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누구든 과일과 칼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보리"
"늘 그리워 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
-"대설주의보"
"사람을 만나다보면 변하지 않는 관계가 있고 또한
변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오대산 하늘구경"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또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사는 게 모두 어리석고 잔인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비도에서 생긴 일"
"세상 모든 이들이 저기 언덕 너머에 숨어 있는 달리아밭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여행,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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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글을 다 끝내고 뒤의 해설을 보았다.
신.형.철.
그러게, 예감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횡재.
윤대녕을 읽듯 윤대녕을 읽는 그를 읽는다.
"내면의 폐허는 끝내 없앨 수 없고 다만 대면하고 또 달랠 수 있을 뿐"(291)
"신파적인 것이야말로 온갖 휘장을 걷고 난 뒤에 남는 생의 맨 얼굴"(293)
"만나기로 한 이가 30분 정도 늦는다고 한다. 이 30분은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가장 아름답게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알고 있다.
아름다운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 일.
시는 너무 짧고 장편 소설은 너무 길다.
자기 문장을 갖고 있는 작가의 좋은 단편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시간은 음악처럼 흐르고 풍경은 회화처럼 번져갈 것이다.
다 읽고 나면, 기다린 그 사람이 온다.
윤대녕의 책이면 좋을 것이다.
그의 책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하염없이 날아가는 새를 닮았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이 불고 있어 아프고,
하릴 없이 그 바람 맞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어 아리다.
......
모국어로만 표현되는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좀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런 아름다움에 헌신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평론가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1990년 이래의 윤대녕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천지간에 상춘곡 가득한 이 시절에 그를 읽는다.
시를 엿보는 소설도 있지만 시를 통과한 소설도 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만날 수도 완전히 헤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의 소설에서 배웠다." (29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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