곤도 고통도 인내도 잊어버리고
새사람 아닌 새사람이 되어
아무도 모르고 너 혼자만이 아는
네가 쓴 기사 위에
황홀히 너를 찾아오는 아침이여
번개같이 가슴을 울리고 가는 묵은 생명과 새 희망의 무수한 충돌 충돌.............
누구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어오던
무색의 생활자가 네가 아니던가
자유여
아니 휴식이여
어려운 휴식이여
부르기 힘드는 사람의 이름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너무나 무거운
너의 짐
그리고 안락, 안이, 허위......
모두다 잊어버리고 나와서
태양의 다음가는 자유
자유의 다음가는 게시판
너무나 어려운 휴식이여
눈물이 흘러나올 여유조차 없는
게시판과 너 사이에
오늘의 생활이 있을진대
달관한 신문기자여
생각하지 말아라
「결혼윤리의 좌절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이것이 어제 오후에 써놓은 기사대목으로
내일 조간분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해서
네가 이 두 시간의 중간 위에 서있는 것이라고 해서
어려운 휴식
참으로 어려운
얻기 어려운 휴식
너의 긴 시간 속에 언제고 내포되어있는 휴식
그러한 휴식이 찬란한 아침햇빛 비치는 게시판 위에서 떠돌아다니면서
희한한 상상과 무수한 활자를
너에게 눌러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1956>
구름의 파수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는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같이

날아간 제비와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과 파수병인 나.

<1956>
事務室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아무 목적 없이 앉았으면 어떻게 하리
남이 일하는 모양이 내가 일하고 있는 것보다 더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웁게 보이면 어떻게 하리

일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져도 좋다는 듯이 구수한 벗이 있는 곳
너는 나와 함께 못난놈이면서도 못난놈이 아닌데
쓸데없는 도면 위에 글씨만 박고 있으면 어떻게 하리
엄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곳에 사는 친구를 찾아왔다
이 사무실도 네가 만든 것이며
이 많은 의자도 네가 만든 것이며
네가 그리고 있는 종이까지 네가 제지한 것이며
청결한 공기조차 어즈러웁지 않은 것이
오히려 너의 냄새가 없어서 심심하다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
어떻게 하리
어떻게 하리

<1956>
여 름 뜰

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잃어버리고
젖먹는 아이와같이 이즈러진 얼굴로
여름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을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어라!」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오듯 내리는 여름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이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그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여름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뜰을 밟아서도 아니될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1956>
여름 아침

여름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후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
어느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
차차 시골동리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뜨거워질 햇살이 산 위를 걸어내려온다
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우에서
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
구별을 용사하지 않는
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고뇌여

강물은 잠잠하게 흘러내려가는데
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

사람들이여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여름아침에는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
단 한장의 사진을 찍으리라

<1956>
白蟻

내가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된 것은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안에 있어서도 저 무시무시한 백의를 보기 시작한 때부터이었다
백의는 자동식문명의 천재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유주에게는
일언의 약속도 없이 제가 갈 길을 자유자재로 찾아다니었다
그는 나같이 몸이 약하지 않은 점에 주요한 원인이 있겠지만
뇌신보다 더 사나웁게 사람들을 울리고
뮤우즈보다도 더 부드러웁게 사람들의 상처를 쓰다듬어준다
질책의 권리를 주면서 질책의 행동을 주지 않고
어떤 나라의 지폐보다도 신용은 있으나
신체가 너무 왜소한 까닭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를 않는다
고대 형이상학자들은 그를 보고 「양극의 합치」라든가 혹은 「거대한 희열」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십구세기 시인들은 그를 보고「도벽의 왕자」혹은 단순히 「여유」라고 불렀다
그는 남미의 어는 면공업자의 서자로 태어나서
나이아가라강변에서 수도공사에 정신하고 있었다 하며
그의 모친은 희랍인이라고 한다
양면이 모두 담홍색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오랜 세월을 암야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맏누이동생은 그를「하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꼬와서
내가 어느날 그에게「마신」이라고 별명을 붙였더니
그는 대뜸
「오빠는 어머니보다도 더 완고하다」고 하면서
나를 도리어 꾸짖는 척한다
(그가 나를 진심으로 꾸짖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의 은근하고 매혹적인 표정에서 능히 감득할 수 있었다)
---비참한 것은 백의이다
그는 한국에 수입되어가지고 완전한 고아가 되었고
거리에 흩어진 월간 대중잡지 우에 매월 그의 사진이 게재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어느 삼류신문의 사회면에는 간혹 그의 구제금 응모기사같은 것이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진과 기사를 볼 때마다
이것은 「아틀랜틱」과「하아파스」의 광고부의 분실이 나타났다고
이곳 저널리스트의 역습의 묘리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백의는 이와같은 나의 안심과 태만을 비웃는 듯이
어느틈에 우리 가정의 내부에까지 투입하여 들어와서
신심양면의 허약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나를 독촉하여
「희랍인을 모친으로 가진 미국인에게 대한 호소문」과 「정신상으로 본
희랍의 독립선언서」를 써서
전자를 현재 일리노이주에 있는 자기의 모친에게 보내고
후자는 희랍국립박물관관장에게 보내달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무리한 요청에 대하여 나는 하는수없이
「그것은 나의 역량 이상의 것이므로 신세계극단의 연출자 S씨를 찾아가보라」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여가지고 즉석에 거절하여버렸다
오히려 이와같은 나의 경멸과 강의로 인하여
나는 그날부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어저께 내가 오랜간만에 거리에 나가니
나의 친구들은 모조리 나를 회피하는 눈치이었다
그중의 어느 시인은 다음과같이 나에게 욕을 하였다
「더러운 자식 너는 백의와 간통하였다지? 너는 오늘부터 시인이 아니다 . . . . . .」
---백의의 비극은 그가 현대의 경제학을 등한히 하였을 때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1956>
屛風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은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하다
주검에 전면같은 너의 얼굴 우에
용이 있고 낙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어 높은 곳에
비폭을 놓고 유도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의 인장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1956>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1956>
地球儀

지구의의 양극을 관통하는 생활보다는
차라리 지구의의 남극에 생활을 박아라
고난이 풍선같이이 바람에 불리거든
너의 힘을 알리는 신호인줄 알아라

지구의의 남극에는 검은 쇠꼭지가 심겨있는지라
무르익은 사랑을 돌리어보듯이
북극이 망가진 지구의를 돌려라

쇠꼭지보다도 허망한 생활이 균형을 잃을 때
명정한 정신이 명정을 찾듯이
너는 비로소 너를 찾고 웃어라

<1956>
꽃(二)

꽃은 과거와 또 과거를 향하여
피어나는 것
나는 결코 그의 종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설움의 귀결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설움이 없기 때문에 꽃은 피어나고

꽃이 피어나는 순간
푸르고 연하고 길기만한 가지와 줄기의 내면은
완전한 공허을 끝마치고 있었던 것이다

중단과 연속과 해학이 일치되듯이
어지러운 가지에 꽃이 피어오른다
과거와 미래에 통하는 꽃
견고한 꽃이
공허의 말단에서 마음껏 찬란하게 피어오른다

<1956>
자(針尺)

가벼운 무게가 하늘을
생각하게 하는
자의 우아는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재어볼 수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

삶에 지친 자여
자를 보라
너의 무게를 알 것이다

<1956>
玲瓏한 目標

새로운 목표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죽음보다도 엄숙하게
귀고리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
종소리보다도 더 영롱하게
나는 오늘부터 지리교사모양으로 벽을 보고 있을 필요가 없고
노쇠한 선교사 모양으로 낮잠을 자지 않고도 견딜만한 강인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극장 의회 기계의 치차
선박의 삭구 등을 주조하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간 자죽 우에 서서 부르짖는 것은
개와 도회의 사기사뿐이 아니겠느냐
모든 관념의 말단에 서서 생활하는 사람만이 이기는 법이다
역을 떠난 기차 속에서
능금을 먹는 아이들의 머리 우에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희열 우에서
사십년간의 조판경험이 있는 근시안의 노직공의 가슴속에서
가장 심각한 나의 우둔 속에서
새로운 목표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죽음보다도 엄숙하게
귀고리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
종소리보다도 더 영롱하게

<1957>
瀑布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1957>
봄 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어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척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는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1957>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1957>
叡智

바늘구녕만한 예지를 바라면서 사는 자의 설움이여
너는 차라리 부정한 자가 되라
오늘
이 헐벗은 거리에 가슴을 대고
뒤집어진 부정이 정의가 되지 않더라도

그러면 너의 벗들과
너의 이웃사람들의 얼굴이
바늘구녕 저쪽에 떠오르리라
축소와 확대의 중간에 선그들의 얼굴
강력과 기도가 일체가 되는 거리에서
너는 비로서 겸허를 배운다

바늘구녕만한 예지의 저쪽에 사는 사람들이여
나의 현실의 메에뜨르여
어제와 함께 내일에 사는 사람들이여
강력한 사람들이여..........

<1957>
하루살이

나는 일손을 멈추고 잠시 무엇을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는 보람이란 이것뿐이라고-
하루살이의 광무여

하루살이는 지금 나의일을 방해한다
-나는 확실히 하루살이에게 졌다고 생각한다-
하루살이의 유희여

너의 모습과 너의 몸짓은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러우냐
소리없이 기고 소리없이 날으다가
되돌아오고 되돌아가는 무수한 하루살이
-그러나 나의 머리 위의 천장에서는 너의 소리가 들린다-
하루살이의 반복이여

불옆으로 모여드는 하루살이여
벽을 사랑하는 하루살이여
감정을 잊어버린 시인에게로
모여드는 모여드는 하루살이여
-나의 시각을 쉬이게 하라-
하루살이의 황홀이여

<1957>
序詩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는
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혁명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1957>
曠野

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였다
시대의 예지
너무나 많은 나침반이여
밤이 산등성이에 넘어내리는 새벽이면
모기의 피처럼
시인이 쏟고 죽을 오욕의 역사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
공동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
피로와 피로의 발언
시인이 황홀하는 시간보다도 더 맥없는 시간이 어디있느냐
도피하는 친구들
양심도 가지고 가라 휴식도-
우리들은 다같이 산등성이를 내려가는 사람들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광야에 와서 어떻게 드러누울 줄을 알고 있는
나는 너무나도 악착스러운 몽상가
조잡한 천지여
깐디의 모방자여
여치의 나래 밑의 고단한 밤잠이여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떻게 뒤떨어지느냐가 무서운 것]이라는 죽음의 잠꼬대여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1957>
靈交日

나는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를 보았다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창밖의 풍경이 흔들리듯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나의 마음에서 수없이 떨어져내리는 휴식의 열매
뒷걸음질치는 것은 분격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
무수한 궤도여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을 건져주기 전에
시이여
그 사나이의 눈초리를 보셨나요
잊어버려야 할 그 눈초리를

굸은 밧줄 밑에 딩구는
구렁이가 악몽이 될 수 있겠나요
무수한 공허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
더 무서운 악몽이 있나요
시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셨나요
그것보다도 흔적이 더 ㅇ벗는 내어버린 자아도

하하! 우주의 비밀을
아니
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인가요
하하하..........

<1957. 11>


심연은 나의 붓끝에서 퍼져가고
나는 멀리 세계의 노예들을 바라본다
녹개와 분뇨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심연보다도 더 무서운 자기상실에 꽃을 피우는 것은 신이고

나는 오늘도 누구에게든 얽매여 살아야 한다

도야지우리에 새가 날고
국화꽃은 밤이면 더한층 아름답게 이슬에 젖는데
올 겨울에도 산 위의 초라한 나무들을 뿌리만 간신히 남기고 살살이 갈라갈 동네아이들.....
손도 안 씻고
쥐똥도 제멋대로 내버려두고
닭에는 발 등을 물린 채
나의 숙제는 미소이다
밤과 낮을 건너서 도회의 저편에
영영 저물어 사라져버린 미소이다

<1957. 11>
초봄의 뜰안에

초봄의 뜰안에 들어오면
서편으로 난 난간문 밖의 풍경은
모름지기
보이지 않고

황폐한 강변을
영혼보다도 더 새로운 해빙의 파편이
저멀리
흐른다

보석같은 아내와 아들은
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
짓이긴 파냄새가 술취한
내 이마에 신약처럼 생긋하다

흐린 하늘에 이는 바람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데
옷을 벗어놓은 나의 정신은
늙은 바위에 앉은 이끼처럼 추워라

겨울이 지나간 밭고랑 사이에 남은
고독은 신의 무재조와 사기라고
하여도 좋았다

<1958>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배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예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1958>

-K.M에게

당신을 찾아갔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기 위하여서였다

마침 당신은 집에 없고 당신의 아우만이 나와서 당신이 없다고 한다

부산에서 언제 올라왔느냐고 헛말같이라도 물어보아야 할 것을

나는 총에 맞는 새같이 가련하게도 당신의 집을 나와버렸다

그 아우는 물론 들어와서 쉬어가라고 미소를 띄우면서 권하였다

흔적은 없어도 전재를 입은 것만같은 (그렇게 그 문은 나에게는 너무나 컸다)

낡은 대문 사이에 매일같이 흐르는 강물이 오늘에야 비로소 꽉차있다

설움의 탓이라고 이 새로운 현실을 경시하면서도

어제와같이 다시는 [헛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면서

자꾸 수그러져가는 눈을 들어 강과 대안의 찬란한 불빛을 본다

횃불로 검은 물속을 비춰가며 고기를 잡는 배가 증언처럼 다가오고

나는 당신의 아우에게로 뛰어가서 나의 [말]을 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였다

<1958>
奢侈

어둠속에 비치는 해바라기와.......주전자와...... 흰 벽과......
불을 등지고 있는 성황당이 보이는
그 산에는 겨울을 가리키는 바람이 일기 시작하네

