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문학작품

[스크랩] 소리나는 여자가 사랑받는다 - 오경미

그림자세상 2009. 12. 5. 13:22

                           소리나는 여자가 사랑받는다
                                                                           지은이:오경미
                                                                           출판사:책이있는마을
 

    소리나는 여자가 사랑받는다
  몇 년 전 국민들 개개인의 생활  환경 및 직업에 대한 설문 조사가 전국
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집으로 날아온 설문지를 가족 대표로  작성
하던 나는 문득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수입이  얼마냐고? 연극 배우
의 한 달 수입이라... 그건 생각해보나마나 마이너스였다. 예나 지금이나 연
극 작업은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야말로 예술 한다는 자
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을 뿐인 것이다.
  당시는 연극을 한 지  4,5년이 지난 때라 나는 이 기회에  그해를 기준으
로 수입을 뽑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 수는 두 개였지만 달수로는  지
방공연까지 해서 네  달 남짓한 공연이었는데 겨우 50만원을 넘지  못했다.
연습기간을 합하면 거의 6개월 이상을 꼬박 전념했다는 얘긴데 50만원이라
니, 나 스스로도 놀랐다.  물론 대극단의 뮤지컬이라든지 자본이 탄탄한 극
소수 극단의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소위 개런티를 챙길 수 있겠지만,  일반
연극 공연에서는 대선배들조차도  공연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 푼도 손에
잡지 못할 때도 많았다. 하물며 나 같은 신출내기가 오죽하랴. 결국 차비며
품위유지비 등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마이너스 수입인 것이다.
  그후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공연이 없을 때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일을 구하는  데 힘이 들었
지만 다행히 결혼 후 생활고 때문에 일찍이 연극판을 떠나 다른 직업에 종
사하게 된 선배들을 찾아가 작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CF
감독이 된 선배의 자료 정리라든가 각종 영화의 더빙,  문화영화의 출연 등
이 그것이다.
  그러던 중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는데, 어느 16mm포르노 영화의 더빙을
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영화의 '영'자도  모르던 나는 영화는 다  같은
줄만 알고 선뜻 그 일을 맡았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시작한 지 채 몇 분
도 지나지 않아 남녀가 벌거벗은 채 소파 위에서, 헛간에서, 아무데서나 뒹
굴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내가 맡은  역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난생처음 희한한 소리를 뱉어내야 했다.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혔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막상 그역을 해냈던  여배우들도 더러 더
빙을 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난리(?)를 치던  건 어디 가고  서로 빼느라고
시간만 지체되고  있었다. 사실 그런 소리는  경험이 있든 없든 간에  일반
영화에서도 부지기수로 접할 수 있는 건데 어려울 게  뭐 있겠는가. 그녀들
의 왕내숭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녹음기사가 진땀을 빼며 더빙
하고 나오는  나를 불러 세웠다. 딱  한번에 끝냈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내심 걱정하며 기계실로 들어갔다.
  "자넨 성운가?"
  "아뇨"
  "그럼 배우야?"
  "아뇨, 연극 배운데 아르바이트로 왔어요." 그러자 내 어깨를 탁 치며,
  "역시 연극 배우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하는 게 시원해서 좋다! 저것
들은 벗고 난리칠 땐 언제구 저렇게들 빼고 날리야."
  "소리야 뭐든 기본이죠."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다  와아 웃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
곰이 생각해보니 뭔가 찜찜했다. 그런 소리의 배경 화면을  떠올려볼 때 더
빙을 잘했다는 말이 결코 칭찬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미혼인 여
자가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나는 가방 속에
든 더빙료를 생각하면서 '쳇  아무려면 어때. 목소리만 빌려준 건데... '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리고 그런  더빙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단순
히 일일 뿐이었는데도 성에 관계된 것이라 왠지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여자들에게,  특히 미혼의 여자들에게 있어서 성에 관한  것들
이 너무 닫혀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것마저도  경계심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남편과의  섹스중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지르게 된다.  남편과
성관계를 맺을 초창기엔 그 자연스런 신음소리마저도 부끄러웠다.  그 얼마
나 우스꽝스러운  짓이었나. 사실 성관계  도중 남편도 신음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에 내가 더 뜨거워질 때가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
면 소리가 상대에게  주는 성적 흥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
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육체로 하나가 되는 순간 토해내는  소리라면
그 사랑의 크기만큼 그것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된다.
  남편은 말수가 적은 반면 나는 수다스러울 만큼 말이  많다. 둘다 작가라
서-수 년 전 나는 시나리오  작가로 전업했다- 집은 가정인 동시에 일터인
지라 우리는 하루종일 함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동료 작가들이  자주 우
리집에서 모이는데, 열띤  토론이 벌어지면 남편은 좀체로 물러설 줄  모른
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우째 저렇게 말을 잘하나?' '평소에도 말좀 해
보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남편은 자신의 일과 관계된 것이 아니면
대개 듣는 쪽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하루종일 그를 상대로 떠들어댄다.
옆에 붙어 앉아서,  걸어다니며, 누워 뒹굴며,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말을 거는 것이다. 그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 성격일 뿐이다. 나
마저 말이 없는 타입이었다면 우리집에선 겨우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
렸을 것이다.
  부부의 사는 모습이 이러저러하게  다 다르겠지만 남편이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 찌개  끓는 소리에 맞춰
명랑한 목소리로  하루의 일들을 들려줘보자.  그리고 때때로 침대  위에선
아주 섹시한 소리로 그를 뜨겁게 달궈주자.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는
남편에게 각종 happy한 소리로 사랑을 들려주자.


    질투하는 아내 질투하는 남편
  털레비젼 프로그램 중에 인기 연예인들이 세계 각지를 방문해서 그 나라
의 풍물 하나를 배우고 돌아오는 과정을 방영하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성인식을 치르는  과정이나, 전통 무예라든가  정글에서의 사냥 같은  것을
직접 체험해본다는 식인데,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와 문명의 사람들과  함
께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한번은 그 당시  두어 편의 영화로
주가를 올리던 모델 출신의 한 여배우가 스페인에 가서 플라멩코를 배우고
체험하는 과정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나란히  앉아 그 프로를
보고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그  여배우가 기를 쓰고 플라멩코를 추는 것
을 보고 흥분하더니,
  "야! 거 꽤 매력적인데."
  "뭐가?"
  "쟤 저렇게 안 봤는데 보통내기가  아니네." 하긴 아무리 흉내만 내는 것
이라 할지라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하는 일을 단 며칠만에 해낼 수 있었
던 건 그 여배우의 끈질긴 오기가 없었다면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라구?"
  거품을 물고 그녀를  칭찬해대던 남편은 재차 거듭되는  내 질문에 겨우
사태를 파악했는지 텔레비전에서 눈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 그러니까 뭐 그렇다는 얘기지."
  "잘됐네. 당신은  시나리오 작가니까 쟤한테  맞는 영화 하나  기를 쓰고
써가지고 기를 쓰고  섭외하면, 아마 팬티 벗고  기를 쓰고 달려올걸. 아예
저 매력적인 애하고 어쩌구저쩌구 같이 살던지, 체! 매력적이라구?"
  그야말로 남편의 별거  아닌 한마디로 급기야 티격태격 난리가 났다.  처
음엔 별거 다 갖고 그런다고  너스레를 떨던 남편도 분하다고 울고불고 퍼
부어대는 나를 당할 수는 없었다.
  "야 야, 우리  마누라가 최고지. 저런 애들  백 트럭을 싣고 와  봐라. 눈
하나 깜짝하나."
  "흥, 백 한 트럭이면 깜짝하구?"
  "......?"
  그날 이후 남편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 아닌 다른 여자들에 대한 칭찬성
발언은 결코 하지 않는다.
  남편을 만난 곳은  '영상작가 교육원'이었다. 사실 남편은  시나리오 작가
들의 등단이라  일컫기도 하는  영화진흥공사 주최 시나리오  공모에 92년
'아홉번째 결혼한 남자'로 당선되었고  그후 우리 나라 영화의 메카인 충무
로에서 이미 프로로  달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굳이  교육원에 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부산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이  외롭기도 했고 도
대체 그런 곳엔 어떤 사람들이 모이나 해서 한번 와봤다는 것이다.
  교육원은 기초, 전문, 연구의 과정으로 운영되었고 연구반은 마지막 과정
이기 때문에 한 열댓  명이 있었다. 그 중엔 전업작가도 있었고  다른 직업
에 종사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로 있었는데 연구반 정도가 되면 실
력과 열정들이 대단했다. 수업 일수가 한참 지난 어는  날에 나가봤더니 평
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남편을 가리치며 장황하게 설명을 해댔다.  영진
공 당선 작가라는  둥, 모 감독과 '투캅스'를 썼다는  둥, 지금도 뭔 작품이
계약중이라는 둥... 그러나  내 눈에 사십이 넘어  뵈던 그 남자는 단지  다
늦게 글에 대한 열정으로 기를 쓰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아이 두엇 딸린
쌀가게 아저씨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물론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그
럴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얘기한 적도 없었다. 우습게도 그냥  나 혼자 지
레 짐작하여 정형시켰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으레 잘  가는 술집에 모여 일주일간의 회포(?)를 풀었다.
어차피 그는 제일 연장자였고 유일하게 프로인 선배였기 때문에 몇몇 사람
들이 항상 그의 옆에 모였지만 나는 관심조차 없었다.  당시 부산에서 다녔
던 그는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일어서곤 했는데, 난  어쩌다 그가 눈에 띄면
왔나 보다 했고 가나  보다 했다. 마르고 키만 훌쩍 커서  재미없이 보이는
남자였다. 물론 나는 그 재미없어 보이던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말이다.
  결혼 후에 쏠쏠하게  들려오는 얘기들이 있었다. 그건 교육원 시절  남편
을 좋아했던 여자들에 관한 것들이다. 하긴 그가 내게  접근하기 시작한 건
교육이 다 끝나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교육원 시절 그의 주변 얘
기는 몰랐었다.
  "아니 그 미저리 H(평소 나는 그녀를 영화'미저리'의 캐시 베이츠라고  불
렀다)가 당신을 좋아했단 말야? 그랬다는 근거가 있어?"
  "그건 냄새로 다 알 수 있는 거야."
  "냄새로?"
  "허구한 날 서울에서 부산으로 장거리 전화를  해대지, 한번 통화하면 시
간 가는 줄 모르지, 그만하면 눈치가 뻔한 거지 뭐."
  "그 여잔  유부녀잖아? 거 웃기는 자장이군.  근데 전화 상대를  해준 걸
보면 당신도 좋아했었나봐?"
  "그럼 전화하는데  끊으라고 하냐,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하냐?  그냥
모르는 체 받아줬던 거지."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전화가 끊기게 됐다. 연애  시절 한번은 크
게 다투어 그가 부산에 내려간 후  한 일주일 간 전화 통화조차 없었던 적
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끝까지 전화하지 않았다. 그냥 '치사한  남자 같으
니라구. 그만 일로  삐쳐 가지고는... 내가 먼저 전화하나봐라'  하면서 속으
로만 끓어댔다. 결국  그가 백기를 들고 먼저 전화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근데 내가 H한테 실수한 거 같아"
  "H한테?"
  다투고 내려가서 혹시나 하고 이제나저제나 내 전화만 기다리던 그가 깜
빡 졸다가 전화벨이 울리자  내 전환 줄 알고 반가워서 얼른  받았단다. 전
화한 여자가 그렇게 반갑게 받는  걸 보니 자기 전화를 기다렸나보다고 하
길래 상대가 당연히 난 줄 알았던 그는  "그럼 물론이지. 내가 얼마나 기다
렸는데" 하면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았다. 마침내 이상하게 느낀 여자가 "나
H야. 기다린 건 내가  아니고 딴 여자 같은데 전화 그만 끊어야겠네" 하더
란다. 그는 아차 하고 얼버무렸지만 서둘러 전화를 끊은  그녀가 그후로 통
전화를 안 하는 걸 보면 뭔가 눈치를 COS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식 한 달 전에 결혼 발표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작가 두엇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H 역시 우리 결혼 얘기를 들은 후에야  비로서 남편이 전화를 기다리던 여
자가 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라. 아무튼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집들
이다, 모임이다 해서 동료  작가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녀는 이 핑계  저 핑
계를 대며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녀의 얘길  꺼내
남편의 염장을 지른다.  "당신은 H 같은 여자하고 살아봐야 자기  마누라가
공준 걸 알 거야"라든가 "K(또다른  여자 작가)가 당신 작업하는 여관에 찾
아온 적이 있었다며 그때별일 없었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남편은
대꾸도 않고 딴청을  하거나, "네가 뭐가 꿀려서 걔네들을  신경쓰니? 그렇
게 자신이  없어?" 하며 역공을 하기도  한다. 물론 남편과  그녀들 사이에
아무런 썸씽(?)도 없었다는 걸 알지만 난  어떠한 형태로든 그와 관계가 있
었던 여자들의 일이라면 시시콜콜 들춰내 끝없이 그를 괴롭힌다.
  요즘은 이성 친구라는 거 데 이상 남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도 미
혼 시절 남자 친구가  꽤 있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너 달
에 한 번씩은  만나 회포를 풀곤 했는데 결혼한  후론 거의 만나보지 못했
다. 어쩌다 외출해서 그들을 만나고 들어오면 나는 그날  일을 남편한테 모
두 들려준다. 그럴 때 남편은 언제나처럼 듣고만 있었는데, 그가 결코 마음
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건 남편이 속이  좁거나 의처증이 있
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이성 친구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다.
그런데도 막상 만나는 일은 왠지 촉각이 세워지는 모양이다.  그들 또한 내
가 결혼한 후로는 전화로 안부만 전할  뿐 만나는 것은 좀 꺼리는 것 같았
다. 왜 그러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자신들도 어떠한  경우에라도 아내가 다
른 남자와 만나는 것이 싫다는 대답이었다. 결혼한 여자  친구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배려(?) 그리고  남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로 인해 공
적인 일이 아니면 우연으로나 그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부부가  서로 상대의 주변에  있는 이성들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그건 부부 전선에 이상이  있는 것일 게다. 그 이성들이 일로  만나는 사람
이든 미혼 시절부터 만나왔던 사람이든 간에 촉각이 곤두서고 기분이 나빠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남편은 프리야. 내가 외출해서 늦으면  밤귀가를 걱정하긴 해도 누
굴 만났는지는 상관 안 해. 그만큼 날 믿는다는 얘기지"
  믿는다는 얘기라고?
  "얘, 남자가 얼마나  쫀쫀하면 마누라가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일일이
신경쓰니? 우리 남편은 그런  면에선 너무 편하게 해줘, 그야말로 무던  그
자체야."
  웬 말도 안 되는 자랑?
  그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사랑의 척도란 관심의 정도와  비례한다
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성에  관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라도
티격태격하는 것은 결코 유치한 일이 아니고, 상대의 미혼  시절 이성 친구
를 의식하는 것 또한 별난 게 아니다. 어떤 모임에서  남편 옆에 혹은 아내
옆에 가까이 앉은 이성들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
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나는 남
편 주변의 이성에  대해선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나만의 그대이고, 그대만의 나이므로.


    모텔 시절
  남편의 열정적이고 끈질긴  구애에 넘어가 결혼을 승낙한 후, 그의  고향
이자 집필 아지트가 있는 부산에 내려갔던 적이 있다.  장가 한번 들겠다고
서울과 부산을 멀다 않고 오갔던 건 그였고 난 언제나 서울에서 그를 만났
었다. 그렇게 콧대를  세우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기차 속에서의  4시간 반
은 그를 보고 싶은  마음에 잠도 오지 않는 너무나 지루한  시간이었다. 역
개찰구 앞에 서 있는 그를 보는 순간 얼마나 기뻤던가!
  그는 자기 애마에  나를 태우고 여기저기 부산의 명소를 돌아다녔다.  저
녁이 되자 광안리 바다를 내려다보며 회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는 모텔로
갔다. 오랜  사귐에도 손 한번 변변히  잡아보지 못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한 방에 있게 되자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고 해도 그러지를 못했다.  긴 시
간 기차를 타고 온 여독도  여독이려니와 술기운이 퍼져 금세 피곤이 엄습
해왔다. 나는 쉬고 싶은 마음에 이불을 따로 펴고는,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OK?"
  "OK!"
  내게 여관이라든지 모텔이라는 곳은 단지 단어로만 인식되어  있었다. 그
러다 처음 그런 곳에 들어가게  된 것은 연극을 시작하고 지방공연을 갔을
때였다. 일로 들르게  된 곳이라 내겐 그저  숙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항상 3층이나 4층에 방을 잡는  것이었다. 한 선배한테
왜 힘들게 이런 층에만 드냐고  했더니 그 선배 말이 장기투숙이라서 그렇
다는 것이다. 그래도 돈은  똑같이 않냐고 했더니 1,2층은 연인들의 낮거리
(?) 때문에 업소 측에서 가능한 한 비워 둔다는 것이다.
  "낮거리? 그게 뭔데?"
  "정말 몰라?"
  낮거리란 낮에만 잠시  들러 재미를 보고 바로  나가는 남녀 아베크족을
상대로 하는  영업을 말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때없이 들각거리는가  하면
낮에는 여관에서 쉬고 오후가 되어서야 공연하러 나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
은 아무리  장기투숙이라해도 반가울 게  없는 것이다. 그밖에도  여관이란
곳이 단지 여행객의  투숙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대여섯이 모여 야식까지 시켜먹으며 고스톱을  친다든지, 남녀의
섹스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아침식사를 하는데 남자 배우들이 키득거리며 자기들끼리 수군거
렸다. 여자 배우들이 캐묻자 지난밤 자기네들은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얘
기인 즉, 옆방에서 하도  요란스럽게 행사(?)를 치러서 모두 그 문 앞에 몰
려가 귀를 대고  듣느라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날은 어디서 들었거나  직접
체험했던 여관과  남녀상열지사에 얽힌 얘기들로  분장실이 내내 시끄러웠
다. 그 이후로 지방공연 때마다 들르게 되는 여관이나  모텔에서 새로운 사
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내게 여관은 여전히 여행중 쉬는 곳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남자와 단둘이 모텔이란 곳에 들게 되었으니 그저 어색했
고 내심 불안했다.  아무리 결혼을 약속한 남자라 하더라도 갑자기  경계가
되었다. 난 속으로 '혼전에  남자와 이런 곳에 단둘이 있게 되다니' '지금이
라도 나가자고 그럴까? 아냐.  그러면 더 이상할 거야' '저 남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등등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도 한편으론 이젠
ㄱ 사십을 바라보는  여자가 이러고 있나 싶어 우스웠다. 그러다  우습게도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그가 나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놀라 잠을 깨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니 옆에 가서 자면 안 되겠니?"
  "?!"
  그는 두 번 묻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넓은  창을 통해 시원하게 바다가 내다보이는 찻집에서  우
리는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아주 나중에야 서로의 심경을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모텔 시절'은 시작되었고, 결혼 후  정해진 침대에서 공인
된 섹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 부부의 섹스에 대한 열정을 떠올려
볼 때 그때만큼 뜨거웠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도둑질하는 기분이
었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고  자극적이기도 했겠지만 남편이나 나나 서로의
첫 경험이 주는 신선한  충격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남편은 모
텔 시절을 통해 나를 성적으로  성숙시켰고 나는 그에게 가장 모범적인 학
생으로 섹스 수업을 마스터했다.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뜨겁고  꿀맛 같은
시절이었던 것이다.
  사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울  때도 많고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미워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침대 위에서  한바탕 부부만의 전
쟁(?)을 치르고 나면 미움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부부싸움은 칼
로 물 베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으리라. 어느 부부라도  우리 부부의 모텔
시절처럼 가장 뜨거웠던  섹스 시절이 있을 것이다. 생활이 피곤하여  서로
를 상처내며 다투게  될 때, 심지어 머릿속에서  이혼이란 단어가 맴돌 때,
그리고 더 이상 섹스가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 때, 자기만의  모텔 시
절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누구라도 금세 입가로 작은 미소가 떠오를  것이
다. 그 작은 미소는 가장 뜨겁게 사랑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 그 '모텔 시절'은 영원히 사랑의 묘약으로 사용될 것
이라 확신한다.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최고로
  S감독은 평소 우리 부부가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다. 남편은 그를 95년
'미스 미스터'란 작품을 써주면서 만나게  되었는데 S감독은 남편의 영진공
당선작인 '아홉번째 결혼한 남자'에 반해서 그를 찾았다고  했다. 나는 남편
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는 남편과 결혼할 거란  생각없이 그저
선배로만 생각하고 만날  때인데 S감독은 남편의 꿍꿍이속을  알아차린 듯
만날 때마다 둘을 엮으려는 의도가 분명한 발언을 했다.  사실 우리 부부가
결혼하게 되기까지 그의 중매 아닌 중매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중키에 다부진 체격인  S감독은 참 당당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옷은 대개 고급 브랜드의 것이었고 항상 정갈했다.  결혼한 남자의 차
림새를 보면 그의 아내를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듯이 남편의 외모에 저렇
게 신경쓰는 여자라면  보통이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정말 그랬다. 어느
날 우리는 그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집안을 정리 정돈해놓은 것을 보고 역
시나 했다. 어쨌든 남편의 것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최고 좋은 것으로
하려 한다는 S감독의 얘기를 떠올리며 참 사랑스런 아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먼저 결혼한 친구나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물건을 살 때 우선 순
위가 있다고 한다. 먼저 남편 것, 아이들 것을 고르다 보면 자기 차례는 돌
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 것을 조금 싼 걸로 해서  자기 것
을 사도 되련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였다. 결혼해본 사람들이 그것이 얼마나  신경쓸
데가 많은 일인지 알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두  사람 다 자유업이었기에
시간이 넉넉한 편이었다.  하루는 결혼 반지를 맞추러 가는데 남편이  잠시
나를 붙들고 말했다.
  "반지를 좀 줄이면 안 되겠냐?"
  "안돼! 결혼 반지만큼은."
  살다가 더 좋은 것으로 해주겠다는 남편의 설득에도 난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했다. 둘다 삼십대 후반인데다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결혼 준비야 의당  알아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우리
는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청렴한  교육자였던 아버님
이 재산이  있으시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셨고,
남편은 송구한 마음으로  전셋집 구하랴, 결혼 비용 뽑아내랴 전전긍긍  고
심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철없이  고집을 부렸다. 늦은 나이에 하는 결혼이
니만큼 고급 호텔에서 멋있게 해야 한다는 둥, 결혼  반지만큼은 커야 한다
는 둥, 신혼여행은 꼭  이태리로 가고 싶다는 둥 온갖 것을  요구하며 우리
형편에 버겨운 결혼식이 준비되어갔다. 난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기색이 보
이면 금방 눈물을  글썽이며 왜 신부를 슬프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떼를
썼다.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결국 그는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
다.
  그 당시엔 느끼지 못했지만 결혼해 생활하면서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떠
올려보면 그는 '내게 너무나  고마운 당신' 이다. 그렇다. 그는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해주려고 한다.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려고 한
다. 2남1녀의 막내로  자라 천방지축인 나를 남편은 그것마저 참고  아껴주
었다.
  사실 여자를 처음 만나 반한  순간부터 그녀를 아내로 맞을 때까지 남자
들이 여자한테 쏟는 정성이  오죽하던가! 그리고 결혼 후엔 남편, 아버지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물론 맞벌이 부부도  있겠고
여자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셔터맨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남자들은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렇기에 여자들이 결혼해 살다 보면  자기것
보다 남편과 아이들 것을 먼저 챙기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 역
시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가를 살피게 되고 그를 의해 준비하고 챙
기게 된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어떤 여성잡지에 실린 모 개그맨의 아내 얘길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
역시 모델 출신으로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괜찮은  주부로 정평이 나
있는 여자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
터 왕자가  되게 해주고 싶다고 한다.  미혼이었을 때 그런 소릴  들었다면
남성 위주의 삶이라고 일축해버렸겠지만 내가 한 남자와 살아보니 결코 그
렇지가 않았다.  하긴 나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을 위해  뭐든
못 하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최고로 준비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다. 지금은 안정적이고 풍족해 보이는 그녀이지만 어렵고  견디기 힘들었던
때가 왜 없었겠는가. 어는 부부나  살다 보면 넉넉할 때도 있고, 지독히 가
난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에 대한 정성의  끈만큼
은 놓지 말자.
  나는 비범한 삶보다 평범한 삶을  이뤄내기가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
각을 해본다. 모든 것이 너무 획일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특성이 더
욱 강조될 수밖에 없는  요즘, 사실 다름 사람보다 튀고 싶은  것도 당연하
다. 개성을 살리며 사는  모습들은 생명력이 느껴져서 아름답다. 그러나 오
랜 세월 만인으로 하여금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평범한 삶의 변
함없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는 말이 그런  것이지
않겠는가.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챙기는 아내들이 결코  남존여비나 자아상
실의 차원이 아님을 나는 이제 비로소 깨닫는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까르
르 웃을 수 있는 그녀들이 아름답다.


    소리없는 섹스
  부산이 고향인 남편은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독립문에
위치한 어는 하숙집에 약 한 달간 머물렀었다. 그  하숙집에는 치매 증세가
있어 자식한테 격리된 노인, 다단계 회사에 다니는 20대 초반의 총각들, 동
거중인 어린 남녀, 술집 아가씨 등 내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이 살고 있었다. 남편이  급한 대로 이불이며 컴퓨터, 털레비전을 갖다놓고
생활하던 그 하숙방에  나는 거의 살다시피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약혼
자의 이름으로, 우리 가족들에겐  결혼식 준비를 핑계롤 말이다. 더불어 우
리의 모텔 시절은 끝났고 더 이상 여관비도 들지 않게 되었다.
  동료 작가들이 모여 술이라도 한잔할  때면 종종 우리 부부의 섹스에 관
해 묻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둘다 사십을 코앞에  두고 시작한 늦깎이 신
혼생활인데 작가들의 짓궂은  입심이 우리를 가만 놔둘리 리 없는  것이다.
일주일에 몇 번하냐, 한번 하면  얼마쯤 하냐, 누가 먼저 하자고 덤비냐 등
등. 까짓 것 대답  못 해줄 것도 없어 술술 얘기해주면  그들은 키득거리면
더욱 강도 높은 질문을 해댄다.
  "선배, 런닝타임이 얼마야?"
  남편은 피식 읏으며 그의 아내가,
  "비디오 두 편!"
  "?!"
  나의 대답에 놀란 동료 작가들이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
  비디오 두 편,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시간을 재면서 섹스하겠는가?
우리 부부가 그 독립문 하숙방에서 사랑을 나눌 때의  일이다. 그곳은 방들
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옆방의 소리가 가늘게 들려오곤  했다. 그래서 우
리는 아주 조용히 일을 치러야 했는데 어쩌다 절정의 순간 나도 모르게 소
리를 내지르면 남편은 얼른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비디
오 테이프를 넣고 한참 섹스에 열중하다 비디오가 끝나버리자 남편은 바로
이어 옆에 있던 다른  테이프를 넣었다. 우리가 일을 마쳤을 때는  두 번째
넣은 테이프도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뭐야? 테이프가 두 개면 우리가 얼마나 뛰었다는 거야?"
  남편의 말에 아내는
  "우리... 다시 돌릴까?"
  그렇게 해서 비디오 두 편이란 조크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한번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후배 작가네 집에 놀러 간 적
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지라 이야기꽃을 피우다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
에 우리는 그 집에서 자게 되었다. 안방과 거실을 사이에  둔 작은 방에 우
리 잠자리가 펴지고  막잠자리에 들었는데 남편의 손이  뜨겁게 나의 몸에
와닿는다.
  "어머, 이 남자가 미쳤어! 우리집도 아닌데."
  남편은 씨익 웃으면서 둘째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 보이며,
  "쉬!"
  "하지 말어, 이러지 마... "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고, 나는 할 수 없이 남편을  받아들였
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치른 행사였지만 이상하게 더  뜨거웠던 건 왜였
을까? 아무튼  우리의 독립문 시절 비디오를  틀어놓고 마스터하게 되었던
소리없는 섹스는 그 이후로도 종종 사용되었다.
  그렇다. 부부간의 섹스란 어느 섹스보다 가장 자연스럽고  허물없는 것이
지 않은가.  그래서 상대가 원하는  순간이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일지라도
핀잔을 주고 거부하기 전에 오히려 재치있게 대처하여 받아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마 또다른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집에서 마음껏 소리를 내며 섹스할 수 있게 된  지금, 난 가끔 침대를
정리하면서 독립문 시절의  그 소리없는 섹스를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곤
한다.


    금팬티를 입은 여자
  겨울이 지난 어는  오후, 비스듬히 열린 창으로 봄볕이 가만히  흘러들면
그곳에 작은 화분  하나를 갖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여름과 가을을 채우게 될  화사한 날들에 대한 기대감보다 오히려 지
나간 시절의 기억들에 아련히 젖어들곤 한다.
  생각해보면 내겐 참으로 무미건조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마음에  드는 서
클에 들어 열성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80년대 초 학생운동이  처절했
던 시절과도 무관했다.  만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사회  구성원으
로서 가치있는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겨우 한다는  것이 퀴퀴하고 어두운
음악다방에 구겨져서 한창  극성을 떨던 록음악에 취해  있는 게 다였으니
까.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졸업을 했고  무얼 하며 살까 하고 신문을 뒤적이
던 중 눈에 띈  게 연극이었다. 어쩐지 금방 마음이 끌렸고  연극배우가 되
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무작정 그곳에 뛰어들었다. 어는  극단에 들어갈까
고심하는데 언젠가 인상 깊게 보았던 연극의 주연배우가 대표로 있는 극단
에서 단원을 모집하기에 거기로 정했고 그렇게 나는 연극쟁이가 되었다.
  특별한 생각없이 시작한  연극은 점차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운  좋게
무대에 설 기회를 빨리 얻은 나는  관객과 직접 의사 소통할 수 있고 나를
통해 이야기 속 한 인물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연극 초창기 시절 나를
거의 실신시킬 정도로  흥분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다 자라도록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평범했던  나는 연극을 하면서 변해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모
든 생물이 단세포에서 극렬한 세포분열을 통해 하나의 완전한 개체를 이루
어내듯이 난 연극이란 작업을 통해 내 속에 숨어 있던 본연의 나를 찾아가
기 시작한 것이다.  연극은 그렇다. 유독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소위
연극이란 예술을  통해 그 개성을  발산시키는 작업이다. 때때로  지독하고
때때로 처절하다. 관계 서적을  뒤적이고 온갖 공연을 보러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따뜻해지면  봄이구나 하고 더우면 얇은 옷으로  갈아입
고, 추워지면  코트를 꺼내 입으면서 연극  말고는 어떤 것에도 전혀  감각
없이  한 해 두 해 무작정 시간이 흘러갔다.
  모든 공연예술이 다 그렇겠지만 연극 한 편이 공연되기까지는 많은 사람
들의 수고가 따른다. 다수의 남녀들이  연기, 연출, 조면, 무대미술 등 많은
분야에서 두 달여  각고의 연습 끝에 올려지는데, 공연이 시작되면  연습기
간보다 더욱 긴장된 시간이 이어진다. 그래서 공연이 모두  끝나는 날은 작
품에 대한 아쉬움 이전에 격렬한 허탈감이 밀려오곤 했다.  뜨겁게  달아올
랐던 열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환하게 불이 밝혀진 빈  객석, 연이어질 공연
으로 급히 철거되는 정든 세트들, 바삐 오가며 소품을 정리하는 스텝들, 분
장을 지우고  의상을 챙기는 배우들,  그리고는 술집에서의 소란스런  뒤풀
이... 그런 모습들이 관객이 보지 못하는 연극 공연의 나머지들이다.
  무대 뒤의 이야기들이 본 공연보다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래서 더러
무대 뒤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이 강한  남녀들이 모여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라서 티격태격대기도
하고, 남녀상열지사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남녀의 문제는 여러 각도로 벌어
지게 되는데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하겠지만 대체로 여자들에게 성적인 포
커스가 맞춰질 때가 많다. 어떤 극단의 여배우와 연출가의 미묘한 관계, 모
제작자와 모 여배우와 그렇고 그렇다는 이야기, 어느 남녀  배우가 전날 밤
니캉내캉 어쨌다는 이야기...  특히 여자 입장에서 거북살스러운 것은  기득
권을 가진 남자들(예를 들면 연출이나 제작자, 혹은 선배)에 의해  여배우들
이 성적으로 희생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강압적이지는  않았
겠지만 어쩔 수 없이  수락하게 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고,  야욕을 위해
스스로 그들과 타협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경우들은
얼마 안 있어 초자 여배우의  주연 캐스팅이라든가 실력 없는 여배우의 연
이은 캐스팅이라든가 하는 결과로 공공연히 드러나 기를 쓰고 버티는 다른
여배우들을 슬프고  분노하게 했고, 극단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곤 했다.
이런 상황은 연극계뿐만 아니라 모든 연예계뿐만 아니라 모든 연예계에 비
일비재한 일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는  이랬다. 처음 들어간  극단이 소극단이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남녀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 5,6년 후 경영난으로 극단이 해체
되자 나는 그간의  극단 생활을 기반으로 프리랜서로 뛰기 시작했다.  동숭
동이라는 연극 중앙무대로의 진출을  꾀하며 많은 선배들과 접촉하게 되었
고 그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공연하기도 했다. 사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대선배 제작자나 극단 대표들,  연출자, 남자 선배들 중에는 농담의 형태로
혹은 노골적으로 성적 유혹을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고민 한번 하지 않고 멀쩡하게 지낼 수 있었는가? 그것은
내가 성적 미숙아였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 그때  그 상
황이 바로 그런 것이었어' 하고 정리될 뿐이지 당시의  난 그저 '으이그, 이
선배 되게  지분거리네. 공연만 아니라면  한 공간에서 공기  나눠마시기도
역겨운 인간이구만' 하고  혼자 구시렁대거나 동료 배우들과 흉을 보는  것
이 전부였다.
  그 즈음 CF 전문 배우인 한 남자 선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십여  년의 나
이차와는 상관없이  무척 친하게 지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지적이었고
아내가 연극 배우라서 여배우들의 고충을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라 나는 내
게 일어난 남자들의  추근거림을 낱낱이 털어놓곤 했다. 그러면 그  선배는
킥킥거리며, "야, 그 늙은이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고 좋은 역 하나 따지 그
랬냐?" "그 놈팽이 돈 좀  있나 본데 뽀뽀나 해주고 연극 한 편 만들지  그
랬어?" 하며 놀려대곤  했다. 그런 농담들이 거북살스럽지 않았던  것은 이
분야의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선배인지라 나에 대한 안쓰러움을 역
설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역겨
운 일을 당하고 그 선배에게  술에 취해 울어버렸는데 그날 선배는 여느때
와 다르게 ㄱ은 표정으로 말했다.
  "넌 금팬티 입었냐?"
  "??"
  "뭘 그렇게 비싸게 굴어. 한번 벗어주면 될걸."
  "선배님!"
  "인석아, 겉으로만 드센 척하지  말고 좀 강해져. 이젠 그런 일로 이렇게
비참해하지 않을 때도 됐잖아. 프로가 달리 프로냐?"
  선배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 수 있지만 그날은 분한 마음에 펑펑 울어대
기만 했다.
  가끔 연예 가십란에 실리는 '모  여배우의 성공 뒤엔 모 감독이... ' '인기
정상의 여배우 진짜  몸값' 'PD들에게 몸 바친  여배우들' 등등의 기사들을
접할 때면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나도 한창 때 금팬티  벗었다면 한가
닥할 수 있었을까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성에  대해 빨리 눈이 뜨였거나,
이렇게 해서든지 성공하고 싶었다면 나도 육탄공세를 폈을지도  모른다. 그
러나 그건 자의든  타의든 결코 옳지 않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배우들에
관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끊이지 않지만 사실 그건 극소수에 해당하는 일일
뿐이다. 매스컴의 위력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때때로 조작된 일도 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며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특히
이 분야에서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소위 연기예술을 이뤄내기 위해 굳건
히 버티는 여배우들이 참으로 많다.
  '결혼'이나 '남편'이란 단어를 생각해본다면 처녀 시절 순간의 호기심이나
방종으로 팬티를  벗어제치는 게 얼마나  아찔한 일인지 모른다.  성적으로
미숙했던 나의 '모르는 게 약이 되었던 시절'의 얘기다.


