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음력 1월 2일

그림자세상 2012. 1. 24. 22:56

내가 가던 도서관 자리는 오늘까지 열지 않았다. 몰랐다. 불 꺼지고 사람 없는 3층 화장실에서 중학생쯤 보이는 한 녀석이 나오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불꺼진 문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다 화장실 앞을 지날 때 담배 냄새가 훅 날라들었다. 녀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캐비넷에 커피를 넣어 두러 올라간 그 층의 복도에는 낯익은 사람이 서성였다. 교보문고에 갔다. 그냥 들어오려던 길, 왕십리에서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실수도 아니었지만 의도도 아니었다. 그 중간 쯤 어디. 밖에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다 그 안에서 있었다. 빼곡한 사람들 사이에서 책을 사려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하고 한 권만 들고 온다. 오르한 파묵, [고요한 집](민음사). 돌아오는 집 앞, 이화서점. 나머지 책들을 주문하고 더글라스 케네디, [위험한 관계]를 들고 나온다. 들었다 놨다 몇 번을 하던 책이었다. 따라 읽기로 한 마음을 믿어 본다.  

 

들어와 내내 [고요한 집](1권)책을 읽었다. 아흔 90년의 시간. 파티마의 그 긴 시간은 내가 가늠하기 어렵고 파묵의 인물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들이 안팎으로 홀로 혹은 서로 내는 소리들은 가을 저녁 어스름의 안개 처럼 천천히 속속들이 어느새 내 안팎을 다 채우고 있다. 파묵의 인물들에게서는 가랑비, 안개 혹은 습기 머금은 눈 같은 축축함이 묻어난다. 그동안 [냉정과 열정 사이]의 사운드 트랙이 3 번, Diana Krall의 시디가 네 번 돌아갔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파묵보다 밝고, 크롤의 목소리는 파묵의 색과 닮아 있다. 390원 KANU는 계피향과 어우러져 제 몸값 스무 배 이상의 향을 냈다. 밖은 오래 전에 캄캄하다. 음력 1월 2일의 저녁이 가고 있다.     

'사진 > daily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미 졸업식^^*~  (0) 2012.04.03
은지 졸업식^^*~  (0) 2012.04.02
기쁘다...!!  (0) 2012.01.03
2011년 12월 31일  (0) 2012.01.01
기억할 만한 저녁  (0) 201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