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移葬) 3
아버지는 파묘를 하는 일꾼들 옆에서
칠십 년 전의 기억을 불러오고 있었다
꼭 칠십 년일따만
내 일곱 살 아니 다섯 살때지
영문도 모르고 징용 가서 이 년 만에
한줌 유골로 돌아오셨는걸 뭐
유골이라고는 하지마는 실은 그냥 요만한 나무상자에
그래 흰 무명으로 싸인 나무상자에
한줌 흙뿐이라
내가 뭘 아는 나이가 어데
어무이가 그 상자째로 무명에 싸서 칠성판에 얹고
다시 삼배로 칭칭 세 번인가 감았제
그기 다였는데 뭐
어무이는 허니 니 할매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선
일곱 살짜리 나를 보고 잘 봐 두라고
자구 무덤가로 데려 가시질 않나
그래 내가 기억이 틀림없을기라
그때 내 키로 한길로 넘게 팠제
깊기도 깊고 겁도 났지마는 보기는 다 안 봤나
거기 아이고 이만큼 올라와야 할거요
한참 더 올라와야 돼 얼마내 짚게 팠다꼬
내 기억이 맞아
아버지는 버티기도 힘든 몸으로
창백한 얼굴을 연신 훔치며
깊게 속을 드러낸 할아버지의 무덤가를 서성이셨다
한참을 그렇게 더 흙을 파내자
까만 상판 가로막 나무가 둥근 막대 모양 그대로 드러났다
허! 가로막이 하나도 안 썩었네
물이 흐리나 보제 이 높은 곳에
흐리는 게 뭐고 잠깄나 보다
파묘하던 어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판 가로대 아래로 물이 나기 시작했다
고인 물이 아니라 숫제 흐르는 물이었다
물은 밑에서 샘 솟듯 끊임없이 나왔다
허! 이 높은 산에 물이 흐를줄 누가 알았노
그래 내가 이래 머리가 아팠나보다
전에 언젠가는 한참 만에 왔더만
오른 아름만한 어카시아 낭기 굵다랗게
무덤 한 가운데 떡하니 자라서
그거 파내느라고 고생했는데
참 저래 물이 흐르고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나 이 산중에
물 속에 누워 계셨네 그마
어서 퍼내주소 어서
어쨌기나 이제라도 마 내 맘이 다 후련하다
혼백이 있고 없고 간에
물이 저래 흐르는 걸 보니 참담하기는 하제마는
이제 조금만 참으시만 좋은 집으로 이사 가시니
조금만 참으시만 되시겠네요 어르신
한참을 흙보다 더 많은 물을 퍼내고 나자
상판만큼 새카만 흙덩이가 물속에 잠겨 모습을 드러냈다
칠성판이고마는 칠성판은 썩어서 흙밖에 없네
글체 시간이 칠십 년이라마 클카고도 남제
중간쯤에 유골을 모싰을테니 거게쯤 조심해서 파보그라
뭐 달리 없을끼다마는 그래도 조심해서 보고
검은 흙 조심해서 모시기라
이제 좋은 집으로 모시가야제
조금 더 파도 그 흙이 그 흙이자
칠성판 자리 위 아래 가운데 까만 흙을
한줌씩 담아 고르고 골라 준비한 유골 상자에 담았다
됐지요 이래 모시만 되겠능교
그래요 수고하셨소 그럽시다
무덤을 다시 메우고 두 번 절을 했다
아따 이제 영 그만이구마 이사리는
글케요 이제 다시 오실 일은 없겠지요
형님이 여기 이사리서 결혼하셨지요
그때 모습이 기억나네
창규 아제의 말이 훌쩍
아버지의 이십오 년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저 아랫말이었지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유골상자를 안고 차에 올라
논길을 따 빠져나올 때까지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논길을 지나 아스팔트 포장길에 올라서자
성황당 입구의 큰 고목을 가리키며
내가 고향을 떠날 때는 저기 저 나무도
싱싱했는데, 했다
고목은 가운데가 휑하니 비어 떼워졌지만
비틀린 굵은 둥치는 힘차게 구불구불
위로 오르고 있었다
가지마다 녹색의 잎들이 가득했다
오월 초순의 햇살이 사방에 가득했다
내 무릎에 놓인 할아버지의 유골함에
그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일곱 살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있던
칠십 년 전에도 그랬을 터다
칠십 년 흘러도 그러할 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멀리 할아버지 계시던 산허리에
하얀 밤꽃들이 가득했다
아버지와 나는
이사리 어귀를 벗어나고 있었다
'Texts and Writings > My poe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풍 (0) | 2013.11.13 |
---|---|
[스크랩] 달, 엄마 (0) | 2012.12.30 |
이장(移葬) 2 (0) | 2012.05.15 |
이장(移葬) 1 (0) | 2012.05.14 |
흔적 (0) | 201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