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니콜 크라우스 - [사랑의 역사](1)

그림자세상 2010. 8. 16. 23:44

아무리 바보라도 창문 앞에 있으며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가 되는 법이다. (12)

 

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와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같으리라고 믿을 때도 있다. 내 책이 끝나면 나도 죽을거라고. 방 안으로 바람이 불어와 내 종이들을 날릴 것이며, 날아가던 하얀 종이들이 모두 사라지면 이 방은 적막해지고 내가 앉아 있던 의자도 텅 비리라. (19)

 

외로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일 만한 내장은 없다. (21)

 

용서하려고 노력했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분노가 나를 압도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 안의 추악한 심성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쓰디쓴 감정에는 어떤 만족감도 있었다. 스스로 불러들인 일이었다. 밖에 서 있던 그것을 안으로 불러들인 셈이었다. 내가 세상을 노려보자 세상도 나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서로 혐오하며 얽혀 있었다. (31)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머리만 그리려면 전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줄리언 외삼촌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파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든 풍경을 포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한정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하늘을 전부 가진 척하는 것보다는 어떤 것을 아주 조금만 갖는 편이 우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엄마는 이파리나 머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선택했고, 아빠에 대한 그 하나의 감정에 기대고 싶어서 이 세상 전부를 희생했다.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