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미드나잇 인 파리

그림자세상 2012. 8. 25. 17:40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타나 줄 마차가 있으면 좋겠어, 신데렐라를 현실로 데려다 주고 돌아와 우리를 꿈속으로 데려다줄 마차. 우리가 꿈꾸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그 마차에는 내 마음속의 별 같은 존재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한 손엔 샴페인을 다른 한 손엔 포도주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지.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랄드가 책 속에서 나와 걸어다니고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비판하는 거투르드 스타인에게 얼굴을 찡그리지. 살바도르 달리는 혀에 감기는 프랑스 언어에 매혹된 눈빛을 날리며 몽환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몽상 속의 코뿔소를 그리고 우수어린 영화감독 루이 브뉴엘은 자신의 영화의 결말을 궁금해하고 있지요. 파리에 발을 디딘 상실의 작가들 모두의 연인이었던 에드리아나 같은 여인과의 사랑도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그 마차가 데려다준 세계에서 나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기도 하고, 파카소의 연인이자 내가 사랑하는 에드리아나가 헤밍웨이와 킬리만자로로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겠지만,  스콧 피츠제럴다의 아내 젤다의 죽음을 막아주기도 하고, 브뉴엘에게 40년 뒤에나 발견하게 될 자신의 영화의 줄거리를 암시해주기도 하지. 돌아온 에드리아나와 꿈속의 여행을 떠나 로트랙이 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한 뮬랑루즈에서 고갱과 드가를 만나기도 하지.

 

하지만 꿈은 영원할 수 없는 것. 문득 내 꿈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게 되지. 놀랍게도 현실이 아니라 바로 그 꿈속에서. 내게는 황금시대인 에드리아나의 파리를 그녀는 견딜 수 없어하며 그녀 자신만의 황금시대를 꿈꾸지, 로트랙과 고갱과 드가의 파리를. 하지만 고갱과 드가 그들에게 황금시대는 그들의 파리가 아니라 르네상스라지. 이윽고 나는 알게 되지. 잠시 잊고 있었지만 또렷하게, 아프지만 또렷하게 알게 되지. 꿈속에서 만나는 황금시대는 신기루일 뿐이라는 사실을. 에드리아나는 그녀의 꿈속의 황금시대로 사라지고 나는 현실로 돌아오지. 나와 에드리아나가 함께 타고 있던 마차는 이제 각자의 길로 우리를 데려다 놓지. 그녀는 꿈의 세계로, 나는 현실의 세계로.

 

다행히 마차에서 내려 꿈에서 깨어난 내가 바라보는 현실이 달리의 그림처럼 오롯하게 일그러진 현실은 아니야. 하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의 그림자를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보아버린 내게는 내가 아닌 현실을 벗을 수 있을 정도의 용기만큼은, 그 정도의 솔직함만큼은 생겨났지. 시작은 그런 것이지. 꿈에서 깨어나 나의 현실로 돌아온 그곳이 자정의 파리라면 좋겠지. 비가 오면 또 좋겠고,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싫어하지는 않는 사람 하나쯤 옆에 서서 웃어주면 더 좋겠지. 그런 사람과 고갱의 그림 속 같은 자정의 파리, 밤거리를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 현실이라면, 꿈은 다시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겠지, 마차를 타지 않아도 꾸는 현실의 꿈이.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거리 테라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노천 카페에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하늘 아래서 비를 맞으면 걷는 초현실적인 꿈이 꿈이 아닌 날이 하루쯤은 있어도 좋겠지.

 

 

잔소리.

우디 알렌은 조금 덜 수다스러워졌다. 시간이 간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좋은 일이다.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를 비롯한 '상실의 시대'의 친숙한 이름들과 설명이 필요없이 그 시대의 느낌을 전해주는 음악과 포스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그림같은 영상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장면장면들에서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소설 속 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오버렙 되는 것은 보너스.

 

무심코 들다가 놓친 비디오 리모컨을 주워들다 까만 텔레비젼 화면에 비친 소파 위의 자신의 모습에 헛한 웃음이 날 때, 엄마의 전화를 끊고 잠시 세상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며 이유없이 무기력해지고 짜증이 날 때, 지하철 환승역을 향하는 걸음에 힘이 빠질 때, 종일 조용한 전화기가 반갑기보다 무서워질 때, 그저 전화해서 커피 한 잔 하자 말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 때, 하루 종일 애써 써내려 갔던 글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을 때, 기다리던 곳에서 연락은 없는데 확인 전화를 하려 전화기를 들었다 내려 놓으며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 갑자기 지난 시간이 다 사라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앞으로 올 시간이 어떤 시간들일지 짐작할 수 없을 때, 아무리 디뎌도 발이 땅에 닫지 않는 것 같은 헛헛한 꿈을 꾸다 깨었을 때,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런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음. 물론 영화가 끝났다고 변하는 것은 없음. 혹시 모름, 세상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변해 있을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