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을 나와 따뜻하고 양 많은 커피를 한 잔 하고 광진교에 들렀다. 하늘 가득한 구름이 좋아 조금 일찍 서둘러 가면 운 좋게 구름과 강, 볼 수 있으려나 했다. 다리 위 바람, 거셌다. 스탠드 위의 카메라가 흔들렸다. 빗발도 조금 뿌렸다. 다리 위에서 찍기는 힘들었다.
다리 아래 리버뷰. [아이리쉬] 촬영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데다 요즘은 [시티헌터]의 촬영이 한창이다. 김상중의 아지트. 오늘도 촬영이 있어서 공연장 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반대편 전시장에서 바람을 피했다. 지난번에 들렀을 때보다 풍경이 조금 바뀌었다. 전시공간은 작지만 알차게 꾸며졌다. 좁다는 느낌보다는 꽉 찬 느낌이 강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구상과 비구상이 함께 하는 동인 그룹의 전시회였다. 모던한 색과 형상들이 밝은 조명과 잘 어울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다리 위 가로등과 전시장 안의 조명과도 잘 어울리는 작품들이었다.
전시장 안은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었지만 문만 나서면 센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강물은 빠르게 흐르고 멀리 가까이 건물 가득한 불빛은 강을 둘러싼 호수의 가장자리 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있었다. 비오고 바람부는 날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들어왔다. 대부분 연인들이었다. 여길 오려면 제법 품을 팔았어야 할텐데 그들은 고작 5~10분을 머물다 갔다. 창밖 풍경보다는 김태희와 이병헌 등의 사진에 더 많은 시간을 주다 갔다. 그림만 보는데도 족히 30분은 넘게 걸릴 시간. 비바람을 맞고 온 사람들은 다시 비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어두워 보이지 않는 강물 탓도 있을터이나 사람들은 빨리 왔다 빨리 갔다. 앉았다 섰다 그림을 보다 밖을 보다 사진에 담다 하면서 한참을 보냈다.
원주에서 올 때 저녁이면 올림픽대교를 지나기 전 힐끗 이곳이 보인다. 어느날인가 어제처럼 비가 뿌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 천호대교가 온통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다리 위 가로등 만이 마치 환상처럼 걸려 있었다. 그때 내게는 카메라가 없었다. 옛 전화기는 그 광경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저 뿌옇기만 했다. 아쉬웠지만 그렇기에, 더욱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린이대공원을 들리거나 잠실철교에 가거나 할 때는 혹은 테크노마트를 가게 되거나 할 때는 가끔 지나치는 이곳. 어제 가장 오래 머물렀다. 밖의 찬 바람이 발길을 잡은 탓이기도 했다. 강도 보고 익숙한 밤 도시의 또 한 모습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그림을 보면서 한참을 서성이다 왔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발의 수고로움뿐 아니라 마음까지 위로해 주는 공간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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