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다, 세상
땅에 발 딛고
뿌리 내린 모두가
흔들린다
얇은 종이 칸막이 같은 유리창을 윽박지르며
경계를 뚫고 들어오려는 매몰찬 포효가
안팎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갸날픈 몸으로 남들 모르게
늘 안스럽게 비틀거릴 것 같던
아득한 높이의 고층 건물이
아래 위로 흔들렸다
뉴스를 전하던
아나운서의 동공이 흔들렸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인터뷰하던
사람들의 목청에서 음성들은 흔들리며 나왔다
소식을 전하며 지직거리던 텔레비젼 화면의 흔들림은
소파 위 불안한 잠 속의 꿈까지 부여잡고 흔들었다
꿈 속
사람들은 계단 위에서 흔들렸고
몇은 전속력으로 몸을 날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황톳빛 강물 위로 몸을 떨구었다
먼 바다도 둔중한 신음소리를 내며 속살까지 흔들렸다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걸린 거미줄은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버드나무 가지들은 더러 뚝뚝 꺾인 채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쌍둥이 건물에 불기둥이 솟는 장면을 전하던 버스 안
그 찰나의 비현실적인 흔들림처럼
꿈이 현실을 흔들고 있다
뒤척이던 몸을 일으켜
덜컹이는 창을 달래는 마음이 외려 흔들리고
집 앞 천의 잿빛 물도 제 몸을 못 이기고 출렁거리고
잎 떨어진 지 오래인 둑길의 벚나무와 개나리 잔가지들은
어둠속에서 바람 하자는대로 흩날린다
이틀 째 계속 된 바람은
남서쪽에서 북상 중인 태풍의 자식이었다
밤 새 펄럭이다 우지끈 떨어져 날렸던 함석 차양
이웃집 장독대를 덮치며 떨어져 산산조각 난 창유리
바람부는 밤이면 뜬 눈으로 새던 언덕배기 집
바람보다 두려운 건 바람이 불러오는 악몽이었지
두려운 기억을 헤치며 잠 못 든
긴 새벽이 지날 때
몸은 이윽고
꿈 속에 가라앉았다
두려움의 원인은
바람이 아니었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흔들리는 밤
온 사방이 기우뚱한다
가늘지만 확실한
사기접시의 균열
발 밑이 쩍 갈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