나들이를 갔다 온 씻은 듯한 마음에 오늘밤에는 아내를 껴안아도 좋으리
밋밋한 발회목에 내 눈이 자꾸 가네
내 눈이 자꾸 가네

새로 파논 우물전에서 도배를 하고난 귀얄을 씻고 간 두붓집 아가씨에게
무어라고 수고의 인사를 해야 한다지
나들이를 갔다가 아들놈을 두고 온 안방 건넌방은 빈집같구나
문명된 아내에게 [실력을 보이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발이라도 씻고 보자
냉수도 마시자
맑은 공기도 마시어두자
자연이 하라는대로 나는 할 뿐이다
그리고 자연이 느끼라는대로 느끼고
나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의지의 저쪽에서 영위하는 아내여
길고긴 오늘밤에 나의 사치를 받기 위하여
어서어서 불을 끄자
불을 끄자

<1958>


부정한 마음아

밤이 밤의 창을 때리는구나

너는 이런 밤을 무수한 거부 속에 헛되이 보냈구나

또 지금 헛되이 보내고 있구나

하늘아래 비치는 별이 아깝구나

사랑이여

무된 밤에는 무된 사람을 축복하자

<1958>
冬麥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
내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

믿는 것이있기 때문이다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광선의 미립자와 분말이 너무도 시들하다
(압박해주고 싶다)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에서는
나는 비틀거리지도 않고 타락도 안했으리라

그러나 이 눈망울을 휘덮는 싯퍼런
작열의 의미가 밟허지기까지는
나는 여기에 있겠다

햇빛에는 겨울보리에 삭이 트고
강아지는 낑낑거리고
골짜기들은 평화롭지 않으냐-
평화의 의지를 말하고 있지 않으냐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

<1958>
자장가

아가야 아가야
열발구락이 다 나와있네
엄마가
만들어준 빨간 양말에서

아가야 아가야
기저귀 위에는 나이롱종이가지 감겨져 있네
엄마는 바지가 젖는 것이 무서웁단다

아가야 아가야
돌도 아니된 너는 머리도 한 번 깎지를 않고
엄마는
너를 보고 되놈이라고 부르지

아가야 아가야
네 모양이 우스워서 노래르 부르자니
엄마는 하필 국민학교놈의 국어공책을 집어주지

<1959>
謀利輩

언어는 나의 가슴에 있다
나는 모리배들한테서
언어의 단련을 받는다
그들은 나의 팔을 지배하고 나의
밥을 지배하고 나의 욕심을 지배한다

그래서 나는 우둔한 그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이덱거를
읽고 또 그들을 사랑한다
생활과 언어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밀접해진 일은 없다

언어는 원래가 유치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유치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모리배여 모리배여
나의 화신이여

<1959>
生活

시장거리의 먼지나는 길옆의
좌판 위에 쌓인 호콩 마마콩의 멍석의
호콩 마마콩이 어쩌면 저러헥 많은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 속의
애정처럼
솟아오른 놈

(유년의 기적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
나는 자꾸 허허......웃는다

무위와 생활의 극점을 돌아서
나는 또하나의 생황의 좁은 골목 속으로
들어서며서
이골목이라고 생각하고 무릎을 친다

생활은 고절이며
비애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조용히 조용히......

<1959. 4. 30>
달밤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달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보다
나는 커단 서른아홉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 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1959. 5. 22>
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1959>
조고마한 세상의 智慧

조고마한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설운 일이다

그것은 내일이 되면 포탄이 되어서
輝煌하게 날아가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원한이 솟는 가슴속에서 발사되는
포탄은 어두운 하늘을 날아간다
빛이 없는 둥근 하늘에서는
검은 포탄의 꾸부러진 곡성이
정신의 주변보다 더 간지러웁고
계곡을 스쳐서 돌아가는
악마의 안막같은
강물을 향하여
지극히 정확한 각도로 날아가는
포탄이
행복의 파편과 영광과 열도로써
목적을 이루게 되기 전에

승패의 차이를 계산할 줄 아는
포단의 이성이여

[너의 자결과 같은 맹렬한 자유가
여기있다]

<1959>
家屋讚歌

무더운 자연 속에서
검은 손과 발에 마구 상처를 입고 와서
병든 사자처럼
벌거벗고 지내는
나는 여름

석간에 폭풍예보를 보고
배를 타고가는 사람을
습성에서가 아니라 염려하고
삼년전에 심은 버드나무의 악마같은
그림자가 뿜는 아우성소리를 들으며

집과 문명을 새삼스럽게
즐거워하고 또 비판한다

하얗게 마른마루틈 사이에서
들어오는 바람에서
느끼는 투지와 애정은 젊다

자연을 보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라
목가가 여기 있다고 외쳐라
폭풍의 목가가 여기 있다고 외쳐라

목사여 정치가여 상인이여 노동자여
실직자여 방랑자여
그리고 나와같은 집없는 걸인이여
집이 여기 있다고 외쳐라

하얗게 마른 마루틈 사이에서
검은 바람이 들어온다고 외쳐라
너의 머리 위에
너의 몸을 반쯤 가려주는 길고
멋진 양철 채양이 있다고 외쳐라

<1959>
末伏

시냇물소리 푸르고 희고 잔잔한 물소리
숲과 숲 사이의 하늘을 향해서
우는 매미
흙빛 매미여 달팽이는 닭이 먹고
구데기 바람에 우는 소리 나면

물소리는 먼 하늘을 찢고 달아난다
바람이 바람을 쫓고 생명을 쫓는다
강아지풀 사이에 가지(茄子)는 익고
인가 사이에서 기적처럼 자라나는 무성한 버드나무
연록색,
하늘의 빛보다도 분가못할 놈......

버드나무 발아래의 나팔꽃도 그렇다
앙상한 연분홍,
오무러질 때는 무궁화는 그보다 조금쯤 더 길고
진한 빛,
죽음의 빛인지도 모르는 놈......

거역하라 거역하라.....
가을이 오기 전에는
내 팔은 좀체로 제대로 길이를 갖지 못하고

그래도 햇빛을 가리킨다
풀잎끝에서 일어나듯이
태양은 자기가 내린 것을 거둬들이는데
시들은 자죽을 남기지만 도처에서
도처에서
즉결하는 영혼이여
완전한 놈......
구름 끝에 혀(舌)를 대는 잎사귀처럼
몸을 떨며
귀기울이려 할 때
그 무수한 말 중의 제일 첫마디는
[나는 졌노라......]

자연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말복도 다 아니 갔으며
밤에는 물고기가 물밖으로
달빛을 때리러 나온다

영원한 한숨이여

<1959>
伴奏曲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
악골에서 내려가는 너의 결련
-이것이 생활이다

나의 여자들의 더러운 발은 생활의 숙제

온돌 위에 서있는 빌딩
하늘 위에 서있는 꽃 위에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연령의 여유
시도 그런 여유에는 대항할 수 없고
지혜는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

종교의 연필자죽이 두드러진
청춘의 붉은 희롱?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역사의 숙제, 발을 벗는 일,
연결의 [사도]-일어선 것과 앉은 것의
불가사의에 신음하는 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양과 도양의 차이
나는 여유있는 시인-슈뺄비엘이
물에 바진 뒤에 나는 젤라틴을 통해서
시의 진지성을 본다

내용은 술집, 내용은 나, sodydds 도시,
내용은 그림자,
그림자의 비밀
종교의 획득은 종교를 잃었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그때부터 차차 늙어가는 탈을 썼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일어서있는 너의 얼굴은
오늘밤의
앉아있는 내 방의 춧불같은 재산, 보석이여.

<1959>
파밭 가에서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 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앉은 석경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앟고
젖어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있을 때
북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1959>
싸리꽃 핀 벌판


疲勞는 都會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있다

푸른 연못을 넘쳐흐르는 장마통의

싸리꽃 핀 벌판에서

나는 왜 이다지도 疲勞에 집착하고 있는가

汽笛소리는 文明의 밑바닥을 가고

形而上學은 돈지갑처럼

나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1959. 9. 1>
凍夜

壁 뒤로 퍼진 遠近 속에
밤이
가벼웁게 개울을 갖고

개울은 달빛으로 얼음 위에
얼음을 놓았는데

너무 고요해서 잠에서 깨어나

내가 비는 것은
이 무한한 웃음의 가슴속에

그 얼음이 더 얼라는
來日의 呪符이었다

<1959>
미스터 리에게

그는 裁判官처럼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救濟의 길이 없는 事物의 주위에 떨어지는 太陽처럼 판단을 내린다
―월트 휘트먼

나는 어느날 뒷골목의 발코니 위에 나타난
생활에 얼이 빠진 여인의 모습을 茶房의 창너머로 瞥見하였기 때문에
시골로 떠났다

[태양이 하나이듯이
생활은 어디에 가보나 하나이다
미트터 리!

절벽에 올라가 돌을 차듯이
생활을 아는 자는
태양아래에서
생활을 차던진다
미스터 리!

문명에 대항하는 비결은
당신 자신이 문명이 되는 것이다
미스터 리!

<1959>
파리와 더불어

다병한 나에게는
파리도 이미 어제의 파리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일과를 전폐해야 할
문명이 오늘도 또 나를 이렇게 괴롭힌다

싸늘한 가을바람소리에
전통은
새처럼 겨우 나무그늘같은 곳에 정처를 찾았나보다

병을 생각하는 것은
병에 매어달리는 것은
필경 내가 아직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비애를 갖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여유를 갖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 광막한 양지쪽에 반짝거리는
파리의 소리없는 소리처럼
나는 죽어가는 법을 알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1960. 2>
하...... 그림자가 없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타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사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드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싸일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그림자가 없다

하.....그렇다......
하......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
응응...... 응......뭐?
아 그래...... 그래 그래.

<1969. 4. 3>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ㅇ니
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 -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
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
동회란 동회에서 시청이란 시청에서
사회란 사회에서
XX단체에서 OO협회에서
하물며는 술집에서 음식점에서 양화점에서
무역상에서 개솔린 스탠드에서
책방에서 학교에서 전국의 국민학교란 국민학교에서 유아원에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놈의 사진이었느니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
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
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유중사도
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신주처럼 모셔놓던 의젓한 얼굴의
그놈의 속을 창자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
타성같이 습관같이
그저그저 쉬쉬하면서
할말도 다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
흉악한 그놈의 사진을
오늘은 서슴지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밑씻개로 하자
이번에는우리가 의젓하게 그놈의 사진을 밑씻개로 하자
허허 웃으면서 밑씻개로 하자
껄걸 웃으면서 구공탕을 피우는 불쏘시개라도 하자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놈의 사진을 깔아주기로 하자......

민주주의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자유는 이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

군대란 군대에서 장학사의 집에서
관공사의 집에서 경찰의 집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군대의 위병실에서 사단장실에서 정춘감실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교육가들의 사무실에서
4.19후의 경찰서에서 파출소에서
민중의 벗인 파출소에서
협잡을 하지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
관공사의 집에서
역이란 역에서
아아 그놈의 사진을 떼어 없애야 한다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영숙아 기환아 천석아 준이야 만용아
프레지덴트 김 미스 리
정순이 박군 정식이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극악무도한 소름이 더덕더덕 끼치는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뎨어 치우고-

<1960. 4. 26 早朝>
祈禱

-4.19殉國學徒慰靈祭에 붙이는 노래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여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허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러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버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1960. 5. 18>
六法全書와 革命

旣六法全書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상한 백성들아
불상한 것은 그대들 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 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한
혁명을-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 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팔천구백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零下二八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悠久한 公序良俗精神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줄줄 알고만 있다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문ㄷ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 등에 장을 지져라
4.19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허기야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물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

<1960. 5. 25>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飛翔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晩時之歎은 있지만

룻소의 [民約論]을 다 정독하여도
집권당에 아부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민주당이 제일인 세상에서는
민주당에 붙고
혁신당이 제일인 세상이 되면
혁신당에 붙으면 되지 않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제이공화국 이후의 정치의 철칙이 아니라고 하는가
여보게나 나이 사십을 어디로 먹었나
8.15를 6.25를 4.19를
뒈지지 않고 살아왔으면 알겠지
대한민국에서는 공산당만이 아니면
사람따위는 기천명쯤 죽여보아도 까딱도 없거든

데칼트의 [방법서설]을 다 읽어보았지
아부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세
만사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위대한 [개헌]의 헌법에 발을 맞추어가자면
여유가 있어야지
불안을 불안으로 딴죽을 걸어서 퀘지게 할 수 있지
불안이란 놈 지게작대기보다도
더 간단하거든

베이컨의 [신론리학]을 읽어보게나
원자탄이나 유도탄은 너무 많아서
효과가 없으니까
인제는 다시 비수를 쓰는 법을 배우란 말일세
그렇게 되면 미.소보다는
일본, 瑞西, 인도가 더 뻐젓하고
그보다도 한국, 월남, 대만은 No. 1 country in the world
그런 나라에서 집건당이라면
얼마나 의젓한가
비수를 써
인제는 지조랑 영원히 버리고 마음놓고
비수를 써
거짓말이 아냐
비수란 놈 창조보다도 더 산뜻하거든
晩時之歎은 있지만

<1960.7.3>
<童詩>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야 손들어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빵! 빵! 빵!
키크야! 너는 저놈을 쏘아라
빵! 빵! 빵! 빵!
짜키야! 너는 빨리 말을 달려
저기 돈보따리를 들고 달아나는 놈을 잡아라
쬰! 너는 저 산위에 올라가 망을 보아라
메리야 너는 내 뒤를 따라와

이놈들이 다 이성망이 부하들이다
한데다 묶어놔라
야 이놈들아 고갤숙여
너희놈 손에 돌아가신 우리 형님들
무덤 앞에 절을 구천육백삼십만번만 해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두목! 나머지 놈들 다 잡아왔습니다
아홍찐구놈도 섞여있구나
너 이놈 정동 재판소에서 언제 달아나왔으냐 깟땜!
오냐 그놈드을 물에다 거꾸로 박아놓아라
쨈보야 너는 이성망이 놈을 빨리 잡아오너라
여기 떡갈나무 잎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와이 영사한테 보여라
그리고 돌아올 때는 구름을 타고 오너라
내가 구름운전수 제퍼슨 선생한테 말해놨으니까 시간은
2분밖에 안 걸릴 거다
이놈들이 다 이성망이 부하들이지
이놈들 여기 개미구멍으로 다 들어가
이 구멍으로 들어가면 아리조나에 있는
우리 고조할아버지 산소 망두석 밑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
쨈보야 태평양 밑의 개미 길에 미국사람들이 세워놓은 자동차란 자동차는
삭 없애버려라
저놈들이 타고 가면 안된다
야 빨리 들어가 하바! 하바!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아리조나 카보이야

<1960.7.15>
거미잡이

폴리호태풍이 일기 시작하는 여름밤에
아내가 마루에서 거미를 잡고 있는
꼴이 우습다

하나 죽이고
둘 죽이고
넷 죽이고
..........