    결혼이 독신보다 좋은 이유
  18세기 말,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는 서구 열강들이 미친  듯이 몰
려들면서 보다  발달된 문명을 무작위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의
조상들은 그 대가성 선심 뒤에 숨겨진 열강들의 야욕을 의심하기보다 처음
대하는 문명 앞에서 당황했고,  그 호란 가운데 나라는 난파선이 되어갔다.
선민의 후예답게 곧  모든 것을 추스르며 다시금 일어나려 했지만,  우리가
다시 우리를 찾기까지는  오랜 고난의 세월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
로 여자들은 그 격동의 시기를 타고 점차 집밖으로 나와 사회에 합류될 수
있는 기회를 얻어갔다.
  일제 항쟁기와 6.25사변  와중에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쓰려져가는  남
자들을 바라보며 여자들은 분연히 일어나 민족의 독립과 전후 잿더미가 된
조국을 일으키는  데 일익을 담당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세월  동안
수세기에 걸쳐 유교주의에 속박당하고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렸던 여자들
은 근대여성, 신여성,  직업여성, 현대여성 등의 이름으로 정체성을  찾아가
다가 21세기를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앞 뒤 수식어없이 '여성'이란 단어
하나로 진정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일반직, 전문직  구분없이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여자들,  그들은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며 직업에 있어서  더
이상 남녀의 경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없던 현상도 더
러 나타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독신 여성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도 그
럴 것이 정열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이 있겠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혼자서 생활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ㄱ이 자유를 박탈당해가며 결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독신을 고집(?)하는 여자들도
있지만, 그야말로  일에 미쳐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혼기를 놓치고  결국
일과 결혼해버린 여자들도 많다.
  내가 서른을 갓  넘겼을 때였다. 새로운 연극이 기획되어 관계된  사람들
이 모이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선배로부터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았
다. 난 거리낌없이 나이를  밝혔고 나이에 비해 한참 어려 뵌다는  기분 좋
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 생각  저 생
각에 잠겨 있던  나는 새삼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벌써 서른이  넘었어?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명절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 의해 확인되곤 하는 나
이였지만 참으로 새삼스러웠다. 연극에 미쳐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은 어느
새 나를 서른이 훌쩍 넘은 여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더 늙기 전에 결혼해야 하는데... '
  하지만 그후로도 수년을  일 속에 묻혀 보내다  보니 결국 서른일곱마저
다 지나버린 한겨울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잘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 K에게  신부화장을 부탁
했다. 그녀는  연극, 영화,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아직 미혼인 분장사였다.
  "영미 씨, 결혼 안 할 거야?"
  "어머 무슨 그런 섭섭한 얘길?"
  "그럼 너무 고르는 거 아냐? 하긴 영미  씨 정도라면 고를 만도 하지. 하
지만 이보슈, 우리 나이가 장난이 아니라니까. 독신주의가 아니라면 서둘러
요"
  그녀는 맘씨, 말씨,  행동거지가 정말 고운 여자였다. 전문직  여자들한테
서 볼 수  있는 다소 드세고 거친  그런 면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천사표'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우리 나이가 언제 이렇게 됐죠? 낼모레 사십 아냐?"
  "난 서른을 넘고 나서 한 5,6년은 기억도 안 난다니까."
  "호호... 나도 그래요"
  남자들은 일과 결혼을 동시에 잘도 해나가는데 여자들 중에는 일하다 결
혼 적령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남자들이 독주하는 이  사회에서
버텨내려다 보니 이성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을 테고,  설사 연인이 생겼
다 해도  데이트 한번 변변하게 할  시간이 없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녀는 한번도 독신을 생각해보지  않았고 언제나 결혼을 꿈꿔왔다는 것이
다. 내가 결혼하고 맞은 처  해 초에 그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끔
통화할 때 결혼 의사를 물으면 역시 대답은 같았다.
  "물론 해야죠.  근데 지금은 함께  공부할 남자였으면 더  좋겠어. 호호...
그건 그렇고, 결혼하니까 어때요? 혼자였을 때보다 좋아요?"
  결혼 후 미혼한테서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  질문에 대
답을 하긴 해야겠는데...  어쨌거나 나는 서른일곱에 노처녀 딱지(?)를 떼고
결혼을 했으니까  아무래도 기분 좋은 얘길  해주는 게 나을 거야!  결혼을
해보니까...
  첫째, 공인된 섹스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사실 미혼의 남자나 여자에게  섹스란 결코 맘 편한 것일 수  없다. 결혼
을 약속한 연인이라도  비공식적인 것일 테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비도덕
적이라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성숙한 사람들이 신체의  자연스
런 요구를 성자처럼 도 닦으며 덮어두고 살 수만은 없는 일이니 사회 곳곳
에선 각종  비밀스런 섹스들이 공공연히  이루어져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결혼이란 것을 통해 "이제 당신 둘은 평생 서로 섹스해도  돼"라고 만인 앞
에 공표가 되었으니 무엇보다 맘 편해서 좋다는 얘기다.
  둘째, 그 맘 편한 섹스를 통해 2세를 얻을 수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결혼이란 것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것은 바로 아이라  했다. 그건 아마도 모성이라는  아주
신비스런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거이리라. 부부  사이가 원만하든 그렇
지 않든 아이란 존재가 부부를 이어주는 강한 끈이라는 그 전설 같은 얘기
는 결혼 후 서로 다툴  때마다., 그러다 급기야 헤어지고 싶다는 유혹에 빠
질 때마다 처방전이 된 게 사실이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처음으
로 천사를 보았다는 젊은 엄마의 말은 참으로 실감나는 얘기이다.
  셋째,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
  사람들은 가족, 친구, 연인  등등에 묻혀 살아가지만 외로움은 오히려 짙
어만 간다. 그러다가  사회라는 거대한 전쟁터에 나가게 되면 외로움이  짙
어져 차라리 두려움이  파고든다. 끝없이 계속되는 공격과 수비 속에서  지
쳐갈 때  자신만의 아군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의
궁국적인 고독이야 어쩔 수 없는 거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부부
란 둘도 없는 '파트너'인 것이다.
  넷째, 후천적 이상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처녀, 노총각 히스테리, 그건 정말 있다. 정작  자신들은 모르거나 부인
하지만 주위에선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다. 온순했던 사람이  과격해진다든
가, 타협적이었던 사람이  고집스러워진다든가, 일상에 대해 객관성을 읽고
자꾸만 편협해진다든가, 별 것 아닌 일에 자꾸 까탈을  부린다든가 하는 이
상심리가 발생하게 된다. 절실히 원하는 결혼이 어찌어찌해서  자꾸 늦어지
면서 점차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결혼이 나 역시 겪었을 것이 틀림
없는 후천적 이상심리들을 서서히  해소하고 다시 정상의 나로 만들어지더
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부부들마다 느끼는 결혼이 독신보다 좋은 이유는  많을 것이다.
나는 살아가면서 그 이유 다섯, 여섯, 일곱들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당신도 좋아?
  속성. 사전에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나 성질'이라고  풀이되어 있
다. 난 결혼 후 가끔 전에 없이 남자의 속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있어 결혼 전의 남자들이란  그저 여자가 아닌 또다른 성일 뿐이었고
아버지, 오빠, 삼촌,  동료, 친구 이상이 아니었다. 다소 이성적으로  특별한
느낌을 주었던 남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남자의 속성을 알 수 있었을 정도
로 심각하지도, 또  오랜 기간 사귀지도 않았다.  남자에 대한 그런 막연한
사고의 결과 부딪치게 된 첫 난관이 바로 내가 결혼한 남자다.
  나의 결혼은 이랬다. 누구나  그렇듯이 우연히 상대를 만났고, 점점 좋은
느낌으로 서로에게 다가서며 결국 사랑한다.  그럼 같이 살자... 뭐 그런 식
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결혼하기까지는 나름대로 힘겨운 순간들이  있었고
결국 이겨내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우린 둘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합쳐
졌다. 그도 내가 게으르고 다소  지저분한 여자인 줄 몰랐을 테고, 나 또한
그가 지독히 예민하며 고지식한 부분이  있고 그렇게 키가 크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결혼 후 그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서로의 적나라한 모습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신감에 서서히 전쟁의 무드로  접어들면서 치
열한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사려 깊다고 생각한 남편의 입에서는 거침없이,
  "넌 화장도 안 지우고 그냥 자니?"
  "피곤하니까 그렇지."
  "넌 원래 그렇게 더럽니?"
  "뭐야"
  시댁에서의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겨우 방에 들어와 잠자리에 푹 고꾸라
지는 나에게 하루종일 빈둥대던 사람이 수고했다고 줄물러주기는커녕 그런
얘길 하다니  얄밉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리고는 장모에게 아내의  실수를
낱낱이 폭로하는 그야말로 치사한 남자인 것이다. 세상에!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쪼잖해?"
  "뭐야!"
  "마누라 잘난 건 하나도 못 보는군. 순 엽전!"
  물론 이 말에  남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투닥투닥 또 한바탕
전쟁이다.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돌아올  때 가끔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사
교적이고 어느 자리에서나 튀는  타입인데 남편은 자기 아내가 사람들에게
주목되거가 목소리 큰  것이 껄끄러운지 내가 신났던  날은 남편의 핀잔이
더 많아진다. 물론 남편은 여자가 활동적인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결코 아
니다. 오히려  내가 작업중인 날에는 혼자  밥 챙겨먹으랴, 아내  챙겨주랴,
텔레비전 소리까지 줄여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아내
가 자기보다 목소리가 커지거나 주장이  거세지면 결혼 전 내가 느꼈던 세
련된 사고는 어디 가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일하기에 망정이지 직장인이었다면  분명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물론 본인은 결코 그럴 리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남편의 작품 성향을 잘 아는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은 그를 보고 할리우
드 작가라고 한다.  조용하고 온순한 타입의 남편은 그의 외모나  성격처럼
시나리오도 테마 위주나 다소 심각한 소재를 다룰 것같이 느껴지지만 막상
은 전혀  딴판인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도 우스갯소리조차 재미있게  하지
못하는 그인데 작품만은  박진감 넘치는 기발한 소재에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코믹성 일색이다.
  "당신 좋아?"
  나는 섹스할 때  몰입하는 타입이다. 남편과의 익숙한 몸짓이지만 늘  마
치 처음 접하는 곳을 탐험하듯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지도 않
고 상대가 말하는 것도 싫다.  그런데 가끔 남편은 그렇게 묻는다. 그 질문
을 들었을 때 처음엔 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반복되는 질문에 그냥,
  "으응.. " 하고 겨우 대답할 뿐이었다. 끝나고 난 뒤 난 그에게 리듬 깨지
니까 섹스중에 말시키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런데도 또 그런다.
  "당신 좋아?"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건 단지 내 기분을 궁금해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남자들의 강한 속성 중 지배욕 말이다.
여자들에게 모성애가 있다면 남자들에겐 정복욕, 지배욕이 있지 않은가. 아
무리 진보적인 남자라도  여자에 대한 지배욕은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
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 더욱 민감하게 여자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것이
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여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키고   있는지 확
인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시무룩해져서 인생이 끝나버린  것처럼 좌절
하거나. 혹자는 다시 힘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대며  별별 노력을 다한
다. 냉온탕을 오가며  성기를 단련시킨다거나, 백사장에서 뜨거운 모래찜질
을 한다거나, 보신탕이니 뱀탕이니 온갖 코리아 몬도가네를  저지르면서 말
이다. 이쯤  되면 지배욕은 속성(屬性)이  아니라 '속되고 천한  성질'이라는
속성(俗性)이 된다. 남자들이란 참! 그렇게까지 하면서 정력을 찾고 싶을까?
하기야 그 노력들의 결과로  아침상이 바뀌고, 용돈이 뛰고, 남편의 위상까
지 변한다면야... .
  어느 날 또 그 질문을 하는 남편에게 나는,
  "당신도 좋아?"하고 얄미운 핀잔을 줄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
다.
  시나리오를 써내려갈 때는  막힘없이 표현해내던 그이건만, 섹스엔  쑥맥
이었던 나를 자신의 멋진 섹스 파트너로 만들며 자유롭게 즐기자고 해왔던
그이건만 역시 남자의 속성은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신 좋아?"라는
물음에 좋으면  좋다, 아니면 아니라고  솔직히 대답해주면 그만이지  단지
나의 섹스를  방해하는 질문을 한다는  이유로 "당신도 좋아?"라고  얄밉게
되물어 그를 괴롭힐 필요는 없었다.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하냐고 물어봤어
야 했을까?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남자의 지배욕에서일  거라는 나의
생각이 맞든 틀리든 나는 섹스 중에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한 부부들은  대개 1년, 2년 해가  지날수록 차츰 성생활도 신혼  때
같지 않고 횟수가 많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모처럼 갖는 섹스
라면 서로 최선을 다해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고 최대의 만족을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깟 속성이니 뭐니 하며 시시콜콜 싸워서 멋진 순간을 망칠
필요가 있겠는가.
  섹스할 땐 섹스에만 충실하자!


    마누라가 기쁨조라구요?
  몇 해 전 나는 기인과도 같은 한의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한의학 외
에도 주역, 사주,  관상, 기 등 동양철학에 통달한 사람이었고  각국에 수백
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 있었다. 일부  제자들은 그의 사후를 대비해  그이
진료실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진료 과정을 녹화하고 있을  정도로 그에
게 심취해 있었는데 한의원에 들어서자  바로 눈에 뛴-역시 제자들이 해놨
다는-그의 상반신 조간은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자칭 허준에 비할 명의라 일컫는  그에게 왜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할 거라는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했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던 중 그에게서 신기한 얘기를  들었는데, 사람들
은 각자 고유의 향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벌이 꿀을  찾아 멀리
날아가 원하는 꽃에 앉는 것처럼  사람이 이성을 만나는 것도 자기가 선호
하는 냄새를 본능적으로  찾아감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울
릴 것 같지 않은 부부도 자기들끼리는 좋아 죽는 것도 바로 같은 맥락에서
라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그에게는 남녀 상열지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같이 간 사람을 통해 나중에 들은 얘기가  걸작이다. 그는 섹스를
좋아해서 그를 거쳐간 여자가 동서를  막론하고 수백 명이 넘고 일흔을 훨
씬 넘은 지금도  그 일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가 대외적으로  공개된다면
여자들의 원한과 고소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했다. 아마도 그에겐  자신
이 주장하는 향기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았나 보다.
  한편 사람들은 여자를  꽃으로 남자를 나비로 비유한다. 대개 남자  쪽에
서 먼저 적극적인 구애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꽃을 찾아 날아드는 나비
의 생태에  비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인데도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남자들도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 기웃거리니 절묘한 일치이다. 오죽하면 '열 여자 마다하는 남
자 없다'는 말이 있겠는가.
  그 한의사의 이상한 주장이나 남녀를 비유한 속설들을 보아도 여자와 남
자가 불가분의 관계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짝을 찾는 데서  끝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여자를 옆에 두고 싶어하는 남자들이다.
  북한 김정일의 소위  '기쁨조'라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에게 최대의
기쁨과 만족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얼마 전  그 기쁨조를 소재로 한
미니 시리즈도 방영됐다. 물론 극화되었기 때문에 다소의  가감이 있었겠지
만 기쁨조 때문에 겪는 여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보고 같은 여자로서 마음
이 아팠다. 그런데  그 '기쁨조'가 우리가 사는 이곳에도  '꽃'이라는 이름으
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식도 아닌 술좌석에 꼭같이  갈 필요도 없는
여직원을 데리고 가서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이질 않나 술을 따르라고 하
질 않나, 노래방에  가서는 상사가 노래할 때마다 여직원을 일으켜세워  춤
을 추라고 하질  않나, 여자들을 향한 성적 농담으로 공공연한  성희롱까지
일삼지를 않나... .
  사업하는 사람들의 술자리에는  으레 여자를 심는 게  당연한 것이 되었
다. 여자가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다 보니 싫어도 그들의 꽃이  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더 한심한 건 자청해서  남자들의
노리개감이 되는 여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작금엔 각계의 여성 단체나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해냄으로써  남자들의 몰지각한 행태들이 다소 근절되
고는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여전한 것 같다.
  "거 술 좀 따르면 어때서 그래? 여자가 말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스 김이 따라주면 좋지."
  "그저 사무실엔 여직원들이 꽃이야."
  남편의 에세이집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 주에는  '내 아내는 기
쁨조였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나는 처음 그 글을  일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다른 남자도 아닌 내 남편이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내용은 그가 나
를 만나  프로포즈하고 결혼하기까지와 처음의  불편했던 성관계를 서로가
잘 맞추어 낼 때까지의 이야기였는데, 문제는 마지막 대목이었다.
 
  아내가 무심코 한마디 툭 던졌다.
  "난 당신의 영원한 기쁨조야."
  그렇다. 나의 아내는 기쁨조였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기쁨조가 될 것이
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언제 당신한테 그렇게 말했어?"
  남편은 피식 읏으며,
  "그건 나의 느낌으로 알 수 있지."
  "느낌으로 알 수 있다구? 내가 충고  한마디 할께. 내가 당신의 기쁨조가
되리라 믿지도 말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를테면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야 바른말이지  나야 말로 우리 마
누라의 기쁨조가 아니겠냐?"
  어쨋거나 아내를 기쁨조라고 표현했다는  건 잠재적으로 그런 생각을 갖
고 있기 때문이라고 쏘아붙이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렇지 않다
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당신 원고니까 당신  의지대로 써요. 언제나 내 원고는  나의 의지를 쓸
테니까."
  "?"
  남편은 내심 내가  자신의 기쁨조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
실 난 그의  기쁨조이길 거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최대의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까우랴. 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기꺼이 기쁨조가 되어줄  것이다. 그것이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
된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게 아닌 순수한 의미라면 말아다.


    아내, 창녀, 정부 그 중에 제일은
  남자들은 왜 바람을 피울까?
  물론 결혼의 신성한 약속을 깨고  바람을 피우는 건 비단 남자들만은 아
니지만 여자의 경우보다 그  수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하긴  남편 쪽이
나 아내 쪽이나 상대를 기만하고  바람을 피우는 데는 나름대로 그만한 이
유가 있겠지.
  처녀 적 제  몸 하나 챙기는 게 다였던  아내의 단정했던 모습에 반했던
남편들은 결혼 후  몸도 맵시도 슬슬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 정신없이 망가지고 급기야 삼십, 사십을 넘어서서는  사는 데
마저 지쳐 그야말로 아줌마가 되어버리는 아내의 변화를 참아내기 힘들 수
도 있다. 더군다나 밖에 나가면 젊고 싱싱한 여자들의  행진이 끊임없이 계
속되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아내의  멋진 모습을 기억해내지 못하게  된
남편들은 또다른 여자를 찾아나서게 된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결혼한 여자들의 사회활동이 보편화되었고,  그녀들
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맹렬히 뛰고 있다. 소위  '미시족'이란 신종어가
나올 정도로 그들은 외모, 실력에서 미혼 여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
려 기혼의 안정됨마저 갖추고 있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커리어우먼들 중에
이혼한 여자들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남편의 바람이 이혼 사유인 경우가 종
종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대할 때마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저
런 여자를 두고 왜  바람을 피웠을까 의문스럽다. 또 세상에 둘도  없을 현
모양처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건 무슨 경우인가?
  섹스 트러블도 바람을  피우는 데 단단히 한몫하겠지만  그건 결코 남자
쪽의 외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남자의 바람기를 생물학적  파종본능이라는 각도에서 보는 학설도  있다.
자손을 얼마나 많이 남기느냐가 수컷에게 주어진 구실이니 생식 행위에 힘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여자만으로는  만족을 못 한다는
것인데 특정한 여자가 따로 있는 경우일수록 남자의 바람기는 고조되기 쉽
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이해해주라고?
  처음 만났을 때의 늘씬하게 잘 빠진 몸매와 세련된  매너, 터프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결혼 5년,  10년, 20년이 지나면서 배는 남산만해지고, 아무데
서나 이쑤시개롤  이를 쑤셔대는가 하면  공공장소에서 거리낌없이 신발을
벗어제치는 등 어느새  추한 모습이 되어버린 남편들, 게다가 아저씨란  이
름으로 저속한 농담까지  일삼는 그들을 아내들은 참아내기  쉬울 것 같은
가?
  "참아라. 그저 여자가 참는 게 집안이 편하다."
  "남자가 바람 좀 피울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이혼이니 뭐니 난리냐?"
  "그래도 죽을 때  되면 다 조강지처를 찾는 법이다.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거다."
  집안 어른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인생을 먼저 살아온 어른들의  말씀
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그러한 충고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부
부가 살아가면서 가난과 병마 등의 재난들은 함께 참아내고 살아가야 함이
당연하지만 외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건 배신이니까. 서로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애정으로 신뢰를 쌓아 외도와 같은 시련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일이 발생하면 어른들 말씀처럼 참고  기다린다는 소극
적인 자세는 결코 현명한 것이 아니다.
  내 나이 스물이 넘고서의 일이다. 친정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던 중
어민에게서 아버지의 외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뛰어난  외모에 지혜로운
어머니, 가난한 경찰에게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집안을 일구고  남편을 위해
아낌없는 내조를 해준 현모양처, 그런 어머니를 세상에 둘도  없이 알고 사
랑하였던 아버지가, 그것도 고지식하고  가족밖에 모르던 KS마크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니!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내가 네 살이 되던 해라니까 두 분이 결혼한 지
한 7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전극  다니시던 아버지
를 따라 어는 군에 머물러 살고 있었다. 아버지뻘 되는 군수에게 'DD군 미
며'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던 어머니에게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직원 부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무얼 말하려는지 주춤거렸다.
  "무슨 얘긴데 그래?"
  "저... 사실 당신만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야."
  "뭘 말이야?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어서 말해봐."
  "오과장님이 시내 술집의 주인 여자와 사귀고 있대."
  어머니는 깔깔  웃으며 그럴 리 없다고  했고, 그 부인은 혼자만  모르고
있는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얘기한다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다음날, 어머니와 그녀는 그 술집으로 가 먼발치에서  꽃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인 여자를 훔쳐보았다.
  "세상에 저런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니!"
  어머니는 그  여자를 뚱뚱하고 못생긴  어느 탤런트와 비유해  설명했다.
당시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어머니에겐 참으로 치명적인 배신이었고 충격
이었다.
  그날 밤 조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자
신이 알게 되었음을 전하며 시인을 요구했다.
  "어떤 미친년이 그런 말을 해! 누가 그랬는지 말해! 내 가만두지 않겠어!"
  아버지는 도리어  버럭 소리 지르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런  공방전이
밤새 계속되자 안 되겠다. 싶은 어머니가 꾀를 내었다.
  "사실 내가 당신이 시인하길 바라는 건  당신 직업 때문이에요. 공무원이
이중살림 한다는 게 소문나면 당신은  파면당하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 가
족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남들이 알기 전에 그 여자를 만나 정식으로
한 살림  차려주려고 그러는 거예요. 나도  여잔데 왜 속이 쓰리지  않겠어
요? 하지만 우리 가족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니 잘  생각하세
요."
"......"
   '공무원의 이중살림' '아내의 눈물겨운 양해'등의 말에 아버지는 깜박 넘
어가 그만 시인을 하고 말았다.
  그 순간 어머니는 앞이 깜깜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부인해주길 바랐다는 것이다.
  조만간 셋이 한자리에 만나 의논하자고 아버지를 달래  출근시키고, 할머
니와 시집 안  간 고모는 아이들을 딸려 마실  보내고 한자 남은 어머니는
죽음을 준비했다. 가끔  불면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구해다준
미제 수면제를 먹고 세상을 하직하기로 한 것이다.
  "엄마, 그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막내인 내가 눈에 밟히지 않았어?"
  죽는 것밖에 복수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자 자식도 친정 어머니도 안 보
이더라는 것이다. 부부는  이심전심이라던가. 직장에 나간 아버지는 이상하
게 불안해서 손에  일이 잡히지 않더란다. 어머니가 깨끗이 옷을  갈아입고
수면제를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 방문이 부서지며 아버지가 들어섰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흥분한 아버지는 "그깐 년이 뭔데 니가 죽냐?" 정녕 죽으려면  같이 죽자
"고 소리치며 권총(당시  자유당 시절에는 경찰 간부가 총을 소지할  수 있
었다)을 꺼내 장전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당신이 좋아한 걸 보니 나보단 나은 여자일 테니까 우리 아이들이나 잘
키워줘요."
  "좋아, 같이 죽자는 거군."
  아버지가 총을 겨누는데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것이라던가? 급히 몰려온
이웃들에 의해 다행히 총격전(?)은 피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일주일만에 전격적으로 아버지의 전근이 이루어  졌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  일을 전해들은 서장 부인이 입김에 서장
인들 어쩌겠는가. 우리 가족은 소리 소문 없이 그곳을 떠났다.
  후에 직원  부인들로부터 전해진 그  술집의 여자 얘기인즉,  "남편 죽은
후 오과장한테 처음  7년 절개를 바쳤는데 이럴 수는 없다.  오과장하고 강
가에서 한 약속은 아무도 모른다"며 울고불고 죽는다고 난리였다 한다.
  "여보, 그 여자하고 강가에서 했다는 약속이 뭐예요?"
  "기억도 안 나.  남자들이 여자 하나 자빠뜨리자면 무슨  소린들 못 하겠
어?"
  아버지는 "내가 형사들을  많이 겪어봤지만 너 같은 형사는  처음이다"라
면 어머니의 바람 잡기 꾀에 질리고 말았단다.
  두 분의 결혼생활  가운데 유일무이했던 아버지의 그  바람 얘기를 마친
어머니의 충고 한마디.
  "이 담에 남편이 혹 바람을 피우면 자살극이든 어떤 처방전이든 절대 제
스처로 하지 말고 진짜로  실행해야 해. 그래야 한번에 잡고 두  번이 없게
되지."
  한마디로 분명하게 처리하라는 말씀이다.
  아무튼 이렇게 한바탕 남의  가정을 뒤집어놓는 정부보다는 창녀가 훨씬
담백한 성관계일 수  있다. 그녀들은 돈을 받고 한번의 정사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적어도 가정파괴범이 되지는 않는다. 창녀가 필요악이라는  말도 어
쩌면 그들의 존재로 오히려 남자들의 성범죄를 어느 정도 차단시키기 때문
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 창녀, 정부. 그 중에 제일은  말할 것도 없이 아내다. 세상 어떤 남
자한테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같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과 같은 IMF시대
엔 더더욱  조강지처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내들이여!
자만하지도 방심하지도 말자.  남편도 마찬가기지만 긴장하며 살자. 긴장엔
실수가  없다. 부부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 관심과  긴장이라고 생각한다.  
IMF국난 이전에 살 판 났다고 술이며,  친구, 여자들을 찾아 밖으로 나돌던
우리의 남편들이 이제는  고개 숙이고 아내의 품으로 귀향하고 있다.  뭐니
뭐니해도 영감에겐 마누라밖에 없다고 그런 남편을 가슴 활짝 열고 안아주
자.


