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lace

Wild ducks flying from my mind....

그림자세상 2012. 3. 10. 11:16

지난 번에 발로 걸어 왔을 때는 질퍽한 흙길에 발이 푹푹 빠졌다.

여기저기 파헤쳐 놓은 흙더미 사이사이로 고인 물들을 비켜가다 진흙으로 푹푹 빠지며 걸었다.

지금은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벤취들이 놓였다. 

벤취들에는 아직 벗겨지지 않은 푸른 비닐 테이프들이 감겨 있었지만

더러는 테잎이 벗겨진 채

사람들이 앉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기도 했다. 

 

마음을 벗어두기는 강변을 따라, 어디라고 안 그렇겠는가 마는, 걷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 

쇠락한 구멍가게에서 컵라면을 하나 먹고 크림빵과 보리수를 챙겨 나와 걸었다. 

 

강에는 안개도 아닌 뿌연 기운이 가득했다.

해는 나오려다 들어가고 바람은 쉬었다 불었다 했다. 

나무들을 보며 새로 놓인 목재 난간이 있는 다리를 건널 때

키가 아주 큰 할아버지와 키가 그 반밖에 안 되는 할머니가 앞에서 걸어왔다. 

 스쳐지날 때 조금 떨어져 걷던 두 분은 

한참 뒤 수줍게 손을 잡았다 놓았다 했다. 

 

일흔이 다 되어 보이는 느릿한 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의 뒷짐 진 손에 들린 낡은 지팡이와

할머니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 봉지에 담겼을 단지 우유 둘과 귤 한 두개 정도 만큼의

한갓짐은 어떻든 걱정 없이 허락되어야 하는 세상 아니겠는가.

 

무엇을 담을 수 있는 날씨는 아닌 것 같았다.

강 따라 가는 길 내내 그냥 걸었다. 

조금씩 서서 지난번에 왔을 때 보아 낯익은 그 나무들 모습, 보면서.

 

강변 갈대숲에서 후두둑, 새들이 날아올랐다.

내 발소리에 놀란 녀석들의 갑작스런 비상에 나도 흠칫 놀랐다.

 

물 위에 떠 있는 새들은 보았으면서 갈대 속의 새들은 생각도 못했다. 

더러는 강 한 가운데로 날아가 앉았으나 

더러 날아올라 제법 멀리까지 강을 따라 날아간 녀석들도 있었다. 

 

그 녀석들을 담을 수는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냥 한참을 보았다.

 

하늘이라고 경계가 없을까마는

그 자유로움이, 순간이라도, 부러운 것 까지야 막을 수 없었다. 

 

이 녀석들의 비상은 이때 본 모습은 아니다. 

강변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서

가려고 했던 끝까지 가서 나무들을 다 담고 어스름이 내리기 직전,

저 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 다시 그 길을 돌아오면서 멀찍이서

가는 녀석들 보고 서둘러 담은 것이다. 

 

녀석들 모습 제대로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녀석들은 빠르고,

내게서 멀었다.

 

그러니까 실은 어제 갔다가 거의 마지막에 담은 모습이다. 

돌아와서 사진을 옮기고 나서 

눈에서도 마음에서도 잘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하고 날고 있었다.

 

고개를 쭉 빼고 제법 힘을 다해 나는 모습처럼 보였다. 

비상의 아름다움, 자유로움 그런 감정보다

왠지 삶의 부박함이나 지난함, 혹은 덧붙여 경건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저 녀석들 지금 막 늦은 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녀석의 모습이 특히 마음을 조용하게 한다. 

유난히 더 목을 빼고

더 힘있게 날개짓을 하지만 맨 뒤에서 힘겹다.

 

  

먼저 고개를 들고 바람을 맞으리라.

그 다음엔 용기를 내고 그 용기로 고개를 들고 바람을 맞으리라.

 

아라비아의 속담처럼

"고개를 들고 바람을 맞으라.

그 다음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바람을 맞으라."

 

내가 저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아니라

저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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