야 고만 죽여라 고만 죽여
나는 오늘아침에 서약한 게 있다니까
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
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

<196.7.28>
가다오 나가다오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을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려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의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사월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할아버지가 상추시, 아욱시, 근대시를 뿌린 다음에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일년 열두달 쉬는 법이 없는
걸찍한 강변밭같기도 할 것이니

지금 참외와 수박을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
오이, 호박의 손자며느리값도 안되게
헐값으로 넘겨버려 울화가 치받쳐서
고요해진 명수할버이의
재술거리는 눈이
비둘기 울음소리르 듣고 있을 동안에
나쁜 말은 안하니
가다오 가다오

지금 명수할버이가 멍석 위에 넘어져 자고 있느 ㄴ동안에
가다오 가다오
명서할버이
잿님이할아버지
경복이할아버지
두붓집항아버지는
너희들이 피지도를 침략했을 당시에는
그의 아버지들은 아직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니까
명수할버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잿님이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두붓집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가다오 가다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값도 안되는 미.소인은
초콜렛, 커피, 페치코오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1960.8.4>
中庸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오늘아침의 때묻은 革命을 위해서
어차피 한마디 할 말이 있다
이것을 나는 나의 日記帖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中庸은 여기에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한번 熟考한다
鷄舍건너 新築家屋에서 마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쏘비에트에는 있다
(鷄舍 안에서 우는 알 겯는
닭소리를 듣다가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담배를 피워물지 않으면 아니된다)

여기에 있는 것은 中庸이 아니라
踏步다 죽은 平和다 懶惰다 無爲다
(但 「中庸이 아니라」의 다음에 「反動이다」라는
말은 지워져있다
끝으로 「모두 適當히 假面을 쓰고 있다」라는
한 줄도 빼어놓기로 한다)

담배를 피워물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사실은 담배를 피울 겨를이 없이
여기까지 내리썼고
日記의 原文은 日本語로 쓰여져있다

글씨가 가다가다 몹시 떨린 漢字가 있는데
그것은 물론 現政府가 그만큼 惡毒하고 反動的이고
假面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960. 9. 9>
허튼소리

조그마한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힘은 손톱 끝의
때나 다름 없고

時間은 나의 뒤의
그림자이니까

거리에서는 고개
숙이고 걸음걷고

집에 가면 말도
나즈막한 소리로 걸어

그래도 정 허튼소리가
필요하거든

나는 대한민국에서는
제일이지만

以北에 가면야
꼬래비지요

<1960. 9. 25>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世界는 그러한 無數한 間斷

오오 사랑이 追放을 당하는 時間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山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管樂器처럼
宇宙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1960. 10. 29>
그 방을 생각하며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意志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10. 30>
永田鉉次郞

모두 별안간에 가만히 있었다
씹었던 불고기를 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불고기가 아니라 돌이었을지도 모른다
神은 곧잘 이런 장난을 잘한다

(그리 흥겨운 밤의 일도 아니었는데)
사실은 일본에 가는 친구의 잔치에서
伊藤忠商事의 신문광고 이야기가 나오고
國境노 마찌 이야기가 나오다가
以北으로 갔다는 永田鉉次郞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金永吉이 이야기가
나왔다가 들어간 때이다

내가 長門이라는 女歌手도 같이 갔느냐고
농으로 물어보려는데
누가 벌써 재빨리 말꼬리를 돌렸다……
神은 곧잘 이런 꾸지람을 잘한다

<1960. 12. 9>


요 詩人
이제 抵抗詩는
妨害로소이다
이제 영원히
抵抗詩는
妨害로소이다
저 펄펄
내리는
눈송이를 보시오
저 山허리를
돌아서
너무나도 좋아서
하늘을
묶는
허리띠 모양으로
맴을 도는
눈송이를 보시오

요 詩人
勇敢한 詩人
―소용 없소이다
山너머 民衆이라고
山너머 民衆이라고
하여둡시다
民衆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
웃음이 나오더라도
눈 내리는 날에는
손을 묶고 가만히
앉아계시오
서울서
議政府로
뚫린
國道에
눈 내리는 날에는
「삑」차도
찦차도
파발이 다 된
시골 빠스도
맥을 못 추고
맴을 도는 판이니
답답하더라도
답답하더라도
요 詩人
가만히 계시오
民衆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
요 詩人
勇敢한 錯誤야
그대의 抵抗은 無用
抵抗詩는 더욱 無用
莫大한
妨害로소이다
까딱 마시오 손 하나 몸 하나
까닥 마시오
눈 오는 것만 지키고 계시오…….

<1961. 1. 3>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1961>
쌀난리

넓적다리 뒷살에
넓적다리 뒷살에
알이 배라지
손에서는
손에서는
불이 나라지
수챗가에 얼어빠진
수세미모양
그대신 머리는
온통 비어
움직이지 않는다지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大邱에서
大邱에서
쌀난리가
났지 않아
이만하면 아직도
革命은
살아있는 셈이지

百姓들이
머리가 있어 산다든가
그처럼 나도
머리가 다 비어도
인제는 산단다

오히려 더 착실하게
온 몸으로 살지
발톱 끝부터로의
下剋上이란다

넓적다리 뒷살에
넓적다리 뒷살에
알이 배라지
손에서는
손에서는
불이 나라지
온 몸에
온 몸에
힘이 없듯이
머리는
내일 아침 새벽까지도
아주 내처
비어있으라지……

<1961. 1. 28>
黃昏

電話를 걸고 그는 떠나갔다
공연한 이야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의 이야기가 絶望인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이 絶望인 것이 아니라
그가 돈을 가지고 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犯罪者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더우기나 그가 外國地洋服이나
지 아이 가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아니라
그가 나갔을 때
洋盤伴奏曲이 感傷的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더우기나 푸른 창가에
黃昏이 걸터앉아있었다는 것이
더우기나 아니라
나의 周圍에 말짱 「反動」만 앉아있어
객소리만 씨부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우기나 더우기나 아니라

이런 黃昏에는 시베리아의
어느 이름없는 개울가에서
들오리가 서투른 앉음새로
병아리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심심해서 아아 심심해서

<1961. 3. 23>
<四.一九> 詩

나는 하필이면
왜 이 詩를
잠이 와
잠이 와
잠이 와 죽겠는데

지금 쓰려나
이 순간에 쓰려나
罪人들의 말이
배고픈 것보다도
잠 못 자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해서
그래 그러나
배고픈 사람이
하도 많아 그러나
詩같은 것
詩같은 것
안 쓰려고 그러나
더구나
<四.一九> 詩같은 것
안 쓰려고 그러나

껌벅껌벅
두 눈을
감아가면서
아주
금방 골아떨어질 것
같은데
밤보다도
더 소중한
잠이 안 오네
달콤한
달콤한
잠이 안 오네
보스토크가
돌아와 그러나
世界政府理想이
따분해 그러나
이 나라
백성들이
너무 지쳐 그러나
별안간
빚 갚을 것
생각나 그러나
여편네가
짜증낼까
무서워 그러나
동생들과
어머니가
걱정이 돼 그러나
참았던 오줌 마려
그래 그러나

詩같은 것
詩같은 것
써보려고 그러나
<四.一九> 詩같은 것
써보려고 그러나

<1961. 4. 14>
여편네의 방에 와서

여편네의 방에 와서 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이렇듯 少年처럼 되었다
興奮해도 少年
計算해도 少年
愛撫해도 少年
어린놈 너야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
네가 무어라 보채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성을 내지 않는 少年

바다의 물결 昨年의 나무의 體臭
그래 우리 이 盛夏에
온갖 나무의 追憶과
물의 體臭라도
다해서
어린놈 너야
죽음이 오더라도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여편네의 방에 와서 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나는 점점 어린애
太陽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죽음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언덕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愛情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思惟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間斷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點의 어린애
베개의 어린애
苦悶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고
너는 내 눈을 알고
어린놈도 내 눈을 안다

<1961. 6. 3>
檄文

마지막의 몸부림도
마지막의 洋服도
마지막의 神經質도
마지막의 茶房도
기나긴 골목길의 巡禮도
「어깨」도
虛勢도
방대한
방대한
방대한
模造品도
막대한
막대한
막대한
막대한
模倣도
아아 그리고 저 道峰山보다도
더 큰 憎惡도
屈辱도
계집애 종아리에만
눈이 가던 稚氣도
그밖의 무수한 잡동사니 雜念까지도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農夫의 몸차림으로 갈아입고
석경을 보니
땅이 편편하고
하늘이 편편하고
물이 편편하고
앉아도 편편하고
서도 편편하고
누워도 편편하고
都會와 시골이 편편하고
시골과 都會가 편편하고
新聞이 편편하고
시원하고
뻐스가 편편하고
시원하고
뽐프의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나온다고
어머니가 감탄하니 과연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정말 詩人이 됐으니 시원하고
인제 정말
진짜 詩人이 될 수 있으니 시원하고
시원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이건 진짜 시원하고
이 시원함은 진짜이고
自由다

<1961. 6. 12>
등나무

두 줄기로 뻗어올라가던 놈이
한 줄기가 더 생긴 것이 며칠 전이었나
등나무

밤사이에 이슬을 마신 놈이
지금 나의 魂을 마신다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얇상한 잎
그것이 이슬을 마셨다고 어찌 신용하랴
나의 魂, 목욕을 중지한 詩人의 魂을 마셨다고
炎天의 魂을 마셨다고 어찌 신용하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그의 주위를 몇번이고 돌고 돌고 돌고
또 도는 조름같은 날개의 날것들과
甲蟲과 쉬파리떼
그리고 진드기

「엄마 안 가? 엄마 안 가?」
「안 가 엄마! 안 가 엄마! 엄마가 어디를 가니?」
「안 가유?」
「안 가유! 하……」
「으흐흐……」

두 줄기로 뻗어올라가던 놈이
한 줄기가 더 생긴 것이 며칠 전이었나
난간 아래 등나무
넝쿨장미 위의 등나무
등꽃 위의 등나무
우물 옆의 등나무
우물 옆의 등꽃과 활련
그리고 철자법을 틀린 詩
철자법을 틀린 人生
이슬, 이슬의 合唱이다

등나무여 指揮하라 부끄러움 고만 타고
이제는 指揮하라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쑥잎보다 훨씬 얇은
너의 잎은 指揮하라
베적삼, 옥양목, 데드롱, 인조견, 항라,
모시치마 냄새난다 냄새난다
냄새여 指揮하라
연기여 指揮하라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우물이 말을 한다
어제의 말을 한다
「똥, 땡, 똥, 땡, 찡, 찡, 찡……」
「엄마 안 가?」
「엄마 안 가?」
「엄마 가?」
「엄마 가?」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야, 영희야, 메리의 밥을 아무거나 주지 마라,
밥통을 좀 부셔주지?!」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아이스 캔디! 아이스 캔디!」
「꼬오, 꼬, 꼬, 꼬, 꼬오, 꼬, 꼬, 꼬, 꼬」
두 줄기로 뻗어올라가던 놈이
한 줄기가 더 생긴 것이 며칠 전이었나

<1961. 6. 27>
술과 어린 고양이

「낮에는 일손을 쉰다고 한잔 마시는 게라
저녁에는 어둠을 맞으려고 또 한잔 마시는 게라
먼 밭을 바라보며 마늘장아찌에
취하지 않은 듯이 취하는 게라
지장이 없느니라
아무리 바빠도 지장이 없느니라 술취했다고 일이 늦으랴
취하면 취한대로 다 하느니라
쓸데없는 이야기도 주고받고 쓸데없는 일도
찾아보면 있느니라」
내가 내가 취하면
너도 너도 취하지
구름 구름 부풀듯이
기어오르는 파도가
제일 높은 砂岸에
닿으려고 싸우듯이
너도 나도 취하는
中庸의 술잔

바보의 家族과 運命과
어린 고양이의 울음
니야옹 니야옹 니야옹

술취한 바보의 家族과 運命과
술취한 어린 고양이의 울음
역시
니야옹 니야옹 니야옹 니야옹

<1961. 6. 23>
모르지?

李太白이가 술을 마시고야 詩作을 한 理由,
모르지?
구차한 문밖 선비가 벽장문 옆에다
카잘스, 그름, 쉬바이쩌, 에프스타인의 사진을 붙이고 있는 理由,
모르지?
우리집 食母가 여편네가 외출만 하면
나한테 자꾸 웃고만 있는 理由,
모르지?
함경도친구와 경상도친구가 外國人처럼 생각돼서
술집에서 반드시 標準語만 쓰는 理由,
모르지?
五月革命 이전에는 백양을 피우다
그후부터는
아리랑을 피우고
와이샤쓰 윗호주머니에는 한사코 색수건을 꽂아뵈는 理由,
모르지?
아무리 더워도 베와이샤쓰의 에리를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모르지?
아무리 혼자 있어도 베와이샤쓰의 에리를
안쪽으로 접어넣지 않는 理由,
모르지?
술이 거나해서 아무리 졸려도
의젓한 포오즈는
의젓한 포오즈는 취하고 있는 理由,
모르지?
모르지?

