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lace

다시, 두물머리

그림자세상 2012. 12. 29. 11:50

양평장날.

양평장을 가러 나선 길.

가보고 싶었다.

그저 걸으며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 걷고 싶었다.

그러다 앉아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고 올 생각이었다.

그러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담아 올 수 있으면 담고도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발이 날린다.

가는 눈발이라 오래가지 않을 것 같더니 이내 그쳤다.

 

엊그제에 비하면 풀린 날씨.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길로 데려다 줄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 안에는 적잖은 사람들로 붐볐다.

 

옆에 앉았던 키작은 60대 초반의 여성은 칼칼한 쉰 목소리로 연신 전화를 했다.

양평역에서 떠나는 열차 시간때문에 누군가를 만나 함께 할 시간이 없다고,

시간을 몰라 늦은 약속을 연신 탓하고 있었다.

팔당역을 지나면서 등산장비로 중무장을 한 짧은 머리의 노인,

이라 하기에는 단단한, 그러나 짧게 깎은 머리가 하얀,

60대 초반의 남성이 앞에 왔다.

둘은 마치 낯선 사람처럼 지하철 윗면에 있는 노선표를 보며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내 옆의 여성은 양평역에서 나와 함께 내렸고 

남자는 계속 지하철을 타고 갔다.

양평장에서 나는 내 옆의 여성을

세 번 지나쳤다.

 

맞은 편 노인은 [목민심서]를 읽고 있다가 졸았다.

단촐한 백팩 하나에 간편한 차림의 노인은

강단 있게 보이는 얼굴과 체격을 하고

굳게 다문 입술에 뚜렷한 인중과

각진 턱선이 인상적이었지만

하얗게 변했으나 여전히 숱 많은 눈썹에

단호함보다는 너그러움을 담고 있었다. 

[목민심서]라는 책이 그 노인의 어떤 면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졸음을 이기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노인의 졸음은 어느새 잠으로 변해 있었다.

구리역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 빈 자리가 많아진 전철 안에서

그 노인이 떨어뜨린 [목민심서]의 소리는 다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을 모두 돌아보게 했지만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옆자리의 학생이 주워주려는 순간, 노인이 눈을 떴다.

 

옆자리의 학생은 어린 여학생이었다.

고등학생 교복 차림이었지만 자그마한 체격이었다.

비비크림을 바른 것인 모양인지 유난히 하얀 얼굴,

귀염성은 있지만 그 또래의 조금 되바라진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아무것도 안 보는 것 같으면서도 다 의식하는, 가끔씩 빤히 바라보는 시선, 

입술에도 무엇을 바른 것임에 틀림없는 짙은 입술,

가늘지만 역시 짙은 아이라인,

갈색의 긴, 차가운 바깥 바람에 헝클어진 다듬어지지 않은, 웨이브 진 중간 길이의 머리,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유난히 짧은 치마와 맨다리였다.

그 아이가 들어서던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가느다란, 아니 앙상한 맨다리로 향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며 차가운 겨울 바람과 함께 그 앙상한 맨다리가 들어왔을 때

보는 마음도 함께 추워졌다. 

자리에 앉은 아이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손은 가지런히 치마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지만 무릎에 상채기가 난 그 앙상한 다리에 마음은 차꾸 추웠다.

떨어진 [목민심서] 소리에 가장 놀란 이가 그 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옆에는 대학생이 틀림없어 보이는

말간 얼굴의 여학생이 미색 목도리에 검은 색 어그부츠에 따뜻해 보이는 밝은 회색빛 외투를 걸치고

망우에서 지하철에 탈 때 부터 보고 있던 영어 학습용 노트에 집중하고 있었다.

숱 많은 머리는 귀 뒤를 지나 어깨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짧지만 짙은 검은 눈썹,

복스런 자그만한 둥근 코, 또렷하지는 않지만 흔적은 보이는 인중,

단어를 외우는 것인 모양이라 계속 움직이지만 고집스렇지 않게 다물어지는 작고 또렷한 입술, 

무엇보다 그 여학생에게서 눈에 띈 것은 하얗고 깨끗한 피부와 맑은 눈,

그리고 부드러운 유선의 닭걀형 얼굴이었다.

광대뼈가 조금 튀어 나왔지만, 전체적인 얼굴의 부드러운 윤곽을 흐트러트리지는 않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당히 앞을 향한 작고 예쁘장한 균형있는 귀도 그 학생의 전체적인 유선형 윤곽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눈은 맑았으나 그 모양이 전체적인 얼굴의 느낌을 조금 오밀조밀하다 느끼게 할만큼

     작고 코를 향해 가까이 있는 데다 눈 자체로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윤곽에 비해 작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얼굴과 외모가 지닌,

부드럽고 유순하면서도 자기 강단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저버릴만큼은 아니었다.

 

그 옆에의 빈 자리를 지나 끝자리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이 앉아 있었다.

갤럭시폰의 음악을 하얀 이어폰 한쪽씩 나눠 들으며, 꼭 붙어 소곤대다

지하철의 사람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번쯤 가볍게 입맞춤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모습이 예뻐보이지 않았다.

더러 조금 과해도 그 모습 자체로는 웃음 짓게 만드는 커플들이 적잖은 것에 비하면

둘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부조화는 그렇게 보이는 법이다.

  

여학생은 2학년쯤이겠고, 남학생은 복학생일텐데 나이는 더 들어보였다.

