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and Writings/on photo

[윤미네 집]의 전윤미 씨 인터뷰(1)

그림자세상 2011. 1. 11. 00:12

그리움에서 그리움으로,

사랑이 사랑으로, 지금 이 순간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펼쳐질 때 그것은 오늘,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사진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말로 시작해 아내와 함께 삼 남매를 키워온 이십육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윤미네 집](시각, 1990). [윤미네 집]에는 윤미네 집의 가장이자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고 전몽각 선생의 가족을 향한 사랑이 있다. 첫 아이 윤미가 이제 막 태어나 실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서 시작해, 사진집은 그 아이가 하얀 면사포를 쓰고 윤미네 집을 떠나는 순간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순간과 순간 사이, 한 가족의 이십육 년 간의 삶이, 사랑이 담긴 시선 속에서 펼쳐진다. 아내와 아이들을 삶의 기쁨으로, 자랑으로 여긴 전몽각 선생의 카메라 속에서 펼쳐진다.

 

 

윤미 씨가 결혼해 미국으로 간 후, 윤미네 집에는 더 이상 윤미가 없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전몽각 선생은 한 지붕 아래에서 아내와 함께 삼 남매를 키웠던 그 시간들을 정리해 사진집으로 엮었다. 그때 그 [윤미네 집]은 딸을 멀리 떠나 보낸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이었다. 삼 남매가 자라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그 행복했던 시간들의 추억이었다. 그러나 오늘, [윤미네 집]은 윤미 씨의 그리움이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을 추억하는 딸의 그림움이 되었다.

 

 

1990년, 그때 [윤미네 집]은

 

 

윤미 씨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간 지 1년이 조금 지난 후, 한국에서 [윤미네 집]이 발간되었다. 그곳의 생활이 낯선 만큼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너무 그리웠다. 그래서 한국에서 날라 온 [윤미네 집]을 맞은 것은 눈물이 먼저였다. "나는 무심결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못된 습성이 생겼다. 김포 쪽 하늘에는 웬 비행기가 그토록 쉴 새도 없이 뜨고 또 내리는지." [윤미네 집] 서문에 고스란히 적힌 아버지의 마음이 딸 윤미 씨의 가슴에 콕 박혔다.

 

 

"저를 미국으로 떠나보내시고 공연히 빈 하늘만 쳐다보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어요. [윤미네 집]을 넘기고 또 넘겨보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또 우리가 '윤미네 집'으로 함께 한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했습니다." [윤미네 집]을 보고 가족이 함께 보낸 그 시절을 그리워한 것은 비단 윤미 씨만이 아니었다. 알지 못하는 한 아이의 유년 시절은 어느새 [윤미네 집]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그것은 잊혀져 가던, 소홀히 하던 지금의 가족을 생각하게 했다. 당시 [윤미네 집]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그 시절의 추억과 가족을 향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사진집을 세상에 내놓은 아버지, 전몽각 선생과 그 가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우리 식구 모두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고, 워낙 꾸밈없는 일상의 모습을 [윤미네 집]에서 보이다 보니 겸연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어요. 집에서 아무렇게나 하고 편안하게 있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쳐 나만의 공간을 들켜버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조금 궁상스러운 모습들조차 모두 푸근하게 느껴졌어요. 찌그러진 양은 냄비, 손뜨개한 스웨터, 기운 자국이 있는 내복, 정돈되지 않은 집안에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엄마와 삼 남매가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또 가족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꾸밈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기념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다른, 아이들의 모습과 가족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기 때문에 [윤미네 집]은 보는 이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특별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 특별한 순간들로 다가와 그 시간들을 추억하게 했다. 그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가족의 모든 일상의 순간을 사랑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해 추억하고자 했던 전몽각 선생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버지께서는 늘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으셨어요. 대학 시절부터 사진 찍기를 무척 즐기셨고, 결혼하신 후에는 가장 사랑하고 또 아끼는 가족의 일상을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남겨놓으시기에 늘 바쁘셨습니다. 우리가 싸울 때도, 울고 있을 때도, 산 정상에서 무서워 고개도 못 들고 어지러워 할 때도,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연을 날리고 썰매를 타며 웃을 때도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찍고 계셨어요. 제가 자라는 동안에도 그러하셨고, 나중에 암투병으로 많이 힘드셨을 때도 종아하시는 대상을 카메라에 담으시느라 여념이 없으셨어요. 가족과 사진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열정은 늘 한결같으셨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카메라를 의식하고, 남에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있는 그대로의 가족의 일상을 찍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점차 사진의 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버지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그런 아버지였기에 [윤미네 집]의 사진들이 가능했다. 그리고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남편의 사진에 대한 열정과 사랑하는 가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원하는 아내가 늘 곁에 있었다. 그래서 [윤미네 집]은 '윤미네 집' 식구가 함께 만든 사진이자 그들 모두의 기록이다.

 

"사진에 등장하지 않으나 아버지께서는 항상 렌즈 너머에서 저희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윤미네 집]에 사진이 많지만 저와 남동생 둘,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이 사진집의 주인공입니다. '윤미네 집'으로 불리던 우리 가족 모두의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에 담긴 한 가족의 소소한 일상은 시간이 흘러 그 가족의 가슴 따뜻한 추억이 되었고, 더불어 보는 이들의 가슴까지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물들게 했다.

'Texts and Writings > on phot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미네 집]의 전윤미 씨 인터뷰(3)  (0) 2011.01.11
[윤미네 집]의 전윤미 씨 인터뷰(2)  (0) 2011.01.11
Robert Capa  (0) 2009.07.02
곽윤섭  (0) 2009.06.25
가장 좋은 사진  (0) 200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