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여국현 첫 시집 <새벽에 깨어> 출간!

그림자세상 2019. 8. 24. 21:12

여국현 시인의 첫 시집 『새벽에 깨어』(푸른사상 시선 106)가 출간되었다. 평범한 일상이며 힘든 삶은 물론 소외된 사람들의 그늘진 현실을 기꺼이 응시하며 껴안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면 깊숙이 길어 올린 섬세한 서정은 밝아오는 새벽빛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준다. 2019년 8월 19일 간행.

■ 시인 소개
1965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충북, 전남, 경북 포항으로 옮겨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포스코에서 일했다. 중앙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8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크리스마스 캐럴』 등의 소설을 번역했고, 『하이퍼텍스트 2.0』 외 다수의 이론서를 공역했다. 상지대 겸임교수를 거쳐 중앙대, 방송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고 번역공동체 <번역공방>과 영문학 독서모임인 <리테컬트>를 이끌고 있다.

■ 시인의 말
먼 길을 돌아오며 잊힌 줄 알았던 내 그림자들.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그래야 한다는 크고 곧았던 믿음은 한때의 찬란하던 빛을 잃었지만, 혜화동 지하 극장에서 바위 같은 손을 내어주면서 삶이 시가 아니면 시를 쓸 생각은 하지 말라시던 작고한 시인의 말은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한 크고 육중한 바위다.
내 삶이 시가 된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여전하고 뭐 그리 드러낼 만한 삶도 아니다. 그러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같이 툭툭 차이는 그런 무수한 삶 없이 세상 있을까. 그런 나와 내 이웃들의 삶에서 나오는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바란다.

■ 추천의 글
여국현의 이번 시집은 첫 시집임을 말하려는 듯‘ 새벽’과‘ 길’에 관한 시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 익숙한 시어들을 접하는 순간 밀려온 당혹감이 쉬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시대 우리의 삶을 은유하던 시어들이었기에 회한이 밀려든 탓일까? 아니면 지금 여기 있어야 할 것들의 부재에 따른 좌절감 같은 것일까? 현대의 삶이 전적으로 도시라는 밀폐된 공간에 놓여 있고, 바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연마저 도시의 부속 공간으로 인식될 뿐인 현실에서 밖을 향한 길과 다른 시간을 여는 새벽이라는 단어가 그만큼 아프게 다가온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시들은 삶의 긴장과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껴안고 삶의 비루함마저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미 만들어진 안전한 길로 내려설 수도 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어둠 속에서 스스로 길을 내겠다는 결기가 시의 전편에 깔려 있다. “길이 연이어 길을 내어주던 시절이 지났더라도” (「걷다, 길」) 가는 길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하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의 시는 우리가 길과 새벽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아픈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 백무산(시인)

만나야 할 인연은 생의 어딘가에서 기어코 다시 만나게 되는가! 여국현과 내가 그러했다. 그가 바다의 수런거림을 날마다 식사처럼 받아먹으며 성장할 때 내가 이불 보따리 하나로 낯선 공단을 찾아들던 때부터였으리라! 툭툭 차이는 무수한 삶들의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갈망하며 그가 돌아왔다. 새벽 어스름 등지고 돌아오던 고깃배 위에서 흔들리던 삶을 경건하고 두렵게 끌어안은 청년이 잠든 아이의 발가락만 만지고 있어도 눈물 나는 어진 아버지가 되어 돌아왔다. 자신이 병상에 누웠던 십대 때“ 병상 옆에 술 취해 쓰러져 자던 아버지” 「(길고양이, 울다」)의 애정을 기억해내고 그 아버지를 병실에 두고 돌아 나와야 하는 중년의 아들이 되어 돌아왔다.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며 겪는 서민들의 애환을 바라보는 “길 위의 잠” (「길 위의 잠」)에서는 마침내 눈에 비친 평범한 군상들을 향한 따스한 애정을 품은 길 위의 시인이 되었으니! ― 정원도(시인)

■ 작품 세계
 『새벽에 깨어』는 네 가지 경향이 공존하는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 일상의 긴장 바깥에서 삶의 의미를 넓게 성찰하고 포용해나가는 흐름이 확인된다. 그리고 ㉡ 시인의 시선에 포착된 길 위의 비루한 현실이 반영된 시편들도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 별리의 아픔을 토로하는 시편들도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 시인의 내력 및 처지가 제재로 활용된 경우도 하나의 범주를 구성한다. (중략)
나(시인)는 오늘도 어두운 도시의 거리를 서성거리며 비루한 현실과 맞대면한다. 작가는 “이루지 못한 꿈의 안타까움”을 안은 채 “배고픔과 아픔 속에” 죽음에 이르고(「작가의 죽음」), 오랜 시간 성실하게 일상을 영위해가던 소상인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통닭집 사내」 「1984년, 빵가게」)는 사실을 확인한다. “수원역 고가 계단/겨울 찬바람 아래/한 사내/길게 누워” 있으며(「그 사내」), 좌판 벌인 사내는 장사는 애당초 포기해버린 듯 “고개 숙인 채 졸고 있거나/입 벌린 채 잠들어” 있을 따름이다(「길 위의 잠」). 나(시인)가 어두운 도시의 거리 위를 끊임없이 걸으면서 재현해놓은 풍경은 그러하다.
그리고 「걷다, 길」로부터 이어진 또 하나의 방향이 ㉠의 세계이다. “길은 늘/앞으로만 나 있다 생각하며/걸어야 했던 시간들을”(1연) 뒤로 하고 “길을 잃고/걸음을” 멈춘 「자하르」의 시인을 보라. “침묵하라/침묵하라/더 깊은 소리를 위하여”(5연)라는 자세는 분명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로 나아가는 양상이다. 다시 말해 「걷다, 길」에서 「자하르」를 거쳐 나(시인)는 ㉠ 「화살」 「주목과 바람」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시집 『새벽에 깨어』의 한 축은 이처럼 ㉣ 모순에 찬 세계에 대해 대항하고자 했던 나(시인)가 ㉠과 ㉡의 양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새벽에 깨어』 이후 여국현의 경로는 ㉠과 ㉡의 길항을 어떻게 봉합하며 나아가는가에 따라 결정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여국현의 두 번째 시집을 대상으로 삼아 새롭게 논의하면서 확인해 나갈 일이다.
―홍기돈(문학비평가, 가톨릭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새벽에 깨어

           여국현

비바람이 치는 새벽
잠든 아이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나란히 모로 누워 다리까지 같은 모양으로 올리고
두 아이 함께 잠들어 있다
얼마 만인가
나는 또 얼마 만인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모습으로 새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무엇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던
열아홉 절망의 봄
바람에 맡기듯 나를 맡겼던 어두운 바다
집어등 환하게 밝히며 나서서
새벽 어스름을 등지고 조용히 돌아오던 고깃배
위에서 흔들리던 삶은
경건하고 두렵고 눈물겨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그 바다가 전하던 심연의 침묵이
웅웅거리며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에 잠겨 유영하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타고
그만 아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늦겨울 비바람에
마음이 흔들리는 새벽
가만히 열어본 아이들의 방
두 아이는 곤한 잠 속에 빠져 있고
나는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다

경건하고 따스하며 눈물겹고 두렵다
잠든 아이의 맨발을 통해 전해오는
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