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everything

윤대녕 읽기

그림자세상 2010. 3. 26. 21:22

"그게 누구든 과일과 칼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보리"

 

"늘 그리워 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

                                                 -"대설주의보"

 

"사람을 만나다보면 변하지 않는 관계가 있고 또한

 변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오대산 하늘구경"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또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사는 게 모두 어리석고 잔인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비도에서 생긴 일"

 

"세상 모든 이들이 저기 언덕 너머에 숨어 있는 달리아밭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여행, 여름"

 

              ---------------

 

그렇게 글을 다 끝내고 뒤의 해설을 보았다.

 

신.형.철.

 

그러게, 예감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횡재.

윤대녕을 읽듯 윤대녕을 읽는 그를 읽는다.

 

"내면의 폐허는 끝내 없앨 수 없고 다만 대면하고 또 달랠 수 있을 뿐"(291)

 

"신파적인 것이야말로 온갖 휘장을 걷고 난 뒤에 남는 생의 맨 얼굴"(293)

 

"만나기로 한 이가 3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이 30분은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가장 아름답게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알고 있다.

 아름다운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 일.

 시는 너무 짧고 장편 소설은 너무 길다.

 자기 문장을 갖고 있는 작가의 좋은 단편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시간은 음악처럼 흐르고 풍경은 회화처럼 번져갈 것이다.

 다 읽고 나면, 기다린 그 사람이 온다.

 윤대녕의 책이면 좋을 것이다.

 그의 책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하염없이 날아가는 새를 닮았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이 불고 있어 아프고,

 하릴 없이 그 바람 맞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어 아리다.

 ......

 모국어로만 표현되는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좀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런 아름다움에 헌신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평론가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1990년 이래의 윤대녕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천지간에 상춘곡 가득한 이 시절에 그를 읽는다.

 시를 엿보는 소설도 있지만 시를 통과한 소설도 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만날 수도 완전히 헤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의 소설에서 배웠다." (298~299)

 

 

 

'Texts and Writings > on everyth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안....  (0) 2010.04.22
시행착오...혹은 무지함에 관한 아주 사소한 단상  (0) 2010.04.14
스틸 샷  (0) 2010.03.26
마음에 담는 글  (0) 2010.01.25
추억  (0) 201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