<1961. 7. 13>
伏中

三伏의 더위에 질려서인가 했더니
아냐
아이를 뱄어
계수가 아이를 배서 조용하고
食母아이는 사랑을 하는 중이라네

나는 어찌나 좋았던지 목욕을 하러 갔지
개구리란 놈이 추락하는 폭격기처럼
사람을 놀랜다
내가 피우고 있는 파이프
이건 二년이나 대학에서 떨어진 아우놈 거야

너무 조용한 것도 병이다
너무 생각하는 것도 병이다
그것이 실개울의 물소리든
꿩이 푸다닥거리고 날아가는 소리든
하도 심심해서 偵察을 나온 꿀벌의 소리든
무슨 소리는 있어야겠다

女子는 魔物야
저렇게 조용해지다니
周圍까지도 저렇게 조용하게 만드는
魔法을 가졌다니

나는 더위에 속은 조용함이 억울해서
미친놈처럼 라디오를 튼다
地球와 宇宙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어서어서 진행시키기 위해서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미치고 말 것같아서

아아 벌
소리야!

<1961. 7. 22>
누이야 장하고나 !

누이야
諷刺가 아니면 解脫이다
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
너의 방에 걸어놓은 오빠의 寫眞
나에게는 「동생의 寫眞」을 보고도
나는 몇번이고 그의 鎭魂歌를 피해왔다
그전에 돌아간 아버지의 鎭魂歌가 우스꽝스러웠던 것을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그 寫眞을 十년만에 곰곰이 正視하면서
이내 거북해서 너의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十년이란 한 사람이 준 傷處를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歲月이다

누이야
諷刺가 아니면 解脫이다
네가 그렇고
내가 그렇고
네가 아니면 내가 그렇다
우스운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우스워하지 않고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八月의 하늘은 높다
높다는 것도 이렇게 웃음을 자아낸다

누이야
나는 분명히 그의 앞에 절을 했노라
그의 앞에 엎드렸노라
모르는 것 앞에는 엎드리는 것이
모르는 것 앞에는 무조건하고 숭배하는 것이
나의 習慣이니까
동생뿐이 아니라
그의 죽음뿐이 아니라
혹은 그의 失踪뿐이 아니라
그를 생각하는
그를 생각할 수 있는
너까지도 다 함께 숭배하고 마는 것이
숭배할 줄 아는 것이
나의 忍耐이니까

「누이야 장하고나!」
나는 쾌활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
이 광대한 여름날의 착잡한 숲속에
홀로 서서
나는 突風처럼 너한테 말할 수 있다
모든 산봉우리를 걸쳐온 突風처럼
당돌하고 시원하게
都會에서 달아나온 나는 말할 수 있다
「누이야 장하고나!」
<1961. 8. 5>
누이의 방

똘배가 개울가에 자라는
숲속에선
누이의 방도 장마가 가시면 익어가는가
허나
人生의 장마의
추녀끝 물방울소리가
아직도 메아리를 가지고 오지 못하는
八月의 밤에
너의 방은 너무 정돈되어있더라
이런 밤에 나는 서울의 얼치기 洋館 속에서
골치를 앓는 여편네의 댓가지 빽 속에
조약돌이 들어있는
空間의 偶然에 놀란다
누이야
너의 방은 언제나
너무도 정돈되어있다
입을 다문 채
흰실이 매어달려있는 여주알의 곰보
창문 앞에
安置해놓은 당호박
平面을 사랑하는
코스모스
역시 平面을 사랑하는
킴 노박의 사진과
國內小說冊들……
이런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누이야
이런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1961. 8. 17>
이놈이 무엇이지 ?

旅行을
안한다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도 없다
密謨는
전혀 없다
담배마저 안 피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性急해지면 아무데나 재를 떠는
이 宇宙의 暴力마저
없어질지도 모른다
靜寂이
필요없다
그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다
낚시질도
안 간다
假裝파아티에
가본 일도 없다
하물며
中立思想硏究所에는
그림자도 비친 일이 없다
뇌물은
물론 안 받았다
가지고 있는
時計도 없다
집에도
몸에도
그러니까
the reason why
you don't get
a clock
or
a watch마저
말할 필요가 없다
집에도
몸에도
이놈이 무엇이지?

<1961. 8. 25>
먼 곳에서부터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1961. 9. 30>
아픈 몸이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골목을 돌아서
베레帽는 썼지만
또 골목을 돌아서
신이 찢어지고
온 몸에서 피는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흐르는데
또 골목을 돌아서
추위에 온 몸이
돌같이 감각을 잃어도
또 골목을 돌아서

아픔이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

(이제부터는
즐거운 골목
그 골목이
나를 돌리라
―아니 돌다 말리라)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나의 발은 絶望의 소리
저 말(馬)도 絶望의 소리
病院냄새에 休息을 얻는
소년의 흰 볼처럼
敎會여
이제는 나의 이 늙지도 젊지도 않은 몸에
해묵은
1961개의
곰팡내를 풍겨 넣라
오 썩어가는 塔
나의 年齡
혹은
4294알의
구슬이라도 된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敵들과 함께
敵들의 敵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1961>


어서 일을 해요 變化는 끝났소
어서 일을 해요
미지근한 물이 고인 조고마한 논과
대숲 속의 초가집과
나무로 만든 장기와
게으르게 움직이는 물소와
(아니 물소는 湖南地方에서는 못 보았는데)
덜컥거리는 수레와

어서 또 일을 해요 變化는 끝났소
편지봉투모양으로 누렇게 결은
時間과 땅
수레를 털털거리게 하는 慾心의 돌
기름을 주라
어서 기름을 주라
털털거리는 수레에다는 기름을 주라
慾心은 끝났어
논도 얼어붙고
대숲 사이로 侵入하는 무자비한 푸른 하늘

쉬었다 가든 거꾸로 가든 모로 가든
어서 또 가요 기름을 발랐으니 어서 또 가요
타마구를 발랐으니 어서 또 가요
미친놈뽄으로 어서 또 가요 變化는 끝났어요
어서 또 가요
실같은 바람따라 어서 또 가요

더러운 日記는 찢어버려도
짜장 재주를 부릴 줄 아는 나이와 詩
배짱도 생겨가는 나이와 詩
정말 무서운 나이와 詩는
동그랗게 되어가는 나이와 詩
辭典을 보면 쓰는 나이와 詩
辭典을 詩같은 나이의 詩
辭典이 앞을 가는 變化의 詩
감기가 가도 감기가 가도
줄곧 앞을 가는 辭典의 詩
詩.

<1961>
旅愁

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있었다
아무소리 없이 떠난
여행에서
電報도 안 치고
돌아오기를 잘했지

이 뜰에서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아내의 秘密을 탐지하고

내가 없는 그날의
그의 秘密을
탐지할 수도 있었다

그대로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나
지쳤는지 모른다)
여행이 나를
놀래일 수 없었던 것과같이
나는 집에 와서도
그동안의 不在에도
놀라서는 안된다

常識에 취한 놈
常識에 취한
常識
常……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아직도
小鹿島의 하얀 바다에
두고
버리고
던지고 온 醉氣가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1961. 11. 10>
白紙에서부터

하얀 종이가 옥색으로 노란 하드롱지가
이 세상에는 없는 빛으로 변할만큼 밝다
시간이 나비모양으로 이 줄에서 저 줄로
춤을 추고
그 사이로
四月의 햇빛이 떨어졌다
이런때면 매년 이맘때쯤 듣는
병아리 우는 소리와
그의 원수인 쥐소리를 혼동한다

어깨를 아프게 하는 것은
老朽의 美德은 시간이 아니다
내가 나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개울과 개울 사이에
하얀 모래를 골라 비둘기가 내려앉듯
시간이 내려앉는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頭痛의 美德은 시간이 아니다
내가 나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바다와 바다 사이에
지금의 三月의 구름이 내려앉듯
眞實이 내려앉는다

하얀 종이가 분홍으로 분홍 하늘이
녹색으로 또 다른 색으로 변할만큼 밝다
―그러나 混色은 黑色이라는 걸 경고해준 것은
小學校때 선생님……

<1962. 3. 18>


더운 날
敵이란 海綿같다
나의 良心과 毒氣를 빨아먹는
문어발같다

吸盤같은 나의 大門의 명패보다도
正體없는 놈
더운 날
눈이 꺼지듯 敵이 꺼진다

金海東―그놈은 항상 약삭빠른 놈이지만 언제나
部下를 사랑했다
鄭炳一―그놈은 內心과 正反對되는 행동만을
해왔고, 그것은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였다
더운 날
敵을 運算하고 있으면
아무데에도 敵은 없고

시금치밭에 앉은 흑나비와 주홍나비 모양으로
나의 過去와 未來가 숨바꼭질만 한다
「敵이 어디에 있느냐?」
「敵이 꼭 있어야 하느냐?」

순사와 땅주인에서부터 過速을 범하는 運轉手에까지
나의 敵은 아직도 늘비하지만
어제의 敵은 없고
더운날처럼 어제의 敵은 없고
더워진 날처럼 어제의 敵은 없고

<1962. 5. 5>
마아케팅

비니루, 파리통,
그리고 또 무엇이던가?
아무튼 구질구레한 生活必需品
오 注射器
2㏄짜리 國産슈빙지
그리고 또 무엇이던가?
오이, 고춧가루, 후춧가루는 너무나 창피하니까
고만두고라도
그중에 좀 점잖은 品目으로 또 있었는데
아이구 무어던가?
오 도배紙 천장紙, 茶色 白色 靑色의 모란꽃이
茶色의 主色 위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천장지
아니 그건 천장지가 아냐 (壁紙지!)
천장지는 푸른 바탕에
아니 흰 바탕에
엇갈린 벽돌처럼 삘딩 창문처럼
바로 그런 무늬겠다
아냐 틀렸다
벽지가 아니라
아냐 틀렸다
그건 천장지가 아니라
벽지이겠다
더 사오라는 건 벽지이겠다
그러니까 모란이다 모란이다 모란 모란……

그리고 또 하나 있는 것같다
주요한 本論이 네개는 있었다
비니루, 파리통, 도배지……?
주요한 本論이 四項目은 있는 것같다
四項目 四項目 四項目……(면도날!)

<1962. 5. 30>
絶望

나날이 새로워지는 怪奇한 청년
때로는 일본에서
때로는 以北에서
때로는 三浪津에서
말하자면 세계의 도처에서 나타날 수 있는 千手千足獸
美人, 詩人, 事務家, 농사꾼, 商人, 耶蘇이기도 한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기한 인물

흰 쌀밥을 먹고 갔는데 보리알을 먹고 간 것 같고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찾던 만년필은
妻의 빽속에 숨은 듯이 걸려있고
말하자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내 곁에 있고
우물도 사닥다리도 愛兒도 거만한 문표도
내가 犯人이 되기 전에
(벌써 오래 전에!)
犯人의 것이 되어있었고

그동안에도
그뒤에도 나의 詩는 영원한 未完成이고

<1962. 7. 23>
파자마바람으로

파자마바람으로 우는 아이를 데리러 나가서
노상에서 支署의 순경을 만났더니
「아니 어디를 갔다 오슈?」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바람으로 닭모이를 주러 나가서
문지방 안에 夕刊이 떨어져 딩굴고 있는데도
심부름하는 놈더러
「저것 좀 집어와라!」 호령 하나 못하니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바람으로 체면도 차리고 돈도 벌자고
하다하다못해 번역업을 했더니
卷末에 붙어나오는 역자학력에는
한사코 xx대학 중퇴가 xx대학 졸업으로 誤植이 돼 나오니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파자마바람으로 쥬우스를 마시면서
프레이서의 現代詩論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고 있으려니
여편네가 일본에서 온 새 잡지 안의
金素雲의 수필을 보라고 내던져준다
읽어보지 않으신 분은 읽어보시오
나의 프레이서의 책 속의 낱말이
송충이처럼 꾸불텅거리면서 어찌나 지겨워 보이던지
이렇게 돼서야 고만이지
어떻게든지 체면을 차려볼 궁리 좀 해야지

<1962. 8>
滿洲의 여자

무식한 사랑이 여기 있구나
무식한 여자가 여기 있구나
평안도 기생이 여기 있구나
滿洲에서 解放을 겪고
평양에 있다가 仁川에 와서
六.二五때에 남편을 잃고 큰아이는 죽고
남은 계집애 둘을 다리고
在轉落한 여자가 여기 있구나
時代의 여자가 여기 있구나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내는 외상술이니까

나는 이 우중충한 막걸리 탁상 위에서
경험과 歷史를 너한테 배운다
무식한 것이 그것들이니까―
너에게서 취하는 全身의 營養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면서 사랑의 復習을 하는 셈인가
뚱뚱해진 몸집하고 푸르스름해진 눈자위가 아무리 보아도 설어 보인다
九八년만에 만난 滿洲의 여자
잊어버렸던 여자가 여기 있구나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오줌을 누러 갔으니까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는데 流行歌처럼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하는 술
피안도사투리를 마시고 있나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같이 온 친구들 보기도 미안만 한데
옆상에 앉은 술친구들이 경사나 난 듯이
고함을 친다
상제보다 복재기가 더 섧다나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같이 자러 가자고 쥐정만 하니까

아냐 아냐 오해야 내가 이 여자의 연인이 아니라네
나는 이 사람이 만주 술집에서 고생할 때에
연애편지를 대필해준 일이 있을 뿐이지
허고 더러 싱거운 忠告도 한 일이 있는―
충고는 허사였어 그렇지않어?
十八년 후에 이렇게 뻐젓이 서울의 茶房건너 막걸리집에서 또 만나게 됐으니
하여간 반갑다 潛入한 사랑아 무식한 사랑아
이것이 사랑의 뒤치다꺼리인가보다
평안도 사랑의 덤인가 보다
한잔 더 주게 한잔 더 주게
그런데 여자는 술을 안 따른다
건너편 친구가 벌써 곯아떨어졌으니까

<1962. 8. 下旬>
長詩(一)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 돼
복숭아가지나 아가위가지에 앉은
배부른 흰새모양으로
잠깐 앉았다가 떨어지면 돼
구겨진 휴지처럼 노래하면 돼

