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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들의 숲 - 여은지

그림자세상 2010. 12. 25. 02:51

  옛날, 어떤 마을에 돈벌기를 좋아하고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형과 호기심이 많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동생이 살고 있었다. 동생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는 좋아라고 형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유난히 흥분한 듯한 얼굴로 집에 뛰어들어 왔다.

  "형! 형! 진짜 완전 엄청난 소식을 들어왔어! 들어볼래? "

  "뭔데 그래?"

  "옆 마을에, 왜 막 숲이 우거지고 유난히 어두침침해서 마을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옆 마을 있잖아. 거기에 사건이 터졌다는거야."

  "무슨 사건?"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애들이 없어진다는거야. 예전부터 한두 명씩 없어지곤 했는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보름달이 뜨잖아? 그래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그 마을 장로가 마녀사낭꾼을 구한대."

  "마녀사낭꾼? 지금이 마녀사냥이나 하는 시대였나?"

  "그게 아냐. 아이들을 잡아가는 게 흑발 마녀라는 거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가볼래?"

  "미쳤다고 거길 가? 거긴 마을도 어두컴컴한게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미쳤을 게 뻔하다고."

  "배상금이 꽤 되던대?"

  "...얼만데?"

  "우리집 두 채는 살 수 있을 정도."

  "짐 싸. 다른 사람들이 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야할 거 아냐? 애들 옷이나 챙겨. 마녀는 무슨. 요즘 시대에. 그냥 대충 애들 옷 몇개 주워다고, 마녀는 커녕 마녀의 성도 보이지 않았다고, 애들이 자살을 하는 게 틀림없다고 둘러대고 돈이가 받고 튀면 되는거야."

  "그래, 그래! 빨리 가자, 형!"

  오직 돈이 목적인 형과 싱글벙글거리며 짐가방을 끌고 형의 뒤를 따르며 끊임없이 재잘대는 동생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밤처럼 어두컴컴한 그 마을 부근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 숲은 옆마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높이 뻗은 가지에서 난 무성한 잎들은 여름의 뜨거운 햇빛마저 모조리 가렸고,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은 가끔 바람이 불어서 잎들이 흔들리는 소리 외엔 방음처리라도 한 듯이 조용했다. 형제가 걷고 있는 길은 비 온 뒤의 땅처럼 눅눅하고 습기가 차 있었다. 어둡고 조용하고 습기 찬 세 가지가 완벽히 들어맞자 숲에는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젠장, 기분 나쁘게..이러니까 마녀가 애들은 잡아간다는 헛소문이 돌지..."

  "왜? 으스스하긴해도 흥미롭달까...아무튼 신나는데!"

  형은 불평을, 동생은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고 40여 분을 걷자 드디어 희미하게나마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형제를 방해한 넝쿨을 손으로 치우고 마을 입구로 들어가자 길가에서 혼자 장난을 치던 여자아이는 겁을 먹은 표정으로 재빨리 자신의 집을 향해 달려 갔다. 아마도 이 마을의 부모들은 모두 자녀들에게 주의를 단단히 준 모양이었다.

  "칫, 기분 나쁠 정도로 도망가는군."

  "어쩔 수 없잖아. 이 마을은 위험하니까."

  "하아, 일단 장로부터 만나봐야겠다. 어딘지 알아야 가든 말든 하지! 뭔 길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냐고." 

  형이 끊임없이 투덜대자 동생은 가장 가까운 집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두드리고는 크게 말했다.

  "저기 마녀사냥꾼이 필요하다고 들어서 왔는데, 이 마을 장로의 집이 어디죠?"

  그러자 현관문이 아주 조금, 눈만 보일 정도로 열리더니 경계태세가 역력한 여자가 소곤대듯이 일러주었다.

  "길을 따라서 쭉 가시다 보면, 제일 크고 화려한 집이 있어요. 그곳이 장로의 집입니다." 

  여자는 말을 마치고는 문을 쾅 닫고 잠금쇠란 잠금쇠는 다 걸고 있는 듯 했다.

  "아, 감사합니다. 형, 가자!"

  이미 닫혀버린 문에 공손히 인사를 한 동생은 형을 이끌고 길을 따라서 걸었다. 집들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들이 커튼을 친 창문 사이로 형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걸었다. 그러다 보니 과연 지나쳐온 집들 보다 두 배는 커보이는 집이 있었다.

  "저긴가봐, 형."

  "저게 화려한건가? 확실히 크긴 크다만."

  "아무렴 어때! 빨리 가보자."

  짐을 질질 끌고 가서 초인종을 누르니 한참 있다가 걸걸하고 음산한 목소리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저흰 마녀를 만나려 왔는데요! 사냥꾼이 필요하다고 들어서요!"

  그러자 또 한참 있다가 문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당을 지난 집으로 다가가자,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약간 굽은 등, 하지만 큰 키. 하얀 머리와 그늘진 눈, 툭툭 튀어나온 광대뼈, 얇은 입술. 굉장히 음산하고도 어둡게 생긴 그 할아버지가 이 마을의 장로인 듯 했다.

  "마녀 사냥꾼이라...쉽지 않을 텐데?"

  의심스러운듯 눈을 가늘게 뜨고 형제를 노려보는 장로는 섬뜩하리만치 음산했다. 동생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물론 쉽지 않겠죠! 그래서 보상금도 두둑하던걸요.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죠."