    섹스 트러블에 관한 짧은 보고서
  한 통계에 의하면, 이혼한 남녀들의 그 사유들로 성격이 맞니 않는다, 시
댁과의 갈등이 심하다,  구타, 의처증이나 의부증 등을  참을 수 없다 등등
가지각색이지만 실제 파고들어가면 섹스  트러블이 문제가 된 경우가 90퍼
센트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다.  섹스는 부부생활에 있어 분명히 중요한 것
이다.
  미혼 시절  난 섹스를 피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랑이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남자들은 본능적이고  돌발적일
수 있다지만 여자인 입장에서 섹스란 참으로 로맨틱하고 경이로운 것이 되
어야 한다  등등. 그런데 결혼 후  남편과의 섹스에 접하면서 나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로맨틱하고 경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섹스가 일상생활에 미묘하고 섬세하게 미치는 영향들이 심각하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섹스 트러블이란 상태를 겪으면서 더  적
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섹스 트러블, 그것은  이를테면 거부, 강제, 무지, 부끄러움, 애정없는  행
위 등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섹스의 부작용을 의미할 것이다. 남녀가  처
음 사랑에 빠져 아주 뜨거울 때의 섹스는 서로 몸이 합쳐진다는 것 하나로
도 충분하다. 그러나  부부생활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서서히 신선함이
떨어지고 결국 매너리즘에  빠지면 각종 트러블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  남
자들의 일방적인 요구와 여자들의 소극적인 태도 등도 원인 될 수 있다.
  결혼 2년이 되어가던 해 어느 날이었다.
  "한번 할래?"
  "......"
  "싫어?"
  "......"
  "싫으면 왼발을 들고, 좋으면 오른손을 들어봐."
  남편은 서슴지 않고 왼발을 번쩍 들어보인다.
  "체! 싫으면 관둬!"
  그럴 수도 있다. 이젠 더 이상 얼굴만 마주쳐도  침대로 달려가던 신혼은
아니니까. 그리고 며칠이  흘렀을까? 남편에게선 여전히 섹스에 대한  어필
이 없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한번 할래?"
  "나중에"
  "아냐. 난 지금 하고 싶어."
  "난 나중에 하고 싶은데... "
  "그럼 관둬! 나중에든 언제든 이제 난 안 할 거야."
  "......"
  남편은 하기 싫은  걸 요구당하거나,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마치  어린아
이처럼 시무룩해진다. 난 그에게 톡 쏘아붙이고 작업실을  나왔지만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그때는 원고  넘겨 줄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작가란
직업은 그랬다.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응집해낸다는 것이 결코  단순한 일
이 아니다. 때때로 글이 잘 안 풀릴 때나, 원고 넘겨줄 날짜가 임박했을 때
는 몹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나 역시  글쟁이인데 그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두 번째 거부엔 상황에 상관없이 약이 올랐다.  그건 영화관에 가자
고 했다든지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을 때 거부당하는  것과는 분명히 달랐
다.
  남편이 원고를 넘기고 난 며칠  후 나는 뭔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부러 다가갔다.
  "한번 할래?"
  "이따 저녁에."
  "난 지금."
  "이따 저녁에 하자니까."
  "벌써 몇 번째야?"
  "뭐가?"
  나는 가만히 남편을  응시했다. 순간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남편은  얼른
미소를 띠며,
  "그으래, 그럼 지금 하지 뭐."
  "싫어!"
  홱 돌아앉는 나를 끌어안으며 당장 하자며 장난스럽게 치대는 남편을 차
갑게 뿌리치며 안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엎어졌다.  그는 문 열
라고 날리다. 그러다 문득 소리가 그치고 조용하다. 그 순간 나는 목젖으로
뜨거운 무엇인가가 치받으며  닭똥 같은 눈물이 솟구친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인데 이유야 어떻든 거듭되는 남편의 섹스 거부에 난 심
한 모욕감을  느꼈다. '난 내가  별로일 때도 자기를 받아줬는데.  지금까지
거부한 두 배, 세 배로 괴롭힐 거야' 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남편도 싫고  글쓰는 것도 싫고, 집안  정리하는 것도 싫고, 심지어
외출하는 것도 싫어졌다.
  며칠 뒤, 남편은 섹스를 하자고 졸랐다. 난 '잘 걸렸다. 절대로 응하지 말
아야지' 하고는
  "싫어."
  "왜?"
  "그냥."
  "정말?"
  "응."
  남편은 그럼 나중에 하자며 매너있게 물러섰다. 그러다 그  이후 두어 번
더 거절당하자 이상하게 생각되었는지,
  "너 왜 자꾸 그래?"
  "뭐가?"
  "몰라서 물어?"
  "당신도 언제부턴가  자기 하기 싫으면 내  기분하고 상관없이 거절했잖
아. 난 그러면 안 돼?"
  "나 참, 그땐 그때고... 에잇!"
  남편은 강제로 나를 덫치려고 했다. 그렇다면 질 내가 아니다. 둘은 한참
을 실랑이하다 결국 남편이 두 손들며 물러났다. 나는  그후로도 그를 두어
번 더 괴롭혔다.
  "야 항복이다. 다시는 내  기분만 앞세워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 야 한번
만 주라, 응?"
  나는 남편의 완벽한 항복을 받아내고야 비로소 나를 열었다.  그날 밤 우
리는 한 달여의 끌고 당기는  자존심 싸움을 끝내고 모처럼 뜨거운 만리장
성을 쌓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는 후 한참을 나 혼자  고민하게 하는 문제가 발생했
다. 그건 남편의 몇  번의 섹스 거부를 겪은 후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성
욕이 감퇴된 것이다. 서로가 원할 땐 언제나 요구하고  받아주는 것이 당연
한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아마 거듭 거부하는 남편에게서 모욕감을 느꼈
던 모양이다. 게다가 강제로라도 나를 거꾸러뜨리려던 남편의 태도에 실망
한 것 같았다. 일종의 섹스 트러블을 겪게 된 것이다.
  난 결국 남편에게 그 문제를 털어놓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그를
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부부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섹스 파트너와는 섹스의 요구도, 그것
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또 거부할 때는  보다
솔직한 이유로 상대를 이해시켜 기분을 달래주어야 함을 잊지 말자.
  나의 위와 같은 경험 외에도  세상의 부부들은 그들 나름대로 섹스 트러
블을 많이 겪고 있을 것이다. 술에 만취되어 들어와  강제로 섹스를 집행하
는 남편, 체위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남편, 애정없이 의무적으로 치르
는 부부, 여자라는 이유로 수동적이기만 한 아내... 그 많은 종류의 섹스 트
러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대화가 가장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다.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야지 혼자  속앓이하며 시간만 끌어봤자 그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이브가 눈뜰 때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항상 주택가를 가로  질러 오라고 이르셨지만
난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집 쪽을 거쳐 길게  뻗은 기찻길로 다니곤 했
다. 그 기찻길  한편으로 아카시아 나무들로 들러쳐진 큰 과수원이  있었는
데 우리는 늘 그곳에서 한참 놀다 오곤 했다.
  머리를 퍼머한답시고  아카시아의 작은 줄기들을  따서 이파리를 떼내고
홑으로 남은 줄기를 머리 가닥가닥에 나선형으로 꼬아대고,  머리가 꼬불거
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아카시아 꽃을 따먹거나, 개미집을 찾거나  하
는 일들로 풀숲을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몹시 흥분되는 얘기 하나를 들려 주었다.
  "아무개 있지? 걔가 요즘 왜 결석하는 줄 아니?"
  "선생님이 아프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야."
  "그럼?"
  "글쎄 걔가 애기를 낳았대."
  "정말?"
  나와 또 한 친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가 봤는데  그 얘가 화장실에서,  글쎄 거기로 피를  흘리더니 아기를
낳았다는 거야."
  "어머! 그럴 수가!"
  그러니까 그 아무개란 아이는 나이보다 조숙해 월경이 빨리 시작했던 것
이다. 사전 지식이 없었던 아이는 화장실에서 갑자기 일을  당하고 놀라 집
으로 달려갔을 것이고,  그 일이 친구들에게 알려진 것이 부끄러워  결석까
지 하다가 급기야 부모에게 생떼를 써서 결국 전학을  갔던 것이다. 그애의
전학 소식은 우리들에게 출산(?)이란 소문을  확신시켜주었고 더 무수한 소
문들을 만들어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왔다. 그리고  난 중학
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월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었
다. 수업이 시작되자 처음 듣는 얘기들이라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수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겪었던 그 이야기
가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후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나도 월경이
처음 시작했다. 곧바로 어머니에게 알렸고 어머니가 모든  사후처리를 해주
셨다.
  "엄마, 이건  절대 비밀이야.  아빠한테나 오빠들한테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약속할게."
  그날 저녁 아버지가 내 방문을 빠끔히 여시고 한번 웃어보이고는 나가셨
다. 말하나마나 어머니의 배신이었다.  난 며칠을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
족들하고도 말하지 않고  지냈다. 어머니의 배신 때문만이 아니고 그냥  화
가 나고 분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생리대가 성기에 닿을 때마다  나는 야릇한 기분을
느꼈는데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성적
체험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월경이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계속되면서
차츰 그러한 기분도 없어지고, 어쩌다 체육시간과 맞물리는  날이면 귀찮고
짜증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의 일이다. 반  학우들 사이에 책상 밑으로 소위 '빨
간 책' 이란 것이 오고갔다. 나도 한 친구로부터 그 책을 건네받아 방과 후
커튼 뒤에 숨어 읽었는데, 그때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날 밤은 정말  너무나 놀랍고 신기해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하면서 인체생리학을  통해 여자와 남자의
육체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아이가  태어나는가를 비로소 아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성인이 된  후라 성경험이 있는 친구들의  입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그러한 정보는 학문에서  얻었던
것보다 훨씬 실감나게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내가 그 어린 시절부터  월경, 성과 그로 인한 임신, 출산을 자세
히 알게 되기까지 실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것도 학교 교육을  통해 받
았던 성교육은 중학교  때 딱 한번으로 거억되고  나머지는 귀동냥으로 안
것이다. 영양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나의 성교육은 얼마나 더 오래  걸렸
을지...
  요즘은 성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모쪼록 분
명한 의지와 사랑을 가지고 하는 일이기를 바란다.
  보통 평범하게 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어떨
까?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찔한 생각
을 했을 것이다. 뉴스나 신문의 사회면에서 아동 성학대 미혼모, 십대 윤락
녀 등등의 사건을 접할 때마다 어른들이 보다 서둘러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지 않았겠나 생각하게 된다.
  내 아이가 커서  "엄마, 애기는 어디서 나와?" 하고  묻는다면 난 어떻게
대답해줄까?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훔쳐보기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셨다. 그해 우리  가족
은 평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부모님이 노후를 조용한  곳에서 목축을 하며
지내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당시 큰오빠는 유학을 떠났을 때고, 작은오
빠는 대학 졸업을 한 해 남겨두고 있었다. 목축업은 시에서 평균 3,4킬로미
터 떨어진 곳이라야 했기 때문에  자연 우리집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
딴 곳이었다. 그곳과 시내를 연결하는 버스는 두어 시간마다  한 대씩 다녔
고 운전사도 셋이  번갈아 했다. 파리채로 파리를 잡아가며 세월아  네월아
운전하는 예순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 끝없이 입담을 늘어놓는 50대  중반
의 아저씨, 그리고 겨우 서른이 넘었을 우람한 체격의  젊은 남자가 그들이
었다.
  그날은 한여름이었는데 유난히  더운 날이었다. 비포장길을 달리는  버스
는 심하게 덜컹거렸고 활짝 열어제친 창문으로 희뿌연 연기가 자욱이 흘러
들었다. 젊은  기사가 운전하는 그 버스  안에는 나를 비롯해 겨우  대여섯
명이 타고 있었다. 나는  운전을 배울 것에 대비해 미리 보아둔다고  맨 앞
좌석에 앉아 운전하는 것을 주의  깊게 지켜보곤 했는데 그날 나의 시선엔
가사의 손놀림보다는 다른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건  팔꿈치까지 걷어
붙인 꼬질꼬질한  셔츠 아래 근육질의  팔뚝이었다. 그리고 땀으로  흥건한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며 목으로 내 시선이 옮겨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를 훔쳐보며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 얼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까지 한번도 성적 경험이 없던  나는 속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나 자
신이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름 몇 번을  더 그렇게 그를 훔쳐보았다.  그는
잘생기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흔한 시골  청년일 뿐이었는데 도시에서
자란 건방지고 오만한  여자가 왜 그에게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목욕탕이나 수영장에서  다른 여자들의 몸을 바라보길 좋아한
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싱싱한 여체를 발견할 때면  이상한 감흥에 젖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까이 다가가서 만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고 보면 내겐 원래 시각적인 것을 통한 성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훔쳐보기와 관음증은 엄격히 차이가 있다고 본다.  훔쳐보기는 단순
한 성적 호기심이고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관음
증이라 일컬을 정도가 되면 이미  자기 통제를 벗어나 병적인 상태이기 때
문이다. 훔쳐보기 등의 적당한 성적인 자기표현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라 생각한다.
  결혼 후 남편과의 자연스러운 성생활을 통해 나는 성에 대해 더 이상 편
향적이지 않게 되었고, 우리의 닫혀진 성문화가 일상생활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에이, 보지마!"
  그래도 내가 꼼짝않고 보고 있으면 남편은 더 약이 오른다.
  "치사한 자식!"
  언제부턴가 나는 남편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쪼르르 달려가 그 앞에 쪼그
리고 앉아서 그 모습을 올려다본다. 그러면 그는 질색팔색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해해줘. 남자가 소변 누는 걸 여자가 어디서 볼수가 있겠어?"
  "그래도 보지 마!"
  남편은 여전히 난리를 치고, 난 어떻게서든 꼭 보고야 만다. 문을 잠그면
열쇠로 따고서라도 보고야 만다. 왜내하면 너무 신기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일하게  속내를 주고받는 친한 친구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
다.
  "요즘도 그렇게 뜨거워?"
  "글세, 언제부턴가 하는 것보다 보는 게 더 좋더라구."
  "보는 게 더 좋다구?"
  내가 화장실 훔쳐보기에 대해  얘기해주었더니 친구는 배꼽을 잡고 웃었
다.


    오 놀라워라!
  "누구든지 먼저 가는 사람이 다 말해주기야."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병  셋이 모여 누구든 먼저 결혼하는 사
람이 섹스에 대해 다 말해주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문,이과로 혹은  반이 갈려서도 우정을  함께
했던 절친한 사이였다.  70년대 말인 당시는 고등학교의 이성 교제가  지금
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다 남학생을 만나는 걸  지도교사에게 들키기라
도 하면 즉각  무기, 유기정학이나 심지어는 퇴학을 당하기도 하는  실정이
어서 우리에겐 이성에 대한 모든 것이 닫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궁금한 게 얼마나 많았겠는가.
  대학을 가기도 하고 바로 취직을  하기도 한 우리는 수시로 만나 수다를
떨거나 여는 젊은이들처럼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정신없이 쏘다니기도 했
다. 그러다 집안 사정상 대학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한  한 친구가 드디어
남자와 관계를 맺었는데 그 친구에게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
것은 결혼 전에 그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녀 자신이 우리를 멀리했기 때
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혼전 섹스란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
다. 게다가 그 친구는 결혼해 훌쩍 미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연락마저 끊
어지고 말았다.
  남은 나와 내 친구는 여전히 만남이 지속됐고, 그  친구는 스물여덟이 되
던 해에 결혼했다.
  "야 어땠니?"
  "뭐가?"
  "뭐가.. 그거 말야."
  친구는 피식 웃으며,
  "니가 결혼해서 직접 알아봐."
  "배신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  옛날의 약속을 들먹이며 협박해대는 나
에게 끝까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
소 부부관계를 털어놓았다.
  "하면 느낌이 어때?
  "난 잘 모르겠어. 아주 이상한 느낌이 한순간에 지나가지만 너무 짧고..."
  "오르가즘?"
  "그게 그거겠지. 아무튼 난 별로야."
  "근데 왜 해?"
  "하자 그러니까."
  이 친구뿐 아니라 다른 결혼한 여자들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
기 때문에 나에게  섹스란 그저 그런 거고, 부부생활에서 의무적으로  치러
지는 것쯤으로 알고 있었다.
  남편과의 첫 관계가 있던  그날 밤, 일이 끝나고 벗은 채  창가에 기대서
서 담배를 피우던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대체 무슨 생각
을 저렇게 하는 걸까?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나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어젯밤 창가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어요?"
  "뭐 그냥... 감격스러워서."
  "감격스럽다니오?"
  "생각해봐. 무려  십여 년 만에  여자를 대했는데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말야. 그런데 감격스럽지 않겠어?"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었다.
  처음 관계를 갖은 후  난 별 느낌이 없었고 '역시 듣던 대로군'  했다. 그
런 나를 남편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순간 아주 새롭고 경이롭기까지 한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그렇게 열
리기 시작한 내 육체는 걷잡을 수  없는 열정 속으로 남편과 나를 몰고 갔
다.
  "난 니가 성적으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
  "??"
  남편의 말인즉,  처음 나와 관계를 맺었을  때 느낌이 전혀 없어서  무척
실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의 성생활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같은 직업
을 가진 동료로서 의지하고 격려하는 관계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기  자신이 그 언젠가 조루에 가까운 지경이었음에도  결
국 피나는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했던 것을 상기하고 나에 대해서도 노력해
보기로 하였단다. 나의  반응이 차츰 변하고 드디어 섹스 파트너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었을 때 남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단다.
  "그런데 그때 왜 감격스러웠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럼 실망했다고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냐?"
  "체!"
  그는 섹스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어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주저함에서
천천히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성의 어떠한 표현도 내겐 더  이상 금기가 아
니었고 그와의 또 다른 대화방식이 되었다. 난 남편과의  섹스를 통해 새로
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것은  섹스 그 자체의 희열 외에 생활  전반에서 닫
혀 있던 나의 사고를 아주 자유스럽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저 그렇다' '그냥  하는 거지 뭐'라는 식의 말은 그만  하자. 우리 부부
도 처음부터 잘 맞았던 건 아니다. 기대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함으로
써 이루어낸 쾌거였다.  물론 성생활 없이도 잘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섹스가 부부 사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볼 때 결코 간과할 수는 없는 일
이다.
  요즘 같은 경제난국에  외식을 시켜준다, 옷을 사준다 하는 것보다는  침
대 위에서의 멋진 사랑으로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내를,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 아닌가?


    음식남녀
  친정 어머니의 요리솜씨는 주위에 칭찬이 자자할 만큼  뛰어나다. 어머니
는 한식은 물론이고  중식, 일식, 양식에 이르기까지  못 해내는 것이 없었
고, 한번 우리집에서 김치나 된장찌개, 냉면 등을 먹고 간 사람들은 두고두
고 얘기를 한다.  출판계에 몸담은 적이 있던 작은오빠는 어머니의  요리를
책으로 펴내자고 조르기도  했다. 그런 친정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요리
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무척 재미있어한다.
  요리는 재미있고 신기하다. 그건  정성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조
금이라도 방심하고 대충대충 했다가는 실패하고 만다. 나는  어떤 음식이든
만들기 전에 미리  조리과정을 충분히 입력하고 시작한다. 먼저 모든  재료
를 썰거나 씻어 준비해  놓은 다음, 순서를 정하고 알맞은 양과  불의 세기
까지 체크해가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상에 내올 때는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릇을 꺼내어 장식한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어떤 음식이냐는 테마에  해
당되고, 재료는 소재,  각 재료들이 순서대로 들어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인물구성인 것이다. 드라마가  그렇듯이 조리 과정도 불의 세기에 따라  조
정되는데 음식의 성격에 따라 아주 강한 불에서 약하게,  또는 처음부터 약
하게 등등 서로 밀고 당기면서 완성되어간다.
  남자들은 성을 음식에 비교하기도 한다. 아내는 주식이고  바람피우는 상
대는 외식이라나? 남자들은 "사람이 가끔 외식도 좀  해야지"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는데 아마 여자들이 같은 말을 했다면 기가 차서 혀를 내두를 것
이다. 여자들 입은 입이 아닌가?
  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입맛이 결코 한 음식에 만족하지 못
하고 끊임없이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요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
로 다른 여자에게서 또다른 쾌감을  찾으려고 할 게 아니라 아내에게서 새
롭고 깊은 맛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마느라 이젠 다 헐어빠져서 재미없어."
  "맨날 마누라하고만 하니까 재미가 있어야지."
  "한번쯤 다른 조개를..."
  다른 조개를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런 말하는 남자치고 아내를 지극 정
성으로 보살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체는 마치 '신비의  산' 같아
서 죽을 때까지 산행을 하여도  그 산봉우리들을 다 정복하지 못한다고 한
다. 남편들이 보다  깊은 애정으로 아내의 육체를 탐험해본다면 미처  발견
하지 못한 신세계가 있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여인, 자기만의 여인의 그
신세계를 놔두고 웬 외식타령, 조개타령이란 말인가?
  부부간의 섹스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체위만 고집하지  말고
여러 형태의 체위를  실행하면서 때마다 새로운 쾌감을 갖기도 하고,  때론
부드럽게 때론 뜨겁게 상대를 유도해보자.
  그러고 보면 섹스와 조리는 비슷한 데가 아주 많다.  할수록 재미있고 신
기한 것이나 언제나 정성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점 등이다.
  생존을 위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입에 넣는 것처럼 부부간의 성생활도
의무방어로 그치게 되면 삶의 환희도 소중함도 영영 느낄 수가 없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구관이 명관이라고!


    강간당하고 싶어!
  몇 년 전 개봉된 한국영화 중에 '성애의 침묵'이란  것이 있다. 그 영화는
우리 나라 모 여배우와 '엠마누엘'로 유명해진 외국의 한 에로 배우가 함께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영화가  내게 인
상 깊었던 것은  영화의 소재였다. 그것은 강간의 후유증을 다룬  것이었는
데, 강간을 당한 여인이 그 충격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간당할 때 느꼈던 성적 흥분을 갈구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결
국 그녀는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자신이 마치 강간을 당하는 것처럼 연출
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변태스런 성애까지도 행하게 된다.
  강간, 말 자체로만 본다면 폭행, 협박 등을 하여 강제로 섹스를 감행한다
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분명한 사회범죄다. 의도적 혹은  돌발적으로 저질러
지는 강간의 충격은  당한 여자들에겐 사건이 일어난  당시보다도 그 이후
오랫동안 삶의 여러 부분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게  된다. 그 고통은
주위의 보살핌으로도 쉽게 치유되지 않고 속으로만 깊이 파고들어 결국 수
렁 속에 빠져버리곤  하는 것이다. 결혼의 파탄, 자폐, 자살  등으로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기게 되기도 한다. 저지르는  사람은 순간이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상처인 것이다.
  그런데 강간을 당한  당사자가 강간당할 때 느꼈던  이상한 성적 흥분을
다시금 느끼기 위해 스스로 강간을  연출하다? 누구라도 미쳤다고 할 것이
다. 그러나 한편, 모르는  남자에게 그것도 강제로 당하게 된다는 상황이란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육체는 또다른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다.
  훔쳐보는 걸 즐기는 어떤 남자가 이웃집 여자를 눈여겨보다가 하루는 강
도가 들어와 그녀를  겁탈하고 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남자는  자신이
몰래 훔쳐보고 있던 상황이라 신고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다. 그런데 며
칠 후 또 강도가  들어와 그녀를 겁탈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서너 번이
계속되자 남자는  안 되겠다. 싶어 익명으로  신고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를 강간한 남자는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들  부부는
성생활의 변화를  갖기 위해 일부러  강간극을 벌였단다. 남편은  남편대로
겁탈에서 오는 그  어떤 성적 흥분을, 아내는 아내대로 강간당하는  과정에
서의 그 어떤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다.
  강간은 절대적으로 근절되어야 하지만  부부간에는 가끔 강간과 같은 좀
색다른 형태의 섹스도 괜찮은 것 같다.
  "당신 오늘은 나를 묶고 해볼래?"
  "??"
  도발적인 내 제안에 남편은 어ㄹ둥절해한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웃어
넘기려는 그에게 나는 강력히 주장했다.
  "정말?"
  "정말!"
  그도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나를 창틀에 묶고 입을 테이프로 막고는 겁탈
(?)을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의 장난스런 섹스 연출이었음에도 그의
몸이 서서히 나를  육박해오자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반항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상스런 쾌감이 온몸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일이
끝난 후 남편 역시 겁탈 과정에서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후 우리 부부는  가끔 이상한, 그러니까 변태적 섹스를 감행하기도  하
는데 그건 아주 재미있고 신선하다.
  부부간의 섹스에서  변태란 없다고 생각하낟.  물론 책찍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건 반대다. 서로  오일을 발라준다든가, 몸에 와인을 뿌리고 핥아
본다든가, 부부 성 클리닉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체위를 시도해본다든
가 하는 식으로 아주 색다른 쾌감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일상에 활력이 될 것이다.           
    

    개인교수
  나는 다른 평범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섹스에 있어 몹시 수동적인 여자였
다. 그러나  나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결혼 초부터 남편에 의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을 땐 언제든지 말해."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남편은 섹스란 부부간의 또다른 대화라도 말했다. 그는  부부가느이 자연
스런 대화처럼 섹스에 대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주고받아야 한다고 주장
했다. 그래도 처음엔 내가  먼저 섹스를 요구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러나
차츰 하고 싶을 때 분명하게 말하는 여자가 되었다.
  남자는 포르노 영화를 보거나 여자의 누드잡지를 보다가도,  심지어는 길
거리에서 여자의 늘씬한  다리를 보고서도  성욕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느끼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월경을 전후해서 두어
번쯤 남자의 부드러운  애무로 성욕을 느낀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글
세... 정말 그럴까?
  천만에 말씀! 여자 역시  포르노 영화나 누드잡지를 보고 성욕을 느낀다.
남자처럼 아주 돌발적이지 않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여자들이 성욕을 느낄 때  감히 남편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
한다는 것이다. 왜? 괜히 얘기했다가 정숙하지 못하다는 핀잔이나  들을 게
뻔하니까.
  나는 부부간의 성생활의  80퍼센트는 남자, 20퍼센트는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방적
으로 섹스에 돌입하고, 아내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편과  섹스하고 싶어
도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거나 남편이 원하면 싫더라도 그냥 받아들이
는 수동적인 태도는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다.  성에 있어 소극적이고 수
동적인 여자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남편들은 적극적으로 아내를 이끌어주어
야 한다. 그런  견지에서 남편 쪽이 아내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는 변화와 노력으로 닫힌 성에서 열린 성으로 기어코 나와야만 한다.
  남편이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나 또한 언제까지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아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뜨
거울 땐 창녀의  모습으로, 그가 뜨거울 땐  숙녀의 모습으로, 뭔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을 땐 소녀의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선다.
  남편은 자신의 에세이집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에서 '가장 완벽
한 섹스란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엔 동감하지만, 난 완벽한 섹스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로를 위
해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끊임없이 관
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가 섹스하고 싶을 때 내 개인교수(?)한테 가서 이렇게 말한다.
  "한번 할래?"
  혹은,
  "놀러 올래?"


    이제 나도 프로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프로는  되기도 어
렵거니와 그것은 지켜나가기도 어렵다. 어떤 분야에서 세상의  인정을 받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시나리오 작가로서  프로가 되고 싶다. 물론 돈을 많이  받고 적
게 받는 측면이 아니라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같
은 글임에도 문학에 속하지도 않고 상업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
지도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문학을 하는 글쟁이와  같은데 상업작가라는
입장에서 볼 때 쓰는 대로 벌지 못한다는 것이 좀 씁쓸하다.
  전에 내가 연극을  했을 때는 공연 후  무일푼의 상태에서도 정신적으로
난감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한편 내가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들게 된 것도
물질적인 면에서 연극보다 나을 거란 유혹으로부터 시작된 건 사실이다.
  "선배님, 시나리오 쓰면 돈 좀 돼요?
  "글쎄..."
  우연히 한  모임에서 연극 배우였다가  감독으로 전환한 선배를  만났다.
그날 화제 중  시나리오에 대한 것들이 있었는데 한  편당 35mm는 얼마고
16mm는 얼마다 하는 얘기들이 오고갔다. 그런데 그 액수가 가난한 연극쟁
이의 귀엔 장난이 아니었다. 한번 써볼까?
  "시간 있으면 한번 써와봐."
  "괜찮으면 살 거예요?"
  "물론이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  머릿속은 온통 시나리오에 대한 생각뿐이
었다. 이런 얘길 해볼까? 저런 얘기 어떨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전에 갖고 있던 관련  서적과 연극 대본들을
꺼내놓고 머리에 떠오른 얘기를 바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2주간을 외
출도 안 하고  꼼짝않고 앉아 두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시나리오의 형태만 갖추었지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읽어보니까 어때요?"
  "하나 살게."
  "정말요?"
  당시 그 선배는 산(산 걸까,  사준 걸까?) 나의 시나리오는 16mm 에로영
화로 만들어질 거라고 했다. 그 시나리오가 쓰여질 영화의  성격도 잘 몰랐
던 나는 그저  신나기만 했다. 그러니까 소재와 이야깃거리만 쓰겠다는  계
산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나리오들을 들고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연극 연출가, 영화감독,
연극 배우 선배를 찾아갔다.
  "읽어보시고 제가 시나리오에  재능이 보이는지 신중히 말씀해주져야 해
요."
  "왜? 연극은 안 하고?"
  나는 자초지정을 다 말하고 재능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 길로 전환하
겠다고 단언했다. 며칠  후 다시 방문한 내게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시나
리오를 쓰라고 권했다. 내게 재능이  보여서였을까? 그건 아니다. 그럼 왜?
그분들은 내가 연극을  힘들어하는 걸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특히 연기  자
체보다도 다수가 모여서  하는 복합적인 상황을 더 많이 버겨워했다.  그러
던 차에 시나리오는 그런대로 연극하던 가락이 있으니가 흉내는 내었을 것
이고, 괜찮아 보이기도 했겠고,  혼자 하는 작업이니 잘되었다 싶어 아끼는
마음에서 권한 것일 게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다 되겠는가. 내가  시나리오
작가입네 하고 명암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상 한번  탄 것이 전부이다. 시나
리오 협회의 '영상작가 교육원' 시절 협회공모에 이산에 대한 한 여인의 통
한을 다룬 "꽃지게"란 시나리오로 작품상을 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시나리
오 작가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받으며 일을 하느냐 그렇지 않는냐 하는 측면에서 볼 때 이미 나는
프로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아직도 먼 아침인 것이다.
  "꺄악!!"
  나는 기겁을 하고 침실  밖으로 달아났다. 어느 날 남편이 내  손을 잡아
끌어 그의  성기를 만지게 한 것이다.  남자의 성기를 단 한번도  만져보지
않은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그냥 달아나게  놔
두지 않았다. 그 이후  섹스를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손을  그의 성기로
인도하였고, 그의  성기와 친숙해진 나는  어느 날엔가 대담하게도  입으로
그의 성기를 애무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 초, 나는 그의 성기를 보는 것조차 민망해ㅆ. 그러나 남편은 성적으
로 너무나 미숙했던  나를 다정하게 이끌어주었다. 그는 나의 섹스  교사였
고, 나는 그의 성실한 학생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성생활에서의 주도권
을 남편에게 일임하지 않는다. 그도 바라던 일이다. 아무튼 무슨 일이든 경
지에 이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제 나도 프로?


    못 말리는 보디랭귀지
  부부생활은 언제나  신선해야 한다. 10년, 20년,  30년... 부부마다 하늘이
허락한 세월을 해로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수도 없이  같이 보내겠
지만 그들의 사랑만큼은 언제나 5월의 신록 같아야 하는 것이다.
  친정 어머니들은 딸들에게 "남자들은  다 어린애와 같다"고 말한다. 밖에
나가서나 사내 대장부지 집에 들어와 아내의 품으로 파고들 때면 영락없이
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가정과 아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편안한 휴식처
이기 때문이다.
  경제난국 IMF시대가 시작되자 각계 각층에서 난리가 났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연쇄부도, 정리해고, 대량실업, 물가폭등에서부터 처음  대하는 경제용
어들까지 들먹이고, 기업은 기업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가정은 가정대
로 참담한 상황들이  벌이지고 있다. 기아와 죽음을 부르는 일까지  일어나
고 있으니 기가 막히고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벼랑 끝에 몰린 우리의 남편들은 고개 숙인 채  거리를 방황하고, 아내들
은 아내들대로 고심이 말이  아니다. 우리 부부의 직업은 사실 IMF가 아니
더라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글쟁이이지만  IMF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영화의 주무대인  충무로 역시 꽁꽁 얼어붙어 제작 편수가  현격
하게 줄었고, 영화가  제작된다고 해도 초다이어트 제작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영화인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형편이다.
  그래도 봄은 오고... 얼어붙었던 사람들 마음도 그  풋풋한 봄바람을 타고
끝간 데 없다. 4월 어느 날, 나는 열린 창으로 밀려들어오는 봄내음을 맡고
그 흥취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남대문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이비
화분 두 개와 작은 액자 하나만 사기로 마음을 먹고 꼭 2만원만 쓰기로 했
다.
  큰 시장도 과연 전  같지 않게 썰렁했다. 난 충동 구매를  하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밀려터진다 밀려터져!"
  "거기 길 좀 비켜줘요!"
  다른 곳  같지 않고 남대문의  꽃시장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살펴보면
젊은 주부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손엔 대개 작은  것들이 하나둘씩 들려
있었다. 다들 내 마음  같았으리라. 봄 기분에 집안을 화사하게 꾸며보려고
어려운 살림에도  화분하나쯤 갖다놓고 싶은  심정에서 이렇게들 나왔으리
라.
  "담배 연기 때문에 곧 죽을 텐데 그건 또 왜 사왔어?"
  현관으로 들어서는 내게 남편이 대뜸 하는 말이다. 
  "이것 좀 봐, 너무 예쁘잖아!"
  사온 물건들을 남편의  코앞에 들이밀며 내가 말한다. 물론 예상한  액수
는 좀 초과했지만 그 작은 아이비들과 소품 두어 개가 남편과 나의 공간에
또 하나의 기쁨을  연출한다. 서둘러 자리를 찾아주고 멀찍이서 한참을  바
라보던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기분이 쭈알란데 우리 한번 맞춰볼래?"
  "뭐가?"
  "이거 봐, 예쁘잖아!"
  남편은 한번 피식 웃더니 일어나 나와 맞춰준다. 뭘?
  우리 부부에겐 보디 사인이  두 가지 있다. "한번 할래?"와 "한번 맞춰볼
래?" 가 그것인데, 전자는 밤일 즉 섹스를  의미하고 후자는 둘이 마주서서
엉덩이를 앞뒤로 반동을 주며 흔들어  서너 차례 성기 부위를 튕기듯 부딪
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번 할래?"는 보다 질퍽한 보디랭귀지고 "한번 맞
춰볼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치러지는 단순한 스킨십인 셈이다.
  나는 가끔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벗은 채 그냥  나온다든가, 남편이 작
업실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일부러 그 앞으로가 옷을 다 벗고 갈아입는다
든가 해 남편을 당혹하게 한다.
  "잔이 이게 뭐야?"
  "프랑스 사람들은 늘 이런 잔에다 커피를  마셔, 당분간 우리도 그들처럼
마시기로 했어."
  어느 날은 손잡이가 없는 공기 같은 잔에 커피를  타서 주거나, 국대접에
타주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영국풍의 하얀 도자기 잔에 타주기도 한다.
  한 친구는  우리 부부 사는 걸  보고 쉰세대가 신세대처럼 산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꾸해준다.
  "재미있는 말들, 장난스런 제스처들이 뭐 돈 드는 거라고 아끼겠니?"


    영화처럼 사는 부부
  영화는 꿈이다. 그곳엔  사랑과 증오, 만남과 이별,  희망과 좌절, 영원과
찰나가 환상적으로 빚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허구라는 이유로 양해받는다.
아름다움의 극대화는 물론이고 추함마저도 미화되는 세계인 것이다.
  영화는 사람들의 유행을  좌우하기도 한다. 의상과 자동차, 가구,  실내장
식, 심지어는 주택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
한다. 한 편의 영화로 그  시대를 조명해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자극시키는 것은 영화 속의  인물들이다. 배우들
시선이나 손놀림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매력적인가...
  세상 일이 그렇듯 양이 있으면 음도 있는 법.  영화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 삶의  위안을 주는 한편 오락성에 경도돼 지
나치게 폭력적이고 음란해서 아직  자아가 덜 성숙한 미성년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때때로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영화
를 흉내내어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는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영화처럼
해보고 싶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어는  화장품 광고에 '영화처럼 사는  여자'란 카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카피를 처음 대했을 때 참 신선했다. 모두가  꿈꾸는 세상, 그래
서 한번쯤 영화배우처럼 돼보고 싶은 마음을 잡아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영화처럼 산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나의 고등학교 시절  가정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항상 사람은  도둑
질만 빼놓고  다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재단과
미싱을 사서  직접 퍼머하시기도 했다.  옷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퍼머는
손이 안 닿는 뒷머리 쪽이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선생님이 돌아서면 여기
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선생님의 수업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  만큼 재미있었고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이었
다.
  "어젯밤에 말야. 우리 부부가 친구네 집에서  놀고 왔는데 그 친구한테서
바로 전화가 왔지 뭐야. 글쎄 내가 차를 몰고 돌아간  후에 보니까 내 신발
이 길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는 거야, 호호..."
  얘기인 즉, 선생님은 운전할 때 반드시 신발을 벗고 하신단다. 그런데 그
날은 깜빡하고 신발을 벗어놓은 채 그냥 차를 몰았던  것이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신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으니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변호사였던 선생님의  남편 또한 엉뚱하신  분이다. 그는 아침에  출근할
때 드라큘라 가면  등을 쓰고 운전을 한단다. 신호등에 걸려  멈춰서기라도
하면 주변의 운전자를 포함해 버스 승객들까지 그를 쳐다보느라 난리가 난
단다. 그리고는 사무실에서도  가면을 쓴 채 신문을 보다가 여직원이  차를
가져다주면,
  "고마워."
  하며 가면 쓴  얼굴로 인사해 여직원을 놀라게 하기가 다반사라고  했다.
그 밖에도 선생님은 당신 부부의 배꼽 잡고 웃을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들
려주셨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들이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선생님  부부는
참 재미있게 사는 분들이었던 것 같다. 영화로 치면 명랑 코믹물이다.
  그분들이라고 왜 사는  동안 괴롭고 힘든 일이 없었겠는가. 고난  속에서
도 나와 남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
  영화를 흉내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삶의 곳곳에 신선하고  매력적인 연출
로 부부 사이에  활력을 되찾고 더불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살자는
얘기다. 좀 엉뚱하면 어떻고, 다소 충격적이면 어떤가.  어차피 삶이란 반복
되는 것이다.  일상을 깨고 쉼없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건조해질
뿐이다.
  우리 부부도 '영화처럼 사는  부부'  '아름답게 사는 부부'로 기억되고 싶
다. 영화가 꿈인 것처럼 언제나 꿈꾸며 살고 싶다.


    향기로 사로잡는 방
  마르셀 프푸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면, 작가는 어느
순간 접하게 되는 냄새를 통해  언젠가도 똑같은 냄새를 맡았던 그 시간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서도 주
인공이 냄새를 통해 모든 것을  감지해내고 그 냄새를 통해 삶을 통제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소설들을 대하면서  냄새가 사람들에
게 미치는 영향이 참으로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문득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제와 다른 특별한 공기가 맡아질 때
가 있다. 순간 그 언젠가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런 날은 온통 그 아련한
추억에 젖어 보내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계절은 어떤가? 계절의 변화는 빛과 온도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지만 냄
새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겨울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부스스 깨어나는
봄 내음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다시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의 11월은 아상
하게도 초조한 냄새가  신경을 자극한다. 라일락 향기, 아카시아 향기,  5월
의 장미향, 여름의 곳곳에서  배어나는 싱그러운 풀내음... 때때로 푸근하게
때때로 처철하게, 계절들이 토해내는 냄새들은 우리들 삶에  갖가지 추억들
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네게서 나는 냄새가 나를 극도로 흥분시키고 있어."
  "푸우! 거짓말."
  "정말이라니까."
  "왜?"
  내가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할 때의 일이다. 그날은  새로 선물받은 장미
향 샤워코롱과 여름에  주로 쓰는 니나리찌 향수를 사용했는데, 무더운  여
름이라 배어나는 땀 때문에  그가 더 민감하게 느낀 것 같았다.  말수 적은
남자의 "너의 냄새가  나를 흥분시켜"라는 한마디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그를  위해 항상 샤워코롱만큼은  장미향을
고집하게 되었다.
  97년에 남편은 어드벤처  영화인 '표류일기'를 썼다. 그  영화는 해외에서
올로케 되었는데 작가가 현장까지  쫓아가는 일은 드물었지만 감독의 부탁
으로 그는 나를 데리고 촬영지인 서태평양 팔라우 섬에  가게 되었다. 해외
여행은 난생처음인 나는 마음이 부풀 대로 부풀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가
는 거지만 나는 그야말로 제2의 허니문을 떠나는 심정이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 나는 남편과의 첫 해외여행을 기념하여  브라질
에 사는 외사촌  여동생에게서 선물받은 아끼던 향수를 처음 사용했다.  동
생이 주면서  비싸고 귀한 거라며 자랑한  대로 향이 기가 막혔다.  여행의
시작이 더욱 흥분됐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천혜의
섬이라는 팔라우 섬에서의 꿈같은 한 달간의 여행은 끝났다.
  서울에 돌아와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향수를  사
용할 때마다 팔라우에서의 영상들이  떠오르면서 여행의 흥분이 다시금 짜
릿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향수가 떨어지기 전에 같은  종류의 향수를 꼭
구해놓아야겠다.
  냄새, 그건 정말 이상하고  신비스럽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것이 분명한
기억들을 끄집어내니 말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어느  순간 불쑥 튀
어나와 감성을 자극시키니 말이다.
  부부가 생활하는 집이란 공간에서 두  사람이 가장 친밀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곳은 아마 침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침실은 그들만의 색깔로 꾸며져야
할 것이고 또한 그들만의 냄새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절대 인공적인 향이
나 향수가 필요한게 아니다.
  사실 여자는 남자보다 향과 훨씬 가깝게 지낸다. 남자들은  샤워할 때 대
체로 비누나 샴퓨를 사용하는 게 다지만, 여자들은 샤워할  때나 샤워 후에
도 각기 다른 형태의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또 그것은 개성에  따라 모두
다르다. 또한 남자들의 화장은 스킨, 로션이 다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스킨,
로션에서 시작해 화장이  마무리되기까지 많은 화장품이 동원된다.  그리고
그것들 역시 각각 특유의 향이  있어 결국 여자들은 개개인마다 아주 특별
한 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여자의 향기는 결혼 후  아내의 향기가 되어 부부의 침실 구석구
석에 배고 남편은  '자기 여자의 향'에 길들여진다. 그런데 결혼  전엔 온갖
것으로 치장하던  아내가 결혼 1,2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매너리즘에
빠져 베갯잇에는 지저분한 머리 냄새가 배고 몸에는 반찬 냄새가 풍겨나기
시작한다. 만일 자신의  모습이 그렇다면 곧장 밖으로 나가 자신을  치장하
는 것에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자.
  "나 졸려."
  "먼저 가서 자. 난 좀더 쓰다 잘 거야."
  "그럼 5분만 같이 누워줘."
  나는 언제부턴가 남편이  잠깐이라도 옆에 누워줘야 쉽게 잠이 든다.  혼
자 가서 자라는  그를 졸라 결국 몇  분이라도 옆에 같이 눕게 한다.  잠시
누웠다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는 남편, 나는 베갯잇에 어렴풋이 남은  그의
냄새를 맡으며 어느새 잠이 드는 것이다.