가정을 알려면 돈을 떼여보면 돼
숲을 알려면 땅벌에 물려보면 돼
잔소리날 때는 슬쩍 피하면 돼
―債鬼가 올 때도―
뻐스를 피해서 길을 건너서는 어린놈처럼
선뜻 큰길을 건너서면 돼
長詩만 長詩만 안 쓰려면 돼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입만 반드르르하게 닦아놓으면 돼
아버지 할머니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어물전 좌판 밑바닥에서 결어있던 것이면 돼
有線合乘自動車에도 양계장에도 납공장에도
米穀倉庫 지붕에도 달려있는
썩은 공기 나가는 지붕 위의 지붕만 있으면 돼
「돼」가 肯定에서 疑問으로 돌아갔다
疑問에서 肯定으로 또 돌아오면 돼
이것이 몇바퀴만 넌지시 돌면 돼
해바라기 머리같이 돌면 돼

깨꽃이나 샐비어나 마찬가지 아니냐
내일의 債鬼를
죽은 뒤의 債鬼를 걱정하는
長詩만 長詩만 안 쓰려면 돼
샐비어 씨는 빨갛지 않으니까
長詩만 長詩만 안 쓰려면 돼
永遠만 永遠만 고민하지 않으면 돼
오징어에 말라붙은 새처럼 五月이 와도
九月이 와도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에서 울리면 돼
라디오소리도 거리의 風習대로 기를 쓰고 크게만 틀어놓으면 돼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서
長詩만 長詩만 안 쓰면 돼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까지 콩콩 울리면 돼
흙묻은 비옷이 二四時間 걸려있으면 돼
情熱도 豫測 고함도 豫測 長詩도 豫測
輕率도 豫測 봄도 豫測 여름도 豫測
氾濫도 豫測 氾濫은 華麗 恐怖는 華麗
恐怖와 老人은 同一 恐怖와 老人과 幼兒는 同一……
豫測만으로 그치면 돼
모자라는 永遠이 있으면 돼
債鬼가 집으로 돌아가면 돼
聖堂으로 가듯이
債鬼가 어젯밤에 나 없는 사이에 돌아갔으면 돼
長詩만 長詩만 안 쓰면 돼

<1962. 9. 26>
長詩(二)

시금치밭에 거름을 뿌려서 파리가 들끓고
이틀째 흐린 가을날은 무더웁기만 해
가까운 데에서 나는 人聲도 옛날이야기처럼
멀리만 들리고
눈은 왜 이리 소경처럼 어두워만지나
먼 데로 던지는 汽笛소리는
하늘끝을 때리고 돌아오는 고무공
그리운 것은 내 귓전에 붙어있는 보이지 않는 젤라틴紙
―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재산처럼
外界의 소리를 濾過하고 彩色해서
宿題처럼 나를 괴롭히고 보호한다

머리가 누렇게 까진 땅주인은 어디로 갔나
여름저녁을 어울리지 않는 지팽이를 들고
異邦人처럼 산책하던 땅주인은
―나도 필경 그처럼 보이지 않는 누구인가를
항시 괴롭히고 있는 보이지 않는 拷問人
時代의 宿命이여
宿命의 超現實이여
나의 生活의 定數는 어디에 있나

混迷하는 아내며
날이 갈수록 간격이 생기는 骨肉들이며
새가 아직 모여들 시간이 못된 늙은 포플러나무며
소리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들은 神의 拷問人인가
―어른이 못되는 나를 탓하는
구슬픈 어른들
나에게 彷徨할 시간을 다오
不滿足의 物象을 다오
두부를 엉기게 하는 따뜻한 불도
졸고 있는 잡초도
이 無感覺의 悲哀가 없이는 죽은 것

술취한 듯한 동네아이들의 喊聲
미쳐돌아가는 歷史의 反覆
나무뿌리를 울리는 神의 발자죽소리
가난한 沈默
자꾸 어두워가는 白晝의 活劇
밤보다도 더 어두운 낮의 마음
時間을 잊은 마음의 勝利
幻想이 幻想을 이기는 時間
―大時間은 결국 쉬는 시간

<1962. 10. 3>
轉向記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쏘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얼마전까지는
흰 원고지 뒤에 낙서를 하면서
그것이 그럴듯하게 생각돼서
쏘련을 내심으로는 입밖으로도 두둔했었다
―당연한 일이다

쏘련을 생각하면서 나는 치질을 앓고 피를 쏟았다
일주일동안 단식까지 했다
단식을 하고 죽을 먹고
그 다음에 밥을 떡국을 먹었는데
새삼스럽게 소화불량증이 생겼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일본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자연스러운 轉向을 한 데 놀라면서
이 이유를 생각하려 하지만
그 이유는 詩가 안된다
아니 또 詩가 된다
―당연한 일이다

「히시야마 슈우조오」의 낙엽이 생활인 것처럼
五.一六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
복종의 미덕!
思想까지도 복종하라!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필시 웃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지루한 轉向의 告白
되도록 지루할수록 좋다
지금 나는 자고 깨고 하면서 더 지루한
中共의 욕을 쓰고 있는데
치질도 낫기 전에 또 술을 마셨다
―당연한 일이다

<1962>
만용에게

收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四百三拾圓이니
한달에 十二, 三萬원이 소리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六十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값이
一週日에 六日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七割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나는 點燈을 하고 새벽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四百三拾圓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일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週期的인 收入騷動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毒氣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半半―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

<1962. 10. 25>
피아노

피아노 앞에는 슬픈 사람들이 많이 있다
冬季放學동안 알바이트를 하는 누이
잡지사에 다니는
영화를 좋아하는 누이
식모살이를 하는 조카
그리고 나

피아노는 밥을 먹을 때도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울린다
피아노의 주인은 나를 보고
詩를 쓰니 음악도 잘 알 게 아니냐고
한곡 쳐보라고 한다
나의 새끼는 피아노 앞에서는 奴隸
둘째새끼는 王子다

삭막한 집의 삭막한 방에 놓인 피아노
그 방은 바로 어제 내가 혁명을 기념한 방
오늘은 기름진 피아노가
덩덩 덩덩덩 울리면서
나의 枯渴한 悲慘을 달랜다

벙어리 벙어리 벙어리
속모도 벙어리 나도 벙어리
모든게 중단이다 소리도 思念도 죽어라
중단이다 명령이다
不定期的인 중단
不定期的인 위협

―이러면 하루종일
밤의 꿈속에서도
당당한 피아노가 울리게 마련이다
그녀가 새벽부터 不定期的으로
타온 순서대로
또 그 悲慘대로
값비싼 피아노가 값비싸게 울린다
돈이 울린다 돈이 울린다

<1963. 3. 1>
깨꽃

나는 잠자는 일
잠속의 일
쫓기어다니는 일
불같은 일
암흑의 일
깨꽃같이 작고 많은
맨 끝으로 神經이 가는 일
暗黑에 휘날리고
나의 키를 넘어서―
병아리같이 자는 일

눈을 뜨고 자는 억센 일
短命의 일
쫓기어다니는 일
불같은 불같은 일
깨꽃같이 작은 자질구레한 일
자꾸자꾸 자질구레해지는 일
불같이 쫓기는 일
쫓기기 전 일
깨꽃 깨꽃 깨꽃이 피기 전 일
成長의 일

<1963. 4. 6>
후란넬 저고리

낮잠을 자고나서 들어보면
후란넬 저고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거지의 누더기가 될락말락한
저놈은 어제 비를 맞았다
저놈은 나의 勞動의 象徵
호주머니 속의 소눈깔만한 호주머니에 들은
물뿌리와 담배부서러기의 오랜 親近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들은
치부책노릇을 하는 종이쪽
그러나 돈은 없다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親近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또 무엇이 있나 나의 호주머니에는?
연필쪽!
옛날 추억이 들은 그러나 일년내내 한번도 펴본 일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본 일이 없는 왼쪽 안호주머니
―여기에는 혹시 휴식의 갈망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휴식의 갈망도 나의 오랜 親近한 친구이다……

<1963. 4. 29>
여자

여자란 集中된 動物이다
그 이마의 힘줄같이 나에게 설움을 가르쳐준다
戰亂도 서러웠지만
捕虜收容所 안은 더 서러웠고
그 안의 여자들은 더 서러웠다
고난이 나를 集中시켰고
이런 集中이 여자의 先天的인 集中度와
奇蹟的으로 마주치게 한 것이 戰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戰爭에 祝福을 드렸다

내가 지금 六학년 아이들의 課外工夫집에서 만난
學父兄會의 어떤 어머니에게 느낀 여자의 감각
그 이마의 힘줄
그 힘줄의 集中度
이것은 罪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여자의 本性은 에고이스트
뱀과같은 에고이스트
그러니까 뱀은 先天的인 捕虜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贖罪에 祝福을 드렸다

<1963. 6. 2>


나에게 三十원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만진 것
쓸 필요도 없이 한 三, 四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한 돈
―어린놈을 아귀라고 하지
그 아귀란 놈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집어갈 돈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
그러나 내 돈이 아닌 돈
하여간 바쁨과 閑暇와 失意와 焦燥를 나하고 같이한 돈
바쁜 돈―
아무도 正視하지 못한 돈―돈의 비밀이 여기 있다

<1963. 7. 1>
반달

音樂을 들으면 茶밭의 앞뒤 시간이
가시처럼 생각된다
나비날개처럼 된 茶잎은 아침이면
날개를 펴고 저녁이면 體操라도 하듯이
일제히 쉰다 쉬는 데에도 規律이 있고
彈力이 있다 九月中旬 茶나무는 거의
내 키만큼 자라나고 노란 꽃도 이제는
보잘것없이 되었는데도 밭주인은
아직도 나타나 잘라가지 않는다

두 뙈기의 茶밭 옆에는 역시 두 뙈기의
채소밭이 있다 김장무나 배추를 심었을
因習的인 분가루를 칠한 밭 위에
나는 걸핏하면 개똥을 갖다 파묻는다
밭주인이 보면 질색을 할 노릇이지만
이 밭주인은 茶밭 주인의 小作人이다
그러나 우리집 여편네는 이것을 모두
자기 밭이라고 한다 멀쩡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을 해도 별로
성과는 없었다 성과가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편네의
거짓말에 반대하지 않는다

音樂을 들으면 茶밭의 앞뒤 시간이
가시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그 가시가
점점 더 똑똑해진다 동산에 걸린
새달에 비친 나무가지처럼
世界를 배경으로 한 나의 思想처럼
죄어든 人生의 輪廓과 秘密처럼……
曲은 舞踊曲―모든 音樂은 舞踊曲이다
오오 廢墟의 질서여 수치의 凱歌여
茶나무냄새여 어둠이여 少女여
休息의 休息이여
분명해진 그 가시의 意味여

모든 曲은 눈물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의 얼굴의 사마귀를 떼주었다
입 밑의 사마귀와 눈 밑의 사마귀……
그런 사마귀가 나의 아들놈의 눈 아래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도 꼭 빼주어야
하겠다고 결심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 눈 아래에 다시 생긴 사마귀는
구태어 빼지 안을 작정이었다
「눈물은 나의 장사이니까」―오오 눈물의
눈물이여 音樂의 音樂이여
달아난 音樂이여 반달이여
내 눈 아래에 다시 생긴 사마귀는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다

<1963. 9. 10>
罪와 罰

남에게 犧牲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殺人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四十명가량의 醉客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犯行의 現場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現場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1963. 10>
우리들의 웃음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宗敎國이라는 것에 대한 自信을 갖는다
絶望은 나의 목뼈는 못 자른다 겨우 손마디뼈를
새벽이면 하아프처럼 분질러놓고 간다
나의 아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머리가 나쁜 것은 선생, 어머니, I.Q다
그저께 나는 빠스깔이 「머리가 나쁜 것은 나」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宗敎國이라는 것에 대한 自信을 갖는다
마당에 서리가 내린 것은 나에게 想像을 그치라는 信號다
그 대신 새벽의 꿈은 具體的이고 선명하다
꿈은 想像이 아니지만 꿈을 그리는 것은 想像이다
술이 想像은 아니지만 술에 취하는 것이 想像인 것처럼
오늘부터는 想像이 나를 想像한다

이제는 선생이 무섭지 않다
모두가 거꾸로다
선생과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宗敎와 非宗敎, 詩와 非詩의 差異가 아이들과 아이의 差異이다
그러니까 宗敎도 宗敎 이전에 있다 우리나라가
宗敎國인 것처럼
새의 울음소리가 그 이전의 靜寂이 없이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거꾸로다
―태연할 수밖에 없다 웃지 않을 수밖에 없다
조용히 우리들의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다

<1963. 10. 11>
참음은

참음은 어제를 생각하게 하고
어제의 얼음을 생각하게 하고
새로 확장된 서울특별시 동남단 논두렁에
어는 막막한 얼음을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전근을 한 국민학교 선생을 생각하게 하고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주막거리에서 쉬는 十분동안의
지루한 정차를 생각하게 하고
그 주막거리의 이름이 말죽거리라는 것까지도
무료하게 생각하게 하고

奇蹟을 기적으로 울리게 한다
죽은 기적을 산 기적으로 울리게 한다

<1963. 12. 21>
巨大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四年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一八九三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英國王立地學協會會長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世界로
화하는 劇的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無斷通行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外國人의 종놈, 官吏들 뿐이었다 그리고
深夜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闊步하고 나선다고 이런 奇異한 慣習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天下를 호령한 閔妃는 한번도 장안外出을 하지 못했다고……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女史를 안 되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이
있는 한 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女史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進步主義者와
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統一도 中立도 개좆이다
隱密도 深奧도 學究도 體面도 因習도 治安局
으로 가라 東洋拓植會社, 日本領事館, 大韓民國官吏,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모든 無數한 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1964. 2. 3>


信仰이 動하지 않는 건지 動하지 않는 게
信仰인지 무르겠다

나비야 우리 방으로 가자
어제의 詩를 다시 쓰러 가자

<1964>
거위 소리

거위의 울음소리는
밤에도 여자의 縞瑪色 원피스를 바람에 나부끼게 하고
강물이 흐르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웃는 얼굴을 더 웃게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한다

<1964. 3>
강가에서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四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자꾸 소심해져만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자꾸 小人이 돼간다
俗돼간다 俗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1964. 6 7>
X에서 Y로

