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이와 함께 기숙사의 짐을 정리해 왔다. 다솜이의 3년 기숙사 생활이 끝났다.
수능이 끝나고 바로 나와 집에서 통학을 하고 있지만 짐을 가져나오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아직 한 번 더 짐을 가져와야 하지만 다솜이가 3년 기숙사 생활, 고등학교 생활을 정리하는 날이다. 아직 학교 수업은 남아있고, 졸업식도 있고, 대학입시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12년 그 한 시절의 마지막 상징적 시간이다. 그 시절들의 몇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3년전 이맘때 쯤 다솜이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정확히는 2008년11월 18일이었다. 확인을 하고 기뻐하던 다솜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도 염치 불구 카페에 축하해달라는 말도 올렸다.^^;;
입학시험을 보러 가던 날, 시험을 보는 다솜이는 조금 긴장하는 것 같았다. 되려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되리라, 믿음이 있었다. 다솜이가 시험 보는 동안 나는 서현역의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한 파묵의 책이었을 것이다. 원서를 내러 갔을 때, 또 시험을 치러 들어가기 전 많은 학부모--대부분이 어머님들이었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 비하면 우리가 다솜이에게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기억. 중학교 내내 주변의 몇몇 학부모들을 보면서 더러 모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자리에서 순간 들었던 묘한 느낌. 그런 느낌들을 간직한 채 다솜이가 시험 볼 동안 나는 몹시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시험이 끝날 때쯤 학교에 가 다솜이와 함께 서현역 앞 [솔레미오]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게 다솜이와 나, 서현, 정자에서 3년 동안 이어진 데이트의 첫날이었다.
기숙사 방을 배정받고 우리 식구들이 모두 함께 짐을 옮겨주고 매트리스를 깔아주고 돌아오던 날, 그날 이후 3년여 가까운 시간, 나는 참 많이 기숙사를 찾았다. 때로는 주말에, 때로는 평일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 다솜이는 종로3가에서 학교앞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일요일 저녁 집을 나서 종로3가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행복했고, 5500-1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다솜이를 바래다주고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는 언제나 미안했다. 가끔은 그 버스를 타고 함께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고돌아오곤 했다.
1학년 때는 많은 기억들이 그 길 위에 있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 수준별 평가의 결과가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던 날. 수학을 힘들어 하던 다솜이는 생각보다 시험을 잘 못 보았지만 하급반 편성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하급반이면 좀 그렇지 않았을까, 마음이?" 그때 다솜이 말. "아니, 난 하급반이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내 생각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 오히려 기초부터 천천히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래도 반별 편성인데 쫌 챙피할 수도 있잖아...?" "아니. 뭐가 챙피해?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한테는 그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난 훌쩍 큰 다솜이를 보았다. 고맙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가끔 일요일이나 주말, 가족들이 함께 다솜이를 보러 가는 날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비슷비슷한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거나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지 않아서 한편 걱정도 했다. 하지만 주말에 만나는 다솜이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첫번째 시험 결과가 나온 후 반에서 중간 정도하는 낯선(^^*) 성적과 그동안 다솜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낮은 평균의 점수가 신기했지만 그 또한 다솜이는 잘 견뎌냈다. 기숙사 생활, 선배들 이야기, 다솜이에게서 듣는 이야기들이, 다솜이가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다솜이의 밝은 표정이 좋았다.
특별활동 반을 두고 고민하던 다솜이가 선택한 클럽의 선택을 듣고 처음에 나는 놀랐다. [무브인]. 학교 여학생 댄스 동아리였다. 예상치 못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다솜이를 모른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그 선택이 놀라웠지만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내가 다솜이에게 가지고 있던 성급했던 한 판단을 아주 많이 미안하게 생각하고 바꾸게 만든 계기도 되었다.
초등학교 때 아람단 활동을 하면서 다솜이는 3년 정도 풍물을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수업시작 하기 전 한시간 가까이. 당시 아람단 이점임 선생님의 열정이 가능하게 만든 일이기도 했다. 장고채도 잡지 못하던 아이들이 두어달 매일 연습한 뒤에 체육대회 때 함께 첫 공연을 하던 순간부터 여름, 겨울 방학의 일주일 가량의 합숙과 공연, 그리고 여러 대회의 참석을 통해 소고, 장고, 꽹과리, 북을 익히고 마지막에 상모를 돌리며 하는 설장고까지. 그리고 6학년때는 대회에서 국무총리상 수상과 대만의 공연까지. 그 3년 내내 모든 공연과 대회, 대만의 공연까지 다솜이와 그 아이들이 했던 모든 공연을 스무 개가 넘는 비디오로 담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본 것은 다솜이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하던 40명 가까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달랐다. 3년 내내 아이들은 변화, 발전해갔다.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자신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녹화를 하다보면 아이들은 제각각이기도 했다. 40명 가까운 아이들 가운데 유독 넘치는 신명으로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다. 잘 몰두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늘 열심히 하지만 공연 때는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연습 때는 좀 힘들 것 같아 보여도 공연 때는 실수 없이 잘 해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명의 차이였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같은 아이들이 3년쯤 하는 것을 보면서 눈에 띄었다. 모든 아이들이 장고를 다루고 꽹과리를 잡는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늘고 편안해졌다. 그러나 신명이 몸에 붙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은 더욱 두드러졌다. 뷰파인더를 통해 하나하나 보다보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모든 아이들에게 비슷하게 시간을 배분하면서 뷰파인더를 옮기지만 나중에 녹화된 비디오를 보면 유독 많이 잡힌 아이가 있다. 신명이 넘치는 아이다.
다솜이는 열심히 했고 예쁜 모습이어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신명에 빠져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표정에서도 악기를 다루는 면에서도 시선에서도. 다솜이는 공연을 하는 도중 문득문득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관객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잘해야한다는 생각,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나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아이였지만^^;;
아마 다솜이가 6학년이었던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공연했던 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로 앞에서 했던 신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솜이에게는 그런 신명이, 열정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고. 무엇이건 할 때는 거기에 몰두하고 틀리더라도 푹 빠져서 하는 그런 마음을 좀 더 가지면 좋겠다고. 다솜이는 인정하면서도 조금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비단 풍물만이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내가 아마 덧붙였을 것이다. 나는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하고 나서는 조금 후회하기도 했던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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