    결혼 후 첫 번째 생일선물
  "형이 노가다를 해요?"
  그는 피식 웃는다.
  "몰랐어? 저 선배 노가다하면서 글쓰잖아."
  "대단한데..."
  교육원 시절 수업이  끝난 뒤 어느 술좌석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화제가
글쟁이들의 어려운 생활고에 대한  것이었는데 한 작가가 뜬금없이 남편을
가리키며 말한  것이다. 그때까지 그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나는  노가다를
하면서 글을 쓴다는 말에 비로소 그에게 관심을 가져본다.
  "형, 유부남 아니었어요?"
  나의 질문에 그는 또 그냥 웃고, 옆에 앉은 작가가 그를 설명해준다.
  "결혼은 무슨 결혼, 혼자 살면서 글쓰잖아."
  "아니 여태 결혼도 안 하고 뭐 했어?"
  "그러는 저는 했나?"
  괜찮은 남자였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중에 그에게 들은 얘
기지만 그때 그는 이미 나를  찜해두고 이제나 저제나 기회만 살피고 있었
단다. 그래도 그에 대한 관심은 그 자리에서가 다였다. 한참을 잊고 사는데
문득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기 서울인데 나와서 차나 한잔 할래?"
  "그러죠 뭐."
  나는 얼마 전 호감을  가졌던 터라 선뜻 응했다. 그후로 그는  그런 식으
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올라와서는 나를 만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 너하고라면 아주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
  "형 지금 나한테 프로포즈하는 거예요?"
  "응"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 자리에서 일축
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내게 그렇게 접근해왔고 서서히 나를 사로잡기  시
작했다. 그러다 그만, 나는 그  가난한 글쟁이와 1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하
고 만 것이다. 그놈의 노가다란  말만 안 들었어도... 부부의 인연이란 참으
로 기이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부잣집에 시집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
히고 살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사실 다 커서도 가난한  결혼은 싫었
다.
  "얘, 잘살고 못사는 건 하늘의 뜻이야. 사람이 중요하지."
  "그래도 가난하면 안 돼.  차라리 엄마하고 같이 살지. 왜 시집가서 고생
을 해?"
  친정 어머니는 늘 그런 나를 나무라셨다. 인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
다는 부잣집에 시집간 첫째 이모(어머니는 4남1녀의 셋째 딸이다)는 시집간
지 3년 만에 집안이 망해  한번 잘 살아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너무나 가난
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심지어 그런 큰이모 얘기까지 하시며  충
고하셨지만 나는 나의 장미빛 인생을 호언했었다. 그런대로  부유한 집안에
서 그것도 2남1녀의 고명딸로 태어난 나는 아쉬운 것 없이 살아온 셈이다.
  결혼 후 남편은 각본, 각색 등의 일들을 맡으며  그런대로 풍족하게 해주
었다. 시나리오 작가란 것이  그렇다. 한국영화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공
급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시나리오 작가의 몫이라면 그나마 남
편은 아주 양호한 셈이었다.  나 또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해온  터라 생
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일이 터지기 전엔 전조가 있다고  하던가. 사실 충
무로는 IMF가 터지기 5,6개월 전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계약하자
던 영화들이 하나씩 취소되고, 일이 끊기면서 저축해둔 돈도  점점 바닥 나
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는 통장을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왔
다.
  그날은 단  한푼도 없는 날이었다. 라면조차도  없었다.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해 있던 남편은  커피만 타마시고 있었다. 문득 남편이 주머니를  뒤지
며 동전을 찾고 있음을 느껴졌다. 당연히 담배도 떨어졌다. 나는 화장대 서
랍을 열고 결혼 패물인 다이아 반지와 목걸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생전 처음 가보는  전당포였다.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목구멍으로  뜨거운
뭔가가 치받치며 눈물이  핑 돌았다. '괜찮아. 곧  다시 찾을 수 있을  텐데
뭐' 하며 아무리 자위해도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근처 화장실에 들어
가 눈물을 닦고  나와서 겨우 전당포에 다이아를 맡기고  손에 돈을 쥘 수
있었다.
  부부가 사는 게 뭘까? 그래도 남편에게 담배를 사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
니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가벼웠다.
  "돈 어디서 났어?"
  들이미는 담배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으응, 저 아래 슈퍼 주인한테 한번 주고(?) 달라고 했지 뭐."
  남편은 웃는다.
  "이거 다 떨어질 때까지  돈 안 들어오면 다음엔 당신이 슈퍼 주인 마누
라한테 줘야 해."
  "응, 알았어. 우리 마누라가 최고구나."
  그 말에 또 한번  눈물이 핑 돌았다. 캐묻지 않았지만 그도  알았을 것이
다. 내가 전당포에 갔다왔는지는 몰랐겠지만 어디선가 어렵게  돈을 빌려왔
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며칠 후 남편의  각색한 원고로 만만찮은 돈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이것
저것 제하고 나니 앉은자리에서 그 돈의 90퍼센트가 날아갔다.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그래."
  일은 계속 들어왔지만 돈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난 기어코 버텨
내리라 다짐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이 악물고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 후 나의 첫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이번 일이 내 생일까지 잘 끝나서 나 당신한테 선물 받았으면 좋겠어."
  "물론이지."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생일날에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가난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밤이 찾아왔고 남편이  날 꼭 안으며
말했다.
  "한번 할까?"
  "줄 거야?"
  "오늘 니 생일인데 뭔가 줘야지."
  그날은 두 사람 다 이상하리만큼 뜨거웠다. 겨울의  침실이었는데도 땀이
흥건히 배어나왔다. 나는 그와 섹스를  한 이후로 처음, 세 번 이상을 오르
가즘을 오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야, 이 정도면 괜찮은 생일선물이지?"
  "근데 이 멋진 생일선물 어디 가서 어떻게 자랑해?"


    밤의 데이트
  미혼 시절 나는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 내가 연극을 할 때는  일의 성격
상 공연이 임박하면 연습이다. 리허설 준비로 밤을 꼬박 샐 때가 허다했고,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는 글쟁이들이 모여  떠들기 시작하면 역시 밤을 새
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가난한  시절이었음
에도 어찌 어찌해서 꼭 챙겨두었던 돈으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곤 했다. 지
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나 싶지만, 당시에는  친정
어머니의 심한 꾸지람과 오빠들의 걱정에도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고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고 다니는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처녀가 왜 밤 늦게 돌아다녀?" 하는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들은 나
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난 언제나 내가 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고, 설사 그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진 못했다해도 내겐 소중했고 언제나  당당했다. 지금
의 남편과 처음부터 연인 사이로  혹은 적어도 이성의 감정으로 만났다 하
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선배 작가로  만났기
때문에 남편은 그 당시 내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남편이 나의 연인이  되면서 나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기 시작했고, 그  이
후로는 혼자 밤늦게 귀가할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
겼다. 미혼 시절  그렇게 겁대가리 없이 밤늦게  돌아다니던 내가 결혼 후,
정확히 말해서   남편이 연애 시절 집까지  바래다주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어쩌다 사람들을 만나 시간이 늦어지면 털컥 겁이 나는  것이다. 혼자 택시
라도 타려면 운전기사를  살피느라 전전긍긍했다. 우째 이런 일이?  그러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면 안도보다 피식 웃음부터 먼저 나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여자 혼자  밤늦게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해진다. 문득 여자에게  있어 남편
이란 존재는 '너무나 든든한 보디가드'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엔 동료작가나 감독,  제작자 등 영화에 관련된 사람들이 자주  방
문하는데 그들은 대체로 술문화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만나면 꼭 한잔 걸치
고들 싶어한다.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술 마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차를  한잔 한다
는 것하고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후자는 경계와 긴장감을  지킬 수 있지만
전자는 더 친밀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칫 흐트러질 수가 있기 때문에
저녁식사 정도라면 몰라도 술자리는 꺼려진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 자신
흐트러진다는 게 좀 거북스럽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근처 포장마차를 즐겨 찾는다. 그런데 알  만
한 사람들은 다  알 듯이 포장마차라는 것이 예전같지가 않다.  언제부턴가
주점보다 결코 싸지 않을뿐더러 어떤  곳은 더 비싸기도 해 서민들의 한잔
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젠 포장마차 아줌마의 국물  인심이
라는 것도 아예 기대할 수 없다.
  IMF를 전후해서 우리  동네에도 실내 포장마차가 하나 생겼다. 가격이나
맛과 양도 파격적이었고  무엇보다 주인 아줌마의 인심이 기가 막혔다.  술
을 좋아하는 후배가 찾아와 남편과 셋이서 주점을 찾다 발견한 곳이었는데
처음 갔던 날 우리 셋은 값싸고 풍성한 인심에 취흥이  더 났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일부러라도 그 집으로 데리고 가 부담없이
즐기곤 한다. 그리고 같이 간 사람들 역시 좋아해서 기분이 좋다.
  "당신 배고파?"
  늘 새벽 1,2시가 되면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 내가 묻는다.
  "우리 저 위에 가서 자장면 먹고 올래?"
  배고프다는 얘기다. 그런데 늦은 시간이라 밥을 챙겨먹기는  좀 부담스럽
고 간단하게 뭔가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둘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집을 나
선다. 코끝으로 싱그럽고 시원한 밤공기가 스친다.
  "와아- 밤공기 조오타!"
  "..."
  "당신은 안 좋아?"
  "좋아."
  "귀찮으니까 억지로 대답한 거지?"
  "아냐, 나도 좋아."
  말수 적은 남편에게 이렇게 억지로  말을 시키면서 나는 남편의 팔에 매
달려 길을 걷는다. 나는  너무 신이 난다. 밤늦은 시각의 외출, 미혼 때  같
았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런  경계심도 공포심도 갖
지 않고 인적이 뜸한  밤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난 마치  남들이 누
릴 수 없는 대단한 일을 나만 누리고 있는 기분에 한껏 취해본다.
  대체로 우리가 나설  때는 이미 새벽으로 넘어간  시간일 때라서 거리엔
아무도 없다. 술에 취해 웅성웅성 모여 있는 동네의  십대들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우동이나 자장면 등의 간이음식을 파는  포장
마차는 평소 자주 찾던  그 실내 포장마차 근처에 있다. 그  근처엔 두엇의
포장마차들이 더 있어 그래도 그곳에 가면 아직 귀가가 먼 술 취한 사람들
로 다소 북적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때때로 '밤  데이트'를 한다. 우리가 만나기  이전의
얘기들을 추억삼아 들려주거나, 깜박 잊었던 얘기들을 기억해내면서...
  그리고 둘다 작업이 없을 때나 뭔가 엉켜 잘 풀리지  않을 때, 또는 탈고
를 축하할 때에는 그 인심  좋은 실내 포장마차에 가서 간단하게 한잔하기
도 한다. 이 작은 시간들이 우리에겐 청량음료와 같이 느껴진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부부  사이에 별 것 아닌 일로 투
닥거리기 일쑤다. 우리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워낙 힘이 드니까  짜증부터
나는 것이다. 이럴 때 남편들은 혼자 베란다에 나가  애꿎은 담배나 피우고
말고, 아내들은  베개에 얼굴 묻고 한숨  푹푹 내쉬지 말고 손을  잡아끌고
'밤 데이트'를 나가보는  게 어떨지. 분명히 신선하고 멋진 시간이  될 것이
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다.


    가난한 날의 행복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기억 저편
에 묻혀버린 지 20여 년만에 아주 또렷한 되살아나기  사작했다. 그 당시에
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피상적인 느낌뿐이었는데, 다시  되살아난
다음의 느낌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저린다.
 
  가난한 날의 행복 하나
  "얘, 내가  니 신랑 좋아하는  생선매운탕하고 반찬 좀  해서 보냈으니까
저녁에 같이 먹어."
  "엄마 돈 들게 그런 건 뭐 하러 해?"
  "내가 안 아프면 우리집에서 잘 차려줄 텐데..."
  "됐어. 시집갔으니까 이젠 그러지 마!"
  찰칵! 난 매몰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동생이 친정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들과 케이크와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싸들고 집으로
들어선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어, 처제 왔어?"
  "언닌 어디 갔어요?"
  "아니, 안방에... 이리 나와봐. 처제 왔어!"
  난 대꾸없이 꼼짝도  않는다. 남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성화를  하는데
도 침대에 엎어져 그대로 있다.
  "에이, 고집불통!"
  방을 나가면서 남편이 핀잔을 준다. 언니의 성격을 잘  아는 동생은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놓을  때마다 남편에게 설명을 한다. 갑자기 안방에서  날
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다 가져가! 안 가져가면 다 내다버릴 테니까!"
  참 고약하기도 하다. 드런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생이 가나 보다. 현관
문이 닫히고도 남편은 들어오지 않는다. 난 엎어진 채 펑펑 눈물을 쏟는다.
쌀이 있어야 밥을 해서 매운탕을 먹지!
  그날 우리  사정도 모르고 손님들이 찾아왔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모
감독과 매니저가  남편과 새 작품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방문한
시간은 오후  2시경이었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다.
난 바닥을 보이던 쌀통을 생각하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자 난 일어나 주섬주섬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저녁 드시고 가시라고요."
  "아니에요. 우린 그만 가야죠."
  "무슨 얘기예요? 금방 하니까 드시고 가세요."
  나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만류하고  그들은 얘기가 더 하고 싶은지 그
냥 주저앉는다. 낮에 어머니가 보내온 매운탕과 반 근  남은 돼지고기를 볶
고 남아 있던 밑반찬을  섞어 그런대로 상을 차린다. 남은 쌀로  밥을 하니
꼭 두 그릇 정도가 나왔다. 남편의 공기엔 슬쩍  전자레인지에 데운 찬밥을
담는다.
  "왜 사모님은 안 드세요?"
  "아, 나는 점심을 늦게 먹어서 별로 생각이 없어요. 어서들 드세요."
  "그래도 조금 하시죠."
  "아니에요."
  하는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이 거든다.
  "이 사람 요즘 다이어트하니까 그냥 놔둬. 어서들 먹지."
  다이어트하니까 그냥 놔두라구?  서운한 생각도 잠시, 손님들이 밥을  더
달라고 할까봐 속이 조마조마하다. 많이 푸기는 했느데...
  매운탕이 너무 맛있다며 정말 맛있게들 먹는다. 점점  없어지는 매운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난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서 슬그머니 수저를 들어 국
물을 떠서 입에 넣는다. 그 순간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치받는다. 후식으로
커피와 올케가  사보낸 케이크(하루종일 우울해서  그때까지 촛불도 안  켠
채 그대로였다)를 잘라냈다.
  "이거 무슨 케이크예요? 누구 생일이에요?"
  "아니에요. 그냥..."
  손님들이 모두 가고 나자 피곤이 엄습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나기 시
작해 마구 웃는다.
  "왜 웃어?"
  "다이어트하니까 그냥 놔두라구? 호호... 밥이 있어야 밥을 먹지."
  "그랬어? 근데 그게 뭐가 웃겨?"
  "그럼 안 웃겨? 슬프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해."
  남편도 피식 웃는다. 그리고 밤이 되자 난 남편에게서 모처럼 '뜨거운 섹
스'를 결혼 후 첫 번째 생일선물로 받고 그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잠이 든
다. 우여곡절(?)의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 부산 시어머님에게서 며느리 생일선물이 부쳐져왔다.
  "얘, 가까이 있었으면 뭐라도 차려줄 텐데..."
  "아니에요, 어머님."
  "그래도 시집와서 첫 생일인데. 그거 맘에 들는지 모르겠구나."
  "정말 맘에 들어요. 어머님,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선물은 최신 유행의 비싼 가죽 핸드백과 패션스타킹이었는
데 정말 맘에 쏙 들었다.  어머니의 전화에 또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들이
란 참...
  가난한 날의 행복 둘
  그 겨울 우리에게 결혼 예물이란  나의 것이든 남편의 것이든 집에 남아
나는 것이 없었고 모두 전당포로 여행 갔다. 우리  둘다 가급적이면 외출을
삼갔다. 왜? 나가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게 다 돈이니까.
  "아니 뭐 하느라고 꼼짝도 안 해?"
  "선배, 신혼 재미에 깨가 쏟아지나봐. 꼼짝을 안 하는 걸 보니."
  "거 얼굴 좀 보고 살자.  깨가 쏟아지는 건 쏟아지는 거고, 쏟아진 깨 둘
이 다 먹겠어?  나갈 차비만 있어도 나가서 그깨  팔아 가정경제에 보태겠
다. 그래도  안 나가고 전화로만 버티자  몇몇 친한 동료들이 진짜  집으로
쳐들어왔다.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이다. 서로 힘든 상황들이기에 이것 저것
챙겨들고 들어온다. 물건들을 받아들며,
  "이런 건 뭐 하러 사오고 그래?"
  "안 사오면 다시 나가서 사오라 그럴 거잖아?"
  "그냥 빈말이야."
  모두 웃는다.  그리고는 둘러앉아 초라한  안주에 한잔 기울이며  충무로
영화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  새로 쓰거나 탈고한 시나리오 얘기, 이런저런
얘기들로 밤새는 줄  모른다. 그렇게 한바탕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자주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진다. 한참을 또 전화만 하고 못 만날 거라며...
  가난한 날의 행복 셋
  '결혼 1주년 기념일' 난  한달 전부터 남편에게 무얼 받고 싶다,  그날 무
얼 하자... 난리를 피운다.
  "그래 넌 뭘 받고 싶은데?"
  "원래 1주년 기념일엔 진주 반지를 받는 거야."
  "그런 건 얼만데?"
  "몰라. 값이 문제야? 해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되지. 싫어?"
  "알았어. 해줄게."
  "정말이지?"
  "응."
  그때 역시 사정은 어려웠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곧  나아질거란 걸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혼기념일 일주일  전이 되어도 우리의  사정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가난해져만 갔다.
  "있잖아... 결혼기념일에 나 향수 하나 선물받고 싶어."
  "너 향수 있잖아."
  "그래도 새로 갖고 싶은 게 있지. 왜, 싫어?"
  "아니, 사줄게."
  "정말이지?"
  "응."
  드디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되었다. 그날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돈이라
고는 천 원짜리 몇장이 전부였다. 기념일을 위해 뭘  할까보다는 당장 먹고
살 게 더 걱정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며칠 전부터  주겠다고 약속한 원고료
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그날도 혹시 하며 저녁이  다 되도록 전화통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다 늦은 저녁이 되었다.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아. 정
말 괜찮아' 하고 자위하지만 속이 상했다.
  "벌써 잘 거야?"
  침대로 가 엎드리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응."
  "..."
  남편은 방문을 닫고 나간다. 잠시 후 그가 재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가
는 소리가 들린다. 비로소 난  베개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운다. 얼마나 지났
을까? 남편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곧장 내게로 다가와,
  "일어나봐."
  "싫어. 잘 거야."
  "일어나보라니까?"
  그가 나를  억지로 일으켜 거실로 데리고  나간다. 내게 내미는 장미  두
송이! 우린 마주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한 송이씩 주고받았다.
  "괜찮지?"
  "내년엔 꼭 진주 반지 해줘?"
  "물론이지. 하나밖에 없는 우리 마누란데 뭔들 못 해주겠어?"
  남편은 나를 번쩍 안아 들어올린다.
  "야, 너 살 좀 빼라!"
  "으이그, 이 순간에 꼭 그런 얘길 해야겠어?"

  그 겨울, 나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많은  소중한 것들에 감사했다. 일할
수 있고 쉴  수 있는 따뜻한 집과  라면 하나라도, 커피와 남편의 담배  한
갑이라도 챙기며 살 수 있음에 말이다. 서랏 그런  것들마저 힘들어진다 해
도 아직은 젊고 건강하다는 것,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다는 감사할 것들은
여진히 남아 있다.


    알몸 마사지
  사랑은 표현이다.  그윽한 시선으로,  솔직한 대화로, 부드러운  스킨십으
로.. 사랑하는 남녀는 온갖 육체의 언어로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연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확신만 갖고 더 이상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더욱 확고한
고지로 끌어올리기 어려워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
다. 그것은 사람들끼리 보고, 만지고, 들려주는 육체적인  언어가 그만큼 중
요하다는 것일 게다.
  그 옛날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사랑의 표현을 할  줄 몰랐다. 특히
중세부터 사회, 문화  전반에서 우리를 굵은 동아줄로 얽어맨 유교의  관념
은 오랫동안 이성간의 자연스런 표현을 더욱 힘들게  했다. 남녀칠세부동석
이란 말로 남녀를 구분했고, 얼굴  한번 못 본 사람과 혼인을 했고, 부부로
살면서도 좋아도 안 그런 척 싫어도 좋은 척해야 했고, 남편들에게 '남자가
남사스럽게 여편네한테...' 라는 식으로, 아내들에겐 '여자가 감히 어떻게 남
편한테...'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며 사랑의 표현을 절제했다. 그렇게  그 오
래된 관념은 지금까지도 극도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 시대, 우리를 얽어매두었던  도덕의식도 변하고
있다. 보다 자유롭고 자연스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우
리를 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시대에 표현을  절제시
키는 그 무엇이 또 남아 있는 걸까?
  유흥가를 거니노라면 이제 겨우  중고생으로 보이는 어린 남녀 학생들이
거리낌없이 손을 잡고 심지어는 부둥켜안고 키스를 해대는 모습을 아주 쉽
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유니섹스라해서 옷이며  헤어스타일이며 액세서리며
남녀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눈으로 보자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지만 나는 의
견이 다르다. 선의의 도덕과 윤리를 지킬 줄 아는  시민의식만 있다면 어쨌
든 표현은 자유롭고 솔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샤워하고 와. 마사지해줄게."
  "마사지?"
  "응."
  어느 날 내가 몸이 찌푸드드하다고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데 남편이 다가
와 하는 말이다.
  "꼼짝도 하기 싫다는데 샤워는 무슨..."
  남편은 나를 억지로 일으켜 욕실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옷을  벗긴 뒤 머
리를 감기고 샤워를  시키기 시작한다. 난 귀찮게 왜 이러느냐며  투덜거린
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않고 아이를 씻기듯 몸 구석구것을 비누칠해  씻긴
다. 그의 긴 손가락과 비누타월이 피부에 스칠 때마다 느낌이 좋다.
  "기분이 업이야. 한번 할래?"
  "됐네!"
  "체! 싫음 말고."
  샤워를 마치고 그는 큰  타월을 펴고 나를 그 위에 눕힌다.  그리고는 오
일로 마사지를 시작한다. 결혼식 바로 전날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사우나에
가서 어머니가 예약해놓은 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남의 손이 내
몸 구석구석에 닿는 것이 몹시  거북살스러워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참
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마사지는 달랐다.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했
다.
  "와아! 기분 캡이다.!"
  "..."
  "역시 난 시집 자알 왔어!"
  "아부하지 마!"
  "아냐, 정말이야. 우와! 기분 조오타!"
  "야, 살이나 좀 빼라."
  "꼭 그렇게 기분을 깨야겠어?"
  알몸 마사지. 그것도  남편에게 받는 알몸 마사지.  그건 정말 멋진 일이
다. 나는 마치 나만이 누리는 특권인 것처럼 신나했다. 그건 부유층의 여자
들이 엄청난 돈을 주고 받는다는 마사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언제 해줄 거야? 한 달에 한번?"
  "꿈도 크다. 일년에 한번."
  살다 보면 이런 약속들은 지켜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지키고 안
지키고가 무슨 상관이랴. 가끔 우리  부부가 다툴 때면 나는 문득 그의 '알
몸 마사지'를 떠올린다. 샤워를 시켜주며 나의 온몸을 스치던 그의 긴 손가
락, 비눗방울이 튀어있던 그의  안경, 오일로 내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주
던 정성스러움이 되살아나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사
웠든 미움은 이미 저만큼 사라지고 만다.
  이렇듯 부부 사이에서 사랑의 표현은 참으로 필요한  알이다. 외출하면서
잠시 동안의 이별에도 살짝 키스해주고, "사랑해?" 하고  묻거나 "사랑해"하
고 말해준다는 것은 결코 유치한 게 아니다. 만일  언제나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한다면 그러한 표현들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그들이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될 때 불현듯 아주 커다란  사랑으로 나타나 그 모든 일들을 능히 이
겨내게 하는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것이다.
  남편에게 알몸 마사지를 받던 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도 당신 마사지해줄게."
  "됐어, 난."
  난 속으로 생각한다. '하긴 당신은 너무 길어서...  대신 내일 큰맘먹고 스
테이크를 해줘야지.'

    차 바꾸고 집 바꾸고, 이젠 마누라까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 연제나 그대로일 것 같은 산천초목도, 그 단단
한 바위도 오랜 세월 파도에 쓸리고 깎이면서 소리없이  변화되고 있다. 도
시 또한  문명의 발달에 따 끝없이  변화한다. 만일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역행하고 멈춰진  것이 있다면 죽음뿐일  것이다. 사실 죽음조차도  변화의
한 과정이긴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히  변화지 않는 것들을 꿈꾸나 보다. 종교를  통한
영생, 인륜의  정, 친구간의 믿음,  의리, 연인들의 사랑... 수많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명제들을 놓고  끝없이 그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
은 오히려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변화기  쉬워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론 분노하게 하거나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하곤  한다. 그럼에도 사람
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이것만은...' 하면
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연극을 하던 20대 후반쯤에, 어느 기공인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
를 한 적이 있다. 그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교정도  보고 삽화도 그려 넣는
가 하면 지방 강의 때 포스터를 만드는 등의 일을  할 때였다. 그곳은 기공
에 관련된  사람들과 한의사들, 역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대부분 나이가 지긋했다.  그분도 역학에 조예가 깊은지 가끔씩 그의  친구
들이 찾아와 사주를 대며 행, 불행을 묻곤 하였다.
  그런 그의 친구들  중에 출판사 사장이 한 사람  있었는데 사업이 잘 안
돼 전전긍긍하다가 하루는  그를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 사장의 사주를  본
기공인은 집을 팔아서라도 이번 책을  내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말해주
었다. 주저하는 사장에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일어나기 어려울  거라
고 엄포까지 놓자 결국 그 사장도 뭔가를 결심하는 듯했다.  며칠 후 그 사
장은 집을 팔아 가족들을 월세방으로 몰아넣고는 문제의 책을 출간하게 되
었다. 운이 닿아서 그랬겠지만 결국 그 책은 물론이고  이어지는 책들도 베
스트셀러가 되면서 소위 대박(?)의 신화를  이루었다. 그 사장의 가족은 다
시 집으로 이사를 갔고, 차도 물론 고급 승용차로 바꾸었으며, 사무실도 허
름한 건물 한쪽에서 크게 새로 지은 사옥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옛말이 하나 그른 게 없다니까."
  오느 날 그 출판사 사장을 만나고 온 그분은 대뜸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돈 벌면 차 바꾸고,  집 바꾸고, 나중엔 마누라까지 바꾼다더니 정말 그
렇더라구."
  "왜요? 그 출판사 사장님이 바람피워요?"
  "짜식, 출판사 다  죽어갈 때 지 마누라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어느새
잊어버리고 딴 기집을 꿰찾어."
  "세상에!"
  마누라가 잘 챙겨주라는 친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출판사 사장은 계속
바람을 피웠다.
  그러면 그렇지. 조강지처 버리는 놈이 잘될리 있어?
  운이 닿아 나날이 커가는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이끌어가지
않고 방종만 일삼더니  결국 출판사는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
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에도 가끔  그 사무실에 들르곤 했는데 그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사업이란 게 한번 일어나기는 어려워도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야. 쯧쯧...
녀석 정신을 못 차리고..."
  "여전히 바람피워요?"
  "바람은 무슨.  아, 돈없는 놈한테  남아 있을 기집이  마누라밖에 더 있
어?"
  돈 없는 놈한테 남아 있을 기집은 마누라밖에 없다? 그럼 마누라들은 기
어코 남아 있는 것일까? 그건  부부가 되는 순간 하늘을 향해 맹세한 약속
때문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 부할 때나 가난할 때, 건강할 때나 아플 때...
죽는 그 순간까지 언제나 함께하겠다는 그 약속 때문인  것이다. 죽음 이후
에도 못 잊고 주변을 맴도는  영혼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지 않
은가.
  남편이 총각 시절 혼자 낚시를 갔을 때의 일이다.  부산 가덕도라는 섬이
었는데 평소 잘 아는 낚시점 주인의 안내를 받아 좀 외지지만 잘 잡힌다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아에 며칠 보낼 양으로 그곳에서 첫  밤을 새
우는데 밤낚시를 즐기는 편이라 밤이 깊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단다. 밤 한
두어시가 되었을려나, 어디선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낮부터 죽
있었던 터라 주위에 그말고는 낚시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서 사
람 소리가 들리나  하고 소리나는 쪽으로 랜턴을 비춰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남편은 잘못  들었나 보다 하고 릴이 신호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
는데 또 얘깃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어느 노부부의 소리였다. 선명히 들리
는 그 이야기는  하루 일을 들려주면서 서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정담이었
다. 순간 남편은 등골이 오삭해지고 머리가 쭈볏 서는  심상찮은 느낌에 사
로잡혔다. 이미 밤낚시는  안중에도 없고 어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남
편, 일각이 여삼추 같게만 느껴지던 긴긴 밤이 지나고  드디어 아침이 밝아
오자 남편은 정신을  차리고 어젯밤 예깃소리가 나던 곳을 살펴보았다.  세
상에! 그곳에는 두 기의 무덤이  나란히 있더란다. 남편은 곧장 낚싯점으로
가서 지난밤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가끔 거기서 그런 일을 겪었다는 낚시꾼들이 있심더."
  "무슨 얘긴데요?"
  "옛날에 그기에 한  부부가 살았다 안 합니꺼. 근데 을매나  서로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 근방에서  잉꼬부부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합디더.  그러코롬
살다 죽은 담엔 나란히 묻어달라  캐서 그 자손들이 그기다 그러코롬 나란
히 무덤을 해주었다  카는데 그후로 밤마다 오손도손  산 사람들맹코로 그
노인네들 얘깃소리가 들린다 캅디더."
  "진작 얘기 좀 해주시죠. 어젯밤에 얼마나 놀랐는지..."
  "아 꾼이 뭘 그깐 일로 그캅니꺼. 그 자리가 포인트는 포인트라예."
  제 아무리 간 큰 낚시꾼이라 해도 그런 일을 겪은 후라면 포인트 아니라
물 반 고기 반이라 해도 다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서로  사랑했으면 죽어서도 못 떠나고  함께하려 했을까? 결혼의
신성한 약속을 깨고 상대를 기만하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경
종을 울리는  얘기가 되리라 본다. 세앙의  모든 일이 다 변한다  할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부 사이의 사랑이 바로 그 중  하나가 아니겠
는가.

    나 따먹어
  "나 따먹어."
  안방에서 남편이 뭐라 그러는데 설거지하는 물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
는다.
  "뭐라고요?"
  "나 따먹으라구!"
  안방으로 가보니 남편은 침대에 널브러져 누워 있다. 근  일주일 동안 원
고 마무리하느라고 녹초가  된 그는 오늘에야 원고를  넘기고 쉬는 것이었
다.
  "뭐라 그런 거여? 물소리 때문에 안 들렸어."
  "나 따먹으라구."
  이 얘긴 나보고 위에서 섹스를 이끌어달란 얘기다. 그런데  난 특별한 느
낌이 드는 날이 아니면 내가 위에서 섹스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치 싫어."
  "왜?"
  "오랜만에 하는 건데 당신이 정상으로 해야지. 그게 뭐야?"
  "싫음 말구."
  "싫어."
  그러면서 나는 거실 창문을 닫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 안방 창문도 닫
는다. 그리고는 그의 위로 올라가 키스를 한다.
  "왠만하면 정사으로 하시죠."
  "지금 내 몸에서 멀쩡한 건 고추하나뿐이니까 알아서 해."
  나의 몸은  이미 36.5도를 넘어  뜨거워지고 있었다. '피곤해하면서  그는
왜 지금 섹스를 하자고 하는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난  서서히 그를 달
궈간다. 그러다 절정의  순간을 맞으며 그를 부둥켜안는데 갑자기 그가  체
위를 바꾸며 열정적으로  나를 끌어안는다. 두 사람은 모두 오랜만에  뜨거
운 사랑을 나누었다.
  "역시 피곤한 거하고 고추는 아무 상관이 없군."
  "그래?"
  "육체가 피곤할수록 어떤 땐 더 쇠방방이가 된다는 얘기야."
  "하긴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 순간에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고 하잖아."
  남편은 육체적 피로에  정신적 피로, 그리고 그 피로와 섹스와의  상관관
계에 대해  말했다. 여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남자들은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보다 정신적으로  피로할 때, 그러니까  무엇에 의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오히려 섹스 생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내 대학동창 중에 결혼한 지 8년이 되었고 아들 하나를  둔 친구가 있다.
그 부부는 더 이상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서 피임을 하고 있었는데 사진일
을 하는 남편이 근래 귀여운  여자애들을 찍으면서 아이 욕심이 났는지 하
나 더 갖자고 했단다. 그래서  다시 노력한 결과 아이가 들어선 것 같았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고자 병원에 갔더니 임신은 임신인데 아이가 정상이 아
니라고 했다. 의사의 설명은 이랬다. 요즘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하는데 남자
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면  정자의 양이 극심하게 줄어 난자를 공력
하기에는 역부족일 경우가 있고, 또 그 부부의 경우처럼  남자의 정자가 정
상이 아니라서 난자와 결합 되어도 정상아가 형성되지 못해 비정상 임신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친구는 유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한테 그 얘기
를 하면서 덧붙이길 무서워서 다시 임신하기가 두렵다고 했다.
  그러니 스트레스라는 것이 사람의  신체에 정신적인 것은 물론이고 육체
적으로도 가히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의학적
으로 규정되어 있고  매스컴이나 서적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친구의 경우처럼  실제로 겪게 된다면 난감하고 공포스럽기
까지 한 일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경제난국에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진 상황에서 전에  없던 스트레스까지 과중되게 마련이고,  부부생활
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영향을 바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남편은 아내 곁에서 아내는 남편  곁에서 서로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
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러니까 너 나한테 스트레스 주지 마."
  "내가 무슨 스트레스를 주는데?"
  "돈, 까탈스런 성격, 조바심, 신경질..."
  "됐어. 당신이나 나한테 스트레스 주지 마."
  "내가 뭘?"
  "돈, 과격성 발언. 왕 ~ 신경질..."
  "됐어. 이러다 또 싸우겠다."
  가끔 남편들이 아주 피곤해 보이면서도 섹스하고 싶을 때는 아내들이 서
비스를 해주자. 대체로 남자들은  위에서 하는 섹스를 선호하고 있지만, 때
ㄸ로 여러 가지로 바꿔가면서 또 다른 쾌감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지배욕
이 강한 남자의 겨우  여자가 위에서 하는 것을 아주 꺼리기도  한다. 드러
나 그런 고정관념이 부부의 성생활에 얼마나 장애가 되는지 하루빨리 깨달
아야 한다.
  "폐하. 오늘은 제가 위에서 서비스를 해드리겠습니다."
  장난스런 나의 말은 잠시 그를 웃게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자가 위에서 하는 섹스는 남자에게 봉사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그들의 지배욕에 하등 흠집을 내는게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조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행복이  가까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다.
 
