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lace

07-태백

그림자세상 2009. 6. 21. 11:01

찍을 때보다 나중에 더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찍는 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이 있다.

이 첫 사진은 담는 순간, 좋았다!

여길 담고나서 다음 발길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마음을 잡는 그런 곳이었다.

돌아와 화면으로 볼 때마다 하늘로 이어진 길, 같다.

사실 바로 저 길을 돌아 오른 곳은 하얀 하늘이었다.

 

처음 오른 태백은 시간이 하얗게 얼어붙은 곳이었다,

마음의 검은 티끌들이 다 씻겨 나갈만큼.

밑에서 위로, 옆에서 옆으로 비껴가다가

돌연 위에서 아래로 쏟아질 듯 불어온 바람에서는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순백의 내음이 묻어오고

청빛 하늘은 그대로 뺨에 닫을 듯 가까이 담겨 있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고사목은

말 한마디 없이 생과 사가 다름아님을 숭고한 자태로 일러주었다.

낮으나 높으나 모든 산이 그 시간의 장엄함에 고개 숙이고

멀리 천리길이 그저 한 눈 아래 보일 듯 했다.

쪽빛 푸른 하늘은 나무도 산도 그 아래 하잘 것 없는 사람까지도 넉넉하게 감싸 안는

넉넉한 바다가 되어 주었다.

 

 

 

오르던 길에 내 발을 잡아 차마 떨어지지 않게 하던 곳.

중턱 쯤 모퉁이를 돌아 오르다 보인 작은 사당, 혹은 절.

깊디 깊은 산 한 골짜기에 숨은 듯 앉았으되

오로지 그로인해 광경이 달라졌다.

 

그해 겨울, 저 곳에 내 마음을 두고 왔다.

돌아와 두고온 내 마음 빈 자리에 다음과 같은 글을 놓았다.

                    -----------------

 

   겨울, 태백

 

               여 국 현

 

가는 솜 날려 덮힌 듯

눈부신 능선과 산마루에 지천인 눈꽃이

세속의 먼지 탄 마음에 꽃을 피우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의 쌓인 눈 언 가지 위로

새벽 햇살이 영겁의 숨결을  비출 때  

 

내 눈 내 마음 앗아간 것은

산도 하늘도 눈꽃도 아닌

그 하늘 그 산 그 눈꽃 아래

벼려진 단호한 침묵 하나

 

그 옹골진 침묵 속에

마음을 두고 오다

 

 

저 골짜기에서 불어올라오던 힘센 바람의 손길과 포효를 잊을 수 있을까!

몸도 마음도 그저 그 바람 가자는 대로 가고 싶었다.

다시 저 바람, 맞으러 가리라.

 

 

 

바닷속 한 풍경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설목들.

얼어붙은 눈꽃은 그대로 산호초요

쪽빛 하늘은 그대로 바다라.

마음의 비상, 그리고 유영.

 

저기 사람 손 닿은 곳이 휑하니 비어있다고

이 나무 목숨 버리랴.

붕대로 동여맨 아픈 상처 보듯

가슴 서늘한, 상흔.

 

 

--------

겨울산행

 

                 여 국 현

 

마음 속 바람에 떠밀리며

가라가라 수월하게 오른 산마루

바위 비탈 아래 산허리 

가을과 겨울이 따로 있다

 

햇살은 바위 위에 잠시 머물다

바람에 날려 뿌옇게 흩어지고

바람에 놀란 사람들은

햇살보다 더 빨리

골짜기 아래로 사라져 갔다

 

사람들의 숲은 아득히 멀고

길은 끊겨 허공만 지천인데

가라가라 보채던 마음 속 바람은 

매서운 산바람이 되어

다시 가라가라 재촉한다

 

바람타고 활강하는

겨울새의 자유로운 비상은

내려갈 길 나서지 못한 마음에

벼린 칼자욱을 남기고

겨울 산허리를 지나 사라지는

붉은 그림자에 가슴마저 베이다

 

겨울 산허리의 길은

산 뒷편으로 끊기듯 이어지고

그 길 돌아나온 한 사내의 망설임

 

시간이 멈추듯 바람도 잦아들고

비상하던 새도 바위 틈에 날개를 접었다

 

사내의 선택은 옳았다

 

어둠은 예고 없이 오고  

그림자는 문득 사라진다

 

가을산을 올라

겨울산으로 내려오면서 확인하다

 

모든 비상은

땅을 내딪는 한걸음에서 시작됨을

올라감도 내려옴도

내 발 걸음걸음으로만 날 수 있음을

마음의 바람이 산의 바람이

부추기고 밀어내도

오름이 다시 내려옴임을

 

내려옴이 다시 오름임을

 

'사진 > pla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미원   (0) 2009.06.27
두물머리  (0) 2009.06.27
양수리 두물머리  (0) 2009.06.15
양수리 두물머리  (0) 2009.06.15
파주 돌곶이  (0) 2009.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