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지났다.
보름 전 오늘, 아침 흑석 강의를 마치고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소식을 들었을 때 대부분 구조된, 되었다는 말에 안심하며 지났던 오후, 그리고 저녁, 강의를 마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내용들을 지켜보며 들기 시작하는 불안감과 안타까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대로 내 불안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해 무엇할까. 그 뒤로 하루하루, 다른 모든 이들처럼 냇게도 발 밑이 훈들리는 것 같은 고통스런 날들이, 하루하루의 어쩔 수 없는 삶이 지나갔다. 그렇게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그날, 그날이 바로 태현이 기일이었다....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던 눈물의 까닭 또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속에서 밀려오는 겹겹의 아픔이 그리 익숙했던 까닭.
새벽녁 늦게 한 분의 인터뷰를 보고 깨어있다 가까스로 깜빡 잠든 새벽, 그날 이후 두 번째 이 잠자리를 꿈에서 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장하던 그날 태현이 무덤 옆 내 앞에서 30분도 넘게 저렇게 앉았다 갔다 하며 나와 눈 마주쳤던 저 잠자리. 내 사는 일에 힘겹다고 가끔 그를 잊고 지냈다. 자주 그를 까맣게 잊는 시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미안하고 여전히 나는 슬프고 여전히 나는 그가 그립지만, 나는 그렇게 내 삶이라는 핑계 속에서 그를 잊기도 했다.
그리움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슬픔의 짐이 조금 익숙해졌다, 미안함과 아픔의 죄책감이 조금 펴졌다,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여전한 그리움이, 여전한 슬픔, 여일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내 마음속에 앉아 있다. 스님은 보내라 한다. 단호하게 보내라 한다. 그 말에 끄덕이다가도 도리질도 친다. 그게 내 마음의 힘으로 되지 못할 일 아니지만 또 내 마음의 힘 만으로 되기만 할 일도 아니라는 거 아프게 곱씹는 날들이다.
사람들이 아프다 한다. 다 같은 마음으로 이프고 슬프다 한다. 저 심장같은 아이들을 바다에 묻은 사람들의 그 아픔을 함께 슬퍼하며 많은 이들이 함께 운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의 슬픔과 아픔이, 공감하고 또 함께 침묵한다. 자식을 눈잎에서 보낸 그분들의 그 아픔 발치에도 못 가겠지만, 태현아, 너를 다시 생각하는 그 아픔과 슬픔, 그 마음으로 그분들의 슬픔을 나눈다.
태현아, 나 모르는 일이나 너 혼 있어 보거든, 할 수 있는 일이거든 저 바닷속 슬픈 영혼들 네 동생처럼, 네 조카처럼 안아주거라. 보듬어주거라. 나 여전히 이 마음에 너 보듬어 안고 그리워 하듯....그래주거라....네 목소리, 몹시도 그리운, 아픈 날들을 보내며, 형아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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