    매일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

  "너 오르가즘 느껴본 적 있니?"
  "오르가즘이란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
  "한번 할ㄸ 몇 번 느끼는데?"
  "몇 번을 느낀다구?"
  "난 전혀야..."
  남자들이 섹스에서 얼마나 오래 끄느냐. 결국 여자를  오르가즘에 도달하
게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그들의 이슈라면,  여자들이 섹스에서 가
장 궁금해하고 이슈로 삼는 것은 아마도 오르가즘 그 자체일 것이다.
  남자의 오르가즘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그들은 언제나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 사정이 곧 오르가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2,3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몽정이나
유정, 자위 등  어느 경우에나 성행위와 똑같은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것이
다.
  여자의 경우는 어떤가? 여자는 섹스한다고  해서 즉시 성감을 느끼는 것
이 아니다. 결혼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  채 살
아가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니까 여자가 한번  오르가즘을 느끼기까지는
남자들의 보다 정성스런 봉사(?)가 있어야  가능하고, 그 봉사는 여자의 성
기와 몸 구석구석에  가해지는 자국과 테크닉이 능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불어 남자의 진실되고 애정 어린  자세도 그 테크닉 못지않게 중요한 봉
사 포인트이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능동적이고 정복적이다. 불감증인 여자를  남자가 싫
어하는 것도 바로 그 정복욕이 만족되기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남자
가 섹스할 때 최대의 기쁨 즉 정복의 정점을 느끼는 것은 여자의 오르가즘
을 확인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여자에 대한 완전한  소유가
곧 완전한  봉사를 의미한다는 것 또한  필히 알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남자는 여자가 오르가즘을 느끼는 그 순간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사실
여자는 오르가즘에 다다른 순간 남자와의 성교감 상태에 따라 그 오르가즘
을 더 길게도 끌  수가 있다. 그런 견지에서 남자는 자신이  사정했다고 해
서 성의없이 끝내 버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섹스란 참  이상하다. 부부의 성생활은  너무나 익숙한 상대와  반복되는
섹스라 항상 같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일상에서의 반복이 습관
이나 타성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르다. 난 섹스할  때마다 거의 100퍼센트
오르가즘을 느낀다. 물론 그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
다. 남편의 나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지극한 터치에 의해 가능할  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어떤  때는 아주 쉽게 오르다가 또 어떤  때는 아
주 힘겹게 오르게  된다. 처음부터 기대감에 넘쳐 시작하는 섹스에선  오르
가즘에 도달하기가 더  힘들었고, 아무 생각없이 하던 섹스에선 오히려  쉬
웠던 것 같다.  그것은 보다 본능에 가까운 상황에서의 섹스가  오르가즘에
오르는 데 더 확실하다는 얘길지도 모른다.
  그 정점을 찾아갈 때  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
딘지 모를 나의 목적지가 다가온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초조하고 긴
장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점에 오르면 어두운  터널을
막 빠져나왔을 때처럼  환하고 빛나는 세계로 선뜻  들어서며 환희를 느낀
다. 한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해본 여자라면 언제나 들뜬 마음으로  섹스를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온몸이  땀에 젖도록 차자 헤메는데도  그
정점을 만나기 힘들  때 나는 이상한 분노에 사로잡힌다. 남편과의  섹스에
서 언제나 오르가즘에 오르며  몸이 이상하리만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지
만, 그렇게 어려운 탐험을  끝낸 날은 결국 오르가즘에 오를 수  있었다 하
더라도 매우 피곤했다.
  여자가 오르가즘에 오르기 어려울 때에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나
는 거의 대부분을 남편의 사랑으로 오르가즘에 오르지만 매순간 그에게 떠
맡길 순 없는 일이다.  여자도 자기 나름대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
다고 생각한다.
  나느 오르가즘에 오르기 어려울 때 가끔 강간당하는  장면들을 상상한다.
어둠 속에서의 낯선 남자의 강간... 그러면 그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자극적
으로 느껴지면서 오르가즘에  다다르는 것이다. 어떤 여자들은  옛애인이나
평소 좋아하던 남자 배우들을 상상한다고 한다.
  상상 곳의 외도? 남자의 봉사 없이는 여자가 오르가즘을 얻기 어려울 것
이 남녀의 생리학적 숙명이라면 그것을 외면한 남자의 이기적인 섹스에 비
하면 여자의 상상  속의 외도쯤이야. 상상 속에서라도 자기 여자가  외도하
는 꼴을 못 보겠다면 자신의 섹스 테크닉을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오르가즘이 뭔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결혼한 지 5년이나 지난 친구가 하는 말이다.
  "벌써 몇 년짼데 아직도 모른다는 거야?"
  "글ㅆ... 난 내  몸 구석구석을 애무해주어야 서서히 달아오르는데  그 남
잔 언제나 후닥닥이야. 그러니 뭐..."
  이렇듯 여성들이여, 침묵하지  말자. 여자는 오르가즘에 오르기까지 한참
이 걸린다. 페팅에서 시작해  달아오르다 정점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
자에서 자신의  성감대를 자극해주길 요구해야  한다. 아내는 누구나  자기
남편의 성격을 잘  안다. 남편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를 조성해  섹스에대해
대화하자. 내가 보기엔  내 친구의 남편은 겉으로는 다소 다혈질이지만  얘
기를 나누어보면 섬세한 면이 있는 사람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사
람이라면 아내의 입장에서 조금만  적그적으로 대화한다면 금방 다가설 선
테. 친구는 남편과의  나이차를 의식해 언제나 주저해왔던  것 같다. 난 그
친구에게 남편과의 섹스 대화를 종용했다.
  "요즘 어때?"
  "그거 기분 괜찮은데."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섹스를 재미없어하거나 의무적으로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내가 남편과의 섹스를 통해 오르가즘에  오를 수 없을 때 자위를 선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상적인 성행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오르가즘을
오히려 자위를  통해 느낀다는 여자들이  이외로 많다. 자위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남편이란 섹스 파트너가 있는데 왜 자위를 선택해야만 하는가.
  나는 "매일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다.  그러나 나의 남편이 변강쇠라서
그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아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언제나
나를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이다.

    절대 사양하지 않는 그녀

  "한번 할래?"
  "미쳤어 정말."
  지난해 늦은 가을 낚시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평일이라 근처에 낚
시꾼들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갯바위에  붙
었는데 물때가 맞았는지  운 좋게도 3,40센티미터짜리 강성돔을 많이  낚았
다. 그러다 물이 빠지자  입질이 뜸해졌다. 남편은 어망에서 푸드덕대는 감
성돔 서너 마리를 꺼내 그 자리에서 회를 쳐주었다.  우리는 대통령도 먹기
힘들다는 강성돔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남편
이 갯바위에 걸터앉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듯
하더니 슬쩍 응큼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야, 한번 하지니까."
  "그러다 배라도 지나가면 어떻게 할려구 그래?"
  "배는 무슨..."
  그러면서 무작정  나를 덮쳐든다. 처음에  완강히 거부하던 나는  어느새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은 내 귓가로 갯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며 한순간  흥분이 나의 온몸을 감싸온다. 우리는 둘다  뜨거
운 열정에  휩싸이며 사랑을 나누었다. 남편은  그 기분은 둘이 먹다  둘이
다 죽어도 모를 만큼 달콤한 꿀맛이었다고 말한다. 동감!
  오랜 세월 닫혀 있던 나의 성이 남편을 만나면서 서서히 열리는 나는 그
세계에 푹 빠졌다. 원래 속박이나 간섭을 싫어해 저  혼자 속으로 빠져들며
자연스러운 삶을 고집해왔던 나는  남편의 자유로운 성의 세계를 접하면서
신이 났다. 성은  내게 성적인 부분 외에  닫혀 있던 사고까지 열어주었고,
방종이 아닌 정돈된 자유를 느끼게 했다.
  나는 부부의 성생활에서 아내를 위한 남편의 노력을  요구한다. 21세기라
는 열린 세계, 그 옛날 닫힌 사회하고는 여성들도 확실히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별 변함없이 고수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자의 성에 대한
태도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답답하게 닫힌  세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육체 관계를 가지고 있고, 솔직한  섹
스를 즐기고  싶어한다. 그런데 남편들은 "여자가  정숙하지 못하게"라든가
"니가 창녀냐?"는 식의 잔인한 말로 아내를  몰아붙이고 있다. 아내가 섹스
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단지 그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남자
들이 외도할 때 상대 여자한테는  변태적이거나 보다 온갖 강도 높은 형태
의 섹스를 요구하지만 막상 자기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속설
은 마치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몹시  아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럴까?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외도라면  오히려 단순한 섹
스여야 할 것이다.  아내와 나누는 섹스야말로 다양하고 뜨거운 표현이  되
어야 할 것이다.  남편이 열린 마음으로 아내를 이끌어준다면 그녀들은  정
말 멋진 섹스 파트너가 될 것이다.
  "야, 너 그거 줄래?"
  "뭘?"
  "똥꼬."
  "미쳤나봐! 이 남자 편태 아냐?"
  난 딱  잘라 거절했다. 어느 날  남편이 불쑥 나한테 항문섹스를  요구한
거였다. 내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러지 말고 딱 한번만 주라."
  "왜? 내가 시들해졌어?"
  "그게 아니라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천연동굴이잖아."
  "ㄷ어! 두 번 다시 그 예긴 꺼내지 마! 변태!"
  그렇게 핀잔을 듣고도 남편의 요구는 지칠 줄 모른다. 틈만나면,
  "한번만 주라~."
  "싫어!"
  "딱 한번만, 응?"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 죽고 난 뒤에 해."
  그래도 그는 죽는  그날까지 그 위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호시탐탐
나의 뒤를 노릴 것이다.
  낚시터에서든 야외 어디에서든,  차에서든 욕실에서든 설사 내가  월경중
에라도 나는 남편이  섹스하자고 하면 절대 사양하지 않는다. 그건  어디까
지나 그가 주는 거고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가 달라는  것들 중
에는 분명히 거절하는 것이 있다.
  "내 똥꼰 절대 못 먹어!"

    이럴 때 옛 애인이 생각난다.
  
  '여자의 과거'란 말은 흔해도 '남자의 과거'란 말은  별로 쓰지 않는다. 그
러니까 남자들은 결혼 전에 어느  정도 여자관계가 있다 해도 대충 넘어가
지만 여자들은 결혼 전에 반드시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혼
전 순결이란  것이 어째서 여자에게만  요구되어야 하는가,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를 만날 때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 상대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어야 하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당연하다.
  '남자는 그래도  돼"라는 아주 오래된 관념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의 알
수 없는 속성 때문인지 여자는 남자의 과거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
데 남자들은 거의 병적으로 여자의 과거에 집착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
게도 바람둥이일수록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우리 마누라는 과연 누구에게 첫 순결을 바쳤을까? 과연 그 남자를 진정
으로 사랑했을까? 혹시 그 남자를 지금까지 못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나 많은 남자들을 만났을까...?
  그러나 절대로 아내의 과거를  캐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왜?  여자
의 과거나 캐는 남자에게 과거가  있다 한들 곧이 곧대로 말하는 어리석은
여자는 없으니까.
  그리고 기를  쓰고 아내의 과거를 캐서  뭐 하겠는가. 고작 이혼밖에  더
하겠는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ㅇ벗는 과거 때문에  서로 사랑해서 평생
살자고 한  약속을 깨는 일이 현명한  것인가.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뻔한
답을 왜 무모하게 에너지만 소모하는가.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그들의 과거란 그들이 걸어온 인생의
지나간 한 부분일 뿐이다.
  더불어 남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 하나, 여자의 망각이다. 여자는 잊기
와 정리를 잘한다. 남자는  다른 여자를 품에 안았을 때 자기  아내를 떠올
리고 죄책감을 느낀다지만 여자는 다른  남자를 안았을 때 자기 남편을 절
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여자는 어디까
지나 현재에 충실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와 달리 결호하면  가
정을 지키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
라져서 잘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를 어리석은 집착으로 캐내려 해서 그녀를
괴롭힌다면 당하는 입장에선 정말 난감한 일이다.
  혼전 순결, 아직까지도  여자의 순결을 문제삼는 덜 떨어진 남자들이  많
다. 오죽했으면 결혼을 앞둔 여자들이 성형외과로 달려가  처녀막 재생수술
을 받으려고 난리들을  치겠는가. 남자는 여자가 얼마나 영악한지 잘  모른
다. 여자에게  중요한 건 현재의 남자이고,  결혼 상대자일 뿐이다.  과거에
죽고 못살던 남자도 이미 그녀에게는 아무 존재도 아니다.  여자는 한번 돌
아서면 절대로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데 평생 살기로 결심한 남자에게  과
거가 있다 한들 말하겠는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이  깨지는 게 두려워
서가 아니다. 과거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아내로 맞는 남자가  승자이지 결혼 전 애인들은 패자일 따
름이다. 패자란 사라지게 마련이지 않는가.
  정말 남자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은 '지금 그녀가 나를 사랑하느냐?'
'동정이나 타협이 아닌 정신의 순결이 중요한 것이다. 이건 정신의학적으로
혹은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 중 하나이다.
  우리 부부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모 영화감독의 여자 친구를 만난적이
있다. 그녀는 평범하지만 어린  나이에 비해 영리해 보였다. 한번은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는걸 아는  그 감독이 낚시를 가자고 해  다 같이 서해 끝의
섬으로 낚시를 갔었다. 우리는 기차편을 이용해 갔다왔는데  편도 6시간 가
량이 걸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서로 마주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
누며 시간을 보내는데,  우연히 화정실에 갔다가 그녀와 따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언니는 결혼한 다음에 다른 남자 생각난 적 없어요?"
  "다른 남자?"
  "말하자면 옛날에 사귀었던 남자 말예요."
  생각 안 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옛날에 사귀던 남자가  없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가끔 생각날 때가 있지."
  "어떤 때 생각나는데요?"
  "남편이 나한테  못되게 굴 때. 아무래도  비교하게 되지. 그 남자였다면
나한테 이렇게 안 했을 텐데 하고 말야."
  "그럴 때 지금 아저씨한테 미안하지 않아요?"
  "아니."
  "왜요?"
  "뭘 미안해? 자기가 잘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하겠어? 호호...  근데 그
런 건 왜 자꾸 물어? 현재 상황이야?"
  그녀는 좀 심각한 것  같았다. 그 감독 바로 전에 사귀었던  남자가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서 지금도 많이 그립다고 했다. 말하자면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그 감독
을 만났고, 과거의 남자에 비해 지금의 남자가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얘
기였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결혼을 약속한 상태인 것이다.
  "부부가 되어 살다가 서로 싸워서 분한 마음에 옛날 사귀던 사람이 생각
날 때도 있지만, 지금 그렇다면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건 더 심각한데. 엄밀히 말해서  어떠한 이유로든 지나간 남
자를 생각한다는 건 남편이든 애인이든 현재의 남자한테  잘못하는 일이야.
그것도 상대에게 미안해할 정도면 안 되지."
  "그 사람도 그럴 수 있잖아요?"
  "그건 그의 문제고."
  "..."
  두 사람 사이가  불안해 보였다. 결혼을 약속했다 하더라도 확실한  믿음
이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 감독을
만났는데 그녀와  결국 헤어졌다고 했다.  정확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상처가 깊어 보였다.
  여자는 남자가 잘못했을 때나 부족해 보일 때 옛  애인을 떠올리게 된다.
대체로 전자는 결혼 후의 경우가 많고, 후자는 아무래도  서로 비교할 때라
결혼 전의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편이든 아내든 과거의 사람을  떠올리는
것을 탓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당신 지금 무슨 생각해요?"
  나는 남편이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는데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을차
라면 가까이 다가가 묻는다.
  "그런 이런저런 생각들."
  "예날 여자?"
  "참 기가 막혀서. 무슨 예날 여자?"
  "강력한 부정은 긍정이라며?"
  괜한 염장을 지른다.
  "..."
  여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 혹시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
러면서 남편 앞에 자신만만했던 내가 조금 작아지는 느낌이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었나... 혼자 별의별 상상을  다하며 알지도 못하는 그
의 옛 여자들을 질투하는 것이다.  나도 참, 이미 나의 남자가 되었는데 생
각을 좀 한들 어떻고 또 안 그런들 어떤가.
  아내들도 남편한테 섭섭해서도  아니고, 살아가는 게 힘들어서도  아니고
너무나 행복한 나날들 속에서도 어느  날 문득 과거의 남자가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거야 어찌겠는가...

    뒷물하는 남자

  대다수의 남편들은 일방적인  섹스를 감행할 때가 많다. 어느 순간  불끈
성욕이 솟아  지고 있는 아내를  덮친다거나, 설거지하는 아내의  엉덩이를
보고 느닷없이  달려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치한들은
그래도 애교가 있다.
  술에 취해 들어와 역겨운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무작정 달려드는 경우는
문제가 좀 다르다. 섹스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입한 지  채 몇 초도 안돼
아정하고는 푹 꺼져서  곧장 코를 골고 자기 십상이다. 밉살스럽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고,,,
  부부생활은 모든 것이 절반의 책임이다.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거 머리 좀 잘 빗고 있지, 그게 뭐야?"
  "저 마누라쟁이 살만 뒤룩뒤룩 쪄가지고..."
  "옷이나 제대로 챙겨입지. 맨날 내 티는 왜 걸치고 난리야?"
  "에이, 입에선 마늘 냄새, 옷에선 반찬 냄새!"
  "저러니 안고 싶은 생각이 나겠어?"
  아내들이라고 할말 없나.
  "집안 살림하랴. 애들  뒷바라지하랴. 남편 챙기랴...난 뭐가꿀  줄 몰라서
안 가꾸나?"
  "당신도 한 번 내 대신 집안일 좀 해봐!"
  "자긴 뒤룩뒤룩 살 안 쪘나? 배는 남산만해가지고." 
  "허구한 날 술타령에 밤 12시야!"
  "피곤해서 하자 그래도 싫다!"
  이렇게 감정이 골이 깊어지면 남남처럼 되어간다.
  그러나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 먼저 자신을 챙기고 상대에게  충격요법
을 가해보자.
  나는 얼마 전 남편에게 지나친 충격요법을 받았다. 우리  부부는 한번 된
통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집에  왔다. 분위
기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선배가 중재하기 시작했다.
  "김작가, 왜 그래?"
  "저 여자하고 못살겠어요."
  난 너무나 놀랐다.  싸움의 원인은 둘ㅉ치고 잘못은 일단 내게  있었다고
생각을 막 정리하고 있던 차에 웬 날벼락!
  "김작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어떻게 만난 커플인데. 잘살아야지."
  "선배님, 나도 웬만하면 이러겠어요?"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이나 들어보자."
  "저 여자 말이죠. 나무  잘났어요. 세상돌아가는 일도 나보다 더 잘 알고
뭐든지 잘난 여자에요."
  "잘난 마누라 뒀으면 좋지 뭘 그래?"
  잘하지도 못하는 술이 과하기도  했지만 남편은 아주 과격해지기 시작한
다. 그를 만난 이후 처음 보는 보습에 난 당황했다. 평소 나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나오는데,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
지만 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더 좋은 남자 찾아가라 그러세요. 그리고 저  여자 더러워서 같이 못 살
겠어요."
  충격! 갑자기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면서 이상하게 흐른다.
  "??"
  "잘 씻지도 않구요.  외출했다 돌아와서 화장도 잘 안 지우고  자는 여자
에요. 그 잘난 여자가 말예요. 그래서 섹스하기도 싫어요."
  "..."
  이쯤 되면 그 선배도  할말이 없다. 난 아무리 친한 선배라도  너무 창피
했다. 서로 잘잘못을 얘기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었다. 근데 이건 너무
심하다. 어찌어찌 전쟁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가시지 않는다. 며칠 후,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뭐가?"
  "술 취하면 다야?"
  "뭐가 말야?"
  난 그날 일을  되살리며 남 앞에서 부부간의  섹스를 들먹이며 공격하는
건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의 변명인 즉, 그 선배가 자꾸 자초지종을 캐물어
서 더 끌려가는 속내가  나올 것 같아 그냥 빨리 끝내려고  그랬다는 거다.
세상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 얘길 그렇게 할  수가 있어? 더럽다구? 내가
뭐 그러게 더러워? 그래. 다신 섹스하지 마."
  다다다다... 난 이러쿵저러쿵 그날의 분풀이를 해댔다.
  "야! 그날 얘긴 다시 안 하기로 했잖아!"
  그리고는 남편도 저만큼 도망간다. 남편은 얘길 빨리  끝내려고 그랬다고
변명 했지만, 그날 그가  말한 것들은 평소 내가 느끼고 있던  것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남편은  욕실로 들어가 이를 닦고 세수를 하
지만, 난 곧바로 눈을 비비며  커피물을 올려 커피를 타 마신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나서야 씻으러 간다. 남편은 거의 매일 머리를  감고 겨울에도 격일
로 샤워를 해대지만, 나는 맘 내키면 샤워하고 더러워야 머리를 감는다. 남
편은 아무리 피곤해도 꼭 씻어야  자고, 난 피곤하면 잠부터 자야 한다. 그
러나 이러한 일상은 별로 나 자신에게 반성을 요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문
제는 섹스하려 할 때다.  남편은 섹스하기 전에 꼭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스킨을 바르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 그런데 난  별 생각없이 해왔다는
것이다. '별 생각없이'란 바로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준비된 남편, 준비된 아내, 그가 원하는 건 바로 그거였다.
 내가 창피를 느꼈어야 했던 건 선배 앞에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
게여야 했다. 결혼 후 어느센가 긴장을 풀고 느슨해진 건 나였으니까. 하긴
언젠가 샤워 후 오일 마사지를 했던 날 피부에 느껴지는 촉감이 너무 부드
럽다며 얘기해주었던 거며, 샤워 후 샤워코롱을 풍기며 잠들어  있는 내 얼
굴에 살짝 키스를  해주고 나갔던 거며,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한테  미안하
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또한 섹스 전에 꼭 뒷물(?)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성기를 깨끗
하게 씻는다는  거다. 왜냐하면 남자의  성기가 삽입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불결하면 여자의 생리학적  구조상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세심한  배려
가 고맙다.
  부부는 끊임없이 상대에게 배려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것도 노
력하지 않으면서 불평 불만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신
혼이 지난 부부들이라면 지금 당장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자.

    이듬해 이맘때
 
  93년. 그 해 연극을 하던  난 참 힘들었다. 내가 있던 소극단이 자금난으
로 해체되면서 나느 프리렌서로  뛰기 위해 동숭동이라는 연극의 중앙무대
로 나왔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선배나 동료  배우들을 만나보았지만 좀처
럼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공연 하나 하지 못하고 해가 바뀌는 건 아닌가,
초초감에 가을이 되자 몹시 우울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셔 서대문에 있는 한종합병원에 입원
하시게 되었는데 일이 없었던 내가 병간호를 맡게 되었다.  하루는 옷을 갈
아입으려고 집에 들렸더니 내게로 온 전화 메모가 눈에 띄었다.
  "선배님이에요? 오랜만이네요."
  "너 요즘 공연하는거 있니?"
  "아니요. 왜요?"
  "잘됐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그 선배는  같이 공연한 적은 없미나  평소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내
사정을 알고 직접 병원까지 찾아온 선배의 손에는 버나드 슬레이드의 대본
이 들려 있었다. 이미 공연이 거듭되면서 잘  알려진 '이듬해 이맘때'라는 2
인극이었다.
  "공연이 언제에요?"
  "그게 말야. 한 20일 정도밖에 안 남았어."
  "말도 안 돼. 2인극을 어떻게 20일에 연습을 마쳐요?"
  "어쩌다 그렇게 됐다. 할래?"
  "여배우 구하다 없으니까 나한테까지 왔죠?"
  선배는 씨익 웃는다. 공연이 20일밖에  안 남은 2인극을, 그것도 같이 공
연한 적이 ㅇ벗어 불아할 텐데  이렇게 맡기려 할땐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
었다. 공연장을 잡아놓고  배우를 못구해 연습이 늦어지니 속이 탓을  것이
다. 그러나 나에겐 기회였다.
  "좋아요. 그대신 돈 많이 줘야 해요."
  "고맙다."
  사실 내게 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년 동안 공친  걸 생각하
면 저절로 신이 났다. 더군다나 연기 좋다고 평이 나  있는 그 선배와의 공
연이라 더 좋았다. 어머니가 퇴원할 때까지 병원 근처  찻집에서 선배를 만
나 대본연습을 하기로 했다.  난 그날 밤으로 대본을 다 외울  정도로 작품
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듬해 이맘때'의 내용은 이랬다. 어느 휴양지에서 우연히  두 남녀가 만
나게 되는데 그들은  기혼자로 가정이 있었다. 그들은 만나 그날을  고스란
히 함께 지내고  헤어지면서 약속한다. 돌아오는 해부터 매년 그들이  처음
만난 날과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해
마다 그렇게  했다. 그러한 과정이 20,30,40,50,60대로  바뀌면서 그려지는데
그때마다 그들의  사고와 삶의 변화가  가족들과 연관되면서 극이  흐른다.
젊은 시절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에서 아주 늙어버린 두 남녀는 사랑과 우
정을 고백하며 포옹하면서 극은 끝난다.
  정말 빠듯한 일정 가운데 드디어 공연은 올려지고, 첫  공연이 끝나고 커
튼콜을 받으면서 난 눈물을 흘렸다. 극에 의한 감동  때문이 아니라 공연을
해낸 것에 대한  뿌듯함이었다. 입술이 퉁퉁 부르텃는데도 피곤할 줄  몰랐
다.
  "너 이제 봤더니 독종이다 야."
  공연 후, 술좌석에서 스 선배가 툭 던지는 말이다.
  "뭐가요?"
  "난 니가 해낼 수 있을까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
  "작년이었으면 못 해냈을 거에요."
  "무슨 말이야?"
  "한이오. 올 한 해 난  정말 비참했어요. 그 쌓인 한이 열정이 돼서 해낼
수 있었을 거예요."
  "부슨 말인지 잘 알지. 아무튼 고맙다."
  얼마나 신났는지 공연날들이 어떻게 흘러갔는 줄도 몰랐다.  드디어 마지
막날, 아침 일찍  서둘러 공연장으로 나가 분장실에서 조용히 대본을  읽어
본다. 그리고  그날 마지막 공연에선 극  중의 두 남녀에 빠져들어  마직막
장에 이르자 완벽하게  주인공과 일체가 되어 아주  늙어버린 나의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공연 후 나는  그 선배와 인연이 되어 몇 번 무대에 함께  섰다. 이젠
글쟁이가 되었지만 가끔 그 선배와  통화하게 되면 함께 무대에서 서고 싶
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젠 기혼자가 됐으니까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난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 두 남녀의 이야기가
모험이란 생각이 든다.  각자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해마다  만
나 밀애를 나눈다는  것이 단 하루일지언정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실제로
도 가능할 수 있을까? 시간과 상황, 모든 여건이 준비된다고  해도 과연 그
럴 수 있을까? 그들이 아무리 아무 탈없이 평생을 잘 살아내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외도임에는 틀림없는  일 아닌가. 아마 버나드슬레이드는  아름다
운 외도를 꿈꾸는 몽상가였을지도 모른다.
  꿈을 꾸는 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다. 사실 기혼자들  중에 한번쯤 외도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부가 살다보면 가끔  지금
의 남편, 아내말고 또다른 연인을 만나보고 싶을 것이다. 그건 행복한 결혼
인가 아닌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굳게 닫혀진 문일수록 더 열어보고  싶
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던가?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본다. 꼭 다른 이성과의  '이듬해 이맘때'를 상상하지
말고 부부끼리의 '이듬해  이맘때'를 연출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그러니
까 그 옛날 두  사람이 처음 사랑을 혹은 결혼을 약속한  장소라든지, 아니
면 처음 섹스를  나누었던 장소라든지 자기들만의 장소로  일년에 한번 단
하루의 여행을  떠나보는 거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잠시만이라도  일상을
잊고 그 옛날의 젊은 연인으로 돌아가보는 것다. 그러면  그곳에 멋진 시간
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부분 모델

  왜 남자들은 자신들의 성기에  크기에 그토록 광적으로 집착하는지 모르
겠다. 성기의 크기와  정력이 비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남자들의  성
기 타령은 성에 대해 눈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투쟁하듯이 계속되고 있다.
  남탕에 들어서면 크게 두 종류의 남자들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
는 목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탕으로 들어서는 남자들과 또다른 하나는
몸을 움추린 채  수건으로 성기를 가리고 들어서는 남자들로 말이다.  자세
히 살펴보면  그들의 행동 반경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전자는  크고
우람한 성기를 앞세워 자랑스러운  듯 내온탕과 한증탕을 뻔질나게 오가며
탕안을 휘젓고  다니는 반면, 후자는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대충 씻고는 후다닥 도망치다시피 나간다는 것이다.
  남편의 고추에 얽힌(?) 얘기가 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후, 오
랜만에 동창들과 만나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에  사우나에 갔다고 한
다. 모두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장난기가 발동한 한 친구의  제의로 만원씩
걸고 즉석 성기 경연대회를 열었는데 한 친구가 도토리만한 남편의 성기를
보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핀잔을 주었단다.
  "야야. 넌 빠져. 그걸 가지고 어디 명함을 내밀려고 그래?"
  "짜샤. 길고 ㅈ은 건 대봐야 알 거 아야?"
  그는 그 친구의 핀잔을 일축하고 당당하게 경기에 참가했다.  열 두 명이
각자의 성기를 빳빳하게  발기시켜 서로 키재기를 한  결과 예상을 뒤엎고
남편이 우승을 하였단다.
  "우와, 자라고추가 무섭다더니 정말 무섭네!"
  그의 친구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고, 그는 12만원을 챙겼다는 얘기다.
난 무슨 그런 장난을 하는지 남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웃었다.
  남자들은 어리석게도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섹스할 때  성기가 커야 여자
를 만족시킬 수 있다거나 깊숙이  삽입해야 여자를 다운시킬 수 있다고 생
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남자의  성기가 크면 시
각적으로 흥분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만
큼 성기의 크기가 성패를 좌우하지 않는다.
  여자의 성기는 생리학적으로 내성기와 이성기로 나눌 수  있는데, 내성기
에는 질, 자궁, 난소, 난관 등 번식을 위한 중요한 기관이 있고, 외성기에는
그런 것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겹들로 싸여 있다.  그런데 여자의 성감대는
외성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면 외성기를 자극시킴으로써 여자를  만족
시켜주는데 과연 성기의 크기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남자는 성기의 크
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자기 여자의 성감대가  어디인지를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부분 모델이라는 것이 있는데 손이나  다리 등 신체의 한 부분을 광고하
는 것을 말한다. 내 남편의 슈퍼고추는 섹스에서 보다는  부분 모델로 나간
다면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다. 오히려 내  남편을 자랑한다면 적극적
이고 기획적(?)인 터치로  나를 몇 번의 오르가즘에 오르게 해준다는  점이
다. 자랑이 너무 심했나?
  "선배가 대단하다면서,정말이야?"
  "빌려줄게 한번 직접 해볼래?"
  "?!"
  결혼한 동료 작가들이 장난스런 질문에 무심코 던진  대답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되묻는다.
  "정말 날 걔네들한테 빌려줄 거여?"
  "꿈 깨! 어림도 없어!"

