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My poems

이장(移葬) 3

그림자세상 2012. 5. 23. 18:28

이장(移葬) 3

 

아버지는 파묘를 하는 일꾼들 옆에서

칠십 년 전의 기억을 불러오고 있었다

 

꼭 칠십 년일따만

내 일곱 살 아니 다섯 살때지

영문도 모르고 징용 가서 이 년 만에

한줌 유골로 돌아오셨는걸 뭐

유골이라고는 하지마는 실은 그냥 요만한 나무상자에

그래 흰 무명으로 싸인 나무상자에

한줌 흙뿐이라

내가 뭘 아는 나이가 어데

어무이가 그 상자째로 무명에 싸서 칠성판에 얹고

다시 삼배로 칭칭 세 번인가 감았제

그기 다였는데 뭐

어무이는 허니 니 할매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선

일곱 살짜리 나를 보고 잘 봐 두라고

자구 무덤가로 데려 가시질 않나

그래 내가 기억이 틀림없을기라

그때 내 키로 한길로 넘게 팠제

깊기도 깊고 겁도 났지마는 보기는 다 안 봤나

거기 아이고 이만큼 올라와야 할거요

한참 더 올라와야 돼 얼마내 짚게 팠다꼬

내 기억이 맞아

 

아버지는 버티기도 힘든 몸으로

창백한 얼굴을 연신 훔치며

깊게 속을 드러낸 할아버지의 무덤가를 서성이셨다

한참을 그렇게 더 흙을 파내자

까만 상판 가로막 나무가 둥근 막대 모양 그대로 드러났다

 

허! 가로막이 하나도 안 썩었네

물이 흐리나 보제 이 높은 곳에

흐리는 게 뭐고 잠깄나 보다

 

파묘하던 어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판 가로대 아래로 물이 나기 시작했다

고인 물이 아니라 숫제 흐르는 물이었다

물은 밑에서 샘 솟듯 끊임없이 나왔다

 

허! 이 높은 산에 물이 흐를줄 누가 알았노

그래 내가 이래 머리가 아팠나보다

전에 언젠가는 한참 만에 왔더만

오른 아름만한 어카시아 낭기 굵다랗게

무덤 한 가운데 떡하니 자라서

그거 파내느라고 고생했는데

참 저래 물이 흐르고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나 이 산중에

물 속에 누워 계셨네 그마

어서 퍼내주소 어서

어쨌기나 이제라도 마 내 맘이 다 후련하다

혼백이 있고 없고 간에

물이 저래 흐르는 걸 보니 참담하기는 하제마는

이제 조금만 참으시만 좋은 집으로 이사 가시니

조금만 참으시만 되시겠네요 어르신

 

한참을 흙보다 더 많은 물을 퍼내고 나자

상판만큼 새카만 흙덩이가 물속에 잠겨 모습을 드러냈다

 

칠성판이고마는 칠성판은 썩어서 흙밖에 없네

글체 시간이 칠십 년이라마 클카고도 남제

중간쯤에 유골을 모싰을테니 거게쯤 조심해서 파보그라

뭐 달리 없을끼다마는 그래도 조심해서 보고

검은 흙 조심해서 모시기라

이제 좋은 집으로 모시가야제

 

조금 더 파도 그 흙이 그 흙이자

칠성판 자리 위 아래 가운데 까만 흙을

한줌씩 담아 고르고 골라 준비한 유골 상자에 담았다

 

됐지요 이래 모시만 되겠능교

그래요 수고하셨소 그럽시다

 

무덤을 다시 메우고 두 번 절을 했다

 

아따 이제 영 그만이구마 이사리는

글케요 이제 다시 오실 일은 없겠지요

형님이 여기 이사리서 결혼하셨지요

그때 모습이 기억나네

창규 아제의 말이 훌쩍

아버지의 이십오 년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저 아랫말이었지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유골상자를 안고 차에 올라

논길을 따 빠져나올 때까지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논길을 지나 아스팔트 포장길에 올라서자

성황당 입구의 큰 고목을 가리키며

 

내가 고향을 떠날 때는 저기 저 나무도

싱싱했는데, 했다

 

고목은 가운데가 휑하니 비어 떼워졌지만

비틀린 굵은 둥치는 힘차게 구불구불

위로 오르고 있었다

가지마다 녹색의 잎들이 가득했다

오월 초순의 햇살이 사방에 가득했다

내 무릎에 놓인 할아버지의 유골함에

그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일곱 살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있던

칠십 년 전에도 그랬을 터다

칠십 년 흘러도 그러할 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멀리 할아버지 계시던 산허리에

하얀 밤꽃들이 가득했다

아버지와 나는

이사리 어귀를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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