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될 때,
대학로에서 공연중인 연극 한 편, 추천합니다~
극단 [성난발명가들]의 창단 공연작품인
<안진사가 죽었다>(김시번 연출, 혜화로터리 아름다운극장)입니다.
저는 지난 금요일 [리테컬트] 회원들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작품을 쓰고 연출한 김시번 씨와 배우인 이채상 씨가 [리테컬트]의회원으로 함께 공부하는 팀원이라
연극이 끝나고 연출가와 배우들과 [리테컬트] 회원들과 함께 거한 뒷풀이까지 하고 왔습니다.
허니 이 극에 대한 제 인상은 어떤 경우건 대단히 편파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편파적인 입장을 다 고려하더라도, 혹은 배제하더라도 이 극에는,
유쾌함과 함께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긴장감과 함께 하는 성찰이 있습니다!
사실 두 시간 가까이 되는 연극이라면 어느 정도 지루함이 따라 올 위험이 있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의 작품보다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의 작품을 보러 갈 경우, 보러 가기 전 관심과 기대, 응원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혹은 걱정을 하게도 되지요.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런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정확히 말하면 작품이 시작되고 한 5분쯤 지나고 나서부터 그런 걱정은 깨끗이 잊고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즐거운 긴장과 몰입 속에 보냈습니다.
먼저, 첫 작품을 준비한 배우들의 열정이 보였습니다. 여러 역할들을 쉼 없이 오가며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하는 배우들에게서 그동안 그들이 준비하며 쏟아낸 땀과 열정의 힘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확신에 찬 눈빛과 몸짓으로 자신의 역할 속에서 제대로 빛나는 연기자를 볼 때 관객은 행복합니다. 배우들은 소극장의 무대가 그렇게 넓을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때로의 오버도, 때로의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웃음을 불러올 만큼 과하지 않았습니다. 다소 씹히는 대사까지도 충분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만큼 배우들의 열정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꼭 소극장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살인사건을 풀어간다는 이야기, 사건 자체가 주는 흥미도 극의 몰입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최근 트랜디화된 퓨전 사극의 소재로 자주 쓰인 살인사건이라는 주제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 즉 플롯 전개의 흥미가 뒷받침되었다는 것이 이 극을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안진사의 죽음>을 풀어가면서 각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의 얼개는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으면서 관객들을 몰입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과정에서 적절한 해학과 웃음 속에 문득문득 비치는 인물들의 마음속 상흔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가 단순히 살인사건의 해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연출자의 의도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의 마음속 상흔은 단순히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속 상처를 드러내면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아픔과 닿아 있고, 이야기속 과거는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입니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극 중간중간의 에피소드들은 극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때로는 마당극 장면을, 때로는 굿판을,때로는 극중극 형식을 곳곳에 배치한, 관객에 대한 연출가의 배려도 느껴집니다. 이런 시도들은 자칫 산만해질 위험도 있고, 또 어떤 장면은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관객의 흥미와 몰입을 유발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에 담긴 연출자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듯한 극의 마지막 반전은, 사실 예민한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가지 생각해야 할 여지를 관객에게 안겨줍니다. 극의 플롯과 관련하여 안진사 살해 사건의 재조사를 지시한 정조의 의도와 어사 강헌의 사건 해결이 일치하는가, 극의 메시지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극 속에서 어사 강헌이 해결한 사건의 결말에 관객들이 무리없이 동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극을 보고난 뒤 아마 관객들이 연출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부분으로 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억춘(실제로는 아니지만)의 죽음을 가져온 어사 강헌과의 마지막 대결 부분, 오애기와 강헌의 관계, 부친에 대한 강헌의 회상 등이 조금 더 극 속에 녹아들었으면 극의 꼼꼼함을 더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와 더불어 극의 마지막 결말을 두고 연극을 본 관객들은 나름대로의 논의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는 중간중간 극 속에서 낯설지 않게 데자뷰처럼 그려지는 대사와 장면들을 통해 함께 작품을 읽던 공간에서 보이던 시번씨와 채상이의 어떤 모습이 또렷하게 그려지는 개인적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이 연극에 대해서 누가 묻는다면 지극히 편파적인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적인 점들을 다 배제하고 다시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누가 이 연극에 대해 묻는다면, 그때도 제 답은 같을 것입니다,
"꼭 보시기를!"
극단 [성난배우들]의 첫 작품, <안진사가 죽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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