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가는 길
여국현
어디건 떠나기는 맞춤인 忘憂역
열차 문이 닫히기 전 근심은 슬그머니 내려놓고
유난히 늦은 봄 속으로 시나브로 들어서다
겨우내 하얗게 굳었던 강물은
얼었던 손발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아이별들처럼 달려드는 햇살의 입맞춤과
살가운 바람의 정겨운 사랑으로 분주하다
여적 벗은 몸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강변 버들은
온 몸을 이리저리 감추며 저며보지만
짖궂은 바람의 손길에
숨길 수 없는 관능의 나신을 하늘거리며 수줍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위
봄바람에 날려온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봄을 향해 걷고
메말랐던 사지를 뚫고 나오는 싹들로 가려운 나무들은
강바람이 떠미는 방향으로 팔을 다 뻗친 채
봄햇살에 온 몸을 맡긴다
열차는 아픈 고백없이 무념의 길을 섰다 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타고 내린다
강물이 흐르고
구름이 흐르고
문득 쉼표처럼 불쑥 나타나는 정거장을 지날 때
뒤로 앞으로 가고 오는 모든 시간
머뭇거리거나 당당하게 타고 내리는 모든 이들 사이
주저하거나 흩날리며 흐르고 멈춰선 모든 존재 사이
그리움은
언제나 그 사이에 있다
두물머리 가는 길
그리움이 강물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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