    비밀병기

  "두 분도 싸워요?"
  남편의 에세이집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가 나온 후  여러 분야
에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이다.
  "말도 못 해요. 아마 얼굴만 마주보면 싸울 걸요."
  "안 그럴 것 같은데..."
  남편은 그의 수필집에서  우리 부부의 성생활을 예를  들어 부부의 열린
성에 대해 피력했는데 사람들은 아마  그걸 읽고는 우리가 다투지 않고 다
정하게 사라아가는 부부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다정히  살아가는 부
부라 해서 다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주  싸우는 부부일수록 정은
더 깊은 법 아닌가?
  "아니 싸우긴 왜 싸우니?"
  "왜 싸우긴. 기분 상하게 하니까 싸우지."
  친정 어머니는 아버지와 살아오시면서 잉꼬부부라고 주위에 칭송이 자자
했었다.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는 우리 부부싸운 얘길 해주면 이해할  수
없으시단다.
  "서로 정 깊게 살아도 짧은 세월인데 싸우지  말고 살아. 자꾸 싸우다 보
면 미움이 쌓여 멀어지는 법이야."
  "그래도 우린 좋아해."
  "서로 존중하면 싸울 일이 뭐 있겠어?"
  "존중은 존중이고, 싸울 일은 또 많아."
  "쯧쯧쯧..."
  꼬박꼬박 대꾸하는 딸년에게  눈을 흘긴다. 어머니는 여자가 더 많이  참
아야 하고 무조건 남편한테  잘 해주라 하시고, 난 어머니 세대와  달리 이
젠 서로 잘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천방지축 제멋데로인  딸년의 고약한 성
격을 너무나 잘 아시는터라 어머니  눈에 그저 선비같이 선하고 성실해 보
이기만 한 사위가 더 걱정인 것이다.
  "엄만 몰라서 그렇지 그 남자가 얼마나 신경질적인데 그래?"
  "니가 더 그래."
  물론 내가 더 그런 건 사실이다.
  결혼 후  한 일년간은 정말 지겹게  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다툼들이다. 그러니 별것도 아닌 이런저런 일상의  일들로
마주치기만 하면 싸웠다는 얘기다. 하긴 부부 사이의 다툼거리는  게 다 비
슷할 거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싸우는 게 대부분이고, 어쩌다 심각한 일
로 다투다가도 삼천포로 빠져  그만 일로 왜 목청을 높이냔는 둥,  왜 쳐다
보는 시선이 그러냐는 둥 본론은 어디로 가고 쓸데없는 신경전이나 벌이기
일쑤다. 그러고는 며칠씩  딴 방에서 기거하며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어떤 땐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아예 그만 살자고까
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최악의 경우가 아니고 가장 유치한 결론이다.
그럴 경우 당연히 그 말을 먼저꺼낸 쪽이 패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패배의
쓴 잔과 더불어 그런 엄청난  말을 했다는 가책을 느끼며 전쟁 후유증까지
겪게 되는 것이다.
  "야, 이제 그만 좀 싸우자."
  "난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럼 내가 다 잘못했다는 거야?"
  "물론이지."
  "나 참 치사한 자식!"
  우리 부부가 그렇게  기를 쓰고 싸우다 그 싸움이  다소 뜸해지게 된 건
서로 많이 이해가 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둘다 싸우는 게 너무 지겨워서
그리 되어진 것이다. 그래도 휴전상태가 길어졌다 뿐이지  티격태격 국지전
은 여전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흔한 말이 있다.  죽어라고 싸우다가도 한번
같이 섹스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원상복귀가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옛말에 부부가 싸워도 절대 딴 방 쓰지 말고 잠은  같이 자라고 했나 보다.
내가 부부생활을 해보니 그런 말들은 어느정도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다투
고난 뒤 각자  딴 방에 쳐박혀 있는  동안, 난 서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
펑펑 울 때가 많다. 그리고 싸우면서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를 내었던 순간
들이 자꾸 머리에 떠올라 민망하기도 하고 어떤 땐 분한 마음에 용서가 안
되기도 한다.
  특히 분한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지 않을 때 난 가만히 결혼 앨범을 꺼내
본다. 결혼식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운 화장을 하고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를 정장을 한 남편이
다정히 끌어안는다. 사랑하는  친구에세 부케를 날려주며 행복을  전이시키
고,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랑의 키스를 받는 신부, 갖가지 멋을 부리
며 사진을 찍어대는 사진사의 플래시  속에서 나와 남편의 환한 미소가 하
얗게 부서진다.
  "정말 행복하다."
  "나두요."
  이 두마디의  말이 새겨진 신혼 여행지의  사진들... 어느새 남편을  향한
미움은 저만치 사라지고 슬쩍 그의 동정을 살핀다. 지금 뭐  하고 있지? 밥
은 잘 챙겨먹나?
  그러니까 결혼 앨범이 우리 부부 사랑 회복의  '비밀병기'인 셈이다. 부부
싸움 후 회복이 잘  안 될 ㄸ 한번쯤 결혼 앨범을 꺼내보자. 그  엣날 자신
들이 얼마나 함께하길 원했고,  얼마나 사랑했는지 새삼 느껴질 것이다. 그
러면 화해는 물론이고 상대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꽃을 든 남자

  정말 말도 탈도  많았던 1997년이 지나고 무인년  새해가 막 시작되는가
싶더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금세 한 달이 흘러 1월의 마지막날이 성큼 다
가왔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정말 실감났다. 남편과 난 1월의 마지
막 만찬(?)을 끝내고 텔레비젼 앞에 앉아 온통 IMF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
고 있는 나라 정세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가 끝나자 남편이 재킷을 걸쳐 입고 현관을 나선다.
  "어디가?"
  "비디오 빌리러."
  "헌꺼번에 서너 개씩 빌리지 말고 제발 하나씩만 빌려."
  "알았어."
  남편이 항상 끼고 살아야 하는 게 있다면, 그건  담배와 커피와 비디오이
다. 수시로 커피를 타마시고  매일 꼬박꼬박 88 두 갑을 피워야  하며 매일
비디오 몇 편을  때려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였다. 지갑만 두둑하다면야  딱
히 뭐라 그럴 것도 없다. 그런데, IMF 한파로 충무로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남편이 계약한 작품들이 연쇄적으로 부도(?)거 나는 바람에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자 난 당장 남편의 담뱃값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다행히 동전이라도  끌어모아 담뱃값을 충당하는
날은 차라리  행복한 날이었다. 동전마저  바닥이나면 난 걸어서  친정까지
원정(?)을 떠나야만 했다. 우리집과 약  서너 블록 떨어진 친정에 도착하면
친정 어머니와 수다를  떨면서 슬쩍슬쩍 번역일을 하는  작은 오빠의 그날
외출을 신경쓴다. 드디어 오빠가 왜출을 하면 오빠 방으로  들어가 그가 남
겨놓은 동전들을 챙겨들고  유유히 친정을 나와 그  돈으로 담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난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자신의  고명
딸을 그토록 고생시킨다는 사실을 결코 알리고 싶지 않다.
  비디오만 해도 그렇다. 담배값마저 없는 형편에 비디오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남편은 하루라도 비디오를 보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는다고 투정을 부리기가 일쑤였다. 우리같이 영화일을 하는  사람들은 당
연히 어떠한 형태로든  영화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 그렇기에 그런  남편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남편은 다른 건  못 봐도 한국영화는 단
한편도 빼놓지 않고 봐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 영화가  흥향에 실패했건 성
공했건, 작품성이 떨어지든 아니든  무조건 봐야 한다는 거였다. 남편 말인
즉 적어도 시나리오 작가라면 흥행에서 성공한 작품은 성공한 원인을 세밀
히 분석해야 하고, 실패한 작품은 실패한 작품대로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한
다는 거였다. 당연하고 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가계를 꾸려가는 내 입장에
서 보면 남편의 투정이 야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경우를 몇 차례 경험하면서 내게 새로운 버릇이  생겨났다. 남편 작
품이나 내 작품이 팔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비상금을 챙겨 집안 어딘가
에 깊숙이 숨겨놓는  거였다. 돈이 바닥나는 그날을 대비해 남편의  담배값
과 비디오 대여료로  적립해두는 것이다. 비상금이란 원래 집안에 급한  일
이 있을 때  쓰는 돈이지만 우리집의 비상사태는  남편의 담배값과 비디오
대여료가 바닥났을 때니까.
  마침내 비디오를 빌리러  간 남편이 고맙게도(?) 단 한편만 빌려  돌아왔
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불쑥  장미 한 송이를 내미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
로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고 생각을 하는데,
  "한달 동안 잘 살아줘서 고마워서 주는 거야."
  "..."
  남편 말인즉 없는 살림 버텨내주고 잘 살아주는 마누라가 예뻐서 앞으로
매달 마지막 날이면  그 보답으로 장미를 한 송이씩 선물하겠다는  것엿다.
그 말에 순간 눈물이 핑- 그리고 그 동안 남편 담뱃값 때문에 가슴을 졸이
며 오빠 방을 시도때도 없이  들락거렸던 고초 아닌 고초와 비디도 대여료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지난날들의 속상함이 눈 녹듯이 말끔히 씻겨 내린다.
  그날 이후, 남편은 매달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장미  한송이를 내게 선
물한다. 그 장미들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로 만들어준다. 어쩌
면 그건 매달 나에게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는 '꽃을 든 남자'가 언제나 내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맞수

  "히야아! 그렇지! 우와!"
  어느 날 아침, 난 이 괴성에 깜짝 잠을 깬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
가보니 남편이 상기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박찬호 선수의  야구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문에 기대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섰
으면 입이 함지박이 되어 웃는다.
  "야, 홈런이야 홈런!"
  "찬호가 친 거야?"
  "물론이지 마! 야아- 죽인다 죽여."
  남편의 기분이 완전히 업이다. 기어코 일어나 나를 껴안으며,
  "커피 타줄까?"
  "아니, 잠이나 편히 자게 해줘."
  "이왕 일어났으니 커피 마셔라. 응? 내가 타줄게."
  괜히 자기가 기분이  좋으니까 생난리다. 잠은 천리 밖으로 도망가고  결
국 난 그의 옆에 앉아 같이 경기를 본다.
  남편은 스포츠광이다. 어느  한 종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온갖  스포
츠를 다 좋아한다. 각 종목마다 경기 룰은 물론이고  선수와 감독의 경력과
현재 상태, 그 밖에 경기 상황은 과거와 현재의 분석이  다 끝나 있을 정도
다. 무슨 올림픽 같은 것이라도 하게 되면 그게 다  끝나는 날까지 난 아예
텔리비전 시청은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집에서 보는 신문도 스포츠  신문
이다.
  저녁시간에 하는 스포츠 뉴스는 각 방송마다 돌아가면서 다봐서 옆에 있
는 나도  그날의 경기 상황을 다  외울 정도다. 그러니 월드컵이나  박찬호
경기, 일본에 가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의 경기 등이  있는
날은 거의  피크다. 특히 박찬호의 경기는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그날의
남편 기분이나 스케줄이 좌우되기도 한다.
  "이렇게 난리치는 건 당신밖에 없을 거야."
  "무슨 소리! 이 정도는 약과지.  우리나라 남자들치고 찬호 경기에 열 안
올리는 남잔 아무도 없어."
  "아무튼 경기장까지 안 가고 집에서 봐줘서 고마워."
  "...?"
  내가 대학 1학년  때였다. 별 재미있는 일들도 없이 시시한  시간들이 지
나고 있던 차에  프로야구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스포츠를  싫어하
던 내가 어째서 그랬는지 야구경기에  푹 빠져들어 아무튼 경기가 있는 날
은 서너 시간을 꼬박 텔레비젼 앞에 붙어낮았고, 저녁엔  각 방송마다 스포
츠 뉴스를 돌려보며 그날의  경기 하이라이트까지 모조리 훑어보며 열광했
었다. 한  일년은 그러더니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야구와 멀어졌는데  이제
스포츠광인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야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
도 예전엔 한때 야구를 접했던 적이 있어 함께 보면 다행히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내 친구의 남편은 바둑광이다. 공무원인 그는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퇴근만 하면 곧장 기원으로 달려가  바둑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와서
까지 컴퓨터 바둑을  둔다는 것이다. 거기다 가끔은 친구들과 내기  바둑까
지 두는 판이라 내 친구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일요일에 애들하고 놀이동산 가는 거 잊지 말아요."
  "알았어."
  대답뿐. 그는 일요일에 기원에 가 앉아 있었다.
  "내기 바둑만은 두지 말아요."
  "알았어."
  대답뿐. 마누라가 이상해서 지갑을 체크해보면 비어  있다. 이러쿵저러쿵.
티격태격 바가지를 긁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리고 특별히 나쁜 짓을  하
는 것도  아니고 노름도 아닌, 단지  취미가 좀 광적이라는 것뿐이니  딱히
뭐라고 하기도 뭣하다는 거다. 어느  날 내 친구는 '그래 바둑이 뭐길래 그
렇게 빠져  들었는지 나도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 부부에게 다행스럽게도 그녀 역시 바둑을  좋아하게 되었단다.
지금은 부부가 집에서 같이 맞수가 되어 바둑을 둔다고 한다.
  "애들은 아주 고아가 됐겠군."
  "그래서 애들도 바둑을 가르치려구 그래."
  아마도 조만간 내 친구  가족은 바둑 동호회를 결성하게 될 것  같다. 그
래도 가장 신나하는 건 남편이란다.
  위의 경우는 아내 쪽에서 노력한 결과 남편과 함께 취미활동ㅇ을 즐기게
된 것이지만 내가 아는  한 여자 작가네 집은 그반대다. 그녀의  남편은 또
등산광이다. 고등학교  선생인 남편은  조말마다 등산회원들과  여기저기로
등산을 다니는데 그녀는 일종의 원조 방콕족(외출을 잘 안 하고 거의 집안
에만 틀여박혀 있는 사람들을 일ㅋ는 말)이라 집에서 글쓰는 걸 좋아해 남
편의 그런 취미생활에 별 불만이 없단다.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란
식이다. 그런데 남편 쪽에서 그녀를 집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이다. 아
내는 싫다 싫다 하는데도 남편은 기를 쓰고 설득해 등산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서울 근교의  도봉산을 오르기로 했다. 아직 그야말로 드산이  시
작도 되지 않은 초입에서,
  "아직 다 안 올라온 거야?"
  "야,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럼 그만 내려가자."
  "무슨 말이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남산보다 높아?"
  "??"
  도봉산을 오르면서 남산 타령을 한다.
  "남산은 올라가면서 그 정도면 끝까지 가볼 수 있는데 말야."
  "어, 뭐... 비슷해!"
  그렇게 꼬심을 당하면서  결국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꽃힌 도봉산에  관
한 푯말을 읽던 그녀의 입이 쩍 벌어지며,
  "아니. 해발 710미터라고?  그럼 미시령이나 그런 산들하고  비슷하단 얘
기잖아?"
  "그럼 마, 진짜 남산만한 줄 알았나?"
  "나 미시령 넘을 때  차 타고 가면서 되게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
가, 그런 산을 내가 걸어서 올라왔다니..."
  그런데 너무 좋더란다. 산봉우리를 휘감아도는 기가 막히게  싱그럽고 시
원한 바람,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전경, 그리고 무언가 해냈다는 뿌
듯함... 결국 그녀는 남편과 함께  등산광이 되었다. 돈과 시간이 빠듯한 생
활임에도 불구하고 절역해가며 그들 부부는 함께 등산을 즐긴단다.
  주말과부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남편들의 취미생활 때문에 불평 불만인
아내들이 많다. 그런데 아내들은 거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을 땐
산다 만다 목숨걸고  난리를 피우면서도 남편의 취미  생활로 그를 뺏기는
건 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은가 보다. 엄밀히 말해 다른 여자한테  뺏기나
취미생활로 뺏기나 남편을  뺏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건 분명히  다르다구?
결코 아니다.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다른 곳으로 흘러나갔다는  측면에
서 볼 때 결코 다르지 않다.
  아내들이여! 어떤 모습으로든 남편을 빼앗기지 말자. 남편이 스포츠에 열
광하면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보고, 그가 낚시를 즐기면 같이 따라가  옆에
앉아 커피라도 끓여주고, 그가 또다른 취미에 빠져 있다면  그 취미에 관심
을 갖고 다가가보자. 그들은 아내의 그런 모습을 분명히 환영할 것이다. 함
께 취미생활을 하며 둘만의 멋진 인생을 살아가자!
  요즘은 남편이  골프를 즐겨본다. 밤늦은  시간에 방영하는 골프  경기를
꼼짝않고 앉아 지켜본다.
  "이젠 골프까지 보시는군요."
  "곧 나도 칠 거니까."
  조만간 난 그의 캐디가 돼야 하나 보다.

    섹스엔 정년이 없다.

  날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60세만 넘으면 장수했다고 해서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다.  당시엔 평균
수명이 60세 미만이라  60을 넘긴다는 건 당연히 축하받을 일이었다.  그런
데 오늘날에는 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세를 우습게
넘겼고 1세기를 꼬박 채우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60을 갓 넘긴 사람들은  노인대학에 명함에 못 내밀 처지가 되
었다. 그래서 요즘 이렇게 어정쩡한(?) 노인들은 자식들이 환갑잔치를 준비
하는 걸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북망산
에 가라며 떠미는 것 같아 싫다는 거였다. 오히려  환갑잔치를 차려주는 자
식보다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자식이 더  효자라나 어쨌다나. 아무튼  점차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의 기업
들이 사원의 정년을 55세로 데드라인을 정해놓았고, 새  정부에서는 공무원
의 정년을 단축하겠다는 의지까지 표명하고 나섰으니 아무래도 더 많은 어
정쩡한 노인들이 양산될 것 같다.
  예전과 달리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이란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강제 예
편되어 일손을 놓고 구들장 신세를 져야 하는 이땅의  남성들,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노인대학에 편입해야  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셈
이다. 평생 가족의 생계와  행복을 위해 매진했던 그들이 설 땅은  과연 어
디에 있단  말인가? 노인복지정책 F학점을  면치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보면 사실 그들이 설 땅은 진무하다. 겨우 간다고  해봤자 경로당에서 장기
나 바둑을 두거나 공원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무심한 세월을 원망하는
게 고작이다. 결국  그들은 인생의 삼분의 일을 허송세월로 보내다가  억울
하게 삶을 마감하는 셈이다.
  하루는 남편을 졸라 탑골공원에 헌팅을 간 적이 있었다.  나는 평소 노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쓴  작품들 중에는 노인문
제나 세대간 갈등을  다룬 시나리오가 많다.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화
사에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난 거기에 조금도  굴하
지 않고  노인문제 등을 테마로 하는  작품들은 꾸준히 써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편과 난 극과 극을  달리는 셈이다. 남편은 흥행성  위주로
코믹물을 다루는 반면 나는 테마에 비중을 두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끊
임없이 다루니 말이다.
  탑골공원엔 수많은 노인들이 억지로  시간을 죽이며 곳곳에 자리하고 있
었다. 신문 한 장이  마르고 닳도록 봤던 기사를 보고 또  보고를 되풀이하
는 노인, 삼삼오오 모여 바둑이나 장기로 소일하는 노인들, 사는 게 지겨운
듯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는 노인 행동  등등. 그런데 그들 중에는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피부가 아직 탱글탱글한 어정쩡한 노인들
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정년에 말려  강제 예편당한 가짜(?)  노인들이었다.
그야말로 이게 바로 한국 노인들의 현주소였다.
  나는 공원  곳곳을 누비며 노인들은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모니터를 할 동안 보디가드처럼 내 곁에 붙어다녔다. 그러다  취재 도중 우
린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50대  중반의 여자가 70대 중반의  한
노인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을 건네가  그 노인은 그녀에게 오천 원짜리 지
폐 한 장을 건네주고  그녀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냥 지
나치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난 옆에 있던 한 노인에게 여쭤보았다.
  "할아버지, 저기 아줌마 따라가는 할아버지 어디로 가시는거에요?"
  그러자 노인은 겸연쩍게 웃으며 내게 말한다.
  "재미보러 가는 거지 뭐. 저 아줌씨 여기 매일 와."
  "...!!"
  그 광경을 목격하고 한 달쯤 뒤에가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매춘현
장(?)을 카메라에 담은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날 헌팅을 마치고 집
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문득 예전에 어느 한의사가 내게 들려주었던 얘기
가 떠올랐다.
  "섹스엔 정년이 없다더니 그 말이 맞는 거 같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남편에게 30대 초반에 한 한의사로부터 들었던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당시 내가 연극 배우로 활동할  때였는데 하루는 연습을 하다 다리를 삐어
동네 한의원을 찾았다. 일주일  정도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닫던  날 그
한의사가 내게 관심이 있었는지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혹시... 내일 시간이 있으시면 차 한잔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죠 뭐."
  나는 별 뜻 없이 승낙했고 다음날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나
보다 한 살 위인 그 한의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언젠가 자신의 한의원
을 방문한 노인의 얘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하루는 한의원에 족히  80세는 돼 보이는 찾아와  대뜸 그에게 정력제를
주문했다.
  "...?!"
  정말 쇼킹한 일이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넘겨도 훨씬 넘긴 노인이  이젠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할 나이에 정력제라니. 너무 황당해 그는  노
인에게 왜 정력제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그 연유를  담담하
게 털어놓았다.  항상 침울하던 동갑내기  친구가 별안간 혈색이  좋아지고
희색이 만면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정력제를 먹고 부인과 가끔 섹스를 했
더니 회복빛으로 암울했던 세상이  무지개빛으로 보이고 갑자기 힘이 솟는
다는 거였다. 결국 노인은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아  한의원을 찾은 셈이었
다. 그 노인은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너무  닫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렇다. 직장이나  부모의 역할엔 정년이  있을지 몰라도 섹스엔  정년이
없는 것이다. 대다수의 부부들은 4,50대에 접어들면 미리 섹스에 대한 자신
감을 상실하고 섹스를 기피하는 경향이 많은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특
히, 여성들은 폐경기에 접어들면 진정한 여성으로서으 의미가  끝났다고 생
각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그럴 필요가 없는 것
이다. 폐경기란 단지 종족 번식의 임무만을 박탈당했뿐이지  섹스 자체까지
박탈당한 건 아니기  ㄸ문이다. 다만 폐경기가 되면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
지 않아 페니스를  삽입할 때 통증이 수반되지만 겔(gel)이란  유연제를 질
입구에 바르면 남편과의 섹스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섹스엔 켤토 정년이 없다. 자신감을 가지고  죽는
그날까지 부부의 섹스는 매진되야 한다.
  "그 한의사랑 결혼하지  그랬어? 그럼 가난한 작가  만나 이렇게 고생할
필요없었잖아?"
  "물론 그 사람은  참 좋은 남자였어. 아마 친구처럼 지냈가면  그 관계가
지금까지도 지ㅗ됐을 거야."
  "그런데?"
  "근데 한 세 번쯤 만났을 ㄸ였나 내게  프로포즈를 하는 어야. 평생 함께
살아갈 사람을 그런 식으로 결정한다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했
어. 그래서 딱지놨지 뭐."
  그러자 남편이 갑자기  테이프를 꽃고 차안이 떠나갈  듯이 축가를 울린
다.

    위험한 게임

  "야. 빨리 와봐. 이 기사 쇼킹 그 자체다."
  신문을 뒤적이던 남편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난리법석을  떤다. 설거지
를 하던 난 손에 묻은 물기를 대충 훔치고 그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원데 그래?"
  "이 기사 좀 봐. 쇼킹 코리아야!"
  난 남편이 가리키는 기사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정말 그 기
사는 너무나 쇼킹했다.  한국에서 오째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내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기사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평소 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하게 지낸던 두 부부
가 있었는데 40대 중반의 301호 부부와 40대 초반의 302호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하루는 두 부부가 301호에 모여 술파티를 벌였다.  마침 그날은 주말이라
301호의 자녀들이 친척집에 가고  없는지라 두 부부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
실수가 있었다. 그들은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낮 뜨거운 음담패설도  스스
럼없이 뇌까리며 술좌석을 더욱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갔다. 그런데  술이 뭐
길래, 301호 남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302호 남자에게  기도 안 찰 제안
을 한다.
  "이봐, 동생. 우리 마누라 바꿔서  한번 하는 거 어때? 우리도 색다른 맛
봐서 좋을 테고 마누라들도 색다른 기분이 들어서 좋을  테구 말야.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 아냐?"
  "형님 ,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두 여자도 맨 정신 같았으면 몹시 화를 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술이 많
이 취한 상태라 두 남자의 맞장구에 별로 가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술자리는 계속 무르익어가다가  자정이 넘어 술이 떨어지자301호
남자는 비틀대며 일어서 302호 여자에게 말했다.
  "재수씨, 우리 바람도 쏘일 겸 함꼐 가죠?"
  "그러죠 뭐."
  그래서 301호 남자와 302호 여자는  술을 사러 가기 위해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그런데  두 남녀가 편의점에서  술을 사가지고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게 아닌가. 이게 원 21세기  처
용무인가! 302호 남자와  301호 여자가 완전 알몸으로 거실에서 뒤엉켜  한
바탕 섹스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눈이 뒤집힌 301호  남자는 302호 남자
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남의 마누라를 건드려!"
  "형님 대체 왜 이러세요? 아까  형님이 먼저 바꿔서 한번 하자고 말씀하
셨잖아요?"
  "야, 임마! 그게 농담이었지 진짜 하자고 그런 거냐?"
  "네에?!"
  결국 301호 남자는 302호 남자와 자신의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하게 되었
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비록 고소인인 301호 남자가
농담으로 제안했다 할지라ㅗ 나머지 사람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였다면 합의
하에 이루어진 섹스로 보아야 함으로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결국 301호 남자는 아내만  외간 남자에게 헌납(?)한 채 패소를하고 만  꼴
이었다. 또 소문만 날 대로 다 나고 말았다.
  난 그 기사를 다 읽고 나서 너무 기가 막혀  할말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술이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 부도덕한 발상
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미쳤어 정말. 어떻게 마누라를 바꿔서 할 엄두를 내?"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난 부부가 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할  수 있다고 봐. 다만  그런
행동을 억제할 뿐이지."
  "그래서 당신두 그러고 싶단 말야?"
  "가끔은."
  "아니 이 남자가 미쳤나? 내 옆에 얼씬도 아지 마! 짐승!"
  난 남편의  그런 태도에 버럭 화를  내고 그의 작업실을 나왔다.  적어도
내 남편만은 그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  믿는 도끼에 발ㄸ 찍힌
셈이었다. 삐쳐서 저녁  준비하는 것도 재쳐두고 안방에 쳐박혀 있는데  남
편이 슬그머니 들어온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럼 당신이 딴 여자를 생각한다는데 그게 안 심각하단 말이야?"
  "그래. 난 당신이랑 섹스할  때 가끔씩 딴 여자를 상상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단지 상상일 뿐이지  단 한번도 딴 여자를 취해야겠다고 생각
한 적은 없어."
  "상상도 간음이란 말 몰라?"
  그러자 남편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가끔씩
나랑 섹스를 할 때  딴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상상을 떠오린다고  했다. 그
럼ㄴ 나라의 섹스가 더 뜨거워질 ㄸ가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둘만의
섹스를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그러는 넌, 나랑 섹스할 때 딴 남자 떠올린 적 없어? 솔직하게 말해봐."
  남편이 얄밉기도 하고 사실 그럴 ㄸ도 있었으니,
  "물론이야"
  "근데 뭘 그래?"
  "난 그래도 되지만 당신은 무조건 안 돼."
  "또 억지다."
  그렇다. 때때로 부부 사이의 섹스가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가
끔씩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도 섹스의 질(?)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상의 차원으로 말이다.

    이 빠진 동그라미

  작년 가을쯤 대학동창 하나가 집으로 놀러 왔다. 강남에  살고 있는 그녀
는 남편이 용산에서 제법 번듯한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는 덕분에 생활에 별
어려움 ㅇ벗이 살아가는 전업주부였다. 그녀에겐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하나 있는데 며칠 전에 겪은 황당한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았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그녀는 계
속 펑펑 울어대는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선생님한테 야단맛았니?"
  "아냐!"
  "그럼 애들이랑 싸웠니?"
  "아니란 말야!"
  "그럼 왜 우는 거니?"
  "몰라! 나 학교 가기 싫어!"
  아들은 가방을  내팽겨치곤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계속 펑펑  울어댔다.
하나밖에 없는 알들이고  애지중지 키운 터라 아들의 고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던 엄마는 아이를 간신히 설득해 대성통곡하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나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더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반에서 가장  예쁜 현
주라는 여자아이와 짝궁이  되어 한 달 동안  기분이 쭈알라였는데 졸지에
체인징 파트너가 되는 바람에 소위 킹카를 딴 아이에게 빼앗기고 남자끼리
짝꿍이 됐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천금 같은  아들을 위해 다으만ㄹ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짝꿍을 그 여자아이로 바꿔줄 수 없느냐고 통
사정했더니 담임선생님이 하는 말이 더 걸작이었다고 했다.
  반에서 여자 짝꿍이 없는 남자  아이가 12명이나 되는데 그 아이들 엄마
들이 똑같은 이유로 항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새학기부터 한 달에
한번씩 짝꿍을 바꾼다는 거였다.
  "선생님, 그럼 언제쯤 여자 짝꿍으로 바꿔주실 수 있으세요?"
  "아무래도 이번 학기엔 좀 어려울 거 같애요."
  "왜죠?"
  "민수는 일학기 내내 여자 짝꿍이란 앉았거든요."
  내 친구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녀가  돌아간
뒤 그 얘기를 떠올리면서 난  텔레비젼에서 본 두가지 쇼킹한 일이 생각났
다.
  엔젠가 텔레비젼 뉴스에서 남녀 성비 불균형의 심각성을 보도한 적이 있
었다. 6,7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출산을 강행하다 계
속 딸만 낳는 바람에 여자 쪽이 수적으로 강세를  보였는데, 80년대에 접어
들어 초음파 탐지기의 등장으로 태아를 감별할 수 있어 아들이면 출산하고
딸이면 과감하게 낙태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남아 출산율이 높아져 심각한
성비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뉴스였다.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될 거라
는 예측이었다.
  그 뉴스를 본 며칠 뒤에 텔레비젼에서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살아가는 몽
골 유목민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적이 있었다.
  척박한 환경 때문에 여야 사망률이 높아 상대적으로 여자가 귀한 까닭에
그들은 조상 대대로 철저하게  일처다부제를 궁여 지책으로 선택했다고 한
다. 자연히 총각들이  처녀 장가를 간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몰골 남자들은  처녀 장가를 간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몽골
남자들은 이미 결혼한  여자에게 엄청난 지참금(주로 가축)을 주고  헌장가
(?)를 가는 끔찍한 상화이 벌어졌다.
  첫 번ㅉ 남편은 아내가 두 번째 남편을 받아들여도 시기하거나 질투해서
는 안 되고 즐겁게(?) 맞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었고, 잠자리의 선택권도 당
연히 여자에게 있었다.
  또한 지참금이 없는 남자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결국 그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여자에게 줄 엄청난 지참금을 마련해야 했
다. 그래서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형이 동생의 지참금이  딴 여자에게 넘어
가는 걸 막기 위해 동생을 자기 아내의 두 번ㅉ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가 많았다. oh,My  God! 21세기에 접어들면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
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결혼을 앞둔 남자들은 지상최대 목표인 결혼을 하기 위해 여자들에게 갖
은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고, 여자들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수많은 남자들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질
게 뻔하다. 나중엔 여자들이 여러 남편들을 거느리고 한  집에서 함께 살아
갈 날도 있을지 모른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첩들을 거느리고 살았듯이.
  또한 여자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했거나 지참금이 없는 남자들은 평생 결
혼도 못하고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제 짝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방랑생활
을 할 확률이 높다.  무조건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우리의 아들들이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속 시원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딸 아들 구분 말고 능력껏 잘 기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 우린 딸만 줄줄이 낳아 나중에 큰소리치며 살자."
  "딸들 덕분에 지참금 챙겨서 달나라나 다녀오자구요."

    은밀한 유혹

  솔직하다는 것은 때때로 부담스럽다. 솔직한 성격의 사람은  참 매력적이
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에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더 곤혹스러울  ㄸ가
있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린 시절 처음 성에 대해  눈뜨기 시작할 때는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어
설픈 상상을 하게  된다. 남자들은 몽정이나 자위를 통해 경험하기  시작한
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이성을 통해 실질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섹스는 결혼에 의해 종족보존의  의미에서부터 그 자체를 즐기기까지 보다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한 일반적인 섹스  체험의 과정 중에서 발생되는  또 하나의 섹스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상속의 섹스'이다. 그것은 미루어 집작해볼 때 정상
적이라기보다는 외설스러운  것이 대부분이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질주하고 가끔 그 외설스런 상상이 변태의 형태로 나타나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이처럼  병적이지만
않는다면 상상 섹스를 비정상적이라고 일컬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들이나 유달리 밝히는 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은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험이 있
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여자들 역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을
상상한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결혼해 평범한 성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들일
수록 성에  대한 상상의 강도가 더  강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섹스  상대가
남편이라는 제한된 상황에서 그녀의 성욕이 남편과 맞물려지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끝없이 성을 꿈꾸는  것
이다. 성에 있어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더 많이 닫혀  있기 때문에 여자의
성적인 상상은 남자에 비해  훨씬 강도 높고 자극적일 수 있다.  또한 그녀
들은 자신들의 상상속의 섹스에 대해 남자들과 달리 거의 아무하고도 이야
기하려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여자의 상상 속의 섹스. 그것은 남편을 향해서, 혹은 또다른 남자를 향해
서 심지어는 동성에게까지 가차없이 성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며 아주 섹다
르고 자극적인 섹스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곳엔 도덕도 윤리도 없고, 때론
인간의 기본성마저도 상실되어 있다. 그러므로 표현은 더  자유롭고 대담하
며 자극적이다.  상상속의 섹스일수록 외설  이상으로 거의 변태에  가까울
수도 있다. 영화 속의 멋진 남자나 어쩌다 마주친  매력적인 이웃집 남자를
보며 아랫도리를  상상하면서 몸을 달구기도  하고, 친구의 남자도  서슴치
않고 빼앗아 섹스를 나누며,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젊은  남자와도 그의 육
체를 상상하며 은밀히 성적 흥분을 느낄 것이다. 또한  남편과도 대담한 섹
스를 감행하고, 낯선 남자의  강간을 꿈꾸며, 동성과의 실질적인 섹스를 상
상하면서 자위를 하기도 할 것이다. 남편과의 성생활에  불만족한 여자들은
물론이고 설사 남편과 괜찮은 섹스를  즐기며 별 문제없이 살고 있는 여자
들이라 할지라도 다 마찬가지로 상상 속엣 자기만의 별스런 섹스를 즐기고
있다.
  상상 속의 섹스, 즐겨서 안 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는 타인과의 섹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 지탄받을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선택이지  타의 강권이 될 순 없는 일이다. 오
히려 그  상상을 억제함으로써 더 심각한  상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뭐든
지나치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섹스에 과한 한 이른봐  죄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실제적인 간음이나, 동성애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
해 그러한 것들마져 누군들 그들에게 그야말로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여자가 정숙하지 못하게 섹스를 상상하다니,
  "남자는 아무래도 괜찮고?"
  그것도 아주 외설스러운 상상을.
  "상상 외설이 어딨어?"
  성의 실질적인 부분에서 상상  속의 섹스에 이르기까지 언제까지 남자만
면책 특권을 주장할 것인가? 섹스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이루어내는 육체
의 향연, 사랑의 또다른 대화이다. 부부의 성생활에 있어 남편은 아내의 성
을 보다 밝고 편안한 곳으로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녀도 자신처럼 뜨거
울 수 있고  성적인 부분에서 무엇이든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
다. 그녀 역시 포르노를 보면 어느새 팬트가 흥건하게  적셔지는 살아 있는
열정의 화신이란 것 또한  알아야 한다. 한편 그러한 노력을 더  이상 남편
에게만 모두 떠맡기지 말자. 아름다운 아내, 섹시한  아내, 아니 부수고라도
열린 성으로 나오자.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당신이 꺼내주지 않아서 내가 나왔어요. 이게 진짜 나예요."
  아내는 이제 그녀만의 방, 그 밀폐된 공간 속에서  나와 그곳에서 일어났
던 일들을 남편에게 들려주며  그에게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그를 은밀히 유혹해보자는 것이다.

