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돌부처는 아닌 게 아니라 절묘하다. 말하지 않을 뿐더러 듣지도 않는, 적요한 깨달음을 굴산사 폐허는 일깨우려는 것인가. 우리는 벌판 초입에 놓인 당간지주를 올려다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보물이다. 몸돌은 들까부는 장식이 없다. 덤덤하고 졸박한 모양새로 사라진 거찰의 위용을 전한다. 사라진 것이 절뿐이겠는가. 명색은 당간지주로되 당산이 없는 지주다. 깃대에서 날리던 괘불은 스러지고, 그 아래서 염불하던 사부대중은 고토가 된 지 오래다. 천년 뒤의 나그네는 당간 없는 지주 앞에서'가리킴 없는 가르침'을 해독할 수 없어 쩔쩔맨다. 하기야 지극한 노래는 소리가 없으니 굳이 현 위의 손가락을 놀릴 필요가 있으며, 지극한 말은 무늬가 없으니 파고 새기는 수고를 끼칠 연유가 있겠는가. 폐허는 풀벌레소리마저 들리지 않지만, 당간지주는 다함없는 설법을 전한다.
가까이 야트막한 수풀에 석불좌상이 놓여있었다. 석불은 초라한 모임지붕집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범일 스님이 가신 뒤 솜씨 모자란 고려의 어느 석장이 만들었을 법한 불상이다. 뻣뻣한 어깨 아래 투박하게 손질한 몸체, 게다가 훼손된 흔적이 뚜렸했다. 가슴께의 손시늉을 보아하니 지권인, 곧 비로자나불이다. 가련한 것은 부처님의 용모다. 얼굴이 대패로 밀어버린 듯 잘려나갔다. 불상이라지만 상호가 없는 불상이다. 손가락질을 해야 달을 보는 나는 무참해졌다. 사라진 것들은 사라진 것들의 운명을 기어코 보여준다.
폐허는 무풍경이고 서울은 살풍경이다. 돌아오는 마음이 여전히 무겁다. 오는 해의 기쁨으로 가는 해의 시름을 덮고자 선배에게 새해 덕담을 구했다. 그는 범일 스님이 폐사지에서 벌떡 일어난 것처럼 읊조렸다. "지나가는 것이 지나가는구나. 다가오는 것이 다가오는구나. 다가오는 것이 지나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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