電燈에서 消燈으로
騷音에서 라디오의 中斷으로
模造品 銀丹에서 仁丹으로
남의 집에서 내 방으로
勞動에서 休息으로
休息에서 睡眠으로
新築工場이 아교공장의 말뚝처럼 일어서는
시골에서
새까만 발에 샌달을 신은 여자의 시골에서
무식하게 사치스러운 공허의 서울의
幹線道路를 지나
아직도 얼굴의 輪廓이 뚜렷하지 않은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많이 사는 나의 마을로
地球에서 地球로 나는 왔다
나는 왔다 억지로 왔다

<1964. 8. 16>
移舍

이제 나의 방은 막다른 방
이제 나의 방의 옆방은 自然이다
푸석한 암석이 쌓인 산기슭이
그치는 곳이라고 해도 좋다
거기에는 반드시 구름이 있고
갯벌에 고인 게으른 물이
벌레가 뜰 때마다 눈을 껌벅거리고
그것이 보기싫어지기 전에
그것을 차단할
가까운 距離의 부엌문이 있고
아내는 집들이를 한다고
저녁 대신 뻘건 팥죽을 쑬 것이다

<1964. 9. 10>


나무뿌리가 좀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이 가슴의 動悸도 기침도 寒氣도 내것이 아니다
이 집도 아내도 아들도 어머니도 다시 내것이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 할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秩序는 죽음의 秩序
온 세상이 죽음의 價値로 변해버렸다

익살스러울만치 모든 距離가 단축되고
익살스러울만치 모든 질문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告해야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無言의 말
이 때문에 아내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자식을 다루기 어려워지고 친구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이 너무나 큰 어려움에 나는 입을 봉하고 있는 셈이고
무서운 無誠意를 자행하고 있다

이 無言의 말
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偶然의 빛이요 偶然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이 萬能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1964. 11. 16>
現代式 橋梁

現代式 橋梁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懷古主義者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罪가 많은 다리인줄 모르고
植民地의 昆蟲들이 二四시간을
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닌다
나이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너갈 때마다
나는 나의 心臟을 機械처럼 중지시킨다
(이럼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反抗에 잇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信仰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二十년 전 이야기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 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歷史라고 해도 좋다

이런 驚異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이러한 速力과 速力의 停頓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敵을 兄弟로 만드는 實證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1964. 11. 22>
六五년의 새해

그때 너는 한살이었다
그때 너는 한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奇蹟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살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奇蹟이었다

그때 너는 열여섯살이었다
그때 너는 열여섯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意志는 싹트기 시작했다
너의 意志는
학교 안에서 배운 모든것이
학교 밖에서 본 모든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어린 意思를 발표할 줄 알았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너는 열일곱살이었다
그때 너는 열일곱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筋肉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너의 筋肉은
학교 밖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골목길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行動은
어린 너의 象徵을 면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우리 키만큼 되었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는 이제 열아홉살이었다
너는 이제 열아홉살이었다
너는 여전히 기적이었다
너의 懷疑는 굳어가기 시작했다
너의 懷疑는
나라 안에서 당한 모든것이
나라 밖에서 당한 모든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抱負는
不可能의 한계를 두드려보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우리 키보다도 더 커졌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놀랐다

너는 이제 스무살이다
너는 이제 스무살이다
너는 여전히 기적일 것이다
너의 사랑은 익어가기 시작한다
너의 사랑은
三八線 안에서 받은 무든 굴욕이
三八線 밖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전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는 너의 모든 힘을 다해서 답쌔버릴 것이다
너의 가난을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가난을
이 엄청난 어려움을 고통을
이 몸을 찢는 不自由를 不自由를 나날을......
너는 이제 우리의 고통보다 더 커졌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네가 우리를 보고 감짝놀란다
네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
六五년의 새 얼굴을 보고
六五년의 새해를 보고

<1965 年頭詩>
제임스 띵

신문배달아이들이 사무를 인계하는 날
제임스 띵같이 생긴 책임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풍경이
눈(雪)에 너무 비참하게 보였던지
나는 마구 짜증을 냈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것도 좋다
그 사나이는, 제임스 띵은 어이가 없어서
조그만 눈을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미소를
띄우고 섰지만
나의 고삐를 잃은 白馬에 당할 리가 없다

그와 내가 대결하고 있는 깨진 유리창문 밖에서는
新舊의 두 놈이 馬賊의 동생처럼
떨고 잇다 <아녜요>하면서 오야붕을 응원
하려들었지만 내가 그놈들에게
언권을 줄 리가 없다

한 놈은 가죽 방한모에 빨간 마후라였지만
또 한 놈은 잘 안 보였고 매일아침 들은
<신문요>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어떤놈이 新인지 舊인지를 가려낼 틈도
없다 눈이 왔고 추웠고 너무 화가 났다

제임스 띵의 威脅感은, 이상한 地方色 恐怖感은
自由黨때와 民主黨때와 지금의 惡政의 구별을 말살하고
靜寂을 빼앗긴, 마지막 靜寂을 빼앗긴
나를 몰아세운다 어서 돈을 내라고
그러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신문값이 아니다

또 내가 주어야 할 것도 신문값만이 아니다
수도세, 야경비, 땅세, 벌금, 전기세 이외에
내가 주어야 할 것은 신문값만이 아니다
마지막에 沈默까지 빼앗긴 내가 치라야 할
血稅-화가 있다

눈이 내린 날에는 白羊宮의 비약이 없는 날에는
개도 짖지 않는 날에는 제임스 띵이 뛰어들어서는
아니된다 나의 아들에게 불손한 말을 걸어서는
아니된다 나의 思想에 怒 氣를 띄우게 해서는
아니된다

文名의 血稅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新과 舊가
탈을 낸 돈이 없나 巡視를 다니는 제임스 띵은
讀者를 괴롭혀서는 아니된다
나를 몰라보면 아니된다 나의 怒氣는 타당하니까
눈은, 짓밟힌 눈은, 꺼멓게 짓밟히고 있는 눈은

타당하니까 新.舊의 交替式을 그 이튿날
꿈에까지 보이게 해서는 아니된다
마지막 靜寂을 빼앗긴, 핏대가 난 나에게는
너희들의 儀式은 原始를 가리키고
奴隸賣買를 연상시킨다

理髮所의 화롯가에 연분홍빛 화로
깨어진 유리에 종이를 바르고
그 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제임스 띵같이
되기까지 내가 겪은, 내가 겪을
고뇌는 무한이다

언청이야 언청이야 이발쟁이야 너의
보꾹에 바른 신문지의 활자가 즐거웁구나
校正을 보았구나 나의 毒氣야
가벼운 겨울의 꿈이로구나 나의 毒氣의
꿈이로구나

쓸데없는 것이었다 저것이었다
너의 보꾹에 비친 활자이었다 거기에
그어진 붉은 잉크였다 인사를 하지 않은
나의 친구야 거만한 꿈은 사위어간다
내 잘못이 인제는 다 보인다

불 피우는 소리처럼 다 들리고
재 섞인 연기처럼 다 맡힌다 訂正이 필요없는
겨울의 꿈 깨어진 유리의 제임스 띵
이제는 죽어서 불을 쬐인다
빠개진 난로에 발을 굽는다 시꺼먼 양말을 자꾸 비빈다

<1965. 1. 14>
미역국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歷史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歡喜를
풀 속에서는 노란 꽃이 지고 바람소리가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서걱거린다-우리는 그것을 永遠의
소리라고 부른다

해는 淸敎徒가 大陸 東部에 상륙한 날보다 밝다
우리의 재(灰), 우리의 서걱거리는 말이여
人生과 말의 간결-우리는 그것을 戰鬪의
소리라고 부른다

미역국은 人生을 거꾸로 걷게 한다 그래도 우리는
三十대보다는 약간 젊어졌다 六十이 넘으면 좀더
젊어질까 機關砲나 뗏목처럼 人生도 人生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우리는 그것을 貧窮의
소리라고 부른다

오오 歡喜여 미역국이여 미역국에 뜬 구름이여 구슬픈 祖上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退溪든 丁茶山이든 수염난 영감이든
福德房 사기꾼도 도적놈地主라도 좋으니 제발 순조로와라
自稱 藝術派詩人들이 아무리 우리의 能辯을 욕해도-이것이
歡喜인 걸 어떻게 하랴

人生도 人生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우리는 그것을
結婚의 소리라고 부른다

<1965. 6. 2>
敵(一)

우리는 무슨 敵이든 敵을 갖고 있다
敵에는 가벼운 敵도 무거운 敵도 없다
지금의 敵이 가장 무거운 것같고 무서울 것같지만
이 敵이 없으면 또 다른 敵一來日
來日의 敵은 오늘의 敵보다 弱할지 몰라도
오늘의 敵도 來日의 敵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敵도 來日의 敵처럼 생각하면 되고

오늘의 敵으로 來日의 敵을 쫓으면 되고
來日의 敵으로 오늘의 敵을 쫓을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들은 태평으로 지낸다

<1965. 8. 5>
敵(二)

제일 피곤할 때 敵에 대한다
바위의 아량이다
날이 흐릴 때 정신의 집중이 생긴다
神의 아량이다

그는 사지의 관절에 힘이 빠져서
특히 무릎하고 大腿骨에 힘이 빠져서
사람들과
특히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련을 解體시킨다

詩는 쨍쨍한 날씨에 晴朗한 들에
歡樂의 개울가에 바늘돋친 숲에
버려진 우산
忘却의 想起다

聖人은 妻를 敵으로 삼았다
이 韓國에서도 눈이 뒤집힌 사람들
틈에 끼여사는 妻와 妻들을 본다
오 결별의 신호여

李朝時代의 장안에 깔린 개왓장 수만큼
나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가장 피로할 때 가장 귀한
것을 버린다
흐린 날에는 演劇은 없다
모든게 쉰다
쉬지 않는 것은 妻와 妻들 뿐이다
혹은 버림받은 愛人뿐이다
버림받으려는 愛人뿐이다
넝마뿐이다

제일 피곤할 때 敵을 대한다
날이 흐릴 때면 너와 대한다
가장 가까운 敵에 대한다
가장 사랑하는 敵에 대한다
偶然란 싸움에 이겨보려고

<1965. 8. 6>
絶望

風景이 風景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速度가 速度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救援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 8. 28>
잔인의 초

한번 잔인해봐라
이 문이 열리거든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봐라
태연히 조그맣게 인사 대꾸만 해두어봐라
마루바닥에서 하든지 마당에서 하든지
하다가 가든지 공부를 하든지 무얼 하든지
말도 걸지 말고- 저놈은 내가 말을 걸줄 알지
아까 점심때처럼 그렇게 나긋나긋할줄 알지
시금치 이파리처럼 그렇게 부드러울줄 알지
암 지금도 부드럽기는 하지만 좀 다르다
초가 쳐있다 잔인의 초가
요놈- 요 어린 놈- 맹랑한 놈- 六 학년 놈-
에미없는 놈- 생명
나도 나다- 잔인이다- 미안하지만 잔인이다-
콧노래를 부르더니 그만두었구나- 너도 어지간한 놈이다- 요 놈- 죽어라

<1965. 10. 9>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있는 가시밭

아무래도 비켜서있다 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1965. 11. 4>
이 韓國文學史

지극히 시시한 발견이 나를 즐겁게 하는 야밤이 잇다
오늘밤 우리의 現代文學史의 변명을 얻었다
이것은 위대한 힌트가 아니니만큼 좋다
또 내가 <시시한> 발견의 偏執狂이라는 것도 안다
중요한 것은 야밤이다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가들에 관하여
너무나 많이 고민해왔다
金東仁, 朴勝喜같은 이들처럼 私財를 털어놓고
文化에 헌신하지는 않았다
金裕貞처럼 그밖의 위대한 선배들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소설에 골몰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덤삥出版社의 二十원짜리나 二十원 이하의 고료를 받고 일하는
十四원이나 十三원이나 十二원짜리 번역일을 하는
불쌍한 나나 내 부근의 친구들을 생각할 때
이 죽은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우리의 주위에 너무나 많은 순교자들이 이 발견을
지금 나는 하고 있다

나는 광휘에 찬 新現代文學史 의 詩를 깨알같은 글씨로 쓰고 있다
될 수만 있으면 독자들에게 이 깨알만한 글씨보다 더
작게 써야 할 이 고초의 時期의
보다더 작은 나의 즐거움을 피력하고 싶다

덤삥出版社의 일을 하는 無意識大衆을 웃지 마라
지극히 시시한 이 발견을 웃지 마라
저들의 고요한 숨길을 웃지 마라
저들의 무서운 放蕩을 웃지 마라
이 무서운 浪費의 아들들을 웃지 마라

<1965. 12. 6>
H

H는 그전하곤 달라졌어
내가 K의 詩얘기를 했더니 욕을 했어
욕을 한 건 그것뿐이었어
그건 그의 인사였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그것뿐
그밖에는 모두가 좀 달라졌어

우리는 격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어
훌륭하게 훌륭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
그의 약간의 誤謬는 문제가 아냐
그의 誤謬는 꽃이야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의 首都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그 또 한복판이 되구 있어
그도 이 寬容을 알고 이 마지막 寬容을 알고 있지만
吟味癖이 있는 나보다도 아직까지는 더 순수한 폭도 되고
우리는 월남의 중립문제니 새로 생긴다는 혁신정당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아 비겁한 민주주의여 안심하라
우리는 정치 얘기를 하구 있었던 게 아니야

우리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고
그는 그전처럼 욕도 하지 않았고
내 찻값까지 합해서 百원을 치르고 나가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필시 속으로는 나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가 그전하곤 달라졌어
그는 이제 조용하게 나를 경멸할 줄 알아
석달전에 결혼한 그는 그전하곤 모두가 좀 달라졌어
그리고 그가 경멸하고 있는 건 나의
정치문제뿐이 아냐