여학생은 전체적인 얼굴 윤곽은 그 옆의 여학생과 비슷해보이지만

훨씬 더 날카로왔다.

전체적으로 얼굴 선들의 날카로움이 두드러졌다. 

눈은 얼굴에 비해서도 작고, 꼬리가 길게 솟았다.

눈을 커보이게 하려던 듯 짙게 칠한 아이라인은 부자연스러웠다.

작았 코는 낮지는 않았지만 날카롭게 빠지는 선이 조금 왼편으로 휘어 있었다. 

얼굴에서 빛보다는 그늘이 승했고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뾰족하지는 않지만 선형에 가까운 좁은 아랫턱이 조금 들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내눈에 또렷한 오른쪽 귓볼이 아래 위로 조금 날카로운 인상을 주며 길었다.  

 

남자는 반대라고 할까.

유난히 검은 얼굴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이었고 운동을 할 것 같은 중 이상의 체형에 비해

얼굴은 물론 그 안의 눈과 코, 귀가 전체적으로 비례에 맞지 않게 작았다.

두드러진 것은 큰 입이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꼬리가 긴 입에

입술에는 붉은 빛이 보이지 않고 검은 빛이 두드러졌다.

그 입술이 아주 두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쉼 없이 이야기를 하는 입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꼬아올린 왼 다리는 남자의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지만 얼굴을 고려하면 그 눈은 반짝이기보다는 

차분한 것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아마 옆의 여학생과 둘이 유일하게 닮은 것이 있다면

작지만 반짝이는 서로의 그 눈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남학생이 많이 하지만

결론은 여학생이 낼 것이다.

그러나 한편 말로 혹은 논리적으로 여학생이 이기더라도

남자의 고집을 다 꺾지는 못할 것이다.

여자는 자주 과하게 투덜거릴 것이며,

남자는 대부분 그 투덜거림을 들어줄 것이다.

여자는 얇게 흐르는 개천이고

남자는 얕은 개천을 건너는 법을 잘 아는 만큼의 지혜는 있다.

그러나 깊은 강을 건너지는 못할 것이다. 

하기에 애초 그럴 마음도 없다.

얕은 개천을 건너는 데 익숙한 사람은 깊고 먼 강 까지 가지 않는 법이며,

깊고 멀리 흐르는 강은 얕은 개천을 건너는 사공을 찾지 않는 법이다.   

 

그러고그러면서 보내는 시간,

그 사이에 기차는 얼어붙은 강을 건넌다.

 

 

그리고 양평역에 내려서 눈내리는 길을 지나

양평장을 걸었다, 2시간 정도.

네 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양평장, 보러 온 사람들과

물건을 사고파는 분들, 그 물건들을 구경했다.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운데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유난히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장갑은 생각보다 싸지 않았고,

사람들은 국밥집과 족발집에 많았다.

천천히, 그렇게 양평장을 걷다가 나오는 마지막 입구에서

잡곡을 팔고 계신 주름이 쪼글쪼글한 할머니 앞을 지나는데,

마침 한 분이 은행을 막 사려는 참이었다. 

하얀 비닐과 검은 비닐에 가득 담긴 은행, 얼마냐고 물으니 만원이라신다.

나도 놀라고 사려던 분도 놀라고.

은행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이긴 하나 대충 보기에도 다른 좌판에서 

껍질 까서 5,000원에 파는 것의 서너배는 되어 보였다. 

사려던 분도 그걸 다 사려던 것은 아니었고 아마 그 일부 사려던 모야이었는데

그 전부가 만원이라고 하자 얼른 다 달라고 한다. 

그분이 가고 할머니께 너무 싸게 파신 것 아니냐고 하자

눈도 오고 사람도 없고 안 팔리기도 하고 이곳이 끝자리나

대부분 저 안에서 깐 은행을 사가지고 나오니 더 팔릴 것 같지도 않고

도로 가지고 들어가기도 힘들고 그래서 그냥 귀찮아서 팔아치울라고, 하신다. 

더 있냐 물으니, 살라고? 하신다. 그렇다,니 그럼 잠깐만 여기 판 좀 보고 있어요, 하더니

골목으로 들어가신다. 한참 후 자루를 하나 들고 나오시더니

한껏 담아주신다. 은행 껍질 까기 귀찮아서 안 까고 팔려고 나왔는데 자 안 팔려, 하신다.

검은 비닐 봉지에 한 가득 담고, 더 담고, 하여간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는 것을 겨우 빼고 넣고 해서 나왔다.

 

그렇게 눈구경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나는 다시 두물머리, 갔다....

 

은행이 무거워 혼났다...

 

같은 곳,

다른 모습.

 

지난 추위에 강은 꽁꽁 얼어 있었다.

 

 

 

 

늘 지나치며 그냥 눈으로만 보던 것,

다시 한 번 보고...

 

 

그렇게 다시 찾은 두물머리,

두 강도 꽁꽁 얼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고 가고.....

 

 

 

 

 

나는 저 나무 뒤의 벤취에서 가져간 커피를 다 마시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오고 간 한참 뒤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앉아 있었다.

 

빈 자리에 자리 틀고 앉은 철새들도 보고

 

 

 

어스름이 내리는 얼어 붙은 두 강도 보고

 

 

 

여전히 그 강을 찾는 사람들과

그 강을 찾을 사람들과

변함없이 그들을 맞아줄

강, 나무, 산, 하늘 구름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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