    비아그라가 뭐길래

  정력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국 남자들!
  한국 녹용  생산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소모하고도  모자라 뱀탕, 보신탕,
토룡탕, 십전대보탕  등 눈만 뜨면  탕탕탕을 외쳐대도니 요즘엔  미국에서
슈퍼맨처럼 나타난 비아그라 때문에  약국과 남성 클리닉마다 전화가 불통
일 정도로  이 약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비아그라  강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미국에서 개발된 먹는 발기약  비아그라. 한국에서도 못
말리는 베스트셀러로 등장하면서  당국에서는 비아그라를 채포하라는 지상
명령이 떨어졌다. 도데체 비아그라의 정체가 뭐길래 이토록  한국 남자들을
흥분시킨단 말인가.
  그래서 난 인터넷에 접속해  비아그라와 관련된 사이트들을 통해 비아그
라의 정체를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이 약은 미국  뉴욕에 위치한 피이저라
는 제약회사에서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중이었다. 그런데 임상실험을  한 결
과 발기부전 촉진 효과가 있어 발기부전 치료제로 급선회해 개발을 완료하
고 드디어 올해 3월 27일 미국식품의약품국에 승인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
났다.
  혜성처럼 나타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미국에서는 발기부전  환자
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시판 한 달 만에 불티나게 팔려 연간 매출
1백억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정력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국
남자들이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턱이 없다. 남대문 암시장을  통해
비아그라를 구하기 위해 북새통이라 한다. 심지어 고급  룸살롱에서는 손님
들을 유치하기 위해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접대용으로 비아그라
를 한 알씩 서비스까지  한다고 하고, 또한 직장 상사에게 줄  선물이나 상
납용으로 비아그라가 단연 최고로 꼽는다고 하니 이쯤 되면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비아그라를 발기부전  치료제가 아닌 초강력 정력제로 생
각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약을  찾는 주요 고
객들이 발기부전으로 고생하는 50대중반의 남자들이 아니라  3,40대의 싱싱
한 남자들이라고 한다.  물론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을 가장  왕성하
게 하는 3,40대 직장인들이 심한 스트레스가 쌓여  심인성 발기부전으로 남
성 클리닉을 자주 찾는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이 약만 먹으면
슈퍼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또다른 문제는 부작용이다.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비아그라는  심장질환
을 앓고 있는 환자나 고열합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사약이 될 수 있다는 거
다. 이미  브라질이나 미국에서는 약을  복용한 몇몇 남자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진  바가 있다. 쉽게 말해서 약도 잘못  쓰면 독
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이 약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시판되기까지는  충
분한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은 지나야 한다고 하니
불행중다행이라고 할까. 그  사이에도 암암리에 비아그라는 계속  거래되겠
지만.
  난 남편이 비아그라 열풍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당신 생각은 어때? 그쪽으론 전문가잖아."
  "비아그라보다 저 좋은 정력제가 있잖아."
  "그게 뭔데?"
  "자신감!"
  그렇다. 비아그라 한 알만 있으면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보
다는 남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남자들에게 있어 섹스에서의 승리가 자기 완성이라 할 정도로 그들에겐 사
활이 달린 문제겠지만, 비아그라와 같은 약에 의존해  전전긍긍하는 남자들
을 바라볼 때 안타까움이 앞선다.

    부부전선 이상 있다

  IMF경제위기 때문에 아내들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여성협의회가 서울거
주 주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퍼센트가 소득이 줄었
다고 했고, 21퍼센트가 실직자  가구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직
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는  아내들은 앙상해진 가계부로 살림을 꾸려가기도
벅찬데 실직한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기가 죽고 자격지심에 난폭해져서 아
내를 구타한다고 한다. 또한 IMF 이후 남편들의  외도가 예전보다 더욱 극
성을 떨어 아내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극단
적인 이기주의 때문에 아내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결국 IMF 괴물(?) 때문에 단란해야 할 가정에 엄청난  회오리 바람이 불
어닥치고 부부전선엔 '빨간불'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부부전
선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남남으로 갈라서는 부부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
나는 것이다. 도대체 IMF가 뭐길래 수많은  부부들을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갈라서게 한단 말인가.
  최근 모 방송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주부  매춘'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다. IMF 이후 밤만  되면 남산순환도로를 끼고 30,40대 여자들이 지나
가는 자가용들을 대상으로 매춘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주로 남편에
게서 버림받은 이혼녀들인데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한다는  거였다. 취재기자
가 그 중 한 여자를 붙들고 식당 같은 데 취직하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그녀는 IMF라 일자리 구라기가  하늘에 별 따기일뿐더
러 설사 구한다 할지라도 5,60만원 가지고는 도저히  자식들과 생계를 꾸려
갈 수 없어 하는 수 ㅇ벗이 매춘을 한다는 거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 땅의 아내들이  IMF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버림을 받고  결국엔 매춘녀가 되어  거리로
나서야 한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절대 이래서는 안 된다.  부부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하고 더 강하게  뭉쳐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남자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IMF  위기 최전선에서 가장 시달리
는건 남편들이지만 남편의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건 아내라는 사실을.
  IMF 이후, 사람들로부터  우리 부부에게 던져지는 질문 중  하나가 IMF
때문에 어ㄸ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아마  글쟁이란 직업을 염두해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그럴 때면 난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우린 항상 IMF인걸요. 그래서 별 걱정 안해요."
  정말 우리 부부는 항상 IMF 였다. 시나리오  작가의 특성상 매달 일정한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들과는 달리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거의 빈털터리 신
세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부가  금전적인
문제로 다투거나 골머리를  썩어본 기억은 전혀 없다. 돈이란 삶의  수단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남편이  꽁
초를 피우더라도 우리 부부는 단  한번도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거나 희망
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물질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물질의 풍요가 아
니라 부부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의 부부들이여. 파이팅!!

    내게 너무 이쁜 당신

  "걔넨 잘사는지 모르겠어?"
  "이혼한다 뭐 한다 위태위태하지만 그래도 사나봐."
  "여자가 너무 징징거려서 그 형이 피곤할 거야. 왠만해야지."
  "글ㅆ 말야. 지가 미쳐서 한 결혼인데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지 몰라."
  "그 형은 어때?"
  "호호... 장인 말씀 명심하며 산다나봐."
  "장인 말씀?"
  "그 형이 결혼하고 장인한테  첫인사를 갔더니 하시는 말씀이 부부는 그
저 서로 불쌍히 알면서  살면 된다고 하시더래. 그런데 살다 보니  정말 그
렇더라나."
  내 친구의 남자친구 결혼생활 얘기다. 난 그와 안면이  있는 정도지만 내
친구하고는 결혼 전에 썸씽이 있었던 남자다. 두 사람이  잘 어울렸고 서로
무척 좋아해 결혼설도  나돌았을 정도였다. 모 신문사 일러스트인 그는  프
로 화가이기도 하다. 평소 술은 좀 과하지만 작품세계도  좋고 사람이 그만
이다. 내 친구는 첫째  외모가 뛰어났고 두 손으로 못하는 게  없는 재주꾼
으로 당시는 의상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크게  유흥업소
를 하는 돈깨나 있는 집안의  맏딸로 성격이 드센 편이었지만 영리해 보이
기는 했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자고 조르던 그 남자에게  별 표현없이 그냥
좋아만 했던 내  친구와 달리 그녀는 아주  저돌적으로 결혼공략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년여가 흐르더니 결국 그는 그 여자와 결혼을 했다. 서
운하지 않냐는 내 말에 내 친군 그냥 웃어보인다. 하긴  그녀 역시 정말 죽
고 못살았다면 얘긴 틀리졌겠지. 아무튼 내 친구와 그  남자는 각자 결혼을
했고 여전히 친구로 남아 가끔  그의 전시회에서 만나기도 하고 연락을 주
고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결혼생활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신적
으로 미흡한 결합이어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늘불안하단다. 그들  부부 사이
엔 딸이 하나 있는데  그에겐 그 아이가 삶의 희망이라고 했다.  아이가 소
중한 건 당연한 거지만 그의 경우는 정황이 좀  안타까운 얘기다. 그러저러
한 그 남자의 결혼생활 예길 듣다가 나온 말이 내겐 인상 깊었다.
  "부부는 그저 서로 불쌍히 알면서 살면 된다."
  "그런데 살다보니 정말 그렇더라."
  내가 결혼  생화을 해보니 그 말들이  실로 피부에 와닿는다. 결혼한  지
반 년 정도  지났을 ㄸ다. 우리 부부는  경제적인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다.
그가 싸우다  화가 치미는지 안방으로홱  들어가버린다. 여느 때  같았으면
따라들어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마무리지었지만 그날은 나 역시도 몹시
지쳤었고 끝끝내 싸운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왜냐하면 성격  같
은 문제로 부딪친 게 아니고 돈이라는 아주 치사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가 안방을 차지했으니 난 어쩔 수 없이 거실이나 작업실에서 거할 수밖에.
  하루종일 따로따로  지낸다. 밥도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자고,  혹시라도
마주칠까봐 가능한 한 자신이 차지한 영역안에서 생활한다.  며느리가 미우
면 며느리 그의 신체 어디라도 눈에 보이는 게 싫고 심지어 그의 옷가지도
보기 싫다. 남편도 그렇겠지. 난 그와 부딪치기 싫어 아예 작업실에 틀어박
혀 있다. 그러다 그가 자는지  안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기척이 없다. 난 그
틈을 타서 화장품을  꺼내려고 안방으로 잠입한다. 그때 무심코 내  시선에
침대에 구부려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들어왔다. 난  조용히 서서 물끄러
미 그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자는 모습이 아이 같다. 격렬하게 싸울 때의  구겨진 얼굴은 어디
로 다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 없다. 커다란 키를 구긴  채 잠들어 있는 모습
이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도 않다. 살짝 다가가 만
져보고도 싶다. 그러다 문득 남편이 움직인다. 얼른 방을 빠져나오는 내 입
가로 작은 미소가 지난다.
  그렇다. 부부란 그런 것인가 보다.  사는게 뭐지. 삶에 지쳐 짜증내고, 다
투고, 거친  말로 상처를 주고...  그러다가도 미안하고, 안쓰럽고,  고맙고...
그도 내게 그럴 것이다. 측은지심, 불쌍히 알면서 살라는 그 어른의 말씀이
바로 그 뜻이 아니겠나  싶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만나  부부가 되어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병이 들든 건강하든, 만족하든  그렇지 않든 어차피
살아간다는 것은 지치ㅗ 힘든 일이다. 부수는 건 한순간이고  쉬울 수 있어
도 쌓는 건 어려운  게 부부 관계인 것 같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잠든 남
편의 모습은 내겐 잠자는  숲속의 왕자이고, 또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인 것
이다. 삶에  지치고 그에게 분노한 어느  순간 그의 아이처럼 잠든  모습을
꼭 떠올릴 수 있기를,  그래서 그를 쉽게 용서하고 나 자신  반성하면서 우
리가 더 깊이 사라아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산이 된 양산

  나에겐 20여 년을 사귀어온 연인 같은 친구가 있다.  그녀의 삶은 투명하
고 싱그러워 마치 잘  그려진 수채화 같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  내게 하는
말이 "여자에게 아릅답지 않아도 되는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는 것이
다. 그 말은, 듣는 순간 참 그녀다운 얘기란 생각이 들면서 언제나 나의 마
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아릅답게  혹은 보기 좋게 꾸미기를 좋아한다. 그건  아
직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주 어린아이들을 봐도 그렇고, 이젠  굳이 치
장이란 게 필요없을 것 같아 보이는 나이든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하물며
젊은 남녀들이야  말할것도 없지 않겠나.  같은 땅이라도 버려져  돌뿌리와
잡풀이 무성한 것보다 잘 갈아서 알맞은 씨를 뿌려 열매를 내는 것이 당연
히 풍요로울 것이다. 그러니 가꾸어서 나쁠 건 아무것도 없다.
  특히 미혼의 젊은 여자들은 자신을  치장하는 데 온 정열을 다 기울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사춘기 때의 풋내나는 멋내기가 이성에  눈뜨면서
는 성숙된  육체에 걸맞는 꾸미기로  바뀌면서 피크에 이른다.  다이어트를
한다. 헬스를 한다.  심지어는 성형을 한다 하면서  신체 그 자체를 다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자신에게 맞는 화장을 연구한다든가, 피부미용에 신경
을 쓴다든가, 최첨단  유행을 따라 옷을 구입한다든가 하는 것들에  아낌없
이 투자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자들은 비단 외모  가꾸기에만 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각
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직업에 있어서도 개성을 드러
내며 열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칫 남자들이 현대의 여자들을  단지
여자라고만 생각하고 가볍게 봤다간 그야말로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게다
가 메스미디어나 컴퓨터에  의해 이젠 더 이상  아무에게도 닫혀진 세계가
아니다. 손만 뻗치면  초를 다투어 변화하는 세계가 눈앞에 있는데  여자들
이라 해서 그 변화 앞에서 결코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단 얘기다.
  이렇게 젊은 여자들은 미혼 시절 안팎으로 자신을 가꾸면서 자신에 걸맞
는 이성을 찾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는 그녀들에게 더 이상  의
미가 없다.  못생겼어도 개성을 살리면서  예쁘게 타고난 여자들보다도  더
잘난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예쁘다는 이유로 가꾸지 않는  여자보다 못생
겼어도 잘 가꾸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들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훨
씬 아름답다. 요즘  남자들 역시 수줍고 다소곳한 전형적인 여자들보다  개
성있고 활동적인 여자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절에 맞추어 어울리는 옷을  걸치고 머리 스타일, 화장, 기타의 치장들
을 잘 코디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자들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다.
젊다는 것만으로도 싱싱하고 충분히  아름다운데 게다가 개성을 찾아 가꾸
기까지 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어쩌다 그런 젊은 여자들을 만나  얘기해
보면 속도 알차고 대찬 경우가  많아 뭐든 겁없이 자신을 가꾸는 여자들은
남자들 앞에서 한껏 콧대를 세운들 아쉽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  시절 나름대로 그러했을 것이다. 타ㅗ난 미모는  아니더라도
다행히 현대에 태어나 개성이라는 단어가 보태주었고, 옛날처럼  여자의 교
육을 천시하는 시대도  아니니 교육도 받을만큼 받았고, 천성이 끼가  있어
소위 예술이라는 분야에서  일을 해오면서 나 정말 당당하게 살아왔다.  남
이야 알아주든 말든 나 자신을 꾸미는 데 아낌이 없었고 언제나 콧대가 높
았다. 친정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건방지다고 항상 핀잔하셨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서른다섯쯤  되던 해 우연
히 한 대학가를 지나는데 마침 수업을 마치는 시간이었는지 남녀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삼삼오오떼를  지어 지나는 학생들과 지나치는데  전
과 달리 그들의 모습이  너무 어려 보이는 것이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쟤네들이 어려 보이는 게 아니고 내가 늙은 거구나.  그
래. 옛날 같았으면 일찌감치 열다섯에 시집가 저 나이의  아이들을 낳을 수
도 있었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놀랍고 슬펐다. 그리고 이내 기가 팍 꺾
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젠 잘난 척 그만 해야지.'
  그날 이후  난 '나'를 숙고하기  시작했다. 다 늙은 사람처럼  지난날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삶을 재조명했다. 이젠 어떻게  사는냐는 명제
를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임을 새삼 느끼는  것이다. 젊음 하나를
믿고 잘난 척하던 시절은  다 지나갔고, 잘난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일
만 남은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길을 걷다 쇼윈도에 비친 내모습을 바라볼라치면 그건 너무나 자
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젠 기혼자란 딱지(?)까지 붙
어 나이를 떠나면서 '젊은 여자'의 계열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린 느낌이다.
  "요즘 뭐 하느라고 꼼짝도 안 해?"
  오래간만에 통화하는 친구의 첫 마디이다.
  "내가 바빠서가 아니라 그  사람 책 출판 건으로 쫓아다니느라구 그러지
머."
  "그래 책 반응은 어때?"
  "아주 좋아서 나두 신나."
  "다행이네. 요즘같은 IMF불황에 말야. 근데 신난 목소리가 왜 그래?"
  "질투가 좀 나서."
  "호호... 그럼 너두 쓰면 되잖아."
  "안 그래도 나도 하나 쓰려고 하고 있어. 우산이 된 양산 얘기."
  "우산이 된 양산 얘기라구? 호호... 그게 뭔데?"
  "그 옛날에  뜨거운 햇살 아래 간들간들  잘난체하며 걸어다니던 꽃무늬
양산 같았던 화려한 시절 다 지나고, 이젠 우울하고  슬픈 사십이라는 나이
와 받쳐주어야 할 것들만 남은  빗속의 우산이 되었으니 그 얘길 쓰겠다는
거야."
  "호호... 너두 참. 아무튼 풀어놓으면 할 얘긴 많겠지."
  친구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위한  햇빛 아래 꽃무늬 양산이 아니다. 아내
로, 며느리로, 딸로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로 그들의 삶의 무게를 받쳐주며
살아가야 할 우산이  된 것이다. 양산처럼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그
래도 우산이 되어버린 내가 싫지  않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나이에 걸맞는 치장이 따로 있나 보다.

    숯이 된 된장찌개

  "다 챙겼어?"
  "응."
  "칫솔이나 내 면도기는?"
  "물론이지."
  "믿어도 돼?"
  "이제 더 물어보지마."
  우리 부부가 어디 여행이라도 떠날  양이면 남편은 혹시 내가 뭐라도 빠
뜨렸을까봐 이것 저것 체크를 한다.
  나는 원래 결벽증에다 다소  편집증 증세도 있어 뭐든 보고 또  보고, 정
리하고 또 정리한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나의 사고, 만나는 사람들과 나와
의 관계 등등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추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정리
정돈을 하는 것이다. 싱크대 주변의 주방용기들이나 그릇들과 커피잔들, 장
롱 속의 옷들, 심지어 타월이나  속옷과 양말들... 집안의 모든 가구나 집기
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방향과 각도가 절도있게  맞추어져야 직성이 풀린
다.
  "저 여잘 왜 군대에 안 보냈을까?"
  "그게 무슨 말이야?"
  "군대 갔으면 사물함 정리는 캡이었겐단 얘기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니? 모든 걸  너무 신경쓰다 보면 다 챙기고
도 챙긴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집을 떠나 목적지를 향해  한참을
달리는데,
  "어머! 그거 안 넣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어떡하지? 사면 다 돈인데. 에이 신경질 나."
  전에 갔았으면 핀잔을 주었을 텐데 이미 나한테 익숙한 남편은 이젠,
  "또 가방 어디엔가 있겠지. 사기 전에 잘 찾아보기라 해라."
  챙겨오지 않아서  사는 것보다 챙긴 걸  잊어버려서 사는 일이 더  많다.
그래서 늘 어떠한 형태로든 남편의 핀잔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뭐든 병적으로 챙기고 정리  정돈을 하는 반면에 그 상태를 잊어
버리는 일 또한 많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정확히  결혼 후에는 결벽증
과 편집증은 오히려 점차  흐려지면서 살기에 훨씬 수월해졌는데 잊어버리
는 일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야! 너 불도 안 붙은 가스렌지를 그냥 켜놓으면 어떡해!"
  "어머!정말!"
  "내가 모르고 담뱃불이라도 붙었으면 어ㅉ겠어?"
  발견한 순간, 문들이 다 닫혀진 상태였으니까 가스가 차  있었을 걸 생각
하니 남편은 등골에 식은땀이 쫙 배더란다.
  "어머나" 
  내가 후다닥 욕실로 뛰어들어간다.
  "뭔데?"
  "세탁기를 돌려놓고 물호수를  안 내려놨잖아. 어떤지 끝날때가  돼도 소
리가 안 나더라니까."
  "하여튼 알아줘야 해."
  그래서 세탁기 상하고 세탁시간은 배로 늘어나기 일쑤다.
  "어딨지?"
  "뭐 찾는 거여?"
  "비상금을 어디에도 뒀는지 영 찾을 수가 없네."
  "나 참!"
  하루종일 집안 곳곳을 찾아 헤메다  저녁이 다 돼서야 겨우 찾아내는 것
이다. 결국 시장을 봐서 뭐라도 해먹으려다 라면을 끊여 먹는다.
  어느 날 결혼한지 7,8 년 된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대뜸 웃
어젖히며,
  "얘, 글쎄 나 말야 죽을 때가 다 됐나봐. 호호..."
  "왜? 무슨 일인데?"
  "어제 말야... 호호..."
  얘기인즉, 그날 외출할  일이 있어 화장이니 머리 드라이니 서둘러  분비
를 하다가  문득 반착 걱정이 돼  부엌에 나갔단다. 아침에 먹던  반찬들을
대충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된장찍개가 눈에 띄어  한번 끓여두어야겠
다 생각하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들어와 다시 준비를 한다.
그런데 잠시 후 어디선가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자 그녀
는 자기가  올려놓은 것은 까맣게 잊고  '어느 집에서 끓이는지 냄새가  참
구수하군'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냄새가 진해지자  '아이고 어느
집 여편넨지 저러다  찌개 타겠다. 다 끓은  것 같은데...'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시간이 또 흐른다. 드디러 된장찌개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
한다. 그리고도 한참...
  "어머낫! 된장찌개!"
  하며 뛰쳐나갔을 때는 이미 된장찌개는 숯덩이가 된  다음이었다. 화나는
건 둘째치고 어쩌나 웃음이 나던지 혼자 한참을 웃었단다.
  "호호... 정말 웃겼겠다. 근데 나도 그래..."
  "우리도 갈 때 다 됐나 보다. 호호..."
  친구와 난 그것과 비슷한  건망증에 관한 얘기들을 쏟아내며 깔깔거리며
한바탕 웃어본다.
  왜 결혼 후에 그전 같지 않고 뭔가 잊어버리는 게 더 심해 졌을까? 건망
증에 대해 얘기할 ㄸ 나이가 들면서라는 말은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 내 나
이가 아닌가. 그런데 확실히 건망증이 심해진 건 사실이다. 난 왜 그럴까를
생각해본다.
  미혼 시절의 젊은 남녀들은 특별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대부분 자기  하나만 챙기면 됐다. 그러다 연인을 만나면서  챙겨
야 할 사람이 겨우 한 명 늘게 된다.
  결혼이란 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남녀가 만나 합해지면서 그
두 사람의 집안까지도 합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혼한  남녀들은 배우
자를 비롯해 양가의  가족까지도 챙겨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챙기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져 정신이 없다. 특히  여자에게 있어 시댁이라
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친정도 미혼 때와는 아주  다른 의미
로 다가선다. 그렇게 이것 저것 챙기고 신경쓰며 살다  보니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그 어떤 것들을 잊어버리기가 다반사이다.
  집안사에 있어 남편은 남편대로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아내 만큼은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두 집안의 대소사, 갑자기 발생되는 일들,  자신들의 가
정생활 그 자체... 어떻게 보면 기억하고 처리하는 건  다 아내의 몫이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다 뭔가 빠뜨리기라도 하면 남편들은 핀잔부터  놓
기 일쑤다.
  "여자가 집안에서 뭐 하느라고 그런 걸 다 잊어버려?"
  "그런 걸 꼭밖에 나가 일하는 내가 챙겨야겠어?"
  정말 그렇게 나오면 여잔 할말 없을 것 같나?"
  "집안에서 여자들은 놀고 있어요? 달력 좀 한번  들춰봐요. 이것 저것 얼
마나 일들이 많은가."
  "이러구저러구 직접 한번 해봐요!"
  티격태격! 툭탁툭탁! 쌍방의 공방전은 끝이 없다.
  남편들은 가족의 대소사가 어떤지 슬쩍 달력에 체크한  것을 들여다보자.
휴일 하루만이라도 아내들이 자신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랴 집안일 하랴 어
떻게 돌아치는지 신문 너머로  잠깐 살펴보자. 그녀들은 정말 정신이 없다.
신혼 시절엔 미숙한대로 바쁘고, 집안이 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쏠쏠히
쌓이는 일들로  바쁘다. 집안이 느고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쏠쏠히  쌓이는
일들로 빠쁘다.  게다가 맞벌이라도 할라치면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이다.
그래도 빠뜨리는 일없이  해내려고 기를 혼돈 그 자체이다. 그래도  빠뜨리
는 일없이 해내려고  기를 쓴다. 그러다보면 아내들은 자신을 돌볼  시간조
차 잃어버리고 후줄근해지는 것이다. 그런 아내들은 누가  돌아보고 챙겨주
어야 할까? 말하나마나 남편들이다.
  "수고했어" "고마워"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라는 말들과 손  한번 잡
아주는 것, 어깨 한번  두들겨주는 것이 뭐 힘든 일인가? 그녀들도  처음부
터 '숯이 된  된장찌개'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내,  며느리, 딸, 아이 어머
니, 동서 등등으로 살다보니 그리 된 것이 아닌가.
  며칠 전 신문을  보는게 'IMF 때문에 아내들이 더 시달린다.'  라는 기사
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IMF 경제위기 이후 그렇지 않아도 살기가 힘
들어졌는데 실직한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기가 죽어 자격지심에 난폭해진
다는 것이다. IMF 퇴직이 아내  탓이라며 구타, 보수가 성에 안 찬다며 일
도 안 나가고 살림  못한다고 트집잡아 구타, 다름 집 여자들은  돈을 잘도
버는데 너도  돈 벌어오라고 구타, 심지어  취업 상태의 어느 40대  주부의
경우 회사 감원에서  빠진 건 혹시 사장과 깊은  관계라 그런 것 아니냐며
억지를 부리며 구타... 기도 안 찰 일들이  IMF 이후 심각하게 늘어나고 있
다는 것이다. 때리는  남편, 매 맞는 아내.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국의 영향으로 늘고  있다니 걱정이다. 이헐게 힘든 때일수록 전보다  더
아껴주며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텐데 오히려 구타라니! '가장기  살리기'라
는 소리는 커도 '아내 기 살리기' 라는 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아내에겐 그저 남편밖엔 없다! 남편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나리오 치는 여자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시작했을 때는  원고지에다 썼었다. 그런데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보니  거의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난
별 문제를 못 느꼈었는데 각종 공모에 응모했을 때 심사과정에서 원고지에
다 쓴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A4용지에
쓰여진 것이 훨씬 보기 편하겠고  이젠 뭐 다들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대니
까 나 역시 동참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겐  컴퓨터를 구입할
만한 돈이 없었다. 그러다 작은오빠의 배려로 버전을  높인 286컴퓨터를 얻
게 되었다. 그날로 난 '한메타자'로 타이프를 다 마스터  했다.
  덕분에 그 컴퓨터로 처음 쓴 '꽃지게'라는 작품을  시나리오협회 주최 '창
작상' 공모에 응모해  작품상을 받았다. 작품평이 '구성은  미흡하나 작품성
이 뛰어나다'고 했으니 단지 신인의 작품이라 신선하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 이후로 다른 공모들에 응모해보려 했었는데 시나리오 공부가 깊
어가면서 왠지 기가 꺾여 더 이상은 응모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겁없이
써제꼈을 때가 훨씬 수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 286컴퓨터로 난
이것 저것을 계속 써냈다.
  그것도 공모당선이라고 소문을 듣고  가끔 자잘한 일들이 들어와 짭짤하
게 용돈은 했는데  금세 잊혀지고는 일이 뜸해졌다. 그래서 난  호구지책으
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뭐냐 하면 아직 컴퓨터가  없는 작가들이 자
신의 시나리오를 다른 사람들에게  컴퓨터로 대신 쳐달라는 일들인데 바로
그걸 하기로 한 것이다. 돈이  시켜 하지 정말 지겹고 힘든 일이었다. 대체
로 급하게 쳐달라는 사람들이  많아 난 그 일로 밤을 새는  날들이 많았다.
특히 무슨  공모라도 다가올라치면 일들이  몰리고 시간은 더욱  촉박했다.
난 나의 작품을 써서 응모하는  일보다 다른 사람의 공모작품을 쳐주는 일
에 더 바빴다.
  때때로 내가 쳐준 시나리오의 주인들이 나와 만나 자신의 시나리오에 대
해 얘기하자고 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 거절할 수도 없어 응하게
되면 난 그들의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정신없이  치다
보면 내용이 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친해진  사람
들도 꽤 있었다. 그러다  한 6개월 저오 하니까 괜히 짜증이 나서 그  일도
그만 집어치웠다. 나와 내 286컴퓨터는 다시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갔다.
  결혼 2년ㅉ 되는 설날 즈음에 우리는 부산 본가에 내려가야 하는데 돈이
하나도 없었다. 저축한 돈도  바닥난 지 오래고, 남편의 원고료도 함흥차사
다. 그때 마침  출판사에 편집장으로 있는 한 친구에게서 아르바이트  하나
배호지 않겠냐고 전화가 왔다.
  "뭔데?"
  "작가 하나가  워드로 써왔는데 컴퓨터  작업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
컴퓨터로 다시 쳐야겠어 그러는데 쓰는 일 없으면 해볼래?"
  전에 내가 그 일을 했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얼마나 되는데?"
  "소설인데 한 400페이지 가량이야."
  "응, 노느니 뭐 해 벌어야지, 장당 얼만데?"
  그 친구는 글쟁이 부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
에게서 원고를 받아와 치기  시작했다. 시간은 불과 일주일 정도였다. 시나
리오야 길어봤자 A4용지 60장 정도면  다였는데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설날은 다가오고  손목은 자꾸 굳어왔다. 그래도 난 죽어라고  쳐댔
다. 설날 바로 전날 겨우 일이 끝난다.
  "난데, 다 끝났어."
  "그래? 그럼 구정 지나고 만나서 줘."
  "근데... 돈, 지금 주면 안될까?"
  "지금?"
  도데체 설 바로 전날  경리일도 다 끝났을 텐데 돈을 달란다.  친구는 어
떻게 했는지 서둘러  준비해주었고, 우리는 그돈을 받아서 밤새 차를  몰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고속도로가 막혀 무려 18시간을  달렸다. 나와 남편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도  맏자식 된 도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
에 마음은 편했다.
  남편의 컴퓨터는  386이고, 나의 컴퓨터는 286이다.  우린 둘다 컴맹으로
화면을 열어 곧장  '한글'로 들어가 해당된 파일을 찾아 글만  쓴다. 그런데
문제는 용량이 적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원고 쓸  일이 있을 ㄸ 어
디라도 가야 하면  난감하다. 컴퓨터를 통채로 들고  갈 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남편의 원고료 중에 큰돈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으면 이번엔 꼭 586
노트북을 사줘야지 하다가도 여기저기  지출하다 보면 또 다음번으로 넘어
간다. 그래 늘 속이 상하다.
  "야, 너 중고 컴퓨터  사려고 그러냐?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내  거 가져
가. 아직 쓸 만해."
  혹 중고 컴퓨터 구입하려는 작가들이 있으면 남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다. 그럼 옆에서 듣던 난,
  "그게 언젠데?"
  "짜샤, 곧 사게 돼 마."
  또 어디 사무실에 가서 팬티엄이나  화면이 큰 신형 컴퓨터를 보게 되면
말은 안 해도 그  주위를 맴도는 게 갖고 싶어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그러
면 난 더 속이 상하다. '이번에 원고료 들어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줘
야지' 하고 다시 다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다.
  "우리 그런대로 열심히 쓰는데 왜 계속 힘들지?"
  "조금만 기다려. 다 잘될 테니까."
  남편의 그 말은 언제나 듣는  말이지만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새롭고 힘
이난다. 그래 내 남편은 최고니까!
  남편의 컴퓨터는 여유가 닿는 대로 곧 바꾸겠지만 난 그대로 나의 286컴
퓨터를 사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작은 역사들을 함께  해온 것이기 때
문이다. 시나리오 쓰는 여자가 시나리오 치는 일로 돈을  벌어야 했던 때의
일까지도.