<1966. 1. 3>
離婚取消

당신이 내린 決斷이 이렇게 좋군
나하고 別居를 하기로 작정한 이틀째 되는 날
당신은 나와의 離婚을 결정하고
내 친구의 미망인의 빚보를 선 것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집문서를 넣고 六부 이자로 十만원을
물어주기로 한 것이 이렇게 좋군

十만원 중에서 五만원만 줄까 三만원만 줄까
하고 망설였지 당신보다도 내가 더 망설였지
五만원을 無利子로 돌려보려고
피를 안 흘리려고 생전 처음으로 돈 가진 친구한테
정식으로 돈을 꾸러 가서 안됐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이것을
하고 피를 안 흘리려고
저것을 하고 이짓을 하고 저짓을 하고
이것을 하고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바라 대학에 다니는
나이어린 친구한테 편지를 받았지
그 편지 안에 적힌 블레이크의 詩를 감동을 하고
읽었지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 그러나 완성하진 못했지

이것을 지금 완성하였다 아내여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블레이크의 詩를 완성했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어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텔 파티에 참석한
天使같은 女流作家의 냉철한 지성적인
눈동자는 거짓말이다
그 눈동자는 피를 흘리고 있지 않다
善이 아닌 모든 것은 惡이다 神의 地帶에는
中立이 없다
아내여 화해하자 그대가 흘리는 피에 나도
참가하게 해 다오 그러기 위해서만
離婚을 취소하자

<1966. 1. 29>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줄 건너 두줄 건너 또 내릴까

廢墟에 廢墟에 눈이 내릴까

<1966. 1. 29>
식모

그녀는 盜癖이 발견되었을 때 완성된다
그녀뿐이 아니라
나뿐이 아니라 賊役에 찌들린
나뿐만이 아니라
여편네뿐이 아니라 안달을 부리는
여편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새끼들까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의 새끼들까지도

그녀가 온 지 두달만에 우리들은 처음으로 완성되었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1966. 2. 11>
풀의 影像

고민이 사라진 뒤에
이슬이 앉은 새봄의 낯익은 풀빛의 影像이
떠오르고나서도
그것은 또 한참 시간이 필요했다
시계를 맞추기 전에
라디오의 時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안타깝다

봄이 오기 전에 속옷을 벗고 너무 시원해서 설워지듯이
성급한 우리들은 이 발견과 실감 앞에 서럽기까지도 하다
전아시아의 후진국 전아프리카의 후진국
그 섬조각 반도조각 대륙조각이
이 발견의 봄이 오기 전에 옷을 벗으려고
뚜껑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라디오의 時鐘을 고하는 소리 대신에 西道歌와
牧師의 열띤 설교소리와 심포니가 나오지만
이 소음들은 나의 푸른 풀의 가냘픈
影像을 꺾지 못하고
그 影像의 전후의 苦憫의 歡喜를 지우지 못한다

나는 옷을 벗는다 엉클 쌤을 위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무거운 겨울옷을 벗는다
겨울옷의 影像도충분하다 누더기 누빈 옷
가죽용 융옷 솜이 풀린 솜옷......
그러다가 나는 드디어 越南人이 되기까지도 했다
엉클 쌤에게 학살당한
越南人이 되기까지도 했다

<1966. 3. 7>
엔카운터誌

빌려드릴 수 없어. 작년하고도 또 틀려.
눈에 보여. 냉면집 간판 밑으로-육개장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나왔어-모밀국수 전문집으로 갔지-
매춘부 젊은애들, 때묻은 발을 꼬고 앉아서
유부우동 먹고 있는 것을 보다가 생각한 것
아냐. 그때는 빌려드리려고 했어. 寬容의 미덕-
그걸 할 수 있었어. 그것도 눈에 보였어. 그게
무어란 말이야. 나는 그 이전에 있었어. 내 몸. 빛나는
몸.

매일 그렇게 믿어왔어. 방을 이사를 했지. 내
방에는 아들놈이 가고 나는 식모아이가 쓰던 방으로
가고. 그런데 그 큰놈의 방에 같이 있는 가정교사가 내
기침소리를 싫어해. 내가 붓을 놓는 것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까지 문을 여는 것까지 알고
防禦作戰을 써. 그래서 안방으로 다시 오고, 내가
있던 기침소리가 가장교사에게 들리는 방은 도로
식모아이한테 주었지. 그때까지도 의심하지 않았어.
책을 빌려드리겠다고. 나의 모든 프라이드를
재산을 연장을 내드리겠다고.

그렇게 매일 믿어왔는데, 갑자기 변했어.
왜 변했을까. 이게 문제야. 이게 내 고민야.
지금도 빌려줄 수는 있어. 그렇지만 안 빌려줄 수도
있어. 그러나 너무 재촉하지는 마라. 이 문제가 해결
되기까지 기다려 봐. 지금은 안 빌려주기로 하고
있는 시간야. 그래야 시간을 알겠어. 나는 지금 시간
과 싸우고 있는 거야. 시간이 있었어. 안 빌려주
게 됐다. 시간야. 시간을 느꼈기 때문야. 시간이
좋았기 때문야.

시간은 내 목숨야 어제하고는 틀려졌어. 틀려
졌다는 것을 알았어. 틀려져야겠다는 것을 알
았어. 그것을 당신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 그것
이 책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모르지. 그것을
이제부터 당신에게 알리면서 살아야겠어-그게
뭘까? 되면? 안되면? 당신! 당신이 빛난다.
우리들은 빛나지 않는다. 어제도 빛나지 않고,
오늘도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
빌려주지 않겠다.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빌려주지 않겠다. 야한 선언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 내일을 지내고
모레를 지내는 것은 내가 약한 탓이다.
야한 선언은 안 해도 된다. 거짓말을 해도
된다.

언 발려주어도 넉넉하다. 나도 넉넉하고,
당신도 넉넉하다. 이게 세상이다.

<1966. 6. 14>
電話이야기

여보세요. 앨비의 아메리칸 드림예요. 절망예요.
八월달에 실려주세요. 절망에서 나왔어요.
모레면 다 되요. 二백매예요. 特種이죠.
머릿속에 特種이란 자가 보여요. 여편네하고
싸우고 나왔지요. 순수하죠. 앨비말예요.
살롱드라마이지요. 半島호텔이나 朝鮮호텔에서
공연을 하게 되요. 절망의 여운이에요.
미해결이지요. 좋아요. 만족입니다.
新聞會館 三층에서 하는게 낫다구요. 아네요.
거기에는 냉방장치가 없어요. 장소는 二백명가량
수용될지 모르지만요. 절망의 연료가 모자
란다구요. 그래요! 半島호텔같은 데라야
미국놈들한테서 입장료를 받을 수 있지요.
여편네하고는 헤어져도 되지만,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미해결예요.

코리안 드림이라구요. 놀리지 마세요.
아이놈은 자구 있어요. 구원이지요. 나를
방해를 안하니까요. 절망의 물방울이
튄 거지요.
내주신다면 당신 잡지의 八월호에 내주신다면,
특종이니깐요, 극단도 좋고, 당신네도
좋고, 번역하는 사람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을 하는 폭이 되지요.
앨비예요, 앨비예요. 에이 엘 삐 이 이. 네.
네에, 그러실 겁니다. 아뇨. 아아, 그렇군요.

이런 전화를, 번역하는 친구를 옆에 놓고,
생색을 내려고, 하고나서, 그 訃告를
그에게 정하고, 그 무지무지한 騷亂속에서
나의 소란을 하나 더 보탠 것에 만족을
느낀 것은 절망에 지각하고 난 뒤이다.

<1966. 6. 14>
설사의 알리바이

설파제를 먹어도 설사가 막히지 않는다
하룻동안 겨우 막히다가 다시 뒤가 들먹들먹한다
꾸루룩거리는 배에는 푸른 색도 흰 색도 敵이다

배가 모조리 설사를 하는 것은 머리가 설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性도 倫理도 약이
되지 않는 머리가 불을 토한다

여름이 끝난 壁저쪽에 서 있는 낯선 얼굴
가을이 설사를 하려고 약을 먹는다
性과 倫理의 약을 먹는다 꽃을 거두어들인다

文名의 하늘은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나는 지금 規制로 詩를 쓰고 있다 他意의 規制
아슬아슬한 설사다

言語가 죽음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숙제는 오래된다 이 숙제를 노상 방해하는 것이
性의 倫理와 倫理의 倫理다 중요한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履行이다 우리의 行動
이것을 우리의 詩로 옮겨놓으려는 생각은
단념하라 괴로운 설사

괴로운 설사가 끝나거든 입을 다물어라 누가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일절 말하지 말아라
그것이 우리의 증명이다

<1966. 8. 23>
金星라디오

金星라디오 A 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五백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가고
어제는 카시미롱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아내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운다
결단은 이제 여자의 것이다
나를 죽이는 여자의 유희다
아이놈은 라디오를 보더니
왜 새 수련장은 안 사왔느냐고 대들지만

<1966. 9. 15>
도적

도적이 우리집을 노리고 있다
닭장이 무너진 공터에 두른 판장을 뚫고
매일밤 저희집처럼 출입하고 있다
개가 여러번 짖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귀찮아서 나가지를 않았다
쥐보다 좀 큰 도적일 거라 아마
거 정도일 거라

돈에 치를 떠는 여편네도 도적이 들어왔다는
말에는 놀라지 않는다
그놈은 우리집 광에 있는 철사를 노리고 있다
싯가 七백원가량의 새 철사뭉치는 우리집의
양심의 가책이다
우리가 도적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훔친 거나 다름없다 아니 그보다도 더 나쁘다
앞에 二층집이 신축을 하고 담을 두르고
가시철망을 칠 때 우리도 그 철망을 치던
일꾼을 본 일이 있다
그 일꾼이 우리집 마당에다 그놈을 팽개
쳤다 그것을 그놈이 일이 끝나고나서
가져갈 작정이었다 막걸리값으로 하려고
했는지 아침쌀을 팔려고 했는지 아마
그정도일 거라 그것을 그놈이 가져
가기 전에 우리가 발견햇다
이 횡재물이 지금 우리집 뜰아래 광에
들어왔다

나는 도적이 이 철사의 반환을 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집 건넌방의 캐비네트를
노리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광문에 못을 쳐놓았다
그 이튿날 여편네와 식모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철사뭉치는 벌써 지하실에 도피시켜놓은 모양이었다
도적은 간밤에는 사그러진 담장쪽이 아닌
우리집의 의젓한 벽돌기둥의 정문 앞을
새벽녘에 거닐었다고 한다
시험공부를 하느라고 밤을 새는 큰아이놈의
말이다 필시 그럴 거라

그래도 여편네는 담을 고치지 않는다
내가 고치라고 조르니까 더 안 고치는지도 모른다
고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고
돈이 아까울지도 모른다

고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돈이 아까울 거라 그럴 거라
내 추측이 맞을 거라
아니 내가 고치라고 하니까 안 고칠 거라
이 추측이 맞을 거라 이 추측이 맞을 거라
이 추측이 맞을 거라

<1966. 10. 8>
네 얼굴은

네 얼굴은 眞理에 도달했다
어저께 眞理에 도달했다
어저께 歡喜를 잃었기 때문이다

아아 보기싫은 머리에 두툼한 어깨는
虛僞의 상징
꺼져라 二十년 전의 악마야

손에는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가다가다 기침을 하면서
집에는 差押을 해온 빠일오바가 있는데도
배자 위에 얄따란 검정오바를 입고
사흘 전에 술에 취해 흘린 가래침 자국-
아니 빚쟁이와 싸우다 나오는 길에 흘린
침자국

죽어라 理性을 되찾기 전에

네 얼굴은 眞理에 도달했다
어저께 眞理에 도달한 얼굴은
오늘은 술을 잊은 얼굴이다

家具店의 문앞에서 책꽂이를
묶어주는 철쭉꽃빛 루즈를 바른
주인여자의 얼굴-
그 얼굴은 네 얼굴보다는
간음을 상상할 수 있을만큼
그렇게 조금은 생생하지만
죽어라 돈을 받기보다는
죽어라 돈을 받기 전에

<1966. 12. 22>
VOGUE야

VOGUE야 넌 잡지가 아냐
섹스도 아냐 唯物論도 아냐 羨望조차도
아냐-羨望 이란 어지간히 따라갈 가망성이 있는
상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는
羨望 도 아냐

마룻바닥에 낀 비니루 장판에 구공탄을 떨어뜨려
탄 자국, 내 구두에 묻은 흙, 변두리의 진흙,
그런 가슴의 죽음의 표식만을 지켜온,
밑바닥만을 보아온, 빈곤에 마비된 눈에
하늘을 가리켜주는 잡지
VOGUE야

신성을 지키는 시인의 자리 위에 또하나
넓은 자리가 있던 곳을 자식한테
가르쳐주지 않은 죄-그 죄의 앙갚음
VOGUE야

그리고 아들아 나는 아직도 너에게 할 말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안한다
안하기로 했다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모든
아버지보다 돈많은 사람들에게도
아버지 자신에게도

<1967. 2>
사랑의 變奏曲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지나가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넝쿨 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의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瞑想이 아닐 거다

<1967. 2. 15>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詩評의 칭찬까지도 詩集의 序文을 받은 사람까지도
내가 말한 政治意見을 믿지 않는다

봄은 오고 쥐새끼들이 총알만한 구멍의 組織을 만들고
풀이, 이름도 없는 낯익은 풀들이, 풀새끼들이
허물어진 담 밑에서 사과껍질보다도 얇은

시멘트가죽을 뚫고 일어나면 내 집과
나의 精神이 순간적으로 들렸다 놓인다
요는 政治意見이 맞지 않는 나라에서는 못 산다

그러나 쥐구멍을 잠시 거짓말의 구멍이라고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내가 써준 詩集의 序文을
믿지않는 사람의 얼굴의 사마귀나 여드름을-

그사람도 거짓말의 총알의 까맣고 빨간 흔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혼란을 昇華시켜 보자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日本말보다도 빨리 英語를 읽을 수 있게 된,
몇차례의 言語의 移民을 한 내가
우리말을 너무 잘 해서 곤란하게 된 내가

