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dailylife

2011년 12월 31일

그림자세상 2012. 1. 1. 01:22

방금 다솜이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 저편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배경으로 깔려왔다. 지금 다솜이는 홍대 앞에 있다. 웃음기와 즐거움과 흥분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로 "재밌다"고 "사람들 정말 많다"고 아빠, 걱정 마!" 한다. "걱정 안 해! 재미있게 놀다 와!"

오후에 다솜이와 종로의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을 하고 건물에 들러 강의실으로 보고 왔다. 가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아빠, 나 할 말 있는데..." 했다. "뭔데?" "사람들 많은데 이야기로 하기는 그렇고, 카톡으로 하자." "그래~"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 다솜이와 서서 카톡을 했다. 핵심은 오늘 "청소년 끝인 날인데 친구와 홍대 클럽에 가면 안 되겠냐"는 것. 안 될 일이 어디있겠냐고 허락하고 다만 걱정 되는 일들 이야기했다. 그럴줄 알았다고, 고맙다 한다. 믿으니까!.

 

평생 한 번뿐인 시간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매 순간이 그 평생 한 번의 시간, "moment" 아닌가. 나라도 왜 안 그러고 싶을까. 그럴 수 있는 마음이 소중하고 그럴 수 있는 순간이 소중한 것일 터다. 하여 다솜이는 지금 홍대 앞에 친구와 함께 있다. 다솜이의 이 나이 때, 바로 그 시간, 나는 가장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내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시간이었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 나는 그럴 수 없었고 시간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묶어두고 가고 있었다. 묶인 시간 속에서도 많은 기억들을 쌓은 시간이었지만 문득문득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아득함은 내 발목에 둔탁한 족쇄처럼 매달려 심연으로 나를 끌어내렸다. 지금 다솜이에겐 나의 그때와는 다른 시간이 있고, 나는 다솜이가 그 시간을 온전하게 자기의 것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은지는 제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다솜이와 학원에 나가기 전에 은지 기타 학원에 등록을 했다. 뽀대 나게 묵혀두던(^^;;) 은지의 기타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집 앞에 제법 큰 실용음악학원이 얼마 전 생겨서 멀리 가야하는 부담때문에 미뤄두었던 일을 해 넘기지 않게 되어서 또한 다행이다. 한해의 마지막 날, 후회하지 않을 일을 했다. 그리고, 새해 새벽이다.

 

다시 다솜의 전화. 1시 37분. 아직 기다리고 있단다, 긴 줄 속에 서서.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새벽에 거리에 나온 다솜이에게 새해 첫날의 눈이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슬픔이 모여 이루어지는 게 인생"(564)

 

"우리가 순간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 순간은 그저 '하나의 순간'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인생은 단지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 생각해. 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인 순간들의 합."(568)

 

"그동안 살면서 겪은 일들이 모여 존재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모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 간절히 바랐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전혀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가지게 된 것, 찾아내고 잃어버린 것. 그 모두를." (573)

 

"세상에서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먼저 찾으라는 뜻이야. 너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지 마." (586)

 

 

"어쨌든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590)

 

"사랑은 늘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계속 줄어드는 인생의 시간. 그 시간의 흐름을 줄이는 사랑이 없다면, 인생이라는 머나먼 여정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삶을 견딜 수 있을까?" (591)  

 

잠이 오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책을 읽으니 잠이 오지 않는 것인지, 나도 밤은 꼬박 밝혔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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