    이젠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남편의 에세이집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
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그  책이 어떤 의도로  씌여지게
됐는지와 아무 상관없이 내용의 일부  소재가 되었던 성에 대한  이야기들
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무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
들이 재미있게 읽고 있다.
  지난 겨울 충무로가 IMF한파로  꽁꽁 얼어붙는 바람에 영화인들은 전혀
일거리 없이 살아가야 했다. 다들  무얼 먹고 살았는지... 그때 우리 부부도
역시 작품 제의가 없어 힘들었는데 어느 날 아침 남편이 나한테 슬쩍 원고
지 한 장을 내민다.
  "뭐에요?"
  "읽어봐."
  아주 위트있는  100여 가지 문구들이 '고개  숙인 남편을 위한  긴급제안
119'란 제목 아래 나열되어 있었다. 물론 주로 남자 입장의 것들이었다.
  "요즘 IMF 때문에  고개 숙인 남자들이 많잖아. 그들을 위한  얘기를 에
세이 형식으로 재미있게 써보면 어떨까 해서."
  난 단번에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모 출
판사에 편집장으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그거 아주 괜찮은데! 몇 꼭지만 볼 수 있을까?"
  남편은 그 내용의 몇  꼭지를 썼다. 다음날 내가 그의 원고를  그 친구에
게 저해주자 자기네 출판사가 할 여건이 안 되면 잘 아는 출판사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한 3일 후 바로 연락이 왔다. 다른 출판사를 연결해
주겠다며 당장 그  출판사 사람들을 만나자는 얘기였다. 그래서 그  다음날
로 '책이있는마을' 이라는 출판사의 사장과 편집장을 만났다.
  "원고를 받아 읽고는 우리 편집장과 의논했더니 바로 OK였어요."
  "아주 잘 봤습니다. 아이디어가 정말 좋던데요."
  "아 그러세요. 잘 보셨다니 고맙습니다."
  "저희 출판사와 계약하시죠?"
  원고의 몇 꼭지를 던진 뒤 실로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작가와 출판사 관
계자들 모두가 흡족한 상황에서 일사천리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
편에 의해 책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난 남편이 그 원고를  한 꼭지씩 끝낼 때마다 바로 읽어보았다.  그는 주
로 코믹물의 시나리오를 많이 쓰는  편이어서 그런지 내용이 톡톡 튀고 재
미있었다. 주로 부부간의  열린 성에 대한 것들과 남자들에게 자신있는  성
생활을 권하는 내용들로  그가 겪은 일들을 소재로 엮어나갔다. 가끔  우리
부부 사이의 성을 예를 들어 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난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남들이 흉봐. 우리 야한 애기하면."
  "흉은 무슨 흉을 봐.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그렇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않냐는 남편의 말에 동감한다. 사실 나
역시 우리 부부의 성생활이  예가 되는 것을 굳이 탓하지 않았다.  단지 더
재미있고 명랑하게  표현해주길 바랐다.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한
권의 책으로 기분이 유쾌해질 수만 있다면 좋지 않겠나 싶었다.
  남편은 한 달  동안이나 컴퓨터 앞에서 씨름한  끝에 원고를 마무리지어
출판사에 넘겼다. 돌아오는 길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를  불러 우리 셋
은 동네 포장마차에 가서  남편의 탈고주를 마셨다. 평소 술을 잘  안 하는
남편이 그날은  꽤 잔을 넘겼다. 그러다  남편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잘 안다. 다음날 밤, 우리 부부는 기차를 타고 남해로 낚시를 떠났다.
  얼마 만에  대하는 바다인지 모른다.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않아  미루고
미뤄온 낚시였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먼  바다를 바라다
보는 그의 모습에 나의 마음도 좋았다. 모처럼 만의 휴식이었다. 글을 쓴다
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만은,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 그것을 응집시켜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건 무척 피로한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나? 자기가 하고  싶
어서 하는 이이지. 우리는 3박 4일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원고를 완성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의 책이  출간되었다. 관계자들은 원고
를 비롯해 완성된  책에 어느 정도 만족했지만  세상의 관심이 어떨지에는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졌다. 그러다 4대 여성지에세 인터뷰 요청이 오고, 스
포츠 신문들을 비롯해 몇몇 일간지와 구잔지에 광고와 기사가 나가면서 책
에 대한 좋은  반응들이 쏟아졌다. 남편과 나는 물론이고 출판사  측에서도
기뻐했다.
  그런데 난 남편의  책이 출간된 후 사람들을  만나면서 책에대한 그들의
반응들에 적잖이 놀라는  부분들이 생겼다. 가까이로는 가족,  친구들, 동료
작가들과 생소한  사람들로는 여성지, 주간지  등의 기자들 그리고  우리와
잘 아는 영화와 출판에 관계된 사람들의 반응이 참으로 다양했다.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는 '남편의  기 살리기'가 테마지만 성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집안 어른들이 보시기에는 핀잔을 하실 만
하다.
  "나사스럽게 뭐 그런 얘길 썼노? 그리고 니들 얘길 뭐 하러하노?"
  "요즘 책들은 다 글ㄴ 식이라얘. 괘안심더."
  한편생 교육자로 살아오신 시아버님께선  그래도 요즘 젊은층을 많이 이
해하시는 편이시네도 한 말씀하신다. 예상대로!
  "호호, 아가씨 고모부 책이 좀 야하던데요. 그래도 재밌게 읽었어요."
  "김서방, 요즘은 그런 책이 잘 나가나봐. 아무튼 쓰느라고 수고했어."
  "언니, 오빠 책 재밌더라."
  나의 올케, 오빠들, 시누이 등등 젊은 가족들 반응도 거의 예상대로였다.
  "야 선배 책 되게 재밌게 썼던데 광고만 잘 때리면 대박이겠어!"
  "김선배 , 시나리오는 안 쓰고 웬 에세이야? 아무튼 한턱내!"
  "어머! 니 남편 책 너무 야하더라."
  "형, 그거 돈 좀 되겠어요. 술 한잔 사요."
  "선배님, 학보사 후배들이 별러요. 한번 내려오셔야죠!"
  "김작가, 그 책 누가 영화 하자고 하던데 만나보지?"
  친구들, 동료  작가들 등은 다들 재미있게  읽었다며 난리들이다.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예상대로의 반응들이었지만  나를 흥분시키기 시작한 건 대
외적인 반응들이었다.  예를 들면 여성 잡지  기자들의 질문 내용들이었다.
기자들 자신은 어느 정도 성에 대해 깨어 있는 사람들일 수 있겠지만 그들
의 질문이야 잡지 독자들의 입장에서 해야 하니 이해는 가는데...
  "작가 자신의 성생활을 공개하려고  했을 때 아내 입장에서 주저하지 않
으셨어요?"
  "전혀."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불편한 반응이 있진 않았습니까?"
  "왜?"
  "정말 비디오 두 편입니까?"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정말 한 달에 한번 집에서 올누드로 지내요?"
  "왜 자꾸 성에  대한 질문만 하지? 그 책엔  더 재미있는 다른 얘기들도
많은데."
  "정말 부부 포르노를 찍었습니까?"
  "정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군..."
  기자들은 기사의 해드카피를 이렇게 올렸다.
  "현역 시나리오 작가 부부 한 권의 쇼킹한 책을 펴냈다."
  "뭐가 그리 쇼킹해? 부부가 사는 게 다 그렇지."
  문제의 책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 는 사람들의 묘한 시선을 받
고 있다.
  "IMF시대의 고개 숙인 남편들 힘내라고 쓴 건데 왠 묘한 시선?"
  "침실생활 완전 공개한 시나리오 작가 부부"
  심지어는
  "불감증 아내에게 직접 성을 가르쳐가는 남편"
  "왠 불감증? 이쯤 되면 명예훼손?"
  "한국 최초로 자신들의 침실생활 완전 공개한 부부"
  "재미있게 읽으라고 썼는데 자꾸 침실 얘기만 해대는군..."
  카피란 게 일단 눈에 띄는 것이 우선이고 그래서 내용보다 좀 튀어야 하
기도 할 것이다.
  처음 그러한 일들을  대했을 땐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 이상스럽기도 했
다. 왜냐하면 다들  지나치게 성에만 초점을 맞춰 얘기하고 싶어하기  때문
이었다. 인터뷰중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다 보면  이 사람이 책을 다  읽고
나왔는지 대충 훑고  나왔는지는 금방 구분이 갔다. 대체로 전자의  질문은
작가와 부부생활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었고,  후자의 경우는 거의  성에
대한 것뿐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나면 책에 대한 인터뷰  의도는 곧 자명해
졌다. 그러니까 그  책의 주소재였던 성, 그것도  남자의 성에 초점을 맞춰
그러한 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잡지 독자들에게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었
다. 기자들이  그렇게 초점을 맞출 정도로  사람들은 성에 대해 많이  닫혀
있었고, 닫혀 있는  만큼 많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굳이
성에 대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질문해댔던 것이 이해가 갔다.
  "아내를 잡아야 세상을  잡는다"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부부가 사는 게 다 비슷하지만 책을 통해 어느 한 부부의 이야기가
공개됐다는 사실이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뭐  그 정도의 이야기
를 갖고 이 난리들인가  싶었다. 성에 대한 상세한 표현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성을 예를들어  사는 얘기들을 재미있게 전달했을 뿐이고, 게다가  남
자들이 항상 이슈로  삼는 부분들을 집어서 해결책을  제시하며 보다 열린
성을 통해  부부간의 사랑을 더욱  깊이 이끌어가자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난 남편에게,  '아무게 교수의 책'에  비하면 당신 책은 교과서  수준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느낀 건 우리나라의 성문화가 너무나 닫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는 것이다. 난 이렇게까지 답답하고 심각한  정
도인지는 몰랐다. 얘기가 여기까지 흐르다 보니 어느 순간 어이쿠! 이거 우
리의 성생활을 예를 들었던 게  큰 실수가 아니었나 싶어 가슴이 덜컹하기
도 했다.
  배달된 여성지들 속에서 세태에 부합된 우리 기사를 보고 우울한 기분을
영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날 밤 단골 포장마차로  자장면을 먹으러 가면서
내가 말했다.
  "우리는 맨날 섹스만 하고 사는 부분 줄 알겠어."
  남편이 피식 웃는다.
  "요즘은 둘다 일 땜에 얼굴 마주보기도 힘든데 말야. 좀 억울해!"
  "책 잘 나가서 많이 읽히고 돈 많이 벌면 좋지 뭐. 하하..."
  "자장면 값은 당연히 저자가 내시겠죠?"

    이혼, 하고 싶으면 해라

  한 남자와 한 여자, 인연이란 모습으로 만나 서로  사라하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자고 약속하는 것이  소위 결혼이다. 또한 결혼은 그 약속이라는  보
이지 않고  줄로 두 사람을 묶어  헤어지지 말고 기어코 살아가라고  한다.
성격말씀에 '하늘에서 묶은 것을 땅에서 풀지 못한다.'  라고 했듯이 결혼은
참으로 신성하고  고귀하기까지 한 것이다.  사람이 만나 어울려  살아가는
형태는 많다. 그런데  왜 유독 결혼이라는 만남은 헤어지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내라고 그토록 강조되는 것일까?
  남녀의 육체결합을 통한 종족 번식의 목적 이상의 또다른 무언가가 분명
히 있다. 그게 뭘까?
  요사이 신문이나  잡지 등에 연예인들의  이혼사례가 유난스럽게 번번히
게재되는 걸 본다. 그런데  우연히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들이 아니
고 거의 7,8년 이상 10년을  훨씬 넘게 살아온 부부들의 이혼이었다. 난 그
런 기사들을  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오래 살고도 헤어질  수
있구나 하고. 신혼 때 이혼하는 경우는 오히려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아직
부부 관계가 설익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보다는 여전히 혼자의 이기심이
많이 남아  있어 티격태격하다 그만  갈라져버리기 십상일 테니까.  그런데
부부가 4,5년 살다 보면 싸우면서  서로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싸우는 것
자체에 지쳐 서로 안 부딪치려 피하면서 부부의 틀이  잡히게 된다. 그야말
로 정  때문에 살아진다는 말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신혼부부의 이혼에서부터 10년,20
년을 넘게 살아오고서도 가차없이 갈라서고 마는 것이다.
  바로 전세대까지만  해도 이혼이 결코  흔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혼하면
당연히 살아야 했다.  첩을 보아도, 혹은 다른 여자의 씨를  보아도, 허구한
날 때리고 구박해도...  그 어떤 혹독한 대우를 받더라도 여자는  기어코 살
았다. 혹 부부 사이에 아기가 없어도 여자 탓으로 돌려서  내치려 할 때 여
자는 그 집  귀신이 돼야 한다며 발목을 잡고  애걸을 해서라도 살아야 했
다. 남자들도 대충은 그랬다.  본 마누라를 뒷방으로 내치고 첩년을 안방에
서 끼고 살아도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았고, 본 마누라가  아들을 못 낳으면
다른 배에세 아들을  낳아와 키우게 하더라도 마누라 대접은 했다.  남편한
테 불이익을 받더라도  여자는 참고 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고 남자는
못된 짓을 하면서도 마누라를 데리고 살기는 했단 얘기다.
 물론 요즘에도 매맞는  아내, 구타하는 남편, 외도하는 나면,  술과 노름에
미쳐 재산을 탕진하는 남편, 무능해서 마누라를 일터에  내보내는 여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옛날과 달리 이혼이 만만찮게 늘어간다는  엄연
한 차이를 보인다.  이혼의 사유 또한 다양하다. 부부 사이의  성격차, 시댁
과의 불화, 상대의  외도, 가정경제의 파탄, 의부증과  의처증, 특히 성저인
부조화 등등. 결국  그러한 불만족을 극복하고 못하고 이혼하게 되는  것이
다.
  가끔 뉴스를 보면  웃지 못할 자살극이 보도되기도 한다. 벌거벗고  한강
다리에 오라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며 안들어주면 죽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경찰이나 구조대원들이 올라가 설득하면 못 이기는 체 내려오는 소
동이다. 다 큰 어른이 창피하지도 않은지, 그런 일을 볼 때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그들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갔지만, 한편  어리석다는
생각과 더불어 만약에 죽겠다고 난리를  칠 때 말리지 말고 내버려두면 어
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정말 죽을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조용히 죽을
것이고, 어쩌다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 말린다고 해도 기어코 죽을  것이
다. 자살은  아무나 하나?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극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죽으라고 내버려두면 약올라서라도 그 짓을 그만둘  사람들일 게다.
사람의 심저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닌가. 하라 하라하면 하기 싫어지고, 하
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런 견지에서 지금 이 순간 이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혼하지 말아
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댁 사람들이  나를 너무 구박해.  혼수 적게 해왔다고, 일  못한다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혼하고 싶어."
  아니 그런 대접을 받고 왜  살아? 네가 친정에서 얼마나 귀하게 자란 여
잔데. 자기네들은 딸이 없나? 딸이 없으면 딸처럼  여기고 아껴주신 못할망
정 웬 구박? 그런 불만을 얘기하는 걸 보니 남편이 자기네 식구 편만 들고
너를 괄시하는구나? 그러면 더 볼 것도  없어. ㅣ혼해! 시댁 사람들한테 구
박받는 것도 서러울 텐데  남편까지? 믿고 살 게 없겠다. 시집살이  참으며
산다고 누가 상 주냐?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하는 거야! 요즘 세상에 참긴
왜 참아?
  "저 사람하고 성격이 너무  안 맞아. 아무리 노력해봐도 진전이 없어. 이
젠 쳐다보기도 싫어. 아무래도 이혼해야겠어."
  그렇게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면 정말 못사는 거야. 네가  말하는 걸 보면
너도 할  만큼 했나 본데 그만둬.  부부 사이엔 끝없는 노력뿐이라는  말은
옛말이야. 내가 보기에도 좀 못돼 보이더라. 너 성격 안 맞는 것도 보통 일
아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 이혼하는  거 흉 아니야. 더 늙기 전에 갈라서
야 새출발하기도 좋지. 당장 이혼해!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 아예 딴살림까지 차린  거 있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이혼할 거야."
  당장 이혼해! 요즘이 어떤 시댄데 남편 바람피우는 걸 보고사니? 그리고
그거 습관성이란다. 이번에  얼렁뚱땅 덮어진다고 해도 언제 또 저지를  줄
아니? 괜히 그때 가서  또 분해하지 말고 지금 이혼해. 애드? 누가  키워도
키워. 부모된 도리가  있지 않냐구? 부모들 이혼하는  것도 걔네들 팔자야.
이것 저것다 신경쓰다 네  인생만 망쳐. 그리고 뭐 세상에 남자가  그 사람
하나뿐이니? 남편이 있어도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시댄데.  맘에 드는 남자
하고 다시 결혼하면 돼. 한번 사는 인생이야. 이혼해!
  "그 사람 의처증이  너무 심해. 이젠 전화 도청까지 하고  트집을 잡아서
때리기도 해. 아무래도 이혼해야 할 것 같아."
  의처증? 그거 병  아니야? 일찌감치 이혼하고 새출발해. 노력은 무슨  노
력? 병도 병 나름이지. 게다가 의처증은 오나치가 힘들대. 때리기까지 한다
니 그건 당연히 이혼감이다. 어쩌면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럴수도 있다고?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깨끗이  잊고 멀리 가서 새로 결혼해서
살아. 이혼해!
  "우리 마누라 영 그게 아니야. 도대체 맞지가 않아.  젠장! 살아보고 결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웬만해야지. 그게 아니니까 꼴도 보기  싫어. 이혼밖
엔 방법이 없겠어."
  동감! 부부가 살아가는 데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데, 혹자는 노력하면 된
다고 하는데 그거 쉽지 않지. 그리고 국이 기를 쓰고  그럴 필요 어딨겠어?
널린 게  여잔데. 마누라가 섹스말고는 다  괜찮은 여자라고? 그래도  그게
아니면 말짱 황이야. 너만 믿고 사는 여잔데 섹스  문제로 이혼하려니까 좀
안됐다고? 이혼하려는  놈이 웬 동정?  이혼해!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몰라? 당장 이혼 결심해!
  "우리 남편은 나한테  섹스로 너무 만족을 못 시켜줘. 일이  끝나고 나면
너무 허무해. 그런 스트레스가  자꾸 쌓이니까 우울증까지 생겼고, 다른 남
자를 만나고 싶기도 해. 나 이혼할까?"
  그래 이혼해. 한 인생 사는 건데 재미있게 살아야지. 남편하고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고?  집어치워. 남자들한테  괜히 그런 얘기했다가  저질이라는
소리나 들을걸. 그럼 더 비참해져. 그래도 그것만 빼놓고는 다 괜찮은 남편
이라고? 너같이 소극적인 여자들이 평생  낙도 모르고 섹스 포기하고 사는
거야, 바보야! 이혼하고 다시  결혼해. 요즘 재혼 정도는 우스운 세상  아니
니? 여자 정조? 고리타분한 얘기하지 마. 바로 문밖에 섹스  신세계가 있다
네! 널린 게 남자니까 골라잡기나 해. 고민하지 말고 이혼해!
  처음 만난 그 순간의 기억, 그 어디에선가 끝없는 사랑의 약속들, 짜릿한
첫키스의 추억, 청혼을 받던 가슴 설레이던 순간,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 속
에서의 행복한 결혼식, 꿈결같은 신혼여행, 첫아이를 낳던 날 두 사람의 감
격, 너무나 어려웠던 겨울 밤의 뜨거운 잠자리, 처음 집을 사가지고 이사가
던 날... 등등의 아름답고 소중한 두 사람만의 소역사들! 그러나 이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그 모든 것들이  어디론가 다 허공으로 날려지고 단지 이
혼의 이유들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노력한다, 참아낸다,  기어코 살아보자
하는 것들은 저  옛날의 고분 속으로나 보내버리라는 것이다. 무조건  끝내
자, 갈라서자이다.
  난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혼이란 내 사전에 없다'였다.  만일 남편이 바람
을 피우면? 결코  이혼해주지 않을 뿐더러 평생나와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만들 작정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라며 반성하고 돌아와 용서를 빈다면?  그
래도 난 내 결심을 실행할 것이고, 그 고통에  차라리 이혼이라도 해달라고
애원해도 절대 이혼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야  어쨋든 외도는
상대에 대한 배신이고, 이혼 불가와 평생 혼자 격리되는  것은 그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혼 극반대론자는 아니다. 아무튼 내 인생에서의 이혼
에 대한 나의 정의였을 뿐이다. 그런데...
  결혼 후 우리 부부도 여느 부부들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자주 다투었
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첫 번째 극렬한 전쟁이 있었는데  한순간 '이혼'이
란 단어가 머리를 스쳐갔다.
  '그래 더 이상은 아니야. 그만 살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남은
인생 나 혼자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거야...'
  난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놀라웠다. 물론 그  전쟁의 결과
로 우리 부부가 헤어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난 이
혼에 대한 나의 사고 변이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결혼한 ㅅ람들이  이혼이라는 것을 절대  불가라고
생각하는데 외려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살다
가 이혼할 수도 있다'라고  말이다. 그러면 이혼이란 압박으로부터 훨씬 자
유로워질 수 있을거란 것이다. 무슨 일이든 '절대 안  돼!'라든가 '그러면 안
돼!'라고 극절제를  시키는 데서 항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난  이혼이란
단어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부부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졌
고, 부부라는 명제를 더 자연스럽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혼과 이혼에 관한 도덕적 혹은 전례적인 관념의 틀로부터 부부는 이제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고, 하라 하라 하
면 하기 싫어 하는 게 사람의  일이란게 부부가 되어 살다 보면 이혼을 해
야 오히려 두  사람의 삶에 더 이로울  수 있는 경우도 있지 않겠나.  그럴
경우 그들의 선택을 무조건 지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방종만 아니라면 틀에서  벗어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부부가 되자.

    앞치마와 춤을

  "이젠 아주 고마워하지도 않는군."
  "왜 고맙지. 이것 봐 눈물이 다 나잖아."
  "쇼 하지마."
  난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그는 설거지를 하고 있다.
  생리통이 좀 심해서 억지로 저녁을 지어 식사를 마치고는 설거지를 밀어
놓고 누워 있었던 참이다. 눈치를 챈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 설거지를 한
다. 누운 채 큰 키를 구부리고 설거지하는 남편을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내가 해놓은대로  하려고 열심히 여기저기 그릇 등을 챙겨놓는  모습
이 더 우스웠다.
  "뭐가 우스워?"
  "아무것도."
  그러다 다시 푸 하고 혼자 웃는다.
  미혼 시절 그저 내 한 몸  거두는 것만 알고 살아온 나는 결혼생활이 시
작되자 아무리 방  두 칸에 주방 겸 거실이  있는 작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청소며, 세탁, 음식  만들기에서 설거지... 끝이 없는 집안일들이  무척 힘들
었다. 게다가 성격이  별스러워서 닦은 데 또  닦고, 정리하고 또 돌아보고
하는 데 시간도 무한정,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찮았다.
  "야, 대충대충 해라. 그러다 병 나겠다."
  "냅둬, 이래야 직성이 풀리니까."
  보다못한 남편은 그런 내가 안쓰러운지  카펫이나 이불 빨래 등 힘든 일
에서부터 가끔은 설거지 등도 해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글을  써서 돈을 버
는 일들이 그의 몫이 훨씬 많지만 난 내가 글쓰는 일로 나쁘더라도 그에게
가사분담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사회활동을 같이 한다고  가사일도 남편과
나누고 싶지는  않단 예기다. 그리고  남자들이 가사일을 도와준들  아내들
성에 차기나 하겠나. 그래도 때때로 일을 도와주면 수월하고  고마운 게 사
실이다.
  "아니 남자가 주바엔 왜 얼씬거려? 고추값도 못하고."
  "야, 쪼잔하게 남자가 설거지 같은 걸 왜 해?"
  "그거 자주 해주다 보면 고마운 것도 한두 번이고 나중엔 아주 떠맡기려
고 할걸. 마누라 버릇만 나빠지지."
  요즘 세상에도 이런  고리타분한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남자들이 많
다. "요즘 세상?" 예나  지금이나 남자 여자 사는 게 다  똑같지 달라질 게
뭐 있어? " 하며  자기 나름대로 변까지 해댄다. 그러나 듣기에  별로 이뻐
보이지 않는 말들이다. 남자입네  하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할 일  없이 텔
레비젼을 볼망정  애들 숙제 한번 챙기지  않고, 아내가 어느 날  대청소를
하느라 힘드어해도 거들 생각 한번 않는다. 이런 일은  맞벌이를 하는 아내
의 남편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일 경우가 많으니, 이래서야 원 아내  안쓰
러운 것도 모르는 그런 남편을 어디 믿고 살겠나.
  어느 여자가밖에 나가서 일하고 돌아와 설거지해주는 남편,  청소 도와주
는 남편이 고밥지  않겠나. 뻔뻔스럽게 같이사는 거니까 가사일도 나워  해
야 한닥고 주장하는 마누라가 어디 있겠나. 정겨운 말 한마디, 슬그머니 도
와주는 행동들  하나하나... 부부는 그저 알게  모르게 챙겨주는 데서  정이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닐지는.
  결혼해서 처음 살게  된 집의 도배며 전기 설치  등을 다 남편이 도맡아
했다. 난 그런 걸 어쩌면  그렇게 잘하냐고, 혹시 총각 ㄸ 노가다하면서 배
운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ㄹ더니 들려주는 얘기가, 그가 대학 1학년 때 학
교 선생님이셨던 시아버님이 방학기간을 틈타 두 아들을 데리고 집을 지으
셨다고 했다. 땅을  사 설계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를  직접하셨
고 남편과 시동생은 그때 일을 거들면서 건축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남편의 긴 손가락들은 여러  방
면에 참으로 재주가 많다. 아무튼 남편 덕분에 이사에  드는 비용들을 많이
절감할 수 있었다.  나는 좀 게으르고 남편은  부지런하다. 그는 더러운 건
잠시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가끔 내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손을 놓고
빈둥대느라 집안이 어수선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는,
  "언제까지 이러구 살 거야?"
  "보기 싫으면 당신이 하면 되잖아."
  "어휴 그래 내가 하마."
  그리고는 정말 주섬주섬  치우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한다. 그러면 난  그
때서야 할 수 없이 투덜거리며 일어나 집안일을 시작한다.
  "내가 노는 꼴을 잠시도 못 봐. 사람이 살면서 좀 지저분하면 어때서..."
  그러면 그는 핏 웃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간다. 그와  나의 성격차 때문에
이런 일들이 빈번하지만 집안일들로 니가 해라, 나눠 하자  다투는 일은 없
다. 어쩌다 친하게 지내는 부부들이 모이게 되면 가사분담에  대해 열띤 토
론이 오고갈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아직도 남자들은 절대 가사일을  해선
안 된다는 측면이  있지만 대체로 요즘은 남편들의  입장에서 스스로 많이
도와주려 한다는 결론이 많고 그들이 아내를 도와주는 것은 그야말로 순수
했다.
  "설거지는 기본 아니야?"
  "사느라고 서로 바쁜데 그깐 일 아무나 하면 어때서 그래?"
  "짜식, 너처럼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게 더 이상한거야 마."
  "그리고, 간 큰 남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설거지도 안 할 수가 있어?"
  마지막 말에 다 같이 와, 웃어보기도 한다.
  자신들도밖에 나가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
을 텐데도 짬짬이 아내의 일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남편들,  남녀의 일을 구
분하기 이젠에 그건 사랑이고  아낌이다. 아내들은 그런 그들이 고맙고, 또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내려 하는 것이다.
  설거지해주는 남편의 손이 아름답다.

    엄마의 딸

  예순이 훨씬 넘은  친정 어머니는 아직도 외할머니 얘기를 자주  하신다.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음식을  대할 때, 당신이 혹 섭섭하게 해드렸던  게
기억날 때, 일상의 일들 중에서도 그 옛날 곁에 사실  때처럼 아직 살아 계
신 분을 얘기하듯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눈가에  촉촉이 물기가 비
치기도 하신다. 딸에게 어머니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살아  계셨을 때나 돌
아가신 후에는  더더욱, 왜 항상 가슴을  저미는 그 무엇으로 남아  있어야
할까?
  "엄만 아직도 외할머니가 많이 생각나?"
  "한시라도 잊을 ㄸ가 있는 줄 아니? 너도 나 죽거든 봐."
  내가 겨우 대여섯  살이었을 때로 기억된다. 그때는 우리 가족이  인천에
세 살고 있었다.  안산이 외가의 고향이기 때문에 안산과 가까운  인천에는
외할머니댁을 비롯해 우리  외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
을 잡고 걷는 어린 걸음이라 당시에는 다소 먼 느낌이었지만 외할머니댁은
우리집과 그리 멀지 않았다. 저녁나절 가끔 외할머니 댁에  가서 놀다가 온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작은 다리가 하나, 주택가에 위치한 큰 대학
이 하나, 그리고 인가가 뜸한 길을 잠깐 지나면 우리집이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걸어오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셨다. 어린  딸년이 알아듣는
지 못 알아듣는지 그냥 자분자분 예기하셨다. 그리고 어떤  땐 작은 소리로
노래로 흥얼거렸다. 난 그 순간이  왜 그리 좋았는지... 오빠들도 없고 다른
그 어떤 사람도 없이 나만 어머니를  독차지한 것 같아 더 좋았을 수도 있
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외할
머니 댁에 다녀오던  그 밤길이 참으로 좋았다. 낮이라면 뭔가  군것질거리
를 사주셨을 텐데 밤이라 그렇지도 않았건만...
  어렸을 적 유독 병약해 부모님의  걱정이 되었던 나는 큰 다음에 어른들
을 통해 그 시절 얼마나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웠는지를  듣곤 했다. 당시의
부모님 심정은 아랑곳없이 그 예기를  듣는 난 남의 예기인 양 재미있기만
하다.
  "글세 딸 하나라고 들볶이며 돌잔치를 하겠다고 음식이며 잔뜩 차려놓았
는데 그날 밤 애가 껄떡껄떡 숨이 넘어가는 거야."
  "왜?"
  "나중에 알고 보니 디프테리아라고 그러더라구.  시골에서 기침을 키워서
그만 그렇게 됐지 뭐."
  "그래서?"
  "그래 아빠한테 연락해서 경찰차로  병원에 싣고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
이 그날 밤을 못 넘긴다고 하더라구. 세상에! 눈앞이 캄캄하더라."
  "근데 살았잖아?"
  "아빠는 그날따라 비상이라  못 오시고, 자정이 넘어가니까  고모도 이모
도 할머니들도 다들 지쳤는지 조고들 있는데 내가 이렇게  너를 보니, 어린
것이 숨이 헐떡거리는  게 어찌나 가엾던지... 그래 마지막 가는  길에 에미
젖이나 먹고  가라고 앙다문 입을 억지로  벌려 젖을 물렸어. 그러다  나도
깜빡 잠이  들었나 본데 막내이모가 날  막 깨우잖아. 눈을 떠보니까  니가
방긋거리더라구. 의사가  와서 보더니 기적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다고
하더라. 내가 속으로 생각하기에 이게 바로 모성앤가 보다 했지."
  "엄마 젖 때문에 산 거네?"
  "오죽하면 니 외할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돈을 쌓아놔도 니 키보다 높
을 거라고 하셨겠어. 외할머니도 또 내 걱정에 널 구박했겠지. 그러고도 한
여덟살이 넘어서야 겨우 바깥 출입을 할 수가 있었으니 참..."
  "왜?"
  "왜긴 빌빌거렷으니까 그렇지. 말  마라. 좋다는 약은 개구리 뒷다리까지
다 고아서 먹였으니까."
  "우웩."
  그 당시 바깥 출입이 힘들었던  나에게 어머니는 온갖 새로 나온 장난감
이나 인형들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답답하면 내다보라고 방문의  창호지 한
쪽 부분을 유리로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 정성 때문인지  초등
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렇게 기를 쓰고 키워놨더니 가라는 시집은 안 가고 서른 일곱이 다 되
도록 연극을 합네,  시나리오를 씁네 하면서 밖으로만 돌아치니 어머니  심
정이 오죽하셨을까. 나는 나의 길을 걸어왔다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선 배신
감에 앞서 애간장이  타셨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한테 드린 효라면  그나마
늦게라도 결혼을 했다는 것일 게다.
  어머니는 원래 강하고 대담한 분이셨다. 외모는 천상  여자의 모습이지만
내면만큼은 남자 같은 부분이 있으셨다. 그런데 그런 분도  내가 20대 중반
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한쪽 날개를 잃은 새처럼 기상이 꺾이면서
급속도로 늙기 시작하셨다. 게다가  충격으로 병도 깊어지시고... 그런 어머
니를 지켜보면서 난 생각했다. 여자란 남편을 잃으면서 그  순간 자기 영혼
마저 남편의 무덤에 함께 묻어버리고는 저토록 가슴 아픈 모습으로 살아가
는구나 하고  말이다. 두 분의 사랑이  깊었던 만큼 사별의 상처도  깊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것도  내가 한 20
대 중반부터였을 것이다. 그 옛날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어머니의 친정집에
서 밤 마실 갔다오던 때의 모녀는 이미 저 멀리로 사라지고 그야말로 자기
얘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친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딸이  결혼을
하고 나서는 어머니의 일상의 위안이 되어갔다.
  그렇다. 비단 내 경우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다 같
은 모습으로 살아가리라  생각된다. 처음엔 마냥 귀엽기만 한 젖먹이  아기
로, 차츰 자라며서는  늘 걱정만 안겨주는 천방지축  아이로, 다 커서는 저
혼자 큰  듯 밖으로만 나돌면서 외로움을  주는 배신자로, 그러다 그  딸이
결혼하고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친구가 되고, 어느  사이 어머니의
노년에는 깊은 위안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아들이든  딸이든 매한가
지지만, 같은 여자의  삶을 살아가는 딸의 모습은 아들에게서와 다른  안타
까움과 더불어 그 어떤 감동을 어머니에게 주는 것이다.
  딸에게 있어 어머니 역이 그렇다. 돌아가신 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살아
계실 때에도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늘 딸의 가슴 저  밑에 있다.
멀리 있으면 멀리 있는  대로,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는 대로  놀 그리움
이 사무친다. 어머니에 대한 그 그리움은 언젠가는 어머니를  땅에 묻고 그
딸 역시 땅에 묻히고 나서야 비로서 끝이 날까...

    떴다,떴다 비행기

  작년 4월 중순 경, 우리 부부는 '표류일기'  영화 스탭들과 함께 서태평양
팔라우로 한 달 예정의 촬영을 떠났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는 제작사 덕분
에 한 달간  공짜 해외여행을 하게된 셈이었다. 난 김포공항을  출발하면서
신나서 어쩔 줄 몰랐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남편에게 속삭이길,
  "기내식 주는거야?"
  "응."
  "정말?"
  "그렇다니까."
  "우와 신난다!"
  기내식이 뭐라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냐고  하겠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우리 결혼식을 마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는데  난 무척 흥분해  있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부가 흥분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그런데 그
게 아니다. 내가 흥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단 하나 비행기를 처음
탄다는 데에 있었다.
  대학 졸업예정지에도 제주도였지만 난  가기 싫어서 여행비를 뺑땅쳐 춘
천에 있는 친구에게로  놀러 갔었고, 연극을 하면서 지방공연을 많이  다녔
지만 제주도에 갈 기회는 없없다. 그 결과 난 37년  동안 단 한번도 비행기
를 타본 적이 없었던 거다.
  "와아! 저것 좀 봐. 서울이 한눈에 다 보이네!"
  "..."
  "어머, 저 구름들 좀 봐. 우와 되게 멋있다!"
  "..."
  제주도에 도착할 때까지 난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흥분해서 계속 탄
성을 내질렀다. 촌스럽게  떠들어대는 아내 때문에 남편은 창피해 어쩔  줄
몰라했다. 체, 자긴  옛날에 사업하면서 많이 타봤으니까 그렇지.  그러든지
말든지.
  "근데 기내식은 안 주는 거야?"
  "무슨 기내식을 줘?"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IBM 에  다니는 큰오빠가 자
주 해외출장을 다니는 관계로 비행기에 타면 기내식이 나온다는 소릴 들었
기에 비행기에 타면 당연히 기내식이 나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국내선엔 기내식이 없어. 국외선을 타야 나와."
  "쳇, 그러 게 어딨어?"
  난 비싼 항공료를 내고  기내식을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
게 괜한 심통을 부렸다.
  팔라우는 괌을 거쳐서 갔다. 그렇게  기내식에 대한 원한(?)이 있던 차에
괌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준다니까 쾌재를 부를  수밖에. 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자 기내식이 승객들에게 배급되었고,  처음
기내식을 받아들은 난 신나서 난리도 아니다.
  "기분이 쭈알라야!!"
  "그래. 소원 풀어 좋겠다."
  약 4시간  정도의 야간비행을 끝내고 우린  새벽에 괌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내에서 3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팔라우로 향
했는데, 비행기는 다시 얍섬을 경유해 서울을 출발한 지  꼬박 12시간 만에
목적지 팔라우에 도착한 것이다. 팔라우는 300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천
혜의 섬나라였다. 그  중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일곱 개 안팎이었다.
우린 그 나라의 수도가 있는 코로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베이스 캠프가 있
는 펠라루섬으로 향했다.
  "와아, 저 물빛 좀 봐! 환상적이다!"
  탄성이 또 시작됐다. 정말  바다 색깔이 기가 막혔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물은 얼마나 깨끗한지 바닷속이 훤히  들여
다보여 가종의 희귀한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
렇게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에 난 가슴 벅찼다.
  우리는 무려 세  시간의 향해 끝에 목적지 펠라루섬에 도착했다.  스탭들
은 장장 15시간의 강행군을 끝내고 베이스 캠프에 짐을 풀고 각자 방을 배
치받아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우리 부부는 작가라는 특전(?) 때
문에 해변가에 위치한 근사한 방갈로를 배정받았다. 그날 밤  나는 너무 감
격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라  팔라우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부부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남편과 난 서태평양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몇 번씩
이나 꿀맛 같은 섹스를 되풀이하며 그밤을 꼬박 새웠다.
  "나 팔라우에 다시 가고 싶어."
  넌 팔라우에서의 추억들을 잊지 못하고 남편에게 가끔 팔라우에 다시 가
고 싶다고 조른다.
  "IMF 귀신이 물러가면 꼭 데려갈게."
  난 남편이 그 약속을 꼭 지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내 자랑스런
남편은 아내의 추억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떳다 떳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알았어, 알았어. 올해  안에 꼭 데려가면 될  거 아냐. 제발 그  노래 좀
부르지 마."
  그런다고 안 부를 줄 알구? 데려갈 때까지 부룰 거다 뭐.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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