  그제야 약간 의심을 푼 듯한 장로는 쇼파에 앉기를 권하고 자신도 쇼파에 걸터앉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3년 쯤 되었으려나. 갑자기 아이들이 사라져 갔네.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주민들은 여자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들었다고들 말했고, 마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지. 하지만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네. 요즘 시대에 마녀라니. 말도 안 되지....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있던 여인이 눈깜짝할새에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자 어쩔 도리가 없었지. '마녀'라고 믿을 수밖에....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분노하여 마녀를 잡을 가겠다고 한 지 2년이 지았는데...그들이 여타 돌아오지 않았다네."

  지나친 설명을 하는 장로와 신나서 듣는 동생, 그리고 의심스러운 눈빛인 형은 모두 거실에 흐르는 위태로운 공기 속에 앉아있었다.

  "음, 좋아요. 그럼 보름달이 뜨는 내일 밤까진 여기서 지내면 돼죠?"

  "그러도록 하개."

  "감사합니다~!"

  장로가 권해준 방으로 들어간 형제는 짐을 풀고 잘 준비를 시작했다. 자리에 먼저 누운 형이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야 조금 수상하지 않냐? 어쩌면 이 일, 진짜 위험할 수도 있을 거 같아."

  "형, 형이 그랬잖아. 헛소문일게 뻔하다고. 돈만 챙겨서 튀자고."

  "...아무큰 이 마을, 위험해. 무지 위험해."

  "아아, 그만 그만. 이제 난 잘래. 내일, 보름달이 뜨는 내일 밤을 위해서 말이야."

  동생은 형일 향해 씩 웃어주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바빴다. 숲에 들어가기 전, 챙겨야 하는 장비와 소지품을 점검하고 장로가 주는 칼을 한자루씩 받았다. 동생은 여전히 신나서 떠들어댔고 형은 불안한 눈으로 칼을 만져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한 무렵, 형제는 집을 나섰다. 장로가 염려하는 듯한 눈길로 배웅을 해주고 형제는 숲으로 들어갔다. 하늘엔 구름에 가려진 달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숲은 어제 낮의 숲보다 훨씬 더 음산하고 어둡고 싸늘했다. 숲에 깊이 들어갈수록 수상한 그림자가 형제의 곁을 맴돌았다. 형제는 식은땀을 흘리며 칼을 뽑아들었다. 신나서 재잘거리던 동생의 입도 보기 드물게 꾹 닫혀 있었다. 조용한 숲에는 형제가 걷는 소리 외에 비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심해. 이 괴물같은 것들, 한둘이 아니야. 내 뒤로 꼭 붙고 칼 꽉 잡아."

  "형도 조심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지러운 정도로 늘어나자 동생보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형은 그림자 같은 시커먼 물체가 보이는대로 칼을 휘둘렀다.

  "분명 뭔가 베이는 느낌은 나는데...한둘이 아닌게 문제야. 그냥 되도록 빨리 이 숲을 통과해야겠어."

  동생은 단단히 겁을 먹었는지 입을 조금도 열지 않았다. 그리고 형제가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고 발을 헛디디고 무작정 칼을 휘두르며 걸은지 20분 쯤 후에, 형제는 숲의 공터같은 곳을 발견했다. 매우 넓은 공터의 한 가운데에는 형제가 그렇게 찾아헤매던 마녀의 탑이 보름달의 빛을 받아 으스스하게 빛나며 서 있었다. 회식 빛깔의 탑은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군데군데 구멍이 커다랗게 나 있어서 더 음산해보였다. 그리고 형제는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 이게 무슨 냄새야? 토할거 같아..."

  "사체 썩는 냄새 같은데....? 가보자!"

  "잠깐만, 형! 우리, 우리 그냥 돌아가자."

  "됐어. 누가 썩은 고기 갖다놓고 마녀인척 하려는 거겠지."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간 형제는 헛구역질을 해댔다. 시체썩는 냄새는 아이들의 뼈로 추정되는 하얀 뼈무더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옆에는 옷, 아이들의 작은 옷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구름에 가려져 있던 보름달이 환하게 제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헛구역질을 해대던 동생이 탑을 가리키며 소리혔다.

  "탑이....탑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어!"

  형은 식은땀을 흘리며 탑을 흘끗 쳐다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채 소리쳤다. 

  "마...마녀...젠장! 이 전설은 다 진짜였어! 빨리 뛰어!"

  형의 눈길을 따라 눈을 돌린 동생은 구멍이 뚫린 탑의 내부에서 잠들어 있는 마녀를 발견했다. 소문대로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 주름이 많은 얼굴, 핏빛 입술, 기괴하고 음산하게 생긴 마녀를 넋이 나간 듯 보고 있던 동생이 형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형....봤어?"

  "뭘? 빨리 도망가자고!"

  "마녀의 눈썹이 흔들렸어."

  동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완벽히 핏빛으로 물든 탑은 잠든 마녀를 깨웠고, 넋이 나간 형제는 마녀의 쇠를 긁는 듯한 섬뜩한 웃음소리에 덮여, 자신들에게 흉측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마녀의 잔상에 덮여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형제를 본 사람은 없었고, 그 마을은 또다시 마녀사냥꾼을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고, 이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