지금 불란서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말하지
못한 한가지 말-政治意見의 우리말이
생각이 안 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온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는 내 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봄이 오고
쥐가 나돌고 풀이 솟는다 소리없이 소리없이

나는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의 餘韻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불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自由가 온다 해도

<1967. 3. 20>
꽃잎(一)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은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만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에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1967. 5. 2>
꽃잎(二)

꽃을 주세요 우리의 苦惱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時間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거룩한 偶然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1967. 5. 7>
꽃잎(三)

순자야 너는 꽃과 더러워져가는 花園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하고

宇宙의 완성을 건 한 字의 생명의
歸趨를 지연시키고
소녀가 무엇인지를
소녀는 나이를 초월한 것임을
너는 어린애가 없음을
너는 어른도 아님을
꽃도 장미도 어제 떨어진 꽃잎도
아니고
떨어져 물 위에서 썩은 꽃잎이라도 좋고
썩는 빛이 황금빛에 닮은 것이 순자야
너때문이고
너는 내 웃음을 받지 않고
어린 너는 나의 全貌를 알고 있는 듯
야아 순자야 깜찍하고나
너 혼자서 깜찍하고나

네가 물리친 썩은 문명의 두께
멀고도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낭비
그 낭비에 대항한다고 소모한
그 몇갑절의 공허한 投資
大韓民國의 全財産인 나의 온 정신을
너는 비웃는다

너는 열네살 우리 집에 고용을 살러 온 지
三일이 되는지 五일이 되는지 그러나 너와 내가
접한 시간은 단 몇분이 안되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나의 방대한 낭비와 넌센스와
허위를
나의 못 보는 눈을 나의 둔갑한 영혼을
나의 애인 없는 더러운 고독을
나의 대대로 물려받은 음탕한 전통을

꽃과 더워져가는 화원의
꽃과 더러워져가는 花園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 빠른 변화에
놀라 오늘도 찾아오지 않는 벌과 나비의
소식을 더 완성하기까지

캄캄한 소식의 실날같은 완성
실날같은 여름날이여
너무 간단해서 어처구니없이 웃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간단한 진리에 웃는
너무 진리가 어처구니없이 간단해서 웃는
실잘같은 여름바람의 아우성이여
실날같은 여름풀의 아우성이여
너무 쉬운 여름풀의 아우성이여

<1967. 5. 30>
여름밤

地上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소음도 번쩍인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여름밤은
이래서 더욱 좋다

소음에 시달린 마당 한구석에
철늦게 핀 여름장미의 흰구름
소나기가 지나고 바람이 불듯
하더니 또 안 불고
소음은 더욱 번성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다 남은 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던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기 전날
우리의 소음은 언제나 二층

땅의 二층이 하늘인 것처럼
이렇게 人情의 하늘이 가까워진
일이 없다 남을 불쌍히 생각함은
나를 불쌍히 생각함이라
나와 또 나의 아들까지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 남은 날
땅에만 소음이 있는줄만 알았더니
하늘에도 천둥이,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없는 더 큰 천둥이 있는줄
알았다 그것이 먼저 있는줄 알았다

地上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천둥도 번쩍인다
여름밤은 깊을수록
이래서 좋다

<1967. 7. 27>
美濃印札紙

우리 동네엔 美大使館에서 쓰는 타이프용지가 없다우
편지를 쓰려고 그걸 사오라니까 밀용인찰지를 사왔더라우
(밀용인찰지인지 밀양인찰지인지 미룡인찰지인지
사전을 찾아보아도 없드라우)
편지지뿐만 아니라 봉투도 마찬가지인지 밀용지 넉장에
봉투 도장을 四원에 사가지고 왔으니 알지 않겠소
이것이 편지를 쓰다 만 내력이오-꽉 막히는구료

꽉 막히는 이것이 나의 생활의 자연의 시초요
바다와 別莊의 용솟음치는 파도와 죠니 워커와
죠오크와 美人과 페티 킴과 애교와 혼담과
남자의 抱負의 미련에 대한
편지는 못 쓰겠소 妹夫돌아오는 길에
車窓에서 내다본 中央線 의 複線工事에 동원된
갈대보다도 더 약한 소년들과 부녀자들의
노동의 慘景에 대한 편지도 못 쓰겠소 妹夫

이 인찰지와 이 봉투지로는 편지는 못 쓰겠소
더위도 가시고 오늘은 하루종일 일도
안하고 있지만 밀용인찰지의 나의 생활을
당신한테 보일 수는 없소 이제는
편지를 안해도 한 거나 다름없고 나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소 妹夫의 태산같은
친절과 친절의 압력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당신이 사준 북어와 오징어와 二等車票와
鏡浦臺의 선물과 도리스 위스키와 라스프베리 쨤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당신의 모든 행복과 우리들의 바닷가의
행복의 모든 추억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살아있던 시간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나와 나의 아내와 우리집의 온 家屋의 무게를 다 합해서
밀양에서 온 食母의 소박과 원한까지를 다 합해서
미안하지 않소-만 다만 食母를 부르는 소리가
좀 단호해졌을 뿐이요 미안할 정도로 좀-

<1967. 8. 15>
世界一周

그대의 길은 잘못된 길이다
-世界一周를 하고 온 길은 잘못된 길이다
-世界一周를 떠났다는 것이 잘못된 길이다
너무나 먼 잘못된 길이다
너무나 많은 잘못된 나라다

그 罪過를 그 방대한 二十一개국의 地圖를
그대는 선물로 나에게 펼쳐보이지만
그대가 준 손수건의 暗示처럼
不吉한 눈물을 흘리게 했지만
그 분풀이로 어리석은 나는 술을 마시고
창문을 부수고 여편네를 때리고
地獄의 詩까지 썼지만

지금 나는 二十一개국의 정수리에
사랑의 깃발을 꽂는다
당신의 눈에도 보이도록 꽂는다
그대가 봉변을 당한 食人種의 나라에도
그대가 납치를 당할 뻔한 共産國家에도
보이도록

地獄의 詩를 쓰고 난 뒤에
그대의 출발이 잘못된 출발이었다고
알려주려고
모든 世界一周가 잘못된 출발이라고
알려주려고-

<1967. 9. 26>
라디오界

6이 KBS 제二방송
7이 동 제一방송
그 사이에 시시한 周波가 있고
8의 조금전에 동아방송이 있고
8점 5 가 KY인가보다
그리고 10 점 5 는 몸서리치이는 그것

이 몇 개의 빤떼온의 기둥 사이에
딩굴고 있는 廢墟의 돌조각들조다도
더 값없게 발길에 차이는 隣國의 음성
-물론 낭랑한 일본말들이다
이것을 요즘은 안 듣는다
시시한 라디오소리라 더 시시한 것이
여기서는 판을 치니까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
더 시시한 우리네 방송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지금같이 HIFI가 나오지 않았을 때
비참한 일들이 라디오소리보다도 더 發狂을 쳤을 때
그때는 인국방송이 들리지 않아서
그들의 달콤한 억양이 금덩어리같았다
그 금덩어리같던 소리를 지금은 안 듣는다
참 이상하다

이 이상한 일을 놓고 나는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한참이나 생각해본다
지금은 너무나 또렷한 立體音을 통해서
들어오는 以北방송이 不穩방송이
아니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 일본말 방송을 안 듣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미련도 없이
희한도 없이 안 듣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도 내가 反共産主義者가
아니되기 위해서는 그날까지 엉성한
粗惡한 방송들이 어떻게 되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다
먼저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극도의 낙천주의를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서 해본다
-아아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른 탓이다

<1967. 12. 5>
美人-Y여사에게

美人을 보고 좋다고들 하지만
美人은 자기 얼굴이 싫을 거야
그렇지 않고야 미인일까

美人이면 미인일수록 그럴것이니
미인과 앉은 방에선 무심코
따놓은 방문이나 창문이
담배연기만 내보내려는 것은
아니렷다

<1967. 12>
먼지

네 머리는 네 팔은 네 현재는
먼지에 싸여있다 구름에 싸여있고
그늘에 싸여있고 山에 싸여있고
구멍에 싸여있고

돌에 쇠에 구리에 넝마에 삭아
삭은 그늘에 또 삭아 부스러져
거미줄이 쳐지고 忘却이 들어앉고
들어왔다 튀어나오고

불이 튕기고 별이 튕기고 영원의
행동이 튕기고 자고 깨고
죽고 하지만 모두가 坑안에서
塹壕안에서 일어나는 일

사람의 얼굴도 무섭지 않고
그의 목소리도 방해가 안되고
어제의; 행동과 내일의 복수가 相殺되고
塹壕의 入口의 ㄱ字가 문제되고

내일의 행동이 먼지를 쓰고 있다
위태로운 일이라고 落盤의 신호를
올릴 수도 없고 찻잔에 부딪히는
차숟가락만한 쇳소리도 안 들리고

墮眠의 蓄積으로 우리 몸은 자라고
그래도 行動이 마지막 意味를 갖고
네가 씹는 음식에 내가 憎惡하지 않음이
내가 겨우 살아있는 表示라

하나의 행동이 열의 행동을 부르고
미리 막을 줄 알고 미리 막아져있고
미리 칠 줄 알고 미리 쳐들어가있고
遭遇의 마지막 倫理를 넘어서

어제와 오늘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고 沈默과 發惡이 오늘과
내일처럼 달라지고 달라지지 않는
이 坑안의 잉크 수건의 칼자죽

憎惡가 가고 이슬이 번쩍이고
音樂이 오고 變化의 시작이 오고
變化의 끝이 가고 땅위를 걷고 있는
발자국소리가 가슴을 펴고 웃고

戱畵의 啓示가 돈이 되고
돈이 되고 사랑이 되고 坑의 斷層의 길이가
얇아지고 돈이 돈이 되고 돈이
길어지고 짧아지고

돈의 꿈이 길어지고 짧아지고 墮落의
길이도 표준이 없어지고 먼지가 다시 생기고
坑이 생기고 그늘이 생기고 돌이 쇠가
구리가 먼지가 생기고

죽은 행동이 계속된다 너와 내가 계속되고
전화가 울리고 놀라고 놀래고
끝이 없어지고 끝이 생기고 겨우
忘却을 실현한 나를 발견한다

<1967. 12. 15>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槪觀하고
잇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憐憫의 순간이다 恍惚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憐憫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을 쏟고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1968. 1. 19>
元曉大師-텔레비를 보면서

聖俗이 같다는 元曉大師가
텔레비에 텔레비에 들어오고 말았다
배우이름은 모르지만 大師는
大師보다도 배우에 가까왔다

그 배우는 食母까지도 싫어하고
신이나서 보는 것은 나 하나뿐이고
元曉大師가 나오는 날이면
익살맞은 어린놈은 活劇이 되나 하고

조바심을 하고 食母아가씨나 가게
아가씨는 연애가 되나 하고
애타하고 元曉의 염불소리까지도
잊고- 罪를 짓고 싶다

돌부리를 차듯 서투른 元曉로
분장한 놈이 돌부리를 차고 풀을
뽑듯 罪를 짓고 싶어 罪를
짓고 얼굴을 붉히고

罪를 짓고 얼굴을 붉히고-
聖俗이 같다는 元曉大師가
텔레비에 나온 것을 뉘우치지 않고
春園 대신의 原作者가 된다

원효대사의 敏活性 바늘끝에
묻은 罪와 먼지 그리고 模倣
술에 취해서 쓰는 詩여

텔레비 속의 텔레비에 취한
아아 元曉여 이제 그대는 낡지
않았다 他動的으로 自動的으로
낡지 않았고

元曉 대신 元曉 대신 마이크로가
간다 <제니의 꿈>의 허깨비가
간다 연기가 가고 연기가 나타나고
魔術의 元曉가 이리 번쩍

저리 번쩍 <제니>와 大師가
왔다갔다 앞뒤로 좌우로
왔다갔다 웃고 울고 왔다갔다
파우스트처럼 모든 象徵이

象徵이 된다 聖俗이 같다는 元曉
大師가 이런 機械의 영광을 누릴
줄이야 <제니>의 덕택을 입을
줄이야 <제니>를 <제니>를 사랑할 줄이야

긴 것을 긴 것을 사랑할 줄이야
긴 것 중에 숨어있는 것을 사랑할 줄이야
제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긴 것 가운데
있을 줄이야

그것을 찾아보지 않을 줄이야 찾아보지
않아도 있을 줄이야 긴 것 중에는
있을 줄이야 어련히 어련히 있을
줄이야 나도 모르게 있을 줄이야

<1968. 3. 1>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
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놓은
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
美製 磁器스탠드가 울린다

마루에 가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옆에 놓은
찬장이 울린다 유리문이 울리고 그 속에
넣어둔 노리다께 반상세트와 글라스가
울린다 이따금씩 강건너의 대포소리가

날 때도 울리지만 싱겁게 걸어갈 때
울리고 돌아서 걸어갈 때 울리고
의자와 의자 사이로 비집고 갈 때
울리고 코 풀 수건을 찾으러 갈 때

三八線을 돌아오듯 테이블을 돌아갈 때
걸리고 울리고 일어나도 걸리고
앉아도 걸리고 항상 일어서야 하고 항상
앉아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詩를 쓰다 말고 코를 풀다 말고
테이블 밑에 신경이 가고 탱크가 지나가는
沿道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가만히 있어도 울린다

美製 陶磁器 스탠드가 울린다
방정맞게 울리고 돌아오라 울리고
돌아가라 울리고 닿는다고 울리고
안 닿는다고 울리고

먼지를 꺼내는데도 책을 꺼내는 게 아니라
먼지를 꺼내는데도 유리문을 열고
육중한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고
울려지고 돌고 돌려지고

닿고 닿아지고 걸리고 걸려지고
모서리뿐인 形式뿐인 格式뿐인
官廳을 우리집은 닮아가고 있다
鐵條網을 우리집은 닮아가고 있다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소리만
남은 집이 되고 있다 모서리만 남은
돌음길만 남은 難澁한 집으로
기꺼이 기꺼이 변해가고 있다

<